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지옥에 가다 다시 읽고 싶은 명작 11
질베르 세스브롱 지음, 남궁연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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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피에르'라는 어느 노동사제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노동사제는 말 그대로 노동을 하는 사제를 뜻한다. 검은 옷을 입고 성스러운 제단 앞에 있는 그런 신부가 아닌, 일반인처럼 노동일을 하며 사역하는 신부가 바로 노동사제다. 주인공 피에르는 동기이자 선배인 '베르나르' 신부의 뒤를 이어 '사니'라는 가난한 노동자 마을 신부로 부임(?)한다. 베르나르 역시 노동사제였으나 이내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뒷일을 피에르에게 맡긴 채 원래의 신부로 돌아가 버린다. 사니 마을에는 온갖 인간군상이 존재한다. 노동자는 물론이고 술주정뱅이, 아들을 패는 아버지, 냉소적인 무정부주의자, 당을 이끌며 파업을 주도하려는 공산주의자, 가난에 찌든 자들, 부자들, 창녀, 어린아이들 등등. 피에르는 이렇게 사회로부터 천대받고 소외받은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를 위해 그는 제일 먼저 마을 공장에 노동자로 취직한다. 그리고 그곳 노동자들과 부대끼면서 퇴근 후에는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본당에서 보살핀다. 노동자들의 파업 연설장에서 평화를 외치거나 집에 불이 나 거처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그곳 공장주의 창고를 어떻게든 마련해주고 심지어 자살한 사람을 위해 세례와 기도를 드리는 등 사제의 상식을 깨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다른 지역의 본당 신부와 기타 신부들은 자기네 성당에 찾아오는 사람들(대부분이 부자들이나 기득권층)만 챙길 뿐 이런 피에르의 행동을 좋지 않게 본다. 과연 피에르는 노동사제로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이 책은 가난한 자들에게 온다는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노동사제의 사명을 피에르라는 가상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물론 비신자인 내가 봤을 때 피에르가 노동 문제라든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다소 안일하고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그러나 빈부격차와 이에 따른 부자와 가난한 자들 간의 메꿀 수 없는 심연의 틈을 처절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또한 기존의 기독교의 보수적인 틀에서 '그나마' 벗어나 있고(그래도 공장주와 노동자 간의 분쟁을 단순 평화나 타협으로 하는 건 그렇긴 하지만 말이다), 사제인 피에르에게 무한한 능력, 그러니까 피에르 덕분에 사니 마을이 구원받았다는 교훈적 소설이 아닌 결국 피에르도 현실의 벽에 치여 자기가 이렇게 노력해봤자 가난하고 비굴함에 찌든 사람들은 또다시 악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질 뿐이라는, 절망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어 이 역시 흥미로웠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그럴 수 없는, 악한 사람을 향한 체념과 포기의 순간이 본 책의 클라이맥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성당에 머무르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만 아는 신부보다, 피에르는 노동하면서 현실에 부딪혀 봤기 때문에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신앙과 현실의 거리감에 괴로워하는 사람, 노동사제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가난한 자들을 위한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사람에겐 재미있게 느껴질 책이다. 아쉬운 점은 소설이긴 해도 신앙적 관점에서 써졌기에 어찌 됐든 일반 소설과 다른 '신앙인 버프'가 기본으로 있다는 거다. 마치 만화에서 주인공이 뭔가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든 '주인공 버프'로 살아남는 것처럼, 소설 속 피에르는 사니 마을에서 일어나는 문제 상황과 주변인들의 미움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외에는 그닥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 

세상은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먼지투성이의 거대한 정거장일 뿐이다! - P16

예수님은 성당지기나 늙은 할머니들만 있는 어두컴컴한 교회 안보다 오히려 피로에 지친 노동자들 사이에, 그리고 허황된 광고판 사이에 계시다! - P24

밖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 속에는 태양이 숨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음산한 생활환경만 보일 뿐이어서 그들에게도 기쁨이 있고 그 기쁨이 그들 안에서 나오는 것임을 미처 알지 못했지만 이제 그것을 안다. - P65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안온한 울타리 안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 P74

여러분이 세상에 평화를 바란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평화는 모든 사람과 나눠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까운 친구 사이라면 어려울 것이 없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도 평화를 나눠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솔직하고 조용하게 툭 털어놓고 나서 화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융합이 되고 하나가 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 정말 한 몸을 이루는 그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 P114

여러분이 친구를 사랑하면 친구도 여러분을 좋아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가엾은 친구를 사랑하면 그 친구는 덜 가엾게 됩니다. 악질인 사람을 사랑하면 그는 덜 악질이 될 겁니다. - P115

평화는 모임만 가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저녁식사가 끝난 다음에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평화는 아침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평화는 상대방이 친구든 사장이든 똑바로 바라보고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놈은 가망이 없으니 말해 봐도 소용없다‘, ‘이 자식은 나쁜 놈이니 말해 봐도 소용없다‘ 이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만일 한 대 후려갈겨야 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그 이유를 말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를 말할 수 있습니다. - P116

그리스도는 세상을 뒤집습니다. 꼴지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되는.... 행복하여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 P167

예수님은 피에르 신부의 손 같은 노동자의 손을 하고 계셨습니다. - P173

1세기 전부터 이렇게 교회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굶주린 고객을 만들고 부자의 하인 두목이 되었다. - P374

가난하고 학대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싸우고... 자기를 버리고 끝까지 싸우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고 또 오늘도 그분이 하시는 일일 텐데... 기존 질서를 무너뜨렸다고 하여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습니까? 정치적 구실을 찾아서.... 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P398

대주교님, 우리에게 위험한 함정은 지나친 질서와 조직체라고 생각합니다. 사니와 저 자신에 관한 한 제가 확신하는 것은 휴향소나 복지사업이나 집을 짓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활동은 다른 사람 앞에 그리고 또 우리 자신에게도, 우리의 사명, 아니, 우리의 존재 의미를 변질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효과를 잘못 인식하게 되고 진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만족부터 하게 될 위험이 높습니다. 그 속에서 삶으로 증거해야 할 시간을 사업하는 데 소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부러 사회사업기관의 부속물이나 본당 복지 사업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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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토익 스타트 RC Reading (리딩) 입문서 - 최신기출경향 반영 | 초보를 위한 토익 리딩 입문서 | 기초 문법ㆍ어휘ㆍ독해 4주 완성 [실전모의고사(별책)+ 단어암기장&MP3 제공] 해커스 신토익
David Cho 지음 / 해커스어학연구소(Hackers)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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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토익 입문서 중에서 최고인 책이다. 다른 입문서들은 너무 쉽거나 아님 (초보자에겐) 너무 어려운 책이었는데 해커스 스타트 입문서는 딱 적당한 수준이어서 좋았다. 개념 이외에도 각 단원마다 리딩 문제들(이메일, 공지사항 등등)도 있어서 유익했다. 토린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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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병 세창클래식 7
쇠렌 키르케고르 지음, 이명곤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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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신학적이긴 하지만 초반부에서 절망의 정의와 특징, 유형들을 키르케고르 특유의 변증법적, 신학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어 흥미롭다. 절망감에 빠져있거나 다른 이들보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차별감을 느껴 혼자 괴로워하고 있다면 추천드린다! (개인적으로 번역도 매끄럽고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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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패밀리 12
엔도 타츠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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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권도 재밌었다. 가족들 간의 일상적인 이야기에서도 개그가 빵빵터지고 진지한 스파이 에피소드에선 액션과 긴박감이 넘친다. 다음 권은 어떨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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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나쁜 폭군 기수와 휩쓸린 군마
노모토 나리타 지음, 사카시마 원작 / 블랑코믹스(BLANC COMIC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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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수인과 중령 인간의 bl를 다룬 만화책. 별로 내키진 않았으나 그림체가 좋고 특이한 주제 때문에 한 번 읽어봤다.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조금 밋밋한 편이다. 과격하지 않아서 별로인 게 아니라 그닥 감흥이 없었달까.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쪽 취향이라면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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