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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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의 온갖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변명을 해보자면, 이전 작 <작은 것들의 신>이 97년도에 출간되었으므로, 나는 그녀를 알기엔 너무 어렸다. 인도에 관한 편견이 작품에 도달하는 일을 방해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상상하는 그곳은 너무 혼란스럽고, 불쾌한 경험으로 가득했다. 가본 적도 없는 장소를 멋대로 규정하고, 무시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무수한 매력을 놓쳐버릴 수 있음을 알만큼 성장했다. 이런 깨달음은 중국에서 잠깐의 교환학생 생활로 얻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인도에 대해 그랬듯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비하했다. 두려움을 안고 내가 진짜 그곳으로 갔을 때, 나는 더 이상 그 무엇에도 선입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은 고유의 매력으로 빛났고, 외국인인 나에게 한없이 관대했다. 한국과 달리 타인의 시선에 덜 신경을 써서 일종의 자유로움을 선사했다. 그러니까 나는 찰나의 경험을 통해 쓸데없는 편견을 버릴 수 있었고, 오늘 <지복의 성자>가 보여주려는 인도의 불완전한 면을 어떤 과장도 없이 직시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룬다티 로이가 보여준 인도는 한국의 과거와 닮아있다. 사람들을 감금시키고, 고문하는 '시라즈 영화관'의 존재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지복의 성자>를 읽는다는 건, 한국이 가진 아픔을 찬찬히 훑어보는 일이다. 더 나아가, '위로받지 못한 이들에게' 바쳐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전 세계에 놓인 고립된 자들을 이젠 외면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지복의 성자>에 등장하는 '안줌'은 트랜스젠더다. 그가 가진 '여성'이라는 성에 관한 자연스러운 끌림과 어떤 열의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자로 살아간다는 건 숱하게 약자의 위치에 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계에서도 <이제야 언니에게>, <82년생 김지영> 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이 견뎌야만 하는 차별과 폭력을 토로했다. 인도는 한국보다도 더 여성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국가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자살하는 여성 중 약 40%가 인도인이라는 보고까지 있다(주요 원인으로 조혼과 가정폭력이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줌'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훨씬 큰 축복이라고 말한다. 분쟁과 내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남성은 종종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폭력에 가담하도록 요구되는 탓이다. 그들은 이유 없이 잠재적인 혁명가로 분류되어 처단당하기도 한다.

남성의 시선에서 여성이 처한 우월성을 짚어내면서도, 아룬다티 로이는 여전히 피해자에 속하는 여성의 서사를 다룬다. 가난한 부모에 의해 경제적 도구로 전락하고, 어김없이 가정폭력이 등장한다. "여자들은 허용되지 않는다"라는 문장 앞에, 어떤 행위가 삽입되더라도 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는) 무덤 가까이 가는 게, (한국에서는 흔히) 제사를 지내는 게. 여자들은 특별한 근거 없이 여러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한편으로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안줌'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엄마'의 자격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신체적인 문제로 '안줌'은 아이를 가질 수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생명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싶어 한다. '안줌'의 반대편에 나름의 이유로 생명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립적인 두 집단을 통해 우리는 생명에 대한 간절함이 '엄마'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피가 섞이지 않더라도, 공동체를 이루고 충만한 삶을 영위해나가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와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이번 소설에서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 특히 카슈미르 지역에서 일어난 분쟁과 학살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여러 캐릭터와 서사는 인도의 불온전함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안줌'은 세상의 변두리에 서서 낮은 시선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의 삶을 관찰한다. 또, '아자드 바르티야 박사'라는 캐릭터의 글을 통해 작가의 의도는 정점에 달한다. 인도의 잘잘못을 무자비하게 쏟아내고, 비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녀는 오랜 다툼 속에서 스러져간 영혼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지복의 성자>를 탄생시켰다. 계급 간의 끔찍한 차별과 종교적 이념 차이로 인한 살육은 그러나, 사회적 갈등과 역사적 관점에서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봐도, 우리는 그저 시험을 위한 역사만을 다뤄왔을 뿐, 모든 죽음을 기억하고, 기리지 못했다. 때로는 무고한 생명의 죽음에도 우선순위를 매기며 살아왔는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저자는 인도에 대해서 쓰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이에게 숙고하고 반성할 계기를 마련해 준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사람들은 피해자보다 그가 찍힌 사진의 저작권 싸움을 더 오래도록 기억했다.

TV 카메라와 미디어는 선택적이고, 편집된 보도로 무자비한 전쟁에 가담했다. 억울한 이들의 고립된 슬픔을 외면하고, 대중이 냉소적이 되도록 부추겼다. 올바른 질서 확립을 위해 나서고, 국민의 편에 서야 할 정부와 경찰은 인도 전역에서 모여든 온갖 피해자의 요구와 꿈을 묵살한다. 이처럼 모두가 무관심할 때, 미디어의 기록은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공권력을 고발하고, 대중의 관심을 필요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회의 흥망성쇠에 있어 언론은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한다.

<지복의 성자>는 슬픔으로 시작해 절정으로 치닫다가 희망으로 막을 내린다. 배제되고 차별받은 사람들끼리 결합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나간다. 무엇보다도 '미스 우다야 제빈'이라는 미래 세대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는 외로운 자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나 인도를 자멸로부터 구해낼 것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의 손에서 새로운 씨앗이 피어난다는 사실은 어쩐지 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까지 끌어안는 진정한 포용의 미학을 보여준다.

작품 속 인도뿐 아니라, 내가 사는 세상에도 "희망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희망에 차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품위"라는 것을 잊지 않고, 더 큰 '아자디(자유)'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야 하겠다.

▶연관 작품

<남산의 부장들> w.김충식, 폴리티쿠스 출판(주지하다시피 동명의 영화가 존재한다)

<타인의 고통> w.수전 손택, 이후 출판

그는 누구를 애도하고 있었을까? 틸로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한 세대 전체일지도.- P355

카슈미르는 피부가 흰 사람들이 피부가 검은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런 뒤바뀜이 끔찍한 비방에 일종의 정당성을 불어 넣었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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