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문학동네 SNS에서 이 작품을 소개한 글을 읽고 완전 홀려버렸다. 안 읽고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 날 무작정 도서관으로 뛰어가 빌려왔다. 이런 애틋하고 낭만적인 소설이라니, 안 읽어봤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우주 알‘을 받아들인 한 남자의 이야기로, SF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우주 알‘이라는 소재마저 너무 낭만적이다. 작가의 말에서 장강명 작가는 ‘우주 알‘이라는 개념을 ‘짐 홀트‘의 책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에 나오는 용어를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그 책에서 ˝우주 알은 하나의 우주가 될 수 있는 어떤 작은 입자˝로 등장했다.<그믐>에서는 남자가 우주 알을 받아들이고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을 다시 살게 된다.
과거를 다시 재생할 수 있다니, 적지 않은 사람이 바라는 일일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 동급생을 죽이고 소년원에 수감되었던 것이다. 또한 과거를 다시 살 수는 있지만 당연하게도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다. 디테일이 바뀌는 순간, 이야기가 틀어지고, 자신이 만나고자 했던 여자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고, 그걸 반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148p)˝라는 대사를 읊조리는 남자라니,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된다 싶으면서도, 여자와의 최악을 막기 위해 10분이라도 빨리 떠나는 대목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이렇게 책을 붙들고 울게 만드는 사랑 이야기는 <미 비포 유>의 ‘윌 트레이너‘라는 남자 주인공이 남긴 편지 이후로 참 오랜만이었다.

SF요소가 가미된 러브 스토리를 제하자면, 남자가 겪어야했던 ˝학교폭력˝이라는 주제가 존재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스토리의 시간 순서를 이리저리 섞으면서 진실이 무엇인지 혼동이 오게 만들었다. 또한, 학폭 피해자인 남자와 학폭 가해자의 어머니 양쪽을 등장시키고는, 판단을 독자에게 내맡긴다. 피해자였던 주인공 남자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가해자를 죽이고야 말았는데, 가해자 ‘영훈‘의 어머니는 진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남자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식의 잘못을 믿고 싶지 않을 아주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아들 입장에서만 사건을 재구성하는 그녀에게 맞서고 싶었다. 주인공 남자의 부모 입장에서, 왜 하필 우리 아들을 선택해서 이렇게 피를 말려야만 하느냐, 고 울부짖고 싶었다. 자신의 결말을 미리 예견하고서는 아주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모든 것이 그저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말하는 남자가 가엽다는 말로도 모자라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읽기 시작한 소설이 이렇게 먹먹한 마음으로 끝나다니. 책은 굉장히 얇은 편이었는데, 그 안에 담긴 감정이 폭발적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남자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무기력하게 묵묵하게 과거의 아픔을 견디는 남자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단 하나의 사랑때문에 그 과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