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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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은 비행기가 떠나고 남은 구름을 가리킨다. 제목은 어쩐지 희망차게 날아가는 모습을 암시하지만, 책에 담긴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고, 방황한다. 첫 작품인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미영'은 좋아하던 선배의 부탁때문에 "누가 봐도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방송에 출연한다. 수치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미영'에게 선배 '준'은 그녀를 반하게 만들었던 그 대사-고개 좀 들어, 이 녀석아-를 친다. 자신을 유일하게 알아봐주던 존재와의 관계가 좌절되자 그녀는 어릴적 죽을 뻔 했던 경험을 떠올린다. "생전 처음 겪는 공포가 밀려왔다. 아득하고 설명이 안 되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41p)" 물 속에 가라앉던 때의 경험에 대한 서술은 어쩐지 자신을 존재하게 만들었던 선배 '준'과 안좋은 끝맺음으로 인한 고통을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을 구해주었던 '병만'을 떠올리며 "많이 아팠을텐데...(44p)"하고 크게 울어버리고 만 것은 '준'때문에, 즉 누군가의 관계로 인해 아파야하는 자신을 자신에 손톱에 눌려 아파했을 '병만'과 동일시한 것이다.

<벌레들>에서는 득실대는 벌레들로 가득한 '장미빌라'에서 고통받는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임신으로 한껏 예민해진 '나'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벌레들에 힘겨워하지만, "어쨌든 견뎌내야 했다.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까 . 모두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으니까(65p)" 애쓴다. 떨어진 결혼반지를 찾기 위해 나갔다가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곳에서 출산의 징조를 맞이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게 말이나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고독하고 힘겹다. "단지 장막 한 장이 드리워졌을 뿐인데, 그 소리가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 울음이 날 것 같았다(...)모텔과 교회는, 아파트는 여전히 평화로워 보였고, 나는 이 출산이 성공적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81p)" 이 긴급한 상황 속에서 새 생명을 맞는 '나'의 모습이 '고독사'로 죽어가는 독거노인들을 떠오르게 했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대비가 존재하긴 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에서 "단지 장막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외롭게 버티는 모습은 닮아있다.

<물 속 골리앗>에서 작가 김애란은 암담함과 세상과의 단절로 인한 고독을 폭발시킨다. "20년 만에 이 집의 진짜 주인이 됐는데, 누군가 갑자기 새 주인임을 주장하며 나타난(90p)"바람에 어머니와 나는 집에서 나가야만 하지만, 갈 곳이 없어 머무르다 엄청난 폭우로 '강산아파트'에 갇히게 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당뇨병으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어머니로 모자라, 동네를 물에 잠기게 한 비까지. 설상가상의 상황은 어린 주인공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만하세요. 네. 제발. 그만해. 그만하라고. 씨발!(108p)"

"자식과 손자들에게도 세습"된 낮은 "계급(157p)"과 그로 인해 부족한 정보력으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용대'.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에 등장한 '용대'는 반복되는 실수로 "사람들의 포기와 실망에 익숙해"져 있고, "도시의 속도에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는 철딱서니 없는 노총각(137p)"이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148p)"을 살게 해준 '명화'와의 시간은 극도로 짧았다.

<하루의 축>에서 '기옥 씨'는 "마치 많은 이들이 재떨이와 재떨이 청소부를, 승강기와 승강기 청소부를 동격으로 대하듯(200p)" 화장실과 동격으로 취급되는 공항 화장실의 청소부다. 그녀에게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아들 '영웅'은 택배를 훔치다가 붙잡혀 실형을 살게 되었다. "어째서 이렇게 한 가족의 단란이 시시하게 망가지는가 이해할 수 없었"던 "기옥 씨의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196p)". '추석' 등의 명절과 상관없이 단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잘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기옥 씨'들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기에, 그들은 추석에 쉬는 것보다 일을 나가 돈을 좀 더 모을 수 있길 희망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이 아렸다. 손님이 버리고 간 마카롱을 먹으며 내뱉는 그녀의 한 마디는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왜 이렇게 단가...... 이렇게 달콤해도 되는 건가......(199p)"

"아직 젊고, 벌 날이 많다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늘 한 뼘 더 초과되는 쪽을 택했(214p)"던 <큐티클>의 '나'는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상황이 좀 나았다. 무리해가며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나'의 모습은 '손톱 케어'로 드러난다. 그녀가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드러내려던 "점수가 잘 나온 성적표(211p)"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내심 누군가 내 손톱을 봐줬으면 싶었지만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230p)" 라는 대목이나,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예쁜 손톱이었는데 정작 하객들은 내 겨드랑이에 생긴 커다랗고 우스운 얼룩만 보고 말았다(232p)"라는 부분에서 그녀가 그런식으로 과시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음이 드러난다.

<호텔 니약 따>에서는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을 겪고 있는 국문과 학생들인 '은지'와 '서윤'이 나온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어둑한 술집에 죽치고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지적이고 허세 어린 농담을 주고받다 봄 세상이 조금 만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느 날 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시시한 인간이 돼 있던 거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거란 불안을 안고. 아울러 은지와 서윤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것 중 가장 빛나는 것을 이제 막 잃어버리게 될 참이라는 것을(251p)".

마지막 글인 <서른>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서 끝없는 방황을 해야했던 주인공이 있다.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315p)". <호텔 니약 따>와 <서른>의 글귀들은 나로서도 지금 지나가고 있는 시기이기에 공감이 되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대학에 들어가면 만사형통인 것처럼 대학을 홍보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오는 고통은 고스란히 우리 세대가 안게 되었다.

'비행운'을 동경하며 "가슴 한쪽이 싸한 게 찌르르 아픈 것도 같고 좋은 것도 같고 심장이 빠르게 뛰"게 만들고,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말을 간절히 듣고 싶(301)"어 했던 '꿈'이라는 말을 좇던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생각보다 더 암울하고 불안하며,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는 것 같지 않는 고립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297p)"라는 비관적인 생각밖에 할 수 없었던 건 <서른>에서의 주인공만 떠올리던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암울한 인생을 견디면서도 그들은 조그만 '날갯짓'을 하는 걸 잊지 않았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누군가 올 거야(126)"라며 골리앗크레인을 붙잡고 있던 <물 속 골리앗>의 '나'가 있었고, '명화'가 죽은 이후에도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어쩌면 앞으로도 영영 못 가볼 나라의 말을 하면서 차츰 나아(166p)"져가던 '용대'도 있었다. 일일이 언급하지는 못했으나 작품들 속에서 주인공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버텨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모습이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눈물겹다.

이 책은 '질문서점 인공위성'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서점 '인공위성'에서는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으로 내게 "과연 의미없는 날갯짓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소설을 읽고 나면 명확한 답을 얻게 되리라 예상했지만, 소설들은 여운을 크게 남긴채 끝나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하는 '날갯짓'을 의미가 있다 없다고 누구든 단정짓기 어렵다는 뜻이리라 짐작했다. 나는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지금은 점일 뿐이지만, 이후 선으로, 면으로 이어져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당신이 오늘 한 '날갯짓'도 의미가 있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생경한 듯 잘 아는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 세상의 그 어떤 소음과도 차단돼 짧은 영원처럼 느껴지던 시간.

나는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물속에 있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숨을 참지 못해 수면 밖으로 나왔을 때--내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별똥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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