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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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창비 어플 '스위치' 연재작들을 즐겨 읽는다. 재밌는 게 많음.


찾아보니 『크리스마스 타일』은 작년 연말에 맞춰 연재를 시작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여름에 몰아 읽었지. 더운 날에 뛰어서 지하철에 타면 더위와 땀을 보상하듯 이 겨울 이야기들을 읽곤 했는데 어느새 겨울이 되고 책이 나왔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으로 연재분을 읽기 시작했었는데, 감질이 나서 예전아주예전에 독서모임에서 상품으로 받은 『너무 한낮의 연애』도 꺼내서 마구 읽었던 이번 여름의 기억.


「은하의 밤」

  첫 단편은 방송 작가로 일하는 친구에게 야금야금 주워들었던 방송국 구조나 배경들이 겹쳐 보여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은하가 일하는 이 방송국을 중심으로 작품 전체의 인물 관계도가 쭉 이어진다. 연작 소설을 처음 읽는 것도 아닌데 이 눈송이 맺힌 거미줄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야?' '이 이름은 혹시..!' 해가며 끝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재미요소였다.

  고독을 대하는 은하의 모습에 묘한 동질감도 느껴보고, 어쩌면 폭풍 같은 스토리 뒤의 평화를 맞이하면 이제 아주 영화적인 「데이, 이브닝, 나이트」로 넘어간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

  한가을의 문장들은 물론이고, 특히 한가을과 경은의 대화들이 아주 영화적이다. 아니면 지문적이라고 할까? 삶의 장면들을 시나리오 용어로 느끼고 정리하는 한가을 때문에 한가을과 경은의 삶이 영화처럼, 잊히지 않을 장면처럼 느껴졌다.


 「월계동 옥주」

  그다음은 어쩐지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옥주의 이야기다. 여름 지하철에서 이 단편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여름에 크리스마스 이야기들을 읽고 있는 나처럼, 그들이 자꾸 한여름의 여행에서 얼어 죽을 수 있을 만치 추운 날의 첫 만남을 떠올려서. 옥주의 매력은 책을 받아 끝까지 읽고 뭔가 납득하게 되었다.

  마성의 옥주 언니..


 「하바나 눈사람 클럽」

  진희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는 사실 살짝 눈물이 났다. 외따로 떨어진 이야기를 하듯이, 이제는 상관없는 척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설렘과 후회를 말한다. 여전히 설레고 후회하는 듯이. 다만 어떤 후회는 노련함으로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할 뿐이다.


「첫눈으로」

  남 국장의 것까지 드디어 방송국 사람들이 흘린 세 개의 쿠바 이야기가 완성됐다. 어쨌든 쿠바에서 계시랄지 구원일지 모를 것을 얻은 이들은 살아남았다. 어쩌면 살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봄은 살기 위해 무엇을 찾으러 가는 걸까?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세미는 살기 위해 남의 개들을 만나고 다녔다. "긍정 경험 되살리기", "사랑의 환생" 같은 것을 도모하던 세미는 그저 떠난 강아지 설기보다 새삼 뚜렷해진 자기 자신만을 회복했다. 그리고 전혀 괜찮지 않지만 나아진다고, 아무것도 무의미하지 않다고 말하는 힘을 얻었다. 꾸준히 굴러가는 세상에서 문제는 끊임없이 생겨나지만 아마 우리도 꾸준히..


「크리스마스에는」

  왠지 마지막 단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등장인물 중에 유일하게 방송국 인물 관계도에 속하지 않을 다리집의 엑스트라 손님들, 선생님과 제자들이다. 우리 지선이, 우리 명환이, 우리 서준이, 우리 수혜. 아이들을 부르는 그 목소리야말로 이 책에서 가장 크리스마스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민의 두 번째 부산 크리스마스에는, 첫 번째 부산 크리스마스를 소복이 덮진 못 했어도, 적어도 생일 축하는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다정한 크리스마스 엔딩으로 시작해서 은은한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짝사랑과 여름에 떠올리는 크리스마스를 지나, 지울 수도 덮을 수도 없는 과거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두 개 훑어보고, 다시금 조금 힘찬 크리스마스 엔딩과 조금 허무한 새해를 맞이한다.

  조금은 새로우면서도, 여전히 지난한 한 해가 시작될 것이다. 나는 또 무결하고 결백하고 싶어서 엉엉 울곤 하겠지만 어쩌면 울지 않는 날이 더 많은 한 해가 될지도 모른다.



복도 미등과 내 손전등 빛이 흘러들면 잠 못 든 채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더 뚜렷해졌고 나는 그렇게 해서 실루엣들이 인화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 컷 한 컷을 완성한다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영화가 될 것이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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