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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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초반에 무크지가 유행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은 어엿한 메이저 출판사로 성장한 『실천문학』. 1년에 한 권씩 게릴라처럼 출판하고 싹 사라진 다음에 다시 1년 후에 2호를 펴내고 잠적한다. 이 실천문학 2호 “이 땅에 살기 위하여”가 내가 제일 처음 읽은 무크지다. 문익환 목사가 ‘늘봄’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발표했고, 김정환의 <황색예수전>도 2호에서 처음 읽었다. 아, 그리고 시의 제목(<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은 아니다.)은 잊었지만, 양성우! 1982년,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낭유리 군부대 막사에서 이 책 읽다가 고참한테 들킨다. ‘쫄따구 새끼’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내무반에서 책을 읽는다는 명목으로 새벽 두 시에 취침인원 전원을 깨워 곡괭이 자루로 줄빠따를 치고, 치사하게 원인제공자인 나는 쫄병이라 탈영할까 겁나서 안 때리겠단다. 책 읽는 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맞을 정도의 죄가 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첫 연인이 보내준 무크지 실천문학은 그래서 이래저래 잊지 못한다. 5호까지 나오고 이후에 베트남 국기처럼 사각형 안에 검은 별 하나가 그려진 로고의 실천문학사가 생겨 이후 계간지로 탈바꿈한다.
  복학을 하고나서 특히 무크지에 관심이 생겼다. 이때 실천문학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또다른 무크지 가운데 『시와 경제』가 있었다. 당시에 나오는 모든 무크지는 하나같이 운동문학에 복무했다. 『시와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복학생이 사는 책이라곤 최인훈 전집을 한 권씩 모으고 오정희의 단행본을 사는 것으로도 빡빡해 주로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을 찾아야 했지만 무크지는 말 그대로 비정기 간행물이라 읽어보기도 힘들었다. 어렵게 구해서 본 『시와 경제』의 발행인이 김사인金思寅이었다. 1호가 나온 것이 1981년이라 한다. 김사인이 1956년 원숭이띠니까 당시 스물여섯 살의 청년. 시대는 잔인한 전두환 정권시절이었다. 이때의 기억은 김사인으로 하여금 이런 시를 쓰게 했다.

 


  일기장 악몽

 


  또 잡아갈라 또 탈탈 털어가서는
  시월 이십구일 다섯시부터 일곱시 사이에 뭘 했는지
  시월 한달 뭘 했는지 하나도 빼지 말고 전부 쓰라고
  언제 어디서 누구하고 무엇을 육하원칙대로 다 쓰라고

 

  속을 들여다보는 눈빛을 하고 다 안다는 눈빛을 하고
  때가 되면 육개장을 된장국을 먹여가며 을러가며
  다시 쓰라고
  또 다시 쓰라고

 

  콧속으로 물이 입으로도, 비명을, 숨이……비명을, …… 컥!
  칠성판에 묶여 개구리처럼 빠둥거리다
  넙치처럼 도다리처럼
  오줌을 싸며 기절하는 거 아닐까
  모를 리 없다고 모를 리가 없다고
  잘 생각해보라고
  친구 꾐에 빠졌을 뿐
  너는 억울한 줄 우리가 잘 안다고
  그러니 솔직히 그놈이 뭐라고 했는지
  그놈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말해보라고

 

  식은땀 흘리며 벌떡 깨네 벌써 삼십년
  말발타 살발타!  (전문)

 

 

  나는 군대생활이 유독 맞지 않아서 그런가 모르겠는데, 아직도, 이 나이에 무슨 얼토당토 않는 서류가 잘못된 것이 밝혀져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꾼다. 그러면 제대한 지 40년이 가까운데도 속이 상해서 미치겠다. 여태 꿈을 꾸는 것 가운데 하나 더, 내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 해서 학사경고를 두 번 받았음에도 8학기 만에 졸업을 했다. 그러니 당연히 4학년 2학기에 21학점을 꽉 채워 신청을 하고, 한 학점이라도 F가 나오면 졸업을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이게 가끔 꿈에 나온다. 시험시간에 교실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은 벌써 시험이 끝나 교실에서 나오고 있었고,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를 역임한 완고하기 짝이 없는 한필하 교수는 절대 시험에 응해줄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미 취업을 한 나는 발만 동동 구르다가 새벽을 맞는 거, 이거 정말 유쾌하지 않지만 가끔 겪는 일이다. 한 가지 경험이 더 있지만 김사인이 당한 물고문 앞에선 입도 벙긋하기 창피한 사소한 경험이라 입 꾹.
  김사인과 비교하면, 아니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일천한 경험이지만, 오래된 일이라도 그게 당사자한테 큰 충격이었다면 언젠가는, 언젠가가 아니고 상당히 잦은 비율로 꿈을 꾸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에 젖어 벌떡 일어나, 아이고 세상에나, 말발타 살발타, 주문을 외우게 만들면서.
  김사인이 역경을 치룬 것이 『시와 경제』 한 번이 아니다. 『시와 경제』 이후 몇 년이 흐르고 노태우 정권 초기, 조금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한 철권통치의 시절에 이번엔 『노동해방문학』이라는 무크지의 발행인이 된다. 말부터 심상치 않다. 당시에도 반공을 국시로 하는 육군 장군 출신이 대통령을 하던 때인데 잡지의 제목에 ‘노동해방’을 붙여? 이거야말로 간이 배 밖으로 탈출한 일이었을 터.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읽어보려고 한 권 샀으나, 술 마시는 일 하나만 가지고도 공사가 다망해 몇 쪽 펴보지도 않고 흐지부지 없어졌다. 하여간 내가 김사인의 시를 집중해 읽은 시기가 『실천문학』과 『노동해방문학』의 사이다.
  그런데, 이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펼치니 처음 실린 시가 눈에 익다.

 


  달팽이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 보던 외조부의 골방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
  길이 무너지고
  모근 소리와 갈증이 다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
  네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전문. 띄어쓰기는 원문에 따름. 이하 같음.)

 


  김사인의 시 같지 않다. 어떻게 읽으면 모던하면서도, 진중하게 느리더라도 꾸준히 배밀이로 먼 길을 가겠다는 의지처럼도 읽힌다. 분명 이거 전에 어디서 얽었는데, 어딘지 모르겠다. 김사인의 세 번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이야기하자면, 책동무가 있다면 정말 이 시집이야말로, 다른 술은 안 되고 막걸리 마시면서 밤을 새워서라도 소리 내 읊어보고,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독후감이 너무 길면 욕먹는다. 그래서 하고 싶은 여러 마디 말 가운데 딱 한 가지만 하고 마치자.

 

  시집에서는 그동안 숨을 거둔 시인들에 관한 시가 세 편이 나온다. 먼저 내가 2018년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꼽았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을 쓴 김태정, 그리고 박영근과 신현정. 오늘 우연히 회사의 동갑나기 박영근과 일과 후에 북어탕 안주에 쐬주 한 병씩 하기로 했는데 그것 참. 김태정을 기리는 시는 제목 자체가 <김태정>이다.

 


  1
  울 밑의 봄동이나 겨울 갓들에게도 이제 그만 자라라고 전해주세요.
  기둥이며 서까래 들도 그렇게 너무 뻣뻣하게 서 있지 않아도 돼요, 좀 구부정하세요.
  쪽마루도 그래요, 잠시 내려놓고 쉬세요.
  천장의 쥐들도 대거리할 사람 없다고 너무 외로워 마세요.
  자라는 이빨이 성가시겠지만 어쩌겠어요.
  살 부러진 검정 우산에게도 이제 걱정 말고 편히 쉬라고
  귀 어두운 옆집 할머니와 잘 지내라고 전해주세요.
  더는 널어 말릴 양말도 속옷 빨래도 없으니 늦여름 햇살들은 고추 말리는 데나 거들어드리세요.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미황사 앞. (부분)

 


  저 세상으로 간 김태정이 자기가 마지막 숨을 쉰 해남 미황사 앞마을에서 늘 가까이 하고 살았던 미물과 자연에게 당부하는 걸 그리고 있다. 다음엔 죽음이란, 죽는다는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역시 고인의 말로 전하고, 이어서 김사인의 기억 속 김태정을 소환한다.

 


  3
  슬픔 너머로 다시 쓸쓸한
  솔직히 말해 미인은 아닌
  한없히 처량한 그림자 덮어쓰고 사람 드문 뒷길로만 피하듯 다닌
  소설 공부 다니는 구로동 아무개네 젖먹이를 맡아 봐주던
  순한 서울 여자 서울 가난뱅이
  나지막한 언덕 강아지풀 꽃다지의 순한 풀밭.
  응 나도 남자하고 자봤어, 하던
  그 말 너무 선선하고 환해서
  자는 게 뭔지 알기나 하는지 되레 못 미덥던
  눈길 피하며 모자란 사람처럼 웃기나 잘하던
  살림 솜씨도 음식 솜씨도 별로 없던

 

  태정 태정 슬픈 태정
  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부분)

 


  그리고 나서 이젠 김태정을 위한 조의. “이제라도 가만히 조문해야 한다. / 새삼 슬픈 시늉을 하지 않겠다.”라고.
  김사인의 각주에 의하면 시인 박영근은 부안 사람으로 2006년에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고, 눈물과 노래가 일품이었다고 한다.

 


  박영근

 


  너무 무서워서 자꾸만 자꾸만 술을 마시는 것.
  그렇게 술에 절어 손도 발도 얼굴도 나날이 늙은 거미같이 까맣게 타고 말라서 모두 잠든 어느 시간 짚검불처럼 바람에 불려 세상 바깥으로 가고 싶은 것.

 

  그 적의 어느 느슥한 밤 쪽으로
  선운사 동백 몇송이도 눈 가리고 떨어졌으리.

 

  받아주세요 두 손으로 고이
  어디 죄짓지 않은 마른땅 있거든 잠시 쉬어가게 해주세요.
  젊은 스님의 애잔한 뒤통수와 어린 연둣빛 잎들과 살구꽃 지는 봄밤 같은 것을
  어떻게든 견뎌보려는 것이니까요.  (전문)

 


  신현정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색해 찾아보니 이런, 낯익은 얼굴이다. 이이 이름이 신현정이었구나. 아직 생존했다면 여든넷. 서라벌 고등학교 교사였다지만, 내가 서라벌 중학교 다닐 때는 중대 문창과를 아직 졸업하지 않았거나 갓 졸업해 부임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교생실습을 왔었을까? 그래서 얼굴이 익었나? 아이고, 그럴 리가. 그때가 언젠데. 이이가 재미있는, 그러니까 유쾌한 성격이었나보다. 좀 길더라도 시 전문을 올려보겠다. 신현정의 네 번째 시집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시의 제목으로 썼다.
  시인 세 명 말고도, 돌아간 부모는 당연하고, 화백 여운을 비롯해 자기가 여태 살면서 주위 배경으로 또 다른 삶을 살았던 보통의 사람들과 키우던 개까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모더니즘 시들이 흘러넘치는 요즘에 서정시의 맥을 달팽이처럼 지켜나가는 김사인의 시를 읽는 건 얼마나 개운한 일인지. 그의 초기시에서 익숙했던 투쟁과 혁명은, 내 경우에 국한해 말하자면, 서정 앞에서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신현정을 기리는 시를 옮기며 독후감을 마친다.

 

 

  바보사막

 


  눈부신 가을볕 더는 성가셔 슬쩍 피해 가셨단 말이지.
  헌 우체부 자전거는 훔쳐 타고
  달밤 무지개 길을 씽씽 달려
  (야호! 엉덩이 높이 들고 오두방정도 떠시면서)
  술벌갱이라고들 소문이 도는 하늘님 영감네 동네로 마실가셨단 말이지.
  볼록볼록 보드라운 보도블록 길 걸어
  흰 구레나룻으로 한몫 먹고 드는 그 심술 영감한테로
  내기 장기나 한판 두러 가셨단 말씀이지.

 

  달무리 같은 터번을 쓰고 어린 하마와 고슴도치와 염소와 늙은 낙타를 업고 걸리고
  바보 같은 사막 천치처럼 건너서
  그대는 왕자같이 잘도 가셨나본데,
  가을햇살 속은 조용히 환한데,
  (귓속말인데, 김종삼 천상병 박용래 같은 프로들은 거기 다 계시지요? 한편 부러워요. 혹 채광석 박영근 같은 이들이 왈왈거리며 말 트자고 덤비더라도 속상해 마세요. 괜히 그러지 속은 여린 사람들이에요. 하기야 든든한 이문구 성님이 통반장 한 구찌쯤은 맡아보고 계시겠군요.)

 

  그런데 누구일까 저 백수광부(白首狂夫)
  앞자락 풀어헤치고 광화문 네거리 둥둥 떠 흘러가는 저 사내.
  검붉게 술에 탄 얼굴 다복솔 머리 헐렁한 바지
  이 슬픈 시간에.  (전문)

 


* 근데 꼭 한 마디만 더 해야겠다. “아직도 나는 시 가운데서 서정시가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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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26 08: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시절 꿈을 자주 꿔요. 저도 대학시절 학사경고 받고 4학년 2학기 때 21학점 풀로 채워 들어 졸업 간신히 했거든요. 졸업할 때 학점 평점은 2.0
.
.
꿈에서 다시 대학을 다니면 강의실은 어디인지, 언제 수업을 듣고 언제 과제를 제출하고 나는 언제 졸업할지.. 되게 답답해해요. 그러다 꿈에서 깨면 아 다행이다, 나는 이미 졸업해서 다행이야, 합니다. 휴.. 대학은 공부하기 가장 좋은 환경인데 저는 왜그렇게 공부를 안했는지 후회가 되거든요? 그런데 막상 꿈에서 대학생이 되면 막 답답하고 초조해서 미치려고 하더라고요. 휴..


그리고 이건 좀 사적인 질문인데요,

폴스타프 님 전공이.. 국문학.. 이었나요? 갑자기 궁금해져서 질문하지만 대답을 꼭 해주셔야 되는건 아닙니다. :)

Falstaff 2021-11-26 08:57   좋아요 3 | URL
다락방 님은 좋은 학교를 다니셨나봅니다. 설대 같은 곳이 F 받으면 0점, 60점? 처리한다고 들었거든요.
저 나온 학교는 F 받으면요, 수강을 아예 하지 않은 것으로 성적표에 표시됩니다. 요즘엔 모르겠고요. C 받기 싫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의도적으로 F를 받기도 한답니다. 덕분에 경고 두 번 받고도 학점은 거의 3.0에 근접할 수 있었습지요.

ㅋㅋㅋㅋ 전공은, 하여튼 이과 출신입니다. 고딩시절부터 물리, 화학, 수학 이런 거에 바짝 흥미를 느껴 20년 후, 그러니까 30대 후반 부터는 연구실에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입학하자마자, 으악, 최악의 선택이란 걸 알아차렸습니다. 이어서, 전공 공부 포기. 너무 늦은 거죠. 당시엔 전과 같은 것도 없었으니. ㅎㅎㅎ 다 인생입니다.

다락방 2021-11-26 09:04   좋아요 4 | URL
제 동기들 중에도 c 받으면 재수강이 아예 안된다고 부러 재수강 하려고 f 받는 친구들 있었어요. 저는 d 나 f 가 수두룩한 가운데 a 는 받아본 기억이 없어서 당시에는 저런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는데(아니, 굳이 왜?) 나중에야 그것이 학점 관리라는 것을, 학점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이미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저는 사실 대학원이나 혹은 대학에 다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요즘에도 종종 생각하는데요, 이 댓글 쓰다 보니까 역시 대학은 다시 안가는 걸로..그냥 이렇게 사는 걸로 해야겠어요. ㅋㅋㅋㅋ

이과 출신이시군요!! 물리, 화학, 수학에 흥미를 느끼는 이과출신인데 세계문학도 다 뿌셔버리시다니. 크- 멋집니다!

Falstaff 2021-11-26 09:12   좋아요 3 | URL
같은 성적 처리 기준이면 제가 다락방 님보다 공부는 잘 했던 걸로....
아휴, 저는 대학 다시 가는 거, 학을 뗍니다. 정말 싫어요.
사실은 고등학교 졸업식 날, 세상에 대고 외쳤습니다.
˝이제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공부는 없다!˝
뭣도 모르는 열여덟 살짜리가 웃겼습죠.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11-26 09: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늘 적어주신 시는 천천히 읽으면 다 이해가 가서 좋습니다. 폴스타프님의 여러가지 꿈 이야기도 공감 가고 재미 있습니다. 제가 대학 1학년때 첫 미팅한 사람이 서라벌고등학교 출신이었어요.
그 사람이 저의 첫사랑인데 덕분에 그때 생각났어요~~

Falstaff 2021-11-26 09:31   좋아요 5 | URL
그죠, 이런 게 시 아녀요? 읽으면 읽기를 마치는 순간 탁, 무슨 뜻인지 즉각 알 수 있는 서정시. ㅎㅎㅎ
크, 서라벌고 졸업생과.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북향의 서라벌고에서 북악을 향해 서서 10시 반 방향에 있는 ‘언덕 위의 하얀 집‘ 대일고였습니다. 당시엔 두 학교가 신흥명문으로 전국 1, 2등을 겨루던 때이기도 하는군요. 아, 정말 오래 전입니다. 심지어 전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으아.....

잠자냥 2021-11-26 09:5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여러분 오늘 밑줄 그을 부분은 바로 이 구절입니다.

˝첫 연인이 보내준 무크지 실천문학은 그래서 이래저래 잊지 못한다.˝

대치동 1타 강사 올림-

Falstaff 2021-11-26 09:59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 지금 뭐 하는지 몰라요. 잘 살고 있을 겁니다.
절대 만나고 싶지 않고, 꿈에서라도 부르고 싶지 않은 이.
심장에 그은 먹줄 같은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 시를 쓴다, 시를 써. ㅋㅋㅋㅋ)

* 오늘 페이퍼 아내가 보면 퇴직금 갈라서 이혼하자 할 거 같은데 이걸 어쩌나...

다락방 2021-11-26 10:01   좋아요 3 | URL
심장에 그은 먹줄...

피 땀 눈물..

아 촉촉한 감성 터지네요 ...

Falstaff 2021-11-26 10:03   좋아요 2 | URL
깊고 깊은 가을 아닙니까.

페넬로페 2021-11-26 10:10   좋아요 4 | URL
잠자냥님, 역시 대치동 1타 강사답게 족집게 시네요^^
밑줄 쫙 입니다 ㅋㅋ

coolcat329 2021-11-26 16:5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이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ㅋㅋ

잠자냥 2021-11-26 0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정시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게 이 험한 세상에 시가 있어야 할 이유라고도 생각하고요.

Falstaff 2021-11-26 10:00   좋아요 3 | URL
옳은 얘기만 하시는 예비 가정파괴범, 잠자냥 님.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11-26 10: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사인 시인의 시 읽으면서 아픔을 느꼈어요. 단지 아프다기 보다는 분노와 슬픔과 함께 부채의식마저 느꼈어요

Falstaff 2021-11-26 10:56   좋아요 4 | URL
화내지 마세요. 슬퍼하지도 마세요.
김사인 또래의 사람들은 대가로 여러가지를 성취하고, 누렸잖아요. 오히려 이제 투쟁할 것도, 그래서 성취할 것도 별로 없는 무담론 시절을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더 가여울 때도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1-11-26 11:29   좋아요 5 | URL
일반화해서 모두를 그렇게 말할수는 없겠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도 그 담론 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들도 있었고,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도 담론을 형성해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