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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잊게 해줄 줄 알았다
멀어지게 해 줄줄 알았다 
말끔히 더께를 가셔갈 줄 알았다
믿었는데
믿고 싶었는데
도리어 잔인한 바람은 널 자꾸 불러온다
날개 밑에 슬며시 품어 온 아지랑이
부드러운 깃털은 예리한 날보다도 더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아득한 현기증
더듬어 더듬어 품에 꼭 안은 너의 환영(幻影)은
여전히 뜨겁고도 차갑고
이젠 정말 모르겠다
그리움도 미련도 다 내 것이 아니길 
모든 걸 너에게 다 벗어놓고 싶다
봄은 아득함으로
아득함은 봄으로
춤추는 계절의 마취제
잔인하다 봄의 향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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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익숙해지기 전에
조금씩 떠나야 한다

푸른 담쟁이 내리고 발가벗은 담벼락은
그리움을 못 이긴 별빛 추억만이 잡초처럼 무성하고
아스라한 별빛을 좇던 눈물은 그저
녹 빛에 녹 내 가득하다

이별...
푸르렀던 웃음 모두 산화되기 전에
이별
이별
이별 

 

 

겨우내  떨칠 수 없어 버거웠던 짐들을 이젠 그만 벗어 버리고 싶다.
결국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이란 것에 변명도 한 자락 묻혀서 정당화하고 위무해보는 것이다.
여기저기 걸친 거미줄 같은 관계 몇 가닥을 끊으면 홀가분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려면 어때.
결국, 나 아닌 그 누가 바꿔줄 순 없는데...
타인을 통해 나를 보고 거꾸로 내 안을 들여다보며 타인을 이해한다는 고루한 진리에 장단을 맞춰도 보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심지 같은 고집 쪽에 줄 서 보기도 하고...
하지만 세상에 절대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이고 전부라고 여겼던 것들에 살짝 비웃음을 보탤 수 있는 여유가 절실하다.
벗을 건 벗고 떨칠 건 떨치고, 그렇게 봄을 입을 준비한다.
시간이 주는 망각과 퇴색에 기대는 것도 자기 사랑의 방법이다.
희미한 의욕이라도 남아 있다면, 모두 소진되어 버리기 전에 다시 시작할 각오를 불태워 보는 것이다. 
날 위해 잊고
날 위해 떠나 보낸다.
나를 위해
또 모두 잊고 난 후의 나를 위해
그렇게 이별을 준비하며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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