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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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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에 대한 애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문학평론가는 문학이, 음악평론가는 음악이, 미술평론가는 미술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창작되어진 어떤 것에 대해 시간을 쏟는 것이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 될 정도라면, 당연히 그에 대한 애정은 창작물뿐만 아니라 그것을 창작해낸 창작자에도 미쳐야하며 그렇다면 창작자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은 있어야 할 것이다.
제목이 서평 쓰는 법 이기에, 이 책은 서평을 쓰는 법, 그러니까 how 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 내용이 서평이란 무엇이고 바람직한 서평은 어떤 것인지 what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좋은 서평의 예들을 들어주는 것은 좋으나 그 서평들이 조직화되어 있지 않아 산만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것은 아마도 평론가라는 직업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빗대어서만 주장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좋은 서평의 예로 든 서평 중 '내다 버렸다, 누가 혹시라도 쓰레기 더미에서 집어다 읽을까 봐 군데군데 책장을 찢어서' 등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서평이 있다. 물론 저자가 한계에 대해서 지적하기는 했지만 좋은 서평의 예로 든 것은 맞다. 이 서평을 쓴 평론가는 직접 자신이 돈 주고 산 책만 평가한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기본적으로 저런 평론을 쓰는 평론가는 개인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책이 정말 별로였다면 거기에 대해 더 자세히 쓰면 되지 저렇게 쓰는 것은 평론가인 내가 우월하다는 표시를 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체 글을 읽지 않아 글 전체의 내용은 모르겠으나(사실 저 문장만 보고 전체 글을 구태여 찾아 읽기가 싫어졌다.) 만약 저 문장을 제외한 전체적인 내용이 흠잡을 데 없는 서평이라면 굳이 저 문장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국 본인의 표현력에 자신이 없어 저 문장을 넣은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평론가들 중 전부는 아니고 일부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평을 하면서 다소 과격한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또한 SNS의 시대, 각종 텍스트와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내 말이 묻히지 않게, 내가 더 튀고 싶고 주목받고 싶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저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하고 좋은 서평은 내 기준과는 딱 맞지는 않는 것 같다. 글 전반에서 느껴지는 '평'에 대한 저자의 태도에도 공감이 가지는 않고.
나도 이 책을 내 돈 주고 샀으니 이 정도 평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저자의 생각에 일치되는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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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의사 김종성 영화를 보다
김종성 지음 / 동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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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의사가 본 영화 속 신경과 질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에, 뇌 구조나 신경세포에 대한 그림과 영화 속 장면들이 컬러 도판으로 어우러져 보기 좋은 교양서이다. 다만 너무 많은 영화를 다루려는 욕심 때문인지 다소 장황한 느낌도 들고, 하나의 영화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입문서로는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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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를 부르는 그림 Culture & Art 1
안현신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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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밑바닥, 저 깊은 심연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까? 일상의 세세한 감정들과 군더더기들을 모두 제거했을 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남겨지는 것, 결코 제거될 수 없는 근원적인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 거기에서 비롯되는 해결할 길 없는 불안과 공포일지 모른다.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작품들은 우리들 모두의 내면 가장 밑바닥 어딘가에 있을 그 숙명적인 불안과 공포를 건드린다. 모든 군더더기들을 생략하고 본질적인 내면의 뼈대만을 남겨, 우리도 사실은 모두 이렇게 불안한 존재들이지 않은가를 되묻는다. 인간 실존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의 시선. 뭉크의 그림에선 19세기 말 북구의 음습한 분위기와 더불어 자신의 개인적인 질병과 날카로운 감수성, 어린 시절부터 마주해야 했던 죽음의 공포와 내면적 갈등을 그림을 통해 집요하게 표현해낸 한 예술가의 집념이 보인다.
뭉크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알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나의 그림들은 곧 나의 일기이다”라고 뭉크는 말했었다. 그만큼 뭉크의 그림은 그의 인생 향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으며 그의 자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죽음과 질병, 광기의 세계에 유난히 노출되어 있었던 어린 시절은 평생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노르웨이의 로텐에서 테어난 뭉크는 다섯 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로부터 10년 뒤 누나도 같은 병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경험했다. 이상 성격을 가진 의사였던 아버지와 남동생도 뭉크의 성장기에 사망했으며, 누이동생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뭉크 자신도 정신적, 육체적 질병에 오래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뭉크는 늘 죽음과 질병 가까이에 있었고, 자연히 삶에 대한 불안과 질병이 그의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뭉크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이 문제들과 직접 대결하고 자신의 상처를 응시하며 그렇게 그 공포와 상처를 통과해 나아갔던 것이다.

‘생의 프리즈’ 중에서 ‘사랑’ 연작으로 제작된 이 그림 <키스>에도 이와 같은 뭉크의 성장 배경과 예술적 특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서로에게 녹아들어 하나의 덩어리로 일체화된 두 몸뚱이는 마치 하나의 짐승 같은 모습이다. 홀로 버티기 버거운 존재들이 서로의 경계를 강하게 침투해보지만 그 몸짓은 오히려 불안하고, 채워질 길 없는 사랑의 갈망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붉은색 계열의 색감으로 칠해진 얼굴의 느낌이 어두운 배경이나 푸른 색조와 대비되면서 남녀의 묘한 흥분감과 불안감을 드러낸다. 어쩌면 강하게 포옹하고 있는 남녀는 서로에게서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이다. 상대방의 강한 침투가 나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두려움은 또 있다. 나 혼자 혹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두려움. 두 남녀가 속해 있는 어두운 실내는 창밖의 강한 빛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성은 그림 전체에 긴장감을 가져온다. 두터운 윤곽으로 처리된 벽에 의해 두 사람은 보호받고 있는 셈이나, 바깥 세계로부터의 끊임없는 위협이 언제 닥쳐올지 모를 파국을 이미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공포와 불안을 표현한 예술가, 뭉크. 하지만 죽음에 대한 강박적인 공포는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강한 의지이며 생명의 에너지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사랑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다. 바탕에 깔려 있는 불안과 고통의 정서를 한 겹만 들춰보면 사랑의 에너지, 생명에 대한 갈구가 요동치고 있다. 그래서 뭉크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기쁨과 고통의 동시성, 삶과 사랑과 죽음의 불가분성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은 불안을 잉태하고, 불안은 고통을 가져오며, 고통은 죽음을 야기한다. 어쩌면 사랑 안에는 이미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뭉크는 ‘사랑’을 그릴 때조차도 그저 어떤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유한한고 불안한 존재자로서의 고독한 인간의 사랑, 뭉크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뭉크의 그림에서 정면을 향해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는 클로즈업된 남자의 모습은 강한 자의식의 상징이다. 그것은 뭉크 회화의 두드러진 특색들 가운데 하나인 내면에 대한 응시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항상 자신의 내면을 탐구했던 뭉크는 자화상을 매우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자화상이 아닌 다른 그림에서도 끊임없이 자아를 드러냈다. 그런데 이 그림 속 남자의 표정이 재미있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에서, 분노나 배신감보다는 어쩐지 안도하는 듯한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을 확인하듯, 올 것이 왔음을 받아들이는 듯, 남자의 얼굴은 담담하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긴 했던 걸까? 혹시 한편으로는 여자가 떠나가게 된 상황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던 뭉크는 그림 속에서 여성을 요부 혹은 흡혈귀와 같은 이미지로 많이 그렸다. 뭉크의 그림 속에서 대개 여자들은 성적으로 강하고 공격적이며, 남자들을 괴롭히거나 자신에게 흡입하려 하는 파괴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이는 뭉크 자신의 여성관이 강하게 반영된 모습이다. 뭉크는 성적으로 강하게 여성에게 끌리면서도 동시에 여성의 파멸적 성향을 몹시 두려워했다. 여성이 자신과 자신의 예술을 방해하고 파괴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뭉크에게는 늘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병적 소질들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범죄라고 생각했던 뭉크에게 여성은 가까이 있으면 가까이 있는 대로, 멀어지면 멀어진 대로 힘든 존재였음이 틀림없다.

이 작품보다 이전에 그려진 <질투>(1895)와 <질투I>(1896)에서는 관람자를 향해 있는 남자의 모습이 프시비지예프스키와 매우 닮게 그려져 있고, 그 남자의 표정은 명백한 분노의 감정으로 격렬하게 이글거리고 있다. 또한 그 작품들에서 뒤쪽의 남녀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들고 있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전반적으로 그림에는 강렬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흐른다. 그보다 1~2년 후에 그려진 이 작품 <질투II>(1907)에 이르러서는 배경이 현대의 어느 실내로 옮겨지고 남자의 표정도 다소 희화화되면서 연극의 한 장면 같은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더욱 강해진 반면, 그림의 분위기는 훨씬 여유롭고 담담해졌다.
예술의 강한 치유력을 믿었던 뭉크이기에, 작품 속에서 자신의 문제들과 직접 대결하면서 상처받고 마침내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의 현실적 삶에서 생기는 견딜 수 없는 감정의 짐을 뭉크는 예술이라는 승화된 형태로 옮겨놓았고,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고 극복해갔던 것이리라.
뭉크에게 있어 사랑이 주는 행복은 결코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언제나 죽음이 시작되는 지점이요, 고통인 동시에 형벌이기도 하다. 죽음이 삶의 일부이듯이, 질투와 고통은 사랑의 한 형태인 것이다. 사랑은 매혹으로 시작하여 이별로 끝나게 마련이며, 어쩌면 질투는 사랑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자가 곧 질투하는 자이고 고통 받는 자이다. 언제나 삶 속에서 죽음과 불안과 두려움을 물끄러미 응시하듯이, 뭉크는 이렇게 사랑 속에서 질투와 고통을 함께 본다.

I. 신혼 시절의 일이다. 어느 날 나는 혼자 집에 있었다. 아내는 친구와 함께 시내에 볼일을 보러 외출 중이었다.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내와 함께 외출 중인 친구의 남편이었다. 그는 우리 집에서 자기 부인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한번도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기에, 그는 내게 점잖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매우 고상하고 품위 있는 상류층 인사였다. 나는 그 방문객을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그가 응접실로 들어서는 순간 발로 그의 등을 냅다 걷어찼다. 깜짝 놀란 그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둘러 그에게 의자를 내밀었고, 그 역시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의자에 앉았다.
II. 어머니는 막내 동생과 함께 방을 쓰고 계셨다. 내가 열두 살 때의 일이다. 한밤중에 잠에서 깬 동생은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들을 깨웠다. 집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머니는 어디에도 안 계셨다. 그런데, 집 앞 계단과 보도블록 위에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어머니의 발자국은 밖으로 향해 걸어간 흔적을 남겨놓고 있었고, 그 발자국을 따라 간 우리들은 마침내 그 지역에 흐르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다다랐다. 어머니는 강물에 뛰어들어 익사하셨다.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어머니의 얼굴은 잠옷으로 뒤덮여 있었다. 어머니가 강물에 뛰어들기 전에 두려운 마음 때문에, 혹은 다른 어떤 이유에서 일부러 잠옷을 뒤집어쓰신 것인지, 아니면 소용돌이치는 강물의 흐름 때문에 그리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자살의 원인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III. 위의 개인적인 사건과 기억들은 이 그림 <연인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IV.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불가해한 것,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현실 세계가 바로 그 자체로 미스터리이다. 사람들은 종종 내 그림을 보며 묻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미스터리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내 그림의 이미지들 또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알 수 없고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이 불가해한 세계에 대해 나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눈에 보이도록 시각화하며, 그림을 통해 나의 생각을 교류할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는 사람이기 이전에 생각하는 사람이고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 불가해함 없이는 세계도, 생각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하나의 대상을 보며 나는 그 뒤에 감춰져 있을 수많은 타자(他者)들을 생각한다.
V. 입맞춤을 끝내고 얼굴을 가린 베일을 벗기고 나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만 같은 낯선 사람이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 당황한 당신은 돌연 이렇게 물을지 모르겠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지만 당신의 낯선 연인 또한 대답을 찾을 길이 없다. 혹은 그 낯설음을 참으며,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오래된 연인들처럼 친밀함을 가장한 대화를 나눌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다시 익숙한 태도로 제각기 주어진 ‘고독과 권태의 자루’를 뒤집어쓸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낯설고도 오랜 연인의 매우 달콤하고 다정한 입맞춤의 광경이며 돌연한 두려움의 순간이다.

매우 독특하고도 철학적인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작품들은 우리의 익숙한 감각을 뒤집고 사회의 선입관이나 이미 결정된 관습과 상식을 공격하는 이미지들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그 상징적 의미를 찾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자신의 작품에서 상징적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그 이미지가 지닌 고유의 시정(詩情)과 신비(神秘)를 놓치게 된다며, 이런 태도에 대해 별로 환영하지 않았다. 위에 언급한 일화들은 실제로 마그리트에게 일어났던 일이며, 특히 어머니의 자살 사건은 그의 작품에서 얼굴에 베일을 뒤집어쓴 이미지들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말하지만, 마그리트 자신은 개인적인 과거의 반영이나 심리학적인 투사로 자신의 작품이 해석되고 환원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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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읽을 때에는 강력한 표지에 끌렸다. 책의 첫 장을 읽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흔하디 흔한, 시중에 넘치는, 대중적인 예술서를 빙자한 에세이인줄로만 알았다. 챕터를 넘기면서 점점 책의 내용이 깊어진다고 할까. 다 읽고 난 후에도 여전히 마음은 가볍지만 눅진하지 않고 보송보송하다. 어쩌면 미술에 대한 조예가 얕을 수록 이 책을 더 높게 평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철저하게 비전문가인, 그러나 기웃거릴 정도의 관심이 있는 나에게는, 예술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특히 요즘 들어 고된 하루살이를 하고 있는 나에게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 땀이 산뜻하게 말라버리는 느낌이었다. 달게 낮잠을 자고 난 뒤의 개운함이라고 할까. 읽는 동안 완벽한 휴식이 되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스페인, 노르웨이, 프랑스 등등의 온갖 유적지며 관광지를 돌아다녀도 정작 화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간 적은 없다는 것도 이제 오니 큰 아쉬움이다. 니스의 샤갈 미술관,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 브뤼셀의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 언젠가 꼭 가보리라 다짐하며 꾹꾹 눌러가며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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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현대미술사 - 천재 예술가들의 크리에이티브 경쟁
윌 곰퍼츠 지음, 김세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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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이 언덕에 올라 똑같은 풍경을 역시나 똑같은 카메라로 담는다면 거의 다를 바 없는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열 명이 며칠 동안 언덕에 앉아 똑같은 풍경을 그린다면 전혀 다른 그림들을 그리게 된다. 개개인마다 다른 예술적 기량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두 같은 풍경을 볼 수는 있어도 정확히 같은 대상을 보지는 않는다. 특정한 상황에 처한 개개인은 고유한 편견, 경험, 취향, 지식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해석한다. 대개는 흥미로운 것을 관찰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을 무시한다. 농가의 마당을 그리더라도 누군가는 닭, 다른 누군가는 농부의 아내에 집중할 수 있다. p122

쇼펜하우어의 음악론은 바그너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염세주의자인 쇼펜하우어는 모두가 '의지'의 노예이며 기본적이고도 끝없는 성(性), 식(食), 안전 같은 욕망에 갇혀 살아가므로,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처럼 단조로운 쳇바퀴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방법은 인간에게 초월적이며 지적인 출구를 제시하고 긴장을 해소해주는 예술뿐이라 주장했다. 음악은 추상적이다. 귀로는 들리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음표는 인간이 추구하는 '의지'와 이성의 감옥에 갇힌 상상력을 해방한다. 그렇기에 그의 주장대로라면 모두가 열망하는 얼마간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지고한 예술은 음악이었다. p 217

미술은 나에게 오래도록 접근 어려운 분야였다. 교과서 상에서 시대별로 나열되던 ~파, ~파의 사조들, 시험 때 반짝 보고 나면 다시는 들여다 볼 일 없었고, 그나마 왠지 모르게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알 것 같은 인상파 화가들, 그리고 그림뿐 아니라 작가 개인의 삶마저 흥미로운 후기 인상파의 고흐나 고갱을 제외하면 각 작가간의 구별도 어려웠다고 할까.
이 책은 큐레이터의 글이다. 즉,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많은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위치에 7년간, 그것도 세계 최고의 미술관중 하나인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서 근무했다. 당연히 이 책은 현대 미술의 핵심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예술사와 예술 작품을 다루는 책 치고는 비교적 빨리 읽히고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편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어렵게 강의를 하고 잘 아는 사람이 쉽게 강의를 한다고 하는데 이 책은 읽다가 걸리는 부분이 없지만 한 문단문단마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흘러나온다. 한 번 읽고 나서 다른 책으로 넘어가도 좋고 텀을 두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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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뒤바꾼 아이디어 100 100 IDEAS 시리즈 6
데이비드 파킨슨 지음, 이시은 옮김 / 시드포스트(SEEDPOST)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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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뒤바꾼 아이디어를 선정한 노력을 약간만 빼서 이 책을 바꿀 아이디어를 짜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영화에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진 독자라면 모를까, 100가지 소재도 생소한데 그 소재를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든 영화들 조차도 생소하니 읽으면 읽을 수록 무슨 말인지 모르는 순간이 이어진다. 3d 를 설명하며 아바타를 언급하거나 해리포터와 시리즈 영화를 연결한 정도는 모든 독자가 이해할 수 있지만, 20세기 초반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영화 십여편을 나열하며 그야말로 생소한 개념을 설명하는데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차라리 영화 속 법률, 히치콕 일대기, 정신의학과 영화, 음식 영화등 하나의 토픽을 가지고 깊이 있게 다룬 책들보다 수십배나 많은 영화를 다루면서도 정작 수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 인상을 남기는 것 같다. 백과사전과 같은 구성을 원했다면 차라리 각각의 아이디어 밑에 정의, 개념 등을 바로 구별해서 적어주고, 본문에 나오는 영화들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여 도표로 그려주고, 그것을 다시 본문에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 분량을 좀 줄이고 말이다. 어차피 모르는 영화라면 영상을 보지 않는 이상 정지된 화면을 포착한 사진 자료만으로는 이해도 잘 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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