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든, 여자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
박금선 지음 / 갤리온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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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엄마 딸 며느리 생활인으로서 살아온 저자가 동시대 여자들에게 전하는 위로.
나와 타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들은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세상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라고, 맘껏 즐기라고 조언하지만 닥치는 일은 매번 내가 좋아하는 일일 수 없고, 늘 즐기며 할 수도 없어서 '나는 왜 여기, 이 자리에 있나'를 끊임없이 묻게 한다. 그런데 나는 즐기며 하는 일의 힘도 믿지만 청취자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억지로'하는 일의 힘도 믿게 되었다. 어쩔 수 없어서 억지로 하는 일이라도 마음을 실으면 그 일은 다른 방향으로 덩굴을 뻗어 가기도 한다. 그래서 즐기며 기꺼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나를 데리고 가기도 한다. 또 즐기며 기꺼이 일을 하기 위해서 당면한 일을 억지로 먼저 해내야 하는 순간도 적지 않다. 그런 때 당장은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결국은 나를 키울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 힘든 오늘을 건너가기가 좀 나아지기도 했다.


‘나이롱’은‘ 진짜가 아니야.’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도‘ 나이롱’이다. 글을 씁네 하면서 치열하게 쓰지도 못하고, 게으름을 부리고, 찬란한 소재와 주제를 찾아내지도 못하니 나이롱 작가다. 엄마 역할, 마누라 역할, 딸 역할, 며느리 역할을 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충 흉내만 내며 살았다.
그러나 나이롱인 나는, 그래도 위안을 찾는다. 나이롱은 보통 질긴 게 아니다. 불에 닿아 구멍이 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선 해지지도 않는다. 색이 바라고 보풀이 일어 흉해질지언정 꿋꿋하게 버틴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질기게만…. 색이 바란 채, 보풀이 인 채 나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좋은 작가가 되는 꿈, 좋은 엄마가 되는 꿈, 좋은 배우자가 되는 꿈. 나는 아직도 낡은 꿈들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다. 나이롱이니까 나일론 같은 정신으로 버티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생활인이라고 생각해. 예술을 하려고 하지 말고 생활인으로 열심히 원고를 쓰고 고료를 받아. 우리는 생활인이야.”
생활인으로 산다는 것을, 버거운 야망을 갖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생활인으로 산다는 것을, 웬만한 건 참아 넘긴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생활인으로 산다는 것을, 아직 그만둘 때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구질구질한 일도 경험하고 치사한 일도 참아 내며 사는 내가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비루하기도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지 않던가. 남들처럼 사는 나의 이름 생활인. 나는 그 이름이 좋아졌다.

내가 만난 청취자들은 마음을 잘 관리하는 지혜를 보였다. 있는 자리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 난관을 무사히 헤쳐 나가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분들의 삶의 지혜를 짐작은 하겠는데,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남긴 표현을 만났다.
“사람들을 돕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거기다가 이 말을 덧붙였다.
“다른 수단은 다 환상이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을 돕는 진짜 방법은 없다고 본 것이다.

조금 살아 보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안 되는 일을 놓아 버릴 줄 아는 것도 용감한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포기는 포기하지 않을 때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포기란 나의 한계를,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고 초라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를 잘하면, 나를 괴롭히던 고집과 욕심과 허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조금 더 현명해진다.

아기와 함께 지내는 건 기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민도 많아지는 일이다. 늘어진 끈으로 머리를 질끈 묶다가 거울 속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에 속이 상한다. 잘나가는 골드미스 친구의 전화라도 받으면 하루 종일 심란하고, 부잣집에 시집가서 육아도 폼 나게 하는 친구를 보면, 그게 꼭 부러워서는 절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배도 아파 온다. 그러다 보면 ‘나라는 여자는 어디로 간 걸까….’ 하는 푸념이 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 <여성시대> 인생 선배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양보와 희생이, 인생을 한꺼번에 제일 많이 배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동안 학습이나 연애에서 한 번에 진도 팍팍 나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므로 육아를 통해 인생 진도를 팍팍 나가는 중이라고 좋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유아기 자녀에게 매달려 꼼짝도 못하는 이 시기를,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짧은 기간 내에 압축해서 배우는 ‘일류 코스’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게 멈춘 듯한 시간들도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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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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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대한, 환자에 대한, 삶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를 15도쯤 바꾸어 놓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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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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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까지 생각했어
결혼은 사랑의 최대치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완성 또는 성공적인 종착지일까? 그렇게 믿지는 않게 되었지만 나도 결혼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딱히 누군가를 너무 깊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생각했다. 20대 때만 해도 몇 년 뒤 나의 미래를 그려볼 때 결혼한 모습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혹은 미디어세서 접하는 30대 중후반 이상 여성들의 모습이 대부분 결혼한 사람들이었던 영향이 컸다. 선생님, 대통령, 외교관... 아는 직업이 몇 안 되던 어린 시절의 장래 희망이 늘 그것에 머물 듯 20대까지는 상상력이 단조로웠고, 보편적으로 많이 보아온 모습처럼 나도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릴 때만 해도 연애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대부분의 기간에 누군가를 사귀고 있었으니 적당한 나이가 되면 그중 한 사람과 자연스럽게 결혼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결혼을 생각해보는 건 관계의 깊이나 애정의 정도와는 별개로,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된 결과에 가까웠다.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도 이 사람과는 결혼하면 어떨까 상상해보고, 사귄 지 석 달 밖에 안 된 남자친구와도 얘랑의 결혼 생활은 어떨지 상상해보곤 했다.

동거인의 부모님을 가끔 만나 함께 식사하곤 한다. 두 분은 혼자 사는 딸이 마음 쓰였었는데 이제 옆에 내가 있어 든든하다고 말씀하신다. 별 얘기를 하지 않아도 어머니 말씀에 호응하며 장단을 맞춰드리거나,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잔을 부딪치거나 하는 것으로 나는 그 자리에 초대된 몫을 다한다. 두 분을 보며 동거인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 공통점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꽤나 즐겁고 따뜻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구워주시는 고기를 먹고, 채워주시는 맥주를 마시고 돌아와 시간이 흐르면 두 분이 궁금하고 보고 싶어져서 안부를 묻게 된다. 그 댁에 가서 과일을 깎거나 설거지를 할 필요도, 나아가 효도를 고민할 부담도 없다. 밥해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우리 엄마는 우리 집의 요리 담당인 내가 야근을 하거나 장기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제일 먼저 동거인의 식사부터 걱정한다. “하나 혼자 밥은 우짜노?” 이렇게 관계에서의 의무는 지지 않지만 자식의 옆에 있어주어 든든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위치라면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는 일도 얼마나 산뜻하고 가뿐할까?


자취는 언제 독신이 되는가
나의 경우,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격년에 한 번씩 1월1일에 수건을 일괄 교체하고 있다. 세수 수건 열 장, 큰 목욕 수건 두 장, 색깔은 흰색으로 통일이다. 연말에 미리 사두었다가 1월 1일이 되면 수세미, 샤워볼, 칫솔, 비누, 부엌 리넨 등등과 함께 한꺼번에 교체한다. 원래 쓰던 물건들은 청소용으로 쓰거나 버린다. 수건 열두 장을 사는 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하다(그렇기 때문에 로고를 찍어 기념품으로 그렇게들 많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색깔과 크기가 통일된, 보드라운 수건 열두 장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쓸 때마다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선반을 열 때마다 반듯한 생활이 시각적으로 증명된다.


싸움의 기술
나중에 심리학에서 나 같은 사람의 애착 관계 형성 양상을 회피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걸 알았다. 공격적으로 말하기보다 부드럽게 둘러서 애기하고, 마찰이 생길라 치면 상황을 외면해버리기에 독립적이고 쿨해 보이는 이런 사람들은 실은 비겁한 부류다. 실망하기 싫어서 기대하지 않은 척하고, 부딪치기 싫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척하는. 인격이 성숙해서 잘 안 싸우는 사람이 전혀 아니라, 오히려 미숙해서 잘 못 싸우는 사람에 가까웠던 거다. 다투더라도 기분이 상했을 때 내 집으로 돌아와 동굴 같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함께 사는 사람과 싸운다는 건 도망칠 곳이 없어진 거다. 지금까진 누구와의 갈등도 이렇게까지 깊게 제대로 해결할 필요까진 없었다면 이제 절벽을 뒤에 둔 느낌으로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 제대로 잘 싸워야 한다.

이 싸움의 목적이 뭔지 생각해본다. 나의 가장 잘 드는 무기를 찾아 쥐고 한 번에 숨통이 끊어지게 적의 급소에 꽂는 것인가?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흠씬 두들겨 패서 밟아버리는 것인가? 함께 사는 사람,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의 싸움은 잊어버리기 위한 싸움이다. 삽을 들고 감정의 물길을 판 다음 잘 흘려보내기 위한 싸움이다. 제자리로 잘 돌아오기 위한 싸움이다.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
그렇게 용건만 간단했던 엄마와의 통화가 요즘은 조금씩 길어지는 중이다. 뭔가 보낸다고 하면 그러지 말라고 사양부터 하고 보던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엄마가 보내준 연근장아찌를 하나가 잘 먹더라, 총각김치가 있으면 좋겠다 하며 뭔가 요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혼자의 식탁은 효율성과 편의를 우선으로 꾸려진다. 삶은 달걀 한두 개에 사과나 고구마 같은 걸로 때우기도 하고 햇반을 데워 레토르트 카레와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비롭게도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부지런할 수 있는 존재다. 누군가와 함께 먹을 식사를 차린다면, 무슨 힘에선지 국이라도 하나 끓이고 더운 찬이라도 한 가지 볶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이 살면서 집에서 식사를 준비해서 먹는 횟수는 엄청나게 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출근한 다음 집에 혼자 남은 동거인이 식사는 잘 했는지, 혼자 굶지는 않았는지, 라면으로 대충 때우지는 않았는지 자꾸 궁금해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음식이란 단지 가족을 위한 희생만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즐거움이고, 부엌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고도의 경영이자, 무뚝뚝한 자식과 대화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음식을 싸주고 먹이는 대상이 늘어날수록 엄마의 세계도 함께 넓어져왔다. 그리고 이제 그 세계에는 나의 동거인도 포함된다.


500원짜리 컨설팅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말이 성립하는 건 당연하게도 그게 내 일이 아니라서다. 거리를 두어야 눈에 들어오는 형체가 있고, 너무 뜨거울 때는 삼키지 못하는 덩어리들이 있으니까. 남의 연애에는 서두르지 말라든가 미련을 버리라든가 잘도 충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막상 모두 사랑의 달인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컨설턴트가 필요하다.

사실 가장 든든한 건 이 컨설턴트가 그 어떤 경우에도 보여주는 나에 대한 믿음이다. 내가 충분히 능력이 있고, 성실한 품성을 지녔고, 전력을 다해 스스로를 발전시키려 한다는 그런 믿음은 아주 가끔 내 자존감이 쪼그라들 때조차도 티 없이 단단해서, 계속해나갈 힘을 준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나 역시 동거인에 대해 그런 신뢰를 갖고 있다.


우리의 노후 계획: 하와이 딜리버리
이날, 그러니까 2017년 2월 28일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성실하게 음악을 올렸다.

하루에 한 곡씩 노래를 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효과를 발휘한다. 서로가 고른 곡을 들으며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고, 같은 음악 리스트를 공유하며 다른 장소에 있어도 비슷한 시간의 결을 쌓는다. 하루 한 곡씩의 대화와도 같다.
2019년 1월 27일 현재 하와이 딜리버리 트위터 계정의 칼로워는 7063명이고 667곡이 쌓여 있다. 나름대로 팬도 많다. 하와이 딜리버리의 음악 리스트는 집 청소를 하거나 드라이브를 하거나 술을 마실 때 BGM으로 깔면 진가를 발휘한다.

많은 곡들이 어딘지 모르게 바닷가를 연상시킨다. 얼마 전 우리 하와이 딜리버리 듀오는 하와이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 열쇠고리도 가져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매일 리스트에 올릴 음악을 한 곡씩 선정해서 더할 때마다 언젠가 부산 또는 어딘가의 바닷가에 생길 흥 나는 술집을 떠올려본다. 서울의 일상에 한 곡 분량 정도의 바다가 끼어든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때마다 그 미래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찌 보면 이것도 우리의 노후 계획이다. 사람들은 연금보험, 부동산, 자식에게 투자 등 각자의 방법으로 노후를 준비한다. 우리는 하루에 한 곡씩 음악을 쌓으며 노후를 그려본다. 그 술집이 실제로 생기든 그렇지 않든, 매일 그곳을 그려보며 즐거워하고 있으니 이미 남는 장사다.


결혼하기 전, 나는 직장 문제로 혼자 살았던 적이 있다. 퇴근 후 어두워진 길을 걸어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온 집안의 불을 환하게 켜는 게 일이었다. 가족들과 살 때에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혼자 살면서부터는 불을 켜 놓은 상태로 잠을 자게 되었다. 그때 나를 사로잡은 정서는 외로움보다는 무서움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이 우주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무서움,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움, 이렇게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다니 아예 말하는 법을 잃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무서움, 이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잊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무서움... 혼자 있다는 것은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상상들을 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북적거리는 집에서 독립하여 나 혼자 마음대로 생활하는 것은 분명히 매력적이었다. 한때는 평생 이렇게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그 오래된 명제를 실감하듯 몇 년 만에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결혼에 이르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라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이유가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사람마다 이유의 수도, 이유의 비중도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에 가장 큰 이유는 평생을 혼자 살 수 없다는 이유였다. 물론 그 이유를 빼고도 다른 수많은 이유들 때문에 결국 지금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타임머신을 탄다면 20대의 나에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한번쯤은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초조해할 필요 없다고.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삶의 형태란 이렇게나 다채로울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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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생 - 죽음 이후의 삶의 이야기, 개정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최준식 옮김 / 대화문화아카데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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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지 실망이 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고 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좀 더 울림을 주려면 이보다는 깊이가 필요하다.

수능날만 되면 전국의 사찰과 교회와 성당에서 집단으로 기도회가 열리는, 유래없이 기복신앙을 바탕으로 모든 종교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사후생이란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로부터 벗어나 사유되기는 어렵다.

유교에서는 조상의 혼을 부른 제사를 지내면서도 정작 사후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어떠한 논의도 합의도 정리도 없다는 것은 최준식 교수가 쓴 뒷부분에 첨부된 논문의 내용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별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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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계절 범우문고 10
전혜린 지음 / 범우사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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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혜린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천재, 광기, 시대를 앞서간 여인 등등 몇몇의 키워드로만 알고 있었고 정작 전혜린의 글을 제대로 정독하지도 않은 채 본인의 문학적 업적 자체보다 시대적 아이콘으로 더 평가받는 인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2004년 교육방송에서 1950년대 명동의 문인들 이야기를 다룬 명동 백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전부 다 챙겨보지는 못했다. 짤막짤막한 화면 속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은 배우 이재은이 연기한 전혜린이 절망하며 술을 마시는 장면이다. 당시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는 문인으로서의 참담함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을 어쩌지 못하는 자의식의 과잉으로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아마도 배우의 연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극본 때문일 수도 있고, 연출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흔치 않은 경험 때문인지 그 장면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쩌면 그 장면 때문에 전혜린에 대한 내 인상은 그 이후로도 한참 굳어져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단어 하나만 넣어서 검색하면 마치 가지가 좍 펼쳐지듯이 연관성 있는 글들이 줄줄이 딸려 오는데, 전혜린에 대한 어떤 글을 접하고 난 후 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게 맞지, 광기와 사생활로 회자 되는 것이 아니라’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러고 보니 정작 내가 전혜린의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면서 나는 곧바로 전혜린을 검색해 나온 책들 중 번역한 책을 제외한 책들을 주문했다. ‘자신의 문학 세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번역을 하였는데 어째서 이리 칭송되는지 모르겠어. 직접 자기 이야기를 쓴 책을 읽어봐야 진짜 엄청난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결론내리며 말이다.

전혜린의 글에서 나는 ‘슈바빙’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아하, 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 시절, 이미 까마득한 오래 전에 나는 절친한 친구와 유럽 배낭 여행을 했었다. 그때 우리의 일정에는 뮌헨이 포함되어 있었고, 여행 책자에서 뮌헨의 주요 명소로 우리나라의 대학로에 해당한다는 ‘슈바빙’이 있었다. 그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기대에 벅차 슈바빙에 도착한 우리는 크게 실망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 대학생들의 유럽 여행은 최대한 많은 곳을 보되 경비를 아끼기 위해 ‘런던 인 파리 아웃’, 또는 ‘파리 인 런던 아웃’ 두 가지 루트였는데, 뮌헨은 이 루트에서 중간쯤 되는 위치이다. 이미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 도시 전체가 그야말로 문화유산인 로마나 바티칸 등등을 앞뒤로 보고 나면 뮌헨 슈바빙은 처음 봤을 때는 시시하게 느껴지고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남지 않은 곳이 되었다. 대체 이 곳이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의 대학로와 비슷한 것인지 어떤 경로로 유럽 여행 가이드북에 실려 있었는지 한동안 도무지 알 수 없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1980년대 후반보다 훨씬 이전에 출판된 이 책을 읽은 당대의 젊은이들은 전혜린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가보지 못한 독일 거리에 대한 동경과 함께 닿을 수 없는 이상에 대한 동경을 함께 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감히 가보지 못할 것 같은 슈바빙에 대한 상상은 닿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는 이상에 대한 추구와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한다. 청년들에게 전혜린의 작품과 인생이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을 훨씬 뛰어넘어 그 청년들은 나이가 먹었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어쩌면 여행 가이드북을 쓰는 작가가 되거나,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왜 슈바빙이 그 책에 들어가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글을 읽어나가며 청소년기 독자층에 어필할 정도로 감각적인 전혜린의 문장력은 알겠으나 어딘지 모르게 겉멋이 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평범해져서는 안된다 라는 문장에서 나와 있듯이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고 늘 생각하고 누구보다 여자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실체가 없는 지적 허영심에 매몰되어버렸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그 시대에 비교할 수 없는 지원과 지적 경험을 누리면서도 책상물림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춘기 소녀 감성에 갖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계속 글을 읽어나가고 있을 때, 딸에 대한 글을 읽으며 여태 책을 읽은 느낌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경험이 들었다.

딸 정화가 어른이 된 후에 어느 피곤하고 삶에 실망을 느낀 저녁 때 이 글을 펴 보기를 원하면서 쓴다며 육아일기는 시작된다. 출생을 촉진하기 위한 주사, 출산 시 어떤 말도 비교가 안 되는 창백한 느낌이었다는 산고, 첫눈에 반한 딸과의 만남, 작가에게 주어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딸이라는 찬탄...... 놀랍게도 전혜린은 ‘자기에 대해 성실하게 살아야 하듯 어린 아이에게도 성실할 것, 아이를 물건으로가 아니라 정신으로 알 것, 아이를 수단으로가 아니라 목적으로 알 것’ 이라고 이야기하고 ‘정화가 가엾은 사람에게 울고 동정할 줄 알고 감동할 줄 아는 영혼의 소유자인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고 적었다. 이렇게까지 절절하게 딸에 대한 애정을 기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생을 택하지도 살지도 않았으므로 결국 남의 생(아이들의 또는 남편의 생) 속에서 그 보상을 찾고자’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아무런 생활도 갖지 않은 어머니가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그리고 환면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며, ‘가장 풍부한 개인적 생활을 가진 여자만이 아이로부터 가장 적은 요구를 한다’는 대목에 있어서는 감탄이 나왔다. ‘자기를 초월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의의를 찾고 실증하고 있는 여인이 가장 겸손한 어머니’이며 ‘여자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생활에 있어서 한 역할을 담당하려는 최근의 일반적인 경향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며, ‘전력을 다해야 하는 직업과 어린 아이의 양육을 양립시킬 수 없는 것은 아직도 너무나 사회의 설비나 그 밖의 노력과 연구가 등한시되어 있기 때문’이고 ‘직장을 가진 어머니’가 늘어날수록 그에 대한 선처가 필요하다는 부분을 읽으며 현재의 나도 정신적인 자극을 받는데 당대의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까지도 공감 가능한 지극히 개인적인 그녀의 존재론적 문제의식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면서 정말 오래 살았다면 천재만이 가지는 날카로움, 광기, 번뜩이는 감수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단어와 문장을 넘어서서 남들에게 기억될 정도의 자기업적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다시 책 앞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단어 한 단어가 진정이고 작가 자신이다. 과대평가된 작가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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