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의 잃어버진 천재, 영숙이가 다시 등장한다!

 

   미쳤어 정말. 영숙이도, 창피도. 썅.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잠자냥 2020-06-24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영숙이가 쓴 드라마 보는 사람이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는 또 엄마 타령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06-24 09:50   좋아요 1 | URL
긁적긁적... 사실, 이번엔 아빠랍니다. 돌려가며 다 팔아먹는 거예요. ㅎㅎㅎ

잠자냥 2020-06-24 09:55   좋아요 1 | URL
푸하하 너무 절묘하게 디쟌하셨습니다. 폴스타프 님 포토샵 재능까지 겸비! ㅋㅋㅋㅋㅋ 아니, 이젠 정말 아빠 타령이네요. ㅋㅋㅋㅋ
 

 

이런 거 아셨나요?

 

 

  옛날 옛적에 창비라는 출판사가 있었는데, 이 회사가 업계에서 많이 늦게 세계문학전집을 발간하기 시작했답니다. 여태까지 다 해서 여든 권을 만들었으니 그래도 나름대로 열라 만든 편입니다. 별난 외국어 표기는 창비적 창의성이라고 치고, 그래도 작품은 나름대로 신중하게 선택해 출간하니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 품질이,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뭐 출판사라는 곳이 비슷하기는 한데, 특히 이 창비란 회사는 자신들이 우리나라의 최고급, 아주 최상의 지식인들이 모인 곳이라는 자만심이 대단해서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일반 시민이 질문을 해도 답변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앞으로 365일 안에 여의도 만한 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하고 비슷합지요.

  그런데 어쩐 일로 "리뷰대회"라는 경품을 건 겁니다. 워낙 안 팔려서 그랬을까요? 진짜 괜찮은 책이 많은 데도 말입니다. 솔직히, 창비가 세계문학 시리즈를 너무 늦게 시작해 여러 좋은 책이 다른 출판사하고 중복이 되는데, 그렇다고 다시 책을 사 볼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럼 후발에서 비롯하는 핸디캡은 그냥 떠 안을 수밖에요.

  1등은 세계문학 여든 권 몽땅. 2등은 기억나지 않는데 뭐 문화상품권이었던가 그렇습니다. 3등은 세계문학 가운데 두 권을 준다는 거였습지요. 그래, 두 권이라. 흠.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은 책 가운데 창비 세계문학이 두 권 있었습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쓴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두 권짜리 장편소설입니다. 그래 잠깐 스톱, 하고 이미 서재에 독후감 써놓은 거 <현혹>하고 <주군의 여인>을 여기다 올렸더니 덜컥 3등으로 뽑혔습니다. 우하하하...

  근데 3등으로 뽑힌 다음에 정신차리고 잘 읽어보니까, 책 두 권 보내준다는 게 "랜덤"이라는 조건이 있더라고요. 원하는 책이 아니고, 출판사가 골라서 아무거나, 아마 판매실적이 거의 없어 창고에 재놓고 있는 거 두 권을 주겠다는 의미 같았습니다. 그래도 혹시 알아요? 그죠? 그래 책이 도착할 때까지 주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첨자 발표가 5월 8일. 어제 라면박스보다 더 큰 박스에 두 권의 책만 달랑 든 채로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5월 21일. 딱 14일 걸린 겁니다.

  제가 지금 빌어먹고 사는 회사가 네 번째 회산데요, 네 군데 다, 5월 8일에 결정이 된 사안을 21일까지 질질 끌었다면 최하가 시말서고요, 보통이 징계에다가, 최고가 사직섭니다. 얄짤 없어요. 이 회사 경품잔치 담당자들은 무사했을지 참 걱정입니다. 아무쪼록 가벼운 시말서 수준에서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예? 창비라는 출판사의 평균 수준이 이 정도라서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요? 에이, 설마.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최고급 출판산데요.

  그러면 어떤 책을 받았을까요.

  정말 고맙게도, 라면 박스보다 더 큰 포장박스에 아무런 완충장치 없이 달랑 두 권의 책만 들어 있던 건데, 와, 대단한 고전들입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불멸의 명작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백작 각하가 쓰신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런, 이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고전 작품 가운데서도 무척 앞 줄에 있는 잡문이고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딱 이 책은 2014년 8월 28일에 알라딘에 주문해 읽은 바로 그 책입니다.

 

 

  좋겠다고요? 좋아 죽겠습니다. 책 좀 읽어서 "리뷰대회"라는 곳에 독후감을 올릴 정도의 인간들에게 아주 어울리는 작품이잖습니까? 물론 제가 속물이라 기껏 선물을 받아놓고 고마운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발언을 한다는 건 알고 있는데, 아놔, 어제 술김에, 또 술 마셨느냐고요? 그럼요, 일용할 양식인 걸요, 육회 만들어 한 병 깠습지요, 하여간 술김에 박박 찢어버리려다가 째려보는 마누라한테 한 소리 얻어 들었습니다.

  아, 창비는 정말 저하고 궁합이 맞지 않는 거 같아요. 책은 좋은 거 많은데 어찌 하는 짓마다 다 이리도 밉상인지 원. 몇 번을 얘기했다시피, 그렇다고 창비의 책을 읽지 않을 수도 없는 애증의 출판삽니다.

 

 


댓글(33)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20-05-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등 아니고 3등이시라고요? 그럴리가.

Falstaff 2020-05-22 09:37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제 주제에 무슨 말씀을요. ㅋㅋㅋ

다락방 2020-05-22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저 지금 이 페이퍼 읽고 너무 빡쳤어요. 저도 사려고 장바구니에 넣어둔 창비 세계문학전집 책이 있지만, 어떤게 올지 몰라 스톱한 상태거든요. 그런데 만약 저 두 권이 저한테 온다면... 저 진짜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저 두 작품 좋아하긴 하지만, 둘다 읽었고 가지고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 두 권이 저한테 왔다면 저도 분노의 페이퍼를 쓰게 됐을것 같아요.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저는 아직 못받았어요. 아오. 어떡하죠. 저렇게 두권 오면 어떡하죠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오 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이럴까봐 3등하기 싫었어요. 저는 2등 하고 싶었다고요! 그러면 제가 원하는 책을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3등이고, 출판사가 주는 대로 두 권을 가져야 한다니. 너무 자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3등하기 싫었어요. 2등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3등이 되었고, 주는대로 2권을 받아야 한다니, 이럴거면 1등이 낫지 뭡니까!

아무튼 저 두 권은..아니 그런데 너무하지 않습니까? 창비 세계문학전집 읽고 리뷰 쓰는 사람한테 저 두 권이라니..무슨 ㅠㅠ 아오 빡치네요 진짜 ㅠㅠ

Falstaff 2020-05-22 10:08   좋아요 1 | URL
근데 다락방 님께 진지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다락방‘.... 이게 본명이세요? 대답은 비밀글로 하셔도 좋은데 정말 궁금합니다.
30명 명단에 유독 눈이 가는 이름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정말로 이게 랜덤으로 보내준다는 건지 몰랐어요. 나중에 당첨된 다음에 보니까 으하하하하... 완전 뻘짓에다가, 그나마 다행인 건 버리는 데 돈은 들지 않는다는 것이더군요. 재활용품 내놓을 때 함께 내놓으면 되니까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5-22 09:57   좋아요 1 | URL
아 진짜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명단보고 저만 ‘다락방‘으로 너무 튀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그거 보고 ‘아, 나는 다락방 이란 이름으로 자존감이 겁나 대단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니, 저는 그게 그러니까 온라인에서 열린 리뷰대회니까 ㅋㅋ 다들 작성해서 낼 때 닉네임 으로 적어서 낼 줄 알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혼자 다락방 이더라고요. 아 얼마나 뻘쭘하고 웃기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다락방 자아가 너무 비대해서 생긴 일입니다. 본명은 그것이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5-22 11:28   좋아요 0 | URL
그나저나 저 정말 다락방 저 이름 보는 순간 뿜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분 정말 재미나다, 나도 잠자냥이라고 할 걸 막 그랬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부터 다락방 님은 성은 다 씨요. 이름은 락방. 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정말 창비세계문학전집 꼼꼼히 챙겨 읽는 사람들이 여태 <젊은 베르테르> 쯤 안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휴 -_-;;;;;

다락방 2020-05-22 11:31   좋아요 0 | URL
전 정말이지 다들 그렇게 실명으로 적어내실 줄은 몰랐다니깐요?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케이 2020-05-2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짜로 주는 거라고 옛다! 하고 보냈네요. 참 성의없네요. 책표지도 왠지 걸레마냥 너덜너덜해보이고...

Falstaff 2020-05-22 10:06   좋아요 0 | URL
ㅋㅋㅋ 표지 디자인은 저게 ‘빈티지‘ 스타일이라고 하더군요. 저래 계속 내다가 <금색공책>이든가 부터 디자인을 바꾸더라고요. 근데 박스가 책에 비해서 어마어마어마하게 컸어요. 책 말고 다른 소소한 기념품도 들었겠거니, 김치국물 꿀꺽꿀꺽 마셨답니다. ^^

잠자냥 2020-05-22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사실 2등 노리고 도전했다가 3등했는데요.... 랜덤인줄 모르고 <주군의 여인> 골라야지 하고 있었는데 랜덤이라잖아요? 그래도 설마 이상한 거 보내줄까, 이번에 나온 요사 책이 딱 2권짜리라 그걸 보내주지 않을까 그래 괜찮다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저 두 권이라면 정말 실망스럽네요. 폴스타프 님처럼 저도 <베르테르의 고뇌>는 혐오하는 작품이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딱 저 책으로 책꽂이에 꽂혀있지 뭡니까! 진짜 리뷰대회에서 이런 상같지 않는 상 주는 출판사는 처음이네요.

다락방 2020-05-22 10:41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도 아직 받기 전이신거죠?

Falstaff 2020-05-22 10:4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저는 1등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그래도 재수없이 1등 하면 여든 권이 올 텐데 가득이나 좁은 책장을 어떡해야 하나, 걱정은 좀 했다는 거 아닙니까.
심지어 작년도 아니고, 재작년 11월에 올린 독후감으로 응모했으면서도요. ㅋㅋㅋ
랜덤인지 몰라서 2등이나 3등이나 아무 거나 하나 걸렸으면 좋겠다... 했는데, 에그머니.

잠자냥 2020-05-22 10:49   좋아요 2 | URL
다락방 / 네 저 아직 못 받았어요.
폴스타프 / 제 생각에는 저 두 권이 참 얇지 않습니까? 만원 안짝하는 가격, 그러니까 가장 싼 책으로 보낸 거네요. 저도 사실 1등하면 골치아픈데 그런 생각은 했어요.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창비가 참 멍청한 게 <까페드랄> 이 신간을 주욱 나눠줬으면 폴스타프 님 비롯해서 저, 다락방 님 같은 사람들이 리뷰 썼을 테고 그게 또 홍보가 됐을 텐데 참 어리석네요....

Falstaff 2020-05-22 10:51   좋아요 0 | URL
아, 박스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잠자냥 님, 다락방 님, 두 분 다 박스의 위용을 보시고 큰 기대를 하셨을 것을....

단발머리 2020-05-22 18:08   좋아요 1 | URL
우아~~~ 창비 진짜 성의 없네요. 잠자냥님 말씀이 무조건 옳죠. 좋은 책 선물했으면 좋은 리뷰 쫘악 올라올텐데..... 마케팅 개념이 없는걸까요? 아쉽네요.

잠자냥 2020-05-22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책 오면 알라딘 중고에 팔아서 공적마스크나 사야지 했는데.... 마스크 값도 안 나오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05-22 10:55   좋아요 0 | URL
표지 넘기면 바로 보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창비 드림˝

잠자냥 2020-05-22 11:25   좋아요 0 | URL
윽 이럴 수가........... ㅠㅠ 그런 만행까지.... -_- 누굴 주나... -_-‘‘‘‘‘

coolcat329 2020-05-22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ㅠㅠ 너무 웃기네요😂😂😂 상이라고 하기엔 정말 성의가 없어 보이네요. 완충제도 없이 라면박스보다 큰 데다 넣었다는것도 ㅠㅠ 창비드림! 도 너무 웃기고 ㅋ 그래도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Falstaff 2020-05-22 16:20   좋아요 1 | URL
아니아니... 이건 당선이 아니라 ‘당첨‘이라니까요. ㅋㅋㅋ
근데 박스가 크니까 속에 든 얇고 가벼운 책들이 전혀 손상이 안 가더라고요. 항공모함에 개미 두 마리가 만날 일이 없듯이 말이지요. ^^

coolcat329 2020-05-22 16: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빈티지한 창비표지 좋아하는데 위에 분이 걸레같다고 하셔서 🤣🤣🤣 평이 안좋은건 알지만 그래도 충격받았습니다.😤여기 댓글들이 다 너무 웃기네요ㅋㅋ

Falstaff 2020-05-22 17: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개인˝ 취향입니다. 누구의 취향이나 존중합니다. ^^

잠자냥 2020-05-22 19:38   좋아요 1 | URL
저도 바뀐 표지보다는 예전 걸레같은 표지가 더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5-22 17: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3등 축하드립니다. 축하가 싫으실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축하는 받으시고요^^

5월 8일에 결정이 된 사안을 21일까지 질질 끌었다면 최하가 시말서고요, 보통이 징계에다가, 최고가 사직섭니다. 얄짤 없어요.

여기에서 빵! 터졌습니다. 그러지요. 그래서, 저도 어제 소극적으로 알라딘에 고객상담 문의를 넣었답니다. 이벤트 발표를 5월 8일에 했는데 선물은 누가 주냐. 알라딘이 주냐, 창비가 주냐. 왜 주소도 안 물어보냐. 했더니 알라딘에서 답이 책은 창비에서 보낼거고 6월 1일에 발송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Falstaff님 글을 읽었으니 다시 이건 무슨 일일까 생각한답니다. 하하하!

Falstaff 2020-05-22 17:18   좋아요 1 | URL
윽! 아직 주소도 안 물어봤어요? 어허.... 그럼 틀림없이 담당자 권고사직 아니면 징계해고일 텐데 이거 어쩌지요?
얘네들 단발머리 님에게 보내기 전에 이 페이퍼를 좀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좀 좋은 책, 신간이나 아니면 읽고 싶은 책 뭡니까, 라고 물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ㅎㅎㅎㅎㅎ
축하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도 축하합니다!

단발머리 2020-05-22 20:16   좋아요 1 | URL
저 지금 Falstaff님 댓글 보고 혹시나 하고 들어가보았더니 아...... 주소 보내달라고 이메일이 왔었네요. 그럼 저만 늦는걸로 하고요. 레삭매냐님도 Falstaff님과 같은 책이던데요. 하하하.
제꺼도 그럴까요? 하하하.

Falstaff 2020-05-22 20:19   좋아요 0 | URL
정말 아니기를 바랍니다. 참.....참담하....한 수준은 아니고 뭐 창비...라기보다 ‘창피‘스런 일입지요.

레삭매냐 2020-05-2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천도룡기에서 태극권을 연마하던
장무기처럼...
아예 이자 불고 있었네요.

집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과연
같은 책들인지 어쩐지 아주 궁금
하네요.

아예 언박싱 과정과 박스 사이즈
도 공개해야 하나 싶네요 ㅋㅋ

소장 책이라면 단골 카페에 기증
하는 것으로.

Falstaff 2020-05-22 17:18   좋아요 0 | URL
흠.... 쐬주 한 병 깐 다음에 독한 마음으로 포장 여세요. ㅋㅋㅋㅋㅋ

서산_影 2020-05-23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쑤, 축하드려요!

Falstaff 2020-05-23 07:26   좋아요 0 | URL
에휴... 고맙습니다. ㅎㅎㅎ

CREBBP 2020-06-0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동에서 이런 행사 많이 하죠. 한창 꽂혀서 열심히 리뷰쓸 때, 문동에서 세계문학 100권 받은 적 있어요. 통 크게 100권을 주면서도 100권 고르라고 하더라구요. 서재 뒤져 있는 거 체크 해서 빼놓고 고르는 거 일이더라구요. 열책 세계문학도 180여권 이북으로 구매했던 터라 문동까지 완전 흐뭇흐뭇했었죠. 그런데 두 권 주면서 랜덤이라니 리뷰까지 써서 선정된 독자에게 자신들이 선택한 그 책이 없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상상력의 부족 이네요. 저 책 중 한 권은 저한테도 있는데 말이죠.
물론 아주 많이 축하드립니다.

Falstaff 2020-06-04 13:0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알라딘의 극성스런 고객 분 가운데 선물 받으신/받으실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그분들이 창비에게 부탁하고, 항의하고, 딴지걸고, 해서 다시 창비 쪽에서 새롭게 원하는 책 두 권을 주겠답니다.
그래 저도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두 권을 다시 받을 예정입니다.
저도 놀랐어요. 창비가 이렇게 양보하는 세상이 왔다니요. SNS 시대의 개가입니다.
 


 

 대산세계문학총서는 우리나라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정말 특색 있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이고요. 도대체 이런 작품을 찍으면 우리나라 책 시장에 먹힐 수 있을까 싶은 책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야말로 이 총서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팔리지는 않을 것 같지만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는 작품을 소개하는 일이 사실 ‘문화사업’이라 하는 출판 회사의 핵심 역할일 터이니까요. 총서는 현재까지 모두 157권이 출간되었는데 저는 번역시는 전혀 읽지 않는 관계로 시집을 빼고 이 가운데 제가 즐겁게, 공감하면서, 때론 고통스럽지만 많은 걸 얻으면서 읽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문학과지성사가 만든 이 총서의 또 하나의 매력은 시에 있을 겁니다. 다른 출판사들의 전집보다 월등히 많은 빈도수로, 하이네, 아폴리네르, 보들레르, 말라르메, 도연명, 이백 등등 시는 읽어보지 않았어도 이름만 들어도 괜히 기가 죽는 별들의 작품들을 출간했습니다. 이런 시집들은 포함하지 않는 추천이라 사실 반쪽짜리 글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용기를 내봤습니다. 순서는 총서의 번호 순입니다.




4, 5.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 <페리키요 사르니엔토>

 

  무려 1816년 작품.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며, 대단히 재미있다. 제목 ‘페리키요 사르니엔토’는 우리말로 ‘옴쟁이 앵무새 새끼’라는 뜻으로 주인공 페르디요 사르미엔토의 별명이다. 참 여러 가지로 웃기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작품의 앞 쪽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자식농사를 망치는 법이 나오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 전에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해 19세기 초에 완성을 했으니 다분히 계몽적인 소설이라는 건 참작을 하시라. 하지만 당시 백인의 시각을 봐서 대단히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매우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예상 외의 인물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을 것.


 

 


9.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 어느 계단의 이야기》

  스페인 내란 때 공화당을 지지해 형과 아버지가 총살을 당하고 자신은 감방에 박혀 구상한 희곡이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란다. 두 번째 작품이 <어느 계단의 이야기>. <타오르는....>은 부르주아의 맹인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 차이콥스키의 <이올란타> 장면이 떠오른다. 부르주아 자제들은 자신이 맹인인 것을 모른다. 완전히 규격에 맞는 정형화된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거의 완벽하게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된 교실에서 행동하니까. 세상 사는데 눈은 슬플 때 눈물을 흘리라고 하느님이 만들어낸 기관일 뿐. 여기에 하늘에 무수하게 박혀 있다고 하는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호기심을 갖는 이상한 전학생 이그나시오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묘하게 틀어지는데, 재미있겠지? 명작 드라마다. 두 작품 다.


 


10, 11.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오블로모프>

 

  러시아 문학을 읽으려면 피해갈 수 없을 걸? 내가 읽어본 가운데 가장 게으른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부르주아 귀족으로 태어난 것도 모자라 막대한 유산까지 유증 받아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필요 없이 살 수 있는 상팔자 인간 오블로모프. 호화로운 넓은 침대에 누워 읽던 신문 한 장을 침대 아래로 떨어뜨리면 가비얍게 벨을 눌러 하인을 불러서 떨어진 신문을 주워달라고 부탁하면 그만인 인생. 좋을 거 같지? 하나도 안 부럽다. 이런 인간을 세상이 그냥 내버려둘까. 그저 꼬이느니 사기꾼에 양아치들, 재산이 조금씩 거덜이 나도 게으른 오블로모프는 지금 자기 형편이 어떻게 되가는지 모르는 잉여인간으로 점점 추락하고 있으니.

 


 


31. 미셸 뷔토르, <변경>

 

  누보 로망 작품. 대산세계문학총서에 이 책 말고 알랭 로브그리예가 쓴 대표적 누보 로망 작품 <밀회의 집>과 나탈리 사로트의 <어린 시절>이 있으나 로브그리예의 미분적 분석과 해체, 사로트의 완벽하게 건조시킨 문장들보다 이 책을 권한다. 로마에 애인을 둔 파리 남자가 기차를 타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자기 앞자리에 탄 인물들, 창밖 풍경, 자신의 직업인 타자기 판매, 연인과 만나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공상 등을 나열하지만 사실 사건이라고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꼭 무슨 일이 벌어지고 스토리가 전개되어야만 소설이라는 형식이 완성되는 건 아니니까. 혹시 누보 로망은 읽고 싶은데 로브그리예와 나탈리 사로트 등이 지독하게 건조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최고의 대안이 될 듯.


 

 


35.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무려 1532년 작품. 말이 16세기 소설이지 온전히 지금 시각으로 읽는다면 두 편의 소설이 도무지 ‘문학’작품으로 읽히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정말로 책을 읽으실 분은 미리 알아두시라. 그래도 될 수 있으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을 권하는데, 그건 프랑스 소설을 비롯해 무수한 유럽, 아메리카 소설 속에서 <가르강튀아>를 변주,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라블레는 이 책을 고매한 술꾼과 고귀한 매독환자 여러분한테 헌정하고 있을 정도로 당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볼 때는 매우 난잡하고 불순한 묘사가 넘쳐나지만 지금 읽으면 애교 만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경악할 수준의 과장과 해학과 익살로 일관하는 이 작품의 어디가 그토록 많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을까, 한 번 생각해보셔도 좋겠다.


 

 


39. 이보 안드리치, <드리나 강의 다리>

 

  강력추천. 보스니아. 하필이면 동서의 분기점에 자리 잡아 역사 속에서 언제나 전쟁의 현장이 됐던 곳. 다른 민족들이, 다른 종교를 가진 집단들이 하필이면 이 땅에 몰려와 싸움을 하던 드리나 강의 이 언덕과 저 언덕 사이에 16세기 초반, 웅장한 아치형 다리를 건설한다. 다리의 건설을 둘러싼 전설적인 이야기들과 이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약 4백년에 이르는 다리 주변 원주민들의 신난고난한 이야기들. 다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람들이 벌이는 사건들에 관해 풀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 싸움과 죽음을 넘어 공존과 화해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읽는 당신,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65. 모옌, <홍까오량 가족> 또는 <붉은 수수밭>

 

  원래는 박명애 번역의 <홍까오량 가족>이었으나 박씨와 계약이 끝났는지 역자를 바꿔서 제목을 <붉은 수수밭>으로 다시 내놓았다. 나는 <홍까오량 가족>으로 읽었고 굳이 <붉은 수수밭>마저 읽을 정성은 없다. 말이 필요 없는 모옌의 대표작. 중국소설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데, 아무리 안 좋아해도 이 작품의 일독은 권할 수밖에 없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초까지 위대한 강태공의 제나라 땅에서 벌어진 남녀상열지사에다 항일 전쟁의 불행하고 참혹하고 참담한 광경을 읽기에 재미있으면서 실감도 나는 표현으로 일관한다. 영화 <붉은 수수밭>보다 훨씬 재미있다. 무척 길지만 한 번 첫 페이지를 열었다하면 날 새는지 모르고 일박 이일이면 해치울 수 있을 터.


 

 


71.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별과 사랑>

  폴란드인 아버지, 파리 출생, 멕시코에 정착한 복잡한 인류, 포니아토프스카. 로렌소 데 테나라는 이기적 지식인의 일생. 그의 이기심은 그러나 멕시코의 발전을 위한 헌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스스로도 천문학 연구를 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이 많은 어린애 수준의 인간. 대부분의 천재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이 하던 일에 관해서 한 번 옳다고 생각하면 그게 증명될 때까지 온갖 무리를 써가며 고집을 부린다는 것. 그게 주위의 많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걸 본인만 모르는 편. 멕시코를 위시한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환상소설 기법을 과감하게 배제한 리얼리즘 소설.


 

 


72, 73. 쓰시마 유코, <불의 산>

 

  쓰시마 유코는 다자이 오사무의 딸.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는 분들 많지만 난 그이보다 쓰시마 유코가 백 배 더 좋고, 글도 백 배 더 잘 쓴다고 생각한다. 메이지 유신 시대부터 태평양 전쟁 패전까지 5대에 걸친 가족사 이야기. 5대에 걸쳤으면 그게 아무리 보통의, 평범한, 별 거 없는 집안이라도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이 하나쯤 있을 건 분명하고, 너무 웃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장면 또한 하나쯤 있을 것도 분명하다. 작품의 시간적 공간을 이리 길게 잡아놓고, 분량 또한 천 쪽에 이르면 가히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 되기 십상이다. 이 책은 이런 의견이 매우 타당하다는 증거가 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섬세한 문장으로 탄탄한 벽돌집을 만들어내고 있다.


 

 


82. 알프레트 안더쉬,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

 

  이 총서의 진짜 매력 가운데 하나가 처음 듣는 작가의 좋은 작품을 많이 소개하는 일. 이 책도 그중의 하나다. 안더쉬가 47그룹의 일원이라 하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 안더쉬는 1937년의 (함부르크 근방쯤으로 상상할 수 있는)독일을 무대로 광활한 대양을 건너는 호연지기를 품은 소년과, 그냥 독일에 머물겠다는 딸을 위해 독약을 먹고 숨을 거둔 어머니의 뜻을 따라 외국으로 도망할 계획인 유대인 유디트 아가씨, 더 이상 공산주의 운동을 하면 이젠 다하우에 끌려가 흰 연기가 되어 나올 수 있다는 아내의 바가지 때문에 이젠 공작원과의 접선을 꺼리는 어부 크누트센 등이 등장하고, 무엇보다 퇴폐미술로 찍힌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목각 <책 읽는 수도사>를 지키려 애쓰는, 몸 아픈 목사 헬란더 등이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바 작지 않다. 짧지만 예상외의 감동을 줄 수도 있는 책이니 유념하시라.


 

 


87. 토마스 브루시히,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동독인으로 독일의 통일을 바라보는 입장은 어땠을까? 말이 동서 동격에 의한 합의 통일이지 누구나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인 것을 아는 바에. 40년이 넘게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통일이라는 낯선 현실을 만나는 어색한 순간을 변화가 그리 심각하지 않은 시절의 1965년생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가 때로는 익살스럽게, 가끔 통렬하게, 자주는 희화적으로, 열 명 가량의 서로 다르고 낯선 등장인물들이 이리저리 얽혀 크게 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작품으로 나는 이 한 권으로 브루시히의 팬을 자처했다. 그의 다른 책들이 모두 절판이라 더 읽을 책이 없는 게 아쉽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죽음을 맞는 법도 소개하는 책이니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한 번씩 읽어보시면 좋겠다.


 

107. 맬컴 라우리, <화산 아래서>

 

  엉덩이가 질기거나 인내심이 좋은 독자에게 추천. 처음부터 끝까지 술 마시는 이야기. 1938년,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는 영국 영사 제프리 퍼민이 멕시코 고유의 축제 11월 2일 ‘죽은 자의 날’ 열두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섬세하게 담았다. 퍼민은 영국이 멕시코와 국교를 단절하는 바람에 귀국을 포기하고 멕시코의 악명 높은 두 화산 사이의 마을에 은둔하며 살고 있는데, 사실 은둔이라기보다 알코올 중독, 술을 마셔도 너무 마셔서 아내 이본, 가족과 친척, 그리고 조국에 의하여 버림받은 신세에 떨어졌다는 것이 옳은 상태. 책은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과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편을 타고 흐르는 애잔한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변환하는 행간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16.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굳이 추천을 하지 않아도 다들 찾아 읽으실 책. 요사이 우리나라에 츠바이크 신드롬이 퍼져 그가 쓴 작품이라면 구별하지 않고 거의 베스트셀러의 수준으로 판매가 되는 거 같은데 그중에서 <초조한 마음>이 문학적 완성도가 가장 돋보이지 않나 싶다. 물론 아마추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헝가리 외곽지대. 파견 온 호프밀러 소위와 지역 유지의 선병질적인 외동딸 에디트 케케스팔바 사이의 사랑과 연민과 불행. 이런 스토리보다 주인공들에 대한 놀라운 심리묘사가 훨씬 돋보인다.


 

 


120. 엘리자베스 클레그헌 개스켈, <남과 북>

 

  마거릿 헤일과 존 손턴. 마거릿은 애정과 인정 많고 자주적인 성격의 남부 출신이고, 존은 냉정하지만 매사 정확해서 똑 떨어지고 개혁적인 성격인 북부 깍쟁이 사업가. 이들이 결혼해 한 가정을 이루어 공장 바로 옆에서 신혼살림을 꾸린다. 개스켈은 놀랍게도 조지 엘리엇의 시대인 1855년에 남녀의 갈등구조를 자본가와 임금노동자들의 대조적인 삶의 형태로 구분해놓고 결국 인정 많은 마거릿의 포용을 존이 받아들임으로써 해피엔드로 만들어낸다. 역시 처음 읽은 개스켈이었고, 이 책으로 이이의 다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 개스켈은 당시에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었을지 매우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난다.


 

 


133, 134, 135. 페터 바이스, <저항의 미학>

 

  이 책이야말로 엉덩이 질기지 않으면 애초에 포기하시라. 거대한 주제들을 장대한 분량으로 장황하게 써내려간 바이스의 놀라운 작품. 난 이 책에 소위 뻑 갔지만, 이후 바이스의 다른 작품에 도전하기가 머뭇거려져 겨우 <소송, 새로운 소송> 한 편만 더 읽었을 정도다. 책을 출간한지 4년이 넘었는데 올라온 독자서평은 내가 쓴 잡문 하나뿐이다. 작품이 너무 방대해 짧은 평으로 쓰기가 쉽지 않다. 수다한 미학적 관점으로 본 예술작품들과 공산주의 운동,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세계정치 같은 것들에 관해 거의 논문 수준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시간이 넉넉한 분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꼼꼼히 읽을 수만 있다면 양질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터이다. 하지만 정작 책은 사 놓고 추천한 나를 욕하기 없기.


 


147. 리온 포이히트방거,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

 

  “도대체 18세기 말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시작한다. 유대인 작가 리온 포이히트방거가 나치 치하에서 외국에 체류하고 있다가 퇴폐문학 혐의로 그의 모든 저서가 불태워지는 화를 당했는데, 당시를 18세기 말의 스페인 왕실에 횡행했던 어처구니없는 미신에 비유한 건 아닐까? 여기에 18세기 기준으로는 매우 발칙하고 맹랑한 화가가 있었으니 벨라스케스의 뒤를 이어 유명 궁정화가가 되는 프란시스코 고야. 그래도 스페인 궁정과 왕실은 고야가 자신들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린 가족 초상화를 보고 바보처럼 훌륭한 작품이라 했을지언정 탄압하려 하지 않았고 고야가 자유로운 주제로 그림과 판화를 그리고 만들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재미있는 책이지만 좀 길다. 해설까지 합해 약 830쪽. 역시 인내력 테스트에 통과하신 분들에게 추천.


 

 


156. 마거릿 드레블, <찬란한 길>

 

  <찬란한 길>, <타고난 호기심>, <상아의 문>으로 이루어진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라 하는데, 640쪽 분량의 장편을 다 읽으면 나머지 두 편도 얼른 번역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삼부작 중 첫 작품은 1979년 12월 31일 새해 이브 파티로 시작한다. 평생 여섯 명의 남자와 자본 적이 있는 주인공 리즈는 이 파티에 이름도 모르는 네덜란드 남자를 제외하고 다섯 명을 불러놓고 흐뭇한 마음으로 이들을 바라다보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없는 집 출신이지만 깨나 성공한 리즈와 그렇지 못한 그의 두 친구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시절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만나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영국사회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그렸다는 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머지 두 편이 그리울 정도로 재미있는 책.


 


 


  번외
  이 책들 말고도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 헨리 필딩의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개척자들>, 이탈로 스베보의 <제노의 의식>,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트리스트럼 샌디>는 오래된 책이지만 여전히 포스트 모던하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세련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만발한 작품으로 다른 출판사를 통해 읽은 책입니다.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는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작품이라 이제 현대 독자에게 흥미를 이끌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유럽의 여러 작품 속에서 고루 인용하는 책이라 참고삼아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두 권으로 되어 있어 책 읽는 시간도 많이 필요해 과감하게 추천하지는 못하는 심정,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개척자들>은 <모히칸 족의 최후>에서도 나오는 내티 범포, 가죽스타킹으로 특히 다른 미국소설에 많이 재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개척자들>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생각하시면 대신 <모히칸 족의 최후>라도 읽어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제노의 의식>, <파우스트 박사>,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무조건 읽어주어야 하는 명작입니다만 저는 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었습니다. 특히 <제노의 의식>은 대산세계문학총서가 유일한 직역이니 이 책을 선택하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5-15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산세계문학총서 정말 소중하죠!
폴스타프 님이 말씀하신 책 중 제가 안 읽은 것도 많지만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 어느 계단의 이야기》
<오블로모프>
<초조한 마음>
<거장과 마르가리타>
<제노의 의식>

이건 정말 강력 추천합니다.

특히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오블로모프> 이건 정말 안 읽고 이 세상 떠나는 분들은 후회할 명작. ㅎㅎㅎ <오블로모프>는 올해처럼 집콕할 때 한 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침대에 누워서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05-15 10:15   좋아요 0 | URL
그죠, 그죠?
대산총서 진짜 대박이예요. 위에 쓰지 않았지만 리스트에 올릴까 말까 고민한 것들도 많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0-05-15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에서부터 쭉 읽어내려오면서 어쩌면 이렇게 읽은 작품도, 아는 작품도 없단 말인가! 하다가, 드디어 가지고 있는 몇 개의 작품을 만나게 되네요. <드리나 강의 다리>, <남과 북>, <홍까오량 가족>을 제가 가지고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아직 읽지 않았지만요.

<남과북>은 글 쓰신 거 보니 남주와 여주가 결혼해서 사는 이야기들이 나오는가 보군요. 저는 영화로 먼저 보았는데, 거기서는 결혼해서 사는 것 까지 나오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붉은 수수밭
>도 중학생 때 공리 주연의 영화로 먼저 보았는데, 그 때 어린 나이에 꽤 지루하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로 읽으면 또 이렇게나 나이 들어서 읽으면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그래서 사둔 책일텐데... 왜 안읽고 있을까요?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아주아주 힘겹게 며칠에 걸쳐서 읽은 기억이 나요. 러시아 소설 특유의 그 낯선 이름들이 튀어나오는 통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것 같아요. 다 읽고서는 다 읽었다는 해방감만 느낀 책이었어요. 한 번 더 읽으면 좀 더 쉽게 읽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차마 다시 읽을 엄두는 나질 않는 책입니다. <초조한 마음>은, 크, 저도 엄청 좋아햇던 책이에요. 서투른 연민은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감탄하면서 읽었더랬죠.

최근 읽은 <출신>에서도 <드리나 강의 다리>작가가 언급되는데, 어휴,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책들, 먼지도 털겸 읽어야겟어요. 방금전까지 장바구니에 책 담으면서 책 사려고 으르렁댔는데, 저는 살 필요가 없네요. <드리나 강의 다리> 읽으려고 했는데, 1박2일이면 읽는다는 <홍까오량 가족>을 먼저 읽을까봐요.

아, 이 페이퍼 너무 신나네요. 별찜해두어야겠어요. *^^*

Falstaff 2020-05-15 10:21   좋아요 1 | URL
읍. 다락방님께서 제 서재까지 마실을 해주시다니 감격입니다.
가지고 계신 세 권의 책, 재미있는 걸로만 고르셨네요.
근데 이 시리즈는 독자는 생각하지도 않고 문학성 또는 문학적 가치 위주로 작품을 고르는 것 같아서, 전 이게 제일 불만이고, 동시에 이 시리즈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하여튼 쉽게 읽히는 책이 별로 없더라고요.
종종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coolcat329 2020-05-15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폴스타프님의 이런 글 정말 정말 좋아합니다. 아는 작가가 모옌 , 츠바이크밖에 없지만요. <오블로모프> 꼭 읽고 싶네요. <초조한 마음>도요.

Falstaff 2020-05-15 12:3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기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좋은 선택을 하셨군요.
하여튼 이 총서는 매번 각오하고 책을 사셔야 할 겁니다. 만만하게 그냥 휙 넘어가는 책이 거의 없어서요. ^^

잠자냥 2020-05-15 12:46   좋아요 0 | URL
<오블로모프>는 정말 새롭고 강렬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고요.
<초조한 마음>은 한번 잡으면 내려놓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GoldenSlumber 2020-05-18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문지판을 먼저 읽었지만 개인적으론 민음사판 번역이 훨씬 좋았습니다. <초조한 마음>, <붉은 수수밭>도 좋아하는데 추천해주시니 반갑네요^^

Falstaff 2020-05-18 10:30   좋아요 0 | URL
<거장...>이 그렇군요.
전 민음사 판으로 읽고 어딘지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어서 지금 다른 출판사 판으로 한 번 더 읽어볼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거든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
 

 

 

 

  어제 불초한 서재를 방문하신 분의 글을 읽고, "오정희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그이의 책 다섯 권을 박스 세트로 발매한다는 걸 알았다.

 

 

 차례로 작품집 《불의 강》,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중편소설 <새>를 한 박스에 담았다.

  오정희. 이이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이 아마 제2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작품집에서 대상작인 <저녁의 게임>이었을 거다. 1979년? 하여간 70년대 후반이다. 오정희를 읽기 전까지 문학, 특히 소설이라고 하는 건 현대를 살아가는 건강한 시민이 그저 교양의 하나로 간혹가다가 읽어주는 예술의 한 형식 정도라고 인식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이의 첫 단편집 《불의 강》을 읽게 된다. 오정희를 기점으로 나는 문학과 소설이라는 재미의 중독에 빠져 본격적으로 책을 읽게 되지는 않았을까.

 책장을 뒤지면 그 시절에 산 오정희의 책이 다 있다. 취중에 책장을 조금 뒤져 불의 강》과 《바람의 넋》을 찾았다. 한 번 보자.

 

 

《불의 강》은 동네 서점에서 산 건데, 당시 책방 사장은 책을 꼭 비닐로 싸서 팔았다. 처음엔 좋았다. 하지만 오래 보관하면 보시듯이 책 전체가 우글쭈글해진다. 책은 나이를 먹어 조금씩 붓는 반면, 화학물질인 폴리에틸렌은 전혀 변하지 않으니 쭈그러질 수밖에.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함으로써 오정희의 데뷔작이 되는 <완구점 여인>이 제일 마지막에 실려 있다. 독특하게도 작품을 쓴 역순으로 만들었다. 1968년 신춘문예니까 작품은 1967년 11월 말에 신문사로 발송했을 것. 이때 이이의 나이 만 이십 세를 넘긴지 한 20일쯤 됐을 때다. 놀랍게도 여성간 동성애를 은유한 작품이면서, 섬뜩한 느낌이 난다.

  내 책장의《불의 강》은 1977년 초판본. 그래 본문은 이렇게 생겼다.

 

 

  세로쓰기. 작은 활자. <미명未明>이란 단편인데 이 작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가운데 쯤에 있어서 사진 찍기 편해 우연히 걸린 것. 책 주위의 갈변은 훨씬 심하다. 사진으로 찍으니 갈변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는데 진짜로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오정희에게 빠져버린 건 유명한 <중국인 거리>가 실린 작품집 《유년의 뜰》을 읽고나서다. 괜히 이이의 작품이 이러니 저러니 따따부따할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몇몇 이웃을 비롯해 나를 아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좋은 단편소설을 추천해달라면 당연히 《유년의 뜰》을 이야기한다.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오정희의 모든 단편소설을 섭렵해보라고,

 내가 가지고 있는 오정희는 위의 "오정희 컬렉션" 다섯 권 모두하고, 도서출판 나남이던가에서 나온 《야회》를 비롯해 《옛 우물》, 《돼지꿈》, 동화책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 등이다. 인정한다. 나는 '오정희 빠'다.

  1990년대 후반, 문창과 학생과 문학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벌써 오정희를 읽는 학생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단편소설을 쓰려하는 학생이 이이를 거치지 않을 수 있을까가 굉장히 궁금했다. 같은 단편소설이라도 나는 오정희가 다른 어떤 단편 작가들보다 더 좋다. 한 시절, 오정희 때문에 절망에 빠져 소설 써볼 꿈을 접은 젊은이가 한 두명이 아니었다. 그이가 전성기 시절에 쓴 작품들을 모아 컬렉션이 나왔다니 어찌 영업글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보냐.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꺼내 본 오정희, 그리고 《불의 강》. 이 책의 뒷면엔 오정희의 20대 모습이 담겨있다. 세월이 참 무섭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리 2020-04-29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지 <저녁의 게임>을 한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고스톱을 배웠습니다. 물론 글로요.

Falstaff 2020-04-29 16:29   좋아요 0 | URL
진짜 화투로 고스톱을 쳐보셔도 재미있습니다. 빠지지만 않으면요. ^^
 

 

  이 책들이 참 좋았습니다. 근래 읽은 책들 가운데 마음에 든 책 열권을 꼽았습니다. 골라놓고 보니 정말 하나도 빼지 않고 참 괜찮은 책들만 골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편집도 두 권, 시집이 한 권 들어 있는데, 외국사람이 쓴 단편집을 이번만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없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장편의 경우엔 약간의 책 읽은 세월을 가진 분이 읽기 좋은 작품이 한두 권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아니더라도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제가 읽기에 감동도 받고, 공감도 하고, 새롭게 느끼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역시 책 읽는 일은 읽는 본인과 작품이 어떤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 소양이 깊지 않은 제 추천이 믿을 만하지는 않다는 말씀입니다. 어쨌든 책을 선택하시는데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서는 제가 읽은 날짜순입니다.




1. 유도라 웰티, 《유도라 웰티》, <낙천주의자의 딸> 

  대표 단편선과 장편소설 한 편. 둘 합쳐서 한 권으로 쳐주시라. 낯설지만 좋은 작품을 쓴 미국 남부 작가 웰티의 단편소설 서른두 편과 장편소설 한 권을 말 그대로 “우연히” 읽는 행운이라니. <낙천주의자의 딸>은 아쉽게 품절이지만 기회가 닿으면 선택하시기를. 《유도라 웰티》, 완고하다는 선입견을 주는 미국 남부에서 곱게 자란 부르주아의 딸 같지 않게 작품 속에서 마치 고딕소설에서 본 듯한 신체 결손자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다른 미국의 남부 출신 작가들답게 삐딱하지 않다. 미국식 지방주의 작품 가운데 이만한 단편소설을 읽을 기회도 그리 많지 않을 듯.


 

2. 박재삼, 《박재삼 시집》

 

  가난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아련한 추억과 고독과 궁상스런 삶을 살았던 시인이 빚어내는 깔끔한 슬픔. 이런 것을 일컬어 우리는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넘치지 않는 미학, 피를 토함도 없고, 술기운에 기댄 울분도 없고, 스스로를 산산이 헤치는 자해도 없이 자신의 슬픔을 노래했던 시인.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 소리 죽은 가을 江을 처음 보겠네.” 젊음이 가질 수 있는 슬픔이라는 특권. 아, 저 먼 먼 곳에서, 잊고 살았던 당신의 슬픔이 문득 까마득한 바람소리로 당신의 허파를 지날지도 모른다. 한 시절에 시인들은 이런 시를 썼다.



3. 블라디미르 나부코프, <창백한 불꽃>

 

  더 이상 황당한 상상력도 없다. 말 그대로 인간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작품. 이 책을 읽다가, “이게 뭐지?” 의문을 한 번 이상 품어보지 않은 독자들 있으면 거수 바람. 겉으로는 영문학자 킨보트가 위대한 현대 미국 시인 존 셰이드가 쓴 <창백한 불꽃>을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 자신이 머리말과, 존 셰이드의 시, 그리고 무려 280여 쪽에 달하는 킨보트의 주석을 달아 만든 책이다. 그런데 문제는 머리말부터 시작해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지루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주석을 읽으면서 확 깬다. 그리하여 첫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 할까, 독자를 진퇴양난으로 몰아가는, 나부코프는 진짜 장난꾸러기.



4. 헤르만 브로흐, <현혹>

 

  한 집단이 전체주의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브로흐. 우상 한 명을 만들어 우상으로 하여금 한 커뮤니티를 훌륭하게 이끌고 갈 수 있다는 착각이 땅 위를 덮을 때, 어떤 지경이 벌어지는가 하는 경고. 단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웃에게 린치를 가할 수 있는, 과거 순수했던 사람들. 이들의 세계는 오직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만 국한되어 있다. 한 무리의 생각할 수 있는 포유류에게 헛된 꿈을 주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브로흐는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처음엔 꿈이 헛된 것인 줄 알다가 점차 꿈이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지는 무리들. 불행하게도 그 무리를 우리는 ‘인간’이라고 부른다.



5. 막스 프리슈, <슈틸러>

 

  ‘화이트’라는 이름의 독일계 미국인 ‘나’. 미국과 멕시코에서 살다가 이제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스위스 취리히로 가는 열차 속에서 몇 년 전 스위스에서 있었던 소련 스파이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행방불명 상태에 빠진 ‘슈틸러’라는 인물로 지목받아 스위스 경찰당국에 체포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슈틸러라는 인물을 아는 모든 사람, 친척, 친구, 애인들이 ‘나’가 슈틸러임이 분명하다고 증언하고 나선 것. 심지어 내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임무를 띤 국정변호사까지도. 나는 정말 나일까? 나가 한 공간에서만 나이고 다른 공간에서는 다른 이름을 가진 타인일 수도?



6.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약속>

 

  뒤렌마트의 범죄소설은 <판사와 형리>도 읽었으나 <약속>이 더 재미있었다. 왜 ‘더’라고 하는가를 이야기하면 책의 결말을 말해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고, 뒤렌마트, 프리슈와 더불어 20세기 중반 ‘독일어’ 문학계를 흔들었던 인물이 추리물을 썼으니, 우리가 여태 읽어왔던 일반 추리소설과는 아예 기초부터 다르다. 소녀를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사건이 당대의 천재로 불리고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늙은 형사 마태 박사에게 배당이 된다. 근데, 소설을 시작하자마자 뒤렌마트는 마태의 현재 직업이 취리히 변방 목 좋은 주유소의 주유기 앞에 쪼그리고 앉은 모습을 스케치해버린다. 이 주유원이 왜 이 모양이 됐을까, 하는 내력을 밝히는 건데 뒤렌마트답게 제대로 뒤틀어버렸다.



7. 앤절라 카터, <써커스의 밤>

 

 고딕소설의 끝판 왕. 맨발로 서서 188cm의 키에 넉넉한 몸매. 이런 체격이면 도무지 서커스의 공중그네와는 어울리지 않을 걸? 그러나 천만에.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헬렌 페버스에게는 진짜 날개가 달려 있어 날갯짓을 훨훨 몇 번 하면 서커스 천막 꼭대기까지 한 번에 훅 솟구칠 수 있는 것. 헬렌을 캐스팅할 수만 있으면 서커스 단장은 커다란 수익을 잡을 수 있어서 헬렌이 주로 머무는 장소는 호화호텔의 스위트룸이고 가능한 한 최고의 사치를 하지만 원래는 버려진 기아 출신으로 한 창녀가 데려다 키웠다. 이 놀라운 서커스의 여왕이 영국과 대륙, 시베리아까지 누비면서 자신의 것을 하나하나 상실하게 되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는 읽어봐야 아실 것.



8.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사탄탱고>

 

  크러스너호르커이의 필력을 유감없이 증명하는 명작. 가을비의 첫 방울이 쏟아지는 추운 새벽, 호흐마이스 벌판을 가르며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근동에는 폐허가 된 성당밖에 없고 그나마 종탑이 무너져 종소리가 벌판을 가를 수는 없는 일. 음울한 종소리와 함께 이 망해가는 집단농장에 들려온 소식 하나. 모두가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나가 농장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것. 이리하여 집단농장은 다시 한 번 활기가 생기기 시작하고 일종의 착란 현상이 벌어진다. 이것은 누가 읽어도 카프카를 한 단계 확장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강력 추천.



9. 유디트 헤르만, 《단지 유령일 뿐》

 

  유디트 헤르만, 단번에 이 여자를 사랑하게 만든 소설집.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단편집. 무대는 독일의 뷔르츠부르크를 포함해 세계 각국. 이를테면 아이슬란드의 여름별장, 베네치아, 체코의 온천도시 카를로비바리와 몰다우가 내려다보이는 프라하, 미국 네바다의 사막, 노르웨이의 트롬쇠를 망라하는데, 각 지역의 자연풍광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현지인과 독일인, 또는 그곳에 간 독일 사람들 사이의 의식의 흐름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완전 내 스타일. 세상 어디에 있어도 사람들 사이에는 이해와 오해, 관심과 무관심, 신경전 같은 미묘한 의식의 떨림이 있게 마련. 이런 투명한 거미줄을 포착하는 작가의 예리한 눈매를,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10. 알레산드로 바리코, <이런 이야기>

 

  사람의 꿈에 관한 이야기. 자기만의 ‘길’ 즉, 차가 다니는 도로를 만들겠다는 꿈을 꾼 한 사람의 일생을 그린 책. 일찍이 허약한 체질과 체격을 가지고 태어나 어려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못 생긴 남자 울티모. 그러나 ‘금빛 그늘’을 지녀 어디서든지 돋보이고 다중 속에서도 누구나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진 사내. 20세기 초에 울티모는 자신의 아버지가 열광했던 차를 타보고, 관찰해본 바, 차와 차 비슷한 유동물체를 근본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길, 도로에 관심을 두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기 위한 인생으로 접어든다. 삶의 모든 굴곡을 한 도로로 만드는 질료로 사용해버린 울티모. 책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아름다운 상상에 관한 찬사.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20-03-3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약속>
.. 이거 끌리네요. 보관함 푱~

Falstaff 2020-03-31 12:30   좋아요 0 | URL
ㅎㅎ 예상치 못한 범죄 소설일 겁니다.
정의라고 언제나 이기지는 못한다더군요. ^^;;

잠자냥 2020-03-31 14:04   좋아요 0 | URL
저도 담았어요! 전자책 있으면 더 좋은데 이건 아직 없더라고요.

Falstaff 2020-03-31 14:32   좋아요 1 | URL
유령은 전자책 있던데요.
그것도 담으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