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별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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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에 볼라뇨는 두 작품,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과 <먼 별>을 발표한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에서 나오는 마지막 열전列傳인 “악명 높은 라미레스 호프만”은 이렇게 시작한다.


  “악명 높은 라미레스 호프만의 작가 이력은 틀림없이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 대통령이던 1970년 또는 1971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메리카의 나치문학, 을유출판사, 2009, 172쪽)


  반면에, 오늘 읽은 <먼 별>은,


  “내가 카를로스 비더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1971년이나 1972년 무렵이었다.”


  볼라뇨는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서문’ 형식으로 이 책 <먼 별>이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의 마지막 장, 칠레 공군 라미레스 호프만 중위의 이야기임을 딱 밝히고 시작한다. 그러니 라미레스 호프만 중위는 <먼 별>에서 나오는 곡예 비행사 카를로스 비더 공군 중위와 같은 인물로 봄이 마땅하다. 작가는 앞서 발표한 작품의 한 장章을 할애한 라미레스 호프만 이야기가 “지나치게 도식화되어 서술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곧바로 같은 인물을 주요 등장인물, 심지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후속작품을 써서 제목을 <먼 별>이라고 붙였을 수 있다. 그러니까 <먼 별>은 이름을 ‘카를로스 비더’로 바꾼 “악명 높은 라미레스 호프만”의 상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화자 ‘나’와 친구 비비아노 오리안이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칠레 제2의 도시인 콘셉시온 대학에 다닐 때였는데, 젊은 시인이었던 후안 스테인이 운영하는 시 창작교실이었으며 당시 카를로스 비더가 사용하던 가명은 ‘루이스 타글레’였다. 이이는 건장한 체격의 미남에 누구보다도 옷을 ‘지나치게’ 잘 입고 다녔으며, 어떤 복장을 하더라도 늘 값비싼 브랜드의 것들만 몸에 걸쳤는바, 당연히 많은 여성들이 루이스 타글레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창작교실엔 일란성 쌍둥이 베로니카와 앙헬리카 가르멘디아 자매도 등록을 했고, 당연히 매우 아름다운 자매라서 ‘나’와 비비아노를 비롯한 거의 모든 남자들이 어떻게 한 번이라도 수작을 부려볼까 궁리하는 모습이 훤하게 보였을 정도였다. ‘나’는 앙헬리카를, 비비아노는 베로니카를 마음에만 두고 언제 고백을 해야 하나, 고민만 한창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불쑥 나타난 루이스가 그만 베로니카의 마음을 홀랑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한편 시인 후안 스테인은 친한 시인 친구가 있었으니 ‘디에고 소토’라는 인물. 후안 스테인은 칠레의 전통 가정시 같은 서정시를 하는 반면에 디에고 소토는 좀 과격한 초현실주의 비슷한 전위적인 시 작풍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소토의 창작교실은 의과대학 안에 있어서 늘 해부실의 포르말린 냄새가, 심하거나 약하거나 간에 공기 중을 떠돌아 이를 잊기 위해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 대고는 했다. 당시 콘셉시온에 있던 일종의 경쟁업체인 두 시인의 창작교실에 동시에 등록을 하고 다닌 인물이 딱 세 명이 있었으니, ‘나’와 비비아노, 그리고 타글레였다. 이쯤 되면 또 문득 떠오르는 볼라뇨의 다른 작품이 있다. 그렇다. 전위적인 “내장 사실주의” 시를 창작하기 위한 그룹의 구성원들의 이야기인 <야만스러운 탐정들>. 이 책에서는 야만스러운 ‘탐정들’ 대신에 야만스러운 ‘시인들’이란 말을 상당히 잦은 빈도로 사용한다. 이미 2년 후에 발표할 작품의 제목을 이때 구상한 듯하다.
  젊은 시인 지망생들이 갖가지 시를 쓰고 있던 시절에 타글레는 다른 시인 지망생들하고 완전히 구별되는 태도를 견지한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타글레의 시를 혹독하게 비난을 해도 열을 받기는커녕 불평 없이 수용을 하고, 남의 시 작품에 대해서는 언제나 신중하고 간결하게 비평을 할뿐더러, 항상 예의바른 톤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 즉, 자기가 지은 시와 무심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독특한 지망생인데, 이런 태도는 디에고 소토로 하여금 타글레의 시가 자기 작품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런 눈치는 다들 별로 다르지 않아 시 동인지를 만들기 위해 몇 명이 모여 논의하다가 잡지 안에 타글레의 시를 포함시키자는 의견이 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일화도 겪는다.
  여기까지 읽을 때, 그냥 그런 소설이겠거니 했다. 왜냐하면, 고백하건데 <아메리카의…>를 읽은 지가 오래되어 작품의 연관성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후 벌어질 쇼킹한 사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1973년이 되어 피노체트가 대통령 궁에서 저항하던 아옌데를 죽이고 정권을 잡는다. 콘셉시온에도 계엄령이 발령이 되어 어수선한 시절을 맞아 가르멘디아 자매들은 콘셉시온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시미엔토의 부모 집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부모님은 자매들이 열다섯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한 날 한 시에 즉사를 해서 지금은 큰 이모 에마 오야르순 여사와 마푸체 족 인디오 가정부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 이 집에 루이스 타글레가 방문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유쾌한 잡담을 하다가, 큰 이모 오야르순 여사를 비롯한 자매들이 너무 늦은 시간이니 하루 자고 날 밝으면 떠나라고 제의를 했고, 못이기는 척 하면서 타글레가 이를 받아들여 이층에 빈 방을 하나 얻었는데, 평소에 눈이 맞아 있는 상태였던 베로니카의 침실에 몰래 들어가 한 번 관계를 한 다음, 모든 여자들이 깊은 잠에 빠진 암흑의 공간에서 1층으로 내려간 타글레가 에마 이모의 방에 소리 나지 않게 들어가더니 베개로 노인의 얼굴을 덮어 누름과 동시에 휘어진 단도로 단숨에 목을 그어버렸다. 이어 다시 방에서 나와 하녀의 방에 잠입해보니, 타글레가 신 혹은 악마는 아니어서 마푸체 족 인디오 가정부는 이 새벽에 몸을 숨겨 벌써 달아나버려 빈 침대만 남아 있었다. 때를 맞춰 차를 타고 도착한 네 명의 남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15분이 지난 다음에 일사불란하게 다섯 명의 남자가 집을 떠났는데, 집에서 시신은 절대로 발견되지 않을 것이었으며, 이때 집에서 나온 살인자는 타글레가 아니고 ‘카를로스 비더’였던 거였다. 여기까지가 총 10 장章 가운데 첫 번째 장의 내용이다.
  이후 남아메리카에서 독일의 제4 제국 건설을 꿈꾼 카를로스 비더의 활약상이 펼쳐지고, 활약의 결과물을 찍은 사진 전시가 문제가 되어 공군에서 추방된다. 그 후 유럽으로 흘러간 것을 ‘나’의 친구 비비아노가 끈질기게 추적을 해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이 <먼 별>이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관련 있는 이이의 다른 두 작품을 떠올리게 되는 천생 볼라뇨 소설. 볼라뇨의 팬이라면 꼭 읽어야 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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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1 창비세계문학 79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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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까지 읽은 요사의 작품을 출판 순으로 나열해보자.


  1. <판탈레온과 특별 봉사대> 1978
  2. <나는 훌리오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982
  3. <세상 종말 전쟁> 1984
  4. <새엄마 찬양> 1990
  5.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노트> 1998
  6. <염소의 축제> 2001
  7. <천국은 다른 곳에> 2003
  8. <나쁜 소녀의 짓궂음> 2007


  1은 코믹한 정치소설이고 2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희극.
  3은 심각한 수준의 농민반란,

  4와 5는 연작이라고 볼 수 있는 에로티시즘과 미술 비평
  6은 라틴 아메리카의 고질병이었던 군부독재를 다룬 정치소설 

  7은 명백하게 고갱을 염두에 두고 쓴 미술 천재에 관한 이야기
  8은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에 개인사를 겹쳐놓은 재미있는 잡탕.


  그럼 이번에 읽은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는 어느 범주에 들까? 군사정부 시절, 이들과 결탁할 수밖에 없었던 부르주아 가정을 중심으로 정치적 혼란과 가족 구성원을 둘러싼 수다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염소의 축제>와 <나쁜 소녀의 짓궂음>과 비슷한 범주에 넣어도 될까?
  나는 여태 요사의 대표작으로 <세상 종말 전쟁>과 <천국은 다른 곳에>를 들어왔다. 두 작품이 워낙 다른 성격이라서 하나의 대표작을 고르는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작가라고 생각해왔는데, 작가는 직접 쓴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서문의 마지막에서 놀랍게도,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만약 불구덩이 속에서 내 작품 중 하나만 구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않고 이 작품을 선택할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옆에 노트 한 권을 펴 놓고 손에 볼펜을 쥐고 첫 장을 넘긴다. 이해가 가고 눈에 그림이 그려지시지? 비장한 마음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이 세계적 설레발 꾼이 다른 건 다 불에 타 버리는 걸 자신의 눈으로 보더라도 이 책만은 불구덩이에서 빼내겠다지 않는가 말이지. 그런데 참고해야 할 것이 하나가 더 있으니 서문을 쓴 시점이 1998년 9월. 위 작품 리스트에서 6, 7, 8번은 세상구경을 하지 않은 상태였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힘을 주고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짚어가며 읽어야 했으며, 그것도 (특히!) 스페인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창비 특유의 표기법에 대책 없이 난타 당해가며 공개하기에 쪽팔릴 정도로 빽빽한 메모를 해 무려 여덟 페이지를 메우고 난 후에야 책 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아, 물론 진짜로 ‘뻬루’ 사람들이 그렇게 발음하겠지만 읽기에도 곤란한 우리의 등장인물들, 주인공 싸발라 싼띠아고를 비롯해 그의 술친구 까를리또스, 애완견 바뚜깨, 주근깨가 빽빽하게 박힌 친한 친구이자 나중에 매부가 되는 뽀뻬예 아레발로 등을 꼼꼼하게 읽어나가니, 이게 웬 일? 글쎄 교정에서 놓쳐 그대로 드러난 오식, 오타, 빠진 글자 등이 눈에 확, 다른 책들보다 훨씬 선명하게 보이더라는 것. 야, 창비가 다른 건 몰라도 교정, 교열에 관해서는 굉장히 신경 쓰는, 타의 모범이 되는 회사인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더구만 그래, 아오!
  애칭 ‘싸발리따’라고 불리는 주인공 싸발라 싼띠아고는 1948년 꾸데따를 성공시켜 집권한 마누엘 아뽈리나리오 오드리아 장군 시절에 제약회사와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품위 있고, 점잖고, 아랫사람과 유색인종에게 너그럽고, 하인 하녀 운전수들에게 활수하여 그들의 애로사항을 잘 들어주고 해결까지 해주는 천생 호인처럼 보이나 사실은 바로 그것들을 무기로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위 하게 만드는 진정한 의미의 초고단수로 교활한 인물인 페르민 씨와 쏘일라 여사 사이의 2남 1녀, 아들-아들-딸 가운데 두 번째 아이로, 어려서부터 놀랍도록 명석한 두뇌로 늘 전교 1등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 주위의 기대를 받았으나 부르주아나 고관들의 자제들이 주로 다니는 까똘리까 대학 대신 천한 유색인, 소위 촐라들이 많이 다니는 싼마르꼬스 대학을 선택하여 부모의 속을 썩이고 있었다. 이 싼마르꼬스 대학으로 말할 거 같으면 뻬루, 에잇, 편하게 쓰자, 페루에서 가장 급진적 학생운동의 본산으로 툭하면 반정부 시위를 해대고, 현재 법에 의하여 불법행위로 간주하고 있는 공산당의 세포가 침투해 있는 곳이었으니, 정경유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 페르민 씨 입장에선 실망이 대단하긴 했겠다.
  근데 그건 조금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지금의 싸발리따는 싼마르꼬스 법과를 3학년 2학기까지 끝냈나 못 끝냈나 확실하게 밝히지 않아 특정할 수는 없지만, 하여간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일단 집에서 뛰쳐나와, 독신생활을 고집하는 큰아버지 끌로도미로 씨의 주선으로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잘 나가는 신문사 ‘끄로니까’지(紙)에 입사해 지방소식 담당기자를 거쳐 나이 서른을 조금 넘은 현재는 당당하게 사설을 쓰는 논설위원의 자리에 앉았으니 언론계에선 나름대로 성공을 한 인물이다. 그럼 뭐해. 봉급쟁이는 봉급이 얼마냐가 가장 중요한 성공의 척도임에, 페루의 언론계는 다른 산업에 비하여 박봉으로 악명이 높아서, 가족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유색인 간호사 출신의 배우자 아나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집에서 그냥저냥 즐기며 사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근데 부부 사이에 애가 없다. 주위에서 보면 이런 경우는 대개 혼인 전에 임신을 해서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중절을 하고는 그 후유증으로 생긴 불임일 확률이 높다. 이 부부 역시 혼인 전에 임신을 하고 중절 수술을 받은 건 맞는데 서로 동의 아래 딩크족으로 사는지, 아니면 역시 중절수술의 후유증인지는 딱 집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여간 그래서 파트타임으로 간호사 일을 하는 아나가 어느 날 흰 털투성이 강아지를 사양하지 못할 수준의 선물로 들고 와서 잔뜩 정을 붙이고 살던 중에 일이 벌어진다.
  하필이면 당시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광견병이 유행을 했다. 나 초등학교 다닐 때 서울에서도 광견병이 유행했던 적이 있어 동네 넝마주이들이 날마다 개 잡아 포식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페루에서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그래서 대 ‘끄로니까’ 지의 논설위원인 싸발라 싼띠아고는 일주일에 두어 번씩 광견병 예방을 촉구하는 사설을 써 제꼈고, 이에 자극을 받은 리마 시청에서는 임시직 고용인들을 풀어 리마 시내에서 눈에 띄는 개, 물론 혼자 다니는 개들을 몽땅 잡으라는 지시를 내려 한 마리당 1쏠(당시 페루의 화폐단위. 지금 대강 보면 한 만 원 이쪽저쪽 하는 거 같다.)을 지불했다. 그랬더니 흑인과 원주민들 사이의 혼혈들을 주축으로 한 개 사냥꾼이 막무가내로 개만 봤다하면 잡아갔는데, 하루는 싼띠아고의 아내 아나가 목끈을 하고 산책을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험악하게 생긴 흑인이 목끈까지 빼앗아 그 길로 바뚜께를 트럭에 싣고 가버렸다. 아나는 넋을 잃고 멍하니 서 있다가 곧바로 집에 들어와 엉엉 울어대다가 집에 들어온 남편 싼띠아고를 앞에다 놓고 드잡이를 시작했다. 빨리 가서 개 찾아오라고. 하긴 애 없는 대신 키우는 개니 정도 들만큼 들었겠지.
  부잣집 도련님 출신인 싼띠아고가 리마 어느 구석에 유기견 보호소가 있는 줄 아나. 그리하여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알아내 빈촌 가운데도 빈촌인 ‘뿌엔떼 델 에헤르시또’의 개 보호소, 라기 보다 도살대기소에 가서 우여곡절 끝에 아들 같은 바뚜께를 구출해내는데 성공한다. (비참한 환경의 개 집합소, 귀가 먹먹하게 만드는 개 짖는 소리, 질퍽질퍽 물이 고여 있는 흙바닥과 개의 분변, 파리 떼 등을 천하의 이야기꾼 요사가 묘사해놓은 건 이 글을 읽는 분의 건전한 식사를 위해 생략하는 것을 용서해주시라.)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 순간에 닥스훈트 한 마리가 유독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고, 천하의 빈민굴, 여기까지 온 잘난 기자양반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기도 한 관리인이, 인디오와 흑인 혼혈을 천하게 부르는 호칭인 쌈보 몇 명을 불러 모종의 행동을 지시했고, 이들은 자루에다 닥스훈트를 집어 자루의 주둥이를 묶더니, 인간의 역사에서 진짜로 발생을 해서 기록까지 해놓았던 일인데, 진나라 시황제가 어머니와 가짜 환관 노애嫪毐와의 사이에서 낳은 어린 아들, 그러니까 씨 다른 형제 둘을 자루에 넣어 고깃덩어리가 될 때까지 때려죽인 것을 그대로 흉내 내 거구의 쌈보 두 명이 두꺼운 몽둥이로 자루에 든 닥스훈트를 두드려 패 유혈이 낭자하게 죽여 버렸다.
  근데 이 가운데 한 명의 쌈보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싼띠아고. 순식간에 머리를 확 돌려보다가 드디어 알아본다. 한 때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의 운전기사로 일하던 암브로시오 빠르도. 물론 싼띠아고는 그의 성姓 ‘빠르도’까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가 빠르도인지도 몰랐지만. 그리하여 싼띠아고는 암브로시오에게 아는 척을 하고, 암브로시오는 또 싼띠아고의 아버지인 페르민 씨를 존경하는 바가 대단하여, 아이고 도련님, 하필이면 여기서 뵙네요. 페르민 나리는 건강하신가요? 큰 도련님하고 떼떼 아가씨는 다 결혼 하셨고요? 부터 시작해 오랜만에 싸발라 가문의 사람들을 만난 기쁨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거다. 작은 나리, 이렇게 진흙탕에 서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디 가서 맥주라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나 좀 하시지요. 하면서 암브로시오가 싼띠아고를 데리고 간 추레하고 지저분하고 중국인이 카운터에 앉아 있는 레스토랑 겸 술집의 이름이 바로 “까떼드랄.” 이 주점에 들어 싼띠아고와 암브로시오는 무려 댓 시간에 걸쳐 길고 긴 대화를 하며 맥주를 무지하게 많이 마셔댔고, 다음날 아침, 많이 마신 맥주 탓에 어질어질한 두통을 안고 암브로시오가 했던 이야기들, 그 사이사이에 싼띠아고의 회상을 엮어내 본문만 천 쪽이 넘는 장편소설의 막이 드디어 올라간다.
  흠. 이렇게 해서, 나는 본문의 내용을 한 마디도 소개하지 않고 독후감을 끝낼 수 있었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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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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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인이 처음 비단 구경을 해 본 것이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절이든가 하드리아누스 때던가, 하여간 서아시아 지역에서 사라센 사람들하고 맞장을 뜨러 군사들을 횡대로 늘어세웠는데, 야만인들인 줄 알았던 사라센 군대의 기치가 분명히 천으로 만들어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살랑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햇빛을 받으면 빛이 반짝반짝 나는 놀라운 모습의 것이었다고, EBS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어느 황제 시절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중국에서 로마까지 비단길이 뚫린 것은 다 아시는 이야기일 터이고.
  근데 이 비단이란 것이, 유럽의 경우엔 5월 초에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30일간 미친 듯이 뽕잎을 뜯어먹고는 곧바로 고치가 된 후 2주가 지나야 고치 하나에 천여 미터의 생사를 생산할 수 있는 단계가 된단다. 그것도 유럽 전 지역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고 프랑스 남부의 몇 군데서만 가능하다고 책에서는 주장하는데, 이건 작가 바리코가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지대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리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설마 같은 위도의 스페인에서도 누에가 자라지 못했을까.
  소설의 시작은 1861년. 플로베르는 <살람보>를 집필 중이었고, 전깃불은 아직 이론에서나 가능한 현상이었으며,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대륙의 대통령 링컨은 자신은 결코 결말을 알지 못하고 생을 마칠 전쟁이 한창이었다. 이때 주인공 에르베 종쿠르의 나이 32세. 장소는 남프랑스의 라빌디외 마음. 종쿠르가 하는 일은 매년 연초에 물길 1,600마일, 육로 8백 킬로미터를 배타고, 걸어 시리아나 이집트까지 가서 누에알을 사와 4월의 첫 번째 일요일, 대미사를 드리는 시간에 맞춰 고향 라빌디외의 잠업업자에게 되파는 일이다.
  당시로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1841년에 라빌디외 마을에 들어와 정착한 발다비우라는 현명한 사람이 있었다. 이이가 마을에 들어와 강 하구에 제사공장을 짓고, 숲을 등진 오두막에서는 누에를 치는 일을 하더니, 이 비단이란 것으로 얼마나 돈을 벌었느냐 하면 무려 동네 사람 30여 명을 일꾼으로 고용하더니 7개월 만에 3만 프랑의 수입을 올렸으며 비비에르로 향하는 길과 만나는 네거리에 성녀 아그네스를 위한 작은 예배당을 지을 정도였다. 처음에 마을에 들어와 읍장에게 비단 사업을 소개할 때 읍장실에서 쫓겨난 이력이 있는 발다비우 씨는 이번엔 돈을 가지고 읍장에게 가져가, 이 돈이 주장하는 건, 읍장 당신이 바보 멍청이라는 뜻이라고 한 말씀을 한다.
  이 발다비우 씨가 현명한 건 자기 혼자 제사공장을 더 지어 즐겨도 좋을 것을 그렇게 하지 않고 사업의 비결을 널리 알려 뜻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쉽겠어? 정말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그래 5년 후에는 동네에 모두 일곱 개의 제사공장이 생겼고, 조그만 라빌디외 마을은 양잠업과 견사공장에 관한 한 유럽에서 가장 이름난 고장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이렇게 잘 나가다가 유럽의 양잠업계에 전염병이 창궐하는 1853년을 맞아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발다비우 씨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사람 하나를 찾기 위해 늘 거리에 앉아 두리번거리다가, 당시에 육군 소위였던 에르베 종쿠르를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에르베 종쿠르가 누군가 하면, 발다비우 씨를 초면에 문전박대했던 읍장의 아들. 읍장은 아들이 육군 장군으로 출세하기를 원하는데 이제 주로 여자들의 옷감을 만드는 야릇한 직업을 가지게 될 찰나니 기분이 좋을 수 있겠나. 그러나 발다비우 씨가 거의 강권을 해서 에르베를 시리아와 이집트로 보내 누에알을 사오게 했고, 덕분에 일 년에 겨우 세 달만 여행 삼아 일을 하고 나머지는 편히 쉬는 신선놀음을 해도 마을 어귀에 큰 집을 짓고 시내 한 복판에 작은 작업실까지 두는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된 거였다.
  근데 에르베 종쿠르가 잠업계에 데뷔하고 8년이 지난 현재, 즉 1861년에 다시 거대한 누에 바이러스가 들이닥쳐 전에 다시없는 황망한 처지에 빠져들고 말아서, 참 독특한 감각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소설 <비단>이 탄생한다.
  발다비우 씨가 에르베 종쿠르를 불러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살아남으면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가 누에알을 사와야 한다고 선언한다. 일본? 찢어진 눈을 한 창녀의 나라? 그건 85년가량이 더 흘러 원자폭탄이 터진 이후의 일본이고, 1861년은 오에 겐자부로가 쓴 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 다음 해로, 미국의 페리제독에 의하여 개항을 하고 불과 8년이 지난 아직 개화가 덜 된 나라였다. 그리하여 에르베가 발다비우 씨에게 묻기를, 그 나라가 어디 있는 거예요? 당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단을 생산하는 나라로 비단은 팔지만 누에알을 나라 밖으로 빼돌리는 인간에겐 가차 없이 사형에 처하던 나라였다. 절대 법을 어기는 법이 없는 남프랑스의 신사들도 땅 끝을 지나고 바다까지 건너에 있는 지구상 마지막 나라에선 법 좀 어겨도 별 탈이 없으리라 여겨 모두 동의해 에르베를 일본으로 보낸다. 마지막 희망으로.
  에르베 종쿠르는 남프랑스에서 오스트리아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시베리아, 스텝지역과 바이칼 호, 이어서 아무르 강줄기를 따라 태평양을 만나 여기서 네덜란드인 밀수꾼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도보로 이시카와, 도야마, 니카타, 후쿠시마, 사라카와라에서 또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작은 섬에 도착해 도주, 섬의 주인인 하라 케이와 접견, 누에알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이미 아름답고 선량한 아내 엘렌을 사랑하지만, 에르베 자신에게 앞으로 상당한 기간 ‘불멸의 여인’으로 남을 동그란 눈의 어린 모습을 한 여인을 만난다.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를 매 페이지 놀라면서 읽고 나서 작가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이 책 <비단>을 사서 읽었다. 당신은 아는가? 168쪽에 에르베 종쿠르가 발다비우 씨에게 묻는 것을.

  “무언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죽어가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절대로 모를 것입니다.”

  이런 사무침 하나를 갖고 사는 사람들은 불행하고,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더욱 불행한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위의 인용문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이것이 나를 내내 괴롭혔다. 신파? 감각? 그래서 결론을 내기를, 신파와 감각 사이에 비단 실을 걸쳐놓고 그 위에서 벌이는 절묘한 줄타기라고. 이 책이 5쪽에서 시작해 212쪽에서 끝나니 모두 208쪽의 분량이다. 그렇지만 한 페이지에 단 11줄, 모두 65절인데 절마다 새로운 페이지에서 시작하니 사실 중편 정도. 신파가 됐던 감각적 호소가 됐던 간에 어쨌든 아름다운 문장인 것은 사실이니 읽는 즐거움을 보장할 수 있는 책이고, 바리코의 대표작으로 거론하는 작품이지만 현재 품절 상태다. 나는 새 책 수준의 헌 책을 사는 행운을 누렸다. 이 책의 ‘찐’은 제일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 나온다. 그러면 위의 의문, 신파냐 감각이냐 하는 줄타기에서 결론은 감각적 아름다움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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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이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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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얼굴은 많이 봤는데 정작 이이가 쓴 소설은 한 권도 읽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서 읽었다. 뭐 이런 것도 인연이다. 원 제목은 <La Classe de Neige>, 영어로 하면 <The Snow Class> 우리말로는, 애매하다. 1999년 출판사 열린책들이 전미연의 번역으로 이 책을 처음 냈을 때의 제목이 <스키 캠프에서 생긴 일>이었다가 2000년에 양장본으로 바꿔 내면서 <겨울 아이>라고 바꿨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냥 <스키 캠프>나 <겨울 캠프>라고 했으면 딱 좋았을 뻔했다.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 1957년 닭띠 남자. 책을 썼을 때가 1995년, 서른여덟. 이 작품으로 프랑스의 3대 문학상이라고 일컬어진다는 ‘페미나 상’을 받았단다. ‘페미나’상, 이름이 이상해서 검색을 해보니, 1903년 시작한 공쿠르 상의 심사위원이 전부 남자들이었던 것에 대한 반동으로 1904년에 22인의 여성작가들만을 심사위원으로 초빙하는 문학상을 제창했으니 이름하여 Prix Femina, ‘페미나상’이라 했단다. 다만 수상작은 여자가 쓴 작품이건 남자가 쓴 작품이건 구분하지 않았다고.
  상을 받았건 안 받았건, 그건 독자에게 그리 큰 의미는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별점을 세 개 정도 생각했다. 계속해서. 그러나 뒤로 갈수록 어, 이게 좀, 심상치 않은 긴장감을 갖게 만드는 힘이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흠. 비록 번역을 거치기는 했지만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생각을 통해 작가는 밝히지 않은 특정 사건의 외형을 만들게 하면서 불안정하게 만든 외형마저 안전하지 않은 두 발 또는 세 발의 수레 위에 올려놓게 하는 문장들의 조합, 즉, 놀라운 구성을 갖춘다. 만일 별점으로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책에 무려 다섯 개, 즉 만점에 해당하는 별점을 부여하고 싶지만, 책을 읽고 ‘즐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의 취향이라, 책의 주제가 내가 극히 피하고 싶어 하는 방향이라 굳이 하나를 빼 네 개의 별을 준다. 그러니 카레르가 주로 다루는 분야를 좋아하시는 분에겐 대박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주인공은 꼬마 니꼴라. 1년 반 전에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를 떠나 갑작스럽고 황급하게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사할 당시에도 아버지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외과 의료기구 외판원이어서 큰 상담을 위해 장기 출장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초등학교는 겨울을 맞아 스키 캠프로 떠나기로 결정을 한 상태. 그러나 열흘 전 다른 도시에서 스키 캠프로 출발한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트럭과 정면충돌해 많은 아이들이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가 나겠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냥 하나의 사건이므로 그냥 계획대로 스키 캠프를 진행하기로 한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니꼴라의 아버지. 아버지는 학교로 쳐들어가 담당교사에게 출발 다음날 자신이 직접 니꼴라를 캠프를 여는 산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통보하고 그대로 한다. 그래 산장 앞에다가 니꼴라를 내려주고 작별 키스를 하고 아버지가 다시 방문판매를 위해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첫 장면이다.
  니꼴라는 전에 아버지, 동생, 이렇게 삼부자가 놀이동산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재미난 회전 열차를 타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있다. 당시에는 나이가 맞지 않아 타려면 아버지하고 함께 타야 했지만 아버지는 동생 혼자 남겨두고 기구를 탈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불만에 차서 이유를 물어본 니꼴라에게 아버지는, 자기가 직접 어느 의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소년을 납치해 온몸의 장기와 눈알을 적출하고, 남은 몸통을 절단해 풀숲에 버리는 인간 사냥꾼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면서 결코 동생을 혼자 남겨둘 수 없노라 했다. 이때부터 니꼴라는 소년 납치와 장기적출, 사지절단이라는 공포, 환상, 은근한 선망 같은 것을 시작했고 그것이 요즘 읽은 엽기적인 동화 내용과 섞여 삶 속의 혼돈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어느 노부부에게 죽은 원숭이의 다리가 생겼다. 이 원숭이 다리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이걸 가지고 있는 사람의 소원 세 가지를 들어준다고 했다. 그래 먼저 영감이 지붕을 수리할 돈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이 다니는 공장의 생산부장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아들이 거대한 톱니 사이에 끼어 점점이 흩어져 죽었으니 장례를 지내라고 돈을 내놓았는데 그게 딱 지붕을 수리할 수 있는 금액의 돈이었단다. 아내가 남편을 쥐어뜯으며 하필이면 그런 소원을 빌어 아들을 죽게 했느냐고, 내 소원은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거라고 했다. 아니나 달라, 아직 제대로 수습도 못한 아들의 시신 쪼가리들이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꾸물대며 기기도 해서 붉은 피를 묻히며 집 안으로 꿈틀대며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어쩔 수 없이 노부부는 마지막 소원으로 이것들을 당장 없애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단다.
  물론 당신도 알고 있던 엽기다. 그런데 여자아이는 모르겠고, 남자아이들은 이런 엽기와 비상식적인 공포가 사라지면서 소년기가 끝나고 청년기가 시작되는 거다. 주인공 니꼴라는 장기적출과 신체절단 등의 엽기적 공포의 절정에 있는 소년으로 이제 아버지에 의하여 하루 늦게 스키 캠프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떠나자마자 곧바로 알아챈 것이 자기 배낭이 떠나버린 아버지의 차 트렁크에 외과 의료기구와, 의족과 의수와 함께 실려 있다는 거. 하여간 이런 가지가지 곤란한 처지를 당한 주인공 니꼴라는 교사와 현지 캠프 선생들과 학년 짱을 먹고 있으나 20년 후에는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붉은 포도주병과 스테인리스 칼이 담긴 구겨진 포장지에 싸인 소시지를 먹고 마시는 거구의 부랑자가 되는 오드칸의 보살핌을 받아 그나마 적응을 하는데, 아뿔싸, 캠프에서의 첫날밤에 난생 처음 몽정을 하고 만다.
  아직 새벽이 오려면 한참 남은 깊은 밤, 비뇨기 외에 어떠한 다른 기능이 있는지도 모르는 다리 사이의 작은 기관에서 분출한 해파리의 분비물 같은 느낌의 액체, 이것을 니꼴라는 오직 자신에게만 빚어진 초자연적이고 불길하고 저주받은 무엇으로 생각, 생각이라기보다 몰두하여, 그토록 추운 밤, 맨발로 산장의 ‘어두운 터널 같은 복도를 걸어 현관을 여니, 그곳은 눈의 나라였다.’ 니꼴라는 눈 덮인 공터를 가로질러 여태 맨발인 채 도로로 접어들어 캠프 교사 파트릭의 (몇 번을 확인하고 확인했지만 진짜 이렇게 씌어있다.) ‘잠겨있는 차’에 들어가 운전석에 쪼그리고 있다가 극적으로 아랍의 왕세자 같은 파트릭에게 구조된다.
  이렇게 작가 카레르는 숱한 기호를 작품 속에 뿌리고 있으나 기호들을 몇 개나 뿌렸는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불친절하여 별로 힌트를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짧은 소설이고 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만의 말씀, 해석의 방법이 대단히 많은 특이한 작품이다. 물론 해석은 책을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그렇게 다른 해석들 모두 다 옳은 해석이다. 그것이야말로 전적으로 독자의 것일 터이니.
  여담으로 덧붙이면, 나는 이 책처럼 끝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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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7-09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읽고 반해서 엠마뉘엘 카레르 다른 책도 찾아읽었는데요, 최근 나온 작품은 예전만 못한 거 같더라고요. ㅎㅎㅎ

Falstaff 2020-07-09 10:25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이 책은.... 제 취향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내내 하게 만들더군요. ㅎㅎㅎ
 
문주반생기 범우문고 80
양주동 지음 / 범우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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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올라가서 처음으로 교과서를 통해 양주동의 글을 배운다. <몇 · 어찌>. 지금 읽어보니 수필을 중학생 수준에 맞게 자르고 쉬운 말로 풀어쓴 글이었다. 양주동, 자칭 우리나라의 최고 천재이자 국보 1호이자, 연세대학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 이후로 꼭 ‘박사’라는 호칭을 가져다 붙이는 양주동 박사는, 지금 종편에서 출현하는 정도로 치면 원래 시를 썼다가 문화비평가라고 하기도 하다가 상당한 수준의 음악평론도 했다가, 이젠 별의 별 참견을 다 하는 김갑수 정도의 빈도로 TV에 출연을 해, 익히 이이의 입심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벌써 천국의 환희를 맛보고 계신, 편히 쉬시기를, 이주사께서 직접 양박사를 사사하셨는지라 흑백 TV에 양박사가 나오기만 하면, 이 양반의 말버릇이라든지, 혹시나 강의실에 간혹, 아주 간혹, 당시가 1950년대였으니 진짜 드물게 여학생이라도 한 명 있으면 지금 시절 같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은유법을 사용해 은근한 음담까지 곁들이기도 하고, 양복 윗저고리 호주머니에 든 땅콩을 까먹으며 특유의 구수한 입담을 풀어놓아,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전공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학교에 청강 한 번 안 해본 학생들이 없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하시고는 했는데, 그중 백미는 워낙 수강신청 인원이 많아서 시험 본 후에 일일이 채점하기가 곤란하니, 1950년대의 일반 가정에서는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던 철제 선풍기 앞에 시험지를 올려놓고 선풍기 틀어 멀리 나가는 놈인지 아니면 가까이 떨어진 놈인지한테 A를 주었다나, 하여간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아니 될 천만의 말씀을 하시어,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는가, 의심도 해본 적이 있는, 말 그대로 당대의 인물이기는 했다.  선풍기와 학점 주는 이야기? 그거 진실일 거다. 내가 군대 갔다가 와서 복학한 1980년대에도 어떤 선생이 리포트를 요구하는데, 주문이 ‘원고지 다섯 매 이내’였으며 선생한테 잘 보여 학점 좀 좋게 받으려고 다섯 매를 넘겨 작성해 제출했다가 장렬하게 D 학점을 받는 것도 봤으니 하물며 1950년대에랴. 하여간 당대의 문제 교수였던 양박사는 하도 인기가 높아 특강하러 다니지 않은 학교가 없어 내 부모 두 분 다, 편히 쉬시기를, 양박사의 강의를 들은 바 있어 TV에 이 양반만 떴다하면, 사마천의 <사기>부터 <삼국지연의>, <당시>를 거쳐 향가 스물다섯 편과 고려가요의 남녀상열지사를 에두르고 난데없이 세기말 프랑스 시인들으로 훌쩍 뛰어넘는가 싶은데 또 영미 시인 등등 그야말로 국경도 없고 시대도 없고 동서양도 없는 잡학다식의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나니, 오늘에야 알았다. 두 분이 양주동 박사, 국학에 관한 실력으로 말하자면 당대에 감히 누가 있어 양선생에게 ‘박사’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을꼬, 어쨌건 평생소원이었던 ‘박사’라는 말을 듣고 그리 좋아했다 하니 이렇게 불러도 실례는 아니렸다, 이이가 쓴 《문주반생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플레이 온play-on, 하셨던 것이었다.
  지금도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위에 거론한 <몇·어찌>가 무엇인가 하면 수학의 한 분야인 기하幾何라는 것을 처음 접한 양주동 소년이, 기하? 기하? 과연 기하란 것이 무엇일꼬? 기幾는 ‘몇’이란 말이고 하何는 ‘어찌’란 뜻이니 합하면 ‘몇 어찌?’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말이지? 기하란 놈의 정체를 한 열흘 넘어 고민하다가 드디어 중학교에 입학을 해서 첫 기하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교사에게 “선생님! ‘기하’란 말이 대관절 무슨 뜻입니까? ‘몇 어찌’라뇨?”라고 질문을 했겠다. 선생이 한참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너, 영어를 하느냐?” 그리하여 “모릅니다.” 이어 선생께서 못을 박는 말씀. “그럼, 영어를 좀 알게 되거든, 그때에 가르쳐주마. 그런데 이놈아, 그 모가지가 무엇이냐? 내일은 잘 씻고 와!”
  한 번 몰두하면 눈에 뵈는 것이 없이 한 가지 궁리에 빠져버리는 이런 종류의 인간들이 노상 그렇듯이 ‘기하’라는 것의 뜻을 간파하기 위해 소년 양주동은 세수고 뭐고 도통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거였다. 그래 목에 새까맣게 때가 앉았던 것. 어쨌든 나중에 기하는 중국말로 ‘지호’라고 발음하며 서양에서 넘어온 측지술, 지오메트리geometry의 ‘geo'를 중국어로 쓴 것을 다시 그대로 우리가 쓴 거란 설명이다. 이게 나 중학교, 아마 1학년 때이지 싶은데, 그때 교과서에 실린 내용.
  근데 더 재미있는 게 있다. 이이가 현해탄을 건너 동경엘 가서 와세다 예과에 들어가려 시험을 치는데, 영어 문제에 “영국 황태자 전하께서 모월일에 본방(本邦:본국, 우리나라)을 내방하시와…”을 영어로 쓰라는 문제가 나왔단다. 그때까지 영어 독학을 했다하나 실력이 뛰어나지 못해 ‘황태자’나 ‘전하’ 같은 단어는 알지도 못하고 영감inspiration이란 단어도 한문을 통해 배운 터여서 ‘연사피리순煙士披里純’으로 발음했던 수준이라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영어로 만들어 답안지를 메꾼 것이, “The First Son of English Emperor visited this country…"였단다. 하여튼 하바드, 아니, 와세다 영어과를 졸업하고 평양의 숭실전문에 교수로 재직할 때 영어 입시 문제를 낸 바,
  "조선은 6월에 비가 많이 온다."
  라는 시험문제를 내니, 어느 지원학생이 답안지에 쓰기를,
  “Korea six moon rain many come"
  이라 해서 0점을 주었단다. 마지막에 피리어드만 찍었더라면 1점은 주었을 거라 하면서. 근데 미국인 교장이 양박사에게 어찌어찌하여 이 학생을 반드시 입학을 시켜야 하니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하더란다. 도대체 마땅한 설명이 없어 이 답안지를 보여주었더니 미국인 교장이 파안대소하며 이런 문장은 영시를 아주 잘 쓰는 해박한 영미 시인들이나 쓸 수 있는 수준이라 우겨, 0점 앞에다가 6자로 보태 60점을 주긴 주었는데, 미국인 교장의 권유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와세다 대학 입시를 칠 때 The First Son of English Emperor가 머리에서 삼삼해 그랬다나?
  이 책 《문주반생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잘난 척이다. 가히 당대의 혁명여걸 강경애와 1년을 동거할 만한 지적 수준의 재원인 것은 틀림없다. 이런 인간이 자기 자랑을 무려 책 한 권에 걸쳐 계속하면 대개 독자들이 짜증을 내다가 욕이나 한 바가지 쏟고는 책을 덮기가 십상인데, 천만의 말씀. 양주동 박사의 《문주반생기》을 읽다가 보면, 그가, “귀엽다.” 양박사의 우리나라 고전 해석에 관해서는 아직도 후학들이 그를 완전히 능가하지 못했을 정도로 탁월하고, 동서양과 시대를 초월한 지식과 정서와 문학적 요소 역시 지금 수준에서도 눈부실 정도에다가, 술에 관한 한 바탕 기행 역시 만만하지 않아 사실 이이가 할 말이 많기는 했을 거다. 그런데 어찌 이야기를 이리도 재미있게 하는지, 이이의 뻔뻔함이 오히려 무구하게 들려오는 것은 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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