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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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리브스는 <20vs80의 사회>에서 교육이 계급 재생산에 기여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중상류층의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경제 하위층의 사람들과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에 집중한 것인데 배움에 관해 다른 시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여기에 때늦은 교육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화해를 시도하는 작가 '타라 웨스트오버'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교육을 비롯해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거부했다. 어떤 위험한 순간에도 현대 의학에 의지하기보다 민간요법 치료를 지향했고, 심지어 아이들의 출생신고까지 하지 않았다. 집착에 가까운 종교적인 신념으로 세상의 종말을 예측하는 저자의 아버지는 소설 <나의 아름다운 고독>을 떠올리게 했다. 소설은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딸이 어떻게 자신의 세상을 벗어나는지를 그리고 있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아버지는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폭력을 자식에게 가했다는 점은 닮아있다. <나의 아름다운 고독>은 소설에 지나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배움의 발견>은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다. 소설에 가까워 보이는 작가의 무수한 경험들이 실제의 기억에 의존한 글이라니. 또 한 번 내가 무심코 지나쳐온 세상의 이면을 발견한다. 그것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무관심한 아버지는 아이들 모두에게 무시 못 할 수준의 영향을 끼쳤다. 7남매 중에서 특히 '숀 오빠'는 정서적으로 가장 불안정했고, 나중에는 분노조절장애와 폭력성을 띠기 시작한다. 해당하지 않는 가정도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교육의 중요성이 극대화되고, 작가는 짧은 배움이 대물림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무지함으로 인해 숀 오빠나 아버지의 정신적인 문제가 적기에 해결되지 못하고, 이런 상황이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자신의 조카들이 자신처럼 아버지가 만들어낸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까 걱정을 표한 것이다. <배움의 발견>에서 교육은 이처럼 자신의 현실을 인지하고, 기존의 세상에 불만을 품고 있다면 그것을 깨고 나아갈 발판이 되어주는 기능을 했다.

숀 오빠와 아버지가 그녀의 자아를 억누르고, 기존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상황에서도 '타라'는 배움을 지속했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기적처럼 그녀의 삶에 등장한 여러 은인들 덕분이다. 그리고 기적적인 여정의 시작에 그녀의 오빠 중 하나인 '타일러'가 있었다. 타라보다 먼저 가족에게서 벗어나 대학에 입학한 타일러는 그녀의 가능성을 주지시키고, 자신과 같은 대학에 입학할 것을 권유한다. 배움의 기회가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막냇동생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던 타일러의 존재를 저자가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는지는 작품이 '타일러 오빠에게'로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감지할 수 있다. 자신의 위치가 명확히 어디인지를 알 수 없어하면서도 인생이 바뀌리라는 믿음을 완전히 놓지 않고 탈출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 자신의 노력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준 은사들만큼이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아무리 옆에서 격려했더라도, 스스로 내려놓고 다른 세상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애쓰지 않았다면 현재의 성공은 없었을 테다. 의지할 데가 하나도 없이 완전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저자가 애초에 얼마나 강력한 결심을 세워야 했을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책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는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부모의 조종을 받던 삶에서 벗어나 우리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알을 깨려는 시도를 한다. 이는 충돌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한 충격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래도 의심의 여지없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거쳐야 하는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인생에서 어느 것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단계인 것이다. 저자가 견뎌낸 지난한 삶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특별한 대가 없이 얻을 수 있었던 기회들을 떠올렸다. 나는 풍부한 교육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것의 소중함을 미처 알지 못해 기회를 낭비하는 삶을 살아왔다. 아니,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오히려 교육에 저항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것 같다.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나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하는 시기에 이를 깨달을 수 있는 배움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무성의하게 학창 시절을 떠나보낸 나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무언가가 어떤 이의 인생에서는 철저하게 결핍될 수도 있음을 목격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것의 중요성과 귀중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책 제목에 딱 들어맞게 나는 진정으로 배움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20vs80의 사회>에서 리처드 리브스가 교육을 철저히 중상류층의 시각에서 권력 강화의 도구라고 본다면, <배움의 발견>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는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교육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한다. 리처드 리브스는 모든 아이가 학교를 다닌다는 전제하에 다양한 계층의 아이들이 혼합되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타라 웨스트오버는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완전히 벗어나 고립되어 자신들이 박탈당한 기회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한 아이들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 '교육'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양쪽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그래야만 더 풍부한 시각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한편으로 무지로 인해 세상의 폭력에 가담해왔음을 배움을 통해 "자각"하고, 더이상 꼭두각시로 살지 않겠다는 저자의 외침은 마치 영화 <레미제라블>이 보여준 프랑스 혁명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자신이 감내해온 세상을 부수고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배움의 발견>이 유용한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거야
- P196

학생은 순금이예요. (...)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학생을 보는 눈은 변할지 모르고, 학생이 자신을 보는 눈도 변할지 모르지만. 어차피 순금도 빛에 따라서는 덜 빛나 보일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빛이 덜 난다면 그게 허상인거예요-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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