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든, 여자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
박금선 지음 / 갤리온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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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엄마 딸 며느리 생활인으로서 살아온 저자가 동시대 여자들에게 전하는 위로.
나와 타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들은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세상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라고, 맘껏 즐기라고 조언하지만 닥치는 일은 매번 내가 좋아하는 일일 수 없고, 늘 즐기며 할 수도 없어서 '나는 왜 여기, 이 자리에 있나'를 끊임없이 묻게 한다. 그런데 나는 즐기며 하는 일의 힘도 믿지만 청취자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억지로'하는 일의 힘도 믿게 되었다. 어쩔 수 없어서 억지로 하는 일이라도 마음을 실으면 그 일은 다른 방향으로 덩굴을 뻗어 가기도 한다. 그래서 즐기며 기꺼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나를 데리고 가기도 한다. 또 즐기며 기꺼이 일을 하기 위해서 당면한 일을 억지로 먼저 해내야 하는 순간도 적지 않다. 그런 때 당장은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결국은 나를 키울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 힘든 오늘을 건너가기가 좀 나아지기도 했다.


‘나이롱’은‘ 진짜가 아니야.’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도‘ 나이롱’이다. 글을 씁네 하면서 치열하게 쓰지도 못하고, 게으름을 부리고, 찬란한 소재와 주제를 찾아내지도 못하니 나이롱 작가다. 엄마 역할, 마누라 역할, 딸 역할, 며느리 역할을 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충 흉내만 내며 살았다.
그러나 나이롱인 나는, 그래도 위안을 찾는다. 나이롱은 보통 질긴 게 아니다. 불에 닿아 구멍이 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선 해지지도 않는다. 색이 바라고 보풀이 일어 흉해질지언정 꿋꿋하게 버틴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질기게만…. 색이 바란 채, 보풀이 인 채 나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좋은 작가가 되는 꿈, 좋은 엄마가 되는 꿈, 좋은 배우자가 되는 꿈. 나는 아직도 낡은 꿈들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다. 나이롱이니까 나일론 같은 정신으로 버티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생활인이라고 생각해. 예술을 하려고 하지 말고 생활인으로 열심히 원고를 쓰고 고료를 받아. 우리는 생활인이야.”
생활인으로 산다는 것을, 버거운 야망을 갖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생활인으로 산다는 것을, 웬만한 건 참아 넘긴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생활인으로 산다는 것을, 아직 그만둘 때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구질구질한 일도 경험하고 치사한 일도 참아 내며 사는 내가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비루하기도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지 않던가. 남들처럼 사는 나의 이름 생활인. 나는 그 이름이 좋아졌다.

내가 만난 청취자들은 마음을 잘 관리하는 지혜를 보였다. 있는 자리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 난관을 무사히 헤쳐 나가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분들의 삶의 지혜를 짐작은 하겠는데,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남긴 표현을 만났다.
“사람들을 돕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거기다가 이 말을 덧붙였다.
“다른 수단은 다 환상이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을 돕는 진짜 방법은 없다고 본 것이다.

조금 살아 보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안 되는 일을 놓아 버릴 줄 아는 것도 용감한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포기는 포기하지 않을 때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포기란 나의 한계를,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고 초라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를 잘하면, 나를 괴롭히던 고집과 욕심과 허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조금 더 현명해진다.

아기와 함께 지내는 건 기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민도 많아지는 일이다. 늘어진 끈으로 머리를 질끈 묶다가 거울 속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에 속이 상한다. 잘나가는 골드미스 친구의 전화라도 받으면 하루 종일 심란하고, 부잣집에 시집가서 육아도 폼 나게 하는 친구를 보면, 그게 꼭 부러워서는 절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배도 아파 온다. 그러다 보면 ‘나라는 여자는 어디로 간 걸까….’ 하는 푸념이 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 <여성시대> 인생 선배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양보와 희생이, 인생을 한꺼번에 제일 많이 배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동안 학습이나 연애에서 한 번에 진도 팍팍 나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므로 육아를 통해 인생 진도를 팍팍 나가는 중이라고 좋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유아기 자녀에게 매달려 꼼짝도 못하는 이 시기를,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짧은 기간 내에 압축해서 배우는 ‘일류 코스’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게 멈춘 듯한 시간들도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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