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효재 - 대한민국 여성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박정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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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이이효재>를 만나게 된 건 8월 즈음이었다. ‘텀블벅‘이라는 사이트에서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다산북스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이 출판되는 일에 일조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매력적이었고, 책의 뒤표지와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에 이름이 새겨진다는 사실은 주저 없이 이 책에 투자하게 만들었다. 겉멋을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여성 운동에 내 몫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다는 게 의미가 깊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주목을 받고, 여기저기서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기여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에 대해서 좀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펀딩에 참여하는 일은 내게 왠지 모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는 모계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윤석남‘ 작가의 작품이 가정 내에서 여성들이 평등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애쓴 ‘이이효재‘ 선생님의 노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이효재‘ 선생님의 사진과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단 한 명도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라는 띠지 문구는 왠지 모를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펀딩이 예상보다 높은 참여율로 좋은 성과를 거두며 끝난 후 9월 초에 책이 집에 도착했다. 그때 표지의 이런 점들을 눈여겨보면서, ‘이이효재‘ 선생님이 닦아놓은 여성 운동의 길에 염치없지만, 늦게나마 참여하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

이이효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여성들이 줄기차게 자신들에게 가해진 법적 제도적 장애물들을 제거해왔음에 너무나도 뿌듯했다. 그 길의 맨 앞에 서 있을 수 있었음이 더할 수 없이 감사했다.

p275

도서 <이이효재>는 저자인 ‘박정희‘ 님이 ‘이이효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기록하거나, 참고문헌을 살펴 가면서 정리해놓은 일종의 논문 같은 느낌이었다. 주로 ‘이이효재‘ 선생님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여성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어오셨던 인물이신 만큼, 선생님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여성 운동의 역사를 익힐 수 있다.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겪어야 했던 불운한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버리고 도망치셨을 법도 하다. 그만큼 그 시대 한국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기어코 돌아오셔서 ‘여성학‘의 방향을 선도하고, 정신대대책협의회 결성을 이끌어 냈으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도 끈을 놓지 않고 여성의 권리를 위해 힘쓰셨다. ‘이이효재‘ 선생님을 비롯해 적지 않은 인물들이 호주제를 폐지하고, 여성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가족법 개정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으며,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평등하게 대접받을 수 있게 하는 등등, 한국의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떻게 분투했었는가가 책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전에 김영사에서 출판한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을 읽었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기록한 적 있다. 책 제목에는 ‘이규연‘ 국장의 이름만 새겨져 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기자들과 제작진들,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사건에 대해 증언해준 이들의 공도 컸다. <이이효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이효재‘ 선생님 같은 큰 어른이 앞서 나가주지 않았더라면 문제 자체가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일도 꽤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는 부분을 채워주고, 서로 도우려던 여성들의 연대가 존재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당하고 있는 부당함뿐만 아니라, 사회 대부분의 문제들이 여러 사람들의 협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이이효재‘ 선생님의 리더십도 존경스러웠지만,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선생님을 따르고, 각자의 부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며,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제자분들의 모습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족의 민주화, 여성의 평등을 추구해온 이이효재의 사회학과 그 이론적 성과를 배우고 실천해온 여성들이 만들어온 집단적인 흐름 혹은 물결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여성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p185

여러 여성들이 쏟은 각고의 노력에 힘입어 현재 여성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더 지적이고, 더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유리천장에 부딪히며 무력함을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전 세대 중에서 가장 똑똑한 세대로 일컬어지는 현 ‘밀레니얼 세대‘가 이전 세대의 여성들 덕분에 전보다는 나은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지성인으로서 지역 사회에 좀 더 기여하고, 절망하며 좌절하고 있을 다른 여성들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이이효재‘ 선생님과 적지 않은 여성학자들에게 우리의 지금 삶을 빚졌으니 후대의 다른 여성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갚아나가야 할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당연시하고, 견디고 있는 차별만 크게 부풀리며 살아갔을 테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누군가를 도울 여력이 어디 있느냐,고 변명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라떼는 말이야‘라는 고전적인 어구로 시작되는 그들의 고생스러운 인생이 생생하게 다가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여성의 지위를 끌어올린 이전 세대의 여성들을 떠올리면, 불평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여성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관점에서 여러 불평등을 재빨리 인지하고 진지하게 행동해야 함을 선생님이 일깨워주셨다.
여담이지만, 책 <이이효재>를 읽으면서 ‘사회학‘, ‘여성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이렇게 매력적이고 사회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근간이 되는 학문인 줄 알았더라면, 기회가 있을 때 공부해보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부 생활 때는 불가능했지만, 이후에 더 공부할 여력이 생기면 ‘이이효재‘ 선생님의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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