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는 글쓰기 -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글쓰기의 힘
셰퍼드 코미나스 지음, 임옥희 옮김 / 홍익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순수한 대면으로 향하는 길, 글쓰기
누구나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에 대응한다. 누군가는 해결하려 한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모색하며 해결책을 도출하고자 애쓴다. 누군가는 피한다. 취미 활동을 하거나 다른 일을 통해 문제를 머릿속에서 몰아내고자 한다. 어떤 이들은 과도한 회피 속에서 '중독'이라는 늪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 '옳다'거나 누군가가 '틀렸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겪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단 한가지의 선물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것을 전하겠다. '문제와 순수하게 대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방법으로서의 '글쓰기'다. 곧 글을 쓰기 위한 '종이'와 '펜'이다.

삶의 고비를 극복하는 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첫번째 과정은 바로 '문제와의 대면'이다. 문제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기 자신과의 '온전한 마주함'이다. 그리고 글쓰기는 자신을 만나고 이해하고 안아주기 위한 가장 순수하며 간편한 방법이다. 이 책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는 '치유를 위한 글쓰기'를 말하고 권한다. 저자인 '셰퍼드 코미나스'는 오랜기간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에 시달려왔다. 통증클리닉에서 받은 처방은 생뚱맞게도 '일기쓰기'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일기쓰기는 귀찮음과 핑계속에 좀처럼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절망적인 기분 속에 미친 듯이 휘갈겨 쓰기 시작했고 오후 내내 일기를 쓰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완전한 몰입속에서 내면의 생각과 정서를 토해냈던 것이다. 그 날의 일기는 저자에게 후련함과 평안함을 제공했고 그렇게 저자는 평생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형님과 부모님의 잇단 죽음, 자동차 사고, 이혼, 폐암 진단과 같은 인생의 고비들을 의연하고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왜 써야 하는가, 어떻게 쓸 것인가
책은 총 4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파트1.나를 위로하는 글쓰기의 시작>에서는 치유를 위해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 글쓰기를 위해 유용한 팁들, 흔하게 경험하는 어려움과 대응방법을 다룬다. <파트2.치유를 위한 글쓰기>에서는 글쓰기를 통해 삶의 문제를 극복하고 치유에 이른 사람들의 이야기, 글쓰기가 주는 유익함에 대한 과학적 탐구들, 치유를 포함하여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힘'들을 말한다. <파트3.치유의 글쓰기 연습Ⅰ>에서는 치유의 글쓰기를 위한 소재와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글쓰기에 대한 막연함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실용적이고 친절한 가이드라고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파트4.치유의 글쓰기 연습Ⅱ>에서는 글쓰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삶의 확장을 이야기한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검토하고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창조해나가기 위한 글쓰기 제안이 담겨있다. 더욱 간결히 요약하면 이렇다. '왜 써야 하는가, 어떻게 쓸 것인가.' 마음같지 않은 삶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안아주고 사랑하며, 삶을 창조해나가기 위한 든든한 친구로서의 '일기'를 만나보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글쓰기가 이끄는 치유의 과학적 근거들
77 (...) 사고, 감정, 행동을 억압하고 금지하려면 생리적인 노력이 요구되는데,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에 대해 반응을 억제하거나 무시하려고 하면 몸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스트레스가 인체에 생물학적 변화를 몰고 오고 이런 변화는 육체적, 심리적으로 고통을 심화시키게 된다.

77 (...) 감정의 격동을 글로 쓸 때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건강이 현저히 나아진다는 사실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의 뇌파 활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은 더 희망적이다.
그는 자신의 정서적인 상처에 대해 글로 쓰면 우뇌와 좌뇌의 뇌파 활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묹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페니 베이커 박사가 내린 결론은 한마디로 이것이었다.
 "글쓰기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79 문제에 정면으로 맞설 때, 당사자는 적극적인 문제 해결자가 될 수 있으며 더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됨으로써 더욱 능동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새로운 시도를 시작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대되는 효과를 풍성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은 일의 시작은 오래된 타성과 습관에 의해 방해를 받기 마련인데, 이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떠올리며 첫 발걸음의 추진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체적 효과를 기억하고 상기함으로써 마음의 태도를 분명히 하면서 기대감을 고취할 수 있고, 실제적 효과를 끌어올릴수도 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앨런랭어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똑같은 단순노동을 하면서도, 기계적으로 무심코 일 한 사람에 비해 업무를 통해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운동의 효과를 배우고 떠올린 사람들의 건강이 확연히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글쓰기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탐구들은 나에게 의미있는 배움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저자에 따르면 글쓰기는 억압과 회피가 유발하는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을 이끌어내고, 당면한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즉, 쓰는이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개선하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더 나은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범주와 방향에서 글쓰기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과학적 근거와 함께 제시한다.

대면과 수용을 거쳐 해방과 치유로, 그리고 자유로
92 치유는 수용과 더불어 시작되고, 희망이 치유의 가능성을 활짝 연다. 희망이 보이는 순간 치유의 가능성은 사방에서 몰려든다.

109 어떤 사람들은 불쾌한 것을 피하는 데 능숙하다. 불쾌한 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모든 중독 행위와 강박적인 행동의 바탕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자기부정이다. 하지만 부정과 회피는 문제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면에서 당신의 인체 시스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부정을 통해 내면의 것들을 억압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 붓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맘껏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인생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한다. 부정은 인생을 나락에 머물게 하지만, 정직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필수적인 단계임을 명심하라.

117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배려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배려만 생각한다면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배려할 리 없고,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쏟을 리 없다.
 당신이 하는 것, 당신이 가진 것, 당신이 느낀 것, 당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것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들이 당신을 과소평가한다며 모욕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큰 모순인가?

나의 모두를 용납합니다
마음속에 상처를 갖고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대하는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취하는 방식이 '회피'다. 물론 아픈 고통을 주는 상처를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잠깐의 응시로도 고통스러운데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외면한 상처는 결국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삶의 어느 길목에서 불현듯, 반복적으로 떠오르며 행복을 가로막고 지금 여기의 나를, 그 날 그 곳의 상처앞에 던져놓는다. 이런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페니베이커 박사의 말을 인용하여 말한다.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을 용납하는 일이야말로 건강한 사고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라고. 건강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것'과 만나게 되어있다. 예기치 않은 삶의 길목 어딘가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기 위해 똬리를 틀고 기다릴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단단한 준비와 함께, 내가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든든든한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만나보는 것이 좀 더 낫지 않을까? 비록 고통스럽고 두렵겠지만 말이다. 펜과 종이가 그 용감한 응시의 대지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다.

저자의 해방, 나의 해방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의 글쓰기'를 권하는 이유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저자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기의 힘을 믿지 않던 어느 날 무아지경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해방감과 평온함을 느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앞에서 다루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놀라운 감정에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을 정도로 저자와 똑같은 경험을 얼마 전 겪었다.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로부터 한결 가벼워졌다. 조금은 힘을 빼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몇 해 전 시작한 최초의 글쓰기는 일종의 '메모'로서, 일상을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장단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나 구매목록을 기록하는 노트를 작성하고 기록했다. 얼마 뒤, 자기이해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하고싶은 것들을 기록함으로써 달성하고 획득하는 즐거움을 늘려갔다. 이 모든 글쓰기는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글쓰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고없이 나는, 과거를 향한 글을 쓰게 되었다. 후회와 자책, 두려움과 불안과 같은 부정적 정서들을 직접 대면하고 그 날의 나와 화해했다. 아니, 친절과 연민으로 돌봐주기로 했다. 그렇게 의도한 것이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피와 거부에서 수용과 이해로, 감정과 태도의 변화는 나에게 필연적인 흐름이었다.

65 안네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원했던 정상적인 삶을 대신한 것은 일기였다.
햇빛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있는 한, 내가 그 햇빛과 하늘을 볼 수 있는 한, 나는 결코 슬퍼질 수 없다.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고, 하늘은 짙푸르고, 바람은 달콤하게 불어온다. 나는 욕망을 느낀다. 모든 것을 다 해보고 싶은 강한 욕망을...

강제수용을 피해 작은 다락방에서 2년을 숨어 지냈던 안네 프랑크는 일기를 통해 위안과 희망을 얻었다. 인간의 역사 속 이름이 알려진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왔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왔을 것이다. 곁에 있기에 무심해지는 가족과 친구처럼, 항상 그자리에 있어왔기에 소중함을 잊게되는 자연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치유와 회복과 자유와 풍요로 이끌, 소중한 또 하나의 '친구'를 너무나 쉽게 놓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쓰려한다. 내일의 나를 창조하며, 오늘의 나를 사랑하며, 어제의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돌봐주기 위하여. '인내'는 쓰겠지만 '쓰기'의 끝은 달콤할테니.

 

https://youtu.be/yoYWkU8zWUM

 

나 항상 물러서기만 했네, 나 항상 돌아보기만 했어.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다.
붙어보자, 피하지 않겠다, 덤벼라 세상아.
나에겐 나의 노래가 있다. 내가 당당해지는 무기.

끝으로 달빛요정의 노래를 첨부한다. '치유의 글쓰기'라는 위대한 여정을 시작할 여러분들께, 오늘의 일기가 '용기'와 '무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인용]
26 페니베이커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는 의학보다 예술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53 부정적인 감정의 응어리는 회피할수록 커지지만 정면으로 맞서면 형편없이 작아진다. 글쓰기는 그동안 답을 구하려고 애썼지만 결코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을 어떻게 식별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알게 하기 때문이다. 눈앞의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분별력이 치유에 이르는 첫걸음임을 잊지 말자.

54 진정한 치유는 과가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된다. 글쓰기를 통해 그 녀석의 존재를 액면 그대로 인정해야 진정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 같은 관점의 변화를 통해 당신은 삶 자체를 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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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류시화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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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나의 우주아래 60억 인구가 살고 있지만, 각자의 눈에 비친 우주는 하나하나 특별하다. 하나의 음악을 듣고 다른 추억을 떠올리며, 하나의 문학을 읽더라도 다른 영감을 피워낸다. 그래서 인간을 또 하나의 우주, '소우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대상을 인식하는 각자의, 소우주의 독자적 반응은 흔히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관성과 습관이라고 부르는 반복적 패턴이 그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기도 하고, 취향과 선호가 달라지기도 하며, 나아가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한 변화는 흔히 외적 사건에 의해서 촉발되지만 궁극적으로 변화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자기 자신만이 매조지을 수 있는 일이다.
Between stimulus and response there is a space. In that space is our power to choose our response. In our response lies our growth and our freedom.
-Viktor E. Frankl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이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있다.
-빅터 프랭클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으며, 그 공간에 우리의 자유와 힘이 있고, 그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있다'는 빅터 프랭클의 말. 앞서의 모든 이야기를 단단하게 함축하는 구절이 아닐까.
우리들 각자의 우주는 유일하다. 감각에서 인식으로 이어지는 우리 우주의 빈 공간에는, 우리의 자유와 힘이 존재하며, 거기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우주에 책임이 있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장미를 돌보듯, 우리는 우리의 우주를 돌봐야 한다.

여기 한 시인이 있다. 칼릴 지브란은 예수의 출생지와 인접한, 자연에 둘러싸인 레바논 북쪽 마을에서 태어났다. 시와 그림만을 생각하며 자라나던 소년은 열두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가족들의 헌신과 지원아래 학업을 이어가지만 사랑하는 여동생, 어머니, 형이 연이어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칼릴 지브란은 그 절망감을 예술로 극복해 나갔다. 바로 그림과 문학이다.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갔고 화가와 문학가로 인정받았다.

이 책 '예언자'는 그런 저자의 대표작이다. 예민하고 순수한 '칼릴 지브란'의 영혼에 비친 세계를 작 중 등장인물인 '예언자', '알무스타파'의 입을 빌려 노래한다. 이야기는 섬에 배가 다다르고, 예언자가 떠나갈 채비를 하며 시작된다. 섬의 주민들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진리를 남겨주기를 부탁하고, 이에 예언자가 자신의 깨달음을 풀어내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랑, 결혼, 아이들, 일, 기쁨과 슬픔 등 모두의 일상과 함께하는 존재들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그리고 자신만의 해석과 시적 언어로 지혜를 풀어낸다. 흔히 습관적으로, 일상적으로 바라보고 흘려보내는 우리 곁 존재들의 의미와 가치를 수면위로 띄워낸다. 독자들의 마음에 물음표를 건넨다. 지금껏 여러분이 바라본 세계는 어땠냐고. 그것으로 충분하냐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영혼에 비춰질 세계는, 어떻게 빛날 수 있겠냐고.

24 <사랑에 관하여>
사랑은 저 자신밖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저 자신밖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사랑은 소유하지 않으며 소유당하지도 않는다.
사랑은 사랑으로 충분하므로.

26 <결혼에 대하여>
그러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41 <일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말한다. 열망이 없는 인생은 어둠이고,
지식이 없는 열망은 맹목이며,
일하지 않는 지식은 헛된 것이고,
사랑이 없는 일은 무의미하다.
(...)
그대가 만일 사랑으로 일할 수 없고 싫은 마음으로 일할 수밖에 없거든, 차라리 일을 떠나 사원 문 앞에 앉아, 기쁨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구걸을 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만일 무관심 속에서 빵을 굽는다면, 그대는 인간의 배고픔을 반밖에 채우지 못하는 맛없는 빵을 구울 것이므로.
또한 적의를 품고 포도 열매를 밟는다면, 그대의 적의가 그 포도주 속에서 독을 뿜을 것이므로.

86 <우정에 관하여>
시간을 죽이기 위해 친구를 찾는다면 무엇이 친구인가?
언제나 시간을 살리기 위해 그를 찾으라.

105 <쾌락에 관하여>
그대의 육체는 그대 영혼의 현악기이다.
그것으로 감미로운 음악을 울릴 것인지, 혹은 혼란스런 음을 낼 것인지는 그대에게 달린 일.

일부분씩만을 인용했지만, 단문을 넘어 문단으로, 문단을 넘어 글 전체의 흐름을 함께함으로써 그 울림이 더욱 크게 공명하는 글들이었다. 한 동안 반사적으로 살아온 나에게, 보이는 것만을 보고 습관적으로 반응하던 나에게, '깨어남'의 의지를 충만하게 했다. 무엇을 감각할 것인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가. 궁극적으로, 내 앞의 존재와 어떻게 감응할 것인가. 나의 소중한 우주를 돌보기 위해서 나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할 것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생각나기도 헸다. 칼릴 지브란의 문장이 가진 매력도 충분했지만, 한편으로 니체와 헤르만 헤세의 글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 '예언자' 역시 한결 반갑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고 책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야겠다. 소유하지 않고 소유당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충분한 사랑을 해야겠다. 마치 어린 왕자가 자신의 장미를 돌보듯이. 물론 함께 있되 약간의 거리를 둘 것이다. 하늘 바람이 나와 장미 사이에서 춤을 출 수 있도록. 칼릴 지브란의 순수한 영혼과 사랑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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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맡기는 공부법 - 3번 읽고, 1분만 쓰면 저절로 외워진다
이케다 요시히로 지음, 윤경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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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평]
잘 배웠으면, 잘 외웠으면
마법의 램프를 손에 넣고, 지니의 힘으로 단 한가지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고민끝에 '이것'을 택할 것이다. 바로 '배우는 능력'이다.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은 나로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풍성하고 흥미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에, 한정된 나의 능력에 배움의 속도는 기대보다 더디기만 하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학습'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뇌'의 기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쉽고 빠르게 지식을 늘려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이 책의 독서는 그런 기대감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 '뇌에 맡기는 공부법'은 '뇌과학'에 기반한 구체적 '공부기술'을 담고 있다. 특히 '기억'에 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더 잘 배우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는 나에게 이 책의 독서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어떻게 암기할 것인가'를 위한 실용적 기술들을 갖출 수 있게 된 유익한 경험이었다.

평범한 40대 엔지니어에서 '세계 기억력 마스터'로
25 내가 일본 최고의 기억력을 갖게 된 것은, 뇌의 시스템을 활용해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테크닉을 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억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것은 원래부터 갖고 있던 '뇌의 성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란 뜻이다.
이 책의 저자는 기억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평범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40대에 들어 우연한 기회로 기억력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일본 기억력 대회의 우승을 넘어 세계기억력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인 최초로 ‘세계 기억력 그랜드마스터’ 자리에 까지 오른다. 흔히 뇌는 10대 이후로는 발달시키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기억력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 40대의 나이에 이처럼 뛰어난 성장과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것이 '뇌'에 대해 이해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나이에 관계없이 뇌는 지속적으로 발달하기 마련이며, 어떻게 공부하느냐에 따라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는 학습을 위한 기본적인 태도와 읽기방법, 쓰기방법, 의욕 충전법, 집중법 등이 담겨있는데 나는 두 가지의 키워드가 가장 인상깊게 남았다. 바로 '인풋'과 '아웃풋'이다.

공부의 핵심, '인풋'
88 기억술이란 것은, 외우고 싶은 것을 뇌가 외우기 쉬운 형태로 가공하는 기술이다.
91'왼벽하게 꼼꼼히'가 아니라 '빠르게 여러 번'이 키포인트다.
공부의 핵심은 '인풋'이다. 즉 뇌 안으로 정보를 투입하는 것이다. 같은 정보라도 '어떻게' 학습하느냐에 따라서 기억에 남길 수 있을지, 얼마나 오래 기억할 수 있을지가 달라진다. 우리는 주로 '독해'를 통해 학습한다. 그래서 저자는 '읽기'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방법들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위의 인용문과 같다. '완벽하게 꼼꼼히'가 아닌 '빠르게 여러 번'이다. 교과서의 전반부는 닳고 닳아있지만 후반부는 새책처럼 깨끗한 경우가 더러 있다. 의욕적으로 앞부분을 꼼꼼하게 읽어 나가지만 초반에 너무 힘을 줘버린 나머지, 후반부는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공부를 '페인트칠'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잔뜩 힘을 줘서 완벽하게 칠하는 것이 아니라, 칠하고 덧칠하고 다시 덧칠하는, 반복학습을 통해 강력한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3사이클 반복 속습법'이라는 구체적인 기술을 제시한다.

공부의 또 다른 핵심, '아웃풋'
121 지식이나 생각을 이미지가 아니라 언어로 인식해둘 필요가 있다.
125 공부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혹은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학습 방법이다.
우리의 학습은 주로 '시험'을 통해 평가된다. 아무리 성실하게 열심히 외웠더라도 결국 제대로 '인출'해내지 못한다면 그 과정은 인정받지 못한다. 이러한 '아웃풋'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험과 연결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학습'이라는 '인풋'이 능률적인 '아웃풋'을 통해서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배운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출력해보는 것이 중요하며, 친구에게 설명해주는 것 또한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지식'이 '경험'이 됨으로써 기억이 강화될 수 있고,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는 부분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즉 '뇌 속의 정보확인'과 '기억력 강화'를 함께 이뤄낼 수 있다. 책에는 이 외에도 '1분 쓰기'와 '1분 맵핑'이라는 구체적인 출력 기술들이 담겨있다.

누구나의 더 나은 학습을 위하여
12년의 학창시절을 넘어 취업준비, 자격증, 승진까지 우리의 삶은 긴 '학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암기'는 '학습'의 가장 핵심적인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외우지 못한다면 '시험'이라는 평가의 장소에서 배움을 증명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일반적인 독해법 뿐만 아니라 1000페이지가 넘는 긴 분량의 수험서에 대한 독해법까지 다양한 공부기술들이 담겨있다. 또한 시험장에서의 불안을 대비하는 멘탈관리법이나, 주의집중력을 키우기 위한 '3점 포커스 집중법'도 다룬다. 상황과 관계없이 '더 나은 학습자'가 되기를 바라는 분들께 유익한 독서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용]
45 기억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외우는 능력'즉 '인풋'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와 비슷하게 '기억을 꺼내는 능력' 즉 '아웃풋'도 중요하다.

65 '내가 잘 알고 있는 것, 내 주변에 있는 것이면서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을 찾고, 그것과 묶어서 기억을 저장해두는 것이다.

70 다른 감각을 결합해서 외운다면 기존에 기억했던 정보의 양을 상당히 많이 늘릴 수 있다. 우리 뇌 속에는 더 많은 감각을 이용할수록 쉽게 외워지는 '기억의 프로세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73 뇌한테는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보는 것'과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를 보는 것'이 같은 것이다. 이 점은 정말 우리 인간에게는 절호의 기회이자 최상의 조건이라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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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에 반대한다 -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온전한 삶을 위해
아르노 그륀 지음, 김현정 옮김 / 더숲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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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011년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우리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다. 사태가 일단락되고 일본 국회의 사고 조사위원회 위원장인 구라카와 기요시는 사고 발생원인에 대해 예상치 못한 견해를 제시했다. 사고의 원인은, 일본 감독관청의 입장과 원자력발전소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입장이 같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위가 담긴 상부의 지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복종'이 사태의 숨은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이웃나라만의 일일까? 분노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잊을만 하면 벌어지는 요즘이다. 조금만 더 '의문'을 던졌더라면,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복종'하지 않았더라면, 소중한 생명들을 지켜낼 수, 숱한 슬픔과 아픔들을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 '복종에 반대한다'는 제목에서 저자의 신념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저자는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아르노 그륀.' 그는 1923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나치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야만의 시대였다.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유대인을 향한 인권탄압, 그리고 그것에 의심없이 복종했던 보통의 사람들.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저 그들이 '사악해서'라고 규정하고 비난한다면, 간결하고 속시원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다른 원인은 없었을까? 그렇다면 그 원인이 오늘의 우리에게 작용함으로써, 우리 역시 무책임하고 무자비한 맹종의 폭력을 휘두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6 우리는 이성적 사고를 통해 무비판적인 복종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생각이나 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나 어머니의 제압적인 힘을 통해 우리에게 깊이 뿌리박힌 하인 근성이다. 어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런 하인 근성을 따를 수밖에 없었으며, 부모가 우리에게 휘두르는 힘을 인식하지 못한다. 부모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존재, 우리를 위해 최고의 것만을 바라는 친절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인의 하인근성은 부모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 깊이 뿌리내릴 수 있다. 아동기의 과도한 억압이 개인의 정체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나치 독일 시대의 시민들이 자라온 성장배경을 짚어보며, 그들이 행한 비상식적 복종 뒤에 숨어있는 '인과성'을 확인한다. 문제는 그들의 '악함'이 아니라 아동기의 성장배경이었던 것이다.

26 우리는 끊임없는 생존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 모든 것은 생존 경쟁으로 표현된다. 이 생존 경쟁의 목표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지 않는 것, 무엇보다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삶'이라는 것은 아주 불합리하다. 두려움을 잠재우거나 거부하면 인간에게서 원초적 생명력을 찾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과 느낌, 인간적 동정을 표현하는 삶 대신, 그 자리에 무력감에 대한 불안이 끊임없이 똬리를 튼다. 그리고 그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뿌리깊은 '하인 근성'이 일으키는 문제는, 명령과 지시에 의해 타인에게 휘두를 수 있는 폭력의 가능성에 그치지 않는다. 해소되지 않은 욕구와 무력감에서 발현된 불안감은 공격자와 자신에 대한 동일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신에 대한 압제와 폭력을 정당화시키며, 자발적으로 다른 약자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 사이의 서열을 공식화하는 권위주의 문화, 자녀를 소유품처럼 취급하는 부모들, 뿌리깊은 군대문화 등, 오늘의 우리 역시 '복종'이 만연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마음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면에, 만연한 당위와 복종에 의해 자기로부터 소외될수밖에 없다는 본질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101 복종에 예속되어 자신의 뿌리를 상실함으로써 무력감을 느끼게 된 인간은 권력과 소유권을 다시 찾기 위해 몸부림치며, 그로 인해 정신적 압박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며, 이는 노이만이 말한 것처럼 '죽음의 무도'로 이어지는 순환의 시작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내가 원하는 것' 보다는 '타인이 어떻게 볼까'에 무게중심을 둔 채 살아왔다. 그것은 분명히 '배려'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안전'을 지향하는 '순응'의 태도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안의 일부분은 분명히 소외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소중한 나의 행복의 기회도 함께 흘러나갔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뒤늦게라도 복종에 맞서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공감능력을 강조한다. 용기와 관심, 열린생각이 지닌 힘도 일깨운다. 

내 안의 소외된 나를 돌보며, 복종의 압제에 소외된 타인을 발견하며, 공감과 용기의 힘으로 언제까지나 '복종에 반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인용]
60 권위에 매달리기 위해 자신의 본질을 억누르면 증오와 공격성이 생겨난다. 문제는 이런 증오와 공격성의 대상이 억압자가 아닌, 다른 희생자를 향한다는 것이다.

89 복종은 권력의 토대를 마련한다. 그리고 분노를 유발시킨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쌓지 못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분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권력자와 하나가 되기 위해 자신을 타자로 만들어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증오도 똑같이 그대로 존재한다.

126 복종은 파괴적이다. 또한 복종은 사고를 제한하며 현실을 부정한다. 현실 전체는 그저 권력자의 단기적인 전망에 따라 제한되고 한정될 수 없다. 더 나은 세상은 유토히아의 환상이 아니다. 더 나은 세계는 현혹된 복종이 사람 사이의 진정한 공감으로 바뀔 때 눈 앞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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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끝이 있습니다
요로 다케시 지음, 장현주 옮김 / 경향미디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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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읽기]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무엇을 회피할 것인가, 과거를 곱씹을 것인가, 미래를 지향할 것인가, 과정을 중시할 것인가, 결과를 중시할 것인가 등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지금 여기'의 선택이 달라진다. 선택이 달라지며 삶의 작은 줄기가 달라지고, 장기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사소한 선택이 사소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선택의 결과를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삶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의 무게를 짚어보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가 지나온 인생의 변곡점들을 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과정에서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 '누구나 끝이 있습니다'는 한 사람의 인생론을 담고 있다. 평생을 살아오며 다듬은 삶의 철학과,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중요한 사건들을 사회적 맥락과 함께 짚어본다. 저자인 '요로 다케시'는 1937년생으로 평생을 해부학자로 살아왔으며 현재는 도쿄대 명예교수 직함으로 저술과 강연을 이어오고 있다. 『바보의 벽』, 『신체를 보는 법』, 『유뇌론』 등 다양한 책을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며,  『바보의 벽』 같은 경우, 일본에서 400만부가 넘게 팔리기도 했다. 이 책에는 전쟁 후의 사회상을 경험한 세대로서, 해부학자로서, 교수로서, 무엇보다도 요로 다케시 본인으로서 경험한 삶과 사색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148 아무리 '옳은' 목적으로 행한 것이라도 일종의 '양심의 가책'이 결여된 사회운동을 나는 의심합니다. 의심하는 것이 버릇이 됐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원리주의란 뭔가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148 문제는 '자신이 옳은가?'가 아닙니다. '그것이 정말로 옳은가?'입니다.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학문입니다. 그 일이야말로 발 '당연한 것'입니다.

150 내 연구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쫓겨났을 때 진심으로 화를 냈습니다. ... 몰려온 학생들도 실은 나 정도로 진심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설마 내가 '진심으로'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학생들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내가 진심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위가 '폭력으로' 부서져 버렸으니까요.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은 키워드는 '순수'와 '진심'이었다. 저자는 도쿄대 교수로 있을 때 전공투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실에서 쫓겨났던 이야기를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분개한다. 아마 저자가 월급을 받기위해서 교수직을 수행했더라면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의 말 그대로 그는 연구에 대해서 진심이었다. 순수한 행위가 폭력에 의해서 방해받았을 때 진심의 분노를 경험한 것이다.

154 나는 순수행동주의자입니다. ... '순수행동'이란 그 자체에 의미가 존재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것을 평가하는 것이 순수행동주의자입니다. 나의 곤충 채집이 그렇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권력을 위해서도, 무엇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 오직 순수행동만 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천진난만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 그래서 대학에서 연구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오면 어딘지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삶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구절이었다. 순수하고 여리고 진실한 학자가 전하는 삶의 내밀한 고백을 마주하며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한 사람이 경험한 삶의 고비들을 들어보며, 내 삶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을 짚어보게 되었다. 한 사람의 신념과 철학을 만나보며, 내가 수립한 내면의가치체계는 진정으로 타당한지 돌아보게 되었다. 삶을 만남으로써 삶을 돌아보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인용]
62 이미 해 버린 이상, 그 결과가 좋은 쪽으로 향하도록 나머지 인생을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끝난 일에 대해서는 투덜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95 시간이 흐르면 세상은 변합니다. 그뿐입니다. 그럼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내 관심사였습니다. 학문이란 언제, 어디서라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옛날 사람들인 진리라고 불렀습니다.

160 '대학이란 무엇인가?', '연구란 무엇인가?' 그 해답은 그것을 평생을 바쳐 추구하는 것입니다.

166 '정말로 옳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공식적으로 나와서는 안 됩니다. 그런 대답이 정부에서 나오면, 그것만큼 섬뜩한 것은 없을 테니까요.

209 생각하는 것이든 몸을 움직이는 것이든 과정을 분석하여 그 각각을 훈련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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