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문지클래식 8
홍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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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여섯, 표제작 중편 하나를 엮은 책. 초판은 1976년. 따라서 작품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전반까지 대략 십 년의 세월동안 생산한 것들이다. 내가 읽은 책은 2020년 3판 1쇄다. 그러니까 홍성원의 대표작이자, 상당한 시간동안 우리나라 전쟁문학의 대표작으로 군림했던 <남과 북>을 발표하기 전까지 이이가 시장에 내놓은 50여 편의 중단편 소설 가운데,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하찮은 일상들을 직접 소재로 선택했거나, 때로는 (나) 자신이 이야기 속에 함께 버무려져 (내가) 바로 소설의 내레이터가 되기도” 한 것들을 골랐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책 뒤의 해설, “내 생각대로 살 수 있을까?”에서 첫 번째 작품의 제목처럼 “늪”을 건너거나 허우적대는 것 같은 가망 없는 희망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만일 홍성원의 작품을 공부하는 입장이라면 삼십여 년을 다작한 작가의 방대한 작품을 분류하고, 분석하면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이겠지만, 나 같은 일반 독자는 그저 60년대와 70년대 소설 속에서 흔히 발견했던 권태와 무기력과 상실과 속화俗化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라고 간단히 얘기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1980년대 초에 이이의 <남과 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고 싶어 했다가 2018년에야 겨우 바라던 것을 이루었는데, 그전까지는 홍성원에 대한 끌림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남과 북>이 명불허전, 좋은 책이라는데 공감을 한 후에, 그의 다른 책을 찾다 작년에 문학과지성사의 문지클래식 시리즈로 출간했다는 얘길 듣고, 그래도 문지가 클래식이라고 선정한 책이니 좋을 것이라는 믿음 한 가지만 가지고 선택했다.
  전형적인 60년대 단편 스타일인 <늪>에선 김승옥의 기시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고, <무전여행>도 비슷한 기시감 위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극성도 독자에겐 너무 쉬운 복선을 앞에 두고 있다. <프로방스의 이발사>도 마찬가지로 발랑 까진 독자는 처음부터 결말을 알고 시작한다. 70년대로 접어들면, 범문화적으로 널리 유행했던 호스티스 소설과 유부녀의 일탈과 일상이 된 유부남의 바람기 또는 오입 풍습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기껏 잘 읽고 이런 독후감을 쓰는 게 이미 고인이 된 작가와 출판사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시엔 널리 읽혔는지 모르겠으나 별 특징도 없고 매력적이지도 않고, 기억할 만 한 미문도 없는 중단편 선집이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홍성원의 모든 업적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이이는 대하소설에 그 본류가 있는 작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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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4-08 0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예전에 구판 버전 문지 소설명작선으로 나온 책으로 읽었는데, 읽으면서도 왜 이게 명작선에 들어가 있는지 의아했다는... 그때 읽어도 참 낡은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지금 읽으셨으면 참... ㅋㅋㅋㅋㅋㅋ

예전에 적어둔 메모가 있어서 지금 오랜만에 다시 살펴보니 정말 김승옥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요(전 김승옥도 요새 다시 읽으라면 못 읽겠어요. 뭔가 토 나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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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놈팡이들을 학교 강의실과, 중국집 칸막이 방과, 영화관 구석 자리와, 후미진 골목길에서 자주 보아왔다. 여인들의 가방이나 열심히 들어주는 그런 놈팡이들은 하나같이 골통이 빈 너절한 속물들이다. 그들은 데모에 앞장을 서기도 하고, 어떤 서클의 회장도 하고, 바둑 5급에 당구는 삼백쯤 치고, 일 년에 한두 번씩 산악회나 봉사단 회원이고, 때 없이 술을 잘 사고, 족보에도 없는 춤으로 분위기를 잘 이끌고, 가끔 누군가에게 직사하게 얻어터지기도 하고, 때로는 또 누군가를 팬 뒤 한 달포쯤 종적을 감추기도 한다. 한데 왜 모든 젊은 여자들은 이런 속 빈 건달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왜 나 같은 진지한 놈에게는 예쁜 여인들이 달려들지 않는 걸까? (<늪>, 11~12쪽)

똥개처럼 아무 때나 짖어댈 뿐 그는 정작 일을 당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나는 이런 ‘스물세 살’을 서울에서 이미 무수하게 보아왔다. 다방이나 달리는 버스 속에서 갑자기 광포해져서 ‘니나노’를 부르는 스물세 살, 학비를 대주는 자기 아버지를 ‘꼰대’라고 부르는 구역질 나는 스물세 살, 꼬치 담배를 사 피울망정 신탄진만 찾는 가여운 스물세 살, 넉넉한 하숙비를 다 써버리고 멋으로 가정교사를 하는 꼴불견의 스물세 살. 학생회장에 출마한 후로 갑자기 친절해진 징그러운 스물세 살. 아아 그리고 너무나 많은 저 싸구려의 볼품사나운 스물세 살들. (<무전여행>, 67쪽)


Falstaff 2021-04-08 09:38   좋아요 3 | URL
솔직하게 얘기해서 아주 오래 전, 이십대 시절에 읽은 김승옥이 쇼킹이었습지요. 그러다가 직행버스에서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에서 <무진기행> 낭독을 해주었는데, 아이고, 그 촌스러움이라니. 그것도 쇼킹이었습니다.
70년대 말까지 신춘문예 응모하기 위한 공식으로, 김승옥의 내용과 황순원의 문체가 거의 정석이었답니다.
전 시대가 좀 겹쳐서 ‘토‘까지는 아니어도, 김승옥을 둘러싼 후광이 좀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자냥 2021-04-08 10:05   좋아요 2 | URL
김승옥을 일컬어 ‘감수성의 혁명‘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감수성이란 게 60~70년대 20대 남자들‘만‘의 감수성 같아요. 저 대학 때만 해도 그 감수성에 캬~ 하는 남자들 많았는데.... 전 아무리 읽어도 잘 쓴 건 알겠지만 공감은 어렵더라고요. 암튼 지금 읽기엔 많이 낡은 감수성 같습니다. ㅎㅎㅎ

Falstaff 2021-04-08 10:25   좋아요 2 | URL
잠자냥 님 얘기를 디스카운트 해서 읽어도, 20대 남자들만의 감수성이란 걸 부인하기가 쉽지 않네요. 근데 당시엔 20대 여성들도 생명연습, 64 서울, 무진기행 같은 거에 꼴딱 넘어갔던 건 사실이예요. 이런 류의 작품이 김승옥을 통해 처음 나온 거니까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이제 시간이 흘러 김승옥이 저절로 감가상각을 당해 저부터도 ‘당시 20대 남자의 감수성‘을 부인하지 못합니다만.
뭐 사람이 만든 거 가운데 안 그런게 있겠습니까. ㅋㅋㅋㅋ

blanca 2021-04-08 1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우리 문학 과거 작품 중 폭력적이고 마초적이고 낡은 것들이 있더라고요. 요즘 나오면 난리났을 것들. 시대적인 관점에서 봐도 사실 작가는 그 안의 세태를 그리는 게 맞지만 그걸 뛰어넘는 뭔가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냥 막 쥐어짜서 억지로 만든 이야기들도 있고...습작을 출판하며 했다는 느낌을 준 이야기들도 있고...

Falstaff 2021-04-08 10:28   좋아요 0 | URL
특히 이 책의 표제작 <주말여행>이 그렇더라고요.
물론 중산계급의 허위와 위선 등을 그리려 했겠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뭔가는 결여되어 있거나 별로 보이지 않거나, 있는데 제가 발견을 못했거나, 하여튼 셋 가운데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