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먹는 가족 1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출판사 랜덤하우스 코리아에서 만든 책의 띠지를 보면 "21세기 중국 최고의 천재 작가"라고 설래발을 쳐놨는데, 그걸 약간 심술궂게 해석하자면 모옌이 1989년, 20세기에 쓴 이 소설은 절대 중국 최고도 아니고 그때 까지 모옌 역시 천재가 아니었다는 거 (물론 아직까지도 천재는 아닌 거 같다). 이거 말 돼? 아시다시피 모옌이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1987년이라면 마오가 죽고 강청을 비롯한 사인방이 체포됨으로 해서 개같은 문화혁명이 드디어 종말을 고하고 10년 세월이 지났을 때다. 이 10년 세월동안 중국의 소설판은, 나도 물론 들은 얘기에 불과하지만, 문혁 당시의 생경한 공산주의 문학, 문혁 이후 문혁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한 리얼리즘 문학(이 부류에 내가 경애하는 다이허우잉이 포함되는데 평론가들은 불경스럽게도 '상흔문학傷痕文學'이라고 부르나보다)으로는 중국개방 이후의 넘쳐나는 분위기를 더이상 담을 수 있지 않기 때문에 토속 전설, 노변爐邊의 옛이야기, 신화 등을 사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되지도 않는 이바구를 슬슬 풀어놓는 거 같다. 며칠 전에 독후감 썼던 나이지리아 작가 벤 오크리의 <굶주린 길>. 기억나셔? 어떻게 그렇게 두 소설가가 똑같은 말을 들을 수 있는지. 평론가들이 짠 거 아냐?

 실제로 작품해설에서 역자 박명애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므로 현실적 리얼리즘이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는, 소설이 설 자리를 잃고 사라져가고 있던 시대에 모옌은 산둥성 까오미 둥베이향의 황무지를 개간해, 아득히 먼 과거 속으로 숨어버린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오늘을 살아가며 날마다 갈등하는 '나'의 일상생활과 접목해 이야기가 앞으로도 쉬지않고 계속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2권 367쪽

 박명애, 아쭈, 웃겼어. 인류가 이야기, 즉 소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현실적 리얼리즘이 발을 붙일 수 없는 시대는 없었고, 마찬가지로 소설이 설 자리를 잃고 사라져가고 있던 시대 역시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박명애는 문화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던 거 같은데, 천만의 말씀. 이야기를 만들고 그걸 남한테 들려주고, 또한 써서 보여주고 싶어하는 건 불행한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이고 구석기시대 이래로 인류 가운데 불행한 본능 또는 유전자를 지닌 직립보행인은 언제나 있어왔던 것이다. 그들이 입과 펜을 멈췄다고? 아니다. 다만 그걸 듣고 읽어본 사람이 지극히 적었을 뿐. 근데 그걸 모를 리 없는 박명애가 왜 이렇게 썼을까. 헤, 당연하지. 자신이 번역한 책 자기가 광을 내야지 누가 대신 해주겠어. 안 그랴? 이해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얘기. 듣는 사람이 감안해서 들어줄게.

 책 속에 써있다. 모옌이 윌리엄 포크너와 가브리엘 마르케스에 경도됐었다고. 아메리카의 환상문학의 영향을 받아 이런 소설을 썼다고, 독자가 알아채게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는데, 아참. 이런 얘기 꺼내기 전에 이 책 <풀 먹는 가족>이 어떤 내용인지를 잠깐 얘기해야겠구나.

 '풀 먹는 가족'이란 베지터리안, 채식주의자들의 집단이 아니라 모옌의 마음의 고향, 산둥성 까오미 둥베이향에 띠풀을 약 1인치 가량으로 자른 다음 잘 볶아서 입에 넣은 다음 줄기차게 씹어 드디어 섬유질이 다 삭아 흐물흐물해지면 꿀꺽 삼키는 행위를 집안 내력으로 하는 가족을 말한다. 거친 띠풀을 씹으면 섬유질이 마찰해 이와 잇몸을 강화시키고 입냄새가 없어지며, 그걸 꿀꺽 삼키면 역시 거친 섬유질이 대장 내에서 습기를 충분히 머금고 원활한 운동을 유발해 영낙없이 바나나처럼 생긴 쾌변을 만드는데 바나나 닮아 굵고 길고 노란 황금색의 물질이 인간의 막창을 뚫고 드디어 대기를 호흡하는 순간 거친 섬유질이 바로 그 막창을 간질간질 자극하며 인간에게, 아니, 풀 먹는 가족의 식구들한테 지구상 어느 가족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자지러지는 쾌감을 준다고 한다. 참으로 아쉬운 건 이 가족들 사는 곳이 산둥성에서도 아주 격리된 오지에 자리잡은 늪지대로 혼인을 통한 인류의 이동과 교환에 참가할 기회가 별로 없어 누대에 걸친 친족 내 결혼으로 말미암아 독특한 문화를 만든 것은 그렇다치고 독특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구성원도 많았으니 바로 손과 발에 물갈퀴가 돋은 채 태어나는 것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어디서 한 번 본 거 같으셔? 모옌이 평소 존경해마지 않았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과 은근히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근데 내 말 믿을 필요 없다. <백년....> 읽어본지 하도 오래라.

 이쯤에서 앞 문단에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계속하자면, 그들의 영향을 받아 환상소설을 썼고 이것도 그 일환으로 본다는 건데, 참나. '환상'을 이유로, 그걸 깔고 하고싶은 얘기 다 하겠다는 일념하에 인류를 죽이고, 죽이는 것도 모자라 팔 다리 자르고 산 채로 눈알을 파고, 여태 살아있는 할멈의 살코기 네냥을 떼어 가지고 가서 삶아먹고.... 이런 것들이 다 환상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허용을 해도... 아니지, 허용 못할 건 없지만, 굳이 장면을 세세하게 묘사해야만 모옌이 하고 싶은 얘기를 성공리에 다 할 수 있었다는 건 동의하기 쉽지않다. 그리하여 읽는 내내 심정이 불편하고 소설적으로 읽는 재미가 분명히 있을 텐데, 내 기호상 너무나 극적으로 맞지 않아 읽는 내내 불편한 심정이 극을 달해 참 어렵게 읽었다. 그리고 기어이 본전 생각났다. 본전이 뭐냐고? 본전 = 책값.

 하지만 분명히 밝혀야 할 점이 있다. 이건 전적으로 내 취향의 결과다. 하드코어 좋아하는 분들은 너무 재밌어 뒤로 자빠질 수 있겠다는 거. 그건 밝혀야 공정할 터.

 또 하나 분명히 밝혀야 할 점. 군데군데 교정, 교열이 개판이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도 보이고 철자법도 개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군데군데. 이런 개판 무인지경의 책을 만드는 랜덤하우스코리아, 요새 이름을 RH Korea, 몽땅 영어로 바꾼 걸 보니까 이젠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려는 모양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절판 상태인 이 책을 다시 간행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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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3
피에르 드리외라로셸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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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의 견해는 잘 모르겠고, 나는 하여간 괜찮게 읽었다. 한 헤로인 중독자 이야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단 치료를 받고 있지만 중독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럴 필요도 사실 별로 없어 보이는데 가진 거라고는 잘 생긴 외모 한가지. 그것도 이제 나이들어 별 볼일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여자들이 끊이지 않아 그들한테 얻은 현금을 기꺼이 술과 마약과 호텔비를 충당하는 잡놈이자 기둥서방이자 양아치이자 쓰레기, 좋은 말로 해봤자 다다이스트. 세상에 뭐 한 가지 자기 인생의 전부를 바쳐 이루고자 하는 것도 없고, 이루기는커녕 파리의 대로변과 골목, 길이란 모든 길마다 심장의 바리케이트가 쳐져 가는 곳마다 덜거덕거리고, 진정한 숙녀들은 하나 빠짐없이 전부 목마를 타고 떠나가 황량하기 그지없는 1차대전 전후의 파리 젊은이들.

 참 아름다운 문장과 광경으로 도배를 했을지라도 전후 (전승국)프랑스 수도에 돈 좀 있는/있었던 집구석 자재분이 아무 걱정없이,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기론 세상 모든 고민을 다 짊어진 것처럼 엄살을 떨어가며 술과 히로뽕에 절다가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 발걸음을 떼는 이야기.

 소설은, 다시 말하지만 전후 퇴폐와 허무 같은 것이 진짜로 잘 묘사되어 읽는 도중 빨간 색연필로 밑줄 좍 긋고 싶은 곳이 수다했을 정도로 아 참 때로 가슴 시리게 잘 읽었다. 그러면서 기어이 이 작품을 폄훼하고자 하는 건, 작가 드리외라로셸의 진짜 생각은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는 전후 불안과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에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고 외곬로 치달았으며, 그리하여 파시즘에 동조를 했고, 심지어 나치한테 협력하기에 이르러 나치의 멸망을 앞두고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해서다. 그래서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드리외라로셸이 이 책에서 말했던 건 역설적으로 파시즘 혹은 히틀러 나치에 동조하기 위한 전초로 기능하기 위해서, 라고, 아닐 수도 있고 아닐 확률이 90%를 넘겠지만 나로하여금 그렇게 오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가 진정으로 쓴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근데, 나치에 협력했던 작가는 음독자살했는데, 일제에 부역했던 (구)조선의 작가들은 어찌해서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았지? 이게 진정한 자존심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차이 아냐? 에이, 아님 말고. (나도 지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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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1-1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이나 묘사가 아름다워서 밑줄 그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가슴 시리다는 표현이 적절하고요. 루이 말의 동명의 영화 <도깨비불>도 참 좋았습니다. 에릭 사티 음악하고 정말 잘 어울렸거든요.

Falstaff 2017-01-19 12:36   좋아요 0 | URL
아, 영화도 있었군요. 사티...라면 물론 피아노 곡이겠고요. ㅎㅎㅎ 검색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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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 아이들 책꽂이에 꽂혀 있어서 걍 아무 생각 없이 읽었다. 쥐스킨트라고 하면 일찌기 <좆머 <좀머씨 이야기>가 좋다고 한밤의 이명耳鳴까지 들리길래 사 읽어봤더니, 하이고 참 나, 그딴 걸 달러화貨 또는 마르크화 혹은 유로화로 인세까지 지불해가며 읽는 대한민국의 문화수준, 참으로 경악스러워서 다신 쥐스킨트 읽나봐라, 각오를 했건만 이왕 내가 뼈빠지게 번 돈으로 새끼들이 사온 거 그거 읽지 않는 것도 심각하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어쩔 수없이 그것도 휴일에 시간을 내 읽어봤다. 결론? 뭐겠어, 걍 버킹엄이지. 시간 베렸다. 참 우리말 재밌다. '버렸다'라고 쓰는 거 하고 '베렸다'하고 쓰는 고 아슴아슴한 차이란.

 18세기 초중반 세계적으로 가장 냄새나는 시궁창 파리의 생선 좌판. 생선내장에서 발산하는 비린내가 진동하고 썩은 비늘이 질척거리는 진흙탕 위에 부유하는데 대구 내장을 손질하던 20대 중반의 여인이 다섯번째 아이의 출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진통이 시작되자 그의 후각으론 아무런 악취도 틈입할 수 없었으니 그렇게 진통의 강도가 그의 모든 혼을 빼놓고 있었던 거다. 드디어 다섯째 아이, 아들을 출산한 그는 여태까지 네번의 출산과 마찬가지로 생선 피와 내장 찌꺼기가 묻어 있는 칼로 아이의 탯줄을 잘랐고, 언제나 죽어서 나오거나 반쯤 죽어나오던 아이와 같겠거니 싶어 아이를 생선내장 부산물 더미에 버렸고 그때까지 녹슬었지만 날이 시퍼런 칼을 손에 쥔채 까물어치고 말았다. 상인들이 서둘러 여인을 둘러싸고 비슷한 시간에 쓰레기 더미를 한꺼번에 쓸어버리려는 순간 생선 내장과 비늘과 대가리와 뼈들 사이에서 갓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하여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맞이한 막다른 생의 골목에서 극적으로 구조되었고 아이의 어머니는 며칠 후 그레브 광장에서 참수됐다.

 쥐스킨트. 웃겼다. 18세기, 1738년에 비천한 신분의 영아 살인자한테 참수형? 단번에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참수형은 형을 집행하는 입장에서 상당한 관용을 베푸는 일이며, 비싼 임금을 주어야 하는 집행인 및 참수대 설치와 시민관객들의 호응을 이끌 수 있어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선 장사꾼도 아니고 생선의 배를 따는 일을 하는 여인한텐 부르봉 왕가는 결코 참수형의 자비를 베풀지 않았을 거라는 걸 쥐스킨트가 몰랐을까? 하여간 좋다. 중요한 건 아이를 낳자마자 어미가 죽었다는 거니까.

 하도 악취가 심한 곳에서 태를 끊어 그랬던가? 이 아이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날 때부터 체취없는 인간이었으며, 우리가 흔히 아는 절대음감 비슷하게 절대후각을 지니게 되었는데 성능 또한 대박이라 공기중에 분포해 브라운 운동을 하는 분자를 집어내 후각 정보로 만드는 능력이 개코보다 10만 배 가량 발달했다는 것이 이 책의 전제사항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잘 하면 흥미진진한 소설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거다. 근데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이하 "<향수>")는, 물론 내 경우에 그랬다는 거고 내 의견이 절대로 보편성을 지닐 수 없음을 알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얘기해서, 이후 흥미진진한 엽기소설로 치닫고 만다. <향수>는 곧바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이런 저런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끈질긴 인내와 후각천재성으로 그의 주특기인 냄새를 통해 인류를 정복하는 과정을 꾸며내는데 전력을 다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내가 시비하고자 하는 건, 어떻게 된 인류가 말씀이지, 여기서 '인류'라고 하는 건 이 책의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를 일컫는 건데, 자신의 모든 행위와 행위 뒤에 따라올 후속의 것들에 대해 조금도 의심을 품거나 회의를 하거나 하다못해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 물론 전제가 그렇다.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는 감정도 없고 사랑도 없고(하다못해 '수컷의 꼴림'도 없고), 사색도 없고, 말 그대로 냄새 빼고는 아무것도 그의 관심이 아닌 거다. 그래서 하는 일이 기껏해야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십대 아가씨들 스물 다섯명의 목숨을 빼앗고 아가씨들의 사랑스런 체취를 훔쳐 세상 유일의, 최강의 사랑의 향수를 만들어 모든 인간들을 지배하는 거? 하이고, 됐네, 됐어.

 내 책장에 쥐스킨트는 더 이상 없을 거다. <향수>. 읽자마자 얼른 아이들 책장에 다시 꽂아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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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1-18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쥐스킨트 책은 제 돈 주고 사본 적은 없습니다! 하하하. 한국에서 유독 인기있는 외국 작가들이 몇 있는데... 그중 쥐스킨트가 가장 거품 아닌가 싶습니다;;

Falstaff 2017-01-18 10:42   좋아요 1 | URL
예, 거품은 거품인데 아 진짜, 짜증까지 난단 말입니다. ㅋㅋㅋ
 
굶주린 길 대산세계문학총서 126
벤 오크리 지음, 장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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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누리 없이 제 사이즈의 반양장본 74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 문학과지성, 이럴 때 특히 마음에 든다. 이거 다른 출판사가 찍었으면 얄짤없이 두 권 제본이다. 보흐밀 흐라발이 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요새 장안의 종잇값을 올린다는 얘길 듣고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 주문해서 샀더니 문학동네 이 썅노무간나들, 책 뒷편 해설까지 다 합해서 144쪽, 손바닥에 탁 들어오는 작은 판형, 듬성듬성하게 편집해 글자가 있는 공간보다 없는 곳이 더 많아 종이가 아깝기까지 한 것을 정가 12,000원 때려놨다. 이게 책값이냐? 21세기엔 비단 위에다 글씨 새겨서 파냐? 요새 출판계 어렵다고? 그래서 책값 마구 올리면 되겠어? 난 니들보더 더 어려워! 잡것들아 정신차려. 팍 책 안 사고 줄창 도서관만 다닐까보다 썅. 아침부터 욕 못하는 사람더러 욕하게 만들어!

 하이고 또 이야기가 경상남도 삼천포시로 빠졌는데, 문학과지성에서 찍은 이 책도 뭐 그리 싼 편은 아니라서 해설까지 750쪽에 정가 22,000원, 구입가 19,800원. 한 번 사면 좋건 싫건 하여간 다 읽어야하는 통권이니 잘 생각해보시고 결정하는 것이 우리네 주머니 가비야운 것들의 지혜일지라. 왜 이렇게 열을 내냐 하면, 올해 들어 읽을 책들을 지금 와장창 사고 있는 중이라 그런데, 1월 둘째 주부터, 그러니까 지난 주에 사들인 책이 100권을 넘어서서 그야말로 책 한 권 값이 아쉬워서 그런다. 내 작은 마누라 이름이 최순실이 아니잖여. 참혹한 가정경제에 돈 만원이 어딘디! 돈 얘기하니까 아침부터 사람 구질구질해지기밖에 더하는가. 이걸로 뚝 그치고 다음 문단부턴 본론으로 들어가서....

 벤 오크리는 축구 잘하는 아프리카 나라 나이지리아 출신의 똑똑한 인물로 일찌기 공부잘해 국비 장학생 자격으로 런던에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다. 이 사람이 일찌기 19세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나이지리아의 문호 치누아 아체베의 뒤를 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그의 조국 나이지리아에선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버지 뻘인 치누아 아체베(가 쓴 그의 작품들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지다> <신의 화살> <더 이상 평안은 없다>)와 굳이 비교를 한다면, 물론 그의 조국 안에서 보는 것과는 당연히 다르겠지만, 식민/탈식민주의는 잔재밖에 남지 않았고, (서평과는 다르게 책의 내용에서)백인에 의한 수탈도 지극히 미미한 상태인 대신에 아체베도 물론 아프리카 토속의 환상, 민속, 샤머니즘 등을 사용했지만 아체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게 토속신앙과 주술적 입장을 차용했으며, (지극히 당연하게) 탈식민 이후 극심하고 불안한 정권다툼 속에서 날이 가면 갈수록 찌그러지기만 하는 인민들의 삶과 권력에 기생해가는 인간벌레의 모습을 중요하게 그려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설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프리카 토속신앙의 하나인 혼령아이.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왔다리 갔다리하는 능력이 있는 대신 가랑이 사이에 털 나기 전에 죽어야 하는 운명의 아이들을 일컫는데, 그 혼령 아이의 시각으로 무려 본문만 740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엮어나가는데, 솔직히 처음엔 좀 솔깃했다가 하도 자주 귀신과 도깨비와 중음신과 이것들의 잡탕밥이 출현해 나중엔 도무지 독자를 설득해낼 힘까지 잃어버릴 지경으로 길게 이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그건 읽는 사람이 도저히 나이지리아 정서를 갖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그게 어디 독자 잘못이야?

 벤 오크리는 본문은 아니고 책 어딘가에서 이제 더 이상 리얼리즘만 가지고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혹은 쓰기 힘들기 때문에 토속신앙적, 말이 좋아 토속신앙적이지 쉽게 얘기해서 미신적, 그리고 환상적, 몽환적, 다른 얘기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첨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언급에 대하여, 그가 사는 곳에서 한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아시아 변방의 한 독자로서 하고잪은 말이 있다면, 충분히 그의 말에 동의하고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지만 그럴 거면 나이지리아 안에서만 책 팔아먹지 그랬어? 그래도 이 책이 내가 신뢰하는 몇 안되는 문학상인 맨부커 상을 1991년에 받아먹었는 바 잉글랜드 사람들이 아프리카 토속신앙에 매료되는 걸 보니 혹시 축구 잘하는 인간들 사이에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거 아닌가싶기도 했다. 물론 잠시만 그렇게 생각했다는 뜻. 여기서 넘겨짚는 것이 특기인 내 생각을 굳이 밝혀보라고 말씀하셔서 하는 얘긴데, 혹시 영국사람들이 자기들이 수십년간 식민지배했던 나이지리아한테 자꾸 뭔가 캥기는 게 있어서 괜히 더 친한 척 하느라, 아 다 이해해, 너네들 하는 거 충분하게 이해하는데 다만 요구사항은 들어줄 수 없어, 이런 척하느라고 그런 거 아냐? 식민 모국 애들은 식민지 사람들의 애로사항은 절대 알 수 없는 거거든.

 여태 내가 줄줄이 헛소리만 늘어놓은 거 같지만 사실 할 얘기는 다 했다. 이 책이 한 혼령 아이의 시선으로 써 있다는 거. 혼령 아이가 어떤 애를 얘기한다는 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아이의 시선으로 식민지가 아니라 식민 후 극도의 혼란기에 인민들이 이리 치고 저리 치는 모습, 와중에 빌붙어 삶을 누리는 기생충들에 관해 쓴 소설이라고. 아, 이만하면 얘기 다 해준 거 아냐? 으떠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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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1-1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요즘 문학동네/창비/민음사 등등 한 두번 뒷통수 당한 게 아니에요. ㅠㅠ 특히 문학동네... 서점에 안 나가고 인터넷으로 주문했다가 흐라발 책처럼 황당한 책 받았던 일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런 책은 문고본으로 만들어서 5천원 정도 하면 딱일 텐데. 에효... 그나저나 와, 1월에만 100권을 사셨다고요! 부럽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머리쥐어짜서 겨우 5만원어치 사고도 좋아라 하고 있었는데 ㅋㅋㅋ 폴스타프님 책장 구경해보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언제 한번 사진이라도.. 굽신굽신) 이 책도 보관함에 일단 넣어둡니다!

Falstaff 2017-01-17 12:40   좋아요 0 | URL
그죠, 그죠, 그죠?
지난 주에 열받아 아주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예전에 창비에서 나온 아모스 오즈의 <숲의 가족> 받고 욕 딥다 해줬는데 참 나... 정말 도서관 이용하는 수가 있는 줄 짜식들이 알기나 할지 모르겠어요.(100% 농담 비슷: 똑똑한 사람 가운데 출판업계에서 장기근속하는 사람 못봤음!)
1년에 두번 정도 책을 많이 사는데 이번엔 1월이 걸렸네요. 작년엔 2월이었는데요. 한 대여섯달 읽을 요량으로 사는 겁니다. 자꾸 책방 기웃거리기 싫어서요. ㅎㅎㅎ
책장은 별거 없어요. 책 좀 많은 인간들이 늘 그렇듯 무지하게 지저분하고 정리정돈 안 되어있고 뭐 그래요. 먼지도 많고 그리 좋은 취미는 아닌 듯합니다. ㅠㅠ
 
여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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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전에 창비에서 나온 그의 <암고양이>를 비록 짧디 짧은 소설일지라도 무지하게 지겹게 읽어서 이번에 <여명>을 한 번 더 읽음으로, 다시는 이 여자의 소설은 가까이 하지 않겠다, 라거나, 그래도 콜레트의 이름이 가히 허명이 아니니 눈에 띄는 족족 읽어줘야겠다, 라는 결정을 보려 읽었는데, 콜레트를 비롯한 서술자의 섬세한 감각과 기분의 좌우, 심상의 움직임,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심리적 줄다리기, 기타 등등 하여간 스토리 라인은 거의(전혀) 없고 심리적 묘사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짧은 외국 소설의 경우, 그걸 번역한 국어로 읽으려면 ① 번역자의 감각 ② 읽을 당시 독자의 컨디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앞으로도 콜레트의 소설들이 눈에 띄면 적어도 하나 정도 더 읽고나서 또 그의 작품들을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유보적 입장을 굳혔을 뿐이다, 라고 쓰면, 아쭈, 꼭 내가 뭐라도 된 줄 아는 거 같다.

 그렇다고 물론 다른 소설이 뭐 또 있나, 궁금해 인터넷 책방을 여기저기 뒤질 정도의 매력까진 아니다. 하지만 더욱 솔직히 얘기해서 <여명>을 매우 독특한 소설로 읽었다. 얼핏 봐서 작가가 스스로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걸 우린 역자 주석을 통해 당시 그가 만난 인물들의 정보, 그와의 관계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콜레트가 쓰고 있는 말을 믿는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지만 사실을 알고보면, 이럴 때 '몽땅'이란 말을 쓸 수 없는 건 적어도 상황이나 등장인물의 실명 같은 건 적어도 다 사실이기 때문인데, '거의' 다 새빨간 거짓말, 그러나 법적으로 허용되는 소설적 거짓말, 우리가 흔히는 이야기하는 허구를 통해서, 소설문학이 신화, 전설, 영웅, 왕가, 귀족, 역사, 집단, 개인의 스토리를 거쳐 드디어 아무런 내용이 없어도 훌륭한 소설작품이 될 시점에 이르러, 나로하여금 충분히 콜레트의 필력에 갈채하게 만든다. 더구나 콜레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시도니 콜레트는 그의 사랑을 구현하는 데 있어 오직 하나만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주의자인 것이 기뻤다. 자신의 감정.

 그래, 니미, 사랑을 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 말고 뭘 더 따지는가. 지위, 재산, 학력, 나이 차, 국적, 종교, 직업, 성별. 이것을 다 극복하고 연인이 되고 동거인이 되고,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치명적 잘못 가운데 하나인 결혼을 통해 배우자가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부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고통을 교환하는 거, 그게 사랑이지 뭐 별건가. 왜 이러셔, 다들 해보셨잖아.

 콜레트 식 사랑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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