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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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재이다.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는 독자들도 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치매 걸린 사람의 1인칭 소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살아온 세계가 전부 실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번 깨닫게 되고야마는 자의 절망이 느껴져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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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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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 때부터 전부는 아니어도 간간이 작가의 소설은 읽었다. 기발한 설정으로 시작하여 쫀쫀한 문장이 이어지다 의외의 결말에 도달하는 건 예전부터 있던 작가의 장점인데, 이 책에는 그런 작품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다. 작가가 나이가 들면서 생긴 변화일 수도 있겠는데, 그 변화만큼 재기발랄함은 줄어들고 결말의 찝찝합이 늘어난다. 좋았던 단편은 '오직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두 편 정도.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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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영화 특별 한정판, 양장)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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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십 년이라는 세월 저편에서 그를 찾느라 여념이 없는 그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아니면 스토너 밸리가 굽어보이는 곳에 잠시 멈춰서서, 그녀가 오렌지를 함께 먹으려고 멈췄던 곳이 여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남자든 여자든 그녀의 진정성에 필적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녀 곁에 머물렀더라면, 그는 자신의 삶에 좀더 집중하며 의욕적으로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클래식 음악은 전혀 그의 취향이 아니었지만, 그는 에니스머 사중주단이 저명하며 여전히 클래식 음악계의 존경받는 스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연주회에도 가지 않았고,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박스를 사지도, 아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싶지도, 사진에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고 싶지도, 그녀의 삶에 대한 이런저런 자세한 소식들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녀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싶었다. 단춧구멍에 꽂은 민들레, 벨벳 머리끈, 어깨에 둘러멘 캔버스 가방, 시원시원하고 꾸밈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골격이 튼튼한 아름다운 얼굴을.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그 여자를 자신이 그렇게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이제 그는 그녀의 자기희생적인 제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머리띠를 한 어린 소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대신, 그는 냉정하고 고결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름의 어스름 속에 선 채, 그녀가 허둥지둥 해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겹게 자갈밭을 헤쳐나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작은 파도들이 부서지는 소리에 묻히고, 그녀의 모습이 창백한 여명 속에서 빛나는 쭉 뻗은 광활한 자갈밭 길의 흐릿한 한 점으로 사라져갈 때까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리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언 매큐언의 소설 중 제일 좋은 소설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자 최고의 마무리였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동명의 영화에 나오는 시얼샤 로넌을 정말 좋아하고,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가가 직접 썼다고 하기에 영화를 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설의 감동이 아주 미세하게라도 금이 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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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앗코짱 시리즈 2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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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코짱 2번째 이야기.
회사 안이 전쟁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미생에서 나왔던가?
1권의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같은 회사 안의 앗코와 미치코, 두번째이야기에서는 회사 안의 미치코와 사업을 시작한 앗코,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밤거리를 질주하는 여자 회사원과 옛 스승, 네번째 이야기는 옥상에 맥줏집이 생긴 사무실 이야기가 나온다.
2권의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또다른 회사에 다니는 아케미와 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앗코,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다시 만난 미치코와 또 다른 새 사업을 시작한 앗코,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도쿄에서 간사이 지방으로 내려간 여자 회사원, 네번째 이야기는 구직활동을 하는 졸업반 여대생의 이야기이다. 1,2권 전부 통틀어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네번째 이야기. 프리터가 양산된 일본 사회에서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길을 선택해나가는 젊은이들이 안쓰럽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아케미와 앗코짱의 대화. 이게 시리즈 1권보다 2권이 좀 더 좋았던 이유였다.

"말도 안돼요, 조명 따위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다니. 그럴 리 없어요.”

“그렇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실제로 지금까지 파란 조명을 켜놓은 다른 노선에서도 투신 자살이 훨씬 줄었대. 파란 빛의 효과야. 그것도 이 세상의 진실 중 하나. 사람의 일생을 늘리는 것도 줄이는 것도 그런 별것 아닌, 한심하고, 사소하고, 없어도 아무도 곤란해 하지 않을 것들이지.”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부드럽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아케미는 자신의 손에 든 스무디를 바라보았다.

“나도 알아. 일주일 가지고 인생은 바뀌지 않아. 아침을 잘 먹었다고 해봐야 그런 건 자기만족이고,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도 아니지.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미인이 되는 것도 아냐. 내가 강요한 것은 고작 채소 주스야. 눈의 피로와 스트레스에 좋은 식재료를 아무리 먹어도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이 건강해지려고 하는 의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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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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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
현실은 이렇게 간단하게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아서일까?
정직원에게도 쉽지 않은 회사가 정규직이 아닌 직원에게는 더 어렵고, 그에게 롤모델이자 멘토가 되어주는 직장 상사, 둘 다 회사를 떠나 회사 밖에서 다시 만나는 이야기는 이미 훨씬 더 진중하게 미생에서 접했기 때문일까?
음식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일본 태생의 스토리들에 너무나 많이 노출되어왔기 때문일까?
기대했던 정도는 아니었다.
앗코상의 외적인 모델이 되었을 와다 아키코를 찾아보니 재일한국인이었다. 그렇구나. 책을 읽을 때에는 훨씬 더 부드러운 이미지였는데. 이 책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선배 문화는 일본에서 우리 나라로 넘어 온 줄 알았는데. 점점 개인주의화 되어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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