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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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다산책방에서 이례적으로 서평단을 많이 모집한 일이 있었다. 1000명 정도에게 새로 출간될 책을 읽을 기회를 주다니. 20명까지는 본 적이 있다. 나도 우연히 그 안에 들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책표지에 그려진 '솜브레로'로 알 수 있듯이 멕시코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소설이다. 작가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책에 스페인어와 영어가 섞여 있듯이 멕시코와 미국의 특색이 섞여 있다. 미국에서 살면서도 미국에 대해 어느 정도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아마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그는 분명히 미국 시민이지만, 가끔은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국가의 뿌리를 공유하면서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자들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혼혈인 친구들이 알 수 없는 적대감과 끝없이 싸워야 하는 것처럼. 또한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의 적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말이 도는 것처럼. 저자는 책에 쓰인 내용들이 단지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독자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적었지만, 그 어느 책보다도 작가의 삶이 많이 묻어나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불치병 말기였던 형이 인생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심지어 장례식이 형의 생일 전 날이었다는 점마저 비슷하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이 편집 과정에서 맨 앞으로 배치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 사실과 결합할 때 슬픔은 배가 되는 법이니까. 이왕이면 '빅 엔젤'의 가계도도 앞쪽으로 옮겨주면 좋겠다. 책을 절반이나 읽고 나서야 나는 가계도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왕 편집에 대해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뒤표지에 어떤 상을 받았는지 열거하기보다 추천사들을 적어 넣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왕이면 가족의 사랑, 용서 등에 대해 언급한 글들로! 그게 이 책의 중심 소재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건 가족 간의 애정을 깨닫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불과했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서는 미국과 멕시코의 문화, 사상들이 끝없이 충돌한다. 특히 미국 시민권을 위해 미국 여자를 찾아 떠난 아버지 '돈 안토니오'로 인해 갈등이 심화된다. 갑작스럽게 떠난 아버지로 인해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빈곤한 상태로 지내야 했던 '빅 엔젤'은 아버지가 미국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리틀 엔젤'을 아주 오랫동안 미워한다. '미국'이라는 한 국가에 대해서 분노를 퍼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빅 엔젤'은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리틀 엔젤'에게도 억울한 사연이 있었다. '돈 안토니오'는 결국 미국 여자 '베티'마저 떠나 버렸고, '리틀 엔젤'도 자신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돈 안토니오'는 양쪽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셈이다.

'리틀 엔젤'과 '빅 엔젤'의 형제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소설 속 모든 관계에서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미움은 '죽음' 앞에서 전부 무너져 내린다. 마지막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상대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는다. 가족이 하나로 제대로 뭉쳐지는데 무려 512페이지의 종이가 필요했다. '돈 안토니오'에게서 배운 강하고 억압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던 '빅 엔젤'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사과를 건네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이렇게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임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족들에게 마치 '죽음' 앞에 서나 보일 수 있는 진솔한 모습들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는 여러 인물이 얽혀 들어 있고, 시점이 중구난방이었다.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다른 시점으로, 다른 인물에게로 넘어가곤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실은 중간에 덮어버릴까, 많이 생각했었는데, 완독하고 나면 그때야 어떤 깨달음이 찾아온다. 소설 속의 가족들이 '죽음'을 앞두고서야 뒤늦게 서로의 소중함을 새로이 발견하듯이. 평소에 책을 멀리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멕시코' 소설의 매력을 엿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기꺼이 '빅 엔젤'과 그 가족들의 삶에 뛰어들어 찬찬히 살펴봐 주길.

★내가 뽑은 문장

-"인생이 그런 거라고, 멍청아. 너 말이야. 물결은 처음에 세차게 시작하지만, 해안으로 갈수록 점점 약해지지. 그러다 다시 안으로 돌아오고. 돌아오는 물결은 눈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분명히 존재해서 세상을 바꾸는 법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본인이 뭔가 성취했는지 어떤지 의심이나 하고 있잖아."

-어차피 다들 언젠가는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사는 거잖아? 흙 속에 망할 놈의 구덩이를 파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이보쇼, 좀 유하게 살라고. 이건 누가 빨리 가나 시합하는 경주가 아니니까 천천히 가라고요.

-가족이란 게 있으면 책임감도 참 많이 따라붙는다. 수천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어야 겨우 살 만해지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배우고 있는 중이야. ('빅 엔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가 삶이란 끝없이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배우는 것이다, 라는 표현을 했다. 참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여태껏 살아오면서 저지른 실수들이 모조리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을 얼마나 답답해하고, 자책해 왔던지. 그런데 '미겔(빅 엔젤)'의 대사를 듣고 나니까 얼마든지 멍청한 실수들을 저질러도 된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네가 의문을 품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도 의미 없겠지만. 그게 바로 만사를 현실적으로 만드는 거지. 그게 우리를 사랍답게 만드는 거라고."

-"자네의 인생 여정이 나와는 조금 다른 것뿐이야. 죽음이란 시카고행 열차를 잡아타는 것과 같아. 노선은 백만 개나 되고, 기차는 모두 밤에 운행하지. 어떤 기차는 완행이고, 어떤 건 급행이야. 하지만 모두 낡고 커다란 기차 보관소에 있어."

-"우리는 이러면 안 돼, 친구야. 이건 우리가 아니야. 사람들은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해도,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문장들을 정리하고 보니까, 책 자체는 무척 조잡스러웠으나 눈에 띄는 글귀들이 많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한 방들이 모여서 책을 다 읽고 덮고나면 그래도 꽤 괜찮은 구석이 있는 책이었어, 하는 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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