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망아지.불만의 겨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존 스타인벡 지음, 이진.이성은 옮김, 김욱동 해설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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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처럼 출판사 ‘비채’는 스타인벡의 초기 중편소설 <붉은 망아지>와 그가 쓴 최후의 소설인 <불만의 겨울>을 담아 본문만 613쪽에 이르는 바람직하게 두꺼운 책을 만들었다. ‘바람직한’이란 찬사를 붙이는 이유는 두 작품 다 매력적이라 책 한 권을 읽으며 상당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네 개의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옴니버스처럼 배열되어 있으나 에피소드들이 절박하게 엮여 있지는 않은 <붉은 망아지>는 로키산맥 동쪽 옛 밀림지역을 개간하여 농장으로 만든 칼 티플린 씨 소유의 농장을 배경으로 주로 그의 아들 조디의 눈으로 바라본 것들을 그리고 있다. 세 식구와 말에 관해서 근동의 누구보다 아는 것이 많은 일꾼 빌리 벅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네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편에는 아버지와 빌리 벅이 늙은 젖소들을 푸줏간에 팔러 읍내에 나가 붉은 색의 망아지를 사와 조디가 이 망아지, 가빌란을 직접 키우는 이야기다.
  자신만의 말이 생긴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가. 평소에 말수가 적은 아이에 불과했던 조디는 망아지 가빌란을 소유함에 따라 단박에 기적적으로 신분이 상승했으니, 유사 이래 언제나 걷는 사람보다 말 탄 사람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우월한 법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망아지에 관한 에피소드는 3편에서 암말 넬리가 발정을 하여 테일러 씨에게 5달러를 주고 종마 선도그와 교배를 한 후 망아지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와 서로 연결이 된다. 물론 두 편 다 지은이가 스타인벡이니 행복한 결말은 기대하기가 쉽지 않지만.
  2편에서는 예전 이웃 농장에서 어도비 벽돌집을 짓고 살던 지타노 씨가 청바지와 청재킷을 입은 가냘픈 체구의 노인이 되어 돌아와 티플린 부인에게, ‘고된 일은 못합니다, 세뇨라. 하지만 소젖을 짜고 닭 모이를 주고 장작은 팰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은 못합니다.“라고 고용을 부탁하지만 농장에서는 더 이상의 인부가 필요 없어 오늘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할 터이니 내일 아침에는 가 주시라는 당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노인의 문제는 4편에서 이제 조디의 외할아버지가 몇 주 다니러 오는 일과 연결이 되는데, 외할아버지는 일찍이 개척민들을 이끌고 서쪽에서 태평양을 만날 때까지 이주민을 인솔해 온 대장이었으며, 당시에 경험한 포장마차의 행렬과 인디언들 이야기를 쉼 없이 되풀이하는 노인이다. 그의 시절이 이미 끝났음에도, 벌써 오래 전에 끝났음을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과거에 남아 있는 노인들.
  <분노의 포도>, <의심스러운 싸움>, <에덴의 동쪽>을 쓴 작가의 초기 작품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시절을 지내고 있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이랄 수도 있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 재미있다. 이 작품이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추천했던 것이라고 하는데, 읽어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을 정도다. 오바마의 소설 취향이 믿을 만한지 여부와 관계 없이 말이다.


  스타인벡의 마지막 소설 <불만의 겨울>은 상당히 그럴 듯하다. 여태까지 내가 읽은 스타인벡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불황기에 주로 중서부 지방의 소시민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사회주의적 경향의 작품들과 스타인벡 자신의 이야기임에 거의 분명한 성장소설이었다. 그러나 <불만의 겨울>은 무대부터 미국의 중서부가 아니고 동쪽이다. 차가 막혀도 무려 뉴욕에서 세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뉴베이타운이라는 해변을 낀 작은 읍을 무대로 하고 있다. 20세기가 오기 전까지는 미국 최대의 포경선단이 운집해 막대한 재화가 주는 즐거움을 누리던 곳. 독립전쟁 당시 맹활약을 한 덕분에 독립 후인 1812년에 사략선, 즉 해적질에 관한 면허를 국가로부터 취득하여 한동안 미국을 제외한 국적의 상선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전설을 가진 홀리 가문. 이 가문의 마지막 후예가 ‘이선 앨런 홀리’이며, 아내와 아들, 딸, 이렇게 네 식구의 가장이다.
  오랜 세월 유지해온 재화는 할아버지 대에 지구상 최고의 포경선 ‘벨 아데어’호를 베이커 가문과 공동소유 하게 되었으나, 샌프란시스코 근방에 석유가 나오기 시작해 값싼 등유가 고래 기름 시장을 빠른 시간에 대체함에 따라 포경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할 때, 정박 중인 벨 아데어 호가 바다 위에서 화재가 나 흘수선까지 홀랑 타버린다. 주인공 이선은 이 사건을 당시 동업자였던 베이커 씨에 의한 방화로 보고 있지만 아주 오래 전 일이라 증명할 방법은 없다. 화재로 보험료를 받아 그래도 여전히 부유한 삶을 살던 홀리 가문은 이선의 아버지가 전쟁 끝 무렵에 난데없이 군수사업에 투자함으로써 동산과, 저택을 제외한 모든 부동산을 말끔하게 말아 드시고 화병으로 숟가락을 놓은 바람에, 지금 이선은 하버드를 졸업한 재원이고, 예비역 대위임에도 불구하고 시칠리아 출신 불법 체류자 마룰로가 사버린 예전 자기네 집 상점에서 점원 노릇을 하고 있다.
  때는 1960년. 미국은 소련과 더불어 지구에 둘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의 종주국이었으며 정치, 경제, 문화, 당연히 군사, 교육 등에 경쟁할 상대가 없는 최강국이었지만 안으로는 조금 더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고자 서슴없이 부정과 부패, 뇌물, 리베이트, 중상, 모략 등이 팽만하던 시기였다고 스타인벡은 진단한다. 이 속에서 이선은 잘 배운, 좋은 집안의 유일한 후손답게 예전 자기네 작은 사업체였던 식료품 가게에서 단 하나 있는 점원으로 십 수 년 간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정직하고, 청렴하고 항상 친절한 몸가짐과 유머가 풍부한 언어습관으로 인하여 점원신분이라기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여전히 뉴베이타운의 명망가 홀리 가문의 후계자로 여기게 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명망가의 후계자이면 무엇을 하나. 커다란 집만 있었지 흔한 TV도 없고, 자가용 승용차는 말할 것도 없이 시칠리아에서 홀로 건너와 생존하기 위해 오직 돈, 돈 하나만을 삶의 목적으로 얼굴에 철갑을 두르고 돈 하나만을 위해 살아온 마룰로에게 어이, 풋내기, 라는 호칭을 듣고 살아야 하는 것을. 심지어 저녁을 함께 하자고 누구를 초청해본 적도 너무 오래되어 몇 년이나 흘렀는지도 모르고, 결혼 후 한 번도 여행을 떠나보지도 못해 우연히 일박이일 일정으로 가까운 몬타우크의 방갈로로 떠나는 것에도 감격하여 잠을 못잘 정도임에야.
  그리하여 우리의 이선 역시 이 살벌한 시절에 자신도 돈을 한 번 왕창 벌어보자고 결심을 한다.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골목 건너 뒷문을 매개로 친구가 된 은행원 조이 모피로부터 방법을 배운 은행을 터는 것하고, 자신의 최고의 무기인 선량함과 정직함으로 무장하고 최소한의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거였다. 자세한 내용은 재미있는 책 《붉은 망아지 · 불만의 겨울》을 읽어보실 분을 위하여 여기서 그만 두겠으나, 어쨌든 선량함과 정직함을 교묘하게 섞어 거대하게 넓은 평야 지역의 토지와 자신이 여태까지 일하던 식료품 상점을 손에 쥐게 된 이선에게 또 하나의 즐거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자신과 같은 이름을 부여한 이선 앨런 홀리 2세가 미국의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나라사랑 글짓기’ 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히는 영광과 더불어 자기 집에도 없는 TV에 인터뷰가 방송될 예정이다.
  당시 미국은 그랬다. 다들 그랬다. 이니셜이 금색으로 박힌 지갑 속에 50달러짜리 신권을 한 장 넣어 선물하며, 우리 회사에서 구매한 물품에 대하여 매출액에 5퍼센트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영수증 없이 현금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의를 하면, 5퍼센트는 너무 적고 6퍼센트로 해주면 생각해보겠노라고 대답하는. 우리의 이선, 홀리 집안의 후계자는 이런 관행에서 거의 유일한 예외자였다. 그의 주변에서는 쉼 없이 다들 그렇게 해, 유별난 짓 좀 하지 마, 너만 잘난 줄 알아, 라고 항변했지만 그는 하여간 그렇게 버텼다. 그리고 그것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무기가 됐고.
  스타인벡의 경향성, 사회성이 싫어 그를 선택하지 않았던 분에게 권하기에 맞춤한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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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왕국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0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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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듣는 작가지만 쿠바에서는 소위 국민작가로 불린다고 한다. 1904년 스위스 로잔 출생이나 쿠바의 아바나에서 유년시절부터 대학에서 건축학과 음악 이론을 공부했다. 이이의 전공 때문인지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음악과 악기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음악을 알지 못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 그것을 이유로 이 작품을 피할 필요는 없다. 이후 쿠바의 독재정권에 맞서 반정부 운동을 하다 잠깐 투옥도 되고 유럽으로 피신해 한 십 여 년 살다 되돌아 왔다가, 아직 때가 아니다 싶어 또 베네수엘라로 도피하고는 1959년 쿠바혁명을 완수하고 곧바로 귀국해 신생 쿠바의 혁명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쿠바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이티를 무대로 하고 있다.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 섬을 발견할 당시부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1697년에 섬의 서쪽을 프랑스가 차지하면서 프랑스의 식민지를 거쳐 1804년,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빨리 독립을 쟁취한 나라가 된다. 책에서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고자 하는 아프리카인, 즉 흑인들을 중심으로 씌었는데,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1492년, 콜럼버스 일행이 이 스파니올라 섬에 도착했을 때, 선원들과 함께 온 것이 있었으니, 천연두 정도로 짐작이 되는 전염병이었다. 아시다시피 구 멕시코 제국이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 군대한테 제대로 저항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굴복한 것이 용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유럽인들에겐 상당한 정도의 면역력이 있었던 천연두 때문이었던 것과 매우 유사한 이유로, 스파니올라 섬의 50만 명가량 원주민 거의 전부가 불과 6개월 만에 전멸을 하고 만다. 이런 상태로 식민지를 경영할 수 없으니 모자라는 노동력을 아프리카의 노예상인한테 조달을 받아 비옥한 토지에 사탕수수, 담배, 커피 등을 재배하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아이티와, 오른쪽에 국경선을 맞댄 도미니카에는 다수의 흑인들을 포함한 유색인종과 극소수의 백인, 그리고 소수의 흑백 혼혈로 구성되고, 백인에 의한 유색인종에 대한 핍박과 박해와 수탈과 능욕과, 고문-죽음을 포함한 사형私刑이 지속되기에 이른다. 동시에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군에 편입하여 싸운 아이티 흑인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이 더해져 18세기 말부터 자생적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가 19세기 초인 1804년 드디어 유색인종에 의한 세계최초의 독립선언을 하게 된다.
  책에서는 므시외 르노르망 드 메지 씨가 경영하는 르노르망 드 메지 농장에서 사탕수수 압착 공정의 노예로 있었던 실제 인물(이라고 하는) 마캉달이 등장한다. 어느 날 작업 중에 마캉달의 왼손이 압착기에 빨려 들어가 크고 늙은 말이 돌리는 방아 돌에 어깨까지 갈려 상박 부분을 절단한 불구의 노예로, 원래 출신은 아프리카 노예 가운데 가장 다루기 힘들고, 불온하며, 악마 같은 존재이며 잠재적 도망자로 분류하는 만딩고 족 출신이다. 아니나 달라, 이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가축 돌보는 일을 맡게 했는데, 들의 모든 작은 생물들, 풀과 버섯, 작은 곤충을 포함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져 자연의 맹독을 자유스럽게 사용하게 됐을 때쯤에 도망을 해버린다.
  팔이 하나밖에 없어 가격을 거의 매길 수 없는 싸구려 노예지만 다른 노예들을 경계하고자 사냥개들과 함께 마캉달을 추격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대신 개, 암소, 수소, 송아지, 말, 양 등 수 백 마리가 죽어 넘어져 드 메지 씨의 농장이 있는 플랜 뒤 노르(섬의 북쪽에 있는 대목장 지역) 전역에 시체들이 넘쳐난다. 여기에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넘어온 부두교와 유럽에서 온 가톨릭이 합쳐져 소위 말하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 특유의 ‘붐 경향’이 발생, 마담 드 메지는 나뭇가지에 달린 탐스런 오렌지 하나를 따먹고 그 자리에서 급사를 해버린다. 이에 흑인 노예들은 마캉달이 발굽달린 동물, 조류, 물고기, 심지어 곤충으로 변신하는 능력이 있으며 동시에 여러 아시엔다(농장)에 지속적으로 방문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빙의된 위대한 신으로 격상시킨다.
  그래 백인들은 흑인 노예를 차례로 고문해 그중 ‘안굽이 무릎의 사내’가 실토하기를, 최상의 권능을 부여 받아 백인들을 없애고 산토도밍고에 흑인들의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백인 박멸을 위한 성전을 선포했으며, 노예 수천 명이 마캉달을 신봉한다는 말과 함께 그를 잡을 수 있는 단서를 토설한다. 백인들이 이 안굽이 무릎의 사내를 내버려 두었겠는가? 열 받는다는 이유로 중요한 정보를 주었음에도 배를 갈라 죽여 버린다. 다음해 1월, 플랜 뒤 노르의 모든 노예들이 도시 카프의 광장에 모인다. 흑인들을 위한 갈라 쇼가 열릴 예정인바 조금 뒤에 중무장한 경비 대원에게 호송되어, 허리에 줄무늬 바지가 달려 있고 밧줄과 매듭이 ‘반드시 필必 자’처럼 묶여 있는 마캉달이 입장해 나무 기둥에 다시 묶인다. 화형에 처하기 위한 것.
  그러나 흑인 노예들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마캉달은 파리, 지네, 나방, 개미, 거미, 무당벌레 또는 개똥벌레로 변신해 스르르 미끄러져 다시 모기로 모습을 바꾸어 사령관의 모자 위에 가뿐하게 앉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정말 다리 아래에 불을 붙이자 끔찍한 비명과 함께 몸이 타기 시작하고, 마캉달을 묶은 밧줄도 타기 시작해 까맣게 그은 몸의 줄이 툭 끊어지자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아 앞으로 움직이다가 푹 쓰러진다. 이 모습을 본 흑인 노예들은 틀림없이 이 순간에 마캉달이 변신해 어딘가로 숨었을 것이라 확신하게 되고, 그리하여 전설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러, 다른 작가가 쓴 책에서도 본 적이 있는 흑인노예들에 의한 백인에 대한 약탈과 살인과 린치에 이어 1804년 드디어 독립선언을 하게 되고, 장 자크 데살린이 초대이자 종신 총독에 등극한다. 하지만 2년 후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이티는 남쪽은 알렉상드르 페시옹이, 북쪽은 앙리 크리스토프가 대통령과 황제를 칭하면서 프랑스의 군복, 예복, 풍습 등을 그대로 복사하기에 이른다. 자,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책은 서문과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읽어본 자격으로 말씀드리자면, 본문을 다 읽은 후에 서문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이 서문은 적어도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을 위해 쓴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 사람이 서문을 읽으면서 즉각적으로 이해하기는 곤란할 것인데, 만일 본문을 다 읽은 상태라면 곧바로 이해가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금 작가가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쩌면 책에서 무척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거늘 그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으면 독자 입장에서 난감할 수밖에. 물론 서문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유럽의 허망한 고딕문학이나 초현실주의 같은 건 공상을 통해 나타나는 인위적 모습인 반면, 라틴 아메리카는 삶 자체가 마술적, 경이적이어서 사는 모습만 그대로 써놓아도 그것에 필적할 것이라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알레호 카르펜티에르가 새로이 열기 시작했다는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4부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거기에 대하여는 직접 읽어보시라는 말씀만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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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혁명선언 범우문고 270
신채호 지음 / 범우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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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스타 강사 김용옥이 올 3월에 TV에 나와 특유의 미라 같은 목소리로 강講을 하기를, 기미독립선언서가 국한문혼용체일지언정 어찌하여 거의 전적으로 한문으로 씌어 있는 줄 아느냐고 묻더니,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도 글을 보면 이해를 할 수 있게 쓰라고 최남선에게 당부를 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패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렇구나, 몰랐던 것을 새로이 아는 기쁨, 조선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고했던 뜻의 창대함에 새삼 옷깃을 여미는 거룩함을 느끼는 듯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무려 이과 공부를 했음에도, 기미독립선언서를 모두 외우지 못하면, 여러 말 할 거 없이, 국어선생한테 겁나게 얻어 터졌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서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서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476년이 흘러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한글 정도는 다 익히고 있던 시절에 이런 <독립선언서>가 다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김용옥, 이 진보적 꼰대라고 자칭하는 인물로 하여금, 당대 국민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언어로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이리도 상찬했던가. 하긴 뭐 전형적인 먹물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한다. 그의 소장학자 시절, 검정 가죽점퍼와 착 달라붙는 검정 가죽 바지에 도리우치 모자를 쓰고 다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으니 그 정리를 봐서라도.
  깊이 보다는 말재주로 널리 우리의 역사를 알리고 있는 잘 팔리는 대중적 역사교사 설민석은 TV에 나와, 당시 지도자들이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이란 요정에서 낮술 한 잔 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더니 서른 세 명이 스스로 줄 맞추고 발맞춰 종로경찰서로 나란히 행진한 사건이라고 했다. 애초부터 <독립선언서>는 일본에게 조선 강역의 자치권을 부여해달라는 청원서 형식으로 만들 예정이었다가, 나중에 최악의 친일파로 변신하는 최린의 반대로 자주권에서 독립선언으로 바뀐다.
  3.1운동을 폄훼하려는 마음은 없지만 적어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물론 이런 시도는 삼사십 년 전부터 안병욱 등 당시 소장학자들(지금은 명예교수나 이미 은퇴한 이들)의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여전히 설민석의 요정, 자치권 운운의 발언은 당장 33인, 그래봐야 거의 다 나중에 변절해 친일의 함정에 빠져버린 소위 민족대표들의 후손들에게 경을 치고 만다. 어쨌건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서를 몰래 등사해 그것을 뿌리며 학생, 시민, 농민들은 전국방방곡곡에서 독립을, 쟁취하는 대신 요구하기 위해 맨손으로 일경의 총칼 앞에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조선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치다가 거의 가망 없이 깨져버린 사건이다.
  소위 민족대표들이 모여 술김에 낭독 한 번 한, 어렵기 그지없는 거의 한자문서의 현학적 미사美辭 자체를 당시 인민 가운데 몇 명이나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었겠는가. 어찌 강역을 무도히 침탈한 도적들에게 맨손의 만세운동을 통해 독립을 구걸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우리의 민족대표란 것들이 순진해도 너무 순진하지 않았는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단재도 <조선혁명선언>에서 3.1운동이 “일반인사(소위 민족대표 33명)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의 선전이 도리어 2천만 민족의 분용전진奮勇前進의 의기를 때려 부수는 매개가 될 뿐”이라 딱 꼬집는다. 그리하여 일반 인사들의 뜻대로 자치권을 얻는다고 쳐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전멸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봉대한다 함이 ‘치욕’”일 수밖에 없음을 명시한다.
  이 <조선혁명선언>은 당시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 중국 내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던 인사들 가운데 독립의 의지가 굳고 글이 좋은 신채호에게 부탁하여 ‘의열단선언문’을 작성하고자 했던 것인데 범위를 의열단뿐만 아니라 조선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 하는 모든 민족주의자들의 선언으로 함이 마땅하다고 여겨 조선혁명선언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단재는 이미 널리 알려진 민족주의 역사가였으며, 독립운동가, 항일 언론인, 문인, 아나키스트 사상가로 접어들었던 상태. 따라서 독립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무력 투쟁이며, 백년을 기다려도 ‘제국’을 칭하는 일본과 대등한 무장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전면전 대신 적의 핵심을 격파하는 테러리즘에 경도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의 뜻을 가지고 있으나 ‘혁명’이라 읽는 큰 목표를 위해 조선의 민중들은 건설을 위한 파괴, 즉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을 건설하는데 일치하여야 한다고 집중한다.
  이 혁명으로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2천만 민중들의 힘이었으리라. 그리하여 단재는 결론적으로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무기이다.”라고 선언하며, 건설을 위한 파괴, 독립(혁명)을 위한 폭력의 대상을 구체화하여, 폭력, 즉 암살, 파괴, 폭동의 목적물을 적시한다.
  가. 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나. 일본 천황 및 각 관공리
  다. 정탐노, 매국적敵
  라. 적의 일체 시설물.


  단재 신채호.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인식한 바가 정의라면 단연 정의를 위해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행하는 인물. 이것은 그의 역사철학,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 나와 나 아닌 것의 투쟁이라는 신념에서 비롯한다. 아와 비아에 관한 논의는 <조선 상고사>의 제 1장에서 나오는 말인데, 놀랍게도 이 책의 두 번째 파트에 <조선상고사>가 첨부되어 있다. 당연히 논문 전편이 아니라 제 1편인 ‘총론’만 싣고 있는데, 나 같은 아마추어들은 총편만 읽어도 단재의 역사철학을 이해하는데 충분하리라 믿는다.
  <조선혁명선언>을 지은 4년 후, 단재는 1928년에 베이징과 다롄에서 개최한 무정부주의 동방연맹대회에 참석했다가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을 따르기 위해 위조지폐를 발행했다가 일경에 의하여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서 형을 산다. 형기 중에 조선일보가 이를 입수해 1931년부터 연재했으나 단재는 옥중에서 연재중단을 요청했다고 한다. 아직 연구가 미흡하다는 것이 첫째고, 조선일보가 일본의 연호를 사용하고 있는 신문이라는 사실에 분노해서였다.
  신채호는 굽힘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조선상고사> 총론에 썼다시피 그의 걸출한 기상은 “거연히 패망한 이조李朝의 기정旣定한 있는 국면에서 그리 된 것”이겠으나 지금 다시 태어나도 시절의 꼿꼿한 선비로 살았을 것이다. 시절이 어려울 때마다 신채호가 그립다. 즉, 언제나 그가 그리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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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 - 채만식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2
채만식 지음, 우찬제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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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시지탄. 이제야 <탁류>를 읽었음이랴. 우리나라 근대 소설에도 이만한 작품이 있었다는 걸 이리도 늦게 알게 되다니. 일찍이 <태평천하>의 골계에 무릎을 친 바 있거늘 이만저만해서 이제야 <탁류>를 읽게 되어, 이 책이 그리 재미나다고 옛 교사들께서 침을 튀신 바 적지 않아 어려서부터 읽어보려고 과장 조금 보태 십 수 번 만에 드디어 끝장을 보았는데, 아이그, 그 시절 교사들의 말씀이 지극이 타당했다는 걸 무르팍 시고 어금니 빠진 세월에 이르러서야 알아채는 인종이 아니 한심할 수 있겠는가 말이지. 아, 정말 재미있는 한국식, 이게 1937년부터 38년에 걸쳐 신문연재를 했다니까, 조선식 자연주의 소설의 진수다.
  뭐 해설엔 리얼리즘 문학이라 했더라도 그까짓 사조가 뭔 대수랴. 1902년 유럽에서 에밀 졸라가 죽고 그 넋이 조선에서 윤회하여 채만식으로 나왔던가? 아니란다. 졸라가 9월에 죽고 채만식이 6월생이니까. 하여튼 그가 조선에서 다시 태어나면 영락없이 채만식처럼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군산의 쌀 시장 통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투기와 선물 미두장 이야기는 <쟁탈전>과 <돈>에서 보이는 공매도, 공매수와 여지없이 비슷하고, 남의 돈을 빌어 한 몫 잡으려는 은행 당좌계 직원 고태수의 사기행각 역시 사카르를 연상하게 한다. 빈민들은 딸을 싸구려 유곽에다 돈 이백 원에 팔아 건어물 장사를 시작하다가 일 년 만에 말아먹고,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딸을 둔 영락한 선비는 비록 조금 미심쩍기는 하지만 돈이 많아 일가를 위해 장사 밑천 대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부댁 외아들에게 선뜻 맏딸을 시집보낸다.
  이 영락한 선비 정주사는 작품 초장부터 새파란 애송이 푼돈 투기꾼인 소위 ‘하바꾼’으로부터 멱살을 잡혀 톡톡한 망신을 당하며 작품에 등장한다. 채만식은 이 정주사, 정영배를 ‘입만 가졌지 손발이 없는 사람이라 지적하며’ 사서삼경에 신학문을 겸한 나름 당대의 인재이나 집안 가솔들의 배를 곯게 하는 ‘인간 기념물’이라 칭한다. 천연 기념물, 자연 기념물, 하는 식으로 인간 기념물이라 칭한 건데, 아무리 자왈子曰 나위를 칭할지언정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법은 알고 있어서 슬하에 위로 딸 둘, 아래로 아들 둘에다가 내외지간까지 모두 여섯 호구를 책임져야 했던 것. 이 중에서 맏이가 초봉이, 둘째가 계봉이고, 초봉이는 명실상부한 주인공, 계봉이는 원래 조연들이 그런 경향이 있듯 똑 부러지는 성격의 정의의 용사다.
  초장에 정주사가 일방적으로 애송이 하바꾼에게 멱살을 잡혀 스타일을 완전히 구기고 있을 바로 그때, 시간 맞춰 등장해, 싸움이라기보다 일방적 행패를 말 한 마디로 뜯어 말리는 은행 당좌계 직원이 있었으니 이름을 고태수라고 했다. 고태수는 가난한 홀어머니가 키워 오랜 세월 은행 사환으로 있다가 성실 근면함이 눈에 띄어 정식 직원으로 승차하고, 아무래도 경성의 본사 행원들 사이에선 사환 출신이라 서먹할 것이라 선처를 베푼 상사에 의하여 군산지점으로 발령이 난 인물로, 키 크고 훤칠하게 잘 생기고, 귀태나는 외모의 미남자. 경성 본사에서 오랜 세월 성실, 근면하게 뼈 빠지게 일만 하다가 군산에 내려와 눈치 볼 것 없으니 이제 본색을 드러내 하고 한 날 술과 여자, 노는 본새가 흐벅져 돈 아까운지 몰라 이미 턱에까지 빚이 꽉 차있는 인간이다.
  여기서 끝내면 그나마 어떻게 변통을 하겠으나, 한 번 놀아보니 그 맛이 별미라, 지점장의 신임이 두터운데다가 맡은 일이 당좌계여서 군산의 큰 손인 백석이란 이름의 대금업자, 농산흥업회사, 군산의 큰 중매업자인 마루나, 이 세 계좌의 인감을 모조해 소액의 가짜 수표를 발행해 해 먹은 것이 물경 3천3백 원. 얼핏 직원 봉급으로 계산해 당시 1원이 지금의 10만 원 이상의 가치라 대강 3억 3천만 원 너머로 생각하면 되겠다. 물론 재화가 적을 때니 돈의 가치는 지금 3억 3천보다 훨씬 더 컸다고 봐야 하고. 고태수 이 인간도 머리가 빈 건 아니라서, 비어? 천만의 말씀, 보통학교만 나와 사환으로 있다가 정식직원이 된 전설의 인물이니 똑똑한 편에 들어,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소액의 위조수표, 당시 말로 하면 소절수 놀음이 이제 얼마 가지 않아 들통이 날 것이고, 그럼 감옥생활 몇 년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태수 좀 보라. 자기는 죽어도 감옥소에는 가지 않을 것이란다. 그러면서 오늘도 기생 행화, 살구꽃의 방에 자신이 수족처럼 부리는 추한 얼굴의 꼽추 장형보와 들어 꽃놀이 갈 생각만 하고 있다. 자신은 감옥에 가느니 소절수 놀음이 들통이 날 듯, 여차하면 깨끗하게 자살을 해버릴 것이라는 말을 아예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러면서 보는 눈이 있어 군산에서 가장 어여쁜 정초봉이와 혼인을 해 초봉과 같은 날 같은 시에 사랑의 죽음에 이를 꿈을 꾸고 있는 거였다. 그리하여 어느 날, 정주사네가 줄창 외상 쌀을 먹는 싸전이자, 자신이 하숙을 하는 한참봉 내외에게 초봉이 중매를 부탁하며, 이왕 군산시내에 소문이 났듯이 혼인만 하면 천석을 짓는 자기네 집에서 처가에 돈 천 원이나 보태 군산에서 작은 가게라도 하나 장만해주겠다고 사기 제의하기에 이른다.
  초봉이는 초봉이대로 자기 집에서 방 하나를 얻어 자취를 하는 혈혈단신 건장한 체격의 듬직하고 우직하고 하여간 사내다운 의사 지망생이자 금호병원의 의원 조수 남승재를 마음에 두고 있는 상태. 이제 내년 가을에 있을 시험만 치루면 정식 의사가 되어 적어도 금전적으로는 남부럽지 않게 될 소위 첫사랑을 잊지 못하면서도, 부모의 성화와 혼인만 한다면 천 원이라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돈이 친정의 복지를 위하여 굴러들어온다는 한 마디에 그만 굴복해 사기꾼 고태수와의 결혼에 동의하고 만다. 근데 이 고태수란 작자를 보라. 결혼을 열흘 남기고 여태 다니던 병원 말고 새로이 금호병원을 찾아 남승재에게 자기 환부를 보여주는 바, 고름이 줄줄 흐르는 생식기. 임질이 만성이 되어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곧바로 통증과 염증이 동시 상영되는 지경이었다. 초봉과의 순진한 첫사랑의 추억을 나눈 남승재의 복장이 어떻겠는가. 초봉을 위해 태수의 임질을 정성껏 치료해주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잘 조리만 하면 당장은 염증과 통증은 사라지겠지만 틀림없이 전염이 될 터이니 차후라도 꼭 두 분이 함께 치료를 잘 받으셔야 합니다. 조만간 자살을 꿈꾸는 고태수가 그까짓 것을 생각이라도 할까, 어딜.
  스토리는 이제 반의반도 오지 않았다. 더 이상은 안 알려드린다. 진짜 재미있으니 직접 읽어보시라. 이야기는 이렇게 자연주의적 난장판으로 질주하기 시작하지만, 역시 채만식의 진가는 해학의 문장에 있다.
  위에 써놓은 이야기를 보시라. 아예 처음부터 가난과 범죄와 질투와 비극을 품고 있지 않은가. 말 그대로 자연주의적, 졸라가 즐겨 다루던 그림하고 굉장히 비슷하다. 그러나 졸라보다 훨씬 재미있다. 채만식은 크레모어 또는 지뢰처럼 작품 곳곳에 해학과 익살과 골계를 숨겨놓았다. 당장 사람 하나가 죽어나갈 것 같아도 틈만 있으면 그걸 그대로 지나가지 않는다. 이제 책이 나오고 8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언어 또한 격변의 세월을 겪어 젊은 독자들이 숨어 있는 골계를 찾지 못하는 일이 수다하겠지만 그리하여도 꼼꼼하게 사전도 찾아가면서 읽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탁류>는 길이 보전해야 하는 우리나라 근대 문학의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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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6-16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탁류> 정말 재미있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국어/문학 교육의 폐해를 톡톡히 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재미난 작품을 고등학교 때는 입시 위주로 접근하게 하니 사람들 머릿속에 <탁류>를 비롯해 채만식 작품들이 재미 없는 것으로 인식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는 대충 문제집 지문으로만 접하고 나중에 사회에 나와 어쩌다 보니 국어 과외 선생질하면서 학생 가르치려면 읽어야지...하고 읽다가 오잉? 이렇게 재미난 작품이! 하면서 완전 빠져들어 읽었답니다.

암튼 채만식 작품은 정말 재미나고 해학과 풍자 철철... 많은 분들이 채만식 제대로 읽기 이런 거 도전하면 좋겠어요. ㅎㅎㅎ

Falstaff 2020-06-16 09:54   좋아요 1 | URL
옙. 저도 젊기 전 어려서 여러번 읽으려고 했다가 말았는데 암만해도 이유가요, 1) 우리나라 근대 문학을 우습게 아는 시건방짐, 2) 수업시간에 작가, 스토리 같은 거 다 시험 공부 목적으로 외워서 이미 읽어본 것 같은 착각, 아니었나 싶어요.
그나마 이제라도 읽어보고 재미를 아니 다행입니다.
맞아요, 채만식 다시 읽기, 좋은 프로젝트입니닷! ㅋㅋㅋ

2020-06-16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6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천변풍경 - 박태원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0
박태원 지음, 장수익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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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이상한 작가다. 오랜 세월 동안 금지된 이름의 작가가 쓴 금서 <천변풍경>을 읽어보니 더욱 그렇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자진해서 남조선노동당에 들어가 월북을 했을까? 박태원. 광교쯤으로 보이는 청계천 상류에 사는 도시 소시민들을 섬세하고도 따뜻하게, 굳이 경향으로 치면 리얼리즘 작가가, 공산주의 독재 치하에서 정말 자기 뜻대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을까? 1950년이면 이미 소련에선 레닌을 거쳐 스탈린이 철권을 휘두르며 거의 모든 예술가들을 질식시키고 있었을 당시였던 것을. 다른 건 아직 안 읽어보고, 단지 <천변풍경> 하나만 두고 이야기하자면 박태원은 아무 생각 없이 옆에서 가자는 대로 그냥 가다보니 어, 어 하는 동안 자꾸 북쪽으로 가고 있었던 거 같다.
  더구나 박태원은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노골적으로 친일 문학에 힘을 써, 내신일체 사상의 고양에 혁혁한 공훈을 세운 바 있거늘, 어찌 제 발로 북쪽을 선택했을 수 있었을지 못내 궁금하다. 무소의 뿔처럼? 이이의 외손자가 누군지 아시지?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탄 봉준호. 물론 봉준호는 외할아버지 얼굴도 모르니 그가 박태원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 한다. 그냥 그렇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태원의 창작 유전자 일부가 봉준호에게 조금은 이어졌다는 것이 생물학적 진실이긴 하다는 거.
  근데 어째 박태원에게 리얼리즘 작가라는 딱지를 붙이기가 좀 어색하다.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아 우리나라 옛 작가들에게 미안한바 작지 않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 제목은 최인훈의 것으로 읽어서 상당히 오랜 동안 <소설가 구보....>는 그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세월이 좋아져 <소설가 구보....>가 원래는 자진해서 월북한 박태원의 중편소설이고 최인훈이 나중에 박태원을 본받아, 요새 쓰는 말로 패러디한 것임을 알게 됐으나 그렇다고 새삼스레 다시 찾아지지는 않던 거였다(조만간에 꼭 읽어보리). 하여간 박태원의 구보는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그것이 우리나라 모더니즘 문학의 한 기념비라고 하도 많이 들어서, 모더니스트가 월북을 해? 보나마나 가자마자 숙청당했겠군, 했더랬다. 뭐 그런데 잠깐 고생을 하고 난 다음 죽을 때까지 장편 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했다고 하니 소설가로 천수를 누렸던 모양이다.
  경성의 광교 부근. 북악에서 흐른 맑은 물이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곳엔 동네 아낙들이 빨래를 할 수 있게 샘터를 만들어놓고 샘터 주인이 한 번 빨래하는데 5전씩을 받아 호구를 한다. 샘터를 제외하고 유유히 흐르는 천에는 여지없이 생활하수 같은 것이 둥둥 떠다녀 발 한 짝이라도 집어넣으면 곧바로 썩어질 것 같다. 샘터에 동네 가겟집의 안집 살이, 드난살이 하는 아낙네 십 수 명이 입춘 지났다고 좀 덜 매운 개천 물에 빨래들을 척척 휘두르며 동네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주절이, 주절이 떠들어대는 것으로 이 재미있는 옴니버스 식 장편소설의 막을 연다.
  기생 취옥이는 원래 이름이 언년인데, 언년이 엄마가 딸을 권번에 보내 본격적으로 기생이 되니 이젠 딸 덕에 호사라, 같은 동네 최고로 어여쁜 이쁜이 엄마는 왜 그리 고운 이쁜이를 권번에 보내지 않는지 아무리 이야기를 해줘도 도통 씨알이 먹히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취옥이와 같은 권번에 있는 명월이는 이상하게 고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열 시간도 못 불려 다니지만 그래도 종로에 있는 은방 주인이 홀랑 반해서 해달라고 하는 건 웬만하면 다 해주니 기생팔자보다 더 좋은 게 세상에 몇이나 되느냐는 말이지.
  그러나 이쁜이 엄마 입장에서는 천만의 말씀. 열세 해 전에 남편 죽고 소녀과부가 되어 그거 하나 바라보고 키우는 재미로 살았는데 어딜 권번이 말이나 되는가. 이제 전매국 의주통 공장에 다니는 강석주라고, 키는 작지만 귀염성스럽게 잘 생긴 청년과 식을 올려준다. 신부화장을 한 이쁜이를 보고, 감히 이쁜이를 며느리로 삼기엔 자기 아들과 살림이 턱없이 척진다는 것을 아는 점룡이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옛적에 당명왕을 녹여낸 양귀비보다 못하지 않다.”
  했으니 독자들은 이쁜이의 어여쁨이 어떤 수준인지 짐작이나 하시라.
  그러나 그러면 뭐해. 쥐뿔도 없는 서방 아이는 옛적부터 조선의 고관대작은 일처양첩, 본처 하나에 첩을 둘은 두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930년대 전매국의 공원 신분으로 캐시미어 외투에 양복을 쪽 빼입고 구리개니 종로니에 있는 술집, 카페, 그것도 모자라 새문교회 동생까지 반반한 아가씨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반면, 취미생활로 광교 근동에 가장 고운 자태를 자랑했던 맘씨 좋은 어린 마누라 두드려 패기로 정해버린 것을. 여기다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가히 막장 수준이라, 원래 성질머리도 더러운데다가 자기 남편, 그러니까 이쁜이의 시아버지가 며느리 쳐다보는 눈길이 또 묘하다고 근거 없는 질투까지 섞여 며느리한테 해대는 바람에 세상에 그리 매운 고초당초가 있을까 싶게 시집살이를 사는 것을.
  천변에 앉아 빨래 주물러대는 여인들을 고용해 사는, 소위 방귀 깨나 뀌는 인물들로는, 첫째가 한약국집을 들 수 있을 터. 일찍이 결혼해 남편에게 두드려 맞기를 밥 먹기보다 더 자주 당하다가 남편은 그것도 모자라 시앗을 보고, 하나 있는 아들도 일찌감치 지긋지긋한 삶을 접어 혼자가 된 후 그길로 내빼 이 집의 안집 살이, 즉 대표 하녀로 취직해 죽기까지 함께 하기로 작정을 한 귀돌어멈이 고단한 머리를 뉘는 곳이다. 약국집 주인 내외는 여간만 하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안고 지내는 성질이지만, 새로 살러 들어온 만돌이네는 도무지 참아주지 못했다. 만돌 어멈은 사람이 그리 넉넉하고 수더분하고 얌전하고 일 하나 맵시 있게 야물딱진데, 아 그만 만돌 어멈의 부탁으로 함께 살러 들어온 만돌 아범이 술만 마시면 곧바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멍멍이가 되는 것은 봐주지를 못해 그만 내치고 말았다.
  또 먼 친척의 부탁으로, 사람의 새끼는 낳아서 서울로 보내랬다고 동네에선 똑똑하다고 소문 나 경기도 가평에서 애꾸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한약국의 사환으로 취직한 창수는 서울살이 불과 몇 달 만에 아주 발랑 까진 도시내기가 되어버려 약국 주인 말씀 알기를 개떡으로 여겨 주인 영감 입에서 ‘당장 나가’라는 하명이 나오기 전에 자기 발로 때려치우고 잠깐 귀향했다가 다시 돌아와 종로의 당구장에 게임 보이로 활약한다. 그래도 약국의 노부부가 자식농사를 잘 짓고 마음도 넉넉하여 동경의 유명 사립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아들이 결혼하기도 전에 일 년 동안 이화 나온 지금의 며느리와 자유연애를 하는 것에도 아무런 까탈도 하지 않았으며, 아들도 부모를 닮아서 그런지 결혼하고 삼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에 꼭 한 번씩 아내와 어깨를 나란히 천변을 산보하고는 하는 거였다.
  또 한 명의 문제적 인간이 ‘민주사’다. 돈푼깨나 있는 양반으로 아내와 아들아이 하나와 편안한 가정을 꾸렸음에도 관철동에 집을 하나 얻어 첩을 두었으니 그건 당시만 해도 이 정도는 해야 그래도 장안에서 행세한다고 믿었던 까닭이었다. 이 양반이 올해 천명을 아는 나이, 첩 안성댁은 딱 절반인 스물다섯. 그래 머리털에 희끗희끗, 흰 털이 자꾸 느는 것이 불만이긴 하나 세상에 어느 장사가 있어서 세월을 거스르나. 이 양반의 진짜 문제는, 국회의원이 아니고 당시 식민지 치하라서 경성부, 부회의원이 돼보고자 출마했다가 수천원만 쓰고 장렬하게 준우승을 해서가 아니라, 관철동 안성댁이 일편단심 늙은 자기만 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안성댁이 자기를 공깃돌 놀리듯 손 안에 쥐고 흔드는 걸 도무지 인식하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대낮에 관철동 집에 대문을 열고, 중문까지 열고 쑥 들어가 보니, 안성댁과 대학의 교복을 입은 청년 하나가 마루에서 전축을 틀어놓은 채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옆으로 자빠져 있는 거였다. 비록 옷고름 하나, 단추 하나, 양말 한 짝 흐트러지지는 않았지만 남녀가 유별한데 훤한 대낮에 눈을 맞춘 상태에서 연놈이 자빠져 있다 함은 세상에서 둘 사이에 해볼 것은 이미 다 해봤다는 증거 아닌가 싶은데도, 안성댁이 동향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너나들이 했던 터라 서울에서 우연히 만나 초대했다고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걸, 1930년대엔 너무나도 흔했던 방식으로 옆구리나 한 대 쥐어박지 못하고 아무소리도 못 한 채 그냥 발길을 돌려 집을 나선 순간, 청요리 배달 소년이 커다란 음식 상자를 들고 인사를 꾸벅 하고는 자신이 방금 나온 집으로 쏙 들어가는 것까지 목격하고도, 그냥 집으로 왔다는 거 아닌가. 이런 인간을 우리는 흔히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한다. 원래 이리 나사가 좀 빠진 사람이 행복할 확률이 더 높으니 뭐라 하기도 좀 그렇다.
  이외에도 무수한 사람들이 등장해 다 소개하려면 내일 아침 해가 뜰 때야 마칠 수 있을 터이니 이쯤에서 그만두고, 딱 한 명,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소개하고 독후감을 끝내겠다.
  청계천변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사건의 목격자는 이발소에서 사환으로 일하는 소년 재봉이의 눈을 통해 언급이 되는데, 이발소에서 천 너머로 카페가 있으니 옥호를 ‘평화’라고 했다. 평화 카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급은 하나꼬. 얼굴도 예쁘고 나긋나긋하고, 알고 보면 마음씨도 옹골찬데다가 매운 마음도 있는 괜찮은 ‘젊은’과 ‘어린’ 사이의 아가씨. 그러나 소개하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꼬가 아니라 무뚝뚝하고, 못생기고, 늙은 여급인 ‘기미꼬’다. 이런 여급이 아직도 평화 카페에 있을 수 있는 건, 다른 건 몰라도 술 하나 장하게 마셔 이이가 앉은 테이블에서는 남자들이 여럿 마신 술보다 기미코가 목구멍으로 부은 술의 양이 더 많아 매상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해주니, 주인 입장에선 감히 기미코를 외모가 안 된다고 함부로 내칠 수 없는 일. 거기에다가 이를테면 웬만한 불량한 남자는 말도 못 붙일 만큼 협기俠氣도 대단한데다 천성이, 이거 정말인데, 천사다, 천사. 소설 속이니까 이런 사람을 볼 수 있지 실제의 삶에서는 도무지 찾을 도리가 없는 의리의 여걸.
  책의 주인공은 없다. 청계천변에 사는 무수한 소시민과 소자본가와 광교 다리 밑 깍쟁이들까지 눈에 띄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들이 사는 모습을 구태여 힘주어 찬양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조금쯤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박태원의 시선. 글쎄, 앞에서 말했듯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박태원은 이 작품을 써서 모더니즘과 작별을 고하려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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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6-15 14: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박찬순이라는 작가의 <암스테르담 완행열차>라는 소설모음집에 보면 ˝성북동 230번지˝라는 단편이 들어있는데 이곳이 예전에 박태원이 살던 곳 주소래요. 박찬순 소설가가 박태원에 대한 오마주로 쓰게 된 소설이라고 하더군요.
박태원이 다른 소설가의 오마주 대상이 되는 매력이 무엇일까요.
저도 그때 박태원의 소설을 찾아읽어보는 대신 작가의 이력만 훑어보다가 봉준호 감독과의 관계를 알게 되는데서 그쳤지요.
구보는 박태원의 호. 이번 기회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부터 읽어봐야겠어요.

Falstaff 2020-06-15 14:57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박찬순을 검색해봐야겠습니다.
후세 작가들은 주로 그의 초기작, 모더니즘을 지향하던 작품들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우리나라 근대 소설 가운데 괜찮은 작품이 생각보다 제법 있더라고요. 그간 건방지게 우리 근대 소설을 멀리 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