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 나태주 시집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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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동아리에서 시를 쓰곤 했었다. 세상이나 사랑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스스로를 퍽 어른스럽다고 여기며 살던 때였다. 당시에 내게 '시'라는 건 아무리 읽어도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과 심오한 문장들로 가득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시'를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레 중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어른들을 흉내 내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여,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을 써내려던 어리면서도, 어리지 않던 시기의 내가 연상된다.

하지만 나태주 시인의 작품만큼은 늘 직관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어렵지 않은 단어들이 엮여서 마음을 단번에 툭 치고 들어온다. 나태주 시인의 글이 쉬우면서도, 사람들을 울리고야 마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 시를 쓰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듣는 것만으로도 읽는 이에게 기분 좋은 설렘을 안기며,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나태주 시인이 노래하는 사랑은 시집을 잘 접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풀꽃 1>에서 빛을 발한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스스로 위로를 얻게 되거나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특정 개인을 향해 읊조리는 듯했던 이전의 시들과 달리 인류애, 더 나아가 지구 자체에 마음을 쓰는 시들이 이번 작품에는 여럿 수록되어 있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하던 사랑 시는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된다. 이렇게 끊임없이 사랑을 거듭하면서도, 시인은 소유하려는 욕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사실 무언가에 애정을 가지다 보면, 자연스레 소유욕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의 욕망을 강요하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아이가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태주 시인은 작품에서 사랑하되 거리를 두려는 인내를 발휘한다. 그저 보고 싶으니, 목소리만 좀 들어보자,라고 말할 뿐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바람이 지나갈 정도로 선선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던 가수 양희은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나태주 시인도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할 때 사랑에서 비롯된 인간관계가 올바르게 지속될 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사랑을 쏟아내면서도, 상대가 자신의 자아를 찾을 수 있을 만큼은 배려를 한다는 점에서 나태주 시인은 진정한 사랑을 알고, 또 노래한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는 나태주 시인이 등단한지 50주년이 된 해를 기념해서 출판된 작품이다. 1부에는 신작시, 2부에는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시, 3부에는 시인이 직접 고른 시들이 수록되었다. 300쪽 넘게 꽉꽉 채워진 시들을 읽으며, 시인의 성실함과 바래지 않은 순수함, 그 속에서 묻어나는 연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들이 간단해 보이지만, 50년 동안 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를 쓰기 위해 태어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단어들로 사람의 근원적인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책의 표지에는 한겨울이 그려졌지만, 시에서는 가을이라는 소재가 빈번하게 활용된다. 가을도, 겨울도 쌀쌀하고 추운 계절이지만 그것들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한 쪽이 극복할 수 없을 듯한 쓸쓸함과 외로움을 선사한다면, 후자는 포근하고, 희미한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집은 겨울의 이미지와 많이 닮아있다. 그립지만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슬픔을 묘사하다가도, 현재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을 시인은 상기시킨다. 그래,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지금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작은 풀꽃들 하나하나에게도 관심을 두고, 인사를 건네야겠다 : "꽃들아 안녕! 안녕! (p179, <꽃들아 안녕)", "지구님 안녕!/나도 지금은 잠시 안녕하답니다(p146, <지구 소식>)". 사소한 인사 하나로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인생의 충만함을 감지하는 것이 나태주 시인이 독자들에게 건네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내가 뽑은 명문장

"읽다 만 책 몇 페이지

마저 읽지 못하는 것

좋은 사람들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것

그 또한 아쉽고 안타까웠다"

(p276, <누워서 생각했을 때>)

-

딱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죽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주위의 공기가 싸늘해지면서, 무섭고 두려워졌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쉽게 공포를 조장하지만, 때로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어차피 다들 죽음을 맞게 되기라는 생각을 하면, 제멋대로 살아도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으로 비난을 받게 될지 모르지만, 종국에는 그들도, 그들의 기억도 사라질 테니까.

"행색이 초라한 사람 손에

들려진 등불일수록 더욱

멀리까지 비쳐짐을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p249, <등불>)

이 작품에서 '등불'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시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행색이 초라한 사람'이라는 건 부정적인 감정들에 짓눌려 있는 사람이라고 짐작했다. 종종 하는 생각이지만, 우울과 절망을 겪어본 자만이 타인의 슬픔에 더 잘 공감하고, 진정한 위안을 건넬 수 있다. 자신이 실패하고 나서야, 세상의 이면에까지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겪은 만큼만 남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잘 있겠지

잘 있을 거야

문득문득

네가 보고 싶어

(p77, <너 보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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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고 싶은지 알지 못하면서도, 막연하고 아득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너무나 힘들게 더디게 왔다가

너무나 빠르게 허망하게

가버리는 봄

우리네 인생에도

봄이란 것이 있었을까?"

(p199, <봄>)

-

봄이 되면, 동네에 벚꽃이 한가득 핀다. 분홍 잎들이 도로를 가득 메워 설렘을 안겨줄 수 있기를 날씨가 따뜻해지는 순간부터 고대한다. 하지만 꽃을 구경하던 즐거움은 1~2 주면 사라진다. 겨울이 오면, 그 자리에 벚꽃이 피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벚꽃길'이라는 팻말로 추억을 간신히 꺼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 그곳을 지날 때마다, 봄을 기다린다는 게 하잘것없고, 허망한 일처럼 여겨졌다. 그래도 아마 나는 벚꽃을, 봄을 또 애타게 기다리게 될 것이다. 매일 산책길로 나가 꽃이 세상을 나올 준비를 얼마만큼 했는지 지켜보리란 생각을 한다. 기간은 아주 짧지만 서도, 그것들이 내 마음에 남기는 따스함과 기대로 마음이 충만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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