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워치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라 워터스, 하면 <핑거스미스>가 떠오른다. 아무래도 박찬욱의 강렬한 영화 <아가씨>의 원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핑거스미스>, <나이트 워치>, <리틀 스트레인저>는 작가의 3, 4, 5번 작품으로 각각 2002년, 2006년, 2009년 맨 부커 상의 최종 리스트에 올라간 것들로 워터스의 전성기에 쓰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도 세라 워터스는 <핑거스미스> 한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재미있고 독특한 구성과 소재를 사용한다고 생각해 망설임 없이 <나이트 워치>를 구입했다. 나이트 워치. 야경꾼이라.
  세라 워터스는 켄트 대학에서 학사, 랭카스터 대학에서 석사를 하고, 런던의 퀸 메리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얻는데, 1870년대부터 현대까지 레즈비언과 게이 문학을 공부했다. 학위 공부를 마친 그간의 연구 결과가 바로 워터스 표 빅토리아 시대의 동성애 소설로 나오게 됐고, 빅토리아 삼부작을 마친 다음 무대를 2차 세계대전 중과 종전 후의 런던으로 옮겨 여전히 여성 동성애를 담았으니 바로 <나이트 워치>가 된다.
  <나이트 워치>는 모두 세 개의 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1부가 1947년, 2부는 1944년, 3부는 1941년으로 구분해, 각 시점에서 약 1924년생 정도로 보이는 청년 한 명과 여성 세 명의 “실망과 상실과 배반,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 사이에 대한 진지한 접근”(wikipedia, ‘sarah waters’ 참조)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독자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그저 즐기기만 하면 장땡이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케이 카마이클. 주인집 레너드 선생이 1층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케이는 2층 세 들어 산다. 서른여섯 살. 훈훈한 9월 중순에 외출을 하기로 결심을 해, 몸에 딱 맞는 슬랙스와 부드러운 흰색 칼라가 달린 셔츠에 소매에 은제 커프스를 하고 짧은 갈색머리카락을 기름 발라 깔끔하게 넘긴 헤어스타일을 했다. 무심코 케이를 본 사람들은 첫 눈에 잘 생긴 청년으로 착각을 하지만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담긴 주름이 자잘하고 머리칼 사이로 잿빛 가닥이 담겨 있는, 신사화를 신고 있으나 이미 중년에 근접한 여성이다. 케이는 할 일도 갈 곳도, 볼 사람도 없음에도 서쪽을 택해 폭격을 맞아 초토화된 거리를 지나 원즈워스로 발길을 옮긴다.
  조금 후 덩컨 피어스는 ‘호러스 삼촌’이라 부르는 먼디 씨를 부축하며 레너드 선생 집에 당도하면서 다락방 창가에 서서 몇 시간이고 거리를 내다보던 짧은 머리의 케이가 없는 것을 알고 ‘오늘은 바커 대령이 안 보이네요,’라고 말한다. 케이가 여성 파일럿이나 영성공군지원부대 하사관 출신 정도로 생각해왔으나 사실은 전시 야간구급대원 출신으로 자기 누나 비비앤 피어스 양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적이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고 앞으로도 모르면서 살 것이다. 덩컨은 전쟁 초기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임을 밝혀 몇 년 간의 징역을 마치고 출소해, 소위 ‘애국심’의 감옥에 갇힌 시민들과 어울려 살기 힘들어 집에서 나와 자신의 전력을 모르는 양초가공공장 생산지원으로 근무 중이다. 오늘 함께 온 먼디 씨는 은퇴한 교도관으로 감옥에서 덩컨을 만나 함께 살기에 이른 후덕한 인물이지만, 보는 사람마다 이이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덩컨의 누나 비비앤, 약칭 비브는 스물여섯 또는 일곱 살의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런던 남부에 살며, 여태까지 약혼도, 결혼도 한 번 안 해본 여성인데 1940년대에 미모를 가지고도 스물여섯 일곱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않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한때는 ‘결혼상담소’라고 불리웠던 결혼 정보업체의 대기실 책상에 앉아 고객들을 안내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안쪽 방에서 고객들과 개별적으로 면담을 하는, 보다 중요한 업무는 서른두 살의 헬렌 지니버 양이 하고 있으며, 비브의 어릴 때 희망직업은 전문변호사의 비서였단다. 헬렌의 희망직업이 마굿간에서 일하는 것이었는데 반해서. 헬렌이 보는 비브에게는 얇게 덮인 한 겹의 재 같은 우울함이 표면 바로 밑에 드리워져 있다. 매주 화요일에 비브가 싫어하는 런던의 지하철을 타고 화이트시티에 가서 동생, 먼디 씨와 함께 저녁을 (얼른)먹고, 빈곤의 시대임에도 고기 통조림을 건네준 다음, 9시 15분에 집을 나와 10시 28분에 지하철 출입구에 정차해 있는 자동차에 타자마자 운전석에 앉아 있던 이탈리아 이민 출신의 애인 레지 니그리와 깊은 키스를 나눈다. 레지 니그리는 적어도 아이 둘 이상을 둔 유부남이며 이 빈곤의 시절에 비브와 한 번씩 재미를 보고난 후에 거의 어김없이 고기 통조림(기껏해야 햄이나 스팸일 뿐이지만)을 선물한다.
  남들이 자기를 숭배해줄 것을 바라고, 누가 자기보다 더 사랑을 받는 걸 참지 못하는 줄리아 스탠딩이란 이름의 작가를 애인으로 두고 있는 헬렌 지니버 양은, 전장에 나가 전사한 남자들 때문에 여자의 수가 많아진데다가, 해외복무를 끝내고 귀국한 병사들이 전쟁 동안 변한 아내나 애인의 모습에 질겁하는 경우가 많아 날로 번창하는 결혼정보업체에서 동료 비브와 점심시간을 이용해 창문 밖 베란다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담배를 피우며 나날을 지우고 있으나 전시엔 시청에서 전쟁피해복구에 관한 업무를 보던 재원이었다. 애인 줄리아에 관한 집착이 대단해 책 출판을 위해 어슐러 웨어링이라는 여자와 만났던 일을 가지고 줄리아에게 심한 강짜를 부릴 정도다. 전쟁 말기까지 잘 생긴 한 야간구조대원으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줄리아를 알게 된 이후 이별을 고했던 전력이 있다.
  이렇게 세 여인, 케이 카마이클, 비브 피어스, 헬렌 지니버와 한 남자이자 비브의 동생인 덩컨이 ‘진실하게 친밀한 관계genuine intimacy’였다고 믿는 타자와의 우정 혹은 사랑이 무너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아름다운 이별? 웃기는 말 말라.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란 없다. 모든 이별은 적어도 한 명에게는 실망과 상실과 배신당한 끔찍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런 기분을 모른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그런데,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렇게 시대를 거꾸로 배열하는 것이 과연 좋은 구성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고 어떻게 해서 지금의 결말이 나타나는지 설명을 하는데, 1947년, 44년, 41년, 이렇게, 책을 다 읽고 나면 처음 읽었던 1947년은 괜찮다는 평을 받는 현대소설의 경우엔 구태여 쓸 필요가 없는 부분이고, 근대 소설의 경우에도 에필로그 형식으로 짧게 언급하고 말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배열을 하니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서라도 ‘사실은 쓸데없는 부분’에서라도 충격을 주어야 했을 터이다. 상대적으로 이런 형식은 작품의 클라이맥스를 달려야 할 마지막 챕터chapter의 결정적 한 방이 별로 효과가 없게 만들지 않는가, 의문이 들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데 결말보다 충격적인 발단?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7-2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 있는데...... 미리 읽어둘걸. 그렇다면 이 책에 있어서만큼은 폴스타프 님보다 먼저 읽는게 되었을텐데요... 아쉽네요.....(리뷰 내용과 무맥락 댓글입니다)

그건 그렇고,
리뷰 중에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란 없다, 적어도 한 명에게는 실망과 상실과 배신당한 끔찍한 기분이 들게 한다‘에 밑줄 긋고 갑니다. 맞아요. 아름다운 이별이 어딨어요. 적어도 한쪽은 무너진단 말예요.

Falstaff 2020-07-21 17:20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전 다락방 님의 라이브러리가 부러운 걸요!
그죠, 아름다운 이별이 어디 있답니까. 근데 또 살면서 염병할 이별 때문에 심장에 먹줄 한 줄 안 긋고 사는 사람도 불쌍하긴 할 거 같네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0-07-21 17:25   좋아요 1 | URL
그런 오래된 격언이 있다잖습니까.
한번도 사랑해보지 않은 것보다 사랑을 잃고 아파해본 게 낫다.....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호르헤 셈프룬 지음, 윤석헌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애하는 서재 친구 ‘서산_影' 님의 글을 읽고 서슴없이 사 읽은 책.
  호르헤 셈프룬. 이런 사람을 파란만장하다, 라고 해야 할 터. 1923년 12월 생. 아버지 호세 마리아 데 셈프룬 이구레아는 법률학자이며 톨레도 도지사를 지냈으면서 시집도 두 권을 낸 박식하고 부유한 부르주아이며, 어머니 수사나 마우라 가마조는 아버지(호르헤의 외할아버지)가 무려 다섯 번이나 수상을 역임한 가문 출신이니 남편보다 더 휘황찬란한 정통 귀족이었다. 부모가 금슬이 좋아 순서대로, 마리벨, 수사나, 곤살로, 호르헤, 알바로, 카를로스 프란시스코, 이렇게 두 딸과 내리 다섯의 아들을 두었으니, 프랑코가 내전만 일으키지 않았으면 엄마 소원대로 입헌군주국 스페인의 대통령이나 작가가 되었을 호르헤 셈프룬이었다. 그러나 1936년 7월에 시작한 내전으로 정국은 돌이킬 수 없는 혼돈으로 치닫고 와중에 스페인 공화국의 처절한 분열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이때 호르헤의 아버지 호세 셈프룬은 재 네덜란드 스페인 공화국의 공사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는데, 당연히 일곱 아이 모두와, 취리히 호수 인근 베덴스빌 마을 출신 독일어 가정교사 여성이며 나중에 계모가 될 여인을 데리고 벨기에 국경을 넘는다. 엄마는, 일찍 세상을 떴다.
  벨기에 국경을 넘을 당시부터 벌써 유럽 각국이 프랑코가 세운 부르고스 정부를 인정하는 분위기라 스페인 공화국의 외교관 여권을 가진 자들을 체포해야 할지, 통과시켜야 할지 망설이던 수준이었으니, 39년에 뮌헨협약에 의거하여 독일의 전차와 기관총 부대가 프라하에 진입을 하던 즈음 스페인 공화국의 기치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였다. 이 책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는 스페인의 내전시기, 즉 ‘나’ 호르헤가 열다섯 살 시기를 즈음한 시절,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칼뱅 중학교를 거쳐 파리의 앙리4세 고등학교에 재학할 무렵의 시절을 그린 자서전적 작품이다. 그렇다고 1939년만 서술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처음 기억난다고, 분명히 어머니였을 것이지만 누군가에 의하여 끊임없이 주입된 내용이 기억으로 정착되었을 것이라 주장하는 1925년경부터 1990년 프랑코 사후 필리페 곤살레스 정부의 문화부장관을 지내며 마드리드 알폰소 11세 거리의 장관 공관에 거처하던 시기까지 일정한 순서 없이 글의 진행에 따라 필요한 기억을 서술하기 때문에 읽는데 집중이 필요한 책이다.
  게다가 60년이 넘는 드라마틱한 세월을 살았으니 숱하게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빽빽하게 등장하고, 다양한 사건을 설명하여야 하는데, 문제는 여태까지 말한 소재나 스토리 등 일종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이이가 빌려 쓰고 있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시를 비롯한 문학, 현학적이기까지 한 신학과 주로 공산주의 쪽 철학이라는 소프트웨어일 수도 있다. 본문이 360쪽 정도의 분량이지만 문장 자체가 유려하고, 지적이고, 섬세하기까지 해서 저절로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어 여간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나중에 큰 누나 마리벨과 결혼하는 아버지의 비서, 그리고 이 책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을 헌정한 ‘장 마리 수투’에 의하여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입문한 후에 프랑스어에 몰두, 이후 지드의 <팔뤼드>를 비롯해 말로의 <인간 조건>, <희망>, 마르탱 뒤 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 심지어 작가 자신이 전에 쓴 작품 등 소설까지 섭렵하는 과정. 마드리드가 함락됨으로써 이제 조국을 떠나 망명지의 낯선 영토에서 모험을 나서야 하는 장면들이 빼어난 문장과 인용으로 나타난다.
  호르헤 셈프룬의 생애를 감추고 독후감을 쓰려 했지만 특이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으면 읽는 분들이 공감하지 못하겠기에 소개한다. 이이의 아버지는 사회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 교도였으며, 이에 당연히 영향을 받았을 셈프룬은 어려서부터 교회에 가지 않으려 갖은 노력(거짓말)을 해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자가 된다. 내전 중에 헤이그에 공사로 나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네덜란드,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에 왔고, 파리에서 공화국의 패배, 독일의 프라하 점령과 폴란드 침공, 영국과 프랑스의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 전투 한 번 없이 파리를 내준 프랑스와 페텡에 의한 비시 정부를 겪으며, 반파시스트 운동의 일환으로 적극적인 레지스탕스 조직에 가담해 활약하다가 스무 살 때인 1943년에 게슈타포에게 체포당해 부헨발트 수용소로 보내진다. 부헨발트에서의 경험이 워낙 커서,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독일어를 구사하는 덕택에 다른 수용자들에 비해 나은, 그러나 상상도 하기 힘들만큼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남아 1945년 소련군에 의하여 해방이 되고나서도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때문에 천생 작가인 셈프룬일지언정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십여 년을 보내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1945년 스페인 공산당에 가입해 여러 가지 가명을 쓰면서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넘으며 세포 또는 스파이로 활약한다.
  1964년에 이르러 스페인 공산당에 의하여 추방된 이후에 비로소 (프랑스어로)글을 쓰게 되니 자연스럽게 부헨발트 수용소 등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많은 소설과 산문, 영화작업 등을 했고, 나중에 스페인의 문화부장관까지 역임하다가 2011년에 자연사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초년 운이 좀 복잡해서 그렇지 한 시절 잘 살다 간 사람이긴 하다.
  이 자전적 작품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는 자신의 소년시절이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하는 1939년을 기억해 20세기 말에 쓴 것으로 그 시절, 스페인 공화국이 멸망해서 파시스트가 집권을 하고,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때가 자신에게는 찬란한 빛의 시절이었음을, 그러나 지독하게 우울한 빛의 시절이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약간의 독서력이 있는 분들에게 후회 없는 선택일 것이라고 권하고 싶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 별장, 그 후 민음사 모던 클래식 70
유디트 헤르만 지음, 박양규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디트 헤르만의 두 번째 작품집 《단지 유령일 뿐》을 읽고 단박에 헤르만의 팬이 됐다. 그러나 당시엔 이이의 작품집들이 모두 품절일뿐더러, 헌책방 주인들도 헤르만의 진가를 알아보는 눈은 있어서 헌책 값으로 무려 새 책 정가의 몇 배를 요구하는지라, 조금 더 기다려보자 했다가 품절이 풀려 드디어 사 읽어본 유디트 헤르만의 첫 번째 작품집이다.
  이 작가의 작품집을 읽어보고, 검색도 해보았다. 아무래도 단편을 전문 작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저번에 《단지 유령일 뿐》을 읽고 쓴 독후감의 결론으로 “사랑을 매개로 한 사람들의 의견 불일치, 소통단절, 의식의 이격離隔”이라 말한 바 있다. 이번에 《여름 별장, 그 후》를 읽어보니, 굳이 ‘사랑’이란 범위 안에서 이야기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작가가 천착해온 것이 현대를 사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 단절,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소외감, 건조함을 염두에 두어왔던 것처럼 보인다.
  《여름 별장, 그 후》에는 모두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단지 유령일 뿐》과 달리 모든 개별 작품 사이의 공통점이 없는 독립적 단편소설을 엮어 놓았다. 아직까지 단 두 권의 작품집을 읽었을 뿐이지만,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헤르만을 읽어봐야 하리라.
  첫 작품 <붉은 산호>부터 매력적이다. 이 책의 커다란 매력 가운데 하나는 각 단편들의 첫 문장이 매우 의미심장하다는 것. <붉은 산호>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심리 치료 상담을 받았고, 그 때문에 붉은 산호 팔찌와 내 애인을 잃었다.” ‘나’에게는 675개의 작은 산호 구슬로 만든 팔찌가 있었는데, 이건 증조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거였다. 증조할아버지는 난로 엔지니어로 대단한 미모의 아내, ‘나’의 증조할머니와 함께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러시아 방방곡곡을 다니며 난로의 제작 방법을 널리 알리고 큰돈을 벌었다. 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이 만든 삼각주 지역에 바실리치 오스트로브 섬이 있어, 우리의 예빤친 장군을 비롯한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의 많은 여름별장 가운데 한 곳에 집을 얻어 살았는데(도스토옙스키, <백치> 참조), 다만 증조할아버지가 그 거대한 나라를 다니느라 집에 자주 올 수 없었던 것이 흠. 독일에서 온 창백한 얼굴에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이 혼자 지낸다는 소식은 섬 전체에 퍼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조할머니는 저녁 빛과 슬프고 아름답고 낯선 어떤 것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바로 이 슬픔과 아름다움, 낯섦이 러시아 영혼의 특징이고 이런 특징으로 무장한 러시아의 예술가들과 학자들은 증조할머니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증조할머니는 그들이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들 가운데 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가 사랑과 함께 선물한 것이 바로 산호 팔찌. 증조할아버지가 오랜만에 돌아와 블라디보스톡에 한 번 만 더 다녀오면 모든 일이 끝나니 그 다음에 바로 독일로 귀국하자고 주장하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증조할머니는 의도적으로 산호 팔찌를 드러내보였고, 누가 선물했는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그리하여 그날 밤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곱사등이 이삭 바루브를 니콜라이 세그게예비치에게 보내 결투를 신청해, 다음날 오전 여덟 시, 심장을 관통당한 싸늘한 시체로 변하고 만다.
  이런 내력을 가진 산호 팔찌. 지금 나는 산호 팔찌가 주인공 화자 ‘나’의 손목에 채워진 내력을 이야기했을 뿐이고, 왜 ‘나’가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는지, 애인은 어떻게 잃었는지에 대하여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마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황제의 신부>가 생각나는 큰 스케일로 꾸려도 충분할 것 같은 소재를 갖고 열여섯 페이지에 불과한 단편소설을 만들었으니 문장들이 얼마나 축약적이겠는가. 올 3월에 읽은 《단지 유령일 뿐》에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제일 앞에 실린 단편 <붉은 산호> 말고도 거의 모든 단편이 충분히 장편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스토리 라인을 가졌다. 그러나 이 작가는, 물론 직접 읽어보시면 충분히 알겠지만, 천생이 단편소설 스타일이라 스토리보다 촘촘한 문장으로 더욱 존재가 드러난다. 어떤 뜻이냐 하면, 비록 번역한 우리말로 읽었지만 하나라도 뺄 수 있는 문장이 없다는 것. 그런 문장으로 사람들의 화해 불가능한 개별성을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으니 어찌 이이의 작품이 재미없을 수 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먼 나라를 아르십니까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신석정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석정. 1907년생. 네 살 때 조선의 주권이 완전히 일본에 넘어간 식민지의 젊은 시인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시대의 절망 속에서 어머니를 불러 저 먼 나라로 가자고 했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은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나리면
  꿩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가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는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고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시렵니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부분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의 마지막 세 연이다. 물론 이렇듯 신석정의 초기 시는 일종의 퇴행을 보는 것같이 어머니를 소환하고, 자연과 소년기의 동경 같은 천진스러운 시선을 보여주기는 한다. 176cm의 키. 20세기 초에 태어난 사람이 176cm라면 상당히 큰 키의 남자인데 이런 이가 어머니, 혹은, 그렇게 가오리다 / 임께서 부르시면, 이라 노래한 것을 웃지 말라.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ㅡ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임께서 부르시면> 부분 



  물론 처음엔 이렇게 시작했으나 신석정 같은 강골의 시인도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영랑이나 만해를 빼고는 별로 기억에 없다. 나부터도 시를 읽고 미루어 짐작한 천생 서생 신석정의 강단이,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모두 거부하고, 친일문학잡지 《국민문학》으로부터 청탁 편지를 받자 박박 찢어버리고 4년이 넘게 아예 절필을 한 정도인지는 알지 못했다. 석정의 고향이 부안. 바로 아래 동네인 고창에 석정의 8년 손 아래로 오직 시 하나만 보면 한국문학사의 위대한 시인이 있었으니 바로 서정주다. 스물일곱 살의 미당이 영미귀축을 물리치기 위해 성스러운 전쟁에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동안 석정은 공식적으로는 붓을 똑 부러뜨리고 고향에 칩거하여 이런 시를 썼다.



  고운 심장心臟



  별도
  하늘도
  밤도
  치웁다


  얼어붙은 심장 밑으로 흐르던
  한 줄기 가는 어느 난류가 멈추고


  지치도록 고요한 하늘에 별도 얼어붙어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가 정지하고
  푸른 별이 모조리 떨어질지라도


  그래도 서러울 리 없다는 너는
  오 너는 아직 고운 심장을 지녔거니


  밤이 이대로 억만 년이야 갈리라구……  (전문)



  그런데, 참 우스운 일이 있다. 식민 치하에서 석정은 그들의 중요한 요구를 들어준 바 없었어도 무사했던 반면, 1960년대부터 곤욕을 치루기 시작한다. 61년 5월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들에게 이런 시가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 보다.


  시끌한 / 바람이 불더니 / 어둠 속에 / 3월은 가고, / 다냥한 / 햇볕이 들더니 / 어둠 속에 / 4월도 가고, / 푸르른 / 숨소리 들리더니 / 슬프도록, / 빛나는 5월은 와도, / 화관을 / 씌우던 ‘5월제’는 옛이야기. / 언젠가는 / 퇴원할 민주주의를 / 5월이여 / 너도 기다리기에 지쳤지? (후략)   <푸른 문 밖에 서서> 부분


  그래서 군인들에게 붙들려가 8일 동안 혹독한 취조를 받았다고 하며, 이후 1969년에도 민주공화당이 삼선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와중에 이번엔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는데, 당시 남산에 갔다하면 제 발로 걸어나오는 사람이 없던 시기였다. 이미 나이도 예순세 살에 달한 (당시 기준으로) 노인이 그 험한 꼴을 당했으니 얼마나 참담했을꼬. 그리하여 석정의 시는 이제 어느새 다시 초기 서정시 쪽으로 방향을 바꿔 이 시집의 마지막 시집도 아래와 같은 시로 마감한다.



  슬픈 구도構圖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워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
  노루 새끼 한 마리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요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드뇨  (전문)



  지금 시대에 석정 같이 시를 쓸 필요도 없고, 쓸 수도 없겠지. 그러나 그의 시편들, 그 고운 멀고 먼 나라의 빨갛게 익은 능금 같은 시들의 효용은 아직도 독자의 마음을 간질이고, 적신다. 한결 같은 마음을 가진 시인. 부안 초입에 있는 석정 생가에나 한 번 가볼까 싶다. 이런 서정시를 쓰는 강건한 지사가 그리운 시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덜란드에 요하네스 브라우어르, 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세계문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별하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에 천착했고, 정도가 좀 과했습니다. <죄와 벌>에서 사고치고 유배 가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제대로 필이 꽂혔습니다. 이蝨 같은 노파와 노파의 여동생 유로지비를 도끼로 찍어 죽인 것을 읽으며 청소년기를 막 벗어났을까 말까 한 브라우어르는 자신이 무슨 나폴레옹 정도의 위대한 인물인 것으로 잠깐 착각을 했는지 하숙집 여주인을 살해합니다. 틀림없는 범죄자. 그래 교도소에서 오랜 세월을 썩은 다음에 다시 사회로 복귀합니다. 아직도 브라우어르는 문학을 좋아하고, 그리 많지는 않은 나이라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만 이게 보통 공부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 학위를 따더니 또 따고, 한 번 더 따서 박사가 되고, 교수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모자라 누구나 인정하는 네덜란드의 최고 스페인 문학 전문가가 됩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군요. 네덜란드가 순식간에 독일의 점령지로 떨어지자 브라우러르는 고민하지 않고 레지스탕스에 가입해 용감하게 활동하다가 영웅적인 죽음을 맞습니다. 이이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살인자? 학자? 반독일 영웅?
  이제부터 가명만 쓰겠습니다.
  청년 박복동은 무려 경기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합니다만, 세월을 잘못 만났습니다. 하필이면 군인 출신의 독재자가 전국을 군화발로 밟아 조질 때였습니다. 그걸 참을 수 없어 유신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당시에 그런 청년들은 의례 그랬듯이 학교에서 제적을 당합니다. 이후 ㄷ대학에 다시 입학해 열공을 거듭해 졸업하기도 전에 법원사무관 시험에 합격하고, 1980년 우울한 시절에 사법고시에 또 합격해 3년 후 검사가 됩니다. 그러나 곧 직을 때려치우고 변호사 개업을 한 다음에 주로 NGO 활동에 매진하며 동시에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립니다. 자신이 한 시절 다니기도 했던 서울대에서 여자 조교에 대한 성희롱 사건을 수임한 이후 자칭 타칭 페미니스트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정통 NGO 출신으로 한 번도 정부기관이나 정치기관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가 한 꺼벙한 한성판윤이 급식 문제 때문에 사직을 하자 선거판에 나가 내리 세 번 한성판윤을 지냅니다. 그런데 자기 비서에 대한 성희롱 또는 성폭력 등으로 피소를 당하자, 누군가가 그날로 박복동에게 피소 사실을 알렸고, 순수하고, 일 잘하고, ‘주님께서 안아줄 바보’이자 낡은 구두의 박복동은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남긴 재산은 마이너스 7억 원이지만 아들은 장사를 모시기 위해 유학중인 영국에서 급거 귀국했습니다.
  백복동은 1920년 출생입니다. 어렵게 자랐다고 하지만 당시에 진짜 어려운 사람들에 비하면, 평양사범을 졸업한 것으로 볼 때 그래도 살만한 환경이었던 거 같습니다. 군인이 소원이라서 결국 스물두 살인 1941년 12월에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에 들어가 스물네 살, 1943년 12월에 졸업해 1945년까지 1년 9개월 동안 숱한 동포들과 독립군들과 기타 애국지사들을 잡아 죽이거나 가둬두는데 혁혁한 전공을 올리는 부대에 배속되어 활동합니다. 해방이 된 이후 잠시 북쪽에 있다가 남으로 내려와 국군에 소속되어 제대로 군사교육이 없던 해방 군대에서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당시에 대령 계급장을 어깨에 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터져, 내용은 잘 모르지만 전쟁 영웅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아 탁월한 지휘관이었던 듯합니다. 대통령이 서울에서 인천까지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길목에 이이의 땅이 있는 걸 알고, 돌려, 돌아서 가, 한 마디에 경인 고속도로가 휘어졌다는 야사에도 등장합니다. 그 대통령이 사형당할 수도 있을 때 백복동이 살려주었다나요. 하여간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잘 먹고 잘 살다가 백수를 누리고 죽었습니다.
  참 사람들 가지가집니다.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건지 말입니다. 그저 저처럼 평생 봉급쟁이로 상사들 욕이나 해대면서 소주잔 깨나 비우면서 한 세상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거 같군요. 누가 제 평전을 쓰면, 간단할 겁니다.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집안에서 출생해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학력으로,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회사를 네 군데 다니면서 평생 상사들 욕이나 하는 야당질에, 술 마시고, 음악 듣고, 책 읽으면서도 아이들 둘 만들어 자기들 먹고 살 만하게 키웠다. 전과도 없고, 훈장도 없다. 과속 운전으로 세 번, 추월 위반으로 한 번 벌금을 냈고, 평생 수술이라고는 포경수술, 정관수술 말고는 해본 적 없다. 휴양지 야자수 밑에서 낮잠을 즐기다가 때마침 떨어진 야자열매에 머리를 맞아 뇌출혈로 즉사하다. 크하하하.......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해변가의 야자수 아래. 생각함 해도 므흣하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케이 2020-07-15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팔스타프의 가상 엔딩(?)은 저에겐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는 삶으로 느껴집니다. 저희 집안에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는 환자가 있다보니, 이젠 돈도 명예도 다 소용없단 생각이 듭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게 끝이니까요. 부디 팔스타프님은 이 생애 끝날 때까지도 위에 적으신 수술 두번을 유지하시길 기원합니다.

2020-07-15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5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