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8년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한국판 ‘미투운동‘이 전개되었다.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지던 ‘미투운동‘이 한국에서도 시작되었고(아주 당연하게도!), 여태껏 침묵하던 여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당한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던 여성들이 세상을 향해 울부짖던 그 중심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있었다. 2016년에 출판되었고, 2018년이 되어서야 주목받은 이 책을 새삼스레 다시 꺼낸 것은 곧 개봉할 영화 <82년생 김지영> 때문이었다. 제작 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던 영화는, 개봉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비판을 받고 있고, 이 영화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면 욕을 들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는 꼭 나와야만 하는 영화가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매체의 파급효과를 고려한다면, ‘페미니즘‘ 이나 ‘여성의 권리‘라는 문제가 이전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6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편마저도 ˝자신들을 반씩 닮은 예쁜 딸을 낳은 아내가, 아무래도 아내 같지가 않˝다고 여기게 된 2015년 가을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한다. 이후에는 과거로 돌아가 ‘김지영‘씨의 전반적인 인생을 서술한다. 책을 읽는 내내 어찌나 억울하던지 자주 울컥하고, 분노로 인해 허공에다 주먹질을 몇 번이나 해댔다. ˝남학생부터 (출석)번호를 매기˝거나,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사실들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다가 책에서 타인(김지영 씨)의 이야기로 접하니까 새삼 너무 억울했다. 왜 이걸 여태껏 당연하게 여기면서 살았을까. 내가 가져야 할 권리에 무심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 ‘오미숙‘ 씨의 인생에는 더더욱 화가 났다. 우리가 현재 당하고 있는 일들만 해도 화가 이렇게 나는데, 그 시절 여성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자신의 적성을 따라 일을 구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살았던 걸까.

2015년도의 ‘김지영 씨‘가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흥미로웠다. 자신을 잘 챙겨주던 여자 선배 ‘차승연‘씨와 어머니 ‘오미숙‘씨가 김지영 씨의 몸을 통해 목소리를 드러내면서, 김지영 씨를 변호하고 그녀가 겪어야만 하는 고생들을 토로한다.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라는 어머니의 말이나, ˝대현아, 요즘 지영이 많이 힘들거야.(...)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줘.˝ 라는 ‘차승연‘ 씨의 말은 결국 여성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같은 여성의 도움 덕이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와 같은 여성이 겪는 문제들을 등한시하지 않고, 함께 분노하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 200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출석번호 시스템이 남자아이들이 우선인 것은 변함 없었지만,) 여자 회장으로 선출 될 수 있었고, 당연히 대학을 가야하는 시절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이전 시대의 여성들 덕분인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훌륭한 점은 정확한 통계나 기사자료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껍지도 않은 장편소설 책에 ‘객관적 자료‘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여성들이 느끼는 부당함이 단순히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이것은 ‘팩트‘이고, 부정하거나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한 수치들이 일깨워주고 있는 듯 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지나치게 여성들의 편에서 호소한 것 아니냐, 는 의문은 접어둘 수 밖에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작고 어렸던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살던 때와 나의 시대는 분명 달랐지만, 세상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는 데에 무력함을 느꼈다. 20년 가까이 흐른 세월동안 많이 바뀌지 않은 현실을 통감하면서도, 세상 곳곳에 여성들이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은 여성학자 ‘김고연주‘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김지영이기 때문˝이고, 후대의 여성들이 아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높은 학력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하지 않길 바라며 자신의 몸이 부서져가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벌어 딸들을 교육시킨 어머니들이 존재했듯이, 더 많은 여자 교수들이 탄생하고 높은 관리직에 여성들이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라기에, 지금도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출구를 향해서 달리고, 안될 걸 알면서도 벽을 뚫기 위해 몸을 부딪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