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세이킬로스의 향연 (오네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72122</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다양한 책들을 소개하고 기록하는 공간입니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18 Jul 2026 16:03:49 +0900</lastBuildDate><image><title>오네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30272122215844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0272122</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오네긴</description></image><item><author>오네긴</author><category>국내 도서</category><title>인간은 과연 이성적일까? - [지하로부터의 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72122/17376404</link><pubDate>Mon, 06 Jul 2026 1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72122/173764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9519&TPaperId=173764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6/49/coveroff/k0221395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9519&TPaperId=173764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하로부터의 수기</a><br/>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조혜경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06월<br/></td></tr></table><br/>오랜만에 읽는 도스토옙스키다. &lt;지하로부터의 수기&gt;는 도스토옙스키를 처음 접할 때 읽기 좋은 책이다. 개인적으론 &lt;죄와 벌&gt; 못지않게 작가의 사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lt;지하로부터의 수기&gt;는 총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은 '나'이다. 그는 퇴직 관료로서 줄곧 지하에서 살고 있었는데 독자들을 향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 지하에 홀로 틀어박혀 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마흔 살 정도 먹은 주인공은 예전엔 관료였지만, 먼 친척으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게 되자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지하 골방에 고립된 채 살아간다. 첫 장면부터 스스로를 '병자'라 칭하는 '나'는 독자들에게 인간의 이상과 그 거짓됨을 역설한다. 1부에서는 이러한 '나'의 주장이 계속되는데, 여기서 인상 깊었던 점은 주인공의 화법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긍정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거짓말이었다며 부정한다. 딱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자꾸만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는데, 읽는 사람 입장에선 이만큼 답답한 게 없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 중에는 1부를 읽고 도대체 이게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불평하는데, 사실 이는 화자가 줄곧 주장하고 있는 '사상'을 잘 파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br><br>정확한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에 주인공이 자꾸 말을 바꾸는 건 그의 망상과 과장하며 말하는 습관 때문도 있지만, 이런 그의 양면성은 '나'가 주장했던, 그러니까 인간은 이성적인 것 같아도 동시에 비이성적인 존재라는 주장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행동적 특성이라고 본다. 작중 '나'는 인간이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뻔히 자기에게 득이 되는 상황임에도 일부러 변덕을 부려 '의식적으로' 불리한(안 좋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충분히 좋게 흘러갈 일을, 욕망과 감정에 휘둘려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는 거다. 겉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일인 것 같지만, 실제로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범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과 선택을 하는 걸 본다.​​이어서 '나'는 자기를 포함한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한낱 피아노의 부품, 기계의 한 부품이 되기 싫어서 일부러 반항을 저지른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보통의 존재가 아닌, 좀 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정해진 길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게 바로 '2+2=4' 공식이다. 원래 수학은 이성적이고 답이 정해져 있다. 4가 아닌 모든 것은 틀렸다. &lt;지하로부터의 수기&gt;가 나온 당시 러시아에선 뒤늦게 산업화가 태동하고 있었다. 더욱이 발전하는 산업화를 계산에 필수였던 수학과 과학이 자연스레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상은 불확실한 '인간'이 아닌, 정확한 답이 정해져 있고 체계적인 수학과 과학에 점차 의지하고, 믿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게, 공식만 잘 따르면 실패할 일도 없고 그냥 정해진 대로 움직이면 되니 말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인간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점차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성적'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이성을 추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정해진 답에 따라 정해진 길을 간다(앞서 말했듯, 2+2=4이다. 다른 답, 다른 길은 없다. 4만이 정답이다). 그렇게 인간은 그 사람 존재 자체가 아니라, 국가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숫자'에 불과하게 되었다. 지하 생활자인 '나'는 이것을 비판한다. 과연 인간은 그저 숫자에 불과할까? 정말 인간이라는 존재를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과연 우리에게는 모든 걸 계산하고 분류할 수 있는 능력과 '이성'을 갖고 있는 걸까??? 지하 생활자는 스스로를 지하에 가둬놓음으로써 이러한 주장이 틀렸음을 몸소 보여준다. 또한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맞는 건지 쉽게 단언하지 않는다. 인간은 아무리 '2+2=4'라는 공식, 즉 이성이 있더라도 자기 맘대로 이를 부정할 수 있으며, 스스로가 숫자가 아님을-한낱 개미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반항할 수 있는 존재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삶'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삶과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br>그렇다면 주인공인 지하 생활자는 훌륭한 사상가인 걸까? 한 마디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인 걸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사상을 떠나서 지하 생활자에겐 본질적인 것이 없다. 바로 앞서 말한 '삶'이다. 지하 생활자에겐 문제의식만 있을 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삶'과 '자유'가 없다. 그는 고립되어 있으며 혼자다. 극단적인 집단주의도 나쁘지만, 극단적인 개인주의 역시 옳지 않다. 거기다 지하 생활자는 가능성만 얘기하지, 실제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항상 '벽' 앞에 멈춰 서 있다고 말한다. 남들은 그런 벽 앞에서 몸을 돌리지만, 지하 생활자는 소극적인 저항으로서 벽 앞에 서서 버틴다. 하지만 그뿐, 지하 생활자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상은 거창하나 실상은 겁쟁이인 것이다. 2부의 젊은 시절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하 생활자는 현실에서는 그저 가난하고 옹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br>거기에 더해, 초반부에 말했던 지하생활자의 사상은 인간 개인의 소중함을 보여주지만, 이를 극단적으로 추구할 경우 자칫 오만함에 빠지기 쉽다. 자기 자신은 그 누구보다 소중하나,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바보에 멍청이니까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 대개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주변인들로부터 소외되는데, 지하생활자 역시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 그는 젊었을 적에 관청에서 근무했을 때도 그렇고 마흔이 된 지금까지 누구와도 제대로 어울린 적이 없다. 타인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무시한다. 이런 지하생활자에겐 당연히 삶도 없고, 자유도 없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하처럼 암흑과 고립만 있다. 놀랍게도 이런 현실은 지하생활자가 그토록 외친 사상과 완전히 정반대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인 '나'는 사상가라기보다는 문제적 인간에 가깝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하생활자의 사상이나 삶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2부에서 창녀 '리자'와의 이야기를 보면 그에게도 구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 인간이란 지하생활자처럼 비열하고 모순적이며, 문제적 존재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존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랑이라고 본 듯하다. 이성의 범주를 넘어선,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거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하생활자는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한 리자를 매몰차게 대하지만, 리자는 그런 그를 아무 말 없이 안아준다. 이때 지하생활자가 울면서 했던 고백 -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라는 말을 통해 악질적인 인간 역시 사랑을 원했음을, 그가 외쳤던 사상도 결국엔 타인을 향한 사랑을 갈구하고자 했던 일종의 '반항'이었음이 드러난다.<br>결론적으로, &lt;지하로부터의 수기&gt;는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짧고 거칠지만 도스토옙스키만의 사상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도스토옙스키를 처음 접해보거나, 혹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분이라고 다시 한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번역 자체도 괜찮기 때문에 강추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6/49/cover150/k0221395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96490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