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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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라는 제목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척 단순하다. 나는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물을 마시는 사람이다. 마실 물이 일절 없는 세상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벌써 목이 타는 것 같았다. 표지에 그려진 수도꼭지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지길 간절히 기다리는 여자아이 그림은 갈증을 더욱 심화시킨다. 지구 멸망 시나리오들 중에서 물이 고갈되는 상황은 지금보다 가뭄이 심화된다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것만도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도 전에 벌써 조바심이 들었다.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비해 벙커를 만들고, 그 안에 물을 쟁여둬야 할 것만 같다.

이 책은 '닐 셔스터먼'과 '재러드 셔스터먼'이라는 부자가 함께 쓴 글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작성했기 때문에 어딘가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유려한 문체로 마치 영화처럼 생생하게 소설을 써냈다. 소설 <드라이>는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 어떤 장면을 뽑아내 영화가 만들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각각의 장면들이 전부 생동감 넘치고, 현실적이어서 분명 볼 만한 영화가 될 것이다.

"그게 바로 인간 본성의 참모습이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었을 때조차 서로를 구할 힘은 기어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

 

소설 <드라이>는 갑작스러운 단수 사태에서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 주민들이 극도의 상황에 치닫는 모습을 그려낸다. 정부에서 사태를 금방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단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야생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이런 위기 속에서 '얼리사'와 그녀의 동생 '개릿', 그리고 옆집에 사는 동창 '캘턴', 이후에 합류하게 된 '재키'와 '헨리'가 주 무대로 등장한다.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앞으로 나아간다. 상황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계엄령이 선포되고, 정부는 주민들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저 시설들에 '대피소'라는 이름을 붙이고 몰아넣을 뿐이다.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자 사람들은 인간성을 잃어버린다. 물만 보면 참지 못하고 달려들고, 양보라는 단어 따위는 잊은지 오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악설'은 힘을 얻는다. 생존을 위해 투쟁만 할 뿐, 단수가 얼마나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물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내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얼리사'가 '캘턴'네에서 물을 훔쳐다 동네 주민들에게 넘겨주자 그들은 부질없는 싸움만 반복하고, 동행인 '헨리'는 자신의 이익만 고려한 채 거짓말을 일삼는다.

한편으로 극박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정신을 잃지 않으려던 사람들도 있었다. 동생 '개릿'을 살리기 위해 물을 구해오는 '얼리사'를 위해 물을 가로채지 않는 '재키'가 있었고, 자신도 가진 게 없으면서도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믿었던 '얼리사'가 있었으며, 공동체를 이뤄 사람들이 서로를 도울 수 있도록 이끄는 '채리티'가 있었다. 그 밖에도 보통의 상황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인간성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극적인 상황에 이르러서야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깨닫는 인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처럼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인내심을 발휘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인체의 60퍼센트가 물이라고 말한 사람이 재키였던가? 이제 나머지는 요소는 똑똑히 안다. 재와 먼지, 슬픔과 비통...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니, 그런데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요소는... 희망이다. 그리고 환희다. 우리 안에서 마르지 않고 샘솟는 모든 것이다. "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어떤 상황이 초래될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소설 속에서 남부 캘리포니아에 벌어졌던 단수 사태가 이곳에도 급박하게 닥칠 수도 있다. <드라이>에서도 몇 번이나 전조 현상이 목격되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극한의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겨울에 수도가 얼어버려 예상치 못하게 물을 못 쓰는 때에도 사람 마음이 그렇게 다급해지는데, 아예 마실 물조차 일절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될지도 모른다니. 분명 지금 지구의 상황이 심각한 사태에 놓여있지만, 우리는 그래도 희망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된다. 완전히 가진 게 없는 상태에서도 <드라이>에서 사람들이 애썼듯이 우리도 희망을 놓지 않고 지켜내야 한다. 곧 오게 될지도 모르는 붕괴에 대비해 지금이라도 지구가 보내는 경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미 세상은 끝장났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눈앞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미래에 대한 경고를 보내려고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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