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하는 여자들
대니엘 래저린 지음, 김지현 옮김 / 미디어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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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이 책에 사로잡혔다. '반박'이라는 단어에 담긴 반항기가 작품을 읽도록 부추겼다. 반박과 여자들이 연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늘 본래의 질서에 반항하는 무리를 존경했다. 마음에 찬 분노와 달리 대열에서 벗어나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늘 깨어있고, 반박할 줄 아는 한 명의 여성이자 더 나아가 인간이고 싶기 때문에 <반박하는 여자들>을 읽고자 했다. 책의 제목으로부터 나는 전사와도 같은 여성들의 모습을 기대했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보이는 무미건조한 평범함과 공감하는 데 실패했다.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처럼 문장이 내포하는 의미를 발견해내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너무 들어 그만두었다. 책을 읽는 데 지나치게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우려스럽기도 했다. 무조건 깊이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이 책에서 멀어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반박하는 여자들>을 읽으면서 상대가 공격도 하기 전에 이미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대의 친절함에 나는 기다리다 지쳐 나가떨어지고야 말았다. 나는 여성들을 너무 피해자와 반박하는 이의 입장에 고정시켜 놓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반박하는 여자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모든 부담감을 내려놓고 가볍게 책장을 넘기라고 조언하고 싶다. 책장이 무척 술술 넘어가는 재밌는 책인 건 확실하니까.

<반박하는 여자들> 속 작품을 읽다 보면 여성은 비교적 흔하게 오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의 행동은 본래의 의도와 달리 상대를 유혹하려는 것으로 해석되고, 그 때문에 비난받는다. 서슴없이 여자의 몸을 만지는 남자들을 생각해보면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은 성적인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겨지고, 이외에는 여성과 남성 사이에 별다른 관계가 맺어질 수 없는 것처럼 작가는 묘사한다. 또한, 작품 속 여성들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묻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타인이 내린 결정에 휩쓸려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이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여자가 없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들은 그저 타인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다. 세상에 감정을 분출하기보다 눈앞에 떠다니는 누군가의 유령을 조용히 떨쳐내는 여자들에게서 나는 씁쓸함을 감각한다. 사진을 찍는 일처럼(<내가 사랑하지 않은 파리의 미국 남자들>) 자신만의 관점을 지니고,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을 텐데. 한편으로는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으리란 생각도 든다. 즉, 화장실에 갑자기 쳐들어와 내 목에 키스한 남자를 향해 주먹을 날리기보다 침묵하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는 쪽이었으리란 것이다.

작가 대니엘 래저린의 작품 속에서 여자들은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려고 한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해 애초에 감정에 지나치게 빨려 드는 것을 경계한다. 상실의 상처를 입기 전에 헤어지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수동적이고, 이성적인 면모를 보인다. 적극적으로 상황을 상대와 개선하거나 상처를 준 사람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감정적인 모습을 미리 제지하는 것이다. <반박하는 여자들>의 여자들은 상실의 고통을 두려워하며 처음부터 원하기를 거부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기울인다. 여러 작품에서 이러한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가 남녀 관계뿐 아니라 숱한 인간관계에서 지쳐 독립되고 외로운 개체가 되려는 사람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어떤 관계에도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감정적인 시련을 덜어낼 수 있으니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더 외로워야 하고, 또다시 사람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니 <반박하는 여자들>에는 관계로 인해 감지되는 비좁음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에게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갑갑함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애정이 자신에게 쏟아지기를 사람들은 바란다. 그러나 관계 속에서 내 변덕에 따라 애정과 자유가 적절하게 주어질 수 있을 리는 없다. 각자가 나름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도, 어긋나는 지점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결국엔 어느 때든 상대의 마음을 소중히 할 수 있는 태도가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반박하는 여자들>이 여성을 옹호하고, 세상에 반박하려는 책일 거라고 예측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사람 간의 관계를 고찰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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