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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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도 스치듯이 언급되었던 <하와이 파이브 오>라는 드라마로 고등학생 때 하와이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미주 지역으로 여행을 가기에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포기해 버렸지만, '하와이'라는 지역은 오래전부터 내게 항상 도피하고 싶은 장소였다. 맘껏 서핑을 하고(할 줄도 모르면서), 신비롭게만 느껴지는 하와이 원주민 언어도 배우면서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다. <아쿠아맨>으로 한국에 잘 알려져 있는 배우 '제이슨 모모아'를 굉장히 좋아해서 '하와이'의 뉴스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부족을 상징하는 그의 팔 문신은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하와이하다>라는 몇 번이고 읽고 싶은 책이, 그것도 매력 있는 그림들로 가득한 책이 눈에 띄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현경 이우일 부부가 그리고 쓴 이 하와이 일기에는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가득하다. 하와이의 풍경과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 넣었는데, 하나하나 오려서 책을 구멍 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짧은 글들과 유쾌한 그림들 덕분에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글이 일기 형식으로 적혀 있어서 부담도 없고, 상황과 그때 느낀 감정들이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2017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조금 긴 하와이 살이"가 어땠는지 소소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행 에세이의 큰 단점을 꼽아보라면, 어딘가로 떠나는 일이 지나치게 신성화된다는 것 아닐까. 짧게나마 다른 국가에서 지내본 경험으로 말해보자면, '집 밖으로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화와 맞닥뜨리기도 하고, 종종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억울해서 어딘가 호소하고 싶어도, 마음을 나눌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하와이하다>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와이에 처음 가서 집과 차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고,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겪는 불편한 점들을 세세하게 언급해주었기 때문이다.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단순하게 표면적으로 좋은 일들만 드러낼 수 없고, 깊은 감정들까지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하와이 생활의 낭만이 크게 그려진다. 아무래도 아예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기 때문에 돌아오고 나면 좋은 추억들만 남고야 만다.

이 글의 저자인 선현경 이우일 부부는 미국 포틀랜드에서 2년 동안 지내다가 별다른 준비 없이 하와이로 떠난다. 처음에 정착하는 일에 힘도 빠지고, 하와이식 느긋한 일 처리 방식에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부부가 '보디보드'에 빠지면서 삶이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방 안에서 낙서하는 일만 즐기던 이우일 만화가는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로 나가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다. 선현경 작가는 남편과 함께 파도를 타고, 훌라댄스와 요가 수업까지 받아 가며 하와이안의 삶에 동화된다. 서울에 사는 가족들과 한국말로 말하는 기쁨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파도를 두고, 친구들을 두고 하와이를 떠나고 싶지 않아 귀국 날짜를 미루는 상황까지 이른다.

물론 외국에 나가서 좋은 결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보드를 들고 하와이 바다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이 다정한 글이 위로가 되었다. 또 밖으로 나가고 나면,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을 알면서도, 여행을 꿈꾸게 만드는 책이었다.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깨닫고, 묵혀두었던 보드를 꺼내 로컬들과 함께 파도를 종횡무진하고, 서로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는 이 따뜻한 이야기는 하와이가 아니었어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변화일 것이다. 그래도 <하와이하다>를 읽고 나면, 다른 독자들도 하와이에 대한 애정에 생각이 흐려져 꼭 이곳이어야 했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근심 걱정을 잊고 느긋한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인 '샤카'라는 손짓을 하고, 방대한 생활의 지혜를 가지고 그들만의 문화를 전파하며 다른 이들을 돕는 어른들이 있고, '파도'를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우는 '하와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의 다정함에 책을 덮고 나서 괜히 몇 번이고 책을 쓰다듬었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간접적인 기억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서 '여행 가고 싶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하는 나 같은 이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럴 땐 주저 없이 <하와이하다>를 들고 '알로하 스피릿'을 맘껏 만끽하기를!

저마다 코드가 있고 성격이 있듯이 인생에도 코드가 있는 거다. 액션, 모험, 코미디, 범죄, 다큐멘터리, 드라마, 공포, 뮤지컬, 미스터리 뭐 그런거.- P257

우리가 하와이로 온 이유는 이거였다. 앞으로 우린 다른 삶을 살게 되겠구나. 멋도 모르고 이 섬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P241

어쩌면 기회는 파도처럼 매일매일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기회를 놓쳤다면 다시 맘을 가다듬고 기다리는 거다. 기다리면 다시 온다. 파도처럼.-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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