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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난 척하는 자에게서 더는 잘난 면이 보이지 않고 
몸을 낮추는 자에게서 더는 흠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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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1-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머큐리 2011-11-01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쿤요...

2011-11-0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쿤요..2 ^^

Bflat 2011-11-02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댓글조차 잘 난 척이 될까봐 다들 몸을 사리는군~~
 

꽃말을 다시 쓰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하지?
이렇게 너에게로의 편지로 인정해준다면...

너의 이름은 무너진 믿음으로 시작해.
순결과 조화라는 말은 잊어줘.

무너짐의 다음은 뭐라고 생각해?
담이 무너진 후엔 두려움이 오고, 두려움이 식기 전에 절망이 오는 거야.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희망의 부재가 비겁한 열등감을 낳고,
열등감에 지친 가능성은 포기를 부르지.
의욕상실로 너덜너덜해진 욕구는 결핍의 충족을 위해 타락과 위선을 일삼고,
보이는 모든 것에 의심의 안경을 쓰게 되는 건
고립을 위한 완벽한 수순일거야.
운명을 탓하는 그 순간부턴
계절을 갈아입는 바람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시선을 들 수 없게 돼.

왜 네가 그런 덤터기를 써야 하냐고?
뗄 수 없는 얼굴 한쪽을 암흑 속에 던져 놓고 미끄러져 내려오던 길,
9월의 따가운 흙먼지와 아지랑이가 피워올린 너를 봤어.

그래, 모든 건 부당한 거지.
공평하지 못한 거야.
네 탓은 아니라 해도 난 널 미워하기로 했어.
세상이 무너져 난 온통 암흑인데
너만은 따뜻한 양지에서 살랑거리고 있더구나.
연분홍빛, 진홍빛
번갈아가며 비아냥거리는 몸짓을
난 참을 수 없다.

너의 이름을 미움이라고 할까?
절망이라고 부를까?
아무래도 원망이 제일 걸맞겠지?

순응하지 못하고 극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 계절에만 널 원망하고
이 계절에만 널 미워할게.

참을 수 없게 빛깔 고운 코스모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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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1 2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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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1 2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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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2 1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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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2 1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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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2 2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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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2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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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1 15: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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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1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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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부턴가 시를 읽지 않는다. 내가 쓴 시조차 읽지 않는다.
그러면서 왜 쓰냐고.
나에게 있어서 시를 쓰는 행위란 일종의 배설과 같은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성에 위배된 감정이 차올라 더는 소화될 수 없을 때 바로 게워내는 현상과도 같다. 그것은 소화액조차 닿을 새 없이 역류하고 마는, 배설에도 끼지 못하는 불쌍하고 미천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세계에서 시란 그런 존재이다. 사족을 붙여 멋있게 장식하여 나를 드러낼 수 있는 통로라면, 그것을 통해 난 멋지게 비상할 수도, 그렇게 자유로운 숨을 틀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연민과 조소로 가득 차, 다른 감정을 느껴볼 여유는 눈곱만큼도 없다. 
언제부턴가 멋진 시집을 책꽂이에 하나 둘 보태는 일이, 무당이 천기누설로 입에 풀칠하는 사명과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시어 하나하나에 스며든 인생은 왜 이다지도 오금 저리게 하는지, 그들의 삶을 온전히 빙의로 읽고 만다. 더이상 타인의 삶이 아닌 버거운 짐이 되어 내 어깨를 누르고 가슴을 짓이기는 업(業)이 되어버린다. 길지 않은 지면 한 장에 난 회복 불가능한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다.
고독을 읽으면 난 세상 끝 암흑 속으로 던져지고, 이별을 읽으면 심장이 둘로 쪼개지는 아픔에 비명을 질러야 한다.
나는 왜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계속 허우적대는가.
누군가 했던 말처럼, 내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틀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 틀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또 몸부림쳐야 한다.
감상(感傷)은 또 하나의 시를 흘리고, 난 그렇게 타인과 나를 혼동하면서도 끝까지 아니라고 부정하는 나를 찾아야만 한다.
언제부터 시가 나의 업이 된 걸까.
아, 슬프고도 잔인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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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2 17: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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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3 1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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