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 수업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 년의 학교
한동일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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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법 수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한동일' 교수님의 저서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읽었던 <라틴어 수업>을 통해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진심으로 존경하는 어른들 중 한 분으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책에서 교수님이 어떤 분인지 느낄 수 있다. 글은 말과 달리 여러 번 곱씹고 나서야 튀어나오지만, 그래도 개인의 전부를 가릴 수는 없다. 문장 전부에서 따뜻함이 느껴지고, 함부로 지적하는 어른이 아니라는 게 자연스레 보인다. <로마법 수업>을 주문하고 나서 <라틴어 수업>을 읽었던 때를 떠올렸다. 평소에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특히 여러 언어의 근간인 '라틴어'를 꼭 배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라틴어'는 구사할 줄 아는 사람도 몇 없고, 가르쳐주는 데도 당시에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창 아쉬워하고 있던 때에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가 그 책을 발견했다. 책이 열렬히 사랑받던 때에는 그저 지나치다가, '라틴어'에 관심이 생기고 나자 주저 없이 집어 들었다. 유명한 '라틴어' 구절 몇 개라도 외워보자 싶은 마음으로 꺼내 들었다. 그런데 <라틴어 수업>에서 내가 발견한 건 도리어 '한동일' 교수님이 건네는 조용한 다독임이었다. 카톡 프로필에 폼 나게 '라틴어'로 몇 자 끼적이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그 책을 읽어봐도 좋다. 하지만 생에 대한 위로를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대학교 때 나는 늘 조급하고, 보이지 않는 위협에 불안을 느끼던 학생이었다. 빨리 무언가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런 내게 <라틴어 수업>은 그 수업 하나를 들으러 편입을 하더래도 가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수업이었다. 저자가 건네던 말들이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뻔한 듯하면서도 '라틴어'로 건네기에 특별해서 좋았다.

"오늘날 우리가 로마법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단지 현재 법의 원천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로마법을 통해 인간을 둘러싼 바뀌지 않는 환경과 존재의 태도를 돌아보고, 법을 통해 역사를 인식하고자 함이지요. "(p201)

그러니까 '한동일' 교수님의 진정한 덕후로서 내가 <로마법 수업>을 건너뛰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자의 이전 작품이 '라틴어'라는 희귀한 매개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구원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로마법'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다르지 않음을 보고, 더 나아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논의한다. 서양의 법이고,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번 수업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한동일' 교수님이 현재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문제들을 선정해 '로마법'과 '로마'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는 덕분에 시간의 간극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문제들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에 좌절하게 된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인권', '계급', '여성', '결혼','낙태' 등이다. 특히 '간통'이나 '낙태' 등의 문제는 한국 내에서도 서로 다른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로마법'의 지혜를 절실하게 갈구했다. 하지만 역시나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취하기가 어렵다. 세상은 절대 흑백논리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토의로 나름의 적절한 협의점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로마법 수업>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부분은 '인간성의 회복'이다. 각 장마다 서로 다른 주제를 설정해서 '로마법'을 공부하지만, 결국 "Homines nos esse meminerimus(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_키케로)"의 구절로 요약해볼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여겨야 한다, 고 저자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로마법'을 통해 가르치려던 것이 '인간성'이었음을 에필로그에서도 알 수 있다. "로마법 수업은 인간학 수업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더욱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투쟁이자 꿈입니다(231p)",라는 구절에서 저자의 주장이 잘 드러난다. '법'이라는 과목은 누군가의 삶을 재단하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므로, 냉정하고 날카로운 주장들이 오고 가는 수업인 줄로만 알았다. '라틴어'라는 생소한 언어에서 특유의 따뜻한 인간성을 드러냈던 '한동일' 교수님이 이번 책에서마저 주위를 살피고 배려할 줄 아는 시선을 가르친다. 내가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책에서나마 이런 좋은 수업을 청강할 수 있다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에서도 실제 강의를 하듯이 글이 이어지는데,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또 다른 포인트는 에필로그 이후 등장하는 '로마사'와 '라틴어'에 관한 설명들이다. 깨알같이 적힌 글씨들에서 '한동일' 교수님의 강의에 대한 열정이 엿보인다. 학교를 다녔던 때에 이런 강의가 있었다면 교수님 사무실을 몇 번이고 들락날락했을 것 같다. <라틴어 수업>, 그리고 <로마법 수업>이라는 두 강의를 수강했으니 나도 교수님의 제자인 거라고 우겨보고 싶다.

+) 혹시 '이정명' 작가의 <밤의 양들>을 읽으려고 계획 중이거나, <밤의 양들>을 읽었지만 그 세계관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토로하는 독자가 있다면, <로마법 수업>을 참고해도 좋겠다. 본 책에도 '로마'와 '그리스도'의 관계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꼭 일부분을 집어내라면, 211-212p에 예수가 받았던 '십자가형' 편을 읽어보면 된다. 나는 기독교 학교에 다녔던 덕분에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밤의 양들>은 좀 헷갈렸을 수도 있을 테니까. 참고사항으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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