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인열전 2 (반양장) - 고독의 나날속에도 붓을 놓지 않고
유홍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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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생, 한번쯤 가져보았을 의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윤회와 전생을 믿고 인연설에 동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꿈에서 전생의 기억을 본 신비한 경험이 있다거나, 전생체험을 위해 최면에 뛰어들만큼의 용기는 없다. 그런데도 전생에 대한 호기심은 저버릴 수 없다. 나는 전생에 무엇이었을까? 현세에 있는 어떤 일이 전생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이 사람은 전생에 나와 어떤 관계였을까?

어릴적 나는 그림을 그렸다. 입시미술을 준비할지 말지 그 기로에서 결국 핸들을 돌렸다. 오로지 그림만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고, 삶에서 곁에두고 즐길만한 벗으로 삼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것이 그때의 생각이었다. 지금은 다른 길을 꿈꾸며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하나의 미련으로 남아있다. 아마 그림과 거리를 둔 계기가 그리 유쾌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 전생이 그림과 밀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확률적으로 따져보면 무수한 전생 중에 하나 쯤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유명한 화가가 아니더라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전생이 있다면 나는 봉건사회나 신분제 사회 속의 미천한 신분이었을 확률이 더 높다. 조선시대만 보더라도 일반 농민과 노비의 비율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전생은 그림과 관련되어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화인열전을 보며 그런 허무맹랑한 바람이 더욱 커졌다. 화인들의 삶 속에 언제나 그림이 있었고, 그것을 나눌 벗들이 있었다. 예술적 교감을 한다는 것, 그것은 정말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일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런 화인들의 삶에 심취했는지도 모른다. 현재 내가 바라는 삶이 그런 삶이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화인열전 제2권에서는 제1권과 마찬가지로 네 명의 화인을 만나게 된다. 현재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호생관 최북 그리고 단원 김홍도. 사실 제1권을 읽으면서도 화인으로서의 삶이 멋지게 느껴지긴 했지만, 쓸쓸한 느낌도 피할 수 없었다. 제2권 역시 그렇다. 집안과 개인을 떼어 생각하기 더욱 어렵던 그 때에 더욱 힘들었을 현재, 당대에도 호불호가 갈렸지만 문인화의 정석을 보여준 능호관, 그림 그리고 팔아 하루 먹고 살던 호생관 그리고 불세출의 화가 단원.

 

 

 

심사정 <황취박토도> 

 

 

단편적인 그림은 본 적이 있어도 그 화가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지 못했다. 가장 유명한 화가인 김홍도에 대해서도 풍속화로 유명하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런 얇팍한 지식과 관심에 부끄러워 절로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었다.

제1권에서 겸재 정선의 이야기가 책의 반에 할애한 만큼, 제2권에서는 김홍도의 이야기를 반권에 담았다. 김홍도가 이렇게 놀라운 화가인줄 몰랐다. 단순히 풍속화에 능한 것이 아니라 기록화, 인물화, 산수화 모든 분야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단원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것이 본능적이건 아니면 노력을 해서 알았던간에 그림을 화폭에 아릅답게 담았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김홍도 <군선도>

 

 

많은 작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군선도>가 마음에 든다. 군선도는 도교 신선들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이야기가 들리는 듯한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는 재미가 있고, 계속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신선 그림이 있다. 유교가 전반적인 이념이었지만, 도교 역시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심사정 <하마선인도>

 

이 그림 역시 신선도 중 하나이다. 심사정의 작품으로 <하마선인도>이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고 심사정의 자전적인 느낌이 담겨있다고 했다. 세상을 향한 울분을 내뱉는 모습을 투영해서 그린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한 것이다. 이 그림은 손가락에 먹을 묻혀 그린 것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더 독특한 구석이 있다. 이 그림이 마음에 드는 건, 신선의 표정도 리얼하지만 개구리의 모습이 정말 깜짝 놀란 것처럼 살아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귀엽게 까지 느껴진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은 참 매력적이다.

 

 

 

 

 

 

김홍도는 천재성을 발휘하면서도 성품이 올곧고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고 한다. 반면 최북은 날카로운 구석이 있어 사람들에게 직언을 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 일화들이 굉장히 재밌는 것이 많아서 보는 내내 웃었다. 만약 나에게 그런 직언을 했다면 조금은 마음이 상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는 이야기이다보니 재밌게 읽게 되었다.

 

최북 또한 재능이 있었지만, 김홍도와는 다른 천재성이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일화나 그림을 봐도 성품 자체가 꼬여있다기보다 굉장히 솔직하여 그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최북의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왼쪽의 <풍설야귀인>이다. 분위기도 그렇고 중간에 그려진 나무가 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마 조금은 무섭지만 매력적인 최북을 드러내주기도 하는 것 같다.

저자는 '술'과 인연이 깊은 두 화가, 김명국과 최북을 비교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나에겐 참 흥미로운 비교가 아닐 수 없었다. 김명국은 술의 힘을 빌어 멋진 작품을 그려냈는가 하면, 최북은 평소 술을 입에 달고 살아도 그림을 그릴 때에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아니했다고 한다. 참 재밌는 비교인 것 같다.

화인열전에 소개된 화인들 외에도 정말 많은 화인들이 있을 터. 조선시대의 예술세계를 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아마 이 책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듯이 생생하게 그들의 모습을 그려준 덕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감탄스러운 것은 과연 이런 분이 석학이구나 싶은 것이었다. 유홍준 교수 덕에 즐거운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특히 예술에 대해, 화인들에 대해 애정이 느껴져서 굉장히 미소를 짓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서문에 나와있는 것 처럼, 나는 우리 미술보다 서양 미술 그리고 반 고흐, 피카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화인 열전을 통해서 우리 미술과 우리 화인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 미술이 그들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여기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미술만을 좋아하고 사랑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민족과 국가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우리만의 그 무엇을 알게 되어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삶에서 반 고흐의 작품이나, 김홍도의 작품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것 같아 뿌듯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미술에 대해 보다 깊이 있고 풍성하게 즐기며 사랑할 수 있을 자신이 생긴다.

화인열전 속 그들의 삶을 보며, 그리고 그들의 그림을 보며 나는 다시금 붓을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훗날 그림을 벗으로 삼을 것이라는 기약없는 다짐보다, 메모지 한 쪽 귀퉁이에라도 그림을 통해 나를 표현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꼭 명작이 아니어도 좋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니까. 전생에 그림과 연관있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비현실적으로 꿈꿀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작은 공간에도 그림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닐까? 조선시대 화인들은 직업도, 시대도, 형편도 다 달랐지만 그들의 가장 큰 교집합은 그림 그리는 것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나도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며 즐겨야겠다. 마치 화인들이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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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1 (반양장) -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유홍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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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림'은 평면 위에 펼쳐지는 2차원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이상의 차원이 느껴지는 예술이다. 내 삶에서 미술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고, 소통했으며 성장했다. 지금은 벗으로 삼으며 국내외 그림을 감상하거나 관련 서적을 읽으며 깊이를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림을 접하면 접할수록 인문학적 깊이가 더해지는 기분이 든다. 단순히 내 삶의 멋 중의 하나였던 그림이, 이제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림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보니, 요즘 읽는 책도 그림에 관련 된 것이 많았다. '한 눈에 반한 우리 미술관', '손 안의 박물관' 등 특히 우리 미술에 대한 책을 접해왔다. 그러다보니 좀 더 깊이있는 책을 탐독하고 싶어졌다. 화인열전! 순간 책 제목이 머리 속에 스쳤다. 우리집 책꽂이에 오랫동안 꽂혀있던 책이다.

 

 

책을 집어 들어 서문을 보니, 참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우리는 '반고흐'나 '피카소'보다 우리 화가를 모르고 있지 않느냐고. 나 역시 그러하다. 오히려 플라톤이니 소크라테스니 서양철학은 많이 접하면서도 정작 우리 철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독서에 임하게 되었다.

 

 

화인열전은 총 8명의 화인을 소개한다. 제1권에서는 연담 김명국, 공재 윤두서, 관아재 조영석, 겸재 정선의 전기를 담았다. 겸재 정선에 대한 이야기의 양은 제1권의 절반에 해당한다. 사실 정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저자는 밝혔는데, 그 만큼 심도 있게 채우려 노력한 듯 하다.

잘 몰랐지만 최근에 접하게 된 연담,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역시 최근에 접한 관아재 그리고 유명한 겸재. 남아있는 기록에 근거해서 그들의 일대기를 소개해준다. 이들은 문인화가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벼슬을 지냈는지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있어 추적(?)이 가능한 것이다. 나이듦에 따라, 인생의 굴곡에 따라 변하는 그림의 깊이를 살펴볼 수 있어서 좋다.

 

 

조선시대 때는 다양한 선비들이 서로 뜻을 함께하여 우정을 나눴다. 조영석과 정선 그리고 그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었던 흔적을 소개해준다. 그런 점이 참 재밌다. 서로 그림을 그려고 보여주고 그 그림에 맞게 시도 짓는다. 벗이 먼 곳으로 부임하기 위해 떠날 때에는 그림을 그려주고, 또 그려주길 청한다. 참 낭만적이지 않은가? 난 이런 것을 프로그램에 녹여서 기획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화인들의 일대기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을 다하고 떠날 때에 다다러서야 명작을 그린 것이다. 지금 수명으로 본다면 내가 명작을 그릴 수 있을 때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싶은 것이다. 내게 타고난 천재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하늘에서 재능을 내려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한 걸음씩 걸어가며 쌓은 세월을 녹여야만이 명작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급한 마음이 어느 정도 가신다. 빨리 원하는 것을 하고 싶고, 빨리 원하는 것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지금의 내가 사실은 당연한 것이라고 위로가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시간의 흐름에 맡기기엔 내 시간은 정해져 있고, 또 욕심도 놓아지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선인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시간이 가져다주는 깨달음을 앞당기려는 노력뿐이다.

 

 

또 하나. 화인들의 그림에서 이들의 그림이 아닌 것 같은데 이들의 그림인게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정선이 본인 스타일이 아닌 그림인데, 시도해 보았던 그림. 물론 미술학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다른 그림에 비해 평가가 떨어지는 그림이기는 하나, 그런 그림을 그림으로써 본인의 스타일을 더 풍성하게 하고 굳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잘못 된 길을 들어선 것이 인생의 오점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길로 갈 수 있던 발판이라는 것. 분명한 것은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고 공부함으로써, 그 다음에는 더 좋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참 멋지지 않은가?

 

 

이번 화인열전을 통해 정말 많은 그림을 접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명작부터, 화인들의 초기 그림까지. 교과서에는 그 화인 인생의 최대 명작 한 점만이 실리지만,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그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명작만을 기억하지 않는가? 사실 물리적 한계로 교과서 등지에서 여러 작품을 실을 수 없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 제한되는 점도 있다. 그러나 명작 뒤에는 반드시 수 많은 습작들이 있다는 것이 큰 가르침이다. 내 인생에서 아직은 습작을 그리는 단계인 것 같다. 그런데 벌써부터 나는 명작에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닐까?

 

 

아! 다른 책을 볼 때 궁금증을 가졌던 것이 해결이 되었다. 문인화가들 중에는 환쟁이라 불리는 것이 꺼려져 그림을 잘 그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겸재 정선은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자유롭게 그렸지만, 관아재 조영석의 경우에는 그런 사태를 염두해서 그림을 자제했고, 심지어왕명에도 불구하고 붓을 들지 아니했다. 대체 왜 그럴까 싶었다. 속내(?)는 이러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원 출신의 화가들은 '중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인화가인 양반과는 신분이 다르다. 환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양반이 중인이 하는 그림을 그린다고 비아냥댄 것이다.

 

 

이 책에는 안 나왔고, 제 2권에도 안 나왔지만 '이징'이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내가 느끼기로는 그림 그리는 기술은 뛰어나지만 그 속에 혼이라든가 정신을 담지 못했던 화가로 평가되었던 것 같다. 이전에 봤던 책에서도 그림은 참 화려했는데, 동시대 비평가들에게는 아주 참혹한 평을 들은 것이다. 나 역시 그 평을 봐서 그런지 그림이 화려하게는 느껴지나 어떤 호감은 느끼지 못했다. '이징'에 대해서는 따로 알아봐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참 즐거웠다. 잘 몰랐던 화인 네 명을 만나는 계기도 되었지만, 무엇보다 깊이 있는 자료들에 감탄했다. 그런 자료들 덕에 정말이지 화인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남긴 그림의 색깔이 저마다 다른 만큼, 화인들의 성격 또한 달랐다. 기록 하나 하나에 또 행간에 숨어있는 해석을 통해 인간 김명국, 윤두서, 조영석 그리고 정선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화인들에 향한 애정어린 저자의 시각이 잘 느껴져 역시 즐거움을 더 했다. 나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한국판 닥터후를 만든다면, 이 책에서 만난 화인들을 영상으로 그려내보고 싶다. 이제 제2권을 통해 다른 네 명의 화인을 만나보아야겠다. 그림이 단순히 2차원이 아닌 이유는 바로 그것에 있다. 획 하나에, 농담 하나에, 여백에도 화인의 혼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그 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고차원의 예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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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쿡 - 누들로드 PD의 세계 최고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이욱정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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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계획적으로 사는 편이다. 한 번 읽고 말건 빌려서 보고, 소장하고 싶은건 사는데 그 기준도 까다로워서 이리 재고 저리 잰다. 나란 사람 만화책 외에는 봤던 책을 또 보는 것이 힘겹기 때문이다. 내가 봤던 책을 또 들여다보는건 밑줄 친 부분을 발췌하기 위한 경우 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연에 기대어 운명의 책을 사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올 초 내일로 여행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다른 준비물과 함께 영화와 드라마를 폰에 꾹꾹 눌러담았다. 혼자 여행하기 때문에 기차 안에서나 시간이 남을 때 심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아이폰의 특성상 배터리가 빨리 닳아, 스마트폰 이외의 즐길거리가 필요했다.

집에서 아무리 골라도 마음에 차질 않았다. 그래서 여행 첫 날, 서울에서 서점에 갔다. 내가 손이 가는 책은 몇권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제일 호감이 가는 책은, 도서 구입 제1규칙에 해당하는 '한 번 읽고 말 책인가'에 제대로 명중하는 책이었다. 게다가 인터넷서점으로 사면 더 할인되는데 이런 짜디짠 생각도 하며 망설였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잠재우고 이 책을 구매했다. 그만큼 이 책이 매혹적이었다. 바로 <누들로드>의 이욱정 PD가 런던의 요리학교에서 고군분투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 한 문장에도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첫째 '외국 생활'을 담았다는 것. 특히 런던! 둘째는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 세번째로는 저자가 'PD'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에겐 마지막 이유가 주효했다. 언어적 감각이 뛰어난 방송직군은 기본적으로 글솜씨가 탄탄한 것 같다. 그들이 쓰는 간단한 메모도 재밌다(고 과장해본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끌려서 데려온 이 책,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정말 재밌게 읽었디. 소리내서 피식거리기도 하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한 번 보고 말 책이라는건 취소! 언젠가 꼭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진 책이다.

도전하고 또 요리학교 친구들과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PD의 센스를 볼 수 있던 것도 좋았다. 피디의 자격이라고 해야하나.

요리학교 도전기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하기 전에, 선생님들과 학교학생들에게 촬영동의를 구해야하는데 여기서 한 학생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지?"라고 했을 때 이욱정 피디는 이렇게 말했다. "니가 나중에 세계적 셰프가 됐을 때, 니가 요리학교에서 공부한 기록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겠어!" 이런 식으로 동의를 얻어냈다. 또 누들로드의 사회자 켄 홈을 섭외할 때도 기지가 빛났다. 이런 센스와 넉살을 배우고 싶다!

 

 

 

 

 

 

 

피디 답게 요리프로그램과 또 요리책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나는 EBS를 참 좋아하는데, 영상물에 그치지 않고 출판까지 해서이다. 소비자에게도 보다 정리된 컨텐츠를 접하고 또 회사로선 수익도 올릴 수 있는 윈윈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나도 이런 원소스멀티유즈를 생각하며 프로그램을 그릴 때가 많은데, 요리 쇼 천국인 BBC또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요리책을 출판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욱정 피디는 세계적으로 음식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의 그 배경 중 하나를 요리책을 꼽았다. 상당히 설득력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제 아무리 한식이 세계 탑 몇 위에 오른다 한들 더 유명한 것은 일식 등이다. 레시피 계발과 레스토랑 점유율 등 많은 이유가 있다. 나는 굳이 한식의 세계화를 해야하나?는 회의적인 입장이기도 하지만 이왕 할꺼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지난 해, 올리브에서 한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1을 재밌게 보았다. 후반에 가서 프로그램 긴장감 조절은 조금 실패했지만, 꽤 잘 만들어진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시즌2를 하고 그에 앞서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셀렙편도 재밌게 보았다.

프로그램의 재미와 별개로 입방아에 오른 것은 지나친 간접광고였다. 시즌1에서는 토마토소스스로 점철되었는데 이번엔 어떨지 모르겠다. 자회사인 CJ의 제품 또 프로그램이니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갑자기 마셰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런 프로그램으로 오히려 국민적 관심을 끌고 레시피를 개발하고 식당을 세움으로서 요리문화가 더욱 발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공중파가 아닌 자회사 제품을 홍보하는 CJ채널에서 말이다.

 

 

 

 

 

 

 

 

이욱정PD는 책에서 한 사람의 스타셰프라도 절실히 필요하다 했다. 그 한 사람이 싸이처럼 한식스타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말을 잘하는 것도 좋은 셰프의 조건이기 때문에, 방송에서 배출되는 셰프가 한식을 이끌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바이벌 방송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요리실력뿐만 아니라, 시청자에게 매력적인 말솜씨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서바이벌에서 살아남는 출연자의 조건은 좋은 셰프의 조건과 상당히 유사하지 않은가!

이욱정 PD도 또 다른 요리 다큐를 계속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 또한 기대가 된다. 요리를 주제로 한 방송은 노래나 춤과 달리 감각의 재현이 어려워 왠지 억울함 반과 궁금함 반을 가지고 보게 된다. 그럼에도 좋은 요리 방송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도 이런 방송에 대한 이상을 꿈꿔보게 하고, 또 나의 관심분야에 깊게파고들어 도전 하고 싶게 만든 이 책, 정말 잘 읽은 것 같다. 내 마음을 구석구석 '쿡쿡' 찔러댄 책이다. 그간 조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도전과제들을 다시 앞으로 모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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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만큼 성공한다 - 개정판, 지식 에듀테이너이자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제안하는 재미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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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때문에 힘든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얼마나 매혹적인 성공법인가? 치열한 경쟁 속에 많이 힘들었을 마음을 달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건넸다. 그러다 이 책이 다시 생각난건 올 해 초였다. 얼마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구직생활로 뛰어든 나는 불현듯 '노는 만큼 성공한다'가 떠올랐다.

 

 

이 책을 친구에게 선물한 까닭은 막연한 위로를 하기위함이 아니었다. 제목 자체가 나의 신조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것을 즐기면 자연스럽게 부와 명예가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 책을 빌어 친구에게 전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내가 구직생활에 다시 뛰어드니 방향키를 잃은 것이다.

 

 

 

 

 

 

 

이 책이 생각난건,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잠시동안의 직장생활을 하며 나는 너무나도 피폐해져 있었다. 다시 원래 나의 페이스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여행도 하고,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정화시켰다. 그러면서 점차 원래의 나로 돌아갔다. 그중에서도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학창시절, 나는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전형적인 학생이었다. 학교 수업보다 만화 동아리 활동을 사랑했고, 교과서보다 백지 위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을 새서 원고를 해보기도 했다. 틈이 나면 그림을 그려서, 만화 잡지에 그림을 보내보기도 했다. 그림이 실린 날에는 정말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친구들과 릴레이 소설을 쓰는 걸 좋아하기도 했다. 또 나만의 소설을 써서, 친구들을 독자로 초대했다. 친구들이 공책 표지에 감상을 적어주면 그 기분은 정말 남달랐다. 지금으로 치면 코멘트로 감상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니까 나는 자발적으로 즐기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PD로 나아가기 위해 다독, 다작, 다상량을 하면서도 그 과정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마치 억압하듯이 자제하게 되었다. 특히 일을 하게 되면서 정점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깨달은 것이다. '몰입'을 즐기며 한 걸음씩 걷덛 나는 온데간데 없어진 것을 말이다. 과거의 나를 곱씹어보니, 참 행복했던 것 같다. 지금과 비교해보니 너무나도 달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회였다.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이 변화를 인지한 것이 감사했다.

 

 

 

이 책에서는 '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의 1장에서 보듯이 '한국, 놀 줄 몰라 망할지도 모른다'처럼 노는 것에 대해 사회문화적으로 분석한다. 대한민국이 불행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득력있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불행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새삼 취미가 많고 몰입을 즐기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것이 감사해졌다. 한편으로는 '자존감'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부모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자존감'이라는 말처럼, 행복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책 중에 좋아하지 않는 부류가 있는데, 바로 자기계발서이다. (그런데 아이너리하게도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었다) 자기계발서는 마치 채찍질을 당하는 것 같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릎을 꿀리는 느낌이 든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며 경쟁을 더욱 부추긴다. 그리고 즐기고 노는 것을 죄악시 한다. 오로지 일, 일, 일! 저자도 그 점을 꼬집어서 한편으로 참 통쾌(?)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가정 놀이'였다. 아이들이 '가정 놀이'를 하며 창의성을 키우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시각이다. 이를테면 병원 놀이를 하면서 한 사람은 의사, 또 한 사람은 환자가 되어서 논다. 가정된 상황 속에서 놀이를 재밌게 즐기기 위해서는 그 역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가도 놀이가 끝나면 다시 나, 너로 돌아간다. 나 역시 어릴 적에 이런 놀이를 많이했는데, 그때는 그게 재밌어서 그렇게 논 것 같은데 책을 보니 설득력이 있다.

 

 

 

요즘 '아빠 어디가'를 보면서도 '가정 놀이'가 많이 생각이 난다. 윤후가 또래에 비해 배려심이 많고 감성이 풍부하다. 윤민수는 육아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며 아이의 성품(?)을 전적으로 부인에게 돌렸더랬다. 그런데 윤민수-윤후 부자가 노는 것을 면밀히 보면, 이 책에서 나온 가정 놀이를 많이한다. 윤씨 부자의 병원 놀이를 기억한다면 어느 정도 수긍을 할 것이다. 그리고 상황극중 인물인 '모리스' 역시 윤씨 부자의 대표적인 상징이 아닐까 싶다. 후는 상황극을 할 때는 자신도 재치있게 극을 이끌어나가면서도, 상황극이 끝나면 다시 자신은 윤후로, 아빠는 윤민수로 돌아간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한다. 집안 분위기가 이렇기 때문에 윤후가 나이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드는 의문. 저자는 대체 어떻게 놀까? 김정운 교수는 자신의 노는 법을 소개한다. 바로 음악 감상이다. 예전에 김정운 교수는 힐링캠프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그때 촬영장소가 바로 저 곳으로 기억된다. 정말 멋지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장소에 홈씨어터를 설치해서 즐기고 싶은 로망이 생겼다. 정말 멋진 노는 방법이 아닌가?

 

 

성실과 근면으로 성공하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창의력'이 중요하다. '창의력'과 '재미'는 심리학적으로 동의어이다. 창의력을 키우려면 재미를 추구하면 된다이거다.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고삐 풀린 말처럼 제대로 놀아야겠다는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싶은 전형적인 욕심쟁이(?)이다. 그 길로 가기위해 좋아하는 것을 파고들고 즐기는 것을 억제해오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그것이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왔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이 책을 선물받았던 그 친구는 취업을 한 후 현재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다. 이제 나의 차례이다. 가장 큰 성공, 행복을 위해 이제부터 매순간 나는 미친듯이 놀아야겠다. 글쓰기 놀이, 시나리오 쓰기 놀이, 그림 그리기 놀이 등등등. 미친듯이 놀고 성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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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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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역사 사이에는 63빌딩만한 담을 쌓고 있었다. 역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올 초 한국사능력시험을 보기에 이르렀다. 나란 사람 동기가 있어야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워낙 기초지식이 없기 때문에 제로베이스에서 공부했던 나는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 그들이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발견했다. '조선 노비들'

 

 

 

 

 


 

 

 

 

이 책은 '노비'에 대한 편견을 깨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비를 하나의 경제 주체로서 접근한 시각이 새로웠다. '글 읽는 노비, 박인수', '노비가 된 경혜공주', '남대문 밖에 사는 정광필의 노비', '사랑에 실패한 여종, 덕개', '대기업 이사급의 노비들' 등의 이야기가 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어서 재밌었다. 특히 나 역시 매체에서 접한 노비들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어서, 노비가 학문을 하거나, 거상이 되어서 양반들도 사로잡지 못한 기생을 사로잡은 노비도 있다는 사실 등이 흥미로웠다. 특히 이 책의 관점에 따라 노비를 경제적 주체로 보면서, 한 가문을 대기업에 비유해서 설명한 점이 흥미로웠다.

 

 

예전에 자격증 공부할 때 배웠던 것을 복습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노비의 수를 관리한다는 것이나 정책에 따라 달라졌던 부분. 특히 국제적 관계가 맞물리면서 변하던 우리나라의 실정 등이 '노비제도'에 초점을 맞춰서 설명한 점이 좋았다.

 

 

특히 '사랑에 실패한 여종, 덕개'라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이야기였다. 만약 한국판 닥터 후를 만든다면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편집 부분이다. 특히 참고 사진이 크게 관련 없는 것이 쓰인 것 같다. 내용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진자료를 넣기 위한 삽입같아서 아쉬웠다. 아무래도 노비의 초상화가 있을리가 없으니 자료상 적절한 것을 넣기에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나처럼 교과서 밖의 '노비'들의 모습을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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