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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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이 굉장히 낯이 익었는데 알고 보니 만화가 현태준의 그림이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톰 라비가 쓴 원서에는 없는, 이 책만의 강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마 원서를 보게 된다면 느낌이 사뭇 다를 것이다. 그것 때문에 이 책을 아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점 때문에 이 책이 좋아진 사람이다. 일단 그 전에 읽었던 다른 책에서 현태준의 삽화가 좋았고, 중간 중간 한 페이지를 전부 차지하는 이 책에서의 그의 삽화 또한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첫번째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일화를 소개한다. 엄청난 장서가인 그에게 여자 친구가 디킨스와 자신 중 선택하라는 말에 쉽게 답을 하지 못하자, 화가 난 여자 친구는 뛰쳐나가고, 그녀의 뒤에 대고 작가는 그래도 앤서니 트롤럽보다, 앤 브론테보다 더 사랑한다고 소리쳤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지어낸 일화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 작가는 정말 정상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을 무렵, 3장에서 테스트가 등장한다. 너도 책 중독자인지 확인해보라고. 이미 작가를 통해 바닥을 확인한 지라, 아마도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가볍게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나의 결과는 책중독자가 맞다. 맙소사. 이어서 중독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체크하는 테스트가 등장한다. 나는 중간 등급.

 

1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2 중독의 해부

신체 증상 | 생활 환경 | 삶의 질 | 말기 단계
책중독: 도덕적 결함인가, 질병인가?

3 테스트: 당신은 책중독자입니까?
테스트①: 당신은 책중독자인가? | 테스트②: 당신은 얼마나 심각한 책중독자인가?

4 책의 역사

5 장서광과 애서가

6 수집광
수집광은 ‘희귀성’에 환호한다 | 수집광은 책의 ‘상태’에 집착한다 | 수집광은 ‘초판본’에 완전 열광한다 | 수집광은 ‘서명, 기명, 증정본’을 강렬히 원한다 | 수집광은 ‘오자’를 사랑한다

7 돌연변이들
다독가 | 책 지름신 강림자 | 학자 | 책 매장자 | 책 파괴자 | 식서가

8 책 도취증
책 도취증자처럼 말하기 | 책 도취증자처럼 책방 둘러보기

9 우리가 사는 책이 우리를 말해준다
구입액을 한정하는 유형 | ‘만 원짜리 이상은 안 돼’ 유형 | ‘단돈 몇 푼 때문에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유형 | 율리시스 유형 | 미치너류에 열광하는 유형 | 사람들의 관심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유형 | 레밍형: 대세가 운명인 유형 | 발굴형: ‘나는 영화화되기 전에 그 책을 알았어’ 유형 | 자기계발주의자들
집으로 무사히 책 들여가기

10 상상 속의 책방
전반적인 분위기 | 책 목록 | 책방 직원 | 헌책 코너

11 책 읽기
식당에서 책 읽기 | 화장실에서 책 읽기 | 잠자리에서 책 읽기 | 여행 중의 책 읽기 | 직장에서 책 읽기 | 책중독자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책 읽기

12 정리와 보관
탁월한 게으름뱅이 책 중독자 존슨 박사

13 빌려주기
최후의 행동

14 치유하기
완전한 금욕 | 사랑할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기 | 결혼 | 책 벌레 | 곤란을 겪을 때까지 책을 사들여라

이 책의 목차만 흁어보아도 알 수 있듯이, 다양한 방식으로 책에 중독된 사람들을 유형화하고, 거기에 대한 작가의 언급이 덧붙여지며, 마지막에 나름대로의 결론도 내어놓고 있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처음에 보았을 때의 그 참신함이 뒤로 갈수록 점점 동력이 약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본문 뿐만 아니라 현태준의 삽화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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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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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은 굉장히 많다. 최소한 그런 책들은 어떤 의미에서 확실히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일단 요즘 같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서도 고집스럽게 책을 읽는 사람들은 존재하며, 책에 관련한 팟캐스트도 인기가 높고, 온라인 서점은 여전히 성행하며,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이런 책들을 한 번은 꼭 읽어볼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책을 몇 번 읽었었는데, <서재 결혼시키기>도 좋았고, <책여행책>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전자는 작가가 소녀 시절부터 어떻게 애서가의 기질을 보였으며, 역시 나중에 애서가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평생 책을 사랑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따뜻한 문체로 쓴 책이며, 후자는 '책여행'과 '여행책'이라는 두 파트로 나누어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바탕으로 여행하고, 여행한 기록을 모아 책으로 만든, 기발하고 멋진 책이다.

 

책에 대한 책이 사실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위에 언급한 두 책도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최근에 읽은 <베스트셀러의 역사>라는 책은, '베스트셀러'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 상 베스트셀러가 어떤 것들이 있고, 그 뒷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명사들이 추천하고 싶은, 혹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에 대한 글을 모은 책도 꽤 많으며, 거꾸로 한 작가가 여러 책에 대한 글을 쓴 책도 있다.

 

이 책 <장서의 괴로움>은 일본 작가의 책인데,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국어교사로 근무했다가 책에 대한 라디오방송을 하기도 했고, 현재는 신문에 책 서평 기사를 쓰고 있다고 한다. 일본 문학에 대한 책도 여러 권 낸 것 같다. 이 책은 무엇보다 표지가 정말 압권인데, 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은 물론이거니와 바닥과 소파 위에 어지럽게 책이 널려 있는 가운데 발 디딜 틈이 없어 책을 밟고 서 있는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다. 그 역시 손에는 책을 들고 있는데, 색이 칠해진 부분은 그림에서 오로지 책을 제외한 부분, 그러니까 아마도 작가 자신일 중년 남자와, 고양이와, 소파와, 높은 곳에서 책을 꺼낼 수 있게 놓여져 있는 사다리 뿐으로, 바탕색인 황토색이 그대로 책 색이라서 그런지 이 어지러운 광경 속에서도 왠지 눈이 편안해지는, 묘한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또 재생종이를 써서 그런지, 본문을 읽으면서도 하얀색으로 번들거리는 책들과 다르게 온화하게 느껴진다. 매 장마다 끝에 붙어 있는 교훈도 그렇고, 각주도 그렇고, 글자체도 그렇고, 왠지 구수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독서가와 장서가는 미묘하게 다를 수 있는데, 단어 그대로 독서가는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일 것이고, 장서가는 많은 양의 책을 보유한 사람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SNS에 돌아다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칼 라커펠트의 서재. 그는 독서가이면서 장서가인데 사진 속에 보이는 엄청난 책의 양에 압도당한 적이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그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정도였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 명품을 즐기는 사람 중 상당수가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명품을 만들어내는 사람 또한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사람일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는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모두가 갈망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낼 정도의 사람이라면, 엄청난 독서로 키워진 지성과 감성이 그를 뒷받침했을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발상인데 말이다.

 

한편으로 어릴 때 나의 꿈도 이런 서재를 갖는 것이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아씨들> 속에서 작가가 되고 싶어하던 조가 로리의 집에 찾아가 서재에 감명받는 장면은 아직까지 생생하고, 어릴 때 보았던 디즈니 만화 영화 <미녀와 야수>의 벨이 책이 빽뺵한 서점에서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책을 고르고 노래를 부르던 그 장면도 떠올랐다.

 

장서가는 어떤 괴로움을 가지고 있을까. 최소한 이 책의 장서가들은 권 수로는 1만권은 다 넘는 것 같고, 책장으로는 모자라 온 집안을 책으로 다 뒤덮어 결국 같이 사는 가족의 원성을 듣거나, 혹은 책 무게 떄문에 집이 내려앉는 경험도 해 본 사람들이다. 하도 책이 많아 이 책이 자기에게 있는지도 모르고 또 사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극적인 것은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이 때 온 집안의 책들이 전부 와르르 무너지고, 망가진 경험이 기점이 되어 책을 처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나는 독서광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자부할수 있는데 장서가는 아니다.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아직 책 한 권을 살 때 상당한 고민을 하는 편이고, 내 거주지 근처의 도서관이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에게 어떤 책이 있는지도 몰라서 똑같은 책을 또 살 정도라면 좀 병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떄도 있다. 사놓고 읽지 않을 정도로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라면, 그의 어마어마한 장서 또한 일종의 과시욕이 아닐까 싶은, 약간의 삐딱한 마음도 드는게 사실이다. 이 책의 11장은 '남자는 수집하는 동물'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은 목표가 눈앞에 보이면 도전한다. 끝없는 수집은 대개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수집하려는 사람은 없다. 장르나 특정 작가 혹은 짧은 기간에 활약한 출판사나 시리즈물 등 제한 영역 안에서 목표를 세운다.

 

자신에게 분명히 그 책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결국 찾지 못해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나, 끝끝내 전자책을 거부하며 기꺼이 '장서의 괴로움'을 감내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나로서는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지향하고 싶은 삶도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데에 돈을 쓰는 것보다는 한결 친근감이 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14장에서 결국 저자는 자신의 장서 중 일부를 처분하기로 하는데 이른바 '오카자키 다케시 1인 헌책시장'으로, 헌책방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자신이 장소도 빌리고, 홍보도 하여 3천 권 정도의 책을 판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던 책의 10퍼센트도 줄지 않았지만. 후기에서 저자는 말한다.

 

한 인터넷 리서치 회사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이 한 달에 읽거나 사들이는 책의 양은 이렇다. 한 달 독서량은 잡지를 포함해 "한 권에서 두 권"이 40.42퍼센트, "세 권에서 다섯 권"이 28.39퍼센트다. 이런 마당에 '장서의 괴로움'으로 책 한 권을 쓰다니 속세와 거리가 먼 이야기긴 하다. 하지만 시대의 정중앙을 돌파해가는 이들은 언제나 '소수파'다. 나는 앞으로 억지를 부려서라도 내 신념을 밀고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로 '괴로워'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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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츄프린스 2015-05-2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쓰시네요! 감탄했습니다. 눈여겨보던 책인데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어요^^

Andrea 2015-05-23 23: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이 워낙 좋은 책이라 리뷰도 잘 써졌나 봅니다. 한번 읽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잘 모르는 일본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몰라도 크게 문제는 없는 것 같거든요. 내용이 집중을 해야 할 만큼 어려운 내용이 아니고, 장서가인 작가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필처럼 쓴 글이어서 가볍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두번째 이야기 아주 사적인, 긴 만남 2
마종기.루시드 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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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말없이 노래만 하는 공연이다보니 서운하다거나 심지어 이거 불친절한 거 아니냐는 반응도 아주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상태가 가장 편하고 좋아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왜 친절해야 하는지를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친절은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몫이지요. 음악을 하는 사람은 마음을 다해 연주하고 노래하면 그만입니다.

 

그래, 우리의 생은 비록 아무의 박수를 받지 못했을지라도 정성을 다한 생애였고 보람찬 생애였다. 남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살아낸 삶, 남의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뜬눈으로 밤샘을 한 그 숱한 날들이 그 순간 주마등같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비록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낯선 곳에서 서로 외로워하며 생을 마칠지라도 우리 모두는 마지막 순간에 만족한 얼굴에 미소를 환하게 보일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치든 무엇이든 '극'을 싫어합니다. 극좌도 극우도 말이지요. 아무리 명분이 설득력이 있다고 해도 극단이 세상에 가져다주는 미덕은 없다고 믿으니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얼마 전에 어떤 번역가의 인터뷰를 아주 인상 깊게 보았답니다. 두 가지 대목이 기억나는데, 하나는 "번역이 어렵지 않으세요?"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가 이렇게 대답했지요. "아니요, 어렵지 않습니다.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 해내는 일을 보면, 예를 들어 빵을 만드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고 대단하다 싶지요. 하지만 각자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내는 것뿐입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이 번역을 그냥 할 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머릿속의 생각을 나누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전달하는 것도, 아니 내가 감각하는 것을 내 자아가 느끼게 되는 과정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모든 encoding(부호화)decoding(해독)도, 심지어 디지털 아날로그의 converting(전환)도 모든 게 '번역'이지요. 그렇다면 예술가들도 그런 것일까요.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그 무언가(그것이 심상이든 정서든)를 각자의 방법으로 '번역'해서 내놓는 것. 어떤 방식의 번역에 능숙한가에 따라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곡을 지을 테고요.

 

그런데 카프카는 독일어로 작품을 썼기 떄문에 정작 체코인들은 그를 '국민작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사실 독일어권 국가들의 지배를 받아온 체코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지요.

 

소설가 카프카가 <몰다우(블타바) 강>의 스메타나만큼은 체코인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요. 생의 반 정도를 타의에 의해 외국에서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런 것에 비하면 카프카는 어차피 유대인이고 그가 프라하에 살던 때에도 한정된 주거지인 유대인 동네를 마음대로 떠나서 살 수 없는 형국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카프카는 그가 태어나 대학까지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고 생전에는 발표하지도 못한 많은 소설과 산문을 쓴 곳이 바로 프라하이지요. 빈에서 폐결핵으로 고생하다 죽은 후에는 다시 프라하로 돌아와 유대인 공동묘지에 묻힌 것을 생각하면 비록 40세의 짧은 생애를 살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그를 프라하 사람으로 칭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카프카를 말하다보니 그 30년 정도 후에, 비슷한 곳에 살면서 카프카와 비슷한 운명의 길을 간 유명한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이 생각납니다. 그는 체코 출신은 아니고 그 주변국인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그리고 1970년, 50세 나이에 프랑스의 센 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했지요. 버림받으면서 늘 위험한 생을 살아야 했던 유대인 문학가. 원수 나라가 될 수밖에 없는 독일을 싫어하면서도 그 독일 언어를 사랑하여 독일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시인 첼란과 작가 카프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이지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파울 첼란도, 프란츠 카프카도 여러 언어의 경계에 서 있던 작가들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프카가 태어났을 땐 체코 공화국이 성립되기 이전이었으니 그의 제 1 언어는 자연스레 독일어였겠네요. 하지만 프라하의 아니 유럽의 유대인이라는 신분으로 태어나 체코어 화자들 가운데에서 살았을 테니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살았겠지요. 독일어와 체코어, 이디시어가 뒤섞인 언어적 혼란이기도 했을까요. 그리고 그런 혼란스런 경계에서 파생된 에너지가 그들의 문학작품으로 고스란히 남겨진 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요즘 부쩍 그 '경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경계에 서 있는 사람만이 느끼는 불안과, 그 불안이 가져다주는 커다란 에너지 말이지요. 조금 우스운 비유일진 몰라도, 농사를 짓는 어떤 분께서 이런 얘기를 들려주셨는데요. 한 품종을 한 밭에 심는 경우보다 섞어심기를 했을 때 작물이 훨씬 잘 자라더라는 겁니다. 심지어 밭을 반으로 나누어 두 작물을 양쪽에 반반 심었는데 한 가운데 경계에 맞물린 작물이 다른 작물보다 유독 더 잘 자라더라는 얘기도 해주셨지요. 그분도 그 이유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그 경계에서 나오는 작물들의 경쟁과 투쟁의 에너지가 아니었겠느냐는 추측만 하셨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하려는 사람은 떄떄로 고아처럼 외로워야만 한답니다. 오죽하면 작곡가 베토벤은 외로움이 자신의 종교라고까지 고백했겠습니까. 미국의 의사 시인으로 미국 현대시의 문을 연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외로움을 자주 느끼지 않는 자는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고아처럼 느끼게 하는 이 비 오는 우중충한 시간을 아파하면서도 고마워하고, 고국을 멀리 떠나 살고 있는 내 신세를 힘들어하면서도 또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죽은 내 동생의 이름을 부르다가 너무 외로워져서 눈물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뜨거운 눈물은 시인이 되고 싶은 내 꿈의 다른 표징이라 생각하고 온몸을 아파하며 받아들입니다.

 

윤석군이 바리톤기타 솔로곡을 새로 만들어 피앙세에게 들려주었더니 '편안하다'고만 말했다고, 멜로디와 진행, 코드가 얼마나 독특하고 새롭고 의미 깊은 곡인데 그냥 편안하다고만 할까 하고 좀 섭섭했다는 말이 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제일 가까운 피앙세가 작품의 의도뿐 아니라 작품의 앞뒤 구석구석을 다 이해해주고 감동해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어느 예술가에게는 없겠습니까. 나도 한떄는 문학이나 시를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 않는 아내에게 그런 욕심을 가진 적이 있었지요. 가끔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동서양 예술가들의 평전을 심심풀이 삼아 읽어보면 상대방의 예술을 완전히 이해하고 늘 격려해가면서 평생을 산 부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정반대의 부부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도스토옙스키같이 부인의 절대적이고 전폭적인 존경과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글을 썼던 소설가나 동시대의 문호인 톨스토이같이 아내로부터 소설가로서의 존경심이나 경외심을 전혀 받지 못하고 글을 써왔던 이가 모두 다 같이 좋은 작품을 썼다는 것입니다.

 

다른 면에서 내가 또 보로딘의 음악에 경도되고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그가 세인트피터스버그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학자 겸 화학자였다는 점입니다. 특히 평생을 의과대학에서 생화학을 가르친 교수였고 알데하이드나 벤젠의 연구에도 세꼐적으로 상당한 업적을 쌓은 과학자라는 것입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그의 음악이 스케일로 보아서 러시아 음악을 대표한다고도 하지요. 차이콥스키보다 보로딘의 음악,특히나 교향곡 2번을 들어야 러시아 음악의 정수를 접한다고 말하는 이가 많지요. 어쩄든 보로딘 교수에게는 평생 '주말 음악가'라는 별명이 훈장같이 붙어다녔답니다. 그렇게 그는 의대에서 교수와 연구원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고 평생 아픈 아내를 간호도 해야 했다는군요. 언뜻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나는 엉터리 '주말 시인'이 아닐까 부끄러워했던 이곳에서의 내 의사생활이 기억나기도 하네요.

 

주말 음악가라...... 그것도 참 재미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꼬는 의도로 사람들이 만든 단어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한 때 주말 음악가였지요. 아니, 연말 음악가였다고 해야 하나요. 유학 시절, 연말에만 한국에 들어와 공연이나 녹음을 하고 돌아가곤 했으니까요. 저는 사람이 살면서 하나에 온 삶을 바치는 것도 의미 있고 숭고한 일이지만, 새로운 일에 두려움 없이 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든 후회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사랑이든, 일이든, 배움이든 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저는 선생님이 온전한 의사이면서도 온전한 시인이시라고 굳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항상 옳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의사일수록 초심을 잃은 분이 많고 진심이 많이 흩어져 환자를 다르게 보는 의사들이 많지요. 그런 분에게야말로 또다른 시야의 눈을 주고, 한계를 넓혀주는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어야 좋은 의사의 직분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중략) 잘난 척하는 의사들은 단세포적인 과학 일변도의 사고이기 쉽습니다. 의사는 자신의 환자 진료나 진단에 단 하나의 오진이나 오판이 없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차가운 과학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과학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 의학의 발전을 험담하자는 게 아닙니다. 의사는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지만 언제나 감성을 가진 환자의 도우미가 되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과학으로 무장된 의학의 오진도 훨씬 줄어든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젊은 시인 한 분이 메일을 보내면서 요즘은 너무 외로워서 괴롭다고 했습니다. (중략) 그래서 내가 답신을 보내면서 그렇게도 사는 게 실망스러울 때는젊었던 날의 나를 좀 상상해봐달라고 했습니다. 고국의 산천과 그곳에 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천리만리 헤어져서 매일 언어도 안 통하는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야 했던 20대의 내가 안고 살았던 긴장감과 불안과 절망 그리고 그 안에 숨은 깊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겠느냐고요. 그렇게 온몸을 조이는 외로움으로 몸을 떨면서 그래도 악착같이 모국어로 시를 쓰려고 안간힘을 쓰던 내 초라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냐고요. (중략) 그러고 보면 내가 오래전 한일회담 반대 서명으로 영창에 감금되고 평생 처음 받은 심문과 고문에 혼쭐이 나고 그 후유증이 오래갔던 일이나, 또 내가 2년 금고형을 받고 의사면허증을 빼앗길 것이라는 소문에 괴로워하시면서 내 구속중에 매일 소주를 한 되씩 드시고 급기야 얼마 안 가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내 아버지. 또 일간신문사 민완기자로 활동하다 이북에 사는 아들에게 쪽지 편지 한 장 전해달라는 큰아버지의 애걸을 거절하지 못하고 남북회담 취재 때 북쪽 기자에게 전했다가 그 당장 직장에서 쫓겨나 미국에 살던 내게 와서 고생만 하다가 갑작스런 참변으로 죽은 내동생. 동생의 죽음 후에 일부러인 듯 갑자기 치매 증세를 보이시다가 외로이 이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그 모두가 사랑하는 고국과 연결이 된 부끄럽고 불미스러운 일들이네요. 그러나 한마디로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합니다. 내 부모님도 내 동생도 물론 그럴 것입니다.

 

시는 내가 살아온 역사 속에서 내 삶의 지주 역할을 해주었지요. 헛된 욕망에 시달리고 떄로 절망하며 중심과 균형이 흔들릴 때 내 문학은 그런 것을 버틸 수 있는 대들보의 역할을 해주었어요. 윤석군도 그런 믿음을 당신의 음악에서 찾아서 움켜가져야 합니다. 그런 결심과 믿음이 없이는 좋은 음악을 찾아 헤매는 고통과 번민의 와중에서 지쳐갈 때 깃발을 놓아버리기 쉽습니다. 언젠가도 말한 적이 있지만 문학이란 자유를 찾아가는 생의 한 과정이라고 나는 믿어왔습니다. 아마도 내가 살아온 세상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나는 평생을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고 확실하게 헤아릴 수 있는 것에만 의지해 살아온 의사였지만 누구에게라도 언제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아마도 내가 어쩔 수 없이 삶과 죽음의 가교에 서서 오래 살아온 떄문인지 모르겠지만요. 그중 하나는 주위의 착한 이웃을 위해 정성을 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바치라는 말입니다. 옳고 그른 것에도 늘 엄격해야겠지만, 그래서 강직한 사람도 되어야겠지만 그보다는 착하고 힘없는 것에 더 마음을 주고 그 편이 되어주는 따뜻한 시간 속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한 사람이 정성을 다해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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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레시피 Slow Recipe - 천천히 걷고 싶은 당신에게
휘황 글.그림 / 나무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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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제목을봤을때는 요리책인줄 알았다.
이 책은 휘황이라는 재일교포3세인 모델이자DJ로2003년부터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청춘을 위한 네 가지 재료
free peace eco slow를 이야기하는데 이책은 그렇게 챕터 4개로 나누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아 물론 말랑말랑한 글과 함께 부드러운 사진도 덧붙여서.

읽다보면 소녀스러운 감성에 조금 오글거린다는 생각도 들고, 의외로 한국어 사용이 능수능란(?)하다는 생각도 들어 놀랍기도 하다. 어차피 책에서 소개하는 이런 일상들,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며 심신이 건강하고 따로 돈 들어갈 곳도 없는 업계에서 꽤 인정받는 프리랜서 아니고서야 그림의 떡이겠지만, 그러니까 오히려 한 시간 내외 정도 천천히 장을 넘겨가며 마치 이 삶을 잠시나마 내 것으로 만드는 기분도 꽤 괜찮다.

부록으로 들어있는 CD는 내 취향도 아니지만 이 책의 전체적인 톤과도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잔잔한 음악과 커피와 함께 느긋하게 오후에 즐기며 잠깐 일 때문에 골치아팠던 머리를 식힐정도로는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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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운드 - 차우진 산문집
차우진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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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음악 비평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할 자신은 없다. '지잡대'를 나온 주제에다 학위도 없고 4대 보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계속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아직도 하루치의 마감을 하고 그저 다음 달을 걱정하는 삶을 살지만, 어쨌든 내 몫을 해내려 애쓰고 있다. (중략) 어쩄든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 그저 지금을 응시하면서 좋았던 혹은 나빴던 과거는 서랍 안에 고이 처박아두고, 향수 따위에 발목 잡히거나 강박 같은 것에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나도 '21세기의 위대한 음악 비평집'을 쓰겠다는 강박을 버리겠다. 무엇보다, 음악이란 그저 인생의 사소한 엔터테인먼트이고 삶에는 음악보다 좋은 게 100만 개쯤은 더 있다. 그러니 어쨌든 살아남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자.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또한 우리 모두에게 럭키를.

 

서문 '청춘의 사운드, 혹은 당신에게 럭키를' 중에서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대중가요는 물론이고, 팝이나 재즈,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음악이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무지한 편인 나에게는 그렇다. 왠만한 영화에서는 어떻게든 그 영화만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편이지만, 음악은 그게 잘 안 된다. 공부하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하는 가운데에서도 음악 때문에 거슬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규칙을 유일하게 피해가는 것이 영화 OST. 그 영화의 내용과, 분위기와, 느낌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추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그래서 상당수 이 책에 나오는 노래 중 아예 모르거나, 제목만 알거나, 들어 봤어도 크게 임팩트가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제로였던 특정 노래에 대한 내 관심도가 이 책으로 인해 조금은 올라갔다는 것. 책을 읽는 동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져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싫었던 행동을 무심코 할 수 있게 된 것. 특정 대상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은 줄고, 호의가 늘었다는 것.

 

이 책은 음악 평론가가,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적은 수필집에 가깝다. 주관화의 객관화, 혹은 그냥 주관화에 머물렀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특정 가수는 절대 노래를 잘하지는 않지만, 매력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가수의 프로필이 노래의 성공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소감에 영향을 주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나같은 사람들이 더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편안하게.

 

한 번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그 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노래를 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컴퓨터를 틀어 검색어 창에 누르고 클릭해서 음악을 들어보았는데, 역시, 얼마 안 되어 끄고 말았다. 꿈보다 해몽. 꼭 꿈을 꾸어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해설이 훨씬 더 재미있을 때도 있으니까.

 

학교가 있는 안산에서 몇 해를 보내는 동안, 나는 막연히 뭔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품고 있엇다. 이 학벌론 안 될 거야, 이 학점으론 안 될 거야, 이 집안으론 안 될 거야, 등등.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면서 세상이 어떻고 글이 어떻고 문학이 어쩌고 했던 얘기들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부끄러웠다. 그냥 토익이나 공부하고 말지.(중략) 한국의 중심이 서울이라는 건 영화 개봉일만 봐도 알 수 있던 떄였다. 하지만 서울은 늘 가깝고도 멀었다. 거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고, 그럼에도 너무나 절실하게 그 안에 있고 싶었다. 그 점에서 <송시>의 '전과자'가 웃으라는 말에 웃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와 닿았다. 물론 그게 오히려 그들을 타자화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야 했다. 게다가 미선이는 서울대 학생들의 밴드였고, 앨범에서 풍기는 감수성이 실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애들의 흉내 내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편 재수 없엇다. 그러나 닮고 싶었다. 부러웠다. 음악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재능이 부러웠고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부러웠으며 동시에 이상한 박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게 질투였는지 동경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둘이 대충 아무렇게나 뒤섞였을 것이다.

특정 음악이나 음악가가 한 시대를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압도적인 하나'를 기필코 찾아내 그걸 신화적인 위치에 놓고 싶어 한다. 21세기의 비평가와 언론들, 음악 팬들이 펫샵보이즈를 이곳으로 불러오는 맥락도 그렇다. 하지만 언제나 이것은 오만이고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내가 1980년대를 학생운동이나 롤라장이 아니라 너덜해진 니코보코 운동화의 뒤축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80년대의 사운드는 펫샵보이즈이기도 하고 런던보이즈이기도 하고 김완선이나 어떤 날일 수도 있다. 의미는 동일하지 않고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자의적이고 경험적이다. 그래서 대표적인 언어보다는 파편화된 언어가 더 중요할 것이다.

세상이든 사람이든 홍대앞이든 변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변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난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좋았던 시절은 다 지나가지만, 누군가에겐 지금이 가장 좋은 시절일 것이다. 이걸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 무엇도 납득할 수 없게 된다. 조금 쓸쓸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장혁의 <스무살>. 책 때문에 처음 알았는데 좋다.

 

*아이유가 부른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아이유 정말 좋아하고 김창완 노래의 리메이크도 좋았지만 정말 이 노래만큼은 가을방학 원곡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아이유가 부르면서 지나치게 매끄럽고 뽀송뽀송해져서, 원곡의 투박하고 성긴, 탁한 그 맛이 없어진 느낌. 맑고 고운 목소리가 오히려 상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니.

 

*맨 마지막, 에필로그와 별도로 음악 비평과 비평가에 대한 글을 덧붙인 것도 재미있었다. 종종 음악 비평의 쓸모없음과 직면하면서 무기력해지는 자신과, 순수 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암묵적인 이분법, 거기에서도 같은 대중문화에 속했다고 생각되는 영화 평론과 비교될때 상대적으로 비평이라고 부를 만한 작업이 벌어지는 공적 공간 자체가 드물다는 현실, 음악 자체로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학적인 관점의 해석이 요구되며, 본질적으로 모호한 음악이기에, 거기에 대한 해석조차도 애매하다고 느껴지는 사실, 지금의 음악 비평가는 음악 산업 안에서 약소한 권위에 기댄 홍보 담당자가 아닌가 싶을 때도 많다는 자괴감.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저런 음반을 다 사고 들어볼 정도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느껴지는데, 사실상 현실은 그보다 너무나 팍팍해 놀랐다. 음원시장 자체가 얼어붙어 있고 상당히 치우침이 심한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은 예전부터 들렸기에, 그 음악 산업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일생이 고단할 수도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냉정하게 본다면 비평이란 어쩌면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빛이 없는 우주 공간에는 그림자가 없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가 없듯이, 비평하는 대상이 없거나, 부실하거나, 힘이 없다면, 그 분야의 평론가들은 더 무기력해질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매우 자주, 어쩌면 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이란 그 장르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고민하고, 누군가로부터 욕을 먹으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지라도 끝까지 그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슬펐고, 한편으로는 따뜻해졌다.

 

*책 뒷면을 보니 1쇄 발행 후 보름만에 2쇄를 발행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책이 작가에게는 사랑하는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음악 평론가의 길을 꿋꿋히 가게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꼭 그랬으면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작가가 이 다음에 쓸 책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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