[eBook]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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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관해서라면 수도 없이 긍정적인 평을 들어왔으나, 나는 늘 이 작품을 읽는 일을 주저해왔다. '일'이라는 단어가 특히 나를 장류진 작가의 작품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일'은 어쩐지 억울하고, 기피하고 싶은 대상으로만 느껴졌다. 일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내 이전에 그것을 시작해온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일과 직장이란 삶에서 제거할 수만 있다면 재빨리 기회를 낚아채야 하는 종류의 것처럼 여겨졌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 또한 스스로의 자리를 찾기가 무척 두려웠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일이 있는 삶을 논의하고자 한 <일의 기쁨과 슬픔>이 반가울 리 만무했다. 그러나 막상 내 책상을 찾고 보니 일이란 것에도 제 나름대로의 기쁨이 있었다. 내게는 해야 할 일과 돌아갈 자리가 있었고, 정당하게 번 소득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약간의 자유도 주어졌다. 일을 시작한 이후의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이미 노동에서 비롯되는 슬픔과 기쁨을 적당히 감지해 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책을 읽을 용기도 낼 수 있었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 원을 내야 오만 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 이천 원을 내면 만 이천 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 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일'이라는 타이틀에 이토록 두려움을 느끼며 머뭇거리던 나의 긴장이 무색하게도, 이 책에는 '일'보다 '자본주의의 논리'가 새겨져 있다. 노동이 주는 슬픔과 기쁨이 아닌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면서 감각한 적 있는 온갖 감정에 관하여 서술하려는 작품이다. 장류진 작가의 작품집 속에는 세상의 논리를 이해하는 자와 물질이 정립한 질서를 의도치 않게 어그러뜨리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 스스로의 감정과 자신만의 꿈을 돌보며 자본의 논리를 무너뜨리는 이들은 민폐투성이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통한다. 이들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고, 자본주의의 피가 내재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쉬이 도태된다. 남들은 빠르게 회전하는 회전문을 잘만 통과해도, 그들은 그 속도를 버거워하며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타이밍을 놓쳐 버린다. 나도 자본이 만들어낸 세상의 거대한 질서에 편입되지 못하고, 남들처럼 인생을 '효율적'으로 살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스스로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게 없었지만, 이 의도치 않은 순진함으로 가족들을 답답하게 만들어 왔다. 그래서 "새댁이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와 같은 말을 작품 속에서 들을 때마다 자주 움찔거렸다. 나로서도 꽤 세상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어쩐지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에게 떼를 쓰고 싶어졌다.

*

"나에겐 고심 끝의 결정이자 엄청난 도전이고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였는데, 다 준비하고 나서 보니 결국 남들이 한 번씩 해보는 걸 나도 똑같이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게, 유행의 일부일 뿐이라는 게, 그저 준비운동을 마친 것일 뿐이라는 게,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장류진 작가의 글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소설 속의 상황이 나의 현실과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숨기고 싶던 아픈 현실이 종이 위에 낱낱이 까발려지는데도 독자의 기분을 전혀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 위트와 적절한 가벼움으로 버무려낸 현실은 웃프면서도, 공감을 이끌어낸다. 내가 어제저녁에라도 겪어 봤을 법한 날것의 일상을 이끌어 내는 것이 장류진 작가의 작품에 한 번 매료되고 나면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훅 치고 들어오는 감동도 그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이번 작품집에서도 <탐페레 공항>에서 찰나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해 준 핀란드 할아버지 '얀'이 등장한다. 사소한 행동과 말 한마디로 다양한 일을 소화하며 삶을 버텨내고 있을 이들에게 이 작품은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또, 가본 적 없는 나라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은 먼 미래에 대한 기대와 그만큼 또 먼 과거에 꾸었던 꿈에 대한 향수를 자아낸다. 앞으로 정신없이 나아가며 지쳐 버릴 때쯤 내 안의 '오로라'를 새삼 발견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기쁨이자 슬픔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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