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 범우문고 235
민태원.이육사 지음 / 범우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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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점은 작품 <청춘예찬>이 아니라, 하드웨어로의 이 책 《청춘예찬》에 대한 평가입니다.

 

 

  교과서에 실린 글은 대부분 당대 최고의 명문일 경우가 많다. 학창 시절에 교과서를 통해 읽고 공부하고 시험문제에도 나와 풀어본 <청춘예찬>. 이 수필을 읽어보기로 결심을 하기까지 매우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머리가 채 커지기도 전에 주위에서 이런 저런 수필집을 권하고는 했다. 수필집의 제목을 밝히기도 송구할 정도의 높은 학문, 숭고한 종교적 성찰, 흉내 낼 수 없는 철학적 깊이로 이름이 높은 분들이 쓴 수필집을 몇 권 읽기는 했다. 그러나 도무지 적응을 할 수 없었던 거다. 이토록 높은 성가를 즐기며 서울 시내 종이 값이 하늘을 찌르게 만드는 베스트셀러 수필집이 어째 내 눈에는, 내가 읽기로, 이제 겨우 대가리에 쇠똥이 벗겨지기 시작한 내가 인식하기로, 한낱 신변잡기나 잡문 또는 낙서, 아니면 괴문서처럼 읽히는 거였다.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지적 능력을 자랑하는 동시에, 사실은 잘난 척 말고는 별로 하는 일 없는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두뇌활동을 사색이라는 이름으로 윤색한 것에 불과한 책을 읽고 도대체 배울 것이 없는 잡문이라 결론을 지었다. 이후 수필은 안 읽겠다고 결심을 했으며, 수십 년 동안 결심한 바를 지켜왔다. 그러나 올해부터 수필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변영로의 <명정 사십 년>에 이어 이번에 민태원의 <청춘예찬>. 며칠 후 양주동의 <문주반생기>도 계획에 있다. 수필. 내 생각으로 가장 쓰기 어려운 산문이 수필 같다. 아무나 그저 붓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은 수필이라고? 천만의 말씀. 어떤 글이 수필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정의도 내리지 못하겠다. 우리는 위대한 수필의 나라에 살아왔지 않은가. 나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할 높은 직위의 공무원을 뽑는 과거 시험에 무려 9백 년 동안 좋은 글씨로 쓴 멋있는 수필을 요구해왔던 해동수필국. 그러니 어떤 것이 수필이라고 내가 굳이 따로 설명할 이유가 없다.
  <청춘예찬>. 이런 것이 수필이다. 물론 낡았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다.’라는 표현이 신선한 은유였던 시절에 쓰인 수필이니. 그러나 청춘, 생명을 불어넣는 따뜻한 봄바람의 시절을 이렇게 강건한 문체로 화려하게 쓴 글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글쓴이 민태원. 갑오농민전쟁이 있었던 1894년생. 약관 20세에 매일신보에 입사해 사회부장까지 하고 기미독립만세운동 이듬해인 26세 때 동아일보로 옮기고 회사의 지원을 받아 와세다 대학에 유학한다. 서른 살에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다가 서른두 살에 중외일보 편집국장으로 다시 옮기는 매우 바쁜 사회활동을 한다. 서른여섯 살에 중외일보가 폐간됨에 따라 잠시 실직을 하다가 만주의 친일신문인 만몽일보 창간에 그만 발을 딛어 한동안 친일인사의 낙인이 찍히고 만다. 민태원이 친일신문의 창간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성원의 면면을 알고 난 후에 곧바로 발을 뺐으며, 이에 문학평론가 윤고종은 오히려 뼈저리게 느끼던 일제의 압박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항거에 몸을 바친 애국문인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민우보(민태원의 호 牛步)는 신문기자로서 일제의 거듭하는 탄압 속에서도 꿋꿋이 필봉을 굽히지 않았고……”라고 썼다. 그가 1935년에 폐결핵으로 사망을 했으니 친일행위를 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을 듯한데 그건 역사가의 해석에 맡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초간이 1976년. 민태원의 작품으로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일어 중역한 <애사哀史>, 부아고베의 <철가면>을 역시 일어 중역한 <무쇠 탈>과 <죽음의 길>이라는 번역 소설 등이 있고, <어린 소녀>, <음악회>, <천야성> 같은 소설을 창작, 발표한 바 있으나 해방 후 격변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필 세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는 모두 망실되었다고 한다. 그래 이 책에는 민태원의 세 편의 수필 <청춘예찬>과 <월남 선생의 일화> 그리고 잡지 “개벽”의 의뢰로 충남지방의 특징에 관해 쓴 글 <추억과 희망> 이렇게만 실려 있다. 다 합해봐야 30쪽도 되지 않으니 그래도 한 권이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이육사의 수필 열세 편을 함께 실었는데, 아뿔싸, 육사의 수필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이육사 시집》에 전편을 이미 실린 것들이다. 그러니 이 책은 온전히 민태원의 세 수필만 읽기 위한 것이 됐다.


  이제 다시 세월이 흘러 민태원의 작품을 읽어보려 하면 이 책이 아니라 당연히 ‘현대문학’에서 나온 《민태원 선집》을 읽어야 할 것이다. 《민태원 선집》은 범우사가 《청춘예찬》을 찍고 34년이 흐른 2010년에 출간한 것으로 수필은 물론이거니와 그동안 망실됐다고 생각해온 민태원의 창작 소설 세 편과 김옥균 평전 비슷해 보이는 <오호 고균거사嗚呼 古筠居士 - 김옥균 실기>까지 실려 있으니 굳이 내가 읽은 범우사의 옛 책을 선택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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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6-26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춘예찬의 저자로만 알았지 정작 민태원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는데, 덕분에 자세히 알고 갑니다. 소설까지 낸 바 있다는 것도요.
그러니까 저는 범우사의 <청춘예찬>이 아니라 현대문학에서 나온 < 민태원 선집>을 읽어야겠군요.
수필이란 그저 붓가는대로 쓴 글이 아니라는 말씀에 절대 공감합니다. 적어도 자기만의 통찰이 있어야 하고 그 통찰과 사유의 결과가 담겨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남들이 이미 한대로, 쓴대로 말고 ‘자기만의‘ 무언가 담겨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나, 아무때나 쓸 수 있는 글 같진 않아요.

Falstaff 2020-06-26 11:28   좋아요 0 | URL
이 분이 너무 일찍 가고, 남긴 저술이 몇 개 없었던 모양입니다. 소설 역시 당시 소설들이 그래야 했듯이 계몽적 요소가 많이 들어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고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분의 책을 읽을 만할까,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청춘예찬>이 명문이라 그것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읽으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월남 선생의 일화> 같은 거는 국한문 혼용이지만 기미독립선언서보다 좀 쉬울 정도라 아예 사전을 열어놓고 읽어야 할 정도입니다.
수필을 쉽게 알고 막 써낸 수필집 때문에 오랜 동안 멀리 해왔습니다. 어떤 것이 잘 쓴 수필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에는 공감하지만 어떻게 통찰과 사유의 결과를 알아서 읽어야 하는 것인지, 에휴.... 끝이 없습니다. 걍 소설이나 읽고 마는 게 제일 속 편합니다. 하하하......
 
마루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베시 헤드 지음, 이석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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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시 헤드가 쓴 <권력의 문제>를 읽고 이이의 작품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193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생인데, 1930년대에 백인 어머니와 당시엔 사람으로 분류하지 않았던 흑인 아버지 사이의 사생아로 태어났으니 이이의 앞에 남은 구만리 같은 한 생애가 녹록하지 않으리라는 건 처음부터 알아봤다. 아프리카 남쪽의 흑백 혼혈을 ‘컬러드colored’라고 칭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백인 아버지가 노예와 비슷한 흑인 하녀와 관계해서 낳은 자식이었으며 이들은 대개 아버지가 경영하는 상점의 점원노릇을 했다고 한다. (북아메리카를 포함해 세상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베시 헤드처럼 거꾸로인 경우엔, 흑인 남자는 백인들에 의하여 무참한 린치를 당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들었다. 이이의 경우엔 어머니가 신경증 증세가 심해 아이를 낳자마자 정신병원으로 보냈고, 아이는 가톨릭을 믿는 혼혈 유색인 부부에게 입양을 시킨 후, 그래도 혈육이라고 외할머니가 열네 살이 되는 해에 법원에 데려가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의 사생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정치활동을 하기도 하고 유명 예술가에게 성폭력을 당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시절을 살다가 결국 아들과 함께 보츠와나로 주거지를 옮기고 그곳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잠깐 했다. 그때 학교 교장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갈등을 겪은 내용을 고스란히 <권력의 문제>에서 증언하면서 남녀 간 권력의 문제를 통해 흑인 페미니스트 작가로 자리를 굳힌다. 이번에 읽은 <마루>의 경우도 극명하게 권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남자에 의한 여성에 대한 착취가 아니라, 피부색의 농도와, 같은 농도의 피부색일지라도 종족에 따른 권력의 유무에서 발생하는 차별에 천착한다. 이 작품은 베시 헤드가 망명한 보츠와나의 세로웨에 정착해서 쓴 <비구름이 모일 때>, <마루>, <권력의 문제>, 그의 소설 삼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으로, <권력의 문제>보다 쉬운 문장과 구조인데다 적은 분량으로 되어 있어 무거운 주제일망정 금방 읽을 수 있다.
  유난히 비뚤어진 정신세계 때문에 지구상 어디에서나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종이 있다. 바로 백인들이다. 그들은 백인종이 아닌 다른 모든 인종의 인간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습관이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이 되어 이제 자신들의 가치체계마저 세계에서 유일하게 옳은 것으로 판정하려고 한다. 이들은 일찍이 동양인에게 저급하고 더러운 족속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해 경멸했으나, 동양인들은 아프리카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잘 읽어야 한다. 아프리카 출신의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을 칭하는 말이다. 백인들은 이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들도 저급하고 더러운 족속이라고 경멸했지만, 이들은 또 적어도 부시먼이 아니어서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단다. 부시먼을 비슷하게 비교하자면 인도가 수천 년 전통이라 자랑스레 내세우는 카스트 제도에서 제일 천한 불가촉천민 계급인 수드라 정도로 이해하면 될지 모르겠다. 같은 아프리카에서 사는 흑인이라도 부시먼이 나타나면 노예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네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거나, 마치 나병 환자처럼 옷자락에 종(대신 빈 깡통)을 달고 다니게 하거나,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로 얼굴에 침을 뱉거나, 돌을 던지거나, 바로 앞에서 ‘더러운 부시먼’을 외치면서 온몸을 흔들며 모욕적인 춤을 추었다.
  아프리카에 선교사가 들어와 곳곳에 학교, 병원, 교회가 들어섰고, 대개의 경우 선교사는 교회를 책임지며, 선교사의 아내는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보통이었나 보다. 책에서도 날 때부터 바보 천치 비슷한 수준의 덜 떨어진 선교사가 매우 진취적이라서 딱 그만큼 다른 인종에게 가혹하기도 한 덩치 큰 아내 마거릿 캐드모어 여사와 함께 아프리카에 들어와 교회와 학교를 운영하다가, 선교사가 먼저 그리운 주 하느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이제 과부가 된 교장선생님은 성질이 급하고, 성마르고, 신경질적인 반면 늘 원기왕성하게 힘든 일을 척척 해치우면서도 뛰어난 유머 감각까지 가지고 있는 부자였다. 마거릿 캐드모어 여사는 유럽 백인스럽게 과학적 사고방식에 입각해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애를 쓰며, 인간은 유전적 형질보다는 양육되는 환경에 따라 앞날이 정해진다는 굳센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프리카까지 와서 은퇴하는 나이가 되도록 학교 선생을 하고 있지.
  흑인 동네를 간신히 벗어난 관목지대에 부시먼, 마사르와 족 여인이 땅바닥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이미 죽은 시신일지라도 절대로 마사르와의 몸에 손을 대기 싫은 주민들은, 신기하게도 고귀한 백인들이 더러운 부시먼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지내주는 것을 기억해내고 냅다 교회로 달려가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래 현장에 도착한 마거릿 캐드모어 여사. 여사가 시신을 보니 영양실조로 바싹 마른 두 다리에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어 굳은살이 박인 발을 한 누더기 여인. 이미 죽은 불쌍한 시신에게 무차별적으로 증오를 쏟아 붓고 있는 운 좋은 자들의 시선과 욕설을 모른 척하고 일단 병원의 안치실에 시신을 보관한 다음 장례를 위해 간호사들에게 시신을 닦으라고 명령을 한다. 그러나 간호사들이 부시먼의 시신에 손을 대? 천만의 말씀. 기어이 여사에게 한 바탕 엄한 잔소리를 들은 후에야 대강대강,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가 아닌 시멘트 바닥 위에서 처리를 해버리는 수준이다. 하여간 매장을 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죽은 자의 딸을 시설에 넘기려다가 갑자기 반짝, 전에 유전보다는 환경이 우선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직접 실험해보기 위해 자신이 직접 맡아 정식 교육을 시켜가며 기르기로 결심을 한다.
  가히 신과 같은 백인이 키우는 아이더러 누가 감히 드러내놓고 부시먼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아이를 보고 더러운 혈족이라느니 덜 떨어지고 미천한 족속이라느니, 개새끼라고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어서, 세월이 조금 지난 후 미션스쿨에 입학해 학급의 절반이 무척 화가 나 있는 상태이며 간혹 다른 아이가 “부시먼 주제에!”라고 시건방을 떨어도, 보츠와나의 가장 큰 종족인 바츠와나 족이 부시먼을 노예나 개 취급을 할 때를 빼고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를 데려온 후 17년이 지나 캐드모어 선생은 제자들 가운데 특출한 학생을 발견하는 기적을 만난다. 바로 자기가 주워와 키운 소녀. 그러나 몰랐을 것이다. 소녀 마거릿은 학교에서, 사회에서, 심지어 집안의 다른 흑인들 속에서 거의 완전하게 소외를 당하는 것을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 소외에서 비롯한 소통의 결여를 책을 읽는 방법으로 해소하고자 했다는 것을.
  그러나 기적을 발견한 캐드모어 여사는 그 해에 바로 은퇴할 나이가 되어 열일곱 살의 마거릿에게 50 파운드를 주고 영국으로 떠나버리고, 마거릿은 여사가 기분 좋을 때 쏟아놓고는 했던 농담과 웃음, 재미와 기상천외, 그리고 무엇보다 보장되어 있을 것 같던 약동하는 행복이 여사의 귀국과 동시에 상황이 종료되고 만다. 캐드모어 여사가 마거릿에게 남긴 것은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을 정도의 학력과 50 파운드의 돈, 그리고 교훈 몇 가지. 입술연지는 바르지 말고 눈 화장은 해도 좋다. 너는 눈동자가 예쁘니까. 겨드랑이 털은 정기적으로 밀고 향기 나는 분을 칠해라, 같은 것들. 그리고 달포 후 여사로부터 엽서가 한 장 도착한다.
  “네 종족을 위해 어쩔 수 없었을 뿐, 너를 남겨둔 채 그곳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단다.”
  백인들이 다 그렇지 뭐. 마거릿이 알다시피 캐드모어 여사는 부자였을 뿐 선한 사람은 아니었다.
  넉 달 뒤, 마침 사범학교를 졸업한 마거릿 캐드모어 주니어는 ‘딜레페’라는 이름의 외딴 오지마을의 학교로 첫 교사직 발령을 받아 마치 백만장자가 된 기분이 들면서 이제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어떻게 얽히고설켜 딜레페의 사실상 대족장인 작품의 주인공 마루와 연결이 되는지, 연결이 되기는 하지만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붐소설에서 보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핵심인물인 젊고 유능하고 신과 같은 왕이 되고자 하는 마루와 무사하게 사랑하는 사이가 될지 말지는,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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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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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말로 번역한 보후밀 흐라발은 다 읽었다. 공산주의 체코슬로비아 치하에서 흐라발의 수다한 작품들이 판매금지 조치를 당해 생전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엔 <너무 시끄러운 고독>, <영국 왕을 모셨지>와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이렇게 세 편만 소개되고 있어 아쉬운 바가 작지 않다. 출간한 책마다 금서의 딱지가 붙어도, 또 다른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이자 노상 노벨문학상 수상 예상자의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밀란 쿤데라와 달리 죽으나 사나 체코 땅 안에서 금서 작가의 면류관을 쓰다가 1990년 벨벳 혁명을 맞아 조국이 민주화되는 광경을 목도하였으니 감회가 새로웠으리라. 그러나 7년 후, 흐라발은 프라하의 한 병원 5층에서 아스팔트를 향해 자유낙하 해 죽었으며, 아직도 이 사건이 자살인지 살인인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책의 부록 겸해서 실린 단편소설 <간이주점>을 읽어보면 혹시 자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가까이서 본 열차>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개봉했던 모양이다. 나는 본 적이 없지만 이 영화가 죽기 전에 봐야 할 1,001 편 가운데 하나로 든다 하니 꽤 괜찮은 평을 받은 거 같아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보리라 마음먹었다.

 

 

 

  1945년 2월, 체코 보헤미아 지방의 중부 소도시에 있는 작은 기차역이 작품의 배경이다. 이 역에 스물두 살 먹은 철도학교 졸업생이자 철도 업무를 배우고 있는 수습생 ‘밀로시 흐르마’라는 청년이 재직하고 있다. 소설은 이 밀로시 흐르마의 일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는 바, 먼저 주인공이자 화자인 이 청년에 관해 설명을 좀 해야겠다.
  밀로시의 증조부 루카시 할아버지. 1830년생인데 18세 되던 1848년에 당시 보헤미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군대에 입대해 육군에서 북치는 고수鼓手로 카렐대교 전투에 참전한다. 카렐대교 전투? 보헤미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보헤미아의 독립혁명 중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였다. 루카시 할아버지가 전심전력을 다해 북을 쳐서 그리 됐는지 모르겠지만, 전투는 시민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오스트리아 군대의 완벽한 승리로 끝을 맺었으나, 루카시는 다리 위에서 동포 학생들이 던진 돌에 무릎을 맞아 평생 절름발이 신세로 보내야 했다. 막강한 국력과 국부를 자랑했던 오스트리아는 이 충성스런 열여덟 살 먹은 보헤미아의 청년 상이군인에게 원호보상으로 매일 금화 한 닢의 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도 하고 진짜로 주기도 했다. 루카시 할아버지는 이 돈으로 하루도 빼지 않고 럼주 한 병과 담배 두 갑을 사서 일부러 힘들게 일을 해야 그저 먹고 살 수 있는 보헤미아 시민들 곁에 다가가 술을 마시고 고급 담배를 피우다가, 당연하게, 자주 시민들에게 흠씬 두드려 맞아 거의 분기에 한 번씩은 아들이자 밀로시의 할아버지가 손수레에 실어 와야 했을 정도였단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가 망할 때까지 무려 70년 동안을. 아, 오스트리아가 망했다는 이야기지 루카시가 죽었다는 건 아니다. 그는 1935년에 백다섯 살이 되는 해에 막 채석장을 폐쇄해 이제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진 노동자들 앞에서 술과 담배를 자랑했다가 얻어터져 드디어 천국의 환희를 맛보았는데, 의사가 검사를 해보더니 앞으로 20년은 확실하게 더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했을 정도란다.
  할아버지는 서커스단에서 맹활약한 최면술사 출신이었으나, 동네 사람들은 이이가 최면술사가 된 건 일하기 싫어하는 자기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그랬던 거라 결론을 냈다. 그러나 1938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이 탱크를 앞세우고 체코를 침공하자 할아버지는 독일군 탱크를 저지하고자 나선 유일한 사람으로 기억되기에 이른다. 그는 부대를 선도하고 있는 탱크 앞에 맨 몸으로 우뚝 선다. 그러자 놀랍게도 정말로 선도 탱크는 할아버지 앞에서 우뚝 멈추고, 탱크를 따르던 모든 독일군 병력도 당연히 그 자리에 멈춰버리는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할아버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탱크의 해치를 열고 지휘하는 사람을 향해 팔을 휘두르며 수십 년 동안 밥벌이였던 최면을 걸기 시작한다. 그러나 몰랐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최면이 통하지 않았던 지휘자는 탱크를 진격하도록 명령했고 절대로 최면을 멈추지 않았던 할아버지를 박살내며 전진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저주로 인해 탱크는 프라하를 앞에 두고 멈춰 서버리고 마니, 궤도 안에 이물질이 끼어 그것을 빼지 않는 한 꼼짝도 안 하는 상태가 된 것. 그래 크레인이 한 대 동원되어 탱크를 들어 올렸을 때 나타난 건 할아버지의 머리였는데, 온전한 장례를 치루기 위해 달려온 밀로시의 아버지 발아래로 얼굴이 또르르 굴러와 그나마 아버지를 잃은 위안이 되었더란 것. 어쨌거나 독일군이 체코를 침공했을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해 유일하게 나선 사람이 바로 밀로시의 할아버지였던 거다.
  밀로시의 아버지는 기관사 출신. 스무 살 때 시작한 기관사 일을 마흔여덟까지 하고 일찌감치 은퇴를 결정했는데, 28년간 노동의 대가로 지금은 재직할 당시의 두 배에 가까운 연금을 받으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면서 시간이 남으니 이것저것을 만드는데다가 취미를 붙이고 산다. 예를 들어 연합군 전투기에 격추되어 동네에서 좀 떨어진 벌판에 독일군 전투기가 추락하자 냅다 달려가 비행기 잔해에서 나온 항공유의 도관導管을 가지고 와 60개의 파이프로 잘라 샤프 연필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그러니 하여간 밀로시가 타고난 흐르마 가문을 보통사람이 본다면 이들의 집단적 특징으로 일하기 싫어하는 경향을 들지도 모르겠다.
  그럼 스물두 살의 밀로시는 어떤가. 밀로시가 프라하 카를린에 사는 노네만 사진사의 집에 며칠 묵은 적이 있었다. 밀로시를 위하여 내줄 방이 없어 촬영실의 카우치에 이불을 덮고 자기로 했는데, 노네만 씨의 조카인 사랑하는 마샤가 담요 속으로 비집고 들어와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아뿔싸. 밀로시한테는 일종의 증상이 있었던 것을 본인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여태까지 숫총각이었거든. 에야쿨라치오 프레콕스. 이게 어떤 증상인가 하면, 성적 자극이 되어 잔뜩, 통증이 올 정도로 피가 몰린 생식기가 이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할 결정적 시기가 오니까 그만 급성으로, 급성이라기보다 특급열차처럼 생식기에 몰렸던 피가 순식간에 다 다른 곳으로 흘러가버리는 현상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끔가다 겪는 일이지만 문제는 밀로시가 아직도 한 번의 경험도 없었다는 거. 뭐라? 당신은 한 번도 이런 증상을 겪어보지 못했다고? 그럼 기다려보시라. 곧 그런 시기가 도래할지니. 하여튼 밀로시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던 모양이다.
  밀로시는 역으로 가 아무 곳으로나 가는 열차표를 끊고 도착한 곳이 베네쇼프의 비스트르지체. 역 앞의 자그마한 여관에 들어 욕탕에 뜨거운 물을 받은 다음 옷을 벗고, 뜨거운 물이 주는 고통을 느끼면서 몸을 담그고 면도날로 오른 손으로 왼쪽 팔을 그은 다음,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해놓은 면도칼 위를 오른 손목으로 강하게 내려쳐 마치 로마의 귀족처럼 죽어버리기를 바랐으나, 세상에 주인공이 중간에 죽는 거 보셨어? 극적으로 구조되어 3개월 병가처리. 정신병원에 있을 때 에야쿨라치오 프레콕스는 누구나 겪는 것이며 밀로시 같은 젊은 청년의 경우엔 나이가 지긋한 여인이 도와주면 금방 극복할 수 있다는 처방을 받았다. 이제 다시 역무원으로 복귀하여 일상의 일을 하고 있게 됐으니, 다음엔 이 역에 어떤 인간들이 있는지도 한 번 봐야겠다.
  완전 뺀질이 후비치카 씨. 이 양반은 마음을 먹으면 일단 저질러버리고 마는 성격이다. 그래 나이가 차도록 승진 한 번 못해보고 비슷한 또래가 역장을 하고 있음에도 아직 배차계장에 머무르고 있지만 체코의 철도계에선 가히 전설적인 인물이다. 최근에도 사고를 한 번 친 바 있어서 철도계는 물론이거니와 5km에 이르는 벌판의 끝에 자리한 성의 주인인 킨스키 백작마저 감탄하게 만들었는데, 전신원 즈데니츠카 또는 애칭으로 즈덴카를, 야간 근무할 때, 전신기에 엎드리게 해놓고 치마를 훌렁 걷어올린 다음, 엉덩이에 대고 역의 모든 직인/스탬프를 쾅쾅 찍어버렸던 거다. 그래 이 사건이 형사법정에 까지 가야 하는 성폭행 사건인지, 아니면 역의 징계위원회에서 끝내버릴 업무시간 근무태만의 건인지 가리기 위해 철도 본부에서 국장이 직접 방문할 예정인데, 암만해도 사실의 이모저모가 궁금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
  사회정화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한 역장은 인생의 두 가지 목표가 있는 인물로 하나는 철도청 감독관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루제 가문의 란스키 남작이란 칭호를 얻는 것이다. 이런 인간을 쉬운 말로 극도의 속물이라고 하는데, 취미생활로 뉘른베르크 종 비둘기를 키우는 것이 있었다. 그러다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부하 직원에게 지시를 해서 자신이 흐라데츠로 출장 간 동안 비둘기의 목을 전부 비틀어버리라고 해놓고, 오는 길에 폴란드 종을 새로 사 온 인물이기도 하다. 이이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스트레스가 올라오면 즉시 커다란 파이프에다 대고 온갖 욕을 해대는 것이고,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아내를 향해 이것저것 욕설을 해대는 것이었는데 볼라리 지방의 정육점 집 딸인 아내는 평소엔 역무실에 앉아 넓은 식탁보에다 얌전하게 뜨개질을 하는 어여쁜 여인임에도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남편의 가리지 않는 욕설을 견디지 못하고 귀싸대기를 올려 부치는 경우가 있었다.
  한 마디로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 근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다 별 볼 일 없는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공동의 적이 있었으니 자기들을 침략한 독일의 군대. 우리의 밀로시는 발음하기에도, 기억하기에도 고통스러운 에야쿨라치오 프레콕스를 치유하기 위하여 역장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지하에 내려가 역장의 부인에게 말을 잘 듣지 않는 자신의 몸을 좀 만져달라고 부탁을 하고, 이미 갱년기가 지난 역장의 부인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불쌍한 바 작지 않아, 자신이 조금만 더 젊었더라도 도와줄 터인데 차마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하는 와중에 역 전체가 부르르 진동을 하니 저 지평선 너머가 갑자기 불빛에 환해지는 것이, 드디어 2월 13일, 엘베 강의 피렌체, 드레스덴에 연합국의 공군 폭격기들이 무차별 적으로 공습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체코의 벌판에 있는 자그마한 역에서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독일의 병사들과 무기를 잔뜩 싣고 최전선으로 투입되는 열차가 역마다 독일 병정의 호위를 받으며 지나갈 예정인데, 7년 동안이나 독일의 강제와 폭력과 수탈에 시달린 체코의 시민들도 뭔가를 하나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영웅은 아닐지라도.
  자, 개봉박두. 그것이 무엇인지는 절대 알려드리지 않을 터이니 궁금하신 분은 얼른 책을 사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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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6-23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리 멘젤 감독이 보흐밀 흐라발 열혈팬인지, 흐라발 작품을 많이 영화화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예전에 운 좋게도 <가까이서 본 기차>를 영화로 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오히려 원작과 흐라발을 알지 못하던 시기네요. ㅎㅎ 영화는 꽤 괜찮으니 보시는 거 추천이요.

Falstaff 2020-06-23 10:15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붉은 망아지.불만의 겨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존 스타인벡 지음, 이진.이성은 옮김, 김욱동 해설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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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처럼 출판사 ‘비채’는 스타인벡의 초기 중편소설 <붉은 망아지>와 그가 쓴 최후의 소설인 <불만의 겨울>을 담아 본문만 613쪽에 이르는 바람직하게 두꺼운 책을 만들었다. ‘바람직한’이란 찬사를 붙이는 이유는 두 작품 다 매력적이라 책 한 권을 읽으며 상당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네 개의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옴니버스처럼 배열되어 있으나 에피소드들이 절박하게 엮여 있지는 않은 <붉은 망아지>는 로키산맥 동쪽 옛 밀림지역을 개간하여 농장으로 만든 칼 티플린 씨 소유의 농장을 배경으로 주로 그의 아들 조디의 눈으로 바라본 것들을 그리고 있다. 세 식구와 말에 관해서 근동의 누구보다 아는 것이 많은 일꾼 빌리 벅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네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편에는 아버지와 빌리 벅이 늙은 젖소들을 푸줏간에 팔러 읍내에 나가 붉은 색의 망아지를 사와 조디가 이 망아지, 가빌란을 직접 키우는 이야기다.
  자신만의 말이 생긴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가. 평소에 말수가 적은 아이에 불과했던 조디는 망아지 가빌란을 소유함에 따라 단박에 기적적으로 신분이 상승했으니, 유사 이래 언제나 걷는 사람보다 말 탄 사람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우월한 법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망아지에 관한 에피소드는 3편에서 암말 넬리가 발정을 하여 테일러 씨에게 5달러를 주고 종마 선도그와 교배를 한 후 망아지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와 서로 연결이 된다. 물론 두 편 다 지은이가 스타인벡이니 행복한 결말은 기대하기가 쉽지 않지만.
  2편에서는 예전 이웃 농장에서 어도비 벽돌집을 짓고 살던 지타노 씨가 청바지와 청재킷을 입은 가냘픈 체구의 노인이 되어 돌아와 티플린 부인에게, ‘고된 일은 못합니다, 세뇨라. 하지만 소젖을 짜고 닭 모이를 주고 장작은 팰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은 못합니다.“라고 고용을 부탁하지만 농장에서는 더 이상의 인부가 필요 없어 오늘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할 터이니 내일 아침에는 가 주시라는 당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노인의 문제는 4편에서 이제 조디의 외할아버지가 몇 주 다니러 오는 일과 연결이 되는데, 외할아버지는 일찍이 개척민들을 이끌고 서쪽에서 태평양을 만날 때까지 이주민을 인솔해 온 대장이었으며, 당시에 경험한 포장마차의 행렬과 인디언들 이야기를 쉼 없이 되풀이하는 노인이다. 그의 시절이 이미 끝났음에도, 벌써 오래 전에 끝났음을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과거에 남아 있는 노인들.
  <분노의 포도>, <의심스러운 싸움>, <에덴의 동쪽>을 쓴 작가의 초기 작품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시절을 지내고 있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이랄 수도 있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 재미있다. 이 작품이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추천했던 것이라고 하는데, 읽어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을 정도다. 오바마의 소설 취향이 믿을 만한지 여부와 관계 없이 말이다.


  스타인벡의 마지막 소설 <불만의 겨울>은 상당히 그럴 듯하다. 여태까지 내가 읽은 스타인벡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불황기에 주로 중서부 지방의 소시민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사회주의적 경향의 작품들과 스타인벡 자신의 이야기임에 거의 분명한 성장소설이었다. 그러나 <불만의 겨울>은 무대부터 미국의 중서부가 아니고 동쪽이다. 차가 막혀도 무려 뉴욕에서 세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뉴베이타운이라는 해변을 낀 작은 읍을 무대로 하고 있다. 20세기가 오기 전까지는 미국 최대의 포경선단이 운집해 막대한 재화가 주는 즐거움을 누리던 곳. 독립전쟁 당시 맹활약을 한 덕분에 독립 후인 1812년에 사략선, 즉 해적질에 관한 면허를 국가로부터 취득하여 한동안 미국을 제외한 국적의 상선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전설을 가진 홀리 가문. 이 가문의 마지막 후예가 ‘이선 앨런 홀리’이며, 아내와 아들, 딸, 이렇게 네 식구의 가장이다.
  오랜 세월 유지해온 재화는 할아버지 대에 지구상 최고의 포경선 ‘벨 아데어’호를 베이커 가문과 공동소유 하게 되었으나, 샌프란시스코 근방에 석유가 나오기 시작해 값싼 등유가 고래 기름 시장을 빠른 시간에 대체함에 따라 포경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할 때, 정박 중인 벨 아데어 호가 바다 위에서 화재가 나 흘수선까지 홀랑 타버린다. 주인공 이선은 이 사건을 당시 동업자였던 베이커 씨에 의한 방화로 보고 있지만 아주 오래 전 일이라 증명할 방법은 없다. 화재로 보험료를 받아 그래도 여전히 부유한 삶을 살던 홀리 가문은 이선의 아버지가 전쟁 끝 무렵에 난데없이 군수사업에 투자함으로써 동산과, 저택을 제외한 모든 부동산을 말끔하게 말아 드시고 화병으로 숟가락을 놓은 바람에, 지금 이선은 하버드를 졸업한 재원이고, 예비역 대위임에도 불구하고 시칠리아 출신 불법 체류자 마룰로가 사버린 예전 자기네 집 상점에서 점원 노릇을 하고 있다.
  때는 1960년. 미국은 소련과 더불어 지구에 둘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의 종주국이었으며 정치, 경제, 문화, 당연히 군사, 교육 등에 경쟁할 상대가 없는 최강국이었지만 안으로는 조금 더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고자 서슴없이 부정과 부패, 뇌물, 리베이트, 중상, 모략 등이 팽만하던 시기였다고 스타인벡은 진단한다. 이 속에서 이선은 잘 배운, 좋은 집안의 유일한 후손답게 예전 자기네 작은 사업체였던 식료품 가게에서 단 하나 있는 점원으로 십 수 년 간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정직하고, 청렴하고 항상 친절한 몸가짐과 유머가 풍부한 언어습관으로 인하여 점원신분이라기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여전히 뉴베이타운의 명망가 홀리 가문의 후계자로 여기게 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명망가의 후계자이면 무엇을 하나. 커다란 집만 있었지 흔한 TV도 없고, 자가용 승용차는 말할 것도 없이 시칠리아에서 홀로 건너와 생존하기 위해 오직 돈, 돈 하나만을 삶의 목적으로 얼굴에 철갑을 두르고 돈 하나만을 위해 살아온 마룰로에게 어이, 풋내기, 라는 호칭을 듣고 살아야 하는 것을. 심지어 저녁을 함께 하자고 누구를 초청해본 적도 너무 오래되어 몇 년이나 흘렀는지도 모르고, 결혼 후 한 번도 여행을 떠나보지도 못해 우연히 일박이일 일정으로 가까운 몬타우크의 방갈로로 떠나는 것에도 감격하여 잠을 못잘 정도임에야.
  그리하여 우리의 이선 역시 이 살벌한 시절에 자신도 돈을 한 번 왕창 벌어보자고 결심을 한다.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골목 건너 뒷문을 매개로 친구가 된 은행원 조이 모피로부터 방법을 배운 은행을 터는 것하고, 자신의 최고의 무기인 선량함과 정직함으로 무장하고 최소한의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거였다. 자세한 내용은 재미있는 책 《붉은 망아지 · 불만의 겨울》을 읽어보실 분을 위하여 여기서 그만 두겠으나, 어쨌든 선량함과 정직함을 교묘하게 섞어 거대하게 넓은 평야 지역의 토지와 자신이 여태까지 일하던 식료품 상점을 손에 쥐게 된 이선에게 또 하나의 즐거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자신과 같은 이름을 부여한 이선 앨런 홀리 2세가 미국의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나라사랑 글짓기’ 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히는 영광과 더불어 자기 집에도 없는 TV에 인터뷰가 방송될 예정이다.
  당시 미국은 그랬다. 다들 그랬다. 이니셜이 금색으로 박힌 지갑 속에 50달러짜리 신권을 한 장 넣어 선물하며, 우리 회사에서 구매한 물품에 대하여 매출액에 5퍼센트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영수증 없이 현금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의를 하면, 5퍼센트는 너무 적고 6퍼센트로 해주면 생각해보겠노라고 대답하는. 우리의 이선, 홀리 집안의 후계자는 이런 관행에서 거의 유일한 예외자였다. 그의 주변에서는 쉼 없이 다들 그렇게 해, 유별난 짓 좀 하지 마, 너만 잘난 줄 알아, 라고 항변했지만 그는 하여간 그렇게 버텼다. 그리고 그것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무기가 됐고.
  스타인벡의 경향성, 사회성이 싫어 그를 선택하지 않았던 분에게 권하기에 맞춤한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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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왕국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0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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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듣는 작가지만 쿠바에서는 소위 국민작가로 불린다고 한다. 1904년 스위스 로잔 출생이나 쿠바의 아바나에서 유년시절부터 대학에서 건축학과 음악 이론을 공부했다. 이이의 전공 때문인지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음악과 악기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음악을 알지 못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 그것을 이유로 이 작품을 피할 필요는 없다. 이후 쿠바의 독재정권에 맞서 반정부 운동을 하다 잠깐 투옥도 되고 유럽으로 피신해 한 십 여 년 살다 되돌아 왔다가, 아직 때가 아니다 싶어 또 베네수엘라로 도피하고는 1959년 쿠바혁명을 완수하고 곧바로 귀국해 신생 쿠바의 혁명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쿠바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이티를 무대로 하고 있다.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 섬을 발견할 당시부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1697년에 섬의 서쪽을 프랑스가 차지하면서 프랑스의 식민지를 거쳐 1804년,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빨리 독립을 쟁취한 나라가 된다. 책에서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고자 하는 아프리카인, 즉 흑인들을 중심으로 씌었는데,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1492년, 콜럼버스 일행이 이 스파니올라 섬에 도착했을 때, 선원들과 함께 온 것이 있었으니, 천연두 정도로 짐작이 되는 전염병이었다. 아시다시피 구 멕시코 제국이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 군대한테 제대로 저항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굴복한 것이 용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유럽인들에겐 상당한 정도의 면역력이 있었던 천연두 때문이었던 것과 매우 유사한 이유로, 스파니올라 섬의 50만 명가량 원주민 거의 전부가 불과 6개월 만에 전멸을 하고 만다. 이런 상태로 식민지를 경영할 수 없으니 모자라는 노동력을 아프리카의 노예상인한테 조달을 받아 비옥한 토지에 사탕수수, 담배, 커피 등을 재배하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아이티와, 오른쪽에 국경선을 맞댄 도미니카에는 다수의 흑인들을 포함한 유색인종과 극소수의 백인, 그리고 소수의 흑백 혼혈로 구성되고, 백인에 의한 유색인종에 대한 핍박과 박해와 수탈과 능욕과, 고문-죽음을 포함한 사형私刑이 지속되기에 이른다. 동시에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군에 편입하여 싸운 아이티 흑인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이 더해져 18세기 말부터 자생적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가 19세기 초인 1804년 드디어 유색인종에 의한 세계최초의 독립선언을 하게 된다.
  책에서는 므시외 르노르망 드 메지 씨가 경영하는 르노르망 드 메지 농장에서 사탕수수 압착 공정의 노예로 있었던 실제 인물(이라고 하는) 마캉달이 등장한다. 어느 날 작업 중에 마캉달의 왼손이 압착기에 빨려 들어가 크고 늙은 말이 돌리는 방아 돌에 어깨까지 갈려 상박 부분을 절단한 불구의 노예로, 원래 출신은 아프리카 노예 가운데 가장 다루기 힘들고, 불온하며, 악마 같은 존재이며 잠재적 도망자로 분류하는 만딩고 족 출신이다. 아니나 달라, 이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가축 돌보는 일을 맡게 했는데, 들의 모든 작은 생물들, 풀과 버섯, 작은 곤충을 포함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져 자연의 맹독을 자유스럽게 사용하게 됐을 때쯤에 도망을 해버린다.
  팔이 하나밖에 없어 가격을 거의 매길 수 없는 싸구려 노예지만 다른 노예들을 경계하고자 사냥개들과 함께 마캉달을 추격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대신 개, 암소, 수소, 송아지, 말, 양 등 수 백 마리가 죽어 넘어져 드 메지 씨의 농장이 있는 플랜 뒤 노르(섬의 북쪽에 있는 대목장 지역) 전역에 시체들이 넘쳐난다. 여기에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넘어온 부두교와 유럽에서 온 가톨릭이 합쳐져 소위 말하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 특유의 ‘붐 경향’이 발생, 마담 드 메지는 나뭇가지에 달린 탐스런 오렌지 하나를 따먹고 그 자리에서 급사를 해버린다. 이에 흑인 노예들은 마캉달이 발굽달린 동물, 조류, 물고기, 심지어 곤충으로 변신하는 능력이 있으며 동시에 여러 아시엔다(농장)에 지속적으로 방문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빙의된 위대한 신으로 격상시킨다.
  그래 백인들은 흑인 노예를 차례로 고문해 그중 ‘안굽이 무릎의 사내’가 실토하기를, 최상의 권능을 부여 받아 백인들을 없애고 산토도밍고에 흑인들의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백인 박멸을 위한 성전을 선포했으며, 노예 수천 명이 마캉달을 신봉한다는 말과 함께 그를 잡을 수 있는 단서를 토설한다. 백인들이 이 안굽이 무릎의 사내를 내버려 두었겠는가? 열 받는다는 이유로 중요한 정보를 주었음에도 배를 갈라 죽여 버린다. 다음해 1월, 플랜 뒤 노르의 모든 노예들이 도시 카프의 광장에 모인다. 흑인들을 위한 갈라 쇼가 열릴 예정인바 조금 뒤에 중무장한 경비 대원에게 호송되어, 허리에 줄무늬 바지가 달려 있고 밧줄과 매듭이 ‘반드시 필必 자’처럼 묶여 있는 마캉달이 입장해 나무 기둥에 다시 묶인다. 화형에 처하기 위한 것.
  그러나 흑인 노예들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마캉달은 파리, 지네, 나방, 개미, 거미, 무당벌레 또는 개똥벌레로 변신해 스르르 미끄러져 다시 모기로 모습을 바꾸어 사령관의 모자 위에 가뿐하게 앉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정말 다리 아래에 불을 붙이자 끔찍한 비명과 함께 몸이 타기 시작하고, 마캉달을 묶은 밧줄도 타기 시작해 까맣게 그은 몸의 줄이 툭 끊어지자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아 앞으로 움직이다가 푹 쓰러진다. 이 모습을 본 흑인 노예들은 틀림없이 이 순간에 마캉달이 변신해 어딘가로 숨었을 것이라 확신하게 되고, 그리하여 전설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러, 다른 작가가 쓴 책에서도 본 적이 있는 흑인노예들에 의한 백인에 대한 약탈과 살인과 린치에 이어 1804년 드디어 독립선언을 하게 되고, 장 자크 데살린이 초대이자 종신 총독에 등극한다. 하지만 2년 후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이티는 남쪽은 알렉상드르 페시옹이, 북쪽은 앙리 크리스토프가 대통령과 황제를 칭하면서 프랑스의 군복, 예복, 풍습 등을 그대로 복사하기에 이른다. 자,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책은 서문과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읽어본 자격으로 말씀드리자면, 본문을 다 읽은 후에 서문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이 서문은 적어도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을 위해 쓴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 사람이 서문을 읽으면서 즉각적으로 이해하기는 곤란할 것인데, 만일 본문을 다 읽은 상태라면 곧바로 이해가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금 작가가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쩌면 책에서 무척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거늘 그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으면 독자 입장에서 난감할 수밖에. 물론 서문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유럽의 허망한 고딕문학이나 초현실주의 같은 건 공상을 통해 나타나는 인위적 모습인 반면, 라틴 아메리카는 삶 자체가 마술적, 경이적이어서 사는 모습만 그대로 써놓아도 그것에 필적할 것이라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알레호 카르펜티에르가 새로이 열기 시작했다는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4부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거기에 대하여는 직접 읽어보시라는 말씀만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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