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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미국 소도시 여행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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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태어난 저자가 영국으로 건너간 뒤, 중년이 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일주한 후에 쓴 글이다.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책일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보다도 2년 전에 먼저 나온 책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는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보다 1년 늦게 출판되었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는 우리 나라에 8종이 번역되었다.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미국의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넘어간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태어난 미국이라는 나라를 전부 돌아다니며 쓴 책이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횡단기>이며, 이후에 20년 전 고교 동장 가츠와 다녀온 유럽을 20년만에 혼자 다녀오는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이다. 그리고 20년간의 영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영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한 후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을 썼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 바로 그 카츠와 함께 애팔래치아 일주를 하고 나서 <나를 부르는 숲>을 썼다. 그 후 20년만에 돌아온 미국이 자신이 떠날 때와 너무나 달라져 있는 것으로 인해 당황해하며, 미국 특유의 문화에 대해 날카롭게 묘사한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을 썼고, 이후 호주를 여행하며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국제구호단체 CARE의 제안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를 썼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책을 썼고, 그 책은 우리 나라에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으로 출판되었다가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산책>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의 여행책 중 가장 먼저 나온 책이며, 내가 읽는 마지막 책이기도 하다. 저렇게 죽 늘어놓고 보니, 빌 브라이슨도 나이가 먹는 탓인지, 젊었을 때의 책의 경우에는 때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글감을 비틀어대는 반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고 나서 쓴 책들에서는 비틀기보다는 간질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어떤 여행책을 읽든 이 책이 빌 브라이슨의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빌 브라이슨의 글 특유의 촌철살인과 유머는 여전하다.

 

I. 동부로 가다

 

1. 나는 아이오와 주 디모인 출신이다. 누군가는 그래야 했으니까. 디모인 출신이라면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름이 대충 바비쯤 되는 디모인 아가씨와 같이 디모인에 자리를 잡고 파이어스톤 타이어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평생을 죽을 때까지 디모인에서 살든지, 아니면 청소년기 내내 무슨 이런 쓰레기 하치장 같은 촌이 다 있냐고 동네를 뜨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노라 투덜댄 다음에 바비라는 디모인 아가씨와 같이 디모인에 자리를 잡고 파이서스톤 타이어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평생을 죽을 때까지 디모인에서 살든지.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땅으로 돌아가 과장하기 좋아하는 작가들이 '재발견 여행'이라고 부르길 좋아하는 그런 걸 하고 싶었던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 데는 이런 괴롭고 별난 배경이 작용했다. 거의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다른 대륙에서 중년을 맞이했고, 아버지가 최근에 돌아가시면서 나의 한 부분까지 같이 가져가셨다는 걸 깨달았을 즈음에, 나는 조용히 나를 압도하는 향수에 사로잡혔다. 나는 어린 시절의 마술 같은 곳에, 매키낙 섬, 로키 산맥, 게티즈버그 등지에 다시 가 보고 싶었고, 이들이 내 기억처럼 지금도 근사하게 남아 있는지 보고 싶었다. 반딧불이도 보고, 강렬한 매미 소리도 듣고 싶었다. 저 뜨겁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더위 속에 몰입하고 싶었다. 줄줄 흐르는 땀은 당신의 속옷을 온몸의 구멍과 틈 속으로(이를테면 엉덩이랄지) 쑤셔 넣은 다음 쫙 달라붙은 쫄쫄이로 만들어 버리고, 온화한 성품의 사내들마저도 술집에서 권총을 꺼내 총성으로 밤을 밝히게 만드는 8월의 날씨 속에 대책 없이 몰입하고 싶었다. 니하이 콜라와 버마 셰이브 면도 크림이 그려진 광고 표지판을 찾아보고, 야구 경기장에 가고, 대리석 상판을 깐 탄산 음료수대에 앉아보고, 영화 속에서 디애나 더빈과 미키 루니(각각 북미의 유명 여자배우와 남자배우)가 살았을 것 같은 작은 마을들을 차로 다녀보고 싶었다. 여행하고 싶었다. 미국을 보고 싶었다. 집에 오고 싶었다.

 

2. 나는 오스카루사, 프레몬트, 헤드릭, 마틴스버그를 지나 동쪽으로 계속 갔다. 이름들은 친숙했지만 그 타운들에 얽힌 어린 추억은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엔 여기까지 오면 나는 대개 너무 지루해서 거의 기절 상태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선 15초 간격으로 소릴 질러댔다.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언제 도착해요? 심심해요. 토할 거 같아요. 얼마나 더 가야 돼요? 언제 도착해요?" 캐폭 부근 도로의 커브가 희미하게 기억났다. 우리는 거기서 폭설을 만나 네 시간 동안 발이 묶인 채 제설차량이 오기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누나가 토하고 싶다고 해서 차를 세웠던 곳들도 눈에 들어왔다. 누나는 마틴스버그의 주유소에서는 그야말로 차에서 굴러 떨어져서 주유원의 발목을 향해 아낌없이 먹은 걸 확인해주었다.(갑작스러운 토사물 세례에 화들짝 놀란 그 주유소 직원이 어찌나 춤을 추던지!)

 

3. 그리고 이제 나는 벌써 일리노이에 들어섰다. 어딜 봐도 옥수수뿐이며 지루한 광경이다. 머릿속에서 어린애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도착해? 심심해. 집에 가자. 언제 도착한다고?"

 

4. 나는 아침에 퀸시에서 미시시피 강을 건넜다. 강은 내 기억만큼 크거나 장엄하지는 않았다. 다소 웅장하고 위압적이긴 했다. 강을 건너는 데는 몇 분이 걸렸다. 그런데 어쩐지 무미건조하고 밋밋했다. 날씨도 구질구질했으니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주리는 일리노이와 똑같았고, 일리노이는 아이오와하고 똑같았다. 유일한 차이라면 차량 번호판의 색깔뿐.

 

5. 켄터키는 남부 일리노이와 비슷했다. 산이 많고 햇살이 좋고 매혹적이었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집들은 북부만큼 단정하거나 풍요로워 보이지 않았다. 숲이 우거진 계곡들과 굽이치는 개울을 가로지른 철교들, 그리고 노면에 붙어 떡이 된 짐승들이 많았다. 계곡마다 작고 하얀 침례교회가 있고 도로변에는 이제 '예수쟁이' 지대에 들어섰다는 걸 알리는 표지판이 즐비했다. "예수가 구원이다. 주를 찬양하라. 그리스도는 왕이시니."

켄터키 주를 빠져나오면서도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켄터키 주는 서쪽으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져, 주 경계 쪽은 폭이 고작 60여 킬로미터에 불과했다. 미국식 여행 시간을 기준으로 보자면 진정 눈 깜짝할 새에 나는 테네시 주에 들어와 있었다.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주를 하나 떨어내는 일은 흔치 않은데, 그나마 테네시 주마저 머지않아 작별이다. 테네시는 모양이 묘하게 생겨서, 가로로 길쭉한 콘크리트 블록 같다고나 할까. 동서로는 길이가 800킬로미터나 되는데 남북으로는 160킬로미터가 고작이다. 경치는 켄터키나 일리노이와 거의 비슷해서 강과 산, 종교적인 열성이 찬란한 부정형(不定形)의 농장지대였는데, 잭슨에서 버거킹에 들렀을 때는 날이 너무 더워서 놀랐다. 길 건너편에 있는 드라이브인 은행의 간판에 따르면 기온이 28도가 넘었다. 그날 아침 카본데일의 기온과 거의 10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나는 여전히 '예수쟁이' 지대의 심장부에 있었다. 옆에 있는 교회 마당의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나님(아무래도 뒤에 '맙소사'가 빠진 게 분명하다)이 답이다."(답이라, 그렇다면 질문은 물론 이거겠다. '망치질 하다가 엄지를 찧었을 때 하는 말은?') 버거킹에 들어갔다. 여종업원이 물었다. "어뜨케 돠 드리까이?" 나는 다른 나라에 와 있었다.

 

6. 나는 테네시 주 그랜드 교차로 바로 남쪽에서 미시시피와 이어지는 주경계선을 넘었다. 고속도로변의 표지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시시피에 오신 것을 환영하빈다. 우리는 아무나 쏴죽입니다."아, 당연히 내가 지어낸 거짓말이다. 최남부지방(Deep South, 조지아, 앨러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주 등)에 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들어설 때부터 예감이 불길했다. <이지 라이더><밤의 열기 속으로><폭력 탈옥><도전><서바이벌 게임>등 남부를 배경으로 한 그 모든 영화들이 그들을 살인자에 근친상간을 일삼는 촌무지렁이 극우 보수로 묘사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이곳은 진정 다른 나라다.

 

7. 콜럼버스는 주 경계선 바로 안쪽에 있어 그곳을 떠난 지 20분 만에 앨라배마 주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이설스빌과 코랄파이어와 리폼을 거쳐 더스컬루사로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 곁의 표지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앨라배마를 아름답게 가꿉디다." 나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좋았어, 그럽디다."

 

8. 사바나는 매혹적인 도시여서 나도 모르게 몇 시간이나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유서 깊은 건축물이 천여 개나 되고, 그중 상당수가 아직도 가옥으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내가 가본 도시 중에 뉴욕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도시에서 실제로 '사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길에서 공놀이를 하고 제 집 현관에서 줄넘기를 하는 광경은 도시에 얼마나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가. 나는 오글소프 애비뉴의 조약돌이 깔린 인도를 따라 콜로니얼 공원묘지까지 산보를 나갔다. 묘지에는 허물어져가는 기념비들과 조지아 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유명인사들의 묘비가 가득이었다. 조지아 주 최초의 주 의회 의장 아치벌드 블록, '선도적 사업가' 제임스 하버섐, 독립선언문의 서명자 중 한 사람으로 미국에서 유명한 버튼 귀네트 등. 버튼 귀네트는 또한 식민 역사에서 가장 우스운 이름을 가진 인물로도 유명하다. 사바나 주민들은 잠시 부주의하던 순간에 옛 버튼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설명에 따르면 그는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묻혀 있을 수도 있고, 모퉁이 어딘가에 있거나, 아니면 완전히 엉뚱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까 종일 돌아다니면서 버튼을 밟더라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9.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지루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26번 주간고속도로를 탔다. 이 도로는 나른한 담배밭과 연어색 토양뿐인 단조로운 풍경을 사이로 300킬로미터가 넘는 긴 대각선으로 주를 가로지른다. 《자동차 여행 가이드》에 따르면 이제부터는 최남부가 아니라 중부 대서양 지역의 주들이란다. 그런데 더위와 눈부신 햇살은 남부의 것이며 주유소며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억양도 남부 말씨였다. 라디오의 아나운서들조차 억양은 물론 태도까지 남부인의 색채가 완연했다. 한 뉴스에 따르면 스파르탄버그의 경찰이 '백인 여자'를 강간한 두 흑인 남자를 찾고 있었다. 남부가 아닌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이다.

 

노스캐롤라이나와의 경계선에 가까워지자 마치 무슨 포고령이라도 내린 듯이 밋밋한 경치가 갑자기 끝났다. 갑자기 시골 풍경이 나타나더니 장엄한 곡선을 그리며 월계수와 철쭉과 종려나무 따위 낮은 덤불이 잔뜩 펼쳐졌다. 산등성마루마다 블루리지(애팔래치아 산맥의 일부이다)로 이어지는 아스라한 풍경이 펼쳐졌다. 애팔래치아는 앨라배마에서 캐나다까지 3360여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데, 히말라야보다 더 높았던 적이 있었다가(이 말은 언젠가 성냥갑 껍데기에서 읽었는데 언제고 써먹으리라, 몇 년 동안 벼르던 참이다) 지금은 작고 둥글둥글해졌다. 극적이라기보다는 어딘지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다. 그 기나긴 능선을 지나는 동안 애팔래치아는 애더론대크스, 포코노스, 캣스킬스, 앨러게이니즈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바뀐다.

 

10. 미국에서 백인들이 가난하기란 진짜 힘든 일이다. 물론 여기서 가난이란 미국인의 가난이며 백인들의 가난이니 다른 곳의 가난과는 다르다. 터스키지의 가난과는 비슷하지도 않다. 린든 존슨(미국의 36대 대통령)이 1964년에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그 초점이 애팔래치아였던 것도 이곳이 너무 가난해서가 아니라 너무 백인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냉소 섞인 지적도 있엇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당시의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 중 40퍼센트는 차가 있고, 그 가운데 3분의 1은 새 차였다. 1964년이면 잉글랜드에 살던 내 미래의 장인에겐 그곳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아직도 첫 차 장만이 요원한 일이었고, 장인은 지금까지도 새 차는 한번도 사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가난하다고 하거나 크리스마스에 뜨개실이나 공짜 밀가루를 보내준 일은 없다. 그렇다 해도 미국의 기준으로 볼 때 지금 내 주변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판잣집들이 단연코 허름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마당에 위성 안테나도 웨버 바비큐 그릴도 없고, 진입로에 스테이션왜건도 없었다. 감히 말하자면 가련한 그들의 부엌에는 전자레인지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미국인 기준으로는 대단히 가난한 것이다.

 

11. 기다란 젤리 모양의 언덕들과 구불구불한 도로, 단정한 농가의 풍경을 가르며 운전을 했다. 하늘엔 바다 그림에서 늘 볼 수 있는 복슬복슬한 큰 구름이 가득이었고, 스노플레이크, 팬시갭, 호스패스춰, 메도우스오브댄, 채리티 등 여러 타운의 이름도 흥미로웠다(각각 눈송이, 화려한 계곡, 말 방목장, 댄의 초원, 자선의 뜻). 버지니아 주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버지니아는 폭이 640킬로미터쯤 되는데, 도로가 하도 구불구불해서 체감 거리는 거기에 적어도 150여 킬로미터는 더해야 했다. 어쨌든 지도를 볼 때마다 티도 안 나는 거리밖에는 오지 못했다.

 

12. 워싱턴은 작은 도시처럼 느껴진다. 광역도시로 치면 워싱턴은 인구 300만 명의 미국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고 바로 곁에 있는 볼티모어를 합하면 인구는 500만이 되지만, 워싱턴 시 자체는 인구가 63만 7000명에 불과하니 인디애나폴리스나 샌안토니오보다 더 적다. 워싱턴은 쾌적한 지방도시 느낌이 나다가도, 모퉁이만 돌면 FBI나 세계은행, IMF(국제금융기구) 등의 본부가 떡하니 눈에 들어오니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깨닫게 된다. 그중에서도 제일 놀라운 것은 백악관이다.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백화점 쇼윈도의 고급 넥타이나 속옷 따위를 구경하다가 모퉁이를 돌면 바로 그 자리에, 시내 한복판에 백악관이 있는 것이다. 쇼핑하기엔 정말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워싱턴은 예상보다 훨씬 작다.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

 

워싱턴에서 301번 고속도로를 타고 애나폴리스와 해군사관학교를 지나친 다음, 체사피크 만과 동부 메릴랜드 주를 잇는 길고 낮은 다리 위로 지나갔다. 다리가 건설된 1952년 전에만 해도 만의 동부는 수백 년 동안 고립을 즐겼다. 그 후로 사람들을 외지인들이 물밀 듯이 흘러들어와 반도를 망쳐 놓을 거라고 말해왔지만, 내 눈에 이 일대는 별로 망가지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그렇게 유지해준 것도 외지인들인 것 같다. 지역 주민들이 단순하고 순진무구한 믿음으로 편리할 거라 생각하는 쇼핑몰과 볼링장을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것도 언제나 외지인들이다.

 

나는 체사피크 만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높은 하늘, 점점이 흩어진 농장과 이름 모를 작은 타운들에 매료된 채 낮고 습지가 많은 평지를 통과했다. 늦은 아침에는 필라델피아로 가는 길에 있던 델라웨어 주에 들어섰는데, 델라웨어는 미국의 여러 주 가운데 제일 애매한 곳이다. 한번은 델라웨어 출신의 아가씨를 만났는데 할 말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궁색하게 물었다. "음, 그러니까 델라웨어에서 왔다고요? 오, 대단하네요. 와우." 그러자 그녀는 얼른 언변이 더 뛰어난(그리고 얼굴도 잘생긴) 다른 남자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국에서 이십 년이나 살고 비싼 교육까지 받았으면서 당시 48개 주 중 하나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에서 델라웨어가 언급되는 걸 보거나 신문에서 그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델라웨어가 배경이 된 소설을 읽어봤는지 물었고, 사람들은 대답하곤 했다. "글쎄, 한번도 없는 거 같아." 그렇게 대답하는 그들도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진 듯 보였다.

나는 델라웨어에 관해 독서를 좀 하기로 작정했다. 다음번에 델라웨어 출신 아가씨를 다시 만나며 재미있고 적절한 말을 할 수 있겠지. 혹시 알아, 그럼 그녀가 나랑 자줄지. 하지만 델라웨어에 관한 글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찾아봐도 고작 두 문단이 전부였는데 그나마도 문장 중간에 끝났던 거 같다. 델라웨어를 지나쳐 운전하는 지금, 차가 지나가면서 우습게도 델라웨어가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투명한 비닐을 걷을수록 그림이 지워지는 아이들의 그림판에서처럼. 내 차가 지나가면서 내 뒤쪽의 거대한 투명 비닐이 걷히듯이 서서히 지워지는 것만 같았다. 풍경이 펼쳐질수록 지나쳐온 경험을 지워버리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반(半) 공업지대였던 풍경과 월밍턴 표지판 몇 개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러자 이미 실베스터 스탤론과 레지오넬라 병(레지오넬라균에 의한 악성 폐렴의 일종)을 배출한 필라델피아 외곽이었고, 그것이 유발한 불편한 생각 때문에 델라웨어에 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었다.

 

13.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다른 어느 도시보다 공공 미술에 더 많은 예산(시 정부 총 예산의 1퍼센트)을 쓴다. 그런 반면 문맹률은 40퍼센트나 된다. 그는 페어마운트 공원 한가운데 있는 호화로운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가리켰다. 이곳은 도시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유는 50만 점의 소장 회화 때문이 아니라 미술관 계단이 영화 <록키>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전력 질주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계단만 한번 쓱 보고, 미술관 안에 들어가 그림 구경은 하지도 않고 가버린다고 한다.

 

14. 미국에서 장거리 버스란 비행기를 탈 돈이 없거나, 미국 기준으로는 바닥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을 핥을 만큼 차를 쓸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만 타는 것이다. 미국에서 차를 쓸 수 없을 정도란 플라스틱 헛간살이 바로 직전의 가난함이다. 그러므로 장거리 버스를 타는 이들은 다음 중 하나다. 정신적 결함이 있거나 정신분열이 고속으로 진행 중이거나 마약에 취한 채 무기를 소지한 위험인물이거나 갓 출소했거나 수녀인 것이다.

 

나는 아직도 뉴욕이 무서웟다. 타임스퀘어로 걸어가는데 이런 위협이 느껴졌다. 뉴욕이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살인사건과 거리의 범죄에 대해 너무 많이 읽어서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나를 죽이지 않아줘서 고마워요"라고 쓴 카드라도 돌리고 싶었다.

 

타임스퀘어는 대단한 곳이다. 그렇게 많은 불빛과 번잡함은 독자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건물의 벽면들이 모조리 광고로 번쩍이며 물결치고 흔들린다. 전자의 바다에 폭풍이 이는 것만 같다. 돈 좀 쓰라고 유인하는 이런 거대한 전광판이 40개쯤 되는 것 같은데, 그중 둘만 빼고는 다 마이타 복사기, 캐논, 파나소닉, 소니와 같은 일본 기업이었다. 강대한 나의 고국을 대표하는 건 코닥과 펩시콜라뿐이었다. 이봐 양키들, 전쟁은 끝났어. 처량한 마음으로 나는 생각했다.

 

세계에서 가장 신나고 자극적인 도시 뉴욕에서의 하루도 그렇게 끝났다. 나는 20층 아래 스트립쇼 클럽의 외로운 인생들보다 더 나을 것이 전혀 없었다. 그들만큼이나 외로웠다. 아니, 이 거대하고 비정한 도시에는 나만큼이나 친구도 없고 외로운 이들이 수만 명은 될 것이었다. 얼마나 감상적인 생각인가.

"하지만 이거 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걸?" 나는 두 손과 두 발을 쫙 뻗어 사방의 벽을 한꺼번에 빡 때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15. 콜럼버스의 날 연휴가 낀 주말이어서 도로가 번잡했다. 나는 미국만큼 성공을 높이 사는 나라에서 콜럼버스를 공휴일로 경축하는 걸 늘 좀 의아하게 여겼다. 한번 생각해 보라. 그는 아메리카 대륙까지 네 번이나 긴 여행을 하면서도, 단 한번도 그곳이 아시아가 아니라는 걸 꺠닫지도 못하고 값어치 있는 것도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탐험가들은 모두 감자랄지 담배, 나일론 스타킹처럼 흥미진진한 새 특산물을 가져왔는데 콜럼버스가 데려온 건 어리둥절해 보이는 인디언 몇 명이 전부였고, 게다가 그는 이들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이봐 친구들. 스모 한번만 해보라니까.")

하지만 콜럼버스의 최대 약점은 나중에 미국이 될 땅을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플로리다 땅을 밟은 그가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오호라, 여기는 리조트에 딱이야." 하지만 그의 여행은 전부 카리브 해와 벌레가 드글드글한 중앙아메리카 해안에서 그쳤다. 내게 묻는다면 차라리 바이킹이 미국에 훨씬 어울리는 영웅이 되었을 것 같다. 우선, 그들은 미국 땅을 진짜로 발견했다. 게다가 바이킹은 남성답고 해골바가지를 잔 삼아 술을 마시며 그 누구의 헛소리도 용납하지 않는다. 미국에 딱 어울린다.

 

나는 단풍 구경을 하고 싶어 뉴잉글랜드 지역에 빨리 들어가고 싶었다. 게다가 뉴잉글랜드의 주들은 작고 다양해서, 아름다운 주들을 포함해 다른 주들을 지날 때처럼 그렇게 지겨워 죽을 맛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뉴잉글랜드의 주들이 너무 작은 것은 맞지만(코네티컷은 횡단해봐야 128킬로미터가 고작이었고 로드아일랜드 주는 런던보다도 더 작다) 이 주들은 자동차와 사람들, 도시들로 붐볐다. 코네티컷은 그냥 작은 교외 지역 같았다. US 202번 도로를 타고 리치필드까지 갔는데, 이 길은 지도에 "절경 코스"라고 표시되어 있었지만 교외보다 조금 더 경치가 낫다뿐이지 절경은 아니었다.

 

케이프코드는 매사추세츠 주 아래쪽에 튀어나온 길고 가느다란 반도로, 바다로 30여 킬로미터를 뻗어나갔다가 다시 말려들어온다. 반도는 알통을 만들려고 뻗은 팔처럼 생겼다.(정확히 말하면 근육이 없어서 알통이 안 만들어지는 내 팔처럼 생겼다.)

 

16. 하늘 전체에 분홍빛 새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얼른 옷을 주워 입고 리틀턴이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차를 타고 달아났다. 타운 밖으로 몇 킬로미터를 가서 주 경계선을 건넜다. 버몬트에서는 뉴햄프셔보다 훨씬 더 푸르고 정갈한 풍광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산들은 잠자는 짐승처럼 통통하고 폭신했다. 흩어져 있는 농장들은 풍요로워 보였고, 초원이 구불구불한 산허리까지 올라가 있어 계곡들은 고산지대 같은 느낌이 났다. 태양이 곧 높이 떠오르고 햇살이 따스하게 퍼졌다.

 

서쪽으로 버몬트를 횡단했다. 산들은 짙고 둥글고 계곡들은 풍요로웠다. 이곳에서는 빛이 더 부드럽고 더 나른하고 더 가을빛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가을빛이 완연했다. 겨자 색과 불그스름한 녹 색깔의 나무들, 황금색과 녹색의 초원, 거대한 하얀 축사들, 푸른 호수들. 고속도로 여기저기에 서 있는 농산물 가판대에는 둥글고 길쭉한 호박과 다른 가을 과일들이 넘쳤다. 천국으로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샛길들을 돌아다녔다. 오두막을 간신히 면한 집들이 놀랍도록 많았다. 버몬트 같은 곳에는 일자리가 별로 없겠지 싶었다. 이 주에는 타운도 산업도 거의 없다. 제일 큰 도시 벌링턴도 인구가 고작 3만 7000명이다.

 

17. 위층에서는 낯익은 야구 카드들을 발견하고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우리 형과 내가 그토록 정성들여 모으고 분류했던(그러나 우리 부모님이 때아닌 노망이 들어 1981년 봄 대청소 때 다락에서 찾아내 내다 버린!) 바로 그 카드들이었다. 우리는 1959년 야구 카드 세트를 한 장도 빠지지 않은 완벽한 상태로 구비하고 있었는데 그 세트의 현 시가는 1500달러나 된다는 슬픈 얘기다. 미키 맨틀, 요기 베라의 신인 시절, 테드 윌리엄스가 400호를 쳤던 마지막 해의 카드,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매년 뉴욕 양키스 팀 선수 전원의 카드를 보유했건만! 전체 컬렉션은 시가가 모르긴 해도 8000달러는 될 테니 우리 엄마 아버지를 치매 클리닉 단기 치료 과정에는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뭐 그래도 괜찮다. 인간은 다 실수를 하고 살지 않는가. 이런 것들을 내다 버리는 부모들이 있으니 은퇴 후 여생을 일하던 시절에 쌓인 것들을 내다버리는 데 보내지 않는 부모를 둔 행운아들의 컬렉션이 가치가 높아지지 않는가. 어쨌든 옛날 카드들을 다시 보니 기분이 좋았다. 입원한 옛 친구를 문병 온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찍 깨자 가라앉는 늒미이 들었다. 눈을 뜬 순간, 이따금씩 보람을 느끼는 정상적인 하루 대신에 최소한의 기쁨도 없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느낌 말이다. 오늘은 오하이오 주를 가로질러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18. 나는 헨리 포드와 수집가로서 그의 안목에 대해 불현듯 깊은 존경심을 느끼며 박물관 안을 걸어 다녔다. 그는 깡패 기질이 다분하고 반유대주의자였지만 분명 매력적인 박물관을 만드는 안목이 있었다. 지난 시대의 기념물들만 살펴보며 몇 시간이고 보낼 수도 있었지만 격납고는 박물관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밖에는 유명 미국인 80인의 집들을 모아놓은 온전한 촌락, 아니 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집들은 모형이 아니라 실제 그들이 살았던 집이다. 포드가 전국을 누비며, 토머스 에디슨, 하비 파이어스톤, 루터 버뱅크, 라이트 형제, 그리고 물론 그 자신을 포함하여 그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들의 주택과 작업장을 직접 조달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포장해서 디어본으로 가져와 250에이커에 달하는 환상의 땅을 건설한 것이다. 이곳은 미국의 전형적인 스몰 타운으로, 그림처럼 아름답고 시간을 초월한 곳이며, 가구마다 천재성이 빛나는 남성(거의 예외 없이 중서부 출신의 천재적인 백인이자 기독교인 남자)들을 모셔다 놓았다. 녹지가 광활하고, 깜찍한 상점들과 교회가 완벽한 이 마을 주민들을 참 복도 많지. 자전거 바퀴가 고장 나면 라이트 형제를 찾아가고, 우유와 계란이 궁하면 파이어스톤 농장에 가며(하지만 타이어는 아직 아니다. 하비 파이어스톤(파이어스톤 타이어의 창업주)이 아직 업계에 진출을 안 했거든!), 웹스터 사전의 노아 웹스터에게 책을 빌리고,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링컨이 찰스 스타인메츠(독일 태생 미국의 전기공학자로 에디슨에 버금가는 발명가)의 특허 출원을 신청하거나, 길 건너 조그만 오두막에 사는 조지 워싱턴 카버(흑인 노예 출신의 유명 과학자)를 해방시키느라 너무 바쁘지 않을 때 얘기지만.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에디슨의 작업실이나 그의 직원들이 묵었던 기숙사도 세심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집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니 그 편리함은 사실 부정할 수가 없다. 누가 하비 파이어스톤의 생가를 보러 오하이오 주 컬럼비아나까지 갈 것이며, 라이트 형제가 살았던 데이튼까지 갈 것 인가? 나라면 거기까지 안 간다. 무엇보다도, 이런 집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니 당시 미국에 발명의 정신이 얼마나 충천했는지, 실용적인 상업적 혁신을 그리고 엄청난 풍요를 가져다 줄 천재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현대 생활의 얼마나 많은 편리와 기쁨이 미국 중서부 소도시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절로 깨닫게 된다. 자랑스러웠다.

 

포드 박물관에서 느낀 기쁨의 따스한 여파를 간직한 채 미시건 주를 가로질러 북쪽, 그리고 서쪽으로 차를 몰았다. 랜싱, 그랜드래피즈를 지나자 어느새 160여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매니스티 국유림 지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시건 주는 오븐 장갑처럼 생겼는데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한 적이 많다. 매니스티 삼림은 울창하고 지루했고(천편일률적인 소나무 숲이 끝도 없다) 주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는 똑바르고 평평했다. 가끔 숲 속 통나무집이나 작은 호수가 보이기도 했는데 나무들 틈으로 언뜻 보이는 정도였고 대개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19. "북 위스콘신 종합병원에서는 여러분의 순조로운 출산을 돕겠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이런, 세상에. 이것은 내가 미국을 떠난 뒤로 새로 생긴 또 하나의 현상이었다. 병원 광고 시대의 도래랄까. 가는 곳마다 병원 광고다. 누구를 위한 광고란 말인가? 한 남자가 버스에 치인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빨리요, 미시건 종합병원으로 데려다 주세요. 거기 MRI가 있던가요?"라고 말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미국 보건의료체계 전체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외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에서 무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은 사실 상당히 쉽다. 카운티 병원에 가면 된다. 별로 유쾌한 곳은 아니지만, 아니, 실은 상당히 우울한 곳이지만 NHS(영국 보건의료체계) 병원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 무상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미국에는 종합병원에서 진료 받을 수 있는 보험이 없는 인구가 4000만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에 돈이 있는데도 공짜로 치료를 받으려고 카운티 병원에 가겠다면? 글쎄, 나는 다만 행운을 빌 뿐이다. 디모인의 카운티 병원에서 1년 동안 일해본 적이 있어서 아는데, 병원 이용자들이 주장하듯이 진짜로 궁핍한지 뒷조사만 담당하는 변호사와 수금 전문가들이 일개 중대나 되니 말이다.

 

미국 민영 보건의료가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치료의 질이 세계 최고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삼촌은 최고의 치료를 무제한으로 받으셨다.(삼촌의 건강이 회복된 것도 우연은 아니란 말씀.) 독립된 욕실이 딸린 삼촌의 1인실에는 리모콘 작동되는 텔레비전에 비디오와 전화기까지 따로 있고, 병원 전체에 카펫도 깔려 있으며 이국적인 종려나무와 흥겨운 그림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영국에서는 정부 병원에 가면 유일한 카펫이나 컬러텔레비전은 간호사 대기실에 있었다. 그 전 해에 영국 NHS 병원에서 일을 했는데, 한번은 야심한 밤을 틈타 간호사 라운지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나 몰래 들어가 보았다. 과연 어땠는가 하면 여왕의 응접실 같았다. 반질반질한 가구들에 반쯤 먹다 남은 밀크 트레이 초콜릿이 한 박스나 잇었다.

반면, 환자들은 전등갓도 없는 벌거벗은 전구 밑에서 추위에 떨며 소리가 웡웡 울리는 군대 막사 같은 병실에서 잠을 자고, 잰 발걸음으로 2주에 한 번씩 찾아와주시는 고귀하신 의사와 수련의들의 20초짜리 회진을 기다리며 낮이면 피스가 한 50개쯤 모자라는 퍼즐을 맞추며 시간을 보냈다. 아, 물론 NHS가 왕년에 그랬다는 거다. 요즘의 NHS는 그렇게까지 찬란하지 못하거든.

 

엷은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알려지지 않은 샛길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위스콘신을 건너는 건 끝도 없는 것만 같았지만 너무나 매혹적이고 평온하게 만드는 정경이어서 그래도 좋았다. 연중 그맘때에는, 특히 그날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묘하게 마음을 끄는 흔치 않은 기분이었다. 네시가 되자 벌써 일광이 사라져갔다. 다섯 시가 되자 해는 이미 구름 밖으로 떨어져 돼지저금통에 동전이 쏙 들어가듯 아득한 산 너머로 들어갔다. 페리빌이라는 곳에 닿자 갑자기 미시시피 강이 나를 맞았다. 그 광경에 숨이 멎는 듯했다. 강은 너무도 넓고 아름답고 우아하게, 평평하고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지는 해 속의 미시시피 강은 액상 스테인리스 스틸 같았다.

 

어머니를 알아본 것은 직진을 하는데 우회전 신호가 계속 깜박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대개 차고에서 차를 꺼내자마자 깜빡이를 켠 다음 거의 하루 종일 켜놓고 다니신다. 이런 점을 예전에는 지적했지만 어느 순간 어쩌면 그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운전자들에게 나는 운전에 완전히 자신 없는 운전자요, 알아서 피해 가쇼 하고 알려주는 셈이니까.

 

아침 10시 38분이었고 34일 전 집을 나선 후부터 1만 1011킬로미터를 달렸다. 나는 이 숫자에 동그라미를 친 다음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곤 집으로 활기차게 걸어 들어갔다. 어머니는 이미 안에 계셨다. 뒤쪽 창문을 통해 어머니가 부엌에서 흥얼거리며 장 본 물건을 정리하시는 게 보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나는 뒷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놓곤 저 가장 미국적인 네 단어를 말했다. "하이 맘, 아임 홈!(엄마! 저 왔어요!)"

 

II. 서부로 가다

 

20. 나는 네브래스카로 가는 길이었다. 이것은 할 수만 있다면 가급적 말하고 싶지 않은 문장이다. 네브래스카는 미국 여러 주 중에서도 제일 재미없는 주이기 때문이다. 네브래스카에 비하면 아이오와는 천국이다. 아이오와는 적어도 비옥하고 푸르며 산이 있지 않은가. 네브래스카는 약 19만 4250평방킬로미터에 걸친 메마른 황야와 같다. 주 한가운데는 플라트라는 강이 있는데 이 강은 1년에 몇 번은 폭이 3~5킬로미터 정도로 넓어진다. 사람들은 이 강이 상당히 장엄하다고 생각하지만, 깊이가 고작 6.5센티미터 정도다. 그러니까 휠체어를 타고도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얘기다 솟아오른 곳이나 내려앉은 곳이 없는 땅이다 보니 플라트 강은 식탁 위에 흐른 음료처럼 그냥 그 자리에 놓여 있다. 그리고 네브래스카 주에서 제일 흥미진진한 것은 이것뿐이다.

 

날씨에 관한 한 중서부는 두 극단을 한 몸에 간직한 곳이다. 겨울에는 바람이 면도날처럼 매섭다. 북극에서부터 훑어 내려온 바람은 살을 에는 추위가 된다. 바람은 울부짖는 소리로 회오리치며 집을 강타한다. 눈 더미와 뼈가 시릴 정도의 추위를 불러온다. 11월에서 3월까지는 심지어 실내에서도 20도 각도로 몸을 숙이고 다녀야 하며, 외출 전이면 차가 좀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눈 더미에서 차를 파내거나 마치 초강력 본드로 차 유리창에 붙여놓은 듯 떨어지지도 않은 얼음을 긁어내는 게 평생 일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봄이 온다. 눈은 녹고 외투를 안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고개가 해를 따라다니게 된다. 얼마쯤 그러다 보면 예고도 없이 봄은 가고 어느새 여름이다. 여름날은 또 신이 하늘의 거대한 발전소에서 레버를 당긴 것만 같다. 날씨는 이제 반대쪽 극단인 저 아래쪽에서 온 열대의 기운이 맹렬하게 돌진해 들어온다. 마치 뜨거운 담벼락 같다. 여섯 달 동안 숨 막히는 더위가 퍼붓는다. 얼굴에 흐르는 것은 땀이 아니라 기름이다. 온몸의 땀구멍이 쩍 갈라진다. 풀은 갈색으로 시든다. 개들은 곧 죽을 것처럼 헐떡인다. 시내를 걷다 보면 신발 바닥을 통해 아스팔트의 열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돌기 직전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가을이 오고, 그러면 2~4주 정도는 공기가 온화하고 자연은 다정하다. 그러면 또 겨울이 와서 같은 주기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결심한다. "어른이 되면 바로 뜰 거야. 여기서 아주 머나먼 곳으로."

 

21. 이럴 줄 알았어야 했다. 나는 콜로라도는 산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캔자스를 떠나는 순간 눈 덮인 로키 산맥과 노란 미나리아재비가 한들거리는 고지대의 초원들 한가운데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신선한 셀러리처럼 파삭한.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완전히 평평하고 색도 우중충하니 갈색이고, 스윙크, 오드웨이, 맨자놀라 등 이름부터 후줄근한 작은 시골 마을들만 잔뜩 이어졌다.  

 

22. 아침에 TV 일기예보를 보니 "헐랭 전선" 때문에 로키 산맥에 눈이 많이 오겠다고 했다. 기상예보관은 이 소식이 반가운 듯했다.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기상도에는 서부 거의 전역에 걸쳐 불쾌함이 저주처럼 걸쳐 있는데도 말이다. 도로가 폐쇄될 것이며 폭설주의보가 발효될 거라 말하는 그의 입 꼬리가 고소하다는 듯 살짝 올라갔다. 텔레비전 기상예보관들은 왜 늘 그렇게 악의가 가득해 보일까? 이들은 진정성을 보이려고 노력해도 가면일 뿐이다. 그 표면 아래 어린 시절 곤충들의 날개를 잡아 뜯고, 지나가는 차에 깔리는 다른 아이를 보고 낄낄대던 사람이 숨어 있다는 걸 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갑자기 나는 남쪽으로, 별다른 기상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뉴멕시코 주의 메마른 산지를 찾아 가기로 결심했다. 산타페의 작고 배타적인 칼리지에 다니는 조카딸이 있는데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했다. 이 지저분한 뚱보 삼촌이 먼지 낀 싸구려 똥차를 대고 튀어나와 조카딸을 덥석 포옹하는 꼴을 캠퍼스의 모든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아이는 좋아할게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곧장 그리로 갔다.

 

이른 오후에 뉴멕시코로 들어선 게 이날의 절정이었지만, 콜로라도와 똑같이 별로 자극이 없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라디오를 켰다. 어디를 기점으로 해도 너무 먼 곳이라 주파수가 잡히지 않아 지직거리기만 했는데, 그나마 잡히는 방송은 몽땅 스페인어로 된 채널이었다. 축 늘어진 콧수염에 커다란 솜브레로(챙이 넓은 멕시코 전통 모자)를 쓰고 "아이 아이 아이" 어쩌고 하며 어슬렁거리며 노래하는 가수들이 부르는 그런 노래 말이다. 왜 고등학교 선생들이 결혼 30주년 기념일에 마누라를 데려가는 좀 있어 보이려고 불 위에 음식을 내오는 그런 종류의 식당에서 늘 만나는 멕시코 밴드들 있잖은가. 서른여섯 해를 살아오면서 멕시코 음악을 즐기려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여남은 개나 되는 방송국에서 바로 그 음악을 빵빵 틀어대고 있었다. 각 노래가 끝난 다음에는 디제이가 나와 스페인어로 1, 2분 동안 지껄이는데, 그 소스라친 말투는 암만 들어도 어쩌다가 불알이 서랍에 낀 사내의 목소리다. 그 다음에는 잠시 광고가 나오는데, 이 광고남의 목소리는 디제이보다도 훨씬 더 다급하고 흥분되어 있다.(불알이 서랍에 끼는 사고를 그 순간에도 연속해서 겪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 다음엔 다른 노래가 이어진다. 아니, 내가 듣기론 같은 노래를 다시 트는 게 분명하다. 그게 바로 멕시코 음악가들의 불운이다. 그들은 아는 곡조가 단 하나뿐인 것 같다. 필시 그 떄문에 B급 레스토랑 말고 다른 곳에선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성 프랜시스 성당(대단히 아름다웠다)과 총독 관저(아주 지루했다. 총독들에 대한 문서만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로레토 채플의 계단까지. 이 계단은 위층 성가대 좌석까지 이중 나선으로 된, 그러니까 두 번 꼬인 6.5미터 높이의 계단이다. 놀라운 것은 계단이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서 있다는 점이다. 꼭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인즉, 이 채플의 수녀들이 계단을 만들어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더니 이름 모를 목수가 나타나 여섯 달 동안 계단을 만든 다음, 돈도 받지 않고 처음 왔을 때 그랬듯이 어느 날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홀연히 사라졌더라는 것이다. 수녀들은 100년 동안이나 이 이야기를 있는 대로 우려먹더니 몇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민간 회사에 이 채플을 팔아버렸다고 한다. 이 회사는 이제 영리 목적으로 이 채플을 운영하며 입장료를 50센트씩 받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나를 씁쓸하게 했을 뿐 아니라, 수녀들에 대한 나의 존경심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말해서(물론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언제나 위험한 말이다) 미국인들은 어딘가 돈이 숨어 있을 때만 과거를 숭상하며, 그렇다 해도 에어컨이라든가 무료 주차라든가 다른 필수적인 편의가 없는 생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거를 그 자체로서 보존하는 일은 그다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정서적 가치 따위를 고려할 여지는 없다. 누군가 수녀들에게 다가와 상당한 돈을 제시하며 계단을 팔라고 하면 그들은 "절대 안됩니다. 저 계단은 신성한 성소입니다. 예수님이 보낸 살짝 건장한 수수께끼의 특사가 지었지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묻는다. "얼마 줄 건데요?" 그리고 제안 받은 돈이 충분하면 그 돈으로 더 큰 부지에 에어컨과 주차 공간, 게임 룸이 있는 새 수도원을 짓는다. 수녀들이 이런 면에서 다른 미국인들보다 더 심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전형적인 미국식으로 행동할 뿐이다. 나는 그게 슬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뭐든 한 세대를 넘겨 살아남기 어려운 것도 무리가 아니다.

 

23. 그랜드캐니언을 무덤덤하게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랜드캐니언에 대해 얼마나 많이 들어보았든, 사진을 보았든, 막상 가보면 숨이 턱 막힌다. 이런 규모의 어떤 것도 다룰 능력이 없는 당신의 정신은 그냥 닫혀 버리고, 세상에서 저토록 광대하고 저토록 아름다우며 고요한 것이 있다는 데 깊고 형용할 수 없는 경이만을 느끼며, 당신은 오랫동안 말도 숨도 잇지 못한 채 진공 상태가 된다.

 

글렌캐년 댐의 고장인 애리조나 주 페이지에서 나는 유타 주로 들어섰고, 풍경은 곧바로 개선되었다. 산들이 보랏빛 내지 붉은빛으로 바뀌로 사막에 홍조가 돌았다. 몇 킬로미터 더 가자, 산쑥이 뺵뺵해지고 산은 초록도 짙어지고 더 뾰족해졌다. 이상하게도 친숙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자동차 여행 가이드》을 찾아보니 할리우드 서부 영화들을 모두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100여개 이상의 영화와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모두 도로 저편의 케이냅 타운을 현지 촬영을 위한 본부로 썼다고 한다.

 

24. 네바다는 범죄 및 성범죄율이 전국에서 제일 높은 주이며, 폭력범죄율이 두 번째(간발의 차이로 뉴욕에 밀렸다), 고속도로 사고 치사율 1위, 임질 발생률 2위(영과으이 트로피는 알래스카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외지 인구 유입 비율이 1위인(네바다 주 거주자의 80퍼센트가 다른 곳 태생이다) 주이다. 부패의 역사가 길고 조직범죄와 강력히 연계된 주이기도 하다. 그리고 네바다 주에서 제일 유명한 연예인은 웨인 뉴턴(라스베거스에서 주로 활동한 인기 가수)이다. 그러니 유타 경계선을 넘어 네바다로 들어설 때 내가 느낀 불안감을 독자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도박장이 몇 개인지는 모르지만 무지하게 많은 건 분명했다. 지금 이 도박장이 내가 새로 들어온 곳인지, 아니면 같은 도박장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는 건지 확실치 않을 떄가 많았다. 홀마다 같은 풍경이었다. 줄지어 앉은 사람들이 지루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돈을 잃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최면에 걸린 듯했다. 실로 엄청난 사기였다. 어떤 카지노는 연각 1억 달러의 이익을 낸다는데(이 정도면 규모가 꽤 큰 법인에 맞먹는 액수다) 문만 열어놓으면 그 돈이 벌리는 것이다. 카지노 경영에는 기술도, 지능도, 품위도 거의 필요가 없다. <뉴스위크>에서 읽자니 시내의 호스슈 카지노 사장은 글을 읽는 법도 쓰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단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걸 보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성공에 필요한 지적 수준이 어떤 건지 대충 알 수가 있다. 갑자기 이곳이 싫어졌다. 거기에 넘어가서 소음과 번쩍임에 혹해서 그토록 쉽게 생각 없이 30달러를 잃은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25. 캘리포니아로 가는 가족 여행은 10년 후의 미래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비까번쩍하고 현대적이었다. 쇼핑센터, 차를 탄 채 일을 볼 수 있는 은행, 맥도널드, 미니 골프장,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들 등 아이오와에서는 아직 새로운 것들이 캘리포니아에선 이미 오래 전에 자리 잡았다. 지금 이곳에서 그런 것들은 그냥 더 오래되어 보였다. 미국의 타 지역들이 따라잡은 것이다. 1988년의 캘리포니아에는 아이오와에 없는 건 없었다. 스모그만 뺴고. 해변도 뺴고. 그리고 앞마당에서 자라는 오렌지만 뺴고. 차를 타고 통과할 수 있는 나무들만 빼고.

 

26. 아이다호 역시 거대한 주여서(남북으로 885킬로미터이고, 하단의 폭만 483킬로미터이다) 와이오밍과의 주 경계선 부근 아이다호폴스까지 운전하는 데 그날 남은 시간이 전부 소요되었다. 가는 길에 아르코라는 작은타운을 지나갔는데, 이곳은 1951년 12월 20일에 세계 최초로 원자력으로 전깃불을 밝힌 마을이다.

 

당시에는 나도 몰랐는데, 이곳의 저장 시설 한 곳에서 플루토늄이 누출되어, 땅속을 통해(아이다호 남부 주민 수천 명의 식수원인) 지하수로 흘러든 사실을 미국 정부가 최근에 인정했다. 플루토늄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치명적인 물질이다. 한 숟가락 분량의 플루토늄이 일개 도시를 초토화할 수 있다. 일단 만들어진 플루토늄은 25만 년 동안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미 정부가 플루토늄을 안전하게 보관한 시간은 채 36년이 못 되었다.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은 당신의 정부가 플루토늄을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게 해야 할 설득력 있는 논거다. 

 

아침에는 서부 이야기를 담은 근사한 동화책의 삽화처럼 그림 같은 경치를 지나 와이오밍으로 차를 달렸다. 눈 덮인 산봉우리, 소나무 숲, 아늑한 농장들, 굽이치는 강물, 잘 어울리는 이름(백조 계곡이었다)의 산골짜기가 그림 같았다.

 

와이오밍은 미국에서 가장 맹렬하게 서부다운 주이다. 지금도 카우보이와 말, 드넓은 황야의 땅이며, '싸나이는 싸나이답게 살아야 하는'(내가 보기에는 픽업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눈치는 좀 형광등에 행동은 굼뜬) 곳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있고, 거의 모두가 총을 소지한 광경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바로 두어 주 전에, 샤이엔에 있는 주 의회에서는 모든 의원들이 의사당에 들어설 때 입구에 자신의 총을 맡기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와이오밍은 그런 곳이다.

 

27. 몬태나는 거대하고 텅 빈 주다. 네바다보다도 더 크고,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고 할 만한 곳이 없어 더 텅 비어 있다. 주도 헬레나의 인구라고 해야 고작 2만 4000이다. 몬태나 주 총 면적은 38만 평방킬로미터가 넘는데 주 전체 인구는 80만이 안 된다. 그러나 끝없고, 텅 빈 대초원과 드높은 하늘 덕분에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몬태나는 빅 스카이 지방이라고 불리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언제나 하늘이란 고정되고 어디서나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곳의 하늘은 열 배나 더 큰 것 같다. 이 웅대한 흰 반구 아래 내 차 슈베트는 아주 작은 입자에 불과하다. 이 거대한 하늘 아래서는 모든 것이 작아 보인다.

 

28. 사우스다코타를 가로질러 계속 달렸다. 얼마나 단조롭고 텅 빈 주인지, 누런 풀만이 끝업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면 얼마나 외딴곳 같은지, 얼마나 외톨이처럼 느껴지는지 독자는 아마 모를 것이다.

 

수폴스를 지나자마자 오후도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떄에야 사우스다코타를 마침내 벗어나 미네소타로 들어갔다. 이곳은 이번 여행에서 내가 서른 여덟 번째 만나는 주이며 내가 갈 마지막 주이지만 잠시 남단을 훑었을 뿐이므로 별로 큰 의미는 없다. 3킬로미터만 가며 오른쪽으로 펼쳐진 들판 너머에 아이오와가 있다. 넘실대는 들판과 비옥한 검은 토양의 중서부에 다시 돌아오니 정말 좋았다. 텅 빈 서부에서 몇 주를 보내고 나니, 시골의 갑작스러운 노음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미네소타 주 워딩턴을 지나자 곧바로 아이오와에 들어섰다. 때마침 해사 기다렸다는 듯이 구름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황금빛이 금세 들판 위로 퍼지며 모든 것이 즉시 따스해지면서 봄 같아졌다. 농장들은 모두 정갈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타운들도 모두 깨끗하고 친절했다. 나는 풍광에 매혹되어 홀린 듯 계속 차를 몰았다. 별다른 것도 없이 넘실대는 들판이 전부였지만 모든 색채가 진하고 생생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붉은 축사들, 초콜릿 색 흙. 마치 모두 처음 보는 풍경 같았다. 아이오와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망연히 어제 경기의 박스 스코어에 눈길이 갔는데, 아는 팀 이름이 하나도 없어 은근히 놀랐다. 그때 이 선수들은 전부 내가 미국을 떠날 때 중학생이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야구 경기의 본질은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며, 어느 선수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 지 아는데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이제 외국인이었다.

여종업원이 와서 종이 매트를 깔고 나이프와 포크를 놓아주었다. "하이!" 그녀는 인사라기보다는 외침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그녀는 정말 마음을 쓰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 생각에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 중서부 사람들은 얼마나 근사한지. 그녀는 나비테 안경에 벌집 머리를 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대꾸했다.

여종업원은 의심스러운 듯한, 하지만 친절한 눈길로 나를 옆으로 쳐다보았다. "여기 사람 아니죠, 그렇죠?"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닙니다, 아쉽게도." 나는 살짝 생각에 잠긴 채 대답했다. "그런데 이곳이 너무 좋아서 가끔은 여기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대략 이것이 나의 여행이었다. 48개 주 가운데 남부 10개주를 제외하고 모두를 방문했고, 2만 2495킬로미터를 뛰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을 거의 다 보고, 보고 싶지 않았던 것도 많이 보았다. 감사한 일이 많았다. 총을 맞지도, 강도를 만나지도 않았다. 차가 고장 나지도 않았고, 여호와의 증인이 다가온 적도 없었다. 아직 68달러와 깨끗한 속옷도 한 벌 남았다. 이 정도면 여행에서 더 바랄 게 없다.

디모인으로 들어갔더니 디모인이 오후 햇살에 거대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주 의사당의 황금빛 돔 지붕이 반짝였다. 집집마다 마당엔 나무 그늘이 짙었다. 사람들은 잔디를 깎거나 자전거를 탔다. 햄버거와 휘발유를 찾아 주간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이방인들이 왜 아예 눌러앉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친절하고 점잖고 상냥한 뭔가가 있었다. 여기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아주 야릇한 기분이었지만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나는 거의 평온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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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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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문득, 번쩍 하고 스치는 생각은, 사실 대부분의 역사가 바로 그것 아니었느냐는 것이었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일상적인 일을 하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일상적인 일을 하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도 생애의 상당 부분을 휴일에 관해서, 새로 구입한 그물침대에 관해서, 또는 길 건너편에 멈춰선 전차에서 내린 젊은 아가씨의 발목이 얼마나 예쁜지에 관해서 생각하며 보냈을 것이다. 우리의 삶과 생각은 이런 것들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하나같이 우연적인 것으로, 즉 진지한 고려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미주리 협약이나 장미전쟁에 관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가? 그런 반면 먹는 것, 자는 것, 성행위하는 것, 재미를 찾기 위해서 애쓰는 것의 역사를 배우거나 또는 거기에 관심을 가지도록 독려받는 경우는 얼마나 드문가?

(중략)

그리하여 나는 집 안을 한번 여행해보자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돌아다니며, 그 각각이 사생활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욕실은 위생학의 역사가 될 것이고, 부엌은 요리의 역사, 침실은 성행위와 죽음과 잠의 역사가 될 것이고, 뭐, 그런 식이었다. 결국 나는 집구석에 앉아서 세계사를 쓰게 되는 셈이었다.

(중략)

집이란 놀라울 만큼 복잡다단한 일종의 보고였다. 그 와중에 내가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뭔가를 발견하건, 뭔가를 만들건, 또는 뭔가를 놓고 피 터지게 싸우건 간에-이런저런 방식으로 결국 누군가의 집에서 끝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전쟁. 기근, 산업혁명, 계몽주의 등등. 이 모두는 누군가의 소파와 서랍장 속에 들어 있었으며, 누군가의 커튼 주름 속에, 누군가의 베개의 푹신한 부드러움 속에, 누군가의 벽에 칠해진 페인트 속에, 누군가의 배관을 따라서 흐르는 물속에 들어 있었다. 따라서 집 안 생활의 역사는 내가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처럼 단순히 침대와 소파와 부엌 난로의 역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괴혈병과 구아노와 에펠 탑과 빈대와 시체 도둑질을 비롯해서 지금껏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에 관한 역사였다. 결국 집이란 역사와 동떨어진 대피소가 아니었다. 집이야말로 역사가 끝나는 곳이었다.

 

이 책의 서문 중 일부이다.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먼저 쓰고 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책에서 빌 브라이슨은 우주에 대해 논했지만, 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서는 일상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망원경을 가지고 이 세계에 대해 파노라마식 서술을 한다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는 현미경을 가지고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다만, 분량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제목만 보아서는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또한, 평소 가지고 있던 관심사나 기본 지식에 따라 재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각 장에 대한 재미도 천차만별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집을 독파한 이후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영국 하녀들의 이야기가 나온 제5장을 읽을 때 집중도가 높았고, 제9장 지하실에서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드윗 클린턴이 뉴욕 주를 관통하여 이리 호수까지 이어지는 운하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가리켜 '클린턴의 폴리(Clinton`s Folly)'라고 불렀다면서 "어리석음"이라는 뜻과 함께 "큰 돈을 들여서 만드는 쓸모없는 건축물"이라는 뜻이 있다는 설명이 달려 있는데, 크리스티의 소설 제목 중 'Dead Man`s Folly'라는 소설이 있으며, 이 소설 또한 그 두 가지 의미를 차용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장 전체에 대한 재미가 올라가는 부분도 있었다. 또한 요즘 셜록 홈즈를 읽고 있는데, 제10장 복도에서 미국의 벼락 부자들이 현금에 굶주린 유럽의 귀족들을 찾아내서 자기 딸을 그쪽으로 출가시키는, 일종의 거래에 가까운 결혼이 유행을 넘어 증후군이 되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 부분이 셜록 홈즈의 단편에 나와 있다. 시리즈 1권에서 다룬 『셜록 홈즈의 모험』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독신 귀족」에서 영국의 몰락한 귀족이 미국의 부유한 여성을 신부로 맞고 나서, 결혼식 후 실종된 신부를 찾아달라며 홈즈를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석에서는 당시의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았고, 영국의 여성들이 신랑감을 미국 여성들에게 뻇기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는 설명도 있다.

 

500쪽이 훌쩍 넘어가는 이 책은 꼼꼼하며, 알차다. 책값이 아깝지 않다. 묘사는 생생하며, 지식은 풍부하고, 서술은 유려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여러모로 딱 맞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만약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원한다면 좀 더 전문적인 책을 찾아야 할 것이고, 이 책은 입문서로는 좋은 책이지만, 왠지 이 책에 나와 있는 지식들은 10년 정도 지나면 새롭게 업데이트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수많은 논문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고, 학설은 또 바뀔 것이기에. 재미로 한번 쯤 읽어볼 만한 책인 것은 분명하고, 여기 나와 있는 상식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유용하게 쓰일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책을 구매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다만 직업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히 책 값 이상을 톡톡히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문

제1장 연도
제2장 배경
제3장 홀
제4장 부엌
제5장 설거지실과 식료품실
제6장 두꺼비집
제7장 거실
제8장 식당
제9장 지하실
제10장 복도
제11장 집무실
제12장 정원
제13장 보라색 방
제14장 계단
제15장 침실
제16장 화장실
제17장 육아실
제19장 다락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역자 후기
인명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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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 까칠한 글쟁이의 달콤쌉싸름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1
빌 브라이슨 지음, 김지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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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으로 시작한 빌 브라이슨 책 읽기. 선풍적인 인기로 그 이후에 나오는 책들은 줄줄이 '발칙한~'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데, 원제와 심히 관련이 없어서 볼 때마다 헷갈리곤 한다. 그래서 여기서 정리해보는 빌 브라이슨의 저서들.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였다.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일단 이 사람이 책을 여러 권 썼고, 일부는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으며, 번역된 책들도 순서대로 번역되지 않고 순서가 바뀐 경우가 많은 데다가, 판이 바뀌면서 제목도 바뀐 경우가 많다. 그 제목도 영어로는 멋스러울지 모르나 우리말로 직역하면 다소 눈길을 끌기에 부족하거나 어색해져 버려서 출판사에서는 우리 식으로 번역을 해 놓았는데, 그것이 또 바뀐 경우는 대체 이 책을 내가 전에 읽었었나 헷갈릴 정도이다. 게다가 빌 브라이슨의 특징이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자기 스타일대로 해석하기 떄문에 장소가 겹치는 경우 더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미국 소도시를 여행한 기록과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기록, 그리고 영국에서 거주했다가 다시 미국에 돌아오면서 겪은 미국 생활에 대한 세 권은 제목이 계속 헷갈린다.

 

 

여행/회고 (9/8)

 

The Palace Under the Alps and Over 200 Other Unusual, Unspoiled, and Infrequently Visited Spots in 16 European Countries (1985)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횡단기(2009), 권상미 역 ISBN 89-509-2084-0
The Lost Continent: Travels in Small-Town America (1989)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2008), 권상미 역 ISBN 89-509-1361-5
Neither Here Nor There: Travels in Europe (1991)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2009), 김지현 역 ISBN 89-509-1926-5
Notes from a Small Island (1995)

 

나를 부르는 숲(2008), 홍은택 역 ISBN 89-7090-556-1
A Walk in the Woods: Rediscovering America on the Appalachian Trail (1998)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2009), 박상은 역 ISBN 89-509-1736-X (미국인의 미국적응기)
Notes from a Big Country (UK) (1998) / I'm a Stranger Here Myself (US) (1999)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이미숙 역
Down Under (UK) / In a Sunburned Country (US) (2000)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2008), 김소정 역 ISBN 89-509-1553-7
Bill Bryson's African Diary (2002)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산책(2011) /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2008), 강주헌 역 ISBN 89-92355-28-9
The Life and Times of the Thunderbolt Kid (2006)

 

 

언어/문학 (7/2)

 

The Penguin Dictionary of Troublesome Words (1984)

 

Bryson's Dictionary of Troublesome Words (2002)

 

The Mother Tongue: English and How it Got That Way (1990)

 

Journeys in English (2004) (모국어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북)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2009), 정경옥 역 ISBN 89-522-1106-5
Made in America: An Informal History of the English Language in the United States (1994)

 

빌 브라이슨의 세익스피어 순례(2009), 황의방 역, ISBN 89-7291-468-1
Shakespeare: The World as Stage (2007)

 

Bryson's Dictionary for Writers and Editors (2008)

 

 

과학/역사 (4/4)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3), 이덕환 역 ISBN 89-7291-364-2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2003)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9), 이덕환 역
A Really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2008)

 

거인들의 생각과 힘(2010), 이덕환 역
On the Shoulders of Giants (editor - 2009)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2011), 박중서 역
At Home: A Short History of Private Life (2010) Doubleday. ISBN 978-0-385-60827-5

 

 

 

(출판된 책/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책)으로 구분하였으며, ISBN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은 혹시라도 나중에 또 책이 계속 판형이 나와 이름이 바뀔 경우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총 14권의 책 중 9권 정도 읽은 것 같은데, 계속 읽다 보면 사실 그 책이 그 책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행기 중 유럽을 다녀온 책은 읽으면서 계속 웃을 수 있었고 (물론 여행 정보는 전혀 얻은 것이 없었지만) 아프리카를 다녀온 책은 CARE라는 국제구호단체와의 동행이었으며, 호주를 다녀온 책은 단 한 권으로 호주의 '거의 모든' 것을 훑어 본 느낌이었다. 애팔래치아 기행을 다룬 숲 기행도 재기 발랄했고, 셰익스피어를 다룬 책은 내가 읽은 위인을 다룬 모든 책 중 열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거의 모든 과학에 대한 책도 지식이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었고, 어린 시절을 다루었던 썬더볼트 키드의 생애도, 그로부터 수십 년 후 돌아온 미국 생활에 대한 좌충우돌 적응기도 다 재미있었다. 저렇게 묶으면 단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어서 간단해 보이지만, 빌 브라이슨의 모든 책들은 각각 개성이 넘친다. 어떤 책에서는 날카로운 면이 부각되고, 어떤 책에서는 책 읽는 내내 따뜻하다. 어떤 책은 읽고 나면 세계사나 세계지리에 대한 공부를 좋은 선생님을 통해 가르침을 받은 느낌이고, 어떤 책은 마치 코미디 프로를 보는 것처럼 가볍게 웃으면서 읽어나갈 수 있다. 이렇게나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거기에 딱 맞는 방식으로 책을 쓸 수 있다니. 그는 진정한 글쟁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빌 브라이슨은 청년기에 영국으로 건너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여기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데, 그 직장은 계속 바뀔지언정 글을 쓰는 직업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 동안 여행을 다니고 취재를 하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낸다. 그리고나서 다시 미국으로 오기로 결정하고, 그 전에 영국을 한 번 일주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책은 바로 그 책이다.

 

영국 전역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영국에 왔을 때를 떠올리기도 하고, 아내를 처음 만나 결혼식을 올렸던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추억에 젖기도 하고, 또 최근과 비교해 어떻게 바뀌었는지 어떤 점은 여전한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여전히 재치 넘치는 글들은 여전하지만,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보다는 온화하다. 다 읽고 나면 사실 강하게 인상에 남는 문장은 없지만, 예전에 유럽 베낭 여행을 갔을 때 런던과 케임브리지만 찍고 왔던 경험을 생각해보면, 영국의 다른 면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영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읽으면서는 꼭 호주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관광객으로서 호주를 보고 남긴 기록과 수십년간 살아온 나라에 대한 기록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두 나라의 특징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글은 정말 재미있고, 영국의 수많은 곳에 대한 설명도 유용하다고 생각했지만, 소장하고 싶다거나 두세번 반복해서 읽고 싶은 정도까지는 아니었었다. 다만, 빌 브라이슨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그런 면에서 재미있었다.

 

 

1. 다시 영국, 그리고 23년 전 _ 도버를 바라보며
나는 영국을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 20년간 나의 보금자리였던 이 친절한 녹색 섬에 대한 고별여행이랄까 뭐 그런 걸 하고 싶었던 거다.

2. 첫 기억 속으로 출발하다 _ 칼레에서 도버로
많은 세월이 흐른 뒤라 어서 다시 도버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수년 전 하룻밤을 지새운 버스 정류장을 찾아내고는 은밀히 기쁨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3. 런던 찬양 _ 런던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런던이야말로 파리보다 더 아름답고 흥미진진하며, 뉴욕 다음으로 가장 활기찬 곳이라고 말할 것이다.

4. 그때는 잘 몰랐던 도시, 와핑 _ 런던 옆 와핑
“상태 나쁜 게 겨우 이 정도란 말이지? 어디 그럼 내가 솜씨 한번 발휘해 최악이란 어떤 건지 보여주지!”

5. 왕의 나라 영국 _ 런던에서 윈저로
본능에 가까운 타인을 배려하는 이런 태도는 늘 감탄스럽다. 특히 영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일상이어서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은 더욱 감동스럽다.

6. 가족을 만들다 _ 버지니아 워터, 그리고 에그햄
‘저 사람이야말로 내게 필요한 이다.’
그로부터 여섯 달 후 우리는 근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7. 단점을 중얼거리며 산책하다 _ 본머스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이 계속 이어지는 겨울비를 생각해봐. BBC방송국에서 <캐그니와 레이시>라는 드라마만 줄곧 틀어대는 걸 봐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봐. 생각해보라고….”

8. 모든 것이 너무 많은 나라 _ 솔즈베리
장담하건데 스톤헨지의 배후인물은 아마도 사람들을 부추겨 일을 시키는 데 타고난 재주를 지닌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9. 지도만 들고 간다는 것_ 도싯 해안도로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 나는 가장 어려운 대목을 해냈다. 이제 나는 문명세계로 돌아간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다.

10. 걷기 여행 _ 룰워스, 그리고 웨이머스를 지나
항상 하는 말이지만 성공적인 도보여행의 비결은 언제 멈춰야만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데 있다.

11.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다_ 엑서터, 그리고 반스테이플
다른 방에 있으면서도 방금 만든 케이크의 크림을 한 번 찍어먹어 보려는 걸 귀신같이 알아내는 여자들의 재주는 도대체 어디서 난 거란 말인가?

12. 비오는 날의 날벼락 _ 웨스턴 슈퍼메어에서 몬머스, 그리고 시몬스 야트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는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영국에서라면 방문객의 흔적은 단연 낙서나 먹다 버린 맥주캔이 뒹굴어 다니는 것이다.

13.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_ 옥스퍼드
“1264년 이후로 이 고장에는 근사한 건물들만 들어서왔어. 그러니 이번에는 기분전환 삼아 못난이 건물도 세워보지, 뭐.”

 

영국인이거나 나보다 연장자이거나 아니면 이 둘 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스키플 음악(블루스나 포크송 따위에서 나온 1920년대의 재즈음악), 구멍이 하나만 있는 소금그릇, 마마이트(공업용 윤활유처러머 생긴 먹을 수 있는 이스트 농축액), '샐리'라는 노래를 부른 그레이시 필즈, 만능 연예인 조지 폼비, 바자회 등에서 싸게 파는 잡동사니, 직접 자른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 진짜 우유가 들어간 홍차, 삶은 양배추, 집안 전기 배선 공사야말로 재미있는 대화 소재라는 믿음, 증기기관차, 가스레인지 아래 달린 그릴에서 만든 토스트, 배우자와 벽지를 고르러가는 일이 즐거운 외출이라는 생각, 포도가 아닌 다른 과일로 만든 술, 난방을 하지 않은 침실과 욕실, 해변에서 바람막이를 치는 일(바람막이를 치려면 뭐하러 해변에는 나가는지!), 그리고 크리켓 경기. 그외에도 당장 떠오르지는 않지만 뭔가 한두 개가 더 있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따분하다거나 잘못되었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저런 것들의 진정한 가치와 매력을 아직은 내가 알지 못한 다는 말을 하려는 것뿐이다. 그리고 위의 목록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옥스퍼드 대학교를 꼽을 수 있다.

나는 그 대학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품고 있으며 800여 년의 쉼 없는 지식노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그 대학이 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영국인들은 라틴어로 빈정거리기를 좋아하는 식민지 통치자를 육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곳에서 후기칸트학파의 미학이나 라이프니츠와클라크의 논쟁 같은 심도 깊은 학문 활동도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대단히 인상 깊은 일이군.하지만 실업자가 300만에 육박하고 가장 최근 발명분이 제트기엔진이라는 나라에서 조금 한가한 소리 아닌가?' 바로 전날 나이트뉴스에서 아나운서가 기쁜 낯으로 말하기를 삼성에서 타인사이드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라 밝혔다. 그 공장으로 인해 800명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그 800명의 사람들은 기꺼이 오렌지색 작업복을 입고 매일 아침 30분간 태권도를 하게 될 것이다. 낡은 사상을 고수하는 속물이라 손가락질 받더라도 내가 볼 때는, 그러니까 영국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떄는, 영국의 산업기술이 너무 뒤떨어지다보니 미래의 경제안보마저 한국기업에게 의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제는 교육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서 2010년 즈음에는 식탁에 뭔가 먹을 거리를 올려줄 학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몇 년 전인가 <대학의 도전>이라는 특별방송을 본 적이 있다. 미국에는 <대학 경기장>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었다. 미국 대학생들과 영국 대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겨루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영국팀이 싱거울 정도로 쉽게 이겨서 전체 프로그램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영국 학생들은 거의 기계적으로 정답을 연속해서 맞혔다. 반면 미국 학생들은 인상을 찡그린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생각은 이랬다.(그 눈을 보면 정말 이렇게 생각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도대체 윤회가 무슨 말이야?' 최종 점수는 12000대 2정도였다. 이런 점수는 영국인들을 불쾌하게 했을 것이다. 영국인들은 뭔가를 너무나 잘해 도드라지는 걸 내심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생각해야 할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한 점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건데 당시 게임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을 추적해서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본다면, 미국 대학생들은 모두 채권거래나 기업운영으로 연간 85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반면 영국 대학생들은 폴란드 남서지역 슐레지엔에서 구멍 난 스웨터를 입고 16세기 합창곡의 음질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옥스퍼드 대학교는 중세 이후로 발군의 재능을 뽐내어 왔으니, '(소니 영국법인의 하나인)옥스퍼드 대학교 주식회사'가 되어도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꼭 집어 해주고 싶은 말은 대학이 보다 상업적인 사고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3억 4천만 파운드의 기금을 5년 안에 조성하자는 운동이 성공리에 완수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깊은 인상을 주는 일이었다. 적어도 기업의 후원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 안내서를 찬찬히 훑어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들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완전히 새로워진 슈레이드 위트 시리얼(무설탕, 무가염)과 함께하는 동양 철학 강좌, 매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는 와이페이모어의 해리 카펫이 후원하는 경영전문대학원.

요 근래 이런 식의 기업 후원이 영국인들의 삶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고, 이제는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캐논배 축구대회' '코카콜라컵 축구대회' '에너자이저 경주대회' '앰버시 담배 후원 세계스누커 당구 챔피언십' 같은 대회도 열린다. 머지않아 '켈로그 후원 왕세자비' '미쓰비시가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리젠트 공원' '삼성 시티(예전에는 뉴캐슬이라 불렸다)'도 보게 될 것 같다. 

14. 그림책에나 나올 법한 풍경들 _ 코츠월드 구릉지, 그리고 솔트웨이
영국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게 꾸며져 마치 공원 같은 전원 풍경을 누리고 살고 있다. 그런데도 분통이 터지도록 그 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

15. 영국인의 천재적 작명센스 _ 밀턴케이스에서 런던, 캠브리지
매우 매력적인 여운이 남는 그곳의 이름은 ‘악마의 제방’이었다. 한 번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장소였지만, 왠지 뭔가 있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16. ‘귀족탐구’ 여행을 떠나다_ 렛퍼드와 워크솝
포틀랜드 공작 5세인 스코트 벤팅크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의 영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년의 벤팅크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은둔자다.

17. 이것은 시네마라다_ 링컨과 브레드포드
브레드포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브레드포드와 비교해보면 세상에 안 좋은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18. 집에 들르다 _ 솔테어와 빙리, 해러게이트
산맥 너머에는 우리 집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이 저리도록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예정했던 여행을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면 부정행위를 한 듯한 느낌이 든다.

19. 판타지 속으로 _ 맨체스터에서 위건
이 책에서 수십 페이지에 걸쳐 내가 이야기한 것들을 딱 이루어놓은 셈이다. 영국 전체를 돌며 유일하게 본 것인데 그게 찢어지게 가난한 위건이라는 점도 기뻤다.

20. 과음의 규칙_ 리버풀에서 랜디드노까지
가보니 쓰레기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아이스크림 포장지, 담뱃값, 비닐봉지로 다른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주변 자연환경을 꾸미고 있었다.

21. 훌륭한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하는 법_ 랜디드노, 블라이나이 페스티니오그, 포스마독
내가 선택한 게스트하우스는 십중팔구 담배를 입에 물고 걸걸한 기침을 해대서 가래침을 좀 뱉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탐욕스러운 남자가 주인일 게 분명하다.

22. 영국에서 기차를 탄다는 것 _ 포스마독에서 루드로우, 다시 맨체스터
포스마독을 출발한 지 무려 14시간 만에 블랙풀에 도착했다. 지치고 배고프고 수염도 다듬지 못했다. 고통과 비탄에 잠긴 상태로 각별히 가보고 싶지도 않았던 곳에 와버렸다.

23. 해변이 하나도 없는 리조트 _ 블랙풀, 모어캠블
넓은 나라에서 살다 영국에 오면 가장 적응하기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이곳에서는 문밖으로 나가면 좀처럼 혼자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24. 작은 나라 영국 _ 보우니스, 윈더미어 호수
지형이 작은 게 좋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섬나라에서 조촐하고 아담하면서 동시에 근사하고 멋진 모습을 간직해서 좋다는 것이다.

25. 탄광촌의 기적 _ 더럼과 애싱턴
한 때 애싱턴에는 1년 내내 강연회와 콘서트가 열렸고, 특강 형식의 철학회, 오페라회, 연극회 등등 비스무레한 모임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동시에 그게 영국의 매력이었다. 친근하고 아담한 나라지만 흥미로운 사건사고를 잔뜩 품고 있는 나라였다. 이점에 대해 늘 감탄하고 놀라워했다. 옥스퍼드에서 불과 몇 백 야드 떨어진 장소에는 크리스토퍼 랜의 집이 있고 핼리가 혜성을 발견했고 보일이 자신의 법칙을 처음으로 생각한 건물이 있으며, 로저 배니스터가 마의 4분이라던 1마일(약 1.6km) 코스를 세계 최초로 깬 거리가 있고 루이스 캐럴이 엘리스 아가씨와 산책을 했던 초원이 있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닫자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랬다. 윈저의 스노우힐에 서서 윈저성, 이튼의 운동장, 그레이가 그 유명한 《엘레지》를 썼던 교회경내,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이 초연되었던 장소를 한눈에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수세기밖에 안된 짧은 기간에 걸쳐 부지런히 이뤄낸 풍부한 업적의 결과를 한가득 품고 있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26. 스코틀랜드와 사랑에 빠지다 _ 애든버러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참기 힘든 곳이 될지! 스코틀랜드 인들이여 고맙다. 그리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일 따위는 신경 쓰지 마시라.

27. 어딜 가나 그곳은 영국이다_ 애버딘을 거쳐 인버네스로
진짜 문제는 애버딘이라기보다는 현대 영국의 특성에 있었다. 영국의 도시는 한 벌의 트럼프카드 같다. 같은 카드인데 순서만 달라지는 것이다.

28. 북단을 가다 _ 인버네스, 서소, 존 오그로츠
집에서 멀어져 장기간 여행을 해왔던 나에게 드디어 올 것이 와버렸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순간이었다. 혼잣말로 대답도 못할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대고 있었다.

29.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다 _ 글래스고
이게 바로 글래스고다. 근래에 들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련되게 변했지만, 그 한쪽 끝에는 늘 공갈과 협박이 남아 있다.

30.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_ 집으로
갑자기, 순식간에, 영국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좋던 나쁘던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내리막길을 반절쯤 갔을 때 아내에게 목초지 입구에 차를 세우게 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전경이 거기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기서는 맬햄데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녹음이 우거진 아늑하고 포근한 마을이 당당한 구릉지 아래 자리 잡고 있다. 고지식한 자연석 담벼락이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인근의 마을 세 개도 다 보이고 작지만 아름다운 교실 두 개짜리 학교도 보이고 낡은 교회도 보였다.(그 교회는 1490년에 지어졌는데 그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출항하기 2년 전의 일이다. 나는 우리 집에 찾아온 미국인들에게 언제나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다들 매우 인상 깊은 일이라 좋아들 했다.) 그리고 우리 동네 선술집도 보였다. 그 한가운데 나무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돌집 하나가 있었다. 나의 조국 보다 훨씬 더 오래된 우리 집이었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작은 나라에는 이곳 못지않은 장소가 너무도 많다. 갑자기, 순식간에, 영국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좋든 나쁘든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오래된 교회도, 시골길도, "불평하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도, "정말 죄송한데요"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내가 모르고 팔꿈치로 툭 쳤는데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도, 병우유도, 토스트에 들어간 콩도, 6월에 건초를 만드는 일도, 바닷가 부두도, 왕립지도제작원에서 만든 지도도, 차와 핫케이크도, 여름 소나기도, 안개 자욱한 겨울날도 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모두 사랑했다.

영국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장소다. 물론 완전히 미쳐 돌아가는 때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도 조금은 숭배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어떤 나라가 투팅 비(방귀 뀌는 벌)와 팔레이 월롭(팔레이를 흠씬 두들겨 패다) 같은 이름을 지명으로 사용할 생각을 하겠는가? 크리켓 같은 스포츠를 고안해 낸 나라가 이곳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입헌군주제 방식의 정부조직을 갖고 있으면서도 성문헌법은 없는 데가 또 있을까? 사립학교를 공립학교라 부르고, 판사들의 머리에 마대자루 같은 걸 올려놓고도 조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상원의원의 최고 책임자를 양모자루라고 불리는 것 위에 앉히고, 하디라는 이름의 동료에게 키스를 받는 것이 최후의 소원이었던 전쟁 영웅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라가 여기 말고 또 있을까?("하디, 제발 입술에다 해줘. 혓바닥은 살짝만 집어넣고.") 이 나라가 아니었다면 윌리엄 셰익스피어, 위가 납작한 중절모,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윈저 대공원, 솔즈베리 성당, 2층 버스, 다이제스티브 비스킷을 어디서 만났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근사한 전망을 어디서 또 구경할 수 있을까? 단연코 이런 곳은 다시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생각들이 한참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에도 말했고 앞으로도 다시 말할 이야기지만 나는 영국이 좋다. 말로 다 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 드디어 나는 목초지 입구에서 등을 돌리고 자동차로 올라탔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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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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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재미있는 여행작가라는 빌 브라이슨의 호주 여행기이다. 호주라는 나라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앞서 읽은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들은 여행지를 소개한다기보다는 장소를 빌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내용의 거의 전부라서, 이 여행기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이 여행기에는 호주에 대한 정보가 가득했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스타일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 호주라는 나라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인 걸까?

 

책의 맨 앞에는 호주 지도가 나온다. 아랫변이 파먹힌 것 같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왼쪽의 꼭지점부터 시계방향으로 다윈, 케언스, 브리즈번, 시드니, 캔버라, 멜버른, 애들레이드, 퍼스로 주요 도시들이 이어진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울루루는 호주의 한 가운데 있다.

 

유럽을 가기 전에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여행>을 읽고 가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호주를 가기 전에는 이 책을 반드시 읽고 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 지리, 기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이 한 권만 읽고도 마치 호주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적어도 나에게는 미지의 세상이었던 호주가 마치 눈에 보이는 거리에서 둥실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제1부 오지 속으로


 

1장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나라 : 시드니 단상

 

오스트레일리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북동해안을 따라 발달한 세계 최대의 산호초-옮긴이)와 최대 암석인 에어스 록Ayers Rock(혹은 울루루족을 더 존중하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원주민의 이름)의 본고장이다. 이 나라에는 다른 어떤 곳보다 매혹적인 것이 많다. 세계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뱀 10종은 모두 이곳에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생물 5종(깔때기독거미, 상자해파리, 표범문어, 마비진드기, 퉁쏠치)은 같은 종류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이다. 또한 가장 보송보송한 애벌레조차도 소량의 독으로 사람을 기절시키는 한편 조개가 사람을 쏘는 것은 물론 이따금 공격을 감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순진한 여행객들이 예사로 그러듯이 퀸즐랜드 해변에서 나사조개를 잡아보라. 그러면 그 작은 친구의 속살이 깜짝 놀랄 만큼 재빠르고 성미가 까다로운 것은 물론 독성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쏘이거나 찔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어나 악어에게 물려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거나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해류에 휩쓸려 손 쓸 틈도 없이 바다로 떠내려가거나 혹은 태양이 작열하는 오지에서 비틀거리다 비참한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험난한 땅이다.

 

간단히 말해, 세상 어디에도 이런 곳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오스트레일리아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80퍼센트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척박한 환경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그 수가 무척 많다는 점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모든 대륙 가운데 가장 습도가 낮고, 가장 평탄하고, 가장 온도가 높고, 가장 건조하고, 가장 척박하고, 가장 기후가 호전적인 곳이다(이보다 생명체에 적대적인 곳은 남극뿐이다). 이곳은 활성()이 무척 낮아서 원칙적으로 말하면 토양조차도 화석이나 다름없는 땅이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는 무수한 생명체로 충만해 있다. 곤충만 살펴봐도 과학자들은 그 종류가 10만개 이상인지 혹은 그 두 배에 이르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 과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곤충이 그중 3분의 1에 이른다. 거미를 예로 들면 그 비율은 80퍼센트로 올라간다.

 

나는 "저게 위험한가요?"라고 물었다.

거의 벌거벗은 채 반쯤은 익사한 상태로 몸을 떨면서 상처받은 나약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내게 디어드리가 한 대답을 듣기에 앞서 나중에 그녀가 <헤럴드>의 주말 매거진에 실은 기사의 한 대목을 인용하겠다.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는 동안, 브라이슨과 부기 보드는 격랑에 휩쓸려 해변에서 40미터가량 밀려간다. 해변의 격랑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먼 바다의 격랑과 달리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브라이슨은 이 사실을 모른다. 해변에 있는 경고판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있는 쪽으로(1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지점까지) 청파리가 떠내려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지 못한다. 사람을 쏘아서 퉁퉁 부어오르게 만들며, 20분 동안 극심한 고통을 안기고, 운이 나쁘면 꼴사나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평생 몸통을 마비시킬 수도 있는 생물 말이다.

*이 구절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작가는 내가 안경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언급했어야 했다. 나는 안내인들을 믿었다. 그리고 상어가 없는지 드넓은 바다를 훑어보고, 팬티에다 실례를 하지 않으려고 줄곧 노력했다.

청파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내게 디어드리가 대답했다.

"위험하냐고요? 아뇨. 하지만 스치지 않도록 하세요."

"왜요?"

"약간 불편할 수도 있거든요."

나는 감탄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긴 버스 여행은 불편하다. 삐걱거리는 나무 벤치는 불편하다. 대화하는 도중 잠시 침묵이 이어지면 불편하다. 포르투갈 전함에게 쏘이면 고통스럽다(아이오와 사람들조차 알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위험에 많이 둘러싸여 있다 보니 거기에 대처하는 완전히 새로운 어휘를 개발한 것 같다.

 

2장 인디언 퍼시픽 철도 : 사막 횡단의 역사를 더듬다

 

지금은 맑디맑은 하늘 아래 있는 작은 부락에 불과한 화이트클리프스가 한때 인구 4500명에 병원, 신문사, 도서관, 번잡한 상가, 호텔. 레스토랑, 사창가, 도박장을 구비한 신흥 도시였다는 사실은 믿기가 어렵다. 오늘날 화이트클리프스 다운타운에는 퍼브, 셀프 세탁소, 오팔 상점, 식료품점과 카페 겸 주유소가 각각 하나씩 들어서 있다. 상주인구는 약 80명이다. 그들은 열기와 먼지뿐인 무기력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 만한 인내심과 용기를 갖춘 사람을 발견하려면 아마 이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라면 얼마나 많은 돈을 안기며 설득해야 화이트클리프스에 정착할지 모르겠다(어쩌면 몇 조 달러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모텔의 높다란 정원 테라스에서 주인 레온 혼비와 함께 앉아 맥주를 마시고 하루해가 저물어가는 모습을 감상한 그날 저녁, 액수를 약간 협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레온(도시에서 태어나 다분히 도회적인 성향을 가진 사나이)에게 무엇이 그와 그의 유쾌한 아내 마지를 사로잡아 하느님에게조차 버림받은 이 변경에 머물게 만들었는지 물어볼 참이었다. 슈퍼마켓에 가려 해도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왕복 여섯 시간이나 달려야 하는 이곳에 말이다. 그러나 미처 입을 열기 전에 인상적인 일이 일어났다. 캥거루들이 드넓은 전경에 뛰어들더니 그림처럼 풀을 뜯기 시작했고, 마치 줄에 매달린 무대 장치를 내린 것처럼 태양이 지평선 위로 내려앉았다. 이어서 높다란 서쪽 하늘이 100여개 층으로 구성된 색채(선명한 핑크, 짙은 자주, 자연스러운 심홍색 깃발)를 드러내며 우리 앞에 펼쳐졌다. 지금껏 상상도 못하던 장관이었다. 우리 앞에 놓인 약 64킬로미터에 달하는 사막과 먼 지평선 사이에 방해물이 전혀 없기에 가능한 광경이었다. 그것은 내 평생 본 적이 없는 가장 독특하고 선명한 일몰이었다.


3장 황무지를 넘어서 : 72시간의 기차 여행

 

동이 틀 무렵 퍼스에 도착한 우리는 기차에서 내렸다. 단단한 땅으로 내려섰다는 사실이 반갑고 우리가 해낸 일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 72시간 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도 해보지 못한 일, 즉 오스트레일리아 횡단에 성공했다.

물론 재미도 없고 빤한 결론이지만, 오스트레일리아는 어느 곳과 비교해도 독특하다. 어마어마한 거리는 물론(거리가 어마어마한 것은 사실이다) 그 거리에 펼쳐진 엄청난 황무지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800킬로미터는 다른 지역의 800킬로미터와 다른다. 또한 그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은 육로로 그 대륙을 횡단하는 것뿐이다.

나는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제2부 부메랑코스트


4장 대륙의 역사 : 유배지에서 출발하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토록 엄청난 비용을 들여 그것도 오직 유배되기 위해 그토록 먼 거리를 이동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볼 때도 (사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그들에게 내린 형벌은 터무니없이 과중했다. 그들은 대부분 좀도둑이었다. 영국 정부의 목적은 위험한 범죄자를 소탕하는 게 아니라 하층민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들 대다수는 시시한 물건을 훔친 대가로 세상 끝으로 유배되었다. 지지리도 운이 없던 어떤 사람은 오이 열두 개를 훔치다 잡혔다. 그런가 하면 멍청하게도 《번영하는 국가 토바고 섬에 대한 요약》이라는 책을 슬쩍한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절망이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서 비롯된 범죄처럼 보였다.

일방적으로 '추방' 기간은 7년이었다. 그러나 돌아올 방법이 없고 배 삯을 모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으니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유폐는 사실상 종신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용서가 없는 시대였다. 18세기 후반 무렵 영국의 법전은 온갖 사형 조항으로 가득했다. 특히 '이집트 사람 행세하기'를 포함해 200가지 행위 가운데 하나만 저질러도 교수형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추방은 상당히 자비로운 형벌이었다.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퍼스트 플리트의 기념비를 찾아볼 수 없다. 국립해양박물관이나 시드니 박물관에 가보라. 그러면 분명 일부 초기 정착민이 고난을 겪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완전히 자발적으로 이곳에 정착한 것은 아니라고 추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사슬에 묶인 채 이곳에 도착했는지 여부는 그리 확실치 않다. 초창기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권위 있고 탁월한 역사서 《치명적인 해안》에서 로버트 휴스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196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죄수들로부터 시작된 오스트레일리아 초기 역사에 학문적으로 주목하고 학교에서 그것을 가르칠 가치가 있다는 의견이 등장했다. 존 필거는 《비밀의 나라》에서, 1950년대 시드니에서 유년기를 보낼 때 가족들끼리도 '오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점'이란 조상이 유형수였다는 사실을 이상야릇한 방식으로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단언하건대 활짝 웃는 오스트레일리아 관객 앞에서 유형수 조상을 가볍게라도 언급하면 냉랭한 기운이 급상승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외딴 곳에서 가장 불행한 시작을 맞았지만 부유하고 역동적인 사회를 창조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성과다. 따라서 사랑하는 할아버지들이 젊은 시절 도벽이 약간 있던 범죄자였다 해도 뭐 그리 대수겠는가? 그들이 남긴 것을 보라.

 

나는 불안한 나머지 발걸음을 재촉했다. 개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력과 다름없이 우주의 법칙이다. 내가 옆을 지나가려 할 때마다 녀석들은 언제나 마치 내가 자기의 알포Alpo(개 사료 브랜드의 하나-옮긴이)를 빼앗기라도 하는 듯이 행동한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몇 년 동안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던 개라도 밖에서 내가 지나가는 냄새를 맡으면 분노에 떨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잠긴 창문으로 기세등등하게 몸을 날릴 것이다. 털 달린 슬리퍼만 한 작은 개가 내 피와 힘줄을 쟁취하겠다는 일념으로 공터에서 노부인들을 질질 끌며 달려온 적도 있다. 모든 개는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5장 블루마운틴 산악 지대 : 비밀의 나라를 엿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유쾌한 복고 스타일을 만끽하며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이 시골 도시의 라디오 방송국들은 옛날 음악을 주로 들려준다. 1960년대~1970년대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의 음악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자동차 라디오를 틀면 페기 리나 줄리 런던, 어쩌면 매력적인 미소와 차별없는 시대를 살았다는 행운 덕분에 1950년대에 인기를 얻었던 지젤 매켄지까지 들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마지막 나라일 것이다.


6장 캔버라 : 다른 모든 곳으로 나가는 관문

 

내가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할 무렵, 오스트레일리아를 공화국으로 전환할지 여부가 전국적인 화두였다. 다시 말해, 영국과의 마지막 식민지 관계를 청산하고 두 번 다시 예전처럼 총독이 나라를 모욕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자는 요구가 있었던 것이다. 내게는 그리 대단한 문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떤 나라든 자국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여러분도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명약관화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은 2년 동안 그러한 변화에서 비롯될 온갖 문제를 떠올리며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 시스템 하에서 누구를 새 대통령으로 선출할 것인가? 새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우리가 왕을 섬기지 않는다면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왕립 항공의료서비스'라는 명칭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새로운 헌법 전문에 어떤 문구를 넣을 것인가? 존 하워드의 바람대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우정mateship'이라는 특성을 언급할 것인가? 아니면 '우정'이란 근본적으로 무의미하고 당황스러운 개념이라고 인식할 것인가? 맙소사, 끔찍할 정도로 복잡하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방치한 채 영국이 우호적으로 대하기를 바라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같은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는 지켜보기에도 심신이 지치는 과정이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은 논쟁을 위한 논쟁을 좋아하며 기본적으로 모든 일을 그대로 방치하고 싶어 한다.


7장 로드 하우스 : 나의 가장 오래된 오스트레일리아 친구를 위하여

 

오스트레일리아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라는 없다. 그 사례를 들자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오스트레일리아는 자국보다 면적이 더 큰 네 나라를 제외한 전체 참가국보다 많은 메달을 본국으로 가져왔다. 인구 비례로 따지면 오스트레일리아의 성과는 다른 국가를 훨씬 앞질렀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인구 100만명당 3.78개의 메달을 땄는데, 이는 2위인 독일보다 2.5배 이상 훌륭한 성과이며 미국에 비하면 다섯 배나 훌륭하다. 그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는 14개 종목에서 고르게 메달을 땄다. 이와 비슷한 성과를 거둔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스포츠는 드물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선수가 40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고 잇는가? 하지만 정작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야구를 하지 않는다. 적어도 인기 스포츠는 아니다.


8장 애들레이드 : 아름답지만 외로운 도시

 

이런 상황에서 인상적인 사실은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이 얼마나 더 부유해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열악해졌다고 느끼는가라는 점이었다. 외부 사람의 눈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무척 이상하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기 비판적이다. 신문, 텔레비전 그리고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오스트레일리아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다른 곳에 가면 더 좋은 것이 있다고 굳게 믿으며 괴로워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생활상과 역사에 관한 책 중에는 《야만인들 사이에서》《미래의 식인종들》《거리의 횡포》《이 피곤한 갈색의 땅》《치명적인 충격》《치명적인 해변》등 어둡고 비관적인 제목이 신기할 정도로 많다. 제목이 중립적인(긍정적인 제목은 없다) 책조차도 대개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결론을 내린다. 지난 200년 동안 이 나라가 세운 대단한 업적을 신중하고 독특하게 조사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더 짧은 역사》에서 작가 제프리 블레이니는 오스트레일리아가 평화로운 연방 체제 하에서 첫 세기를 거의 마무리했다고 지적하며 느닷없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앞으로 2세기 동안 지속될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인간 역사의 과정에서는 어떤 정치적인 경계도 영원하지 않다."

음, 무척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말을 쓴 사람이 캐나다, 벨기에 혹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 이런 글을 썼단 말인가? 오스트레일리아는 심각한 시민 폭동이 일어나거나 반체제 인사를 투옥한 일도 없으며 쉽게 몰락할 기미도 없는 나라다. 이를테면 남반구의 노르웨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가 주권 국가로서 존속할 수 있을지 결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유명 역사학자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외로운 대지, 다운언더에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의 이성적인 관점이다. 그들은 40년 동안 여러 국가(스위스, 스웨덴, 일본, 쿠웨이트 등등)가 차례로 1인당 GDP에서 자국을 앞지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1996년 홍콩과 싱가포르 역시 그들을 제쳤다는 뉴스가 발표되었을 때,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은 신문 사설과 분석 자료를 보고 아시아 군대가 다윈 주변의 어딘가에 상륙해 전국으로 침투하면서 가는 곳곳마다 자원을 훔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국가들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차이는 지극히 미미하며, 대부분 상대적인 환율과 관련이 있으니 신경 쓸 것 없다. 생활비, 교육적 성취, 범죄율 같은 생활의 질을 고려하면 오스트레일리아가 거의 정상의 자리를 탈환할 수 있으니 마음 쓸 것 없다(오스트레일리아는 유엔 인간개발지수에서 캐나다, 스웨덴, 미국과 그 외 한두 국가에 약간 뒤져 7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고 경제가 탄탄하고 GDP가 높은 몇몇 다른 국가를 기분 좋게 앞지르고 있다). 내가 방문할 무렵 오스트레일리아는 전례 없이 발전을 거듭했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빠른 경제 성장 속도를 ㅂ이고, 인플레이션 기미도 전혀 없고, 실업률도 몇 년 만에 최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 국민 가운데 36퍼센트가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느끼는 반면 호전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은 겨우 5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오늘날 1인당 달러 보유 면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이제 상위권에서 밀려나 2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전기포트와 적어도 라디오 한 대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세계에서 세 번째 부유한 국가가 되어 전율을 느낄 것인가, 아니면 이성적인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는 세상에서 스물한번째 부유한 국가가 될 것인가?

그렇다면 얼마 되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강어귀에 서식하는 악어한테 먹히는 사소한 위험을 무릅쓰겠는가? 이는 내가 두 번쨰로 구입한 휴 에드워즈의 《오스트레일리아의 악어 공격》을 꺼내 이 가장 교활하고 약삭빠른 동물이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공격을 자행하는 240페이지를 읽을 때 든 생각이다.

염수 악어saltwater crocodile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조차도 경악할 만한 능력을 소유한 동물이다. 팔뚝에 있는 전갈을 침착하게 털어버리거나 살금살금 다가오는 딩고(오스트레일리아에 서식하는 들개의 일종-옮긴이) 무리를 보고 겁 없이 껄껄댈 수 있는 사람이라도 굶주린 악어가 나타나면 비명을 지를 것이다. 나는 에드워즈의 오싹한 연대기 속으로 그다지 깊이 들어가지 않고도 금세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북서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어난 이 이야기를 생각해보라.

 

이는 지난 25년 동안 일어난 사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악어의 공격일 것이다. 이 이야기에 명승지, 호화로운 요트, 그리고 아름답고 젊은 미국인 희생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이다. 즉 그 밖에도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다. 에드워즈에 따르면 1세기 동안 최대 150명이 희생당했다. 메도스의 죽음은 그녀가 다가오는 악어를 목격했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다. 악어의 살인 행위를 다룬 기록은 물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져 있거나 강둑에 앉아 있거나 혹은 해변을 산책하다 갑자기 악어에 물려 생각하기는커녕 비명 지를 겨를도 없이 물속으로 끌려들어간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악어가 그처럼 무서운 것이다.

이제 묻겠다. 이렇게 걱정할 거리가 많은데 홍콩이나 싱가포르 사람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누가 신경을 쓰겠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다.


9장 모닝턴 반도 : 총리가 익사한 까닭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의 가장 소중한 특징으로 손꼽히는 것 중 하나는 어떤 큰 물건을 다른 모양으로 즐겨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치킨 와이어chicken wire(구멍이 육각형인 철조망-옮긴이) 한 묶음, 섬유 유리 약간 그리고 페인트 몇 통을 던져보아라. 그러면 여러분에게 엄청나게 큰 파인애플이나 딸기 그리고 여기서처럼 로브스터(바닷가재)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런 다음 그 안에다 카페와 선물 상점을 넣고 고속도로 옆에 큰 표지판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물러앉아서 돈이 굴러들어오길 기다릴 것이다.

이런 종류의 구조물 60개가 1950년대에 공포 영화를 찍고 남은 소품처럼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 흩어져 있다. 휘발유 값이 충분하고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이 없다면 예컨대 빅 프론Big Prawn, 빅 코알라Big Koala, 빅 오이스터Big Oyster(탐조등이 눈처럼 보인다), 빅 론 모어Big Lawn Mower, 빅 말린Big Marlin, 빅 오렌지Big orange 그리고 빅 메리노 램Big Merino Lamb을 찾아보라. 애국자처럼 자랑스럽게 말하건대 이런 관행은 뉴사우스웨일스 해안의 코프스 항구에 빅 바나나Big Banana를 세운 랜디라는 이름의 한 미국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나가는 차량들이 마치 마법처럼 빅 바나나에 매료된 덕분에 랜디 씨는 말하자면 그 업계의 빅 바나나가 되었다.


10장 멜버른 : 이민박물관에 숨은 역사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 영국을 묘하게 매력적으로 섞어놓은 곳이었다. 아마 이런 생각이 든 것은 내가 반평생은 미국에서 나머지 반평생은 영국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일조했다고 본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영국적인 배경에 미국 분위기를 뚜렷이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활기가 있었다(제약이 없고 이방인을 편하게 여겼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미국 분위기가 풍기긴 했으나 왼쪽으로 주행하고, 차를 마시고, 크리켓을 하고,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으로 공공장소를 장식하고, 영국 사람처럼 아이들에게 교복을 입혔다. 나는 이런 모습이 무척 편안했다.

 

"아, 저길 보세요. 짐 케언스Jim Cairns예요."

그러곤 의자와 카드놀이 테이블을 들고 우리 앞을 지나 길을 건너는 왜소한 노인을 가리켰다. 약간 세파에 시달린 것처럼 보였지만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캐멀이 "휘틀럼 정부 때 부총리를 지낸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농담인지 아닌지 살피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저쪽 시장에서 자기 자서전을 팔고 있어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상인들이 채소 따위를 파는 천막 시장이었다.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 사람이 책을, 자기 책을 카드놀이 테이블에 놓고 판다고요?"

그녀는 외부 사람한테는 그런 일이 약간 충격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듯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

"그냥 용돈 좀 벌려고 하는 것 같아요."

케언스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땅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공직에 있던 사람이다. 미국으로 따지면 월터 먼데일Walter Mondale이 미니애폴리스의 한 상점가에서 카드놀이 테이블에 앉아 백악관 받침 접시 같은 기념품을 팔고 있는 셈이었다.

 

1950년대는 오스트레일리아에 흥미로운 시대였다. 당시 수백만의 외국인이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이 되었고, 이상한 일이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사람 역시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이 되었다. 나는 불과 얼만 전에야 비로소 1949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시민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사람은 원칙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라 영국 국민이었다. 콘월이나 스코틀랜드 출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국민이었다. 영국과 영국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영국이 참전하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영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러 외국의 전장으로 떠났다. 학생들은 마치 리버풀이나 맨체스터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영국의 역사, 지리, 경제를 열심히 공부했다. 캐서린 비치가 한 편지에서 1930년대 애들레이드의 한 교실에서 스코틀랜드의 산맥 높이와 이스트앵글리아의 보리 생산량을 배우며 불타는 듯한 와라타나무와 지저귀는 물총새 떼를 내다보는 일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를 표현했던 대목이 기억난다.

 

제2차세계대전 동안 이 나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미얀마와 싱가포르가 몰락하자 영국이 극동지방에서 후퇴했고, 이로써 오스트레일리아가 갑자기 홀로 남아 위험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건방진 태도가 매력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오스트레일리아 군부 지도자들에게 군대를 인도로 파견할 것(사실상 병사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영국 제국의 위대한 이익을 위해 싸울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이 요구에 응하지 않고 후방에서 전투를 치르며 일본이 뉴기니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기로 결정했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사람 말고 일본이 이 대륙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본은 솔로몬 제도의 대부분 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 바로 북쪽에 있는 뉴기니의 대부분 지역을 점령했다. 이제 오스트레일리아를 침공할 태세를 갖춘 것처럼 보였다.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오스트레일리아 군부는 대륙의 거의 모든 지역을 버리고 주요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동남부로 후퇴하는 계획을 세웠다. 사실 이는 지연 전술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미국 해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다른 지역에서도 전세가 바뀌었다. 덕분에 오스트레일리아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 사건은 두 가지 상처를 남겼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영국이 도와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깨달음과 북쪽의 불안정한 나라들에 대한 엄청난 무력감이 그것이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전후 오스트레일리아의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인구를 늘리지 못하면(그 공허한 땅덩어리를 모두 활용하지 못하고, 그 빈 공간을 그들 대신 활용해줄 외부인으로 가득 채우지 못하면)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동안 이 나라는 문호를 개방했다. 1945년 이후 반세기가 흘렀을 때 오스트레일리아 인구는 700만에서 1800만으로 급증했다.

 

백호주의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난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정책은 이민국 관리들이 정부가 선택한 유럽 언어(유명한 일례로 스코틀랜드 게일어(Gaelic) 테스트를 실시함으로써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몰아내고 일말의 동정도 없이 유색 인종을 추방할 권한을 제공했다. 1950년대 초반 이민부 장관 아서 칼웰Arthur Calwell은 한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의 인도네시아 출신 미망인과 자녀 8명을 본국으로 송환하려고 애썼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에게 한 가지 빛나는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공평한 대우(일반적인 정의의 근본적인 정당성이라는 의미)'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격력한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법정은 칼웰에게 상황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라고 명령했으며, 그 결과 배척 정책에서 비정한 요소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1970년 무렵 오스트레일리아는 적어도 지리적인 면에서 자국이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차별 정책은 철회되고 모든 지역으로부터 수만 명에 이르는 이주민의 입국을 허용했다.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문화가 공존하는 국가로 손꼽힌다. 시드니 시민 가운데 3분의 1이 다른 나라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단 한 세대 만에 거듭났다. 편협하고, 활기 없고, 문화적으로 의존적인 데다 이미 반쯤 잊힌 영국의 변장에서 더욱 세련되고, 자신만만하고, 흥미롭고, 외부 지향적인 국가로 변했다. 전반적으로 불협화음이나 혼란 혹은 중대한 실수 없이 실로 품위 있게 이 모든 일을 성취했다.

나는 며칠 전 우연히 1950년대 이주민의 경험을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인터뷰를 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은 10대 시절 헝가리에서 폭동이 일어난 후 오스트레일리아로 온 이주민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첫날, 그는 지시받은 대로 지방 경찰서에 가서 서투른 영어로 자신은 주소를 등록하라는 지시를 받고 온 이주민이라고 설명했다. 경찰관은 그를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돌아 나왔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헝가리인 청년은 그 경찰관이 자신을 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찰관은 두툼한 손을 내밀더니 다음과 같이 따뜻하게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얘야."

헝가리 이주민은 그 순간을 지금도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말을 끝냈을 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진심으로 말하겠다. 이곳은 멋진 나라다.


11장 알파인 국립공원 : 대자연의 위용

 

"오스트레일리아에 물푸레나무가 있는 줄 몰랐네요."

"없습니다. 저건 유칼립투스입니다."

나는 놀란 눈으로 다시 쳐다보았다. 그 나무의 면면(길고 곧은 몸통, 높이, 무성함)은 저지대를 연상케 하는 앙상한 검나무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유칼립투스가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든 생테계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엇다. 그처럼 다양한 나무는 없었다.

론은 나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캘리포니아삼나무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키가 큰 나무죠"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감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높이 자랍니까?"

"최대 90미터까지 평균 60미터가량 자랍니다."

90미터면 25층 건물의 높이와 맞먹는다. 정말 큰 나무다.

"산불은 많이 납니까?"

론은 유감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금요. 1985년에는 그레이트디바이딩 산맥의 줄기인 이 지역에서 15만 헥타르가 소실되었습니다."

그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나지 않았지만 나는 "맙소사!"라고 말했다. 훗날 책에서 찾아보니 요세미티, 그랜드티턴, 시온, 레드우드 국립공원을 모두 합한 것과 맞먹는 면적이었다. 다시 말해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규모의 자연 재해였다.(그러나 《뉴욕 타임스 인덱스》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기사가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없었다). 15만 헥타르가 얼마나 되는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어마어마한 면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예의상 이렇게 덧붙였다.

"정말 끔찍했겠군요."

론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좀 그랬습니다."

 

알파인 국립공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미국의 그레이트스모키 국립공원보다 약 세 배나 넓다). 그러나 뉴사우스웨일스 경계선 바로 위쪽에서 규모가 훨씬 큰 스노이 산맥에 있는 코지어스코 국립공원 동쪽 경계선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더 방대하다. 코지어스코(그는 코지Kozzie라고 불렀다)가 정확히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론이 알려주었지만 쌍안경을 이용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12장 여행자의 길 : 불편한 진실

 

오스트레일리아의 포장도로는 총 28만 9682킬로미터에 이르지만 대부분 인구가 많은 동부 지역에 몰려 있다. 그 밖의 방대한 지역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윈에서 케언스까지 거의 3200킬로미터에 이르는 들쭉날쭉한 해안에는 단 1센티미터의 포장도로도 없다. 분명 전 세계에서 고속도로와 접해 있지 않은(가장 아름다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도) 최장 해안선으로 손꼽힐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케언스 바로 외각부터 오스트레일리아의 북단이자 절경의 극치를 보여주는 케이프요크까지 약 800킬로미터가량 펼쳐진 열대 숲 지대 역시 도로의 침입을 전혀 받지 않았다. 서부 유럽을 쉽게 떠올릴 만한 퀸즐랜드 전역에도 방대하고 건조한 내륙 지방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는 단 세 개뿐이다. 게다가 그중 한 도로만이 오스트레일리아의 3분 2를 차지하는 서부와 연결되어 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2250킬로미터(뉴욕에서 뉴올리언스까지의 거리와 거의 맞먹는다)의 퀸즐랜드 경계선을 따라 걷는다 해도 북부의 캐무윌에서 남부의 바링군에 이르기까지 고속도로를 건너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거리이든 내륙으로 들어가보라. 그러면 금세 기막힐 정도로 공허한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것이다.


13장 애버리저니 : 잊혀진 사람들

 

애버리저니가 6000년(로저 레윈Roger Rewin이 《진화의 원칙》에서 언급한 연도) 전에 도착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유럽인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한 기간은 전체 역사의 0.3퍼센트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99.7퍼센트의 기간 동안은 애버리저니가 오스트레일리아를 온전히 자기들만의 땅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시간 오스트레일리아에 존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한 애버리저니의 또 다른 업적이 나타난다.

애버리저니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것은 물론 단지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들은 대륙을 지배했다. 매우 신속하게 세력을 확대해 가장 습한 우림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에 이르기까지 전 지역의 혹독한 환경을 활용하거나 거기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과 행동 양식을 개발했다. 지구상에서 애버리저니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더 성공적으로 더 다양한 환경에서 거주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애버리저니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일부 사람들, 이를테면 저명한 선사학자 존 멀바니는 오스트레일리아어족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애버리저니의 예술과 신념 체계 그리고 역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손꼽힌다.

 

1960년대까지도 존 필거가 지적했듯이 퀸즐랜드의 학교에서 이용하는 교재는 애버리저니를 "정글의 야생 동물"에 비유했다. 어쩌다 인간 이하로 대접받지 않는 경우에도 애버리저니는 그냥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스티븐 로버츠라는 한 교수가 《오스트레일리아 정착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두툼한 학술 서적을 발표했다. 이 책은 용케도 애버리저니를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고 유럽인의 정착 과정 전체를 조사했다. 이처럼 원주민들은 소외되었고, 그 결과 1967년까지 연방 정부는 그들을 인구 조사에 포함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 같은 이유 떄문에 영국인이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할 무렵 애버리저니가 얼마나 살고 있엇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많게는 100만 명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가장 그럴듯한 추정에 따르면 점령 초기에 애버리저니 인구는 약 3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확실한 사실은 정착이 시작된 이후 한 세기 동안 애버리저니 인구가 십중팔구 5만~6만 명으로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감소는 대부분 우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애버리저니는 유럽의 질병에 저항력이 거의 없었다. 천연두, 늑막염, 매독, 심지어 수두와 약한 형태의 인플루엔자조차도 원주민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이따금 유럽인들은 살아남은 애버리저니들을 가장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대했다.

 

1838년 6월 헨리 댄거의 농장에서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말을 타고 가축 몇 마리를 훔쳤거나 몰아낸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일행은 마이올 강에서 백인 정착민들에게 선하고 평화로운 사람들로 알려진 애버리저니의 야영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이 애버리저니들이 사라진 소와 무관하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햇다. 그럼에도 사내들은 그들(28명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을 큰 공 모양으로 한데 묶어서 몇 시간 동안 마구잡이로 끌고 다녔다. 그리고 느닷없이 무자비하게 라이플총과 칼로 학살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 사건은 으레 벌어지는 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838년 무렵에는 나라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점차 도회적인 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도시 주민들은 무고한 사람을 우발적으로 학살하는 일에 극도로 혐오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때 에드워드 스미스 홀이라는 시드니의 한 기자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피와 정의의 심판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지 깁스 총독은 범법자들을 체포해 재판에 회부하라고 명령했다. 이들이 체포되었을 때 피고 가운데 2명은 진심으로 애버리저니를 죽이는 일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했다.

이후 재판에서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었음에도 배심원들은 15분만에 무죄평결을 내렸다. 그러나 홀과 깁스를 비롯한 도시 주민들은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이윽고 두 번째 재판을 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번에는 7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백인이 애버리저니를 살해한 죄로 처형된 것은 그떄가 처음이었다.

 

"선생님이 아셔야 할 이유는 없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을 겁니다. 마이올 강에 다른 점이 있다면, 백인이 그 사건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래도 애버리저니 살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훨씬 더 용의주도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그러니까 이후로는 적어도 퍼브에서 원주민을 살해했다고 떠벌리지 않았단 얘기죠."

또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약간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마이올이 유명한 것은 흑인이 아니라 백인에게 일어난 일 때문이니까요. 원주민 살해 사건을 모두 기념한다면, 이 나라에서 선생님은 기념관 때문에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다른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 골드코스트를 보셔야 해요. 대단한 곳이죠."

그러면 여러분은 다음과 같이 대꾸할 것이다.

"정말이요? 어떤 면에서 대단하죠?"

"정확히는 모릅니다. 직접 가본 적은 없거든요. 음, 확실히 그러네요. 하지만 그곳은... 영화 <뮤리엘의 웨딩Muriel`s Wedding> 보셨나요?"

"아뇨."

"음, 그거랑 비슷한데. 똑같은데. 확실히."

나는 여러 모로 골드코스트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면에서 실망했다. 우선 그곳은 전혀 시골스럽지 않았다. 또 하나의 규모 크고, 인간미 없고, 설비가 훌륭한 국제적인 휴양지일 뿐이었다. 마르벨라, 에일럿 혹은 지난 25년 동안 개발된 다른 곳과 다르지 않았다. 호텔은 대부분 세계적으로 이름난 곳(메리어트, 래디슨, 머큐어)이었고 예상외로 고급이었다. 나는 옆길에 차를 세워두고 해안까지 길을 따라 걸었다. 도중에 의외로 호화로운 상점들(프라다, 에르메스, 랄프 로렌)을 지나쳤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훌륭했다. 하지만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랄프 로렌 목욕 수건을 보기 위해 1만 2875킬로미터를 여행할 필요는 없다. 

 

 

제3부 변두리를 돌아서


14장 그레이트배리어리프 : 바다의 아마존 우림

 

오스트레일리아가 세계에서 보기 드문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면 열대 퀸즐랜드를 권하고 싶다. 세계문화유산(역사적이나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세계의 유적)으로 지정될 자격이 있는 지구상의 500여 곳 가운데 유네스코의 네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킨 곳은 단 열세 곳이고, 이 특별한 열세 곳 가운데 네 곳(거의 3분의1)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중 두 곳, 그레이트배리어리프와 퀸즐랜드의 열대 습윤 지역이 바로 이곳에 잇다. 이처럼 완벽한 환경이 인접한 지역은 세계적으로 단 한 곳뿐일 것이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이름, 주변 환경, 숙박료만 빼면 모든 변에서 모텔이지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곳이었다. 객실을 배정받은 다음 해안으로 산책을 하러 나갔다. 몇몇 사람이 모래사장을 거닐고 있었다. 그러나 물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엇다. 퀸즐랜드에서는 마린 스팅어marine stinger, 혹은 그냥 스팅어라고도 알려진 상자해파리가 한창 활동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상관없이 이 고통스러운 작은 거품을 무시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해파리가 산란을 위해 해안으로 다가오는 10월부터 5월까지 열대 지방의 해변은 인간에게 무용지물로 변한다. 해변을 바라보며 서 있기만 하다니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앞에는 여느 곳과 다름없는 평온하고 매력적인 만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지구상에 이처럼 즉각적인 죽음을 선사하는 곳도 없다.

 

바로 그 순간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 화들짝 놀랄 만큼 큰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돌연 바람이 몰아치면서 야자수가 춤을 추기 시작하고 빗방울이 몇 차례 후드득 떨어졌다. 이어서 하늘이 열리며 따뜻하지만 온몸을 흠뻑 적시는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는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 해변과 맞닿은 바의 베란다로 피신했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김이 풀풀 나는 셔츠를 쥐어짜고 격렬하게 내리꽂히는 비를 바라보았다. 이런 빗방울처럼 섬세한 것은 없다. 그것은 무섭도록 내리꽂히는 소음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며 떨어지는 물의 결정체였다. 나는 미국 중서부에서 성장한 덕분에 박력 있는 날씨에 친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소의 세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 페이지 하단을 보게"라고 말했다. 그의 눈에 약간 흥분한 기색이 보였다.

나는 무심하게 바라보며 "내일 우리가 가지로 한 곳이군"이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뎅기열이 어떤 병인지 알고 있나? 사람들은 창문에다 판자를 박지. 연락선 옆구리에는 국외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매달려 있고. 거리의 치안을 회복하기 위해 경찰이 사람들에게 총을 쏴야 할 정도야. 이곳에서는 한 지역에서 485건이나 발병했더. 그런데도 신문 하단에 고작 5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기사가 실리다니! 브라이슨, 자네 나를 어디로 데려온 건가? 여긴 대체 어떤 나라야?"

"오, 놀라운 나라지, 앨런."

"하긴 그렇군."

 

어떤 자료를 참고하느냐에 따라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면적은 28만 제곱킬로미터, 34만 4000제곱킬로미터 아니면 그 중간쯤이다. 그리고 길이도 1931킬로미터에서 2575킬로미터까지 다양하다. 어쨌거나 이는 캔자스 주나 이탈리아 혹은 영국보다 큰 면적이다. 배리어리프가 엄청나게 거대하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지만 가장 짧은 거리에서 측정해도 그 길이가 미국 서부 해안과 맞먹는다. 무한한 생물의 서식지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바다의 아마존 우림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는 적어도 1500종의 물고기, 400가지 형태의 산호 그리고 1000여 종의 연체동물이 서식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껏 아무도 포괄적인 조사를 시도한 적이 없다. 지나치게 규모가 큰 작업이기 떄문이다.

 

온통 김이 모락모락 나는 초목으로 뒤덮인 데인트리 숲은 세상이 한 대륙이었던 시대의 잔재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대륙이 갈라져 세상과 떨어진 모퉁이로 떠내려갔다. 그러나 데인트리는 극적인 기후 변화는 물론이고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생태학적 변화와 지질학적 변화를 요행히 모면했다. 그 결과 다른 곳에서는 살아남지 못한 식물이 그대로 존재한다. 1972년 일부 소들이 정글의 낮은 언덕에서 풀을 뜯어먹은 후 원인 불명의 질환에 걸려 목숨을 잃자 과학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우림이 얼마나 오래되었으며 얼마나 독특한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소들은 이디오스페르뭄 아우스트랄리안세라는 나무의 씨앗에 중독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1억 년 전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 이디오스페르뭄이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이었다. 사실 이디오스페르뭄은 같은 과에 속하는 11종의 나무와 함께 데인트리에서 버젓이 번성하고 있엇다. 이들이 속한 과는 모든 화훼식물의 조상인 속씨식물로 식물의 원시적인 전초 기지나 다름없었다. (어둡고, 빽빽하고, 어떤 먼 시대에 속한 것처럼 보이는) 데인트리 국립공원은 바로 이런 곳이다. 나무 사이로 미끄러지듯 날아다니는 익룡이나 바로 앞에 있는 도로를 전력 질주하는 벨로시랍토르(백악기 후기에 살았던 육식 공룡-옮긴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랄지도 모르는 경관이 숨어 있다.


15장 노던테리토리 :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웃사이더

 

노던테리토리는 언제나 일종의 프런티어 정신을 발휘한다. 1998년 이곳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일곱 번째 주 후보지로 선정되었지만 주민들은 국민투표에서 이 제안을 부결시켰다. 그들은 아웃사이더가 되는 편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135만 9800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이 오스트레일리아 안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오스트레일리아의 일부는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노던테리토리의 주민을 포함해 모든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은 법적으로 연방 선거에 참여해 투표를 해야 한다. 그러나 노던테리토리는 주가 아니므로 의회에 의석이 없다. 따라서 이곳 주민들은 캔버라에서 의회 회기에 참석할 대표를 선출한다. 그러나 실제로 투표를 해도 어떤 결과를 성취하지는 못한다. 한층 흥미로운 사실은 노던테리토리 주민들의 표는 어떤 쪽에도 집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냥 서랍이나 다른 곳에 보관된다. 내게는 약간 이상해 보이지만 사람들은 이런 제도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맥주 두 병을 들고 시내버스 정류장의 늙은 여직원처럼 얌전히 구석 자리에 앉아 건장한 두 사내의 풀게임(당구의 한 종목으로 먼저 8개의 공을 포켓에 떨어뜨려 넣은 쪽이 승리함-옮긴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실망스러운 샷을 할 때마다 금속이나 단단한 재질로 된 무언가(당구대, 의자 등판, 탁자 위에서 흔들리는 전등)와 큐가 부딪혔다. 피와 살이 튀기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좀 더 평온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찾아 7층에 있는 옥상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레스토랑에는 공간이 넓고 황혼녘의 다윈을 내려다볼 수 있는 큰 창문이 있었다. 50개는 족히 될 것 같은 테이블 중 손님이 앉은 곳은 고작 서너 군데뿐이었다. 그래서 당장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없다는 여주인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나는 "하지만 사실상 손님이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너무 바빠서요."

그녀는 상황의 긴박함을 강조하려는 듯 획 사라졌다.

 

내게는 '열대'하면 떠오르는 외관상의 필수조건이 있다. 베란다, 미늘창, 화분에 담긴 야자수, 천장에서 나른하게 돌아가는 팬, 알랑거리는 하우스 보이가 건네는 높은 유리잔에 담긴 시원한 음료, 흰색 양복과 파나마모자를 걸친 사나이, 꽃무늬 면 원피스를 입은 여인, 후텁지근한 오후를 소일하기 위한 마작, 섹시하고 의뭉스러워 보이는 시드니 그린스트리트(영국의 배우-옮긴이)와 피터 로어(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미국 배우-옮긴이). 이런 단순하고 이상적인 모습에 미치지 못하는 곳을 만나면 언제나 실망하곤 한다. 그래서 다윈은 모든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공정하게 말하면, 다윈은 지금껏 상당히 시달린 도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에게 연거푸 폭격을 당했고 1974년에는 사이클론 트레이시로 인해 초토화되었다. 그래서 도시 대부분은 신축한 것들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곳에는 기후의 특성을 표현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울런공, 벤디고, 혹은 그 외 적당히 발달한 지방 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한 가지 사소한 특색이 있다면 전문직 종사자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모든 전문직 종사자가 매우 중요한 어떤 임무 때문에 그날 하루 출장을 떠난 것처럼 거리의 모든 사람이 턱수염을 기르고, 문신을 하고, 술에 취한 듯 발을 끌면서 돌아다녔다. 그뿐만 아니라 침울하고 수상쩍은 애버리저니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햇빛 비치는 광장 언저리 여기저기에 앉아 있었다. 앨런이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인출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애버리저니 세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 2명과 여자 한 명이었는데 모두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가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하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눈을 마주치는 데는 실패했다. 그들이 다른 곳에 있거나 내가 투명인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달리는 길(지금도 이따금 트랙track이라고 불린다)은 거의 비어 있었지만 관리를 잘한 직선 도로였다. 시드니나 멜버른 주민 10명에게 다윈에서 앨리스 스프링스까지의 고속도로가 포장되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모를 것이다. 사실 이 길은 대부분의 오지 도로보다 앞서 북부 오스트레일리아가 태평양 전쟁의 주요 무대였을 당시 포장한 고속도로다. 오늘날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점점 증가하는 관광객, 극소수의 지역 주민 그리고 많은 '로드 트레인road train'이 이 도로를 이용한다. 로드 트레인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외딴 변방까지 화물을 운반하는 차량으로, 트레일러를 최대 46미터까지 연결한 트럭을 말한다. 2차선 고속도로에서 전속력으로 여러분을 향해 달려오면서 자기 차로 전체를 차지하는 것도 모자라 여러분 차로의 일부까지 넘보는 로드 트레인을 만나는 것은 분명 스릴 넘치는 경험이리라(로드 트레인이 밀어내는 공기에 부딪칠 때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우아!' 소리, 뒤이어 곧바로 흔들리는 어깨, 치아 충전물을 분해하고 주머니에 든 동전을 날려버릴 만큼 요란한 몇 분 동안의 차축 운동, 모래투성이 붉은 먼지의 치마폭 같은 장막, 날아와 부딪히는 돌멩이 그리고 먼지가 걷히고 앞쪽에 떨어진 커다란 돌을 발견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여러분의 입에서 흐르는 물질, 그런 다음 자동차가 완전히 자기 자리를 찾고 앨리스스프링스로 향하는 길을 계속해서 달릴 때 평온함으로의 갑작스러운 기적 같은 귀환).

 

"내가 실수를 하지는 않았나?"

혹시라도 사각 팬티가 서까래에 걸려 있지는 않은지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한은 안 했네. 당구는 지독하게 못 치더군."

놀라는 기색도 없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금 나는 내 당구 실력을 점검하는 인위적인 수단으로 술을 이용한다. 낯선 사람들이 자기 능력을 확신하고 내 지갑에 손을 대게 만드는 나만의 방법이다.

나는 "다른 건?"하고 재차 물었다.

"내년 여름에 한국에서 온 어떤 가족과 집을 바꿀 예정이라더군."

나는 입술을 오므리며 잠시 생각하고 물었다.

"남한이래, 북한이래?"

"확실히 모르겠네."

"자네 이거 생각나지, 그렇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앨런이 재빨리 손을 내밀더니 내 셔츠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넸다. 명함에는 '박호리Park Ho Lee, 육류 도매업자'라는 글과 부산의 한 주소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는 내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6월 10일부터 8월 27일까지. 문제없음."

나는 명함을 한 번 접어서 재떨이에 놓았다.

"지금 여기서 나갔으면 좋겠는데."

앨런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의지를 발휘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약간 뒤뚱거리며 물건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그를 따라갔다.

10분 뒤, 우리는 앨리스스프링스로 가는 도로 위에 있었다.


16장 울루루 : 오스트레일리아의 팀북투

 

그랬다. 에어스 록의 특징은 마침내 그곳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약간 지겨워진다는 사실에 있다. 바위에서 16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하더라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하루에 그것을 네다섯 번 혹은 대여섯 번씩 볼 수 있다(엽서에서, 여행사 포스터에서, 기념 그림책 표지에서). 바위에 가까워지면 접촉 빈도가 증가한다. 따라서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 1인당 15오스트레일리라달러라는 야심차게 책정한 입장료를 지불한 다음 접근로를 따라갈 무렵이면 이미 사진으로 1000번이나 더 본 거대하고, 생기도 없고, 빵 덩어리처럼 생긴 물체를 보기 위해 2092킬로미터를 달려온 셈이 된다. 그 결과 이 유명한 바위에 다가갈 때 기분은 아무런 기대감 없이 차분해진다(심지어 비관적인 기분이 든다).

그런 다음 바위를 본다. 그리고 즉시 얼어붙는다.

그곳에, 인상적이고 위압적인 공허한 대기 한복판에 보기 드문 고결함과 웅장함의 극치가 자리 잡고 있다. 높이는 약 350미터, 길이는 약 2.4킬로미터, 둘레는 약 8.9킬로미터이며 이미 본 사진만큼 붉은색은 아니지만 지금껏 상상했던 것보다 어느 모로 보나 더 매력적이다. 나는 이때부터 바위에 대해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울루루가 가까워질 무렵 피로감을 느꼈지만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흥분했다고 입을 모았다. 울루루가 예상보다 더 거대했다거나, 더 완벽한 형태였다거나, 혹은 마음속으로 그렸던 인상과 어느 면에서 달랐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것은 예상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여러분은 이 바위를 알고 있다. 달력이나 기념 책자의 표지와 전혀 무관한 방식으로 알고 잇다. 바위에 대한 여러분의 지식은 훨씬 더 기본적인 무언가에 토대를 두고 있다.

본인도 이해할 수 없고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방식으로 그 바위를 알고 있다고 느낀다(친밀하지 않은 친밀함이라고나 할까). 존재의 깊은 내면 어딘가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원초적인 기억의 단편, 끊어진 DNA의 작은 꼬리가 꿈틀거렸다. 이해하거나 해석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움직임이지만 최면 상태에 빠진 듯한 거대한 존재가 종(種)의 단계에서(어쩌면 올챙이 같은 수준의 단계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여러분이 이곳을 찾은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일종의 확신을 느낀다.

 

내가 보기에 앨런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기묘하지, 그렇지?"라고 말했다.

"뭐가?"

"잘 모르겠어. 그냥 이걸 보는 게. 그러니까 그냥 기묘한 느낌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기묘한 느낌이다. 처음 느꼈던 형용하기 어려운 친밀감의 충격은 접어두고 울루루는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모든 게 인상적이라는 사실 또한 기묘하다. 눈길을 뗼 수 없다. 눈길을 떼고 싶지 않다. 가까이 다가가면 한층 더 흥미롭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울퉁불퉁하고 불규칙적인 모양이다. 약 60미터 떨어진 곳에서 보이는 것보다 굴곡과 패인 자리, 물결 같은 가로줄, 온갖 모양의 변형이 훨씬 더 많다. 바위를 여러 각도로 바라보면서도 질리지 않은 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머물 수 있을 것 같다(걱정스러울 만큼 오랜 시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집을 팔고 이곳으로 옮겨와 텐트 속에서 살 만큼 오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은발을 뒤로 묶은 채 눈에 거슬리는 헐렁한 옷을 입고 맨발로 다니는 젊은 관광객과 어울리며 이렇게 말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바위가 매일 다르다는 거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한 번도 같은 모습인 적이 없다는 얘기요. 그렇고, 젊은 양반. 그 지점에다 손가락을 대보시오. 경이롭지 않소? 정말 경이롭소. 그런데 혹시 마리화나나 남은 동전 가진 것 없소이까?"


17장 앨리스스피링스 : 도둑 맞은 세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지금도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 땅덩어리가 너무나 방대하고 건조하고 험난해서 연구하기 어려울뿐더러, 인구 기반이 약해 방대한 땅을 연구하기에는 비교적 과학자가 적고, 무엇보다 이곳에 사는 동물들이 대개 작고 눈에 띄지 않고 야행성인 데다 이따금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야생생물 목록은 언제나 "아마도 멸종했을 것이다", "멸종된 것으로 여겨진다" 혹은 "일부 외딴 지역에서는 살아남았을지 모른다" 같은 제한적인 견해로 끝을 맺는다. 사막캥거루쥐, 일명 울라쿤타의 불확실한 운명을 보면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 흥미로운 생물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대부분 두 사람의 연구 결과 얻은 것이다. 그중 19세기의 동식물학자 존 굴드John Gould가 1843년 울라쿤타에 대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 동물의 겉모습과 행동 방식은 캥거루이지만 크기는 토끼와 비슷하다. 특히 독특한 점은 매우 빠른 속도로 무척 먼 거리를 달린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초기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울라쿤타를 볼 수 없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동물 연대기에는 이 같은 이야기(한순간 존재했다가 다음 순간 사라진 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무수히 많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이런 현상의 희생자는 레오바트라쿠스 실루스라는 개구리였다. 모습을 드러낸 기간이 워낙 짧아 비공식적인 일므을 얻을 겨를도 없었다. 레오바트라쿠스 실루스의 특징은 입으로 살아 있는 새기를 낳는다는 것이다. 국내외 어디서든 자연계에서 결코 본 적이 없는 특징이다. 이 개구리는 1973년과 1981년 생물학자들에게 발견된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는 '십중팔구 멸종된' 종류로 기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다지 큰 기대는 없었는데, 대단히 훌륭했다. 앨리스스프링스에는 기분 좋은 깜짝 선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스쿨 오브 에어는 주택가의 이름 없는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탁자와 벽면에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한 로비, 작은 스튜디오 두 곳, 큰 회의실이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스쿨 오브 에어가 열일곱 군데 있는데, 그중 앨리스스프링스의 이 학교가 할머니뻘이다. 게다가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토요일이라 진행 중인 수업은 없엇지만 무척 친절한 남자가 흔쾌히 안내하며 운영 방식을 알려주었다.

개념은 무척 단순했다. 즉 소 목장을 비롯해 다른 외로운 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정규 교육과 교실 경험의 의미를 제공하는 것이다(1951년부터 이 개념을 성실히 실천하고 있다). 이때 핵심어는 분명 '외로운'이다. 학군의 면적은 117만 제곱킬로미터(프랑스 면적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이 학교에는 유치원과 7학년까지의 학생 수가 140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8~9세 때 이 학교에 대한 영화를 보고 선생님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에 지극히 놀랐던,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고 강렬한 기억이 있다. 각자 마이크와 단파 라디오 세트를 갖고 있었다.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 내키면 쿠키 한 젖ㅂ시를 놓고 벌거벗은 채 앉아 있어도 무방했다. 이 모든 게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 있는 그린우드 초등학교의 억압적인 상황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진보인 것처럼 보엿다. 나는 이후에도 라디오 학습에 대한 로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서 라디오가 차지하는 역할이 아주 작고 부수적인 데 그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실망했다. 스쿨 오브 에어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방송 강좌이며, 이는 그다지 매력적인 방법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곳에는 진정한 매력과 선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게시판은 열한살가량의 아이들이 목장 생활과 그들의 전형적인 일과를 묘사하는 삽화를 곁들인 글로 가득했다. 나는 완전히 몰두해서 모든 글을 읽었다.

택임자가 내게 물었다.

"수업 한 번 들어보실래요?"

나는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나를 옆방으로 데려가 다섯 살 대상 수업의 녹음테이프를 틀었다. 쾌활한 교사가 "안녕, 카일리. 내 말 들리니? 오버!"라고 말하며 출석을 불렀다.

잠시 후, 멀고 먼 은하계에서 보낸 전송처럼 희미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사람의 말이라는 걸 인식할 수 있었으나 너무 불분명해서 해독하기 어려웠다.

"안녕이라고 했단다, 카일리. 듣고 있니? 내 말 들리니? 오버!"라고 말하며 출석을 불렀다.

이번에는 말이 끊어졌다. 한동안 방송이 중단되고 날카로운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얼마 후 이런 소리가 들렸다.

"음, 그럼 개빈을 연결해보자. 안녕, 개빈. 듣고 있니? 오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더 들리더니 작고 희미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스미스 선생님."

수업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떤 목소리는 크고 분명하게 들렸지만 다른 많은 목소리는 희미하게 들릴 듯 말 듯하다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다. 이 내용을 들으면서 내가 사온 작은 책자를 읽었다. 그러다 모든 아이가 하루에 30분(실은 "하루에 최대 30분")만 라디오를 듣고, 일주일에 10분씩 선생님에게 개인 수업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몹시 놀랐다. 나머지 시간에는 부모나 유모의 감독 아래 하루 대여섯 시간씩 일을 하며 보냈다. 학생들은 텔레비전, VCR,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결론을 내리자면, 스쿨 오브 에어는 영원히 1951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진짜 놀라운 사실은 애버리저니 아이들은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사진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노던테리토리 전역에서 애버리저니 인구는 전체의 20퍼센트에 달하며 외딴 오지에서는 비율이 훨씬 더 높다. 나오는 길에 책임자에게 이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아, 몇 명 있습니다. 현재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요. 문제는 유능한 어른이 학생들을 감독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시겠지만."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전 잘 모르겠군요."

"핵심 언어를 구사하고 읽기 능력을 갖춘 믿을 만하고 성실한 어른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애버리저니 부모한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까?"

가지 말아야 할 길로 들어섰다는 듯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닙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항상 그렇지는 않죠."

"하지만 부모가 도울 수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서도 역시 핵심적인 능력을 갖출 수 없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 그게 문제죠."

"그러면 그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겠군요."

"그게 상당히 큰 문제죠."

나는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하나도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거리는 토요일의 쇼핑객으로 붐볐다. 백인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애버리저니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구석진 곳에, 눈에 띄지 않고, 거의 언제나 말없이, 주변을 맴돌며 항상 그곳에 있었다). 백인들은 절대로 애버리저니를 쳐다보지 않았고, 애버리저니들도 백인을 쳐다보지 않았다. 두 종족은 서로 분리되었지만 나란히 있는 우주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두 집단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무척 이상야릇했다.

 

천재적인 두뇌가 아니어도 애버리저니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실패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상 모든 번영과 행복의 지표(입원 비율, 자살률, 아동 사망률, 투옥, 고용 등)에서 애버리저니의 수치는 전체 인구에 비해 두 배에서 최대 스무 배까지 부정적이다. 존 필거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는 선진국 가운데 과립성결막염(흔히 실명을 초래하는 바이러스성 질환) 발생률이 높은 유일한 국가다. 그리고 이는 거의 예외 없이 애버리저니가 걸리는 질환이다. 전반적으로 평범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평균 수명은 평범한 백인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보다 20년(20년!) 짧다.

 

'도둑맞은 세대'는 정부가 애버리저니 아이들을 부모와 지역 사회로부터 물리적으로 격리시켜 가난과 불이익에서 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도한 실험이었다. 실제 숫자는 알 길이 없지만 1910년부터 1970년까지 10분의 1에서 3분의 1에 달하는 애버리저니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양육 과정이나 주립 훈련 센터에서 자랐다. (당시에는 상당히 진보적으로 여겨졌던) 이 개념은 백인 사회에서 한층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서 가장 놀라운 요소는 이런 시도를 허용한 법적 메커니즘이었다. 1960년대까지 오스트레일리아 대부분의 주에서는 애버리저니 아이들의 양육권을 부모가 아니라 주가 소유하고 있었다. 주에서 적절하다고 여기는 근거만 있다면 아무런 설명이나 사과도 없이 언제든 아이들을 집에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는 나를 위해 가져온 인권위원회 보고서 요약본을 건넸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에 제임스 이스델James Isdell이라는 순회 조사관이 쓴 글을 보여주었다. 이스델은 아이를 잃은 부모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순간적인 슬픔이 아무리 극심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곧 아이들을 잊을 것이다."

브룩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원주민 부족이 정상적인 인간의 감정에 다소 면역성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절망적인 사고방식에 질린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대개 부모들이 죽었다고 말했답니다. 이따금 부모가 그들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것이 아이들이 적응하도록 돕는 그들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슬픔으로 말미암은 알코올 중독, 자살의 급격한 증가, 그런 류의 온갖 일들이 일어났죠."

"아이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이들은 16~17세까지 보호를 받은 뒤 지역 사회로 돌아갔죠. 그들에게는 도시에 머물며 피할 수 없는 편견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든지, 아니면 전통적인 지역 사회로 돌아가 이제 더 이상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기억도 나지 않는 생활 방식을 다시 시작할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역기능과 해체의 상황이 이런 제도를 낳았습니다. 하룻밤 만에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혹자는 아이들을 격리시킨 게 소수의 원주민 가족에게만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그 제도로 인해 지대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가족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더욱 비극적인 것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죠. 아이들을 데려가면서 오히려 관계의 지속성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 관행을 멈춘다고 해서 모든 폐해가 마법처럼 복구되고 만사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는 상당히 많은(혹은 이전과 비교했을때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애버리저니 사회에 많은 구역의 땅을 환원했다. 울루루를 애버리저니 소유로 돌려주었다. 학교와 병원에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지역 사회 프로젝트를 장려하고 중소기업 창립을 돕기 위해 일반적인 이니셔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가운데 어떤 조치도 통계상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일부는 실제로 상황을 악화시켰다. 20세기 말까지도 감염성 질환으로 사망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애버리저니는 백인보다 열여덟 배나 많으며 폭력 사태로 말미암은 입원 사례도 열일곱 배나 많다. 사망 원인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출생 시 사망하는 애버리저니 아이들의 비율은 백인에 비해 두 배에서 네 배 더 높다.

무엇보다 외부인이 보기에 가장 이상한 점은 애버리저니가 '이곳에' 없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에서 연기하는 애버리저니를 볼 수 없다. 상점에서 근무하는 애버리저니를 볼 수 없다. 지금껏 의회에서 활동한 애버리저니는 단 2명뿐이다. 각료를 지낸 애버리저니는 전혀 없다. 원주민 부족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1.5퍼센트에 불과하며 대부분 시골 지역에 거주한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다수의 애버리저니를 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다만 은행에서 일하거나, 우편물을 배달하거나, 주차 위반 딱지를 작성하거나, 전화선을 수리하거나, 정상적인 직업 세계에서 생산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그들의 모습을 '이따금'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본 적이 없다. 한 번도, 어떤 관계도 형성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토드 스트리드 몰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기저기 섞여 있는 사람들(토요일을 맞아 미소를 지으며 경쾌하게 걷고 있는 행복한 백인 쇼핑객, 원인 모를 붕대를 감고 천천히 건들거리며 하릴없이 걷고 있는 유령 같은 애버리저니)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룩한 전반적인 풍요로움의 결실을 그 풍요로움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확산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전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만약 내게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에 애버리저니 문제에 대한 조언을 제공할 권리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더 많이 하라, 더 열심히 노력하라. 지금 시작하라."

나는 독창적이거나 유익한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 채 몇 분 동안 가만히 앉아 이 가엾은 소외층이 지척거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백인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더 이상 그들을 보지 않았다.


18장 퍼스 : 거인들의 계곡

 

퍼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부터 모든 기쁨이 시작된다. 퍼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외딴 대도시에서조차 멀리 떨어져 있다. 시드니보다는 싱가포르에 더 가깝지만, 사실 이 두 도시하고도 그다지 가깝지 않다. 뒤로는 약 2736킬로미터 떨어진 애들레이드까지 활기라고는 전혀 없는 붉은 황무지가 펼쳐져 있다. 앞으로는 아프리카까지 약 8047킬로미터 내내 특색도 없는 푸른 바다뿐이다. 지유 사회의 구성원 130만 명이 왜 이처럼 고독한 변방에서 살기로 선택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그러나 기후가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퍼스의 날씨는 아름답다. 무엇보다 온화하다(집배원으로 하여금 휘파람을 불게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그런 날씨다). 건축학적으로 퍼스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그냥 넓고, 깨끗하고, 현대적인 도시다). 다운언더의 미니애폴리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밝고 선명한 빛 덕분에 아름다운 도시다. 퍼스보다 고층 건물에서 반사되는 햇살이 더 맑고 하늘이 더 푸른 도시는 아마 없을 것이다.

 

바깥세상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오스트레일리아가 인구 비율로 계산할 때 가장 많은 인명을 잃었다는 사실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이 책에서 적어도 한 번쯤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상자는 5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인구 중 21 만 명(사망 6만 명, 부상 15만 명)에 달했다. 군인들의 사상자 비율은 65퍼센트였다. 존 필거의 표현을 빌리면 "그처럼 먼 곳에서 파견된 군대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만큼 많은 사상자를 낸 군대는 없었다. 그리고 전원이 자원병이었다." 며칠 전 한 주말 신문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다룬 영국 역사학자 존 키건John Keegan의 책에 대한 리뷰를 읽었다. 그런데 리뷰어는 500페이지에 달하는 그 책에 오스트레일리아 군대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가엾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 다른 나라들은 무명의 용사를 만들고, 오스트레일리아는 무명의 군대를 만든다(몇 주 후 런던에서 키건의 책을 살펴봤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군대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렇다. 즉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무시당할 것이라고 기대한 나머지 무시당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이따금 무시한다는 것이다).

어스름한 길을 지나자 한층 상쾌하고 양지바른 식물원 구역이 나왔다. 나는 특별한 애정을 품고 식물원으로 향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물은 독특하다. 게다가 식물원보다 더욱 근사하게 전시한 식물을 볼 만한 곳은 없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경이로울 만큼 풍성한 나라다. 약 2만 5000종의 식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비교하자면 영국에는 약 6000종이 있다) 그야말로 추정일 뿐이다. 야생 식물 가운데 적어도 3분의1은 이름을 붙이거나 연구한 적조차 전혀 없다. 대부분 예기치 않은 곳에서 항상 새로운 식물이 등장한다. 예컨대 1989년 시드니에서 과학자들은 알라카수아리나 포르투엔시스라는 완전히 새로운 종의 나무를 발견했다. 그 나무 주변에서 사람들이 200년 동안 거주했지만 개체 수가 많지 않아(지금껏 단 열 그루가 발견되었다) 그 이전에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1994년 블루마운틴 산악 지대에서 몇몇 식물학자가 산책을 하던 중 오래전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 희귀한 잔류종을 우연히 발견햇다. 윌레미소나무라는 이 종은 풀숲에 숨어 있는 관목이 아니라 높이가 약 40미터, 둘레가 약 3미터나 되는 탄탄하고 당당한 나무엿다. 조사해야 할 땅은 무척 많고 답사할 식물학자는 극소수이기 때문에 땅과 학자라는 두 요소가 서로 만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 외에 과연 무엇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물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매우 흥미진진한 장소다. 영국, 독일, 미국에서도 산꼭대기에 있는 새로운 지의류나 과거엔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끼의 후손을 발견하는 큰 행운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숲 속으로 거닐어보라. 그러면 대여섯 종은 이름 없는 야생화, 쥐라기의 속씨식물 숲 그리고 10킬로그램짜리 금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과학계에 몸담고 있다면 어디에서 일해햐 할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과 관련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은 대개 생명체에 유난스러우리만큼 적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어찌해서 이처럼 풍부한 생명체를 갖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척박한 토양에서 해답의 절반을 찾을 수 있다. 온대 기후에서는 대부분의 식물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번성할 수 있다(참나무는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도 오리건 주에서 못지않게 풍성하게 자랄 수 있다). 그래서 비교적 소수의 가장 일반적인 종이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척박한 토양에서는 식물들이 분화할 수밖에 없다. 특정한 종의 식물이 예컨대 다른 식물은 싫어하는 니켈 농도 높은 토양에 적응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구리를 견뎌내는 식물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니켈과 구리, 어쩌면 장기간의 가뭄을 견디는 법을 터득한 식물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몇 백만 년이 지나면 결국 매우 다양한 식물로 가득한 환경이 형성될 것이다. 이들 식물은 제각기 독특한 환경을 좋아하고, 다른 식물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는 땅의 주인이 된다. 분화된 식물로 말미암아 분화된 곤충이 등장하고 이런 과정이 먹이사슬 전체에 확산된다. 그 결과 표면상으로는 생명체에 적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이로울 정도로 다양한 지역이 탄생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다양성에서 더욱 뚜렷한 두 번째 요소는 고립이다. 5000만년 동안 섬으로 고립된 덕분에 수많은 경쟁을 거쳐 고유한 생명체를 보존하고 그중 일부(식물계에서는 유칼립투스, 동물계에서는 유대류)가 독특하게 번성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종의 다양성이라는 특면에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는 오스트레일리아 '내부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고립니다. 일반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는 거대한 불모지에 의해 분리된 채 여기저기 산재하는 생명체의 집단으로 구성된다. 데이비드 애튼버러는 《식물의 사생활》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한쪽 귀퉁이에 "최소한 1만 2000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중 87퍼센트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자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발견자인 조지프 뱅크스의 이름 따서 지은 뱅크시어는 아마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꽃일 것이다. 약간 이상하게 생기기는 했지만(찝찝하게도 화장실 솔처럼 생겼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눈에 잘 띄고 같은 종류만 모여 핀다는 이유로 이 꽃을 사랑한다. 따라서 뱅크시어 7종이 멸종 위기 생물 목록에 올라 있으며, 야생 상태에서는 몇 년 내에 멸종할 것이라는 내용을 읽었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 그 외에도 12종의 식물이 위협을 받고 있다. 내가 선천적인 비관주의자이기 떄문이겠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여행은 볼 수 있을 때 보기 위한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은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식물이 발견도 하기 전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진정으로 운 좋은 국가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1950년대와 그 이후 이 나라의 광물 발견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라. 그때까지만 해도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거의 모든 자연 자원이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일례로 철광석은 공급량이 매우 부족해서 20년 동안 철광석 수출이 불법이었다. 그런데 1952년 랭 핸콕이 중대한 발견을 했다. 그는 경비행기를 타고 북부 해안 근처 해머슬리 산맥 상공을 비행하던 중 돌풍이 일어나는 바람에 방향을 잃고 평평한 암석 지대에 불시착했다. 지질학계에서 웨스턴 실드Western Shield라고 일컫는 암석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그는 발아래 보이는 것이 순수한 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자세히 살펴보니 길이가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의 순수한 철광석 덩어리였다. 1950년에만 해도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철광석 보유량은 1960년 들어 200억 톤으로 껑충 뛰었다. 1960년대 말까지 핸콕이 보유한 철광석은 미국과 캐나다를 합친 양보다 많았다. 무진장 많은 철광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햇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계속해서 전국적으로 광석(보크사이트, 니켈, 망간, 우라늄, 구리, 납, 다이아몬드, 주석, 아연, 지르콘, 금홍석, 티탄철석, 그 밖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광석) 매장물이 발견되었다. 광업 소유권을 보유한 사람들은 거의 하룻밤 만에 가늠하기조차 어렵고 다 슬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투자자들이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몰려들면서 주식 시장이 과열되었다. 시드니에서는 한 중개인이 새로운 발견 소식을 지속적으로 보고받다 한쪽 귀(한쪽 귀!)를 잃을 정도였다. 격동의 시기였다. 그 결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운명이 바뀌었다. 조용하고 온화하던 양모 생산업자가 광업계의 거물이자 세계 최대의 광석 수출업자로 변신했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엄청난 발견이 이루어질 때마다 주도(州都)인 퍼스에 대부분의 부가 축적되었다. 바로 이 때문에 그 많은 고층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바 여종업원이 "선생님,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예. 그런데 왜?"라고 대꾸했다.

"선생님 얼굴을 보셨나요?"

나는 그녀의 말뜻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햇볕에 그을렸나요?"라고 애처롭게 물었다.

그녀는 동정하듯이 하지만 몹시 재미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 뒤에 있는 거울을 힐끗 쳐다보았다. 나와 똑같은 옷을 차려입고 나를 돌아보는 사람은 미스터 토마토 헤드Mr. Tomato Head라는 만화 캐릭터였다. 한숨이 절로 나왓다. 앞으로 나흘 동안 나는 웨스트옷스트레일리아의 모든 노인에게 걱정의 원천이 되고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는 즐거움의 원천이 될 것이다. 또 다음 사흘 동안은 피부에 각질이 일어나 벗겨지면서 나병 요양소에서 방금 도망쳐 나온 사람의 몰골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 대한 공포와 혐오 때문에 웨이트리스들은 쟁반을 떨어뜨리고, 얼간이들은 가로등에 부딪칠 것이다. 나를 지나칠 때마다 앰뷸런스 운전기사들은 서행을 하면서 세심하게 훑어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련의 연속일 것이다. 가벼운 고통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이미 경증 환자였다. 발과 다리가 너무 아파 더 이상 쓸모가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거리의 소년들처럼 더러웠고, 땅에 묻혀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쇠약했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사실 그리 보고 싶지도 않았던 집을 보았고 너무 지친 나머지 살펴보지도 못할 곳까지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괜찮았다. 왜 그런지 알고 있는가? 단공류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때의 전율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기운을 내면서 맥주를 비우고, 바 의자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군중을 헤치고 도시로 나를 태워다줄 택시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이런 경험이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의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것은 땅으로 내려와 '고대 제국Ancient Empire'이라는 구역을 거닐고 난 이후였다. 이 구역에는 똑같은 숲의 다른 부분을 가로지르는 매력적인 큰 고리 모양의 보호용 판자 산책길이 있었다. 트리 톱 워크에 버금갈 정도로 나름 신나는 길이었다. 그러나 판자 산책길은 그다지 높거나 신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완전히 혼자였다. 그러나 으레 그랬던 것처럼 고독을 느껴서 흐뭇하기보다는 갑자기 무척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여러분, 내려와서 여기 좀 보세요! 근사합니다. 내려와서 나랑 함께 있어요! 제발!"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대신 오랫동안 얌전히 둘러보았다. 잠시 쓸데없는 상념에 젖어 있다 문득 이 숲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적절히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숲과 수목의 관계는 찰스 킹스포드 스미스와 비행, 혹은 애버리저니와 선사 시대의 관계와 같았다. 사람들이 까닭 없이 무시하는 것들 말이다. 어쨌든 이 제한된 구역에 오스트레일리아 바깥세상에서는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거대한 나무들이 독특하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숲을 이룬다는 사실이 경이로워 보였다. 이런 못브이야말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기적으로 가득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


19장 샤크 만 : 진정한 시간 여행으로의 초대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본질적으로 원시적인 생물이라 일정한 모양조차 없다. 말하자면 흐물흐물하다. 해안에 가까워지면 약간 물결치는 거대한 발판 모양을 이루었다(마구잡이로 깐 오래된 아스팔트처럼 보인다). 해변에서 멀어지면 무척 큰 쇠똥이나 어쩌면 배변 때문에 특히 어려움을 겪는 코끼리의 배설물을 연상케 하는 덩어리로 분리되었다. 책에서는 대부분 곤봉 모양이나 꽃양배추 모양, 심지어 둥근 기둥 모양이라고 묘사한다. 사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특징이나 광택이 없고 형체도 없는 회색 덩어리다.

인정하건대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모양을 형성하는 광경은 그리 멋있고 인상적이지 않다. 여러분이 난생처음 살아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 무리를 보면 곧바로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호의적이고 희미한 어조로 "으음"이라고 내뱉을 게 분명하다. 보기보다는 맛이 좋지만 하나를 더 시킬 만큼 훌륭하지 않은 카나페canape에 대한 반응과 비슷하다.

스트로마톨라이트가 흥미진진한 것은 그 모양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담긴 개념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독특하다. 상상해보라. 여러분은 지금 살아 있는 바위를 보고 있다(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유기적 구조를 그대로 복제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생물이다). 이를테면 지구가 탄생하던 순간으로 4분의 3 정도 거슬러 올라간 35억년 전의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흥미진진하지 않다면 무엇이 흥미진진할지 나는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고생물학자 리처드 포티는 이렇게 묘사했다.

"이것은 진정한 시간 여행이다. 그리고 세계의 불가사의에 비교하자면 기자Giza의 피라미드와 견줄 만하다."

지당한 말씀이다.

 

큰 여행을 끝낼 떄마다 나를 압도하는 우울한 심정으로 운전을 했다. 하루 이틀 후면 뉴햄프셔로 돌아가고, 이 모든 경험은 디즈니 영화에서처럼 내 머릿속의 먼지 나는 다락방으로 직행해 반세기 동안 혼란스러웟던 삶의 우스꽝스럽고 뒤죽박죽인 축적물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음, 빅 로브스터를 봤던 곳 이름이 뭐였더라?"

"내가 태즈메이니아에 안 갔다고? 확실해?"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몰라. 미안해, 전혀 생각이 안 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여전히 삶이 계속되는데, 전혀 그 소식을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특히 우울했다. 핸콕의 재산을 누가 차지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남겨진 가엾은 미국인 부부에게 일어난 일의 전모를 밝혔는지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중국 이주민들이 어쩌면 해안에 도착해 택시를 부를지도 모르는데 결코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악어가 공격하고, 산불이 급속히 번지고, 총리들이 수치스럽게 떠나고, 놀라운 것들이 사막에서 발견되었다가 어쩌면 다시 잊힐지 모르지만 이 모든 소식이 내 귀에는 닿지 않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삶은 계속되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다. 일단 오스트레일리아를 떠나면 오스트레일리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나 이상하고 슬픈 일인가.

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대부분 공허하고 무척 멀리 떨어져 있다. 인구는 적고 그렇기 떄문에 세계에서 이 나라가 맡은 역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쿠데타나 무모한 남획, 혐오스러운 무장 독재자도 없다. 위험할 정도로 많은 양의 코카나무를 키우거나 경솔하고 꼴사납게 완력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우며 선한 나라다. 주시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우리는 주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손해 보는 쪽은 우리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흥미로운 곳이다. 참으로 흥미롭다. 내가 할 말은 이것뿐이다.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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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 케냐에서 발견한 아프리카의 맨얼굴, 그리고 몹쓸 웃음 빌 브라이슨 시리즈 2
빌 브라이슨 지음, 김소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121쪽의 얇은 책이다. 중간 중간 케냐 사진이 등장하기 떄문에, 본문은 더 짧다. 일단 집어들면 쉬지 않고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다. 

 

국제적인 빈민구호 단체 CARE. 처음 들어보는 단체였는데 한국 지부는 없다고 한다. 여기에서 일하는 한 젊은이의 부탁으로 빌 브라이슨은 케냐를 방문하게 된다.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여행기를 재미있게 쓰는 작가일 것이다. CARE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가장 재미있게 여행기를 쓰는 생존 작가' 혹은 '세상에서 가장 해박한 관광 가이드'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빌 브라이슨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홍보해 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빌 브라이슨 역시 자신의 아들뻘되는 젊은이들의 기특한 마음에 보탬이 되고자 했을 것이다.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의 다른 여행기와는 상당히 느낌이 다르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이나 <나를 부르는 숲>처럼 읽다가 숨 넘어갈 정도로 웃을 수는 없다. 그의 전매 특허인, 유머 감각은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 부분은 열 손가락도 아닌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이 책은 어느 정도 목적을 띄고 있으며, 그 목적이란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도전이며 유일한 과제인 사람들의 실상을 보여주고, 그들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민, 에이즈, 기근, 가난, 환경 파괴 등 아프리카 대륙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빌 브라이슨은 8일간의 케냐 방문을 통해 담담히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참담하지만, 빌 브라이슨은 신파에 빠지거나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지 않는다. 다만, 해답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케냐 사람들과, 구호단체를 통해 그들이 어떤 도움을 받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냉정한 독자의 마음까지 녹인다.

 

여행기, 과학 교양서, 어린 시절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마다 매번 빛을 발했던 그의 글솜씨는 여기에서도 빛난다. 날카로운 유머를 구사하는 그의 전작들을 떠올려보면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 책에서의 그의 태도는 진지하고 시선은 따뜻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종류의 책 중 가장 내 마음을 움직였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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