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다른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 중에서 소설가 김연수가2009년 5월 <한겨레>에 기고한 ‘그날 하늘에는, 검은 달이 떠 있었다‘라는 글보다 슬픈 글을 나는 보지 못했다. "죽지만 않았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젠 다 틀렸다. 다시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지만, 그 두 세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이제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을 추모하는 그의 글을 다시 읽다가 많은 것들이 떠올라 나는 울었다. - P218
1970년대 죽은 철학자 앨런 와츠라는 ‘지성적 존재‘를운영체제들이 되살렸음을 알려주고 소개한다. 와츠는 변화의 속도가 빨라 혼란에 빠진 서맨사에게 변하는 매 순간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앨런 와츠와 서맨사가 나누는 높은 수준의 교감을 테오도르는 이해할 길이 없다. 사랑하는 이의 ‘변심‘이 아니라 ‘성장‘에 테오도르는 소외된다. - P70
자격증 공부 하다고 유체역학 공식 앞뒤 안보고 암기했었다. 이책을 읽다 머리 속의 기억에서 잊혀졌지만 눈에서 낫이 익는 위대한 교수님들의 이름들과 공식들이 보이며, 기억들이 팝콘처럼 뛰어 오른다. 왠지 책이 재미있어 진다. 헛 공부 한 것은 아니구나하고 생각하며, 기초지식이 얼마 필요한지 다시 한번 인지했다.금융과 유체역학과의 상관관계는 왠지 억지 같았다.
현실과 깊숙이 결속되어 있는 뉴욕의 예술 철학은 당연히 왕이나 귀족이 없는 나라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후원해줄 귀족이 없는 나라에서 예술 활동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려면 당연히 강한 생활력을 갖추어야 한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갤러리, 고객, 에이전트등의 비위를 맞추고 시장의 요구와 자신이 하고 싶은 메시지 사이의 타협점을 찾아내야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프랑스인은 현실과의타협을 거부하는 것이 예술가적 자세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뉴욕대학 에서 들은 교양수업의 예술계 교수님들은 "시장의 요구를 수용하고그 안에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프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라고 누누이 강조하셨다."돈을 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는 말을 남긴 뉴욕 아방가르드의대부 앤디 워홀은 원래 상업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이다. 그는 대중과편집자를 디루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런 능력은 그가 1950년대 들어 예술가로 전향했을 때 가장 큰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자신의 예술 작업 공간을 아틀리에‘ 대신 ‘공장‘이라고 불렀다. -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