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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붕대 스타킹 ㅣ 반올림 31
김하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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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에 잠이 깨서 어제 읽다가 잠든
얼음 붕대 스타킹을 다시 펼쳤다.
이러면 안되는데, 자야하는데, 내일 바쁜데
하면서도 손이 책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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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물? 공포? 미스테리?
근데 읽을수록 맴찢이다.. 아.. 맘 아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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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어 내듯 아무렇지 않게 말들을 털어 내고 내뱉었잖아. 그 말들이 날카로운 화살로 변해 나를 찔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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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면 안돼. 누군가 했던말이다. 누가 했던 말인지 잊은 걸 보면 중요하지 않았거나 하찮은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지닌 힘을 확인할 그날이 느닷없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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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달라는 말이 아주 무겁다. 숨을 쉬고 잠을 자고 책을 보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웃던 모든 일이 포함되, 슬픔과 기쁨과 절망과 희망을 모두 담고 있는 말. 여태껏 소중한지 몰랐지먀 지금은 모든 단어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망설이지 않고 '살아있다'를 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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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가 끝났다. 엄마가 한 마지막 말이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와 얼음처럼 차가운 붕대로 변해 내 몸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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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진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 온다. 사실이 지닌 빛과 어두움을 모두 알아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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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엄마 뜻대로 사는 착한.딸이었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엄마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자라고 살아야 하는 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착한 딸 노릇은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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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 말들이 얼음조각처럼 내 온몸을 찔렀고 그러면 몸이 식었다.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붕대에 다시 살얼음이 끼었고 곧 두꺼운 얼음 붕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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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 가진 힘을 안다. 말 한마디는 나를 얼리고 꼼짝 못하게 하며, 따뜻한 물을 마셔도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차가운 얼음물로 변하게 하며, 소름끼치게 하고, 남자들, 아니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하는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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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힘들었겠다."
그날 이후 내가 겪은 일들을 아는 사람들이 그랬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일찍 다니라고, 힘내라고, 잘 살라고, 미안하다고, 안됐다고, 용감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달랐다. 바로 이 말, 힘들었겠다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 말이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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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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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는 얼음이 녹고 봄이 올 때까지 알뿌리 속에서 때를 기다린다. 숨죽여 기다리는 게 아니라 치열하고 가열차게,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열일곱. 아직 내가 살아야 할 날들이 살아온 날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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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살의 얘기가 마흔 둘인 내 얘기 같다. 난 내가 어떨때 상처받는 줄도 모르고 자랐는데, 엄마의 과한 통제는 답답했지만 당연히 여겼고 성인이 되어 내 자아를 찾아 헤맬 나이에는 결혼을 해 버렸다. 그리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던 어느 날에, 중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야 날 돌아볼 수 있었고 날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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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한번째 상담치료를 받으면서 내 앞에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대해 말했었다. 길이 없다고 누가 지나간 발자국도 없다고.
하지만 어딘가 수선화 한송이쯤 있지 않을까? 봄이 올때까지 알뿌리속에서 기다리며 얼어죽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을 수선화가 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봤다. 기다리자.
봄이 올 때까지.
알뿌리속에서 나와 예쁜 꽃을 피울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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