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삶이냐 / 사랑한다는 것 동서문화사 세계사상전집 47
에리히 프롬 지음, 고영복.이철범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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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은 유태인 출신의 독일계 미국인 사회심리학자이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오기 전부터 프롬은 '프랑크푸르트 사회 연구소'에서 일하며 정신분석학과 사회심리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오늘 소개할 <소유냐 삶이냐>는 1976년에 출판된 책으로, 프롬이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는 '소유'의 고도화와 그것으로 오는 '인간소외'를 지적한 책이다.


나는 1970년대의 미국을 살아 본 적이 없어서 당시의 시대 상황이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 냉전과 민권운동, 베트남 전쟁 등등 여러모로 복잡했던 시기였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쩌면 프롬도 이러한 혼란스러운 사회현상을 겪으며 지금까지 미국을 대표하던 '자본'과 '소유(자유)' 양식에 대해 의문을 표했던 게 아닌가 싶다. 즉, 세계대전 이후 어느 정도 평화가 정립되고 중산층이 형성되는 등 자본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에도 어째서 행복한 미래가 펼쳐지지 않는 건지, 왜 이런 사회혼란이 발생하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소유와 삶이냐>의 서문에서도 프롬은 지금까지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여겼던 무한한 자유 추구, 더 많은 소유, 진보적 기술 같은 것들이 점차 그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들이 곧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자기도 모르게 이 끝없는 '허무함'을 풀고자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떤 대상을 존재로서 파악하지 않고 '내가 가져야 할 것'이라고 파악해 무조건적으로 소유하려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원하던 것을 '갖지만'한다면 그것이 곧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고, 내 안에 있는 허무함을 해소시켜 준다는 거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원하는 걸 소유한다고 해서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또 만족시킬 수 있는가? 프롬이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거다. 소유 양식이 과연 존재를 증명해 주는가? 나는 이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이런 소유 양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프롬이 살았던 70년대 미국뿐만 아니라 21세기인 이곳 대한민국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흔히 명품에 집착하는 사람들, 돈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믿음, 그리고 칸트가 말했던 것처럼 사람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단지 자신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자들이 바로 이런 부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존재하기보다 그저 소유하고 지배하기를 바라는 자들 말이다. 프롬은 이에 대한 근거로 현대인들의 언어와 사고방식에 대해 심리학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프롬에 말에 의하면 현대인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저는 불안해하고 <있습니다>'라는 말 대신 '저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불안은 분명 눈에 보이지 않은 심리적인 현상인데, 사람들은 마치 이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말을 할 때에도 자신의 존재, 그러니까 이러한 심리를 느끼는 '자기 자신'이 아닌, 마치 나와 전혀 다른 '외부의 존재'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근데 사실 이것도 일종의 소유에서 오는 '소외 현상'이다. 소유는 '가지고 있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내게 종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렇게 자신의 존재와 전혀 다른 것으로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유했다는 이 의미에만 집착한 나머지 소유한 물건이 곧 자기 자신의 존재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니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을 파악하지 못한 채 헛된 외부 물건에 집착해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거다.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걸 가지고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낀다. 소유하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지만 필요 이상으로, 그러니까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건을 소유하고 소비하게 되면 인간은 그만큼 존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프롬은 이렇게 소유를 극대화하고 소비를 촉진시키는 잘못된 사회현상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건강하고 올바른 소유와 존재는 어느 한쪽만 극대화해서 달성되는 게 아니라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온다. 나는 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소유와 존재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표한 프롬의 문제의식이 인상 깊었다. '나는 존재한다 = 나는 소유한다 = 나는 소비한다' 이 공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물론이고, 이외에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유대교같이 생소한 주제를 통해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살펴보는 방식 역시 인상 깊어서 좋았다.

다만, '소유와 존재'라는 다소 이분법적인 구도를 통해서만 사회 현상을 파악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프롬 자신은 프로이트의 이분법적인 심리학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그가 쓴 <소유냐 삶이냐>에서도 비슷한 이분법적인 구도를 취하는 것 같았다. 마르크스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소유와 존재의 갈등이 사회현상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소유에서 벗어나 진정한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프롬의 결론도 뭔가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롬의 비판이 아예 쓸모없다는 건 아니다. 프롬의 지적은 정확했고, 또 정당하다. 소유의 문제는 몇 천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문제고, 인간이 진짜 '나'로 존재하고 싶어 하는 존재에 대한 욕구 역시 언젠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인간의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문득 돈과 권력, 명예에만 집착하는 사회 현상에 비판적인 생각이 든 사람, 혹은 그런 사회현상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제격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1) 모든 욕구의 무제한적인 만족은 복리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며, 행복에 이르는 길도 아니고 최대의 쾌락에 이르는 길도 아니다.



2) 자기 생활의 독립된 주인이 된다는 꿈은, 우리 모두가 관료 제도란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어, 생각, 감정, 기호가 정치와 산업 그리고 그것들이 지배하는 매스컴에 조작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뜨기 시작했을 때 끝나 버렸다.



3) 경제적인 진보는 여전히 풍요한 국가에만 국한되어, 풍요한 국가와 가난한 국민들의 간격은 더욱 벌어졌다.

​4) 기술의 진보 그 자체가 생태학적인 위험과 핵 전쟁의 위협을 낳았으며, 그중 어느 하나가 또는 양쪽이 모든 문명 그리고 어쩌면 모든 생명에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유별나게 불행한 사람들의 집합이다. 우리는 고독하고, 불안하며, 억울하고, 파괴적이고, 의존적이어서, 한쪽에서는 그토록 애써 아끼는 시간을 다른 한쪽에서는 마구 허비하며 기뻐한다"

무언가를 영속적으로 소유한다는 표현은 그 실체가 영원하고 파괴될 수 없는 것이라는 환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 실제로는 -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은 삶의 과정에서 한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유의 실존 양식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살아 있는 생산적 과정을 통해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객체와 주체를 모두 ‘물건‘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관계는 죽은 관계이다.

"나는 존재한다 = 나는 갖고 있다 = 나는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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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여인 / 약혼녀 / 골짜기 동서문화사 월드북 191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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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들의 지루한 삶과 욕망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체호프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번역에 아쉬움이 있었으나 체호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6호실>과 <상자 속에 든 사나이>, <귀여운 여인>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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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 1 - 장 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강해 철학의 정원 15
조광제 지음 / 그린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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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다. 구어체라서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나 개인적으론 별 문제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다(사실 문체가 중요한 게 아닌데 거참...). 아무튼 내용 자체도 제목처럼 충만해서 만족스러웠다. 언젠가 <존재와 무>를 읽는 그날까지 좀 더 공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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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밤 1
정은수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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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읽은 적 있는 만화. 오래 전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재밌다. 요즘엔 거의 볼 수 없는 현실적인 묘사와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다. 다음 권도 읽어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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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펭귄클래식 2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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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는 푸쉬킨의 <대위의 딸>이다. 예전엔 다소 동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마냥 그렇지만 않다는 걸 깨달았다. 비참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도 인물들의 인간미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모습이 푸쉬킨 다웠달까. 푸카초프에 대한 정감어린 시선도 독특했다.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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