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취미의 권유 - 무라카미 류의 비즈니스 잠언집
무라카미 류 지음, 유병선 옮김 / 부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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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 불편한 기분은?

 

책을 읽는 내내 불쾌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유명한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공감이 가지 않았던 적도 처음이다. 왜 이렇지? 뭐가 문제지?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답을 알 수가 없었는데, 읽고 나서 만 하루쯤 지나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은,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방법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것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 느낌을 이 책에서 받았다. 책을 낼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이 많고, 그렇다면 성공을 위한 자신만의 마스터 키가 무엇이라고 생각할 사람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유독 이 책에서 내가 불쾌함을 느꼈던 이유는 '본인의 분야도 아닌, 겪어보지도 못한 분야에 대해서 함부로 단정하는' 그 태도에 질렸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직장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가 소설을 쓰게 된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즉, 월급쟁이 생활을 해 본 적이 없거나, 하더라도 길게 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비즈니스 잠언집을 낸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좀 엉뚱하다고 할 수 있는데, 책을 읽어보니 경영자를 초대하여 대담을 나누는 TV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뭐? 그게 어쨌다고? 어떻게 그 단편적인 경험만 가지고 이런 책을 내는 대담함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나는 비록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번 시간이 무라카미 류보다 훨씬 적겠지만, 최소한 월급쟁이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는 그 보다는 더 잘 안다고 생각된다. 감히 말하자면, 이 책은 사랑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이런 저런 연애 서적과 연애 고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애 안내서를 낸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진심으로 이 사람에게 우리나라 드라마 '미생'을 권해주고 싶다.

 

짤막짤막한 글의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글이 너무 짧아서 차마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사라진다. 궤변이라도, 좀 길게 서술하였더라면 꼼꼼히 읽고 되풀이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라도 들겠는데, 이 책은 성의마저 없어 보여 조금 화가 난다.

 

일단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무취미의 권유'를 보면,

 

취미란 기본적으로 노인의 것이다. 너무나 좋아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몰두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것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일로 삼는 프로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중략) 나는 취미가 없다. 소설을 쓰고, 영화와 쿠바 음반 제작도 하고, 전자메일 매거진을 편집하고 발행하지만 이는 모두 돈이 오가고, 계약서를 쓰고, 비평의 대상이 되는 '일'이다. (중략) 취미의 세계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건 없지만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 주는 것도 없다. 가슴이 무너지는 실망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환희나 흥분도 없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성취감과 충실감은 상당한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일 안에 있으며, 거기에는 늘 실의와 절망도 함꼐한다. 결국 우리는 '일'을 통해서만 이런 것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하도 궤변이라 어디서부터 따져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취미란 노인의 것이며, 젊은이들이 몰두하는 취미가 있다면 아마추어가 아니라 일로 삼는 프로가 되라는 말. 만약, 어떤 일에 푹 빠질 정도로 열광하지만 도저히 그것으로는 밥벌이를 할 만큼 실력이 되지 않는다면, 그떄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현실적으로 실력을 늘리기는 힘들 것이고, 그럼 취미를 접어야 하나? 어쩌다 작가는 운이 좋게도 본인의 특기와 취미와 능력이 일치하여 취미를 일로 삼는 행운을 누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 중 정말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예전부터 꿈꿔왔기 떄문에 하고 있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더구나 작가가 하고 있는 그 '일'이라는 것이, 소설을 쓰고, 영화와 음반을 제작하고, 전자메일 잡지를 만드는 그 '일'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일과 무관한 '취미'가 없다면 존재할 수도 없는 직업 아닌가? 소설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 직업적인 이유로 소설을 읽는 사람과, 단순히 소설 읽는 게 즐거워서 읽는 사람과 그 비율을 비교해본다면 후자가 압도적일 것이다. 영화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영화와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쿠바 음반도, 전자메일 매거진도 마찬가지. 이 취미들을 할 때마다 성취감과 충실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떄문에, 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환희와 흥분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그들의 취미를 위하여 그들의 지갑을 열기 때문에 무라카미 류의 '일'이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집중해서 소설을 쓰고 나면 충만감과 성취감, 그리고 정신의 안식을 얻는다. 소설을 마친 뒤에는 휴양지를 찾아서 푹 쉬고 싶다거나 긴장에서 벗어나 풀어짐을 맛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휴양지로 달려가는 것은 소설 집필 말고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할 대이다. 긴장을 풀고 집중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실제 일에서 온오프(on-off)의 구별이 없다. 온 힘을 다하여 맡은 일을 타협없이 끝내겠다는 욕구는 있을지언정 얼른 대충 마치고 즐기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 않는다. "충실하게 일을 하려면 일에서 벗어나 심신을 풀어 주는 오프의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건 무능한 비즈니스 맨을 겨냥하여 상업주의가 퍼뜨리는 거짓말이다.

 

 

이 대목을 읽다가 열받아서 (실제로 하지는 않았지만 심정적으로는) 책을 던지고 싶었다. 대체 충실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 일에서 벗어나 심신을 풀어 주는 오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얼른 대충 마치는 것과 일대일로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에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소진한 후, 다시 재충전하기 위해서 오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직접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다른 소설가들이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한 글을 종종 보다보면, 소설가의 장점이자 단점이 소설을 쓰고 있지 않은 일상에서도 늘 소설로 연결할 수 있는 글감을 무의식적으로 찾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 노는 것이 아니라는 글을 본 기억이 있고, 그와 비슷한 글들을 꽤 여러 편 보았다. 즉, 어딘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아니라면, 자신의 작업실이 곧 집이고 집이 작업실이므로, 먹고 자고 일하는 공간이 늘 같기 때문에 on-off가 쉬운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주장을 비롯해 작가의 상당수의 이야기들은 전부 워커홀릭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회사의 경영자 입장에서 사원들에게 훈시하는 내용의 느낌이 든다. 이쯤 읽다 보면 드는 생각. 대체 이 사람의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이름만 들었을 뿐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이 사람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갈까?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작가의 인상이 달라진다면 기분 좋을 것 같지만, 달라지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그저 무례하고 소통할 줄 모르는 중년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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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medy06 2015-05-2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무라카미류의 글은 이 책이 처음인데 저만 공감이 안 되나 싶었습니다.. 소설도 읽어볼 예정인데 좀 나을런지..;

Andrea 2015-05-29 21:34   좋아요 1 | URL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저는 1~2권 정도 읽었던 것 같고요, 워낙 어릴 때라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 불쾌했던 기억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설은 젊을 때 쓴 소설이었던 것 같고, 현재 나이가 예순이 넘었더군요.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바뀐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성향이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연배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청년같은 생각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심하게 대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의 유사성 때문에 세 살 더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종종 함께 언급이 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비교가 힘든 대상이라고 봅니다. 하루키는 매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고 언젠가는 받을 것으로 예측되는 작가이고, 류의 위상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죠. 아무튼 저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일부러 시간을 들이거나 돈을 들이며 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런 글을 공개적으로 책으로 펴내 쓴다는 것은 대중을 우롱하고 독자를 기만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