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jyooster님의 서재 (jyooster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9 Apr 2026 02:44:30 +0900</lastBuildDate><image><title>jyooster</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0247116236244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jyooster</description></image><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얻은 것을 잘 지켜내는 능력 - [그대는 인생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77381</link><pubDate>Fri, 27 Mar 2026 16: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773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137962&TPaperId=171773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7/67/coveroff/k7021379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137962&TPaperId=171773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대는 인생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a><br/>세종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6년 03월<br/></td></tr></table><br/><br><br>&lt;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gt;  &nbsp;  50대에 접어들고 보니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짐을 느낀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나’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놓치고 살았나’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저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오는 동안 사람들과는 잘 어울려 지냈는지, 매 순간 선택의 기준은 뚜렷했는지, 자신을 다독일 여유는 있었는지 문득문득 자문하게 된다. 이런 시점에 만난 이 책은 그저 단순한 독서를 넘어, 바쁘게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문하게 만든다.  &nbsp;  이 얇은 문고판 책이 각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했던 세종대왕의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흔히 ‘세종’ 하면 결점 하나 없는 완벽한 성군을 떠올리지 않던가. 하지만 책 속의 세종은 완성형 위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점검하는 ‘과정형 인간’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판단이 늘 옳다고 믿기보다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신하들의 쓴소리에 귀 기울였고 잘못이 드러나면 주저 없이 고쳤다. 절대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자세를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수많은 리더의 모습과 겹치며 꽤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nbsp;  특히 ‘사람을 보는 기준’에 대한 통찰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누가 더 뛰어나고 유능한지 서둘러 평가하려 든다. 하지만 세종은 사람을 탓하기 전에 ‘문제’ 그 자체를 먼저 보라고 조언한다. ‘누가 예민한가’를 찾기보다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살피라는 그의 태도는 오랜 세월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수없는 갈등을 겪어온 중년의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편견과 선입견의 잣대로 사람을 재단하는 순간, 정작 중요한 본질은 놓치고 만다는 뼈아픈 진실과 함께 말이다.  &nbsp;  ‘실수를 대하는 태도’ 역시 깊이 새겨볼 만하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내치지 말라는 세종의 철학은, 오로지 성과와 효율만 따지는 요즘 세상에서는 자칫 무르고 느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통찰은 훨씬 깊은 곳을 향해 있다. 결과만 가지고 벌을 주면 사람들은 결국 진실을 숨기게 되고 조직은 안에서부터 병들고 만다는 것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 역시 젊은 시절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누군가 나를 믿고 기다려준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의 너그러움은 단순한 관용을 넘어, 사람과 조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단단한 뿌리와도 같다.  &nbsp;  책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세종은 ‘사람을 믿되 결코 방치하지 않는 리더’였다.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깔려 있지만, 그 믿음은 철저한 관찰과 질문, 그리고 책임지는 자세 위에서만 작동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가 권위를 앞세워 아랫사람의 입을 막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그 다양한 목소리들을 모아 최선의 결정을 끌어냈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입을 열게 만드는 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는 진정한 통솔력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nbsp;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서늘한 일침’에 있다. 우리는 남보다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지만 정작 그 속에서 내 삶의 방향키를 놓쳐버릴 때가 많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묻기보다 ‘얼마나 빨리 가고 있나’만 따지며 사는 것이다. 책은 그런 우리를 멈춰 세우고 묻는다.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그 길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의외로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을 찬찬히 되짚어보게 만드는 묵직함이 있다.   &nbsp;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목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세종의 태도와 마주치게 된다. 자신을 의심하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허물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그 담백한 자세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진짜 잃어버린 건 대단한 능력이나 기회가 아니라 바로 이런 ‘기본적인 삶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nbsp;  완독 후에 당장 속 시원한 정답이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단단한 ‘기준’ 하나가 자리잡는 느낌이 든다. 더 가지려고 욕심내기 전에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지 먼저 묻는 것. 더 빨리 가려고 채찍질하기 전에 지금 향하는 방향이 맞는지 점검하는 것. 중년 아재의 가슴에 이 책이 툭 던져놓은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생의 후반전은 ‘얼마나 더 채우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얼마나 덜 놓치느냐의 싸움’이라는 사실이다. 정신없이 내달려온 시간 끝에 비로소 마주하게 된, 실로 값진 깨달음이다.  &nbsp;  #세계철학전집 #세종대왕 #세종대왕의마음가짐 #에세이 #모티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7/67/cover150/k7021379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676790</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질풍노도의 열네 살 - [이 망할 열네 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75110</link><pubDate>Thu, 26 Mar 2026 15: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751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5582&TPaperId=171751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18/23/coveroff/k4521355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5582&TPaperId=171751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 망할 열네 살</a><br/>김혜정 지음 / 사계절 / 2026년 01월<br/></td></tr></table><br/>이 작품은 어느 십 대 초입 소년의 불안과 분노,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상처를 생생하게 그려낸 청소년 소설이다. 제목부터 거칠고 직설적이지만 그 안에는 열네 살이라는 나이 특유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열네 살은 참으로 애매한 나이이다. 아직 어리다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다 컸다고 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버겁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애매함의 한복판을 정면으로 통과한다. 주인공은 중학교에 막 들어선 소년으로 초등학생도 어른도 아닌 경계에 서 있다. 또래보다 느린 성장 속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부모, 속을 알 수 없는 친구들, 점점 까다로워지는 학교생활 속에서 그는 자신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듯한 외로움을 느낀다.  &nbsp;  집에서는 어른들의 사정과 감정이 소년의 삶을 자꾸 흔들어 놓는다. 부모의 갈등과 무심한 말 한마디는 아직 단단하지 못한 마음에 깊은 금을 낸다. 학교에서는 친구 관계가 삶의 전부처럼 느껴지지만  그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틀어지고 상처를 남긴다. 작은 오해와 소문, 무리 짓기와 따돌림의 기류 속에서 주인공은 분노하고, 상처 입고, 때로는 엇나간 선택을 하기도 한다. <br>이 소설의 가장 큰 힘은 이러한 감정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에 있다. 주인공은 때로 이기적이고 예민하며 괜히 날이 서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 친구들 사이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공포, 어른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억울함이 켜켜이 쌓여 있다. 독자는 그 거친 말투와 행동 뒤에 숨은 속마음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nbsp;  저자는 작품 속 어른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부모 역시 부모 노릇은 인생 1회차라 서툴고 지쳐 있으며, 자신의 문제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존재로 등장한다. 아이와 어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 모습은 낯설기보다 오히려 우리 일상과 닮아서 더 아프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보다 더 흔하고 피부에 와닿는 이야깃거리도 없을 것 같다.  &nbsp;  이 작품은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또 하나의 사회를 보여 준다. 친구 관계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처럼 작동한다. 소문 하나, 메시지 하나가 관계의 지형을 바꿔 놓고 그 안에서 주인공은 상처를 입기도 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 과정은 불편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진솔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십 대의 세계가 절대 녹록지 않음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nbsp;  그러나 이야기는 단순히 ‘질풍노도의 반항기’를 소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주인공은 자신이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왜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는지를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다. 어른들 역시 완벽하지 않은 존재임을, 친구들 또한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열네 살의 시간은 거칠지만, 분명히 성장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nbsp;  이 소설은 ‘성장’을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성숙해지지도 않고, 모든 갈등이 완벽하게 해결되지도 않는다. 다만 조금 더 생각하게 되고, 한 발짝 물러서 보게 되며,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게 될 뿐이다. 성장이라는 것은 그렇게 작고 느린 변화가 쌓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작품은 담담하게 보여 준다.   &nbsp;  제목의 거친 표현 또한 그런 맥락에서 다시 보인다. 처음에는 반항처럼 들리던 “이 망할”이라는 감탄사가 읽고 나면 사실은 “나를 좀 이해해 달라”는 절박한 신호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이 작품은 열네 살을 위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불과 몇 년 전 혹은 한때 그 나이를 지나온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십 대 독자에게는 깊은 공감과 위로를, 어른 독자에게는 잊고 있던 기억과 반성을 함께 안겨 준다. 열네 살의 분노를 단순한 문제로 보지 않고 그 속에 숨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이 작품을 오래 남게 한다.  &nbsp;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켜보다 보면, 겉모습은 고등학생이지만 마음은 아직 열네 살쯤에 머물러 있는 듯한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낼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나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스무 살 시절의 미숙한 모습을 불쑥 드러내곤 한다. 신체 나이는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쌓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연령은 사람마다 다르게 머무른다. 아마도 정신연령이라는 것은 인생의 어렵고 힘든 순간을 겪으며 비로소 드러나고 단단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서는 젊은 시절의 ‘고생’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족함 없이 자란 환경이 오히려 삶의 어느 지점에서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이 작품 속 열네 살의 방황과 상처 또한 결국은 한 사람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점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온다.  &nbsp;  결국 매일 교실에서 이들을 만나는 나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각자의 ‘열네 살’을 아직 지나오는 중인 아이들을 마주하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무심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어도 그들 각자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틀린 답을 지적하는 것보다, 서툰 감정을 견디고 있는 그 시간을 조금 더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언젠가 그 아이들도 지금의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거칠고 불완전한 시간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조용히 곁을 지켜 주면서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작은 신호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것이리라.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18/23/cover150/k4521355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182381</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문제적 인간관계의 시작은 바로 나였어.. - [사람을 얻는 힘 : 인간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70174</link><pubDate>Tue, 24 Mar 2026 15: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701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7863&TPaperId=171701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56/coveroff/k87213786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7863&TPaperId=171701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람을 얻는 힘 : 인간력</a><br/>다사카 히로시 지음, 장은주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03월<br/></td></tr></table><br/><br><br>&lt;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gt;  &nbsp;  사람을 얻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인간력’이라는 생소한 용어의 책 제목에 처음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 나이에 또 무슨 인간관계론인가 싶었다. 세상살이에서 부딪힐 만큼 부딪혀 봤고, 사람 때문에 웃고 상처받는 일도 웬만큼 겪어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새로운 기술이나 요령을 배운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달라질까 싶은 회의감도 들었다.  &nbsp;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저자는 무언가를 ‘새로’ 알려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해왔던 것들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들추어낸다. 그리고 그 지점이 묘하게 마음에 걸린다. 마치 누군가 내 삶을 오래 지켜본 뒤 건네는 말처럼 불편할 만큼 정확하게 다가온다.  &nbsp;  살다 보면 문득 그런 순간이 있다. 주위에 아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마음을 터놓을 사람은 없다고 느껴질 때 말이다. 연락처는 수십, 수백 개가 쌓여 있는데도 막상 힘들 때 전화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 현실. 젊을 때는 몰랐던 공허함이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해진다. 이 책은 바로 그 공허함의 근원을 건드린다. 우리는 관계를 넓히는 데에만 익숙했지, 깊게 만드는 데에는 서툴렀다.<br>저자가 말하는 ‘인간력’은 특별한 재능이나 타고난 매력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알고 있는, 그래서 더 쉽게 지나쳐버리는 태도에 가깝다. 부족함을 고치려 애쓰기보다 인정하는 것, 먼저 말을 걸고 눈을 맞추는 것, 마음속의 작은 자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평범한 말들이 이상하게 가볍지 않다. 오랜 시간 사람을 겪으며 축적된 무게가 문장마다 배어 있기 때문이다.  &nbsp;<br>  특히 “관계를 타인의 몫으로 남겨두지 말라”는 문장은 오래 남는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많은 관계를 그렇게 흘려보냈다.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먼저 다가가지 않았고, 괜히 자존심을 세우다가 멀어진 인연들이 적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줄 알았던 관계들이 사실은 내가 방치한 결과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단순하게 말한다. 먼저 말을 걸고, 눈을 맞추라고. 그 한 번의 선택이 관계의 흐름을 바꾼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실천하지 않았던 이야기다.  &nbsp;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헤어져도 마음으로 관계를 끊지 말라’는 부분이다. 이 나이가 되면 사람과의 이별도 제법 쌓인다. 오해로 멀어진 사람, 상황 때문에 끊어진 인연들을 우리는 흔히 ‘정리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두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속에서 완전히 끊어버리는 순간, 그 관계가 남길 수 있었던 의미까지 사라진다는 것이다. 지나온 인연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너무 쉽게 지워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그 안에서 내가 배워야 할 것을 외면한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nbsp;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울림은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묻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인간관계를 문제 삼을 때 상대를 바꾸려 한다.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하지만 저자는 시선을 거꾸로 돌린다. 내가 먼저 마음을 닫고 있지는 않았는지, 상처받기 싫어서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상대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피하기 어렵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nbsp;  50대쯤 되면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경험이 쌓였고, 판단 기준도 생겼고, 웬만한 상황에서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안다’는 것과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며 살아간다. 그 결과가 지금의 인간관계라는 점을 인정하는 순간, 이 책의 메시지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nbsp;  요즘 세상은 참 빠르다. 연결은 쉬워졌고, 관계를 맺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관계는 얕아졌고 신뢰는 더 어려워졌다. 성과는 혼자서도 낼 수 있지만 결국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사람이 남는다. 누가 내 곁에 있는지, 내가 누구의 곁에 서 있는지가 삶의 무게를 결정한다. 이 책은 그 너무나 당연하지만 자주 잊고 사는 사실을 다시 붙잡게 만든다.  &nbsp;  결국 이 책은 인간관계에 대해 화려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이미 알고 있는 질문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읽는 내내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연락 끊긴 지 오래된 몇몇 얼굴이 떠오르고, 먼저 연락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정도 변화라면 이 책이 내게 건넨 이야기는 충분히 값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nbsp;  #사람을얻는힘 #인간력 #관계의기술 #인간관계 #인간관계통찰 #북플레저 #가까우면뜨겁고멀면춥다 #인간관계는화로를앞에둔것]]></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56/cover150/k87213786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645690</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전쟁은 곧 피와 보물, 무엇을 기억하겠는가? -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 폭력이 펼쳐지는 시대마다 누가 숨은 이득을 챙기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35579</link><pubDate>Sat, 07 Mar 2026 13: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355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5052&TPaperId=171355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64/61/coveroff/k3521350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5052&TPaperId=171355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 폭력이 펼쳐지는 시대마다 누가 숨은 이득을 챙기는가</a><br/>던컨 웰던 지음, 윤종은 옮김 / 윌북 / 2026년 02월<br/></td></tr></table><br/><br><br>&lt;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gt;  &nbsp;  이 책의 원제 『피와 보물(Blood &amp; Treasure)』은 시작부터 꽤 노골적이다. 전쟁과 약탈의 본질을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묶어놓은 제목이 또 있을까 싶다. 처음에는 다소 과격하게 느껴지지만 책장을 몇 장 넘기다 보면 곧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도발적인 제목이야말로 저자가 던지려는 질문을 가장 정확하게 압축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분명 피를 부른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전쟁은 때로 보물도 낳았다. 물론 그 보물은 단순한 금과 은이 아니다. 제도와 유인, 그리고 경제 구조의 변화라는, 조금 더 복잡하고 위험하며 동시에 흥미로운 것들이다.  &nbsp;  이 책은 바이킹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경제사를 추적한다. ‘폭력 전문가’들에 의한 무력 충돌이 세계 권력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며, 갈등의 경제학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탐구한다. 전쟁이 막대한 인명 피해와 비용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긴 역사 속에서 인간 사회의 제도와 경제 발전을 이토록 강하게 밀어붙인 힘도 또 드물다. 전쟁은 국가를 일으켰고, 국가는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 비용이 커질수록 조세 제도와 국가 조직, 국채 시장은 함께 성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파괴적으로 변할수록 국가의 경제 체제는 점점 더 정교해졌다.  &nbsp;  저자 던컨 웰던은 전쟁을 영웅담이나 도덕적 비난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왜 이런 선택이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경제학적 시각으로 인간 행동의 숨은 인과관계를 추적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다만 무대가 일상 대신 역사라는 점이 다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역사판 프리코노믹스’라고 부를 만하다. 각 장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경제학적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독자의 직관을 은근히 흔들어 놓는다.  &nbsp;  책은 중세 영국의 데인겔드 이야기로 시작한다. 데인겔드는 영국 왕들이 바이킹의 침략을 막기 위해 바친 일종의 조공이다. 물론 이 돈은 왕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세금으로 마련되었다. 경제학 교과서식으로 보면 세금은 대체로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소로 설명된다. 그런데 저자는 흥미로운 점을 지적한다. 데인겔드가 징수되던 시기가 오히려 영국 경제가 비교적 활기를 띠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세금을 감당해야 하는 압력이 농민들의 생산성 향상을 자극했다는 해석이다. 폭력의 그림자 아래에서 오히려 교환과 분업이 촉진되었다는 설명은 조금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nbsp;  2장에서는 칭기즈칸이 뜻밖의 별명을 얻는다. 바로 ‘세계화의 아버지’이다. 몽골 제국은 초기의 파괴적인 정복 이후 광대한 지역에 일정한 질서를 만들었고, 그 덕분에 동서 간 육로 무역이 한 세기 가까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유럽인들이 아시아 상품에 눈을 뜨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이후 육로 무역이 어려워지자 유럽은 자연스럽게 해상 항로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몽골 제국이 대항해 시대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익숙한 역사를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은 분명하다. 칼과 말발굽이 남긴 것이 폐허만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nbsp;  신대륙 이야기에 이르면 또 하나의 통념이 흔들린다. 금과 은을 잔뜩 손에 넣은 스페인이 왜 결국 경제적으로 쇠퇴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남미의 은이 유럽으로 대량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제도 개혁에 실패했고 결국 재정 위기를 반복했다. 풍부한 자원이 오히려 정치적 견제와 균형을 약화시켰다는 설명이다. 결국 문제는 ‘얼마나 많은 자원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떤 제도 속에서 그것을 운용하는가’이다. 전리품은 잠깐이지만 제도는 오래 남는다.  &nbsp;  기후 변화와 마녀사냥의 관계를 다룬 장도 흥미롭다. 얼핏 보면 집단적 광기에 가까운 마녀사냥 역시 사실은 생존 압박이라는 구조적 조건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면 오늘날의 국제 갈등 역시 단순히 몇몇 지도자의 성격이나 광기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갈등 뒤에는 대개 더 복잡한 구조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br>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은 해적 이야기를 다룬 부분이다. 법도 재판도 없는 해적선에서 의외로 정교한 조직 운영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보상 체계와 신호 구조가 명확하면 반란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듣다 보면 현대 기업 조직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폭력 집단이 오히려 꽤 합리적인 유인책 설계를 했다는 사실은 묘하게 씁쓸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nbsp;  이 책의 접근은 어디까지나 경제학적이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총력전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도덕적 비판보다는 경제적 동원 체제의 효율성이 강조된다. 이런 분석은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선악의 판단이 아니라 행동을 만들어내는 유인 구조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쟁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 특정한 제도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설명은 어디까지나 분석일 뿐 권유가 아니다. 문제는 이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때 생긴다.  &nbsp;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내란을 두둔하거나 강경한 물리적 충돌을 불가피한 선택처럼 말하는 목소리가 등장한 적이 있다. 국가의 위기나 경제적 침체를 이유로 “큰 충격이 체질을 개선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역사 속 전쟁이 제도 발전을 낳았으니 어느 정도의 폭력은 필요악이라는 논리와 닮았다.  &nbsp;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결론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폭력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 어떤 제도가 만들어졌는가이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과 왜곡된 유인이 지배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큰 충격이 가해져도 발전 대신 파탄이 반복된다. 신대륙의 은을 움켜쥐고도 재정 파탄에 이른 군주의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폭력은 자동으로 진보를 낳지 않는다. 제도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폭력은 공동체를 더 약하게 만들 뿐이다.  &nbsp;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태도는 어쩌면 ‘보물’만 보고 ‘피’를 지워버리는 편리한 기억 방식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이득을 얻었다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피와 보물의 관계는 풍선효과와도 비슷하다. 경제학적 분석은 차갑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차가움은 일종의 경고이기도 하다. 유인이 왜곡되면 개인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집단은 비극으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nbsp;  저자 던컨 웰던은 『이코노미스트』와 BBC에서 활동한 저널리스트이자 경제학자이다. 영란은행과 자산운용, 공공정책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워릭대학교 세계경제 비교우위 분석센터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런 이력이 보여주듯 그의 논의는 상당히 촘촘하다. 모든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반박하려면 그만큼의 근거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 지닌 가장 건강한 특징이다.  &nbsp;  이 책은 전쟁의 승패를 묻지 않는 대신 전쟁이 남긴 제도적 흔적을 추적한다. 누가 이겼는가보다 무엇이 바뀌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결국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총성과 함성이 아니라 어떤 유인을 설계하고 어떤 제도를 지켜내느냐이기 때문이다.  &nbsp;  결국, 이 책이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피와 보물 중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역사는 언제나 전쟁의 명분보다 그 결과를 더 오래 기억한다. 오늘날 중동의 긴장을 키우며 전범 논란에까지 이름이 오르는 트럼프와 네탄야후의 사례는 실정을 덮느라 보물조차 약속하지 못하는 전쟁이 결국 어떤 평가로 남게 되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nbsp;  #돈의흐름 #돈의역사 #역사서 #눈에보이지않는전쟁과돈의역사 #피와보물 #프리코노믹스 #freakonomics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64/61/cover150/k3521350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646138</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맑스의 자본 강의 -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amp;lt;자본&amp;gt; 강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20663</link><pubDate>Sat, 28 Feb 2026 16: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206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5695&TPaperId=171206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7/98/coveroff/89364856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5695&TPaperId=171206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lt;자본&gt; 강의</a><br/>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신준 옮김 / 창비 / 2011년 04월<br/></td></tr></table><br/><br>저자는 영국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로, 도시·공간·자본주의를 결합해 분석하는 세계적 석학이며, 자본의 축적 논리를 공간 구조(도시화·부동산·금융·제국주의) 속에서 해석한 이론가로 유명하다. 그는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도시, 국가, 정치, 문화, 일상생활 전체를 재구성하는 구조적 시스템으로 파악했고, 『자본의 한계(The Limits to Capital)』, 『신자유주의의 역사(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 『반란의 도시(Rebel Cities)』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 금융화, 불평등, 도시 공간의 계급화를 날카롭게 비판해 왔다. 특히 『맑스 &lt;자본&gt; 강의』에서는 난해한 『자본론』을 현대 자본주의 현실과 연결해 해설하며, 맑스를 고전 텍스트가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비판 이론으로 복원한 해설자로 평가받는다.  &nbsp;  이 책은 단순한 강의 해설서가 아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기’에 앞서 ‘이해’를 먼저 요구하는 꽤 집요한 안내서이다. 2010년 출간 당시에도 시의성이 있었지만 15년이 흐른 지금 자본주의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벌어진 정치적 격변과 도널드 트럼프 현상을 떠올려보면 하비의 문제 제기는 더욱 또렷하게 다가온다. 돈이 삶을 지배하는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의 형식까지 흔들 수 있다면, 그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nbsp;  책은 상품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는 돈이 아니라 ‘상품의 집합’으로 나타난다.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동시에 지니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우리의 관심은 점점 교환가치, 곧 가격으로 쏠린다. 서로 다른 물건이 일정한 비율로 교환될 수 있는 이유를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대목은 가격표 뒤에 숨어 있는 노동의 흔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그 숫자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인다. 하비가 짚어내는 상품 물신성은 바로 이 지점, 인간이 만든 관계를 자연법칙처럼 믿어버리는 착시를 가리킨다. 익숙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nbsp;  교환과 화폐의 분석은 시장을 더 이상 순진하게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교환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 사이의 거래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사적 소유와 법적 인정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화폐는 단순한 편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매개이다. 상품–화폐–상품의 순환에서 돈은 수단이지만 화폐–상품–화폐′의 구조에서는 더 많은 돈이 목적이 된다. 이 전환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낸다. 돈이 삶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삶이 돈의 증식을 돕는 장치로 바뀌는 순간이기 때문이다.<br>자본의 일반적 정식 G-W-G′을 따라가면 이윤의 비밀이 드러난다. 단순한 유통 과정에서는 가치가 늘어나지 않는다. 잉여가치는 생산 영역에서, 특히 노동력이라는 특별한 상품을 통해 창출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 ‘결과’가 아니라 일정 시간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판다. 임금은 그 능력을 유지하는 비용일 뿐, 노동자가 실제로 만들어낸 가치 전체를 반영하지 않는다. 노동시간은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 나뉘고 그 차이가 자본의 몫이 된다. 월급이 정당한 보상이라는 익숙한 생각이 조금은 흔들리는 대목이다.  &nbsp;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구분은 자본이 실제로 어디서 증식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기계와 원자재는 자신의 가치를 이전할 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오직 노동력만이 그 이상을 만들어낸다. 잉여가치율, 노동일의 연장, 상대적 잉여가치의 확대라는 개념들은 자본이 노동을 어떻게 조직하고 압박하는지 설명한다.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 역시 중립적 진보가 아니라, 필요노동을 줄이고 잉여노동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효율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낯설어진다.  &nbsp;  협업과 분업, 매뉴팩처와 대공업, 그리고 기계의 도입에 대한 분석은 오늘날의 자동화와 플랫폼 노동을 떠올리게 한다. 협업은 연대의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통제와 관리의 정교한 방식이 될 수 있다. 분업은 효율을 높이지만 노동자를 전체 과정에서 분리시키고 대체 가능한 존재로 만든다. 기계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는 인간을 기계의 리듬에 종속시킨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이 편입된 체제라는 점이 또렷해진다.  &nbsp;  임금과 단순재생산, 축적의 논의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스스로를 반복·확대하는지를 보여준다. 노동자는 임금을 통해 다시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자본은 잉여가치를 축적해 규모를 키운다. 축적은 선택이 아니라 강제이며, 경쟁 속에서 자본가는 멈출 수 없다. 산업예비군의 존재는 실업과 불안정이 우연이 아니라 구조의 일부임을 드러낸다. 성장의 이면에 상대적 빈곤과 집중이 뒤따르는 이유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nbsp;  마지막으로 본원적 축적의 분석은 자본주의의 출발 신화를 재검토하게 한다. 성실과 절약의 미담 대신, 토지로부터의 추방과 박탈, 제도화된 폭력의 역사가 놓여 있다.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말은 이미 생산수단과 분리된 존재를 전제로 한다. 자본주의는 자연스러운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체제임을 상기시킨다.  &nbsp;  이 책의 의의는 단순히 『자본』을 쉽게 풀어냈다는 데 있지 않다. 하비는 자본주의를 도덕적으로 규탄하기보다, 그 운동 법칙을 차분히 해부한다. 왜 위기가 반복되는지, 왜 불평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지, 왜 돈의 논리가 정치와 일상 깊숙이 스며드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집값 그래프나 주가 지수, 월급 명세서와 뉴스 속 국제 정세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nbsp;  이 책은 자주 들어 귀에 익숙하지만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 선뜻 이해되지 않던 용어들과 두꺼운 분량으로 사회과학 지식이 일천한 헛똑똑이 필자를 불편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사유의 시작이다. 자본주의를 “원래 그런 것”으로 넘기지 않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묻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다른 자리에 서게 된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계정세와 경제 현실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리고 분노나 체념 대신 독수리처럼 맑은 눈을 갖고 싶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다. 자본주의의 민낯을 마주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싸우는 상대가 누구인지는 분명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7/98/cover150/89364856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579803</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가짜 정보에 속지 않는 꿀팁 - [주의! 거짓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 - 가짜 정보와 허위 선동에 넘어가지 않는 팩트 체크의 기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01847</link><pubDate>Thu, 19 Feb 2026 22: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1018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5313&TPaperId=171018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23/coveroff/k0721353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5313&TPaperId=171018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의! 거짓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 - 가짜 정보와 허위 선동에 넘어가지 않는 팩트 체크의 기술</a><br/>앨릭스 에드먼스 지음, 황가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역사상 가장 고상한 ‘읽씹’ 사건은 아마 이 장면일 것이다. 로마 총독 폰티우스 필라테가 예수 앞에서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어놓고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난 일이다. 이런 질문은 철학 교양 수업 첫 시간에 나올 법한데, 태도는 이미 답을 정해놓은 사람의 그것이다. 이를 두고 400년 전 프란시스 베이컨은 ‘인간이란 진실 자체보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더 사랑하는 존재’라고 꼬집었다. 그의 말은 오늘날 스마트폰을 쥔 우리의 모습과 겹친다. 보고 싶은 기사만 읽고, 듣고 싶은 주장만 공유하며, 마음에 드는 해석에만 ‘좋아요’를 누르며, 심지어는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만 어울리는 일상 말이다. 윈스턴 처칠의 표현처럼 거짓이 세상을 반 바퀴 도는 동안 진실은 아직 바지를 입는 중인 세상이다. 요즘은 바지에 벨트를 매기도 전에 타임라인이 이미 점령당하는 느낌이다.  &nbsp;  이런 시대적 환경에 어울리는 이 책이 등장한다. 책 제목은 마트에서 흔히 보는 식품 경고문과 같은 형식이다. 원래 이 문구는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섞였을 가능성을 알리기 위해 붙는다.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와 미국, 유럽 연방의 제도 정비 와중에서 자리 잡은 표현이다. 흠결을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숨기지 않겠다는 일종의 양심선언인데, 저자는 이 경고문을 정보에 응용했다. 뉴스에도, 연구 결과에도, 그래프에도 “거짓이 조금 섞여 있을 수 있음”이라는 스티커를 붙여보자는 제안이다.  &nbsp;  <br>책은 한때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1만 시간의 법칙’부터 건드린다. 1만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정상에 설 수 있다는 달콤한 공식이다. 듣기에는 참 희망이 차오른다. 하지만 연구의 표본과 맥락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재능과 환경이라는 변수를 지운 채 노력만 남긴 서사는 깔끔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프로 골퍼가 되기 위한 1만 시간을 채우겠다고 인생을 갈아 넣었지만 통장 잔고와 허리 통증만 남은 ‘댄’의 사례를 읽다 보면 웃음이 나다가도, 괜히 내 이야기 같아 뒤통수를 긁적이게 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배웠지만, 가끔은 노력이 “미안, 이번 판은 여기까지” 하고 손절하는 순간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nbsp;  경제경영 베스트셀러에 대한 분석도 통쾌하다. 이미 성공한 기업만 모아 공통점을 찾아내는 이른바 생존자 편향이다. 살아남은 기업의 습관을 정리해 놓고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고 말하는 방식이다. 마치 로또 1등 당첨자의 아침 루틴을 분석하며 “역시 새벽 기상이 답이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 실패한 수많은 사례는 애초에 분석표 밖에 있다. 화살을 먼저 쏘고 나서 나중에 그 자리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 셈이다.  &nbsp;  모유 수유와 지능의 상관관계 이야기도 흥미롭다. 겉으로 보면 “모유가 아이를 더 똑똑하게 만든다”는 결론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뜯어보면 사회경제적 환경이라는 변수가 숨어 있다. 모유 수유가 가능한 가정의 여건이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 우리는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쉽게 착각한다. 자연이 최고라는 믿음이 과학적 검증을 대신하는 순간이다. 단순한 설명은 늘 달콤하다.  &nbsp;  확증편향의 사례는 웃기면서도 서늘하다. 처음부터 범인을 정해놓고 그에 맞는 증거만 모으는 ‘답정너’ 수사처럼, 우리 역시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정보를 고른다. 나와 같은 편의 실수는 “맥락이 있다”고 감싸고, 반대편의 실수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단정한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현실은 거기에 맞춰 편집된다. 이쯤 되면 빌라도의 질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묻기는 묻되, 들을 생각은 없는 태도이다.  &nbsp;  저자는 다행히도 훈계만 늘어놓지는 않는다. 수업 중 과거에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이론을 인용했던 경험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리고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쿠바 침공 실패 이후 참모들의 조언을 수용하여 의사결정 방식을 바꾼 존 F. 케네디의 사례처럼, 일부러 반대 의견을 회의 안으로 들여오는 태도이다. “그거 정말 확실한건가”라고 묻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대형 사고를 피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듣기에는 좀 성가시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가장 고마운 친구 유형이다.  &nbsp;  결국 이 책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세상에 널린 정보에는 ‘거짓 함유 가능’ 표시가 붙어 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치킨을 주문할 때도 별점 낮은 리뷰부터 확인하면서, 왜 뉴스와 연구 결과는 제목만 보고 공유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버튼을 누르기 전 3초만 멈추는 습관, “이거 진짜 맞나?”라고 자신에게 묻는 태도 말이다.  &nbsp;  결국, 이 책은 세상을 불신하라고 부추기지 않는다. 다만 우리 머릿속에 작은 경고문 하나를 붙여준다. 이런 생각에도, 이런 확신에도, 이런 분노에도 거짓이 조금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당부이다. 웃으며 읽다가도 슬며시 뜨끔해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br>#가짜정보 #허위선동 #확증편향 #주의거짓이포함되어있을수있음 #위즈덤하우스 #가짜뉴스 #팩트체크 #카더라 #속지않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23/cover150/k0721353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962302</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면역의 기본, 체온 유지 - [체온회복력 - 아파서 시작한 일, 몸을 살리는 회복의 비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95591</link><pubDate>Mon, 16 Feb 2026 1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955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5314&TPaperId=170955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57/coveroff/k5521353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5314&TPaperId=170955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체온회복력 - 아파서 시작한 일, 몸을 살리는 회복의 비밀</a><br/>박희연 지음 / 바이북스 / 2026년 02월<br/></td></tr></table><br/>&nbsp;가뜩이나 운동을 멀리하던 내가 오십 대 중반이 되자, 건강은 더 이상 ‘관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키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이 되었다. 예전에는 며칠 무리해도 금세 회복되었지만, 이제는 한 번 컨디션이 떨어지면 오래 간다. 손발이 차고,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으며, 이유 없이 짜증이 쌓이는 날이 잦아졌다. 휴양지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와도 하루는 꼬박 쉬어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쯤 되니 건강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가 된다. 그런 시점에 읽은 『체온회복력』은 단순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몸은 따뜻한가.”  &nbsp;  저자 박희연은 두 차례 유산의 후유증과 오랜 통증, 암 투병, 불면과 우울을 지나며 몸의 근본 조건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붙잡은 실마리는 다름 아닌 ‘체온’이다. 체온이 1도만 떨어져도 면역력은 크게 요동친다는 말처럼, 몸이 차가워지면 혈액과 림프의 순환이 둔해지고, 순환이 막히면 결국 면역과 회복력도 함께 떨어진다. 설명 자체는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생활의 기본에 가까운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나 중년의 몸으로 읽으니 그 익숙함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늘 무엇을 더 먹을지, 어떤 영양제를 추가할지 고민하면서도, 정작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가장 단순한 원칙은 소홀히 해 온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br>책은 체온 회복을 위한 네 가지 축을 제시한다. 따뜻함, 수면, 순환, 그리고 스트레칭이다. 배와 하복부를 따뜻하게 하는 습관, 깊은 잠을 위한 환경 만들기, 굳은 근육을 풀어 주는 스트레칭, 과하지 않은 운동. 특별한 비법이라기보다 꾸준함을 요구하는 생활 태도에 가깝다. 읽다 보면 “이 정도야 알고 있지”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나는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알고 있다는 사실과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종종 ‘알고 있다’는 감각 속에서 안심할 뿐, 실제로는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nbsp;  마침 최근 다녀온 단체 연수에서 이 책의 내용과 묘하게 겹치는 경험을 했다. 평소 혈압과 비만 등 성인병으로 고생하던 한 동료가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오랫동안 즐겨 먹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상의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식단을 바꾸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 위주로 식사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보면 그는 유난히 음식을 가려 먹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분명했다. 20년째 몸에 이로운 음식만 섭취한 결과, 성인병 증상이 모두 사라졌고 6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체온회복력』의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체질이 다르면 필요한 음식과 관리법도 다르듯, 몸의 회복력 역시 각자의 조건에 맞게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이 좋다는 방법을 무작정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게 돌보는 일이다. 저자가 강조하듯 회복의 주체는 외부의 처방이 아니라 자기 몸이다.  &nbsp;  책에 소개된 다양한 회복 사례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계단을 오르지 못하던 노인이 다시 걷기 시작하고, 오랜 불면에 시달리던 이가 숙면을 되찾으며, 요실금과 전립선 문제로 고통받던 이가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은 거창한 기적이라기보다 생활의 방향을 바꾼 결과로 그려진다. 체온을 올리고 순환을 돕는 습관을 꾸준히 이어가자 몸이 서서히 반응했다는 이야기다. 속도는 느릴지라도 방향이 맞으면 몸은 응답한다는 믿음이 책 전반에 흐른다. 이를 실현할 방법으로 직접 개발하여 특허를 획득한 온열 매트, 팥 찜질 팩, 좌훈음파 운동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nbsp;  다만 아쉬움도 남는다. 건강을 회복한 사례들이 책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독자의 집중을 다소 흩트리는 인상을 준다. 이 책이 엄밀한 학술 이론서라기보다 저자의 실천 경험과 현장 사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보다 밀도 있는 논증이나 체계적 분석을 기대한 독자라면 유사한 사례의 반복에서 약간의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아무리 유익한 건강 회복의 팁이라도 잦은 반복은 신선함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nbsp;  또한 저자가 ‘들꽃잠’이라는 브랜드로 건강 회복 관련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이 순수한 경험담을 넘어 자신의 사업 철학과 제품 활용 방식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기능을 일부 겸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독자에 따라 실천적 안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다소 상업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nbsp;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십 대를 지나는 필자에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건강은 약 하나로 해결될 문제도, 단기간의 다이어트로 끝날 일도 아니다. 체온을 지키는 일,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선택하는 일, 잠을 제대로 자는 일은 결국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체온회복력』은 새로운 유행을 제시하는 책이라기보다, 건강한 삶의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권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기본은 생각보다 깊다.  &nbsp;  연수에서 만난 동료의 변화와 이 책의 메시지를 겹쳐 보며 깨닫는다. 건강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신호를 존중하는 작은 선택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따뜻함을 회복하는 일은 단순히 체온을 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중년 이후의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지탱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속도를 내기보다 방향을 점검할 나이다. 그 방향의 출발점에 ‘따뜻한 몸’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일러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57/cover150/k55213531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965780</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딱~! 한 가지만 바꿔보자 인생 - [관성 끊기 - 반복된 문제를 부수는 최소한의 행동 설계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85844</link><pubDate>Wed, 11 Feb 2026 18: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858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5589&TPaperId=170858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15/12/coveroff/k9121355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5589&TPaperId=170858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관성 끊기 - 반복된 문제를 부수는 최소한의 행동 설계법</a><br/>빌 오한론 지음, 김보미 옮김 / 터닝페이지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50대 후반으로 접어드니 ‘변화’라는 단어만 봐도 어깨가 먼저 굳어온다. 젊을 때야 뭐든 마음먹으면 될 것 같았지만, 이제는 마음먹는 것 자체가 이미 에너지 소모다. 관성이라는 놈은 나이를 먹을수록 중력 가속도처럼 세진다. 출근하자마자 마시는 커피 한 잔, 늘 같은 위치의 지하철 탑승구, 괜히 습관처럼 켜는 뉴스 채널. 특별히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요즘 잘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태다. 그런 중년에게 이 책은 인생을 바꾸라며 소리치지 않는다. “지금 하던 것 중에서 하나만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묻는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 요구라면 일단 앉아서 들어볼 마음이 생긴다.  &nbsp;  이 책은 자기계발서치고는 목소리가 크지 않은 편이다. 왜 인생이 이렇게 되었는지 따지지도 않고, 어린 시절의 상처나 성격 결함을 굳이 불러내지도 않는다. 대신 “그래도 가끔은 괜찮았던 적 있지 않았나요?”라고 묻는다. 늘 미루다 우연히 일을 일찍 끝낸 날, 늘 짜증 나던 회의에서 이상하게 조용히 넘어간 순간. 저자는 그런 예외의 순간을 집요하게 붙잡는다. 문제를 이해하는 데 반평생을 써온 중년에게 이 접근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이해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인생은 별로 안 바뀌었기 때문이다.<br>책의 주장은 일관되게 단순하다. 설명은 줄이고 행동을 바꾸라는 것이다. 해석은 그대로 둔 채 반응만 살짝 어긋나게 해보라는 이야기다. 늘 할 말을 참았다면 한번 말해보고, 늘 따졌다면 이번엔 그냥 넘겨보라는 식이다. 물론 말은 쉽다. 반세기 동안 굳어진 행동 하나를 비트는 게 어디 쉬운가. 허리를 삐끗하고 나서야 자세를 고치는 것처럼, 관성은 늘 통증과 함께 깨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걸 몰라서 안 했겠나” 싶은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nbsp;  그럼에도 이 책이 덜 얄밉게 느껴지는 이유는 완벽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 새 인생을 살라고 하지도 않고, 새벽 다섯 시 기상이나 인생 목표 재설정 같은 잔인한 주문도 없다. 방 전체를 치우지 못하겠으면 책상 위 볼펜 하나만 다른 곳에 놓아보라는 정도다. 오프라 윈프리가 이 책을 두고 “사람을 훈계하지 않고 움직이게 만든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던 김 부장 같은 중년에게 훈계는 이미 과다 복용 상태다.  &nbsp;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 역시 극적이지 않다. 부부 갈등에서 늘 변명부터 하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아무 말 없이 상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경우, 직장에서 상사의 지적을 들을 때 자동으로 반박하던 사람이 메모만 하며 끝내는 선택, 운동을 미루던 사람이 헬스장 등록 대신 집 앞을 10분만 걷는 행동으로 시작하는 장면, 불안해질 때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사람이 잠시 창밖을 보며 숨을 고르는 순간, 가족 모임에서 늘 말이 많아 분위기를 흐리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판단을 보류하고 질문만 던져보는 경우들이다. 저자는 이런 사소한 어긋남이 자동화된 패턴에 균열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를 깊이 이해해서가 아니라, 문제가 잠시 멈췄던 방식을 다시 써먹음으로써 말이다.  &nbsp;  다만 아쉬움도 분명하다. 행동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는 논리는 매력적이지만, 세상일이 늘 개인의 선택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중년은 이미 몸으로 배웠다. 직장은 여전히 답답하고,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 책에 나오는 사례들 역시 대체로 아직 선택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무리 다르게 행동해도 결과가 비슷한 날들, 즉 관성을 비틀 여지조차 없는 상황에 대한 성찰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읽다 보면 변화하지 못한 책임이 다시 독자에게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안 바뀌는 건 결국 당신이 덜 바꿨기 때문 아니냐”는 뉘앙스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nbsp;  그런데도 책을 덮고 나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정말 우리는 모든 걸 이해해야만 바꿀 수 있었던 걸까. 이해하느라 바쁘기만 했지 사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건 아니었을까. 인생을 통째로 바꾸라는 말에는 이제 웃음부터 나오지만, 오늘 하던 것 중 하나쯤은 다르게 해보라는 제안에는 괜히 뜨끔해진다. 결국 이 책이 중년의 삶을 단번에 뒤집어 놓지는 않는다. 대신 반세기 동안 켜켜이 쌓인 관성을 살짝 긁고 지나간다. 그 금이 크게 갈라질지, 그냥 잔흔으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여기까지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균열쯤은 “그래, 이 나이에 이 정도면 선방이지” 하고 한 번쯤 감내해볼 만하지 않을까.  &nbsp;  #터닝페이지 #관성끊기 #행동변화 #자기계발 #문제인식부터 #덜외롭자면_변화해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15/12/cover150/k9121355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151231</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네 잘못 아니야 뇌 잘못이야 -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 인류가 나아지지 못하는 7가지 이유와 그럼에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73803</link><pubDate>Thu, 05 Feb 2026 2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738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5915&TPaperId=170738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68/54/coveroff/k5521359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5915&TPaperId=170738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 인류가 나아지지 못하는 7가지 이유와 그럼에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a><br/>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01월<br/></td></tr></table><br/>&nbsp;우리는 변하고 싶다는 말을 참 쉽게 한다. 새해만 되면 어김없이 결심을 다짐하고, 삶이 꼬이는 순간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엔 진짜야”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삶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늘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한숨만 거듭 쉬게 된다. 슈테판 클라인의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원제: 왜 변화는 이토록 어렵고, 어떻게 가능해지는가)』는 바로 이 익숙한 좌절의 지점에서 독자를 붙잡아 세운다. 그리고 묻는다. “왜 변하지 못했는지를 따지기 전에, 왜 변화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은 있는가?”  &nbsp;  이 질문에 은근히 마음이 찔린다. 우리는 보통 변하지 못하면 자책하며 자신을 몰아붙인다. 의지가 약해서 그렇고, 절실하지 않아서 그렇고, 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결론을 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익숙한 자기 비난의 방향을 슬쩍 틀어 준다. 클라인은 변화의 실패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뇌과학과 심리학 연구를 들이밀면서 인간이 애초에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변화를 꺼리는 건 성격 탓이 아니라 기본 설정값에 가깝다는 이야기다.<br>단일 기관으로서 신체 에너지의 무려 20%를 소모하는 우리의 뇌는 새로운 가능성보다 익숙한 반복을 좋아한다. 이미 해본 행동, 이미 살아 본 방식이 훨씬 적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반대로 변화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잘 될 수도 있지만, 망할 수도 있다. 뇌 입장에서는 굳이 모험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기존의 습관을 깨려는 순간, 괜히 피곤해지고 귀찮아진다. “오늘은 그냥 접고 내일부터 하자”라는 생각이 스르르 올라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걸 알고 나면 그동안 자신에게 던졌던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을까”라는 질문이 조금은 우스워진다. 아,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어진다.  &nbsp;  문제는 우리가 이 사실을 자주 까먹는다는 데 있다. 알면서도 못 하는 자신을 못 견뎌 한다. 그래서 더 굳게 다짐하고, 더 독하게 마음먹으려고 한다. 하지만 클라인은 오히려 그런 태도가 변화를 더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변화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자동화된 습관에 의해 굴러간다. 기상 시간, 식사 패턴, 일하는 방식, 쉬는 방법까지 대부분은 ‘늘 하던 대로’다. 여기에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기 인식, 가족과 조직이 기대하는 역할,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까지 얹히면 개인의 변화는 금세 제자리로 끌려온다.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삶 전체가 원래 방향으로 계속 밀고 있기 때문이다.  &nbsp;  그래서 이 책은 거창한 변화 계획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선언 대신, 아주 작은 이동을 반복하라고 말한다. 자신과 싸우기보다 환경을 조금 손 보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면 의지가 약해서 운동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운동화가 눈에 안 띄는 자리에 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과거로의 회귀를 실패로 취급하지 말라고 말한다. 변화는 직선 코스가 아니라 앞으로 갔다가 뒤로도 오고 옆길로도 새는 곡선에 가깝다. 중요한 건 한 번에 성공하는 게 아니라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nbsp;  이 책을 읽고 나면 묘한 안도감이 남는다. 그동안 변하지 못했던 이유가 비로소 설명되기 때문이다. 더 굳게 마음먹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 조금 덜 자신을 몰아붙여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사소한 방향 전환 하나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 당장 달라져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는다. 변화는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문제라는 점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변화에 성공한 사람들의 화려한 무용담이 아니라 늘 작심삼일을 반복해 온 우리 모두를 위한 변화의 이야기다.  &nbsp;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교실 풍경을 떠올렸다. 남자고등학교 교사로서, 우주 정복보다 더 어렵다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 길들이기와 학업 향상을 눈앞에 둔 학생들을 매일 마주한다. 밤늦게 게임 하느라 수업 시간마다 졸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 지각을 덜 하고, 숙제를 늘 안 해 오던 아이가 가끔이라도 내밀듯 제출하면 우리는 속으로 물개박수를 친다. 겉으로는 “이게 뭐 대단하냐” 하고 웃어넘기지만, 그 한 걸음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변하지 않는 건 게을러서가 아니다. 이미 굳어진 리듬과 환경 속에서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들에게 대단한 각오 대신 오늘보다 딱 5분만 빨리 잠자리에 들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말이 어설픈 위로나 포기가 아니라, 인간을 제대로 이해한 데서 나온 가장 현실적인 조언임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nbsp;  #어크로스 #뇌는어떻게변화를거부하는가 #슈테판클라인 #네잘못아니야뇌잘못이야 #뇌도먹고살아야지 #뇌과학 #책추천 #책리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68/54/cover150/k5521359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685403</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달리기 인류 - [달리기 인류 - 인류학의 퓰리처상 ‘마거릿 미드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49389</link><pubDate>Tue, 27 Jan 2026 1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493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030024&TPaperId=170493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82/64/coveroff/k06203002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030024&TPaperId=170493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리기 인류 - 인류학의 퓰리처상 ‘마거릿 미드상’ 수상작</a><br/>마이클 크롤리 지음, 정아영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09월<br/></td></tr></table><br/><br>요즘 우리 주변에서 달리기는 취미를 넘어 하나의 생활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기록을 인증하고 루틴을 공유하며 함께 달릴 사람을 모으는 일이 낯설지 않고, 주말마다 크고 작은 대회가 열리며 도시의 리듬 자체가 달리기에 맞춰 움직이는 듯한 순간도 잦다. 이제 달리기는 “왜 달리느냐”보다 “어떻게 오래, 더 잘, 더 즐겁게 달리느냐”라는 지속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이 책은 이런 흐름을 흔히 기대하는 달리기 서적과는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훈련법이나 기록 향상 요령을 정리한 안내서가 아니라, 세계 장거리 달리기를 사실상 지배하는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삶과 감각을 내부에서 관찰한 생생한 기록이다. 달리기를 ‘기록의 언어’가 아니라 ‘문화의 언어’로 읽게 만드는 책이다.  &nbsp;  책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세계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늘 선두를 차지하는데, 그 압도적 강세는 어디서 오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 크롤리는 인류학자로서 15개월 동안 아디스아바바에 머물며 선수들과 함께 먹고 자고 훈련한다. 그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국제 수준의 러너이기에, 관찰자의 거리감과 달리는 몸의 감각을 함께 지닌 채 현장에 들어간다. 새벽 3시 도심 러닝부터 숲 훈련, 산지 캠프와 지역 대회까지 직접 몸을 보탠다. 이 책이 기록 향상서와 갈라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독자는 숫자와 프로그램이 아니라 달리기가 한 사회 안에서 어떤 믿음과 규칙, 감각으로 구성되는지를 먼저 만나게 된다.  &nbsp;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잘 달리는 비결’을 내심 기대하는 독자의 욕망을 교묘히 비껴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러너라면 페이스 전략, 심박 구간, 인터벌, 영양 관리 같은 과학적 용어에 익숙하다. 데이터 기반 훈련이 달리기 문화를 확장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크롤리가 마주한 에티오피아의 달리기는 그런 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힘들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운동 능력을 개인 내부의 잠재력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 ‘에너지’는 사람들 사이를 흐르는 것으로 이해된다. 공유되고, 흘러 다니며, 때로는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다.  &nbsp;  이 인식은 곧 훈련 방식으로 이어진다. 혼자 달리기는 건강에 좋지만 변화는 함께 달릴 때 일어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대열에서 선두를 번갈아 맡는 행위는 단순한 로테이션이 아니라 타인의 부담을 대신 짊어지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누군가의 발을 따른다”는 말 역시 기술적 드래프팅을 넘어, 타인의 기세와 리듬을 받아 달리는 행위로 읽힌다. 달리기가 개인의 의지와 체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들의 언어로 구체화된다.<br>이 대목은 한국의 달리기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요즘 크루 러닝이 늘어나는 이유는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함께 뛰면 페이스가 안정되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며, 초보자도 달리기의 언어를 더 빨리 배운다는 경험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 기록보다 과정이 오래 남는 날의 충만함,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받쳐주는 집단적 리듬이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다는 사실을 많은 러너가 체감한다. (사실 신호가 꺼져가는 횡단보도조차 뛰어 건너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런 표현을 하자니 참 멋쩍다) 이 책은 이런 경험을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문화적 실천으로 해석하며, 함께 달리기가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nbsp;  환경을 대하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에게 장소는 배경이 아니라 거의 동료에 가깝다. 특정 장소를 찾아가며 “공기가 특별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고도나 산소 같은 물리적 조건이자 그곳의 분위기와 몸의 감각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그들은 일부러 험한 지형을 찾아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재미를 위해 그런 길을 택하기도 한다. 숲에서는 지그재그로 달리며 나무 아래를 숙여 지나가고, 선두가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라는 코치의 말은 이 책의 정서를 압축한다. 달리기는 숫자로 관리되기도 하지만 몸과 타인, 장소가 엮여 만들어지는 경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감각은 한국의 달리기 문화에서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같은 거리를 달려도 강변, 도심, 트랙, 산책로는 전혀 다른 몸의 반응을 만든다. 대회 역시 코스가 곧 이야기이고 장소가 곧 경험이다. 이 책은 “어디서 뛰느냐”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달리기의 리듬과 태도를 형성하는 조건임을 설득한다.  &nbsp;  또 하나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달리기는 과학인가, 예술인가”이다. 데이터와 장비는 훈련을 분명 효율적으로 만들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이 중시하는 것은 경험으로 체화된 감각과 몸이 먼저 아는 지식, 그리고 때로는 합리로 설명되지 않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선수가 “신은 내가 준비되었을 때를 안다”고 말하는 장면은 승패와 기록 중심의 시각을 흔든다. 이는 한국의 달리기 문화가 기록과 인증에 지나치게 매달릴 때, 달리기가 삶을 확장하는 통로인지 아니면 소진의 장이 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에티오피아 러너들을 낭만화하지는 않는다. 순위에 들어 상당한 금전적 보상을 받는 성공하는 소수와 달리 다수는 흩어지고 멈춰 선다. 저자는 그 현실을 끝까지 정중하게 바라보며 하나의 정답으로 꿰어 맞추지 않는다. 달리기 역시 숫자와 원리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사의 방식으로 보여주기에 이 책은 더욱 믿음직하다.  &nbsp;  달리기 유행이 유행을 넘어 문화로 남기 위해서는 깊이가 필요하다. 기록과 감각, 혼자 달리기와 함께 달리기, 효율과 의미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 책은 그 균형의 방향을 조용히 가리킨다. 달리기는 개인의 성취이자 공동체의 리듬이며, 과학이자 설명되지 않는 믿음을 품은 행위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의 세계는 그 복합성을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nbsp;  “흔히 공동체의 에너지는 개개인의 에너지를 합친 것보다 크다고 말한다. 에티오피아의 달리기 문화가 그랬다. 선수로서의 삶에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기에, 에티오피아 달리기의 최정상에 오른 선수들이 그토록 압도적 기량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발을 따라 뛰고, 모범을 보고 배우거나 직접 부딪히며 익히는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달리기를 가능케 하는 건, 관리와 규율은 물론 그 바탕에 있는 호기심과 모험심이었다.” (380쪽)   &nbsp;  결국 이 책은 “동아프리카 선수들은 왜 강한가”라는 질문에 시원스레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달리기를 이루는 몸, 관계, 장소, 믿음, 불확실성이 어떻게 얽혀 하나의 문화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더 빨라지기보다 더 깊게 달리는 법을 묻는 이 책은, 지금 우리의 달리기 열풍이 삶의 문화로 남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독자에게 조용히 건넨다. 답은 각자의 달리기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nbsp;  #한달한권할만한데 #온라인독서모임 #서해문집 #달리기인류 #달리기열풍 #인류학과러닝 #마거릿미드상수상작 #이제부터나도달려야하나]]></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82/64/cover150/k06203002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9826411</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끝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교육을 위하여 - [인공지능이 답할 때 교육은 무엇을 묻는가 - AI가 채우지 못한 교육의 영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44549</link><pubDate>Sun, 25 Jan 2026 14: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445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5362&TPaperId=170445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61/35/coveroff/k8521353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5362&TPaperId=170445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공지능이 답할 때 교육은 무엇을 묻는가 - AI가 채우지 못한 교육의 영토</a><br/>함영기 지음 / 에듀니티교육연구소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nbsp;이 책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안내하는 실용서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너무도 능숙하게 답을 생산해 내는 시대에, 교육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를 묻는 사유의 기록이다. 그 질문은 미래 담론의 언어로 포장되지 않고, 교실이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교사라는 현실의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더욱 무게감이 느껴진다.  &nbsp;  기본적으로 저자의 시각에 깊이 공감한다. 인공지능을 경계의 대상으로만 보지도 않고, 반대로 만능의 해결사로 떠받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인공지능의 도입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영어 교사인 나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춰 AI 기반 영어 학습 프로그램, 자동 첨삭, 생성형 작문 도구를 수업과 평가에서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학생 개별 수준에 맞는 연습 문제를 제시할 수 있고, 반복 학습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효과가 있다. 교사에게도 수행평가 채점이나 세부능력 특기사항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도움을 준다.  &nbsp;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 앞에서 나는 늘 뒤따라가는 위치에 서 있다. 불과 몇 년 전 코로나 시국에 비대면 수업을 위해 줌과 구글 클래스를 배우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새로운 연수가 끝날 즈음이면 또 다른 기술이 등장하고,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다음 단계가 요구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대입 진학을 앞둔 학생들의 영어 과목을 맡아 해마다 바뀌는 교재에 적응해야 하고,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으로 여러 과목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현실까지 더해지면서 수업 준비의 피로도는 분명히 높아졌다.  &nbsp;  이 책은 그러한 교사의 불안과 피로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 선 이들은 교사들이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진단이 아니라, 오랜 시간 교단을 지켜 온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말처럼 느껴진다. 평생 자기의 경험과 축적된 수업 감각으로 아이들과 호흡해 온 교사에게 인공지능은 혁신인 동시에 위협이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학생이 나보다 먼저 AI에게 질문하고, 더 빠르고 친절한 답을 들고 오는 장면을 여러 차례 마주했다. 그 순간 교사의 말은 느려지고, 설명은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답을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배움이 일어나는 시간을 지키는 존재’로서 교사의 자리를 다시 묻는다.  &nbsp;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교육의 중심이다. 인공지능은 오답의 패턴을 분석할 수는 있어도, 학생이 답을 적지 못한 채 멈칫거리는 이유까지 이해하지는 못한다. 영어 문장을 쓰다 말고 연필을 내려놓는 침묵, 발표를 앞두고 시선을 피하는 불안, 정답은 맞혔지만 이유를 설명할 자신감이 없어 고개를 숙이는 학생의 마음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학습을 포기하게 되는 순간의 심정, 그리고 그런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의 안타까움까지 인공지능이 대신 헤아릴 수는 없다. 영어를 포기한 학생들이 여전히 다수인 교실에서 그런 장면을 수없이 지켜봐 온 교사에게, 이 책은 교육의 본질이 여전히 관계와 기다림에 있음을 교사에게 다시 돌려준다.  &nbsp;  특히 33화에서 언급한 ‘정답을 주는 AI, 질문을 잃은 교실’이라는 문제의식은 지금 영어 수업의 현실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생성형 AI는 언제든 유창하고 세련된 영어 문장을 만들어 낸다. 학생들은 더 이상 서툰 문장을 붙잡고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틀린 문장을 고치며 배우던 시간과 어색한 표현을 두고 웃음이 오가던 교실의 풍경이 사라질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사람은 원래 실수를 반복하며 배운다. 틀리고, 고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배움은 서서히 단단해진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기다림의 교육학’은 느린 교실을 미화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배움이 실제로 일어나는 시간을 지키기 위한 분명한 선언이다.  &nbsp;  이 책의 독창성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드러난다. 저자는 ‘장미’라고 이름 붙인 인공지능과 실제로 대화하며 글을 써 내려간다. 인공지능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때로는 거부하고 수정하며 자신의 언어를 끝까지 밀고 간다. 이 과정은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다.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되 판단과 선택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는 점을 서사적으로 증명한다. 이는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 그리고 AI가 맺어야 할 관계에 대한 하나의 모델처럼 읽힌다.  &nbsp;  50대 교사로서 나는 여전히 새로운 기술 앞에서 서툴다. 연수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가르치는 사람인지 배우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느리게 따라가는 교사의 역할이 분명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 모든 기능을 완벽히 익히는 사람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고 질문의 방향을 잡아 주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이다. 인공지능 도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도입의 이유와 방식에 대해 끝까지 묻는 사람으로 남는 일이다.  &nbsp;  저자의 교육 전문가로서의 깊은 이해와 통찰이 돋보이는 이 책은 미래 교육의 청사진이나 인공지능 활용 팁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교사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던져야 할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가, 이 교실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많은 답을 내놓는 시대일수록,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이 책을 덮으며, 나 역시 느리게 걷더라도 그 질문만은 끝까지 붙들고 있는 교사로 남고 싶다고 다짐하게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61/35/cover150/k8521353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613577</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 인구 이러다 다 줄어~!! - [인구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 세상의 모든 변화를 결정하는 인구의 경제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34159</link><pubDate>Tue, 20 Jan 2026 22: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341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99178&TPaperId=170341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40/3/coveroff/89012991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99178&TPaperId=170341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구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 세상의 모든 변화를 결정하는 인구의 경제학</a><br/>딘 스피어스.마이클 제루소 지음, 노승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br/></td></tr></table><br/><br>&lt;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gt;  &nbsp;  이 책은 우리가 오랫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믿어 온 인구 이야기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세계 인구가 계속 늘어서 언젠가 100억 명을 넘을 거라는 통념 대신, 머지않아 정점을 찍고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충격은 가볍지 않다. 전 세계 출산율이 점점 ‘인구수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nbsp;  저자들의 계산은 놀라울 만큼 직관적이다. 만약 전 세계 평균 출산율이 유럽처럼 여성 한 명당 1.5명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한 세대 뒤 태어나는 아이 수는 지금의 연간 약 1억 3,200만 명에서 9,900만 명으로 약 25% 줄어든다. 이 흐름이 일곱 세대만 이어져도 세계 인구는 지금보다 약 87% 감소한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인류의 80%는 이미 태어났고, 앞으로 태어날 사람은 약 300억 명뿐”이라는, 거의 멸종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한다.  &nbsp;  이 이야기가 너무 과장되게 들린다면 저자들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라고 말한다. 지금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출산율이 낮은 나라에서 살고 있고, 4분의 1은 출산율이 1.25도 안 되는 국가에 살고 있다. 한 번 출산율이 1.9 아래로 떨어진 나라는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런 현상은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세계 평균 출산율이 이미 유지선 아래로 내려갔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추정치일 뿐이라 하더라도 이 흐름의 방향만큼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nbsp;  82억 명이 넘는 인류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인구 과잉’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기후위기 뉴스와 꽉 막힌 출근길을 떠올리면 인구 증가는 부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대비해야 할 위험은 인구 과잉이 아니라 ‘급격한 감소’다. 지난 200년 동안 태어나는 신생아 수는 장기적으로 줄어들어 왔고 이미 절반이 넘는 나라에서 출산율은 유지선 아래로 내려갔다. 그동안은 사망률, 특히 영아 사망률이 크게 낮아지면서 인구가 계속 늘었지만 이 흐름도 언젠가는 정점을 찍고 급격한 하락으로 바뀔 수 있다. 원서 제목에 들어간 ‘스파이크(spike)’는 바로 이 최고점과 그 뒤에 이어질 급락을 뜻한다.  &nbsp;  저자들의 핵심 주장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사람이 많을수록 아이디어도 많아진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낸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이 쌓인 결과이며, 저자들은 이를 ‘궁극의 재생 가능 자원’이라고 부른다.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기술 발전, 제도 개선, 의학 연구, 환경 복원의 속도 자체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더 나쁜 환경에서 살게 될 위험이 커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인구 감소가 아니라 ‘안정’이며, 그 출발점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다.  &nbsp;  여기서 책은 또 하나의 흔한 생각에 의문을 던진다. “인구가 줄면 기후에도 도움되지 않을까?”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인구 감소 효과가 나타날 즈음이면 이미 늦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지금 인구와 ‘정점 인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인구가 줄면 대기 중 탄소를 제거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망가진 생태계를 복원할 사람과 역량도 함께 줄어든다. 사람이 많을수록 생기는 아이디어와 노동, 그리고 축적된 혁신이 줄어들면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내는 동력도 약해진다는 이야기다.  &nbsp;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이를 덜 낳게 되었을까.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겠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설명은 비교적 단순하다. 삶이 풍요로워지고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아이를 키우는 데 따르는 기회비용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이를 낳는 일은 점점 ‘덜 매력적인 선택’이 되었다. 예전과 달리 아이가 없거나 적게 낳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많아졌고, 특히 Z세대는 이를 가장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nbsp;  그렇다면 인구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안정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단순히 지원금을 더 주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아이 키우는 일이 사회, 문화, 경제, 의료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뒷받침되는 구조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되는 일이 끝없는 고통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사회의 틀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다만 이 책은 이런 해법의 한계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강제로 출산을 늘리려는 정책은 효과가 없었고, 미온적인 장려 정책 역시 출산율을 눈에 띄게 끌어올린 사례는 많지 않다. “더 큰 꿈을 꾸자”고 말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쓰는 시간이 다른 목표와 욕망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어떻게 해도 하루는 여전히 24시간뿐이기 때문이다.  &nbsp;  그래서 비교적 구체적인 대안으로 강조하는 것이 ‘아버지의 더 적극적인 참여’다. 남성이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면 여성의 부담이 줄고 출산 의향도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만능 해법은 아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아버지의 육아 시간은 크게 늘었지만 가족 규모는 오히려 더 작아졌다는 연구도 많다. 결국 예산이나 제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 즉 사람들의 가치관과 우선순위, 삶의 목표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  &nbsp;  출산율 하락이 구조적인 흐름일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민 확대나 자동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런 방법들은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태어나는 아이 수가 줄어드는 흐름 자체를 뒤집지는 못한다. 이 책이 목표로 삼는 것은 인구를 다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선택이 지나친 개인적 희생이 되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비용과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nbsp;  - 한국 사회에 주는 의미이 책의 문제의식은 한국에서 가장 극단적인 모습으로 현실이 되어 있다. 한국의 초저출산은 단순한 인구 문제를 넘어 이 책이 경고하는 ‘급감 이후의 세계’를 이미 앞서 겪고 있는 사례에 가깝다. 출산율 0.x 라는 숫자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거의 모든 면에서 불리한 선택이 되어 버린 사회의 균형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nbsp;  이 책의 시선으로 보면 한국의 문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세대’가 아니라, 아이를 낳는 순간 삶의 선택지가 급격히 줄어드는 구조 자체가 문제다. 긴 노동시간, 경력 단절, 과도한 교육 경쟁, 불안정한 주거 환경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되는 순간 삶의 가능성이 한꺼번에 좁아지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는 책이 말하는 핵심 충돌, 즉 부모 역할이 다른 삶의 목표를 잠식해 버리는 문제가 가장 극단적으로 굳어져 있는 사례다.  &nbsp;  그래서 이 책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출산을 장려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왜 아이를 안 낳느냐”가 아니라, “아이를 낳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를 우리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설계해 본 적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하는 한, 출산율 숫자를 잠시 흔들 수는 있어도 어떤 지원 정책도 흐름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은 이 책의 결론을 가장 냉정하게 증명하고 있는 시험대다. 인구 감소는 저절로 멈출 리도 없고 공포만으로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분명하다. 아이를 낳는 일이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감당하는 자연스러운 삶의 경로가 되도록 돌봄과 노동, 교육과 시간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상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한다.  &nbsp;  #경제학 #인구경제학 #인구학 #인구데이터 #인구는거짓말하지않는다 #리뷰어스북클럽 #인구절벽 #초저출산사회 #인구절벽 #인구야미안해]]></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40/3/cover150/89012991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400370</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인간은 ( ? ) 동물이다. - [인간은 동물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18087</link><pubDate>Tue, 13 Jan 2026 11: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180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5488&TPaperId=170180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83/coveroff/89329254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5488&TPaperId=170180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간은 동물이다</a><br/>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br/></td></tr></table><br/><br>  &nbsp;  저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이름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 이유를 떠올려 보니, 전작 『어두운 시대에도 도덕은 진보한다』를 통해 이미 한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인간이 과연 동물인가라는 흔하지만 매우 오래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신체적으로 보면 분명 동물과 다르지 않은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하고, 판단하고,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 즉 정신은 도대체 어디에 속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저자는 이 질문을 철학자들만의 난해한 사유 실험으로 남겨 두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책임감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 자연이 훼손되는 상황,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갈등과 같은 동시대의 문제들과 이 질문을 밀접하게 연결한다. 결국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연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부터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출발점이다.  &nbsp;  먼저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하는 ‘동물’이라는 개념부터 다시 검토한다. 우리는 흔히 “인간은 동물이지만 특별한 점도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물’이라는 범주 자체가 이미 인간이 만들어낸 분류라고 지적한다. 즉 인간과 동물의 세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이 과연 타당한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몸을 바라보며 자연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사실을 불편하고 낯설게 받아들인다. 이 어색함을 정리하기 위해 우리는 ‘동물적인 것’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것을 떼어 놓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저자는 “내 안의 동물성”을 분리해 따로 바라보려는 시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이미 생명의 세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nbsp;  이러한 문제 제기는 곧바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인간을 자연의 바깥에 세워 두고 자연을 정복하거나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구를 마음껏 사용해도 되는 자원 창고로 여기는 생각이 깔려 있다면, 자연은 점점 언제든 이용 가능한 대상으로만 인식된다. 그 결과 자원을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살아 있는 세계 전체를 인간의 의지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 행성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RDA(Resource Development Administration)라는 초국적 자원 개발 기업을 생각해보라.) 저자가 보기에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인간이 자신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분리된 사고’의 결과이다. 자연을 외부의 물건처럼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그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감염병, 생태계 붕괴, 기후 위기와 같은 형태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nbsp;  책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는 ‘비이성적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인간이 본능이나 감정, 편견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이러한 요소들은 과거의 생존 환경 속에서 형성된 장치로서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반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비이성적 요소가 언제든 다시 표면으로 드러날 수 있으며 실제로 누군가가 이를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포퓰리스트나 극단주의자,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들뿐 아니라 광고나 홍보와 같은 영역에서도 인간의 감정과 편견을 자극하는 기술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저자가 보기에 인간 사회에는 애초부터 비이성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그렇다면 도덕적 진보란 비이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이 악용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nbsp;  과학에 대한 저자의 시선 역시 인상적이다. 거짓 정보와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과학을 믿자”라는 구호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 역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은 하나의 통일된 정답 체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법과 관점을 지닌 여러 학문이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단수라기보다 복수에 가깝고, 더 중요한 것은 과학이 하나의 태도라는 점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하며,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힘을 얻는다. 따라서 “과학이 말했으니 따르라”는 식의 권위주의는 오히려 과학 정신과 어긋난다. 소크라테스를 예로 들며, 진정한 지성은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nbsp;  이러한 논의는 자연의 복잡성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된다. 자연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학적 모델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단순화된 지도와 같다. 지도는 유용하지만 그 자체가 현실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종종 이 지도를 현실 그 자체로 착각하고 이제는 다 알았다고 믿는다. 그 결과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자연을 바꾸기 시작한다. 비료와 농약의 과도한 사용, 무분별한 벌목, 하천 정비, 과도한 개발과 끝없는 소비는 이러한 착각의 산물이다. 저자는 이 방식이 곤충 감소, 항생제 내성균의 확산, 숲과 강의 약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기후 위기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윤리, 즉 조심함과 겸손, 배려를 중심에 둔 윤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을수록 오히려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nbsp;  인간을 시장 속에서 이익만을 계산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 또한 강하게 비판한다. 인간을 결국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모습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며 형성된 존재이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 즉 과학과 도시, 도로와 농업은 어느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의 협력과 연대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인간다움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일 때 비로소 성립한다는 점이다. 이 관점에서 도덕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공동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토대이다. 인간을 효율과 이익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설명은 인간을 지나치게 속물적으로 만드는 해석이라는 것이다.  &nbsp;  양심과 도덕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상화된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 양심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심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망설이게 하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중요하다. 그 불편함이 있기에 우리는 섣불리 밀어붙이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접하는 뉴스 속 사건들 또한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은 신이 아니며, 모든 것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 그 결과는 더 큰 문제로 되돌아온다.  &nbsp;  결국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저자의 결론은 비교적 분명하다. 인간과 자연을 단순히 구분하고 인간을 위에, 자연을 아래에 두는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과학을 절대적 정답을 제시하는 권위로 환원하는 태도 또한 위험하다. 기술 발전을 도덕과 분리한 채 “가능하니 실행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습관은 더욱 위험하다. 저자가 말하는 도덕적 진보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 안에 속한 존재임을 제대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기술과 사회를 보다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생명의 세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며, 그렇기에 더 겸손하게 사고하고 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nbsp;    &nbsp;  #열린책들 #인간은동물이다 #마르쿠스가브리엘 #인간은자연의일부 #결국은동양철학 #자연앞에겸손 #무위자연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93/83/cover150/89329254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938384</link></image></item><item><author>jyooster</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벗겨진 베일 + 제이컵 형; 아픈 영혼들의 콜라보 - [고장 난 영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09822</link><pubDate>Fri, 09 Jan 2026 11: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0247116/170098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55838&TPaperId=170098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2/78/coveroff/89920558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55838&TPaperId=170098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장 난 영혼</a><br/>조지 엘리엇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6년 01월<br/></td></tr></table><br/>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정작 사람을 ‘안다’는 감각이 오히려 흐릿해질 때가 있다. 말은 자주 섞지만 속은 쉽게 드러내지 않고, 관계는 이어져도 일정한 거리가 유지된다. 때로는 너무 정확히 알지 않으려는 태도, 적당히 모르는 척하는 기술이 관계를 굴리는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조지 엘리엇의 「벗겨진 베일(The Lifted Veil)」(1859)과 「제이컵 형(Brother Jacob)」(1864)을 한 권으로 묶어 읽는 경험은 낯설지 않다. 두 작품은 겉으로는 결이 달라 보이지만 끝내 한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진실을 너무 많이 알아도 사람이 부서지고, 진실을 끝까지 피하려 해도 사람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진실이냐 거짓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버티느냐에 있다.  &nbsp;  「벗겨진 베일」에서 ‘베일’은 감춰진 비밀을 덮는 천이라기보다 사람 사이를 버티게 하는 얇은 막, 관계의 완충재에 가깝다. 누군가를 완전히 알 필요도 없고, 끝까지 알아내는 일이 늘 좋지만은 않다. 우리는 대개 상대의 표정과 말투, 말의 결을 보며 “아마 이쯤이겠지” 하며 선을 긋고, 그 선 덕분에 관계는 굴러가며 생활은 유지된다. 주인공 래티머는 어느 순간부터 남의 마음이 읽히는 듯한 능력을 갖게 되는데, 그 능력은 특별함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그를 고립시키는 재난으로 작동한다. 래티머가 보게 되는 것은 영웅적인 진실이나 숭고한 인간성의 핵심이 아니라 상대가 계산하는 순간, 무심한 위선, 자신을 합리화하는 습관, 남을 깎아내리면서도 죄책감은 최소화하려는 마음, 사소하지만 정확히 날카로운 잔인함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특별히 악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더 무섭고, 그래서 더 피하기 어렵다. 래티머의 세계에는 여백이 없다. 이해는 보통 “저 사람도 그럴 사정이 있겠지” 같은 상상력과 여백 위에서 자라지만, 그는 늘 정답을 먼저 본다. 그 결과 관계는 깊어지지 않고 오히려 부서지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가능성은 점점 좁아진다.  &nbsp;  이 작품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기대어 살던 문장을 정면에서 흔들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면 자유로워진다”는 말은 멋있지만, 실제 삶에서 진실은 해방보다 피로와 마비로 이어질 때가 많다. 래티머가 ‘더 많이 알게 됨’으로 얻는 것은 해방이 아니라 무력감이다. 남의 속마음을 알수록 친밀해지는 게 아니라 견디기 어려워지고, 미래를 어렴풋이 예감할수록 선택지가 좁아지고 선택의 의미가 사라진다. 결국 엘리엇은 진실은 언제나 선물인가, 혹시 어떤 진실은 ‘알지 않음’ 덕분에 인간을 인간답게 붙들어 두는 것은 아닌가를 묻는다.  &nbsp;  반면 「제이컵 형」은 분위기가 훨씬 가볍고 현실적인데 그래서 더 씁쓸하다. 주인공 데이비드 포는 더 나은 삶을 원하지만 그 욕망을 실현하는 방식이 문제다. 그는 거짓으로 위장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로 삶을 꾸미는 데 익숙해진다. 여기서 거짓은 거창한 악행이 아니라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넘기기 쉬운 작은 타협에서 시작한다. 한두 번의 핑계, 체면을 위한 과장, 들키지 않을 것 같은 편법 같은 것들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곧 성격이 된다. 이 작품에서 삶의 ‘고장’은 폭발처럼 한 번에 터지는 사고가 아니라 천천히 녹이 슬어 무너지는 방식의 붕괴다. 무너지는 순간은 극적이지 않고 어느 날 문득 “이게 내 삶이었나?” 하고 돌아봤을 때 이미 길이 너무 멀어져 있는 식으로 찾아온다.  &nbsp;  제목 속 ‘제이컵 형’은 데이비드가 지우고 싶은 과거이자 숨겨두고 싶은 진실이며, 동시에 결국 돌아오는 부도수표다. 우리는 종종 “과거를 정리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환경을 바꾸고 관계를 끊고 마음가짐을 새로 하면 정말 새사람이 될 것 같지만, 정리했다고 사라지는 것은 생각보다 적다. 특히 내가 만든 균열은 내가 어디로 가든 따라오고,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응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벌이 아니라 자기기만이 내 삶을 안쪽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거짓은 당장 숨을 쉬게 해주지만 숨을 쉬는 방식 자체를 바꿔 버리며, 어느 순간에는 진실을 말할 능력뿐 아니라 진실을 감당할 체력까지 사라지게 만든다.  &nbsp;  두 작품을 함께 읽을 때 더 선명해지는 것은 ‘진실’이 한 가지 얼굴만 가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래티머에게 진실은 빛이 아니라 소음이며, 남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통찰이라기보다 침입에 가깝다. 반대로 데이비드에게 거짓은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생활 방식이고, 자기기만은 잠깐 버티게 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 삶 전체를 좀먹는 독이 된다. 하나는 과잉, 다른 하나는 회피로 망가진다. 방향은 반대인데 결과는 닮았다. 래티머는 타인의 마음을 너무 많이 알아서 함께 있을 수 없게 되고, 데이비드는 자신의 삶을 너무 많이 꾸며 결국 자기 자신과도 함께 있을 수 없게 된다.  &nbsp;  여기서 조지 엘리엇이 인상적인 지점은 어느 한쪽만 손쉽게 꾸짖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진실만이 구원이다”라고도 하지 않고, “모른 척하는 게 현명하다”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진실과 착각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그 균형이 깨질 때 삶이 어떻게 ‘작동 불능’이 되는지를 도덕 교훈이 아니라 인간의 작동 원리처럼 차분히 드러낸다. 그래서 이 묶음이 남기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무겁다. 진실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겠느냐, 혹은 거짓으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를 묻는다.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의 진실을 모른 척하며 살고, 어느 정도의 거짓을 현실이라 부르며 버틴다. 문제는 그 선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 선이 무너지는 순간이 언제인지이다. 엘리엇의 결정타는 그 무너짐이 대개 요란한 폭발이 아니라 조용한 붕괴로 온다는 점을 끝까지 따라가게 만든다는 데 있다. 작품을 읽고 난 뒤에도 화려한 충격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찝찝함이 남는다. “나는 지금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너무 일상적인 얼굴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br>#한달한권할만한데 #아고라 #독서모임 #조지엘리엇 #영국문학]]></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2/78/cover150/89920558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02781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