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
남인숙 지음 / 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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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썩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예상외로 좋은 책이었다.

 

아마도 내가 준 별점 중 반 개는 그 의외성 때문이리라.

 

저자는 미술이라는 분야에서 문외한이다. 머리말에 명백히 스스로 밝혀 놓았다.

그러나 저자가 말했듯이, 저자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조금 더 행복해졌고, 그 행복이란 소수의 엘리트가 자기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기호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봐서 좋은 그림을 보고 거기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으면 좋은 그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는 화풍, 기법, 재료와 같이 전문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뭉크와 샤갈, 고흐와 모네와 같은 화가의 작품 못지 않게, 덜 알려진 작가의 작품도 많이 실려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원한다면 당연히 이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의 목적에 200퍼센트 충실한 책이다. 이 책의 그림을 보는 여자들은, 작가가 짧게 덧붙인 글을 보면서 두배로 행복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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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연애할 때 - 칼럼니스트 임경선의 엄마-딸-나의 이야기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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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쓸데없이 많은 편이다.

 

단순히 불안지수가 높아서 그런 것인지, 매사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모범생 증후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오지도 않응 상황에 대해 미리부터 이것 저것 가정하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이 쓸데없는 걱정들 덕에, 간혹 출산이나 임신, 육아에 대해 불안이 증폭될 때면 어김없이 관련된 책을 읽게 된다.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결혼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한 명 키우는데 억 단위로 돈이 들어간다... 이런 뉴스를 보다 보면 웬만한 강심장 아니고서야 불안에 빠지지 않을 도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늘 자신보다 자식을 위해 살았고, 자식이 독립해서야 비로소 누구 엄마에서 벗어나게 된 우리 시대의 엄마들과는 요즘 엄마들은 사뭇 다르고, 또 달라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워킹맘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도 간접적인 시선도 충분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불끈불끈 울분이 생기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저자처럼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부럽기도 하다. 일하면서 아이는 내 시선이 닿는 곳에 둘 수 있으니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유년 시절부터 세계 곳곳에서 생활했고, 한국과 일본의 명문대에서 수학했으며,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던 그녀는 과연 어떤 육아를 할까, 하는 호기심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결과는, 내가 막연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방임에 가까웠다는 생각과 함께,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부모보다 좀 더 뚜렷하고 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 이런 방법도 있구나,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다가도, 어떤 대목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위해 저자 또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문득 든 생각, 육아에는 모두에게 들어맞는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부모의 바람이나 성향이 아이의 인격을 형성할 것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엄마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이가 매순간 느끼고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부터 자신을 사랑하고, 또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

 

즉, 지금의 내가 미래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나 혼자서도 행복해질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 그리고 동반자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조금씩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

 

저자의 딸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 책을 읽고 얼마나 기뻐할까? 딸이 태어날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찍은 사진을 모은 책 <윤미네 집>을 볼 때도,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를 볼 때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나중에 내 아이가 컸을 때, 본인은 기억도 못 할 시절에 대한 부모의 꼼꼼한 기록으로 아이에게 행복을 선사해주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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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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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가게라도 좋으니까, 나 혼자 일해도 상관없으니까 제대로 확실히 일다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내 손으로 직접 재료를 고르고,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내 손으로 그것을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는 그런 일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봤자 재즈카페 정도더라구요. 어쨌든 재즈를 참 좋아했고 재즈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을 정말 하고 싶었으니까요."

 '피터 캣'은 시내 외곽인 데다가 지하에 있었지만 인테리어 하나만은 철저하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설계뿐만 아니라 마루 시공까지도 도맡아 했다. 가구도 앤티크 숍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골라 모았다. 그래서 테이블마다 가구가 달랐다. 가게의 한쪽 모서리는 피아노와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장식했다. 구석의 벽에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마음이 내키면 마르크스 형제의 영화를 비밀리에 상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느낌이 좋은 바 카운터를 놓았다. 당시의 자료사진을 보면 깔끔하고 모던하다기보다는 손때가 묻은 듯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단골 바'의 인상이 강하다.

 

설명만 보아도 가고 싶은 곳, 주인장이 궁금해지는 곳이다. 바로 이 곳은 한때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바이다. 하루키가 대학을 졸업하고 재즈바를 운영했던 것, 그리고 그 상태에서 썼던 글로 군조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명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않고 직접 재즈바를 운영하며, 틈틈이 소설을 써서 문학상을 받고 데뷔했다는 사실은 마치 신화처럼 낭만적이다.

 

 한편, '재즈카페 주인장'으로 산다는 것은 언뜻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블루칼라 노동자에 버금가는 고된 노동이 요구되었다. 그는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노동에 시달렸고, 은행이나 장인에게 진 빚을 하루빨리 갚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여유롭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을 뿐만 아니라 담배연기와 위스키에 절어 지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인다. 술주정뱅이들이 남긴 오물을 치워야 했으며, 취객들을 쫓아 보내고 아침부터 식재료 등을 사러 다녀야 했다. 창문도 없는 어두컴컴한 지하의 작은 공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음반을 틀고, 피터 캣의 특식인 롤캐비지와 음료를 만들고, 그릇을 닦았다.

 저녁 늦게까지 나쁜 공기 속에서 일하다 보면 뭔가를 차분히 생각할 여유가 생길 수 없었다. 곁에서 보이는 것처럼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직업도 아니었다. 7년간 재즈카페를 운영하면서 깊이 깨달은 것은 역시 '밥을 벌어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오픈 초기에는 계속 가난에 허덕여야 했고, 갚아야 할 빚도 태산이었다. 한번은 매달 정해진 빚을 꼬박꼬박 갚아야 할 날짜가 다가왔는데 아무리 세어 봐도 3만 엔이 비었다. 상심한 채 길바닥에 멍하니 서 있던 무라카미 부부에게 정말 농담처럼 어디선가 바람에 밀려 만 엔짜리 지폐 3장이 날아왔다. 그 돈으로 겨우 그 달의 빚을 갚았다. 정말 거짓말 같은 실화다.

 

그래,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지.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의 호주머니 속의 돈을 내 호주머니 속으로 옮기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지루하고, 때로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지 느끼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하다 못해 월급 받는 직장인이 아니라 스스로 경영자이자 오너라면, 그 스트레스는 말로 못 할 것이다.

 

이 시기를 보내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적으로 단단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문인들이 하루키의 재즈바를 종종 방문하였는데, 세 명이 있다가 한 명이 자리를 뜨면 반드시 남은 두 사람이 먼저 일어난 그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문단에 데뷔한 후, 기존의 작가들과는 달리 문단과의 관계가 친밀하지 않았던 것은 이때의 경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타고난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는 손님 모두에게 신경을 써 가면서 잘 보일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다시 오게 된다면 그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 그것이 재즈카페를 운영하는 올바른 길일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적용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일치감치 만인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것을 지양했기에, 데뷔 후 숱한 비판이나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임경선은 자타 공인 하루키 매니아이다. 유년기를 일본에서 보냈고, 도쿄 대학에서 수학하기도 했다고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현재 소설과 수필 등 다양한 글을 쓰고 있는 그녀의 롤모델이 하루키인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한국, 일본, 유럽, 남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생활을 한 그녀는 남보다 일찍 고독을 깨쳤을 것이며, 인간의 고독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하루키에게 끌렸던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작가와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하다가 전업 작가가 된 것 또한 하루키와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 곳곳에서 하루키에 대한 애정은 뚝뚝 넘쳐난다.

 

첫째, 익숙하지 않은 것을 처음 시도하는 것이므로 그리 어렵게 고민하지 않는다.

둘째, 글은 1인칭으로 쓰고 주인공은 '나'로 정한다.

셋째, 되도록이면 허구를 쓴다.

넷째, 문장은 최소한 세 번 이상 고쳐 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자기 변명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하루키가 가게 문을 닫고 새벽의 어두운 바 카운터에서 매일 조금씩 짬을 내어 글을 쓸 때 스스로 세운 원칙이다. 어쩌면 이 원칙을 보고 저자는 힘을 얻었을 수도, 위로를 받았을 수도, 실질적인 조언에 반가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저자는 곳곳에서 하루키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자신과 하루키의 가상 대담까지 구성한다. 그 덕에 이 책을 읽으면 하루키의 책을 읽고 싶어진다. 특히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두번째 작품인 <1973년의 핀볼>은 재즈바와 병행하면서 썼기에 글의 호흡이 짧지만, 이후에 나온 <양을 쫓는 모험>부터는 호흡이 길고 힘이 느껴진다는 부분을 보면 당장 하루키의 책을 집어 읽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종종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문학에 대한 진지한 해석까지는 이 책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몇 몇 문장들이 실제로 인용을 한다거나, 하루키에 영향을 받았다는 소설가들의 애정 고백을 일부 싣는다거나 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 책에 나온 내용 정도는 하루키의 팬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을 내용이고, 하루키의 책 전부가 아닌 일부만 읽어 본 나도 한 두 사실만 제외하고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좀 세게 표현하면, 아이돌 그룹을 바라보는 소녀 팬의 모습이 연상된다고 할까. 농담삼아서 '하루키빠'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정말 농담에 그치려면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들 정도의 내용이 나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얼마 전에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를 읽었는데, 역설적으로 빌 브라이슨의 책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겠다. 하루키가 오래 전에 살았던 작가도 아니고, 알려질 만큼 알려진 작가인데 이 책에 실린 정도의 내용은 웹서핑으로 충분히 수집 가능한 정도의 지식이다. 저작권 때문이었을까? 이 책에는 하루키에 관련한 사진 자료가 없는 것도 이상하다. 돈이 문제였다면 저자가 직접 찍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본이 멀지도 않은데, 그가 운영했던 재즈바가 있던 장소나,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다면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직접 사진을 찍어서 넣었더라면 책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하루키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죠. '피터 캣'에서 지낸 긴 시간들이 그에게 차분히 관찰할 시간을, 그리고 그곳에서의 힘든 육체노동이 도덕적인 기반moral backbone을 가져다 주었다구요."

 

저자에게 충분한 시간과 발로 뛰는 노동의 기회가 있었더라면 더 좋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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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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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은, 대부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다. 고통스러웠거나 민망했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지워버린다. 기억이 희미하면, 상처를 받아도 쉽게 잊는다. 상처를 쉽게 잊으니 상처를 받는 일도 점점 드물어진다. 사람으로선 놀라운 강점이지만 작가로선 치명적인 약점이다. 상처받지 않는 작가라니,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말이다. 대부분의 예술작품은 인간의 상처와 기억과 용서와 화해를 다루고 있으니, 이런 식으로 평범하게 살아선 <죄와 벌>이나 <위대한 개츠비> 같은 명작을 남기긴 애당초 글러먹었다. Y의 소설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시, 오, 이, 엔, 철자로 입은) 상처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결국에는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을 지나왔기 떄문일 것이다. 나도 더 늦기 전에 많이 상처 입고 (이거 원 기억이 나야지) 더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기억이 안 나) 더 많이 화해해서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에 도전해봐야겠다.

 

이 책은 김중혁과 김연수, 두 절친 소설가가 씨네 21에 연재한 영화 관련 칼럼을 엮은 책이다. 분명히 저자 이름에는 김연수가 먼저 올라와 있지만,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최근 읽은 김중혁의 몇몇 책들이 좋아서였기 때문에 나는 김중혁의 글이 더 궁금했다.

 

대중적으로는 김연수 작가가 좀 더 알려져 있고, 데뷔도 더 빨리 했으며, 더 많은 소설을 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중혁 작가의 글이 내 취향에 맞는다. 두 소설가가 번갈아가면서 쓰는 이 책에서도 나는 김중혁의 글이 더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향이니까, 김연수 작가의 글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히 많을 것이다.

 

늘 그렇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해 쓴 글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일단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글 쓰는 이나 글 읽는 이나 어느 정도 긴장을 풀고 접근할 수 있으며, 그러다가 문득, 아, 하면서 순식간에 깨달음을 얻게 되는, 돈오돈수의 순간이 종종 오기도 한다. 독자는 때로 작가에 대해 우월감을 가질 때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분명히 두 작가보다 영화를 더 많이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두 작가도 책의 맨 앞에서 특별히 둘 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밝히고 있다. 전문가라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하고 몇 번이고 마음 속에서 검열을 거치겠지만, 작가나 독자나 비전문가인 것은 마찬가지기에, 작가는 마음껏 영화를 주물러가며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왕창 늘어놓고, 독자는 또 즐겁게 깔깔대면서 읽으면 그만이다.

 

랜디와 잭 블랙 캐릭터의 차이는 뭘까. 랜디는 레슬링에 자신의 모든 것, 100퍼센트를 걸었다. 레슬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죽어도 좋아, 라는 심정으로 레슬링을 한다. 하지만 잭 블랙은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건다(완전 '자뻑'이다). 믿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어떤 대상이나 어떤 일에 100퍼센트를 거는 건 위험한 짓이다. 일이 망가지거나 실패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레슬링에 모든 것을 건 랜디는 "링이 나의 진짜 세계"라고 말한다. 멋있어 보이려고 한 얘기인지 몰라도 나는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링도 나의 세계"라거나 "링은 나의 직장"이라거나 했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링이 나의 진짜 세계라니. 레이가 랜디의 대사를 들었다면 이렇게 빈정거리지 않았을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염병할 링에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말이나 돼? 내가 브리주를 도망쳤듯 어서 빨리 그 빌어먹을 링에서 벗어나라고.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난 정말 살고 싶다고."레이의 말이 백번 옳다.

 

이 부분도, 글의 맨 앞에 인용한 부분도 전부 김중혁의 글 일부이다. 어떤 대상에 전부를 걸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100퍼센트 믿는 잭 블랙의 캐릭터는 김중혁과도 닮았다. 그러기에 당당히 소설가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인 자신의 기억력 부족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나. 그의 글은 멋있어 보이지 않으려고 하기에 매력적이다. 김중혁 작가의 글이 명태를 얼렸다 말렸다를 되풀이하여 노르스름한 겉은 꾸덕꾸덕하고 안은 포슬포슬한 황태와 같다면, 김연수 작가의 글은 명태의 알집을 소금에 절이고 발효하여 고소하고 짭짤해진 연분홍빛 명란젓 같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남녀상열지사를 다루는 소설은 김연수의 소설이 재미있는 것 같다.

 

나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참 좋다. 그분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라는 건 소리와 빛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 일부분도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다. 낭만주의자가 될 때, 나는 일상의 소리와 빛에 민감해진다. 비행기 소리라거나 바람 소리, 혹은 도로로 흘러내리는 빗줄기에 되비치는 거리의 불빛들에 나는 끌린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자는 일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 내리는 청두 거리라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센티멘탈해진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서도 그처럼 센티멘탈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바라보는 일상은 너무 큰 소리와 아름다운 빛으로 왜곡돼 있다. 그리고 이 왜곡은 의도적이다.

"연수 씨 작품에는 신파가 있어요"라는 말을 지난주에 들었다.(물론 그 문학평론가는 아니다.) 항변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통속을 좋아하고, 신파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통속과 신파는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감추는 데 실패한 자의 것이다. <호우시절>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면은 물론 판다들이 등장하는 부분이었겠지만(기다려라, 청두의 판다들이여, 반드시 찾아가서 말을 걸어보고야 말겠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메이가 남편의 영정 앞에 돼지내장탕면(너도 기다려!)을 바치고 구슬프게 울 때였다. 메이처럼 예쁜 여자가 그렇게 울면 그게 어떤 장면이든 나는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앉아서, 그 장면에서 메이가 운 건 아무래도 죽은 남편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 남편의 영정이 웬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하니 더 가슴이 아팠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을지 모르지만,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여행은 사후에 낭만적으로 변형된다고 믿는 나는 동하가 한국으로 떠난 뒤, 다시는 연락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났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햇다. 그러고 보면 정말 동하는 모든 여자에게 잘해주는 것 같다. 결혼하기 쉽지 않겠다.

 

<호우시절>에 대한 김연우의 글 중 일부이다.  나 또한 이 영화를 참 좋아했다. 낭만, 신파, 통속... 그런 부분이 때로는 김연우의 글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때로는 내가 소화하기에 과하다고 느끼게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에게 영화보기란 귀를 후비는 것과 비슷하다. 더 잘 듣기 위해 귀에 상처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귀지를 긁어내듯,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오동통한 생선살을 다치지 않고 가시만 깔끔하게 발라내듯, 나는 내 심장이 잘 뛰게 하기 위해 영화를 보며 핏속의 불순물을 제거해왔다. 내게 영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매년 1월이 되면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더 많은 상상을 하기 위해, 영화를 열심히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김중혁이 쓴 글이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 나 또한 그랬다. 특정 장르, 특정 감독, 특정 배우에 심하다싶을 정도로 좌우되는, 영화에 대한 내 호감도는 대체 내게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할 정도로 의문이 들 때도 있었고, 때로는 다양한 스토리를 넘나들며 영화를 좋아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는 나는 영화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이야, 하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김중혁의 이 글을 보는 순간, 옳다구나 했다. 나는 영화를 수단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특별할 이벤트가 있을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우울할 때,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생각하고 싶을 때, 머리가 텅 빈 것 같을 때, 내 자신이 지나치게 냉정하게 느껴질 때, 감성을 채우기 위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영화를 열심히 보려고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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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 좋은 방
용윤선 지음 / 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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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hold you in my heart.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울기 좋은 방>의 저자 용윤선의 블로그로 들어가니 이사오 사사키의 이 음악이 배경 음악이다. 저자가 쓴 책을 닮았다. 책은 저자를 닮았을 것이니, 저자는 저 음악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울고 싶은 때가 있다. 감정이 차곡 차곡 쌓여 있는데, 아직 흘러넘치지는 않아, 누군가 여기에 마중물 한 그릇만 부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혹은 풍선처럼 부푼 마음이 자꾸 늘어나기만 해서, 자꾸 긴장감만 고조되어 가고 얇아지는 고무풍선의 두께처럼 내 마음은 점점 연약해져 가는 것 같은데, 누군가 핀 하나로 톡 찔러서 이 바람을 전부 빼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렇다면 나는 푸쉬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편안히 늘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울기 좋은 방>이라는 제목을 보고 며칠 째 지지부진한 내 마음이 떠올랐다. 그래, 나에게는 마중물이 필요해. 작은 핀이 필요해.

 

용윤선이라는 사람은 커피를 볶고 내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블로그를 훑어보니 카페를 경영하며 커피 수업도 하는 바리스타로,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것 같다. 기분 탓일까, 블로그에서도, 책에서도 커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재생지인가? 잘 모르겠지만 연한 회색의 책의 속지도, 신명조체같지만 정확히 알 바 없는 글씨체도, 너무 자주 나오지 않는 사진도, 전부 마음에 든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적당히 바래져가며, 손때가 묻어가며, 낡아가는 책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런 책은 소장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점점 대체불가능해질 것 같다.

 

하나, 아침이 된다
:멕시코 Mexico Altura Orizaba
둘, 그 사람 손을 본다
:콜롬비아 Colombia Narino Supremo
셋, 고맙다고 말한다
:인디아 몬순 India Monsooned Malabar AA
넷, 버지니아 슬림
:과테말라 Guatemala Antigua SHB
다섯, 왜 또 그러니?
:브라질 이파네마 Brazil Ipanema Euro, Natural
여섯, 내 남자거든요
:에티오피아 시다모 Ethiopia Sidamo Guji, Natural
일곱, 읽지 못하였고 쓰지 못하였다
:파푸아뉴기니 Papua New Guinea Sigri AA
여덟, 우리는 內海로 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Ice Americano

 

아홉, 사과해라, 나를 사랑한 것을
:케냐 피베리 Kenya Peaberry

내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보니, 가정을 꾸리는 일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수월해질 것 같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항해 같은 것이다. 어머니로서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이들을 내가 데리고 살았다. 그러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것으로 어머니라는 자리의 몫 절반쯤은 해내는 것인 줄 알았다.

아이들이 커서 나에 대해서 "사랑 표현이라고는 하나 없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냉정한 엄마"라고 일축한다. 한번은 딸아이가 학교에서 심리 검사를 했는데 우울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찾아갔다.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검사를 하나보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그런 검사가 있었다면 우리 어머니도 학교에 가셨을 것 같다. 상담선생님이 내게 이런 조언을 하셨다. 딸아이에게 사과하라고. 그렇게 사랑한 것을 사과하라고.

집에 돌아와 내가 어떻게 사랑했는지 생각해본다. 사랑이 죄라는 노랫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상담선생님 말씀은 상대가 원하는 방법대로 사랑해야 하는데, 딸아이보다는 어머니가 원하는 방법으로만 사랑했으니 사과하라는 뜻이다. 나는 심리적 통찰력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다. 심리적 통찰력은 타고나는 것인가? 교육받는 것인가? 어쨌든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부족한 사람이 어머니가 되어 귀한 생명을 우울하게 살게 했구나 하는 생각. 그런데 사람은 왜 부족하면 안 되는 걸까? 나는 부족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던데. 상대가 원하는 방법대로 사랑해야 하는 거구나.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방법으로 사랑하며 살 수 없단 말인가. 사랑이 무엇일까, 다리를 뻗고 앉아서 날이 저물 때까지 생각해본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가슴뼈가 부서지도록 주먹으로 쳐본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밥을 차려주고 케냐 피베리를 연하게 내려준다. 딸아이는 케냐 피베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려 앉아 책을 읽는다. 마치 하루종일 읽고 있었던 책처럼 능숙하게 중간부터 펼쳐 읽어 내려간다. 그러다가 이런 내 모습이 아이에게 상처였나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딸아이를 향해 돌아앉지 못한다. 쏟아지는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아서.

며칠 후, 다시 케냐 피베리를 연하게 내려 딸아이를 불러 마주 앉는다. 그리고 나는 사과한다.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

 

열, 형
:케냐 AA Kenya Nyeri AA
열하나,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때
:코스타리카 타라주 Costarica Tarrazu
열둘, 오늘은 안 왔으면 좋겠네
:에티오피아 아리차 Ethiopia Aricha
열셋, 에스프레소 가르쳐줄래?
:에스프레소 Espresso


열넷, 킬리만자로에 가는 길이다
:탄자니아 AA Tanzania Kibo AA

삼 년을 만나고 이십 년을 만나고 아니 평생을 만나도 사람은 모른다. 그렇게 된 과정에는 말없이 떠난 사람이 있었고, 돌아왔지만 다른 사람일 때도 있었고,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다. 결국 사람은 변하기 때문이었다. 나를 믿지 못해 사람을 믿지 않는 모순의 자기애이기도 할 테지만 모른 채 사는 것이 상처를 덜 주고받는 생존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었다. 이제는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사람의 반짝이는 눈빛이 마음에 들어와 턱을 괴고 웃는다. 다시는 가슴에 나무를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 나무들이 자라서 숲이 되고 바람을 일으킨다. 이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를 바라볼 수 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열다섯, 잘 지내세요
:르완다 Rwanda Bourbon
열여섯, 커피하는 사람
:에티오피아 코케 Ethiopia Koke, Honey

열일곱, 횡단보도에서 만나다
:하우스 블렌드 House Blend

몇 년 후 나는 그와 결혼했다. 건축학과에 다닌다는 그 사람에게 "우리 학교에 건축학과가 있었나요?"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그 사람과 나는 커피집에서 하우스 블렌드를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메뉴의 가장 위에 있는 것, 1번을 주문한다. 지금도 그 사람은 그렇다. 그런 것부터 우리는 많이 달랐다.

그는 평생 가족에게 헌신하는 어머니를 보다가 헌신은커녕 결혼해서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해 매 순간 고뇌에 빠져 있는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결혼하면 네가 어머니처럼 변할 줄 알았어. 너도 우리 어머니처럼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지금까지 그 생각이 자신만의 착각이었음을, 착각은 착각한 사람의 몫이라는 점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 마찬가지다. 나 역시 결혼하면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처럼 변할 줄 알았다. 아니 세상 모든 남자가 우리 아버지 같은 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이불을 정리해주고, 방을 닦아주고, 일찍 퇴근하여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 갈치 살을 밥 위에 놓아주는....... 세상 모든 남자가 그런 줄 알았다. 조금 더 함께 살면 이십 년을 살게 될 것이다. 살아온 삶의 절반쯤을 같은 집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은희라는 교육생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그렇게 오래 살면 지겹지 않으세요?"

나도 모르게 이런 대답이 나왔다.

"시간은 지루한데 사람은 지루하지 않아. 그래서 살 수 있는 것 같아."

 

그 사람과 나는 가끔 밤에 나가 술을 마시는데, 몇 년 전 가을의 일이었다. 아마 십육 년 정도 함께 살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너와 결혼한 것은 내 운명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어."

밤하늘에 큰 달이 침묵을 지키며 빛만 내보내고 있었다. 포기와 체념 같은 것이 맑은 소주와 뒤섞여서 목구멍으로 차갑게 흐르고 있었다. 나의 혈관으로 한 사람이 저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운명이 무엇인지...... 헤아려보려 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운명인가...... 탄식하던 적도 있다. 이제 헤아리지 않는다. 그만 헤아리겠다. 정해진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돌고 돌아 아주 멀리 걷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도착지까지 가게 될 것이다. 만들어지는 것이 운명이라면...... 자신 없다.

 

그 사람은 여전히 어깨가 넓고 얼굴이 기다랗다. 머리카락만 회색이 되었다. 잘 웃던 눈이 나를 바라볼 때는 뱀눈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다 괜찮다. 만나게 해주어서 고맙다면 헤어지는 일도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거침없이 보여주고 살았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는 사랑하고 있었을 그 찰나가 바보처럼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 외에 보이는 것이 없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런 적이 있었다. 찰나였지만 그 찰나가 존재했었다는 기억으로 어떤 사람들의 관계는 지탱될 때가 있다.

손해와 이득이 아슬아슬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관계, 결국 하나일 텐데 둘로 보일 때가 많았다. 어쩌면 분명 둘인데 하나라고 우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운 영혼에 몽상가이며 환상과 착란 혹은 착각에 잘 빠지는 기질을 갖고 있는 내가 가끔 뒤를 돌아보면 그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갈 데도 없냐고 다그치면 생뚱맞은 얼굴로 어딜 가냐고 대답한다. 이제는 푸짐하게 나온 그의 배 위에 과민한 내 머리를 기대고 밤새 잠이 들곤 한다. 어쩌면 같은 맛으로 자리를 지키는 커피집의 하우스 블렌드 같은, 새로울 것 하나 없지만 든든한 묵직함일지 모른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자는 그 사람의 큰 손을 가만히 잡아볼 때가 있다. 손톱 모양새를 물끄러미 본다. 소년의 손톱 모양과 같음을 발견한다. 이 손으로 내 손을 슬며시 잡고 길을 건너던 횡단보도가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운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열여덟, 꿈
:카푸치노 Cappuccino
열아홉, 붉은 양파와 푸른 오이
:아침 커피 Morning Coffee
스물, 아침 산책
:에콰도르 Ecuador Loja SHB
스물하나, 차를 끓일까요?
:모카 Mocha
스물둘, 푸안루에서 버스를 타면
:샤커레토 Cafe Shakerrato
스물셋, 눈빛에도 표정이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 Indonesia Java
스물넷, 내가 못 살아
:도미니카 Dominica Santo Domingo
스물다섯, 사랑, 그 허망한 푸닥거리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Ethiopia Yirgacheffe
스물여섯, 타고나지 못했으면 노력을 해야죠
:운남성 云南省
스물일곱, 부디 그 말을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Jamaica Blue Mountain
스물여덟, 나는 코시체에서 아직 오지 않았다
:예멘 Yemen Mocha Mattari
스물아홉, 힘들었어요?
:민트 커피 Mint Coffee
서른, 사랑하다가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이름
:아포가토 Affogato
서른하나, 아름답게 살기로 하였다
:룽고 Lungo

서른둘, 고백하지 마라
:쿠바 크리스털 마운틴 Cuba Crystal Mountain

고백은 비겁한 것이다. 고백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모두 비밀이니 혼자만 알고 있어달라고 한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나. 비밀이라면 죽어서도 당신이 갖고 가야지. 털어놓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가벼워지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폭로하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어디다가 감히 고백이라는 두 글자를 붙여 쓰는가.

내가 말을 잘 들어주게 생긴 모양인지 아니면 넉넉한 몸과 보름달 같은 얼굴이 후덕하게 보이는지, 종종 나에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고백의 대부분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들이다. 즉 제3자의 이야기들이다. 그게 무슨 고백이냔 말이다. 고백은 당사자에게 직접 하는 것이다.

나도 고백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그런 순간이 내게도 오더라. 그 순간은 참으로 간절한데, 잘 생각해보면 오로지 나만 간절한 것이다. 그 간절한 고백이 혹여라도 이기적인 것일 때 고백한 자는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가 된다. 왜 간절한지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기 떄문에 간절한 것이다. 지금 간절한 이가 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고 도치해보면 평범한 일이 된다. 평범한 감정을 고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백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하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이어서 괴롭다면 그 괴로움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답하는 것이다. 말보다는 눈의 깜박임, 손짓, 발짓, 숨소리, 머리카락...... 차라리 그런 아름다운 것들로 하는 것이며, 그것들이 모인 사람의 일생으로 오직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은 없다.


서른셋, 며칠 전에 말을 들었다
:파나마 게이샤 Panama Geisha
서른넷, 알지 못하는 형편
:아메리카노 Americano
서른다섯, 그 눈빛은 무엇입니까?
:에티오피아 미칠레 Ethiopia Michille
서른여섯, 기차가 타고 싶어서
:아이리시 커피 Irish Coffee
서른일곱, 죽어도 나는 못하겠다
:커피 루왁 Kopi Luwak
서른여덟, 동거
:도피오 Doppio
서른아홉, 굴라쉬 수프
:브랜디 커피 Brandy Coffee
마흔, 호수는 낙엽만 떨어져도 상처받죠
:우간다 Uganda Bugisu AA
마흔하나, 이제 살 곳을 정해야 한다
:페루 찬차마요 Peru Chanchamayo
마흔둘, 섬유유연제와 그 남자에 대한 기억
:하와이안 코나 Hawaiian Kona Extra Fancy
마흔셋, 당신
:네팔 굴미 Nepal Gulmi
마흔넷, 벌을 서고 싶어서
:도이창 Doi Chang
마흔다섯, 우리, 절에 갈래요?
:온두라스 Honduras Santa Barbara
마흔여섯, 걱정 마세요
:카페오레 Cafe au Lait
마흔일곱, 그 사람을 제게 주세요
:에티오피아 하라 Ethiopia Harrar Longberry
마흔여덟, 외로워서 커피를 마시는 거예요
:페루 오가닉 Peru Organic
마흔아홉, 북쪽에 방이 있어 다행이다
:인도네시아 블루문 Indonesia Blue Moon
쉰, 오리 마을
:브라질 산토 안토니오 Brazil Santo Antonio
쉰하나, 당신이 잘 보이는 자리
:니카라과 Nicaragua, Honey
쉰둘, 지금을 쓰면 된다
:코스타리카 호르헤 Costarica Jorge
쉰셋, 적당했다
:파나마 보큐테 Panama Boquete

쉰넷, 등을 보며 살았다
:콜롬비아 마라고지페 Colombia Maragogype

길을 걸을 때마다, 두 분의 등을 기억했다. 굽어가는 등을 생각하면서 가던 길에서 멈추기도 했으며 좀더 걸아가보기도 했다. 갈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아니 두 분께서 두려워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러나 그 길을 걸어들어가고 싶어 미쳐 돌아갈 때, 나는 아버지의 등을 생각했고 어머니의 등을 생각했다. 더 굽어질 등 때문이라도 바른길을 가야 한다고 나에게 당부했고, 그 당부가 결국 내 자신을 가두었으나 두 분의 등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으로 지금을 산다. 두 번 다시 두 분의 등이 나로 인해서 굽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고 싶다.

그런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때쯤, 나를 생각하느라 아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부모란 자식이 허물어뜨려도 일어설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살고 싶었던 방향대로 살았어도 어쩌면 괜찮았을 것이라는 것을 자식을 낳고 한참 후에 알았다.


쉰다섯, 혼자 먹어보기
:에티오피아 코체르 Ethiopia Kochere
쉰여섯, 일어서는 중이에요
:케냐 키아와무루루 Kenya Kiawamururu AA
쉰일곱, 이 냄새일 거예요
:인디아 아티칸 India Attikan
쉰여덟, 호텔
:얼그레이 라테 마키아토 Earl Grey Latte Macchiato
쉰아홉, 바람언덕 가는 길
:블랙커피 Black Coffee
예순, 무조건
:가요 마운틴 Gayo Mountain
예순하나, 나를 보고 웃지 않는
:예멘 모카 Yemen Mocha Sanani
예순둘, 목적이 없다
:인디아 아라쿠 India Araku
예순셋, 살고 싶은 사람
:에티오피아 코체르 피베리 Ethiopia Kochere Peaberry

 

예순넷, 가방 들어주는 사람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Papua New Guinea Marawaka Blue Mountain

사람들이 말한다. 커피가 다 같은 맛이지 커피를 어떤 식으로든 구분하는 것은 커피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작정한 후부터라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하거나 공감하지 않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커피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나도 비슷한 생각에 빠질 떄가 있다. 얼마 전에 상담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소개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상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상담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분석하는 일이 사람에 대한 이해나 위로보다는 심리학이나 그와 연계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밥벌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구경꾼이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암묵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듯하기에 내게 물어오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며, 당신이 상담을 해주는 사람의 일생에 대한 깊고 기나긴 숙고 없이 한마디의 말이나 단편적 기록으로 피상담자와 그 주변에 대해 그렇게 단언해서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진정한 상담이란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지 그게 당신 연구를 위한 궁금증에 지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상담가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상담을 해준다는 행위를 자각하고 싶어 상담가가 되었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싶어 상담가가 되었는가?"

그런 말을 하면서 그 말은 결국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스치는 사람에게 이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내게 물었다. 이토록 폭력적인 나의 말은 그를 며칠 밤잠 못 이루게 할 거싱고 결국 그를 위한 약이 되기도 할 것인데, 이 사람에게 왜 나는 넘치고 있는가. 대강 적당히 바라보다 헤어지면 될 것을.

 

그 사람은 웃고 있었지만 붉은 얼굴은 터질 듯하였다. 그 사람은 큰 손짓을 하면서 목소리 높여 밝고 명랑하게 내게 질문한 것을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 나는 성인이고 중간에 나와 그 사람을 소개해준 선량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지인도 있었다. 신발을 신는 곳까지 나와서 나에게 인사해주었다. 나도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내가 신발을 신는 동안 그 사람은 내 가방을 들고 있었다. 신발을 다 신은 후에야 내 가방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의 두 손을 보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더 싫었다. 당신이 내 가방을 그렇게 들고 있으면, 갑자기 진정성 있는 상담가로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음이 조금 편할 뿐이겠지.......


예순다섯, 북창동
:세상의 모든 커피 All the coffee in the world
예순여섯, 과메기 브런치
:더치커피 Dutch Coffee
예순일곱, 거닐다
:브룬디 Burundi Mpanga
예순여덟, 끝까지 감싸안겠다
:에티오피아 첼바 Ethiopia Chelba
예순아홉, 사랑은 왜 이렇게 어렵니?
:인도네시아 토라자 Indonesia Toraja
일흔, 오음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 Guatemala Huehuetenango
일흔하나, 밀양
:에티오피아 이디도 Ethiopia Idido
일흔둘, 사이
:라테 그리고 모카 Cafe Latte and Cafe Mocha
일흔셋, 當身, 사로잡히다
:카페 콘파냐 Cafe Con Panna
일흔넷, 그냥 한번 살아보겠다
:핫 코코아 Hot Cocoa
일흔다섯, 하노이 보드카
:베트남 핀 드립 Vietnam Pin Drip
일흔여섯, 커피값은 제가 낼 테니
:파나마 게이샤 줄리엣 Panama Geisha Juliette

 

나중에 저 모든 커피를 마셔가며 각각의 해당하는 본문을 읽으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보았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겠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올까? 오겠지.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부담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정체 모를 공허함은 채워졌으니.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예순 넷에서 멈칫했다. 위선보다 위악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 챕터의 일화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사람 참 피곤하구나,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도 들었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예민함은 글쓴이가 가져야 할 필수 요소 중의 하나일지언정, 그 칼날이 타인을 향해 있는 사람은 그냥 인간으로서 맞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소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몸에 차오르는 독기를 매번 발산해야 하는 것인지, 그 독기를 글쓰는 데에만 발휘하면 모를까 일상 생활에서까지 분출하는 것을, 글쓴이의 과거 어린 시절과 사생활을 바탕으로 이해해줘야 하는 것인지, 너무 유아적인 태도 아닌가? 나에게는 이런 이런 일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랬나보다, 하고 결론내리는 것은? 글 전체를 보면 저자는 한 때, 혹은 지금까지도 시인을 꿈꾸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좁은 내 소견으로는 시인이란, 다른 사람의 아픔마저 끌어안고 대신 울어주고 껴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그런 사람이다. 독자로서 나는, 스스로의 아픔을 유치하게 남에게 발산하며 거기에 대해 자신의 사생활로 합리화하는 사람의 시는 보고 싶지 않다. 해당 부분을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 부분을 본 순간 이 사람 글은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위로해주는 시가 필요하지, 누군가의 감정 표출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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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8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1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