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한 경제학 -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27가지 지식 사용법
이근우 지음 / 센추리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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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일의 부자 워런 버핏은 어떤 생각으로 투자하는가?

 

“열한 살 때 주식을 처음 매입했다. 진주만 폭격 3개월 후였다. 코레히도르 섬이 함락되고 있었고, 바탄에선 죽음의 행진이 있었다. 온갖 안 좋은 소식이 나오기에 투자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땐 산 주식을 영원히 보유했고 그 이후 계속 주식을 사왔다.”

 
세계 제일의 부자이자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말이다. 그는 열한 살에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에 대해 “나는 11년간 헛살았다”고 할 정도로 주식투자를 즐겼다. 35년 전 그가 해서웨이에 투자한 1달러의 가치는 2012년 말 기준 1천500달러를 넘어섰고, 35년 간 주식시장 대비 연간 6.1%라는 높은 초과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렇게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하는 버핏의 숨은 비결은 무엇일까? 실망스럽게도 지극히 단순한데, ‘정석대로 투자한다’이다. 버핏은 싸고, 안전하고, 질 좋은 주식을 선호한다. 또 자신의 신용으로 100~160%의 레버리지를 일으켜 수익률을 높였다. 하지만 한 발 더 들어가 보면 그 속에는 보통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결코 하지 않는 투자법이 보인다.


“핵심은 사고팔기를 반복하지 않고 세상에서 터져 나온 수많은 질곡들을 온몸으로 견뎌낸 것이다. 뉴스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장기투자였다. 안전하게 연간 12%의 수익률을 올리기보다 들쑥날쑥하더라도 연간 복리로 15% 수익률을 올리는 쪽을 선택하겠다.” 버핏의 투자 철학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분산투자다. 아무리 높은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는 주식이라도 한 개 종목에 올인하는 것은 위험하다. 높은 수익이 예상되지만 하락하는 경우도 많다. 한 종목에만 투자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으나 반대로 쪽박을 찰 수도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처럼 말이다. 분산투자는 종목뿐 아니라 시간을 쪼개는 것도 중요하다. 점 찍어둔 주식을 하루에 몽땅 사는 게 아니라, 여러 날, 여러 달을 분산해서 사라는 얘기다.
 
오늘날 비즈니스맨이라면 그 어떤 방식이든 조금이라도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데, 100명에게 물으면 거의 100명 모두 ‘돈을 잃었다’고 말한다. 왜 돈을 번 사람이 없을까? 바로 보통사람이라면 갖고 있는 ‘손실 회피’ 성향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래 ‘이득을 보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크다. 그래서 앞으로 한참 더 오를 주식종목은 불안해서 먼저 팔아버리고, 앞으로 끝없이 더 떨어질 주식은 ‘언젠가는 오를 거야’하며 버틴다. 그러니 백전백패 잃을 수밖에. 하지만 ‘진짜 경제’를 스스로 터득한 워런 버핏은 일반인처럼 감정적으로 투자하지 않았다. 그가 ‘뉴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투자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평소 독서를 즐겼기 때문이다. 경제학뿐 아니라 사회학·진화심리학·물리학·통계학·인문학 등 이종(異種)의 지식을 넘나들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평범한 인간의 시장’에 뛰어들어 투자를 하는 것이다.

 

『영악한 경제학』은 복잡다단한 세상,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워런 버핏처럼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인지, 그리고 그런 선택은 얼마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풀어낸 책이다. 20년간 경제신문 기자로 활동해 온 경제통 이근우 저자는 선대의 지혜를 이용해 현상을 의심하고, 연결하고, 뒤집어봄으로써 알게 된 일종의 패턴들을 결합해 더 나은 선택,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스물 일곱 가지 경제 지식을 엄선해 다양한 시각으로 담아냈다.

 

우선 제목이 흥미롭다. ‘영악한 경제학’이란 대체 뭘까. 인간이 최선의 선택을 하려면 선택지는 여섯 개 미만이어야 한다. 하지만 당장 가까운 마트만 가 봐도 차고 넘치는 선택지 탓에 우리는 소위 결정장애를 겪을 지경이다. 저자는 그래서 우리가 영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래 영악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이해에 밝으며 약다’는 뜻. 이해에 밝다는 말은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로운지를 정확히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약다’는 말은 세상의 수많은 함정과 달콤한 유혹에 어수룩하게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영악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버핏처럼 읽고 고민할 밖에. 나루케 마코토라는 일본의 다독가는 자신의 책『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에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원숭이다”라고 좀 심한 말을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책을 통해 쌓은 지식이 없고, 상상력이 빈곤한 데다, 자기만의 철학이나 주장도 있을 리 없어서 그저 남의 생각을 마치 자기 생각인양 앵무새처럼 반복하거나 남의 행동을 따라 하기 바쁘기 때문에 원숭이와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뉴스를 보고 경제신문을 읽고, 또 이 글을 읽으려는 이유가 바로 원숭이 되기를 거부하고 영악해지려는 의도가 아닐까? 본격적으로 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 많던 4할 타자는 어디로 갔을까?

 
야구장에 가면 “요즘 프로야구는 백인천과 같은 4할대 타자들이 없어서 재미가 없어졌다”고 투덜대는 사람 한 명쯤은 꼭 있다. 그럼 뒤집어 생각해 보자. 만약 백인천 선수가 2015년 프로야구 경기에 선다면 전성기 때처럼 4할대 타율을 기록할 수 있을까? 저자는 어림없다고 말한다. 4할대라는 백인천의 전설적인 타율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국내 프로야구가 막 태동한 때였기 때문이다. 수비수들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조차 잘 몰랐다. 그러니 쳤다하면 안타요, 조금 더 잘 치면 담장을 훌쩍 넘었던 것.

 

해를 더할수록 점점 팀의 체계가 잡히면서 프로야구 선수들은 더 열심히 뛰어야 했다. 외야수는 내야수에게 정확하게 송구하기 위한 연습을 몇 시간씩 했고, 이닝과 타자에 따라 수비 위치 역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모든 투구와 타격은 상세한 기록집에 기록됐고, 심지어 각 타자의 습관과 약점까지 파악하게 되자 4할대라는 전설적인 기록은 모습을 감추게 됐다. 초창기 재미있는 놀이 수준이었던 프로야구 경기에 돈과 기술이 가세하면서 과학이 된 것이다.

 

일상에서도 ‘옛날이 좋았다’라는 불평을 베이비붐 세대의 청장년들에게 심심찮게 듣는다. “우리 때는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해서 맨주먹에서 부자가 됐는데, 너희들은 천성이 게을러서 ‘88만원 세대’가 되고 연애와 결혼, 출산까지 포기한 ‘삼포세대’가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근시안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무기력한 청춘의 등장은 윗세대가 힘든 세상을 물려준 탓이니 불평하는 ‘그 입을 다물어야’ 하지 않을까.
 

부동산 불패 신화, 정말 끝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호황기는 막을 내렸고, 저성장·저물가·저금리라는 새로운 표준, 이른 바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열렸다.


부동산 비관론자들은 국내 인구는 2018년에 정점을 형성한 이후 이른바 ‘인구절벽’에서 떨어져서 노령사회에 진입하는 2019년부터는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고 비관한다. 여기에다 우리나라 인구의 14.6%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 연령에 도달하고, 급격한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기 때문에 부동산 시대도 끝났다고 말한다. 정말 앞으로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없을까?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미국 부동산 가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택 가격 폭락이란 대란을 겪었지만 한국의 강남 격인 미국 맨해튼과 영국 런던 중심부는 사상 최고가 경신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의 불명예를 안긴 일본의 주택시장 폭락도 고령화보다는 오히려 공급량 조절의 실패라는 분석이 많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를 먼저 겪은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에서는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노령화로 인해 감소할 때에도 주택가격은 상승했었다.


저자는 부동산 가격은 인구구조뿐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상호 작용과 사람들의 집단 심리에 의해 결정된다며 한 가지 변수만으로 전체적인 부동산 가격의 방향을 미리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삼포 세대의 부동산’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우리나라의 경우 650만 베이비붐 세대들의 주택 수요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들의 자녀에 해당하는 에코 세대가 새로운 주택 수요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로 1979년과 1992년 사이에 태어난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연령대인 954만의 에코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의 바통을 이어받을 만큼 여력도 없거니와 2006년 부동산 가격의 급등과 2008년 이후의 부동산 침체를 목격한 이들에게 주택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어 그들에게서 베이비붐 세대의 부동산 상승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에코 세대의 현실을 살펴볼 때 친구나 선후배 등 부담 없이 어울릴 수 있는 홍대나 신촌, 대학로 등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입지에서 부동산 임대업을 한다면 승산이 있다. 원룸, 오피스텔, 고시원과 같은 초단기 임대 주거 공간이 뜨고 합정역 일대, 이태원 경리단길, 한남동 독서당길과 같은 골목들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저자는 부동산 시장이 영원히 끝났다는 엉터리 예언만 믿고 시장을 외면하다가 시기를 놓친 뒤 후회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잘 읽기만 한다면 저금리시대를 이기는 유일한 투자처는 부동산이 아닐까.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들
 

영국의 경제학자 앤드루 오즈월드는 행복방정식이란 걸 고안했다. 핵심은 인간관계나 건강, 직업의 안정성과 같은 것들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행복감을 금전적 수치로 도출했는데, 결혼생활이 주는 행복감은 연간 7만 파운드(약 1억 3천만 원)에 달하고 건강과 안정된 직장을 유지하는 것은 돈으로 따지면 매달 수천만 원에 달하는 가치와 비슷하다고 했다. 이와 달리 이혼과 실직은 불행을 가져온다. 똑같이 수입의 1/3분이 줄어들어도, 단순히 수입만 줄어들 때보다 실직으로 수입이 줄어들 때가 사람을 네 배 정도 더 우울하게 만든다. 이혼도 실직만큼 불행을 안겨주고 이혼을 하지 않은 별거는 더 치명적이다. 결론적으로 행복은 비록 돈으로 살 수 있어도 제한적이고, 또한 우리가 흔히 느끼는 행복해하고 불행해하는 감정은 내가 남보다 얼마나 더 잘 살고 못 사는가 하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두드러지더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부자가 부러울 때마다 하는 말은 ‘제아무리 부자라도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이다. 하지만『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이란 책에서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단 ‘돈을 잘 쓰면’이라는 중요한 전제가 붙는데, 저자들은 소비를 통해 만족을 느끼는 방법으로 ‘행복을 담보하는 여섯 가지 지출원칙’을 들었다.

 

살펴보면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보다 체험적인 것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끼고(체험을 구매하라), 평범한 일상도 약간의 변화를 주면 특별해진다(특별하게 만들어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하고(시간을 구매하라), 가급적 신용카드를 자제한다(먼저 돈을 내고 나중에 소비하라). 마지막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소득을 늘리려고 애쓰기보다, 소득의 일부를 다른 사람을 위해 지출하면,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의 보상, 즉 금전이 아닌 ‘행복’이라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다른 사람에게 투자하라). 정말 그럴까?
 
워런 버핏으로 돌아가 보자. 2006년 워런 버핏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 주식 가운데 85%를 자선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죽는 날까지 전 재산의 99%를 기부할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잘 알고 있고 그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버핏은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 26억 달러(약 2조 9천억 원)를 기증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 노력해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돈의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함으로써 돈으로는 느낄 수 없는 행복을 사들인 것이다. 오마하의 현인다운 최고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나답게 꿋꿋이 살아가려면, 그리고 오늘날 뉴 노멀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오마하의 현인처럼 독서와 토론, 사색, 그리고 수많은 실전훈련을 통해 세상을 헤쳐 나갈 ‘나만의 마음근육’을 키워야 한다. 그 방법론은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단언컨대, 올해 가장 인기가 많은 책 『지대넓얕(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상식시험을 보기 딱 좋은 지식총서라면, 이 책『영악한 경제학』은 행복한 내 인생 살아내기에 딱 좋은 지식총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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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그릇 -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이즈미 마사토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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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는 본격 부자관련서다. 10년 전인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10억 부자 되기와 같은 재테크 관련서가 하루에 몇 권씩 나오곤 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닥쳐온 불황기에는 비슷한 류의 책마저 자취를 감췄다. 하기는,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있는 재산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1/3씩 줄어드는 판국에 무슨 돈 모으는 이야기 일까. 재테크책이 환영받을 리 없다. 설령 있다 손치더라도 부채를 줄이는 법이라던가 불황의 시대 가계가 대처해야 할 법 등에 관한 책들이 대다수였다. 아니면 위기가 곧 기회라고 저자들이 투자해서 돈 버느라 정신없어 책을 내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지난 해 말부터 조금씩 부자서와 재테크 책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최근에 나오는 책들은 10년 전에 나왔던 재테크 책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전에 나왔던 재테크 책이 1020억 부자 등 숫자 늘리기에 치중했다면 요즘은 행복한 부자되기라던가 소유보다는 경험을 누려라와 같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이 책<부자의 그릇>도 최근의 경향에 부합되는 책이다. 핵심 메시지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 부자가 될 그릇부터 먼저 키워라라는 부자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돈의 교양과 본질을 전파하고 있는 경제금융교육 전문가가 교양 소설 형식의 메시지를 통해 부자가 되는 자신의 그릇을 키우고, 돈과 인생의 진짜 주인이 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이즈미 마사토라는 사람인데 일본 파이낸셜 아카데미 주식회사 대표이사라고 하니 금융교육 베테랑이라고 봐도 되겠다.

일본 최대의 독립계 파이낸셜 교육 기관인 파이낸셜 아카데미는 현재 수강생이 6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경제 입문과 회계, 재무, 경제신문 보는 법, 자금 계획에서 주식투자 교실, 부동산투자 교실 등의 투자 학교까지 폭넓은 재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단다.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한 교육기관이 아닐까. 저자의 마인드에 공감하니 책을 온전히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더 들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살펴보자면 한때 연매출 12억의 주먹밥 가게 오너 였던 주인공은 소위 초심자의 오류로 인해 도산하여 3억 원의 빚을 짊어지고 할 일 없이 매일 분수대 근처를 방황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서울역이나 종로 등에서 자주 보는 노숙자들 중 몇몇도 이런 경우를 만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주인공은 어느 추운 날 100원이 부족해 자판기 음료 하나 먹지 못할 정도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그러다 스스로를 조커라고 부르는 노인이 건넨 100원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7시간에 걸친 그들의 대화가 시작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조커라는 사람은 사업으로 크게 부자가 된 노인이었고, 이 노인이 주인공을 만나게 된 데에는 우연이 아닌 이유가 따로 있었다.

 

신용이 두터운 사람에게 돈이 온다.“ 즉 신용이 돈을 끌어당긴다는 말은 깊이 공감한다. 돈은 타인으로부터 들어오며, 결국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나의 통장에 고스란히 나타난다는 뜻인데, 부자라면 열이면 열, 한결 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약속은 칼같이 지켜야 한다, 그래야 신용이 두터워져서 장사할 기회도 생기고 그런 기회가 많아지면 부자가 된다.“의 중심엔 신용이 들어 있다. 타인의 믿음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재산이 된다는, 부자라면 아는 신용의 원리를 우리는 너무 가볍게 여긴다.

 

예를 들어 제 아무리 금리가 1퍼센트대라고 하더라도 돈을 모으려면, 돈을 믿고 맡기려면 은행밖에 없다(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저축률은 여전히 높은 이유, 원금이라도 잃기 싫어서다). 은행 지점 한 곳을 주거래 은행으로 삼고 월급통장은 물론 예적금까지 꾸준히 거래를 하다 보면 지점과의 신용도는 차츰 높아진다. 1 금융권인 은행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이 10%대 이자를 감수한다고 해도 단 한 푼도 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주거래은행의 신용도가 높은 고객에게는(불쾌하게도 은행의 신용도는 마치 유리지갑을 보듯 고객의 현금이동을 은행이 훤히 읽을 수 있을수록 높아진다. 그래서 돈 떼일 염려가 전혀 없는 사람은 신용도가 최고다) 3~4%대 금리로 대출해 준다. 카드 역시 한 번도 연체를 하지 않으면 사용한도는 끝없이 증가하지 않던가. 이런 것이 신용도가 돈으로 변신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이 여기까지라 아쉽고 안타깝다. 스토리의 구성도 엉성한데다 마지막엔 극적인 요소를 더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소설형식의 재테크서가 갖는 치명적인 실수는 스토리와 핵심이 따로 논다는 것인데, 이 책도 이 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주제와 핵심이 주는 메시지는 약하고, 논리 역시 엉성하다. 서사의 구성이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의 7시간으로 한정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 같다.

사업에 실패한데다 가족에게까지 버림받은 주인공에게 두터운 신용이 돈이 된다는 메시지가 과연 어울릴까 의문이다. 만약 스토리처럼 주인공이 재기에 성공한다면 제 스스로 딛고 일어선 것이 아니라 몸 아픈 딸아이가 조커와 친해진 덕분이 아니고 뭘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캔 블랜차드의 짧은 경영우화들이 찬사를 받는 이유를 알 듯 하다. 차라리 6년 전에 읽은 <돈의 교양>(리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2821) 더 유익할 것 같다. 이 책이 올해 꽤 많이 팔린 것으로 아는데, 필경 시의적절성덕분이었으리라.

리뷰를 쓰는 내내 나았던 점을 찾으려 애를 써 봤지만 찾기 어렵다. 그나마 핵심 메시지가 신선하지 않았더라면 리뷰조차 쓸 마음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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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을 팔다 - 다이칸야마 프로젝트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백인수 옮김 / 베가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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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곳

 

얼마 전 서울역 지하에 있던 서점 철도 문고가 문을 닫았다. 처음 그곳을 들릴 때만 해도 나처럼 열차에서 책을 읽을 책을 고르는 사람들로 꽤 북적였는데, 마지막으로 들렸던 올해 초엔 한 시간 내내 여직원과 나 단 둘 뿐이었다. 열차 시간이 남으면 들려 책을 뒤적이던 기차 한 량 길이의 직사각형 서점이 사라지니 활자매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서점이 일찌감치 고사(枯死) 위기를 맞았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서점은 책 파는 곳이상의 공간이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장석주이 서점은 힘든 인생의 항해에서 등대와 같이 인생의 바른 지침을 주는 책들로 가득했고, 깃발이 찢겨 귀환했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등대라고 말했던 것처럼 집과 일터 다음가는 3의 공간은 스타벅스가 아니라 서점이다. 그런 서점이, 그 많던 서점들이 이제 거의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19945500여개였던 서점숫자가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해 말에는 1625개까지 줄어들었다. 500평 이상의 대형서점도 200943개에서 2011년에는 25개만 남았으며 현재도 그 폐업 숫자와 속도가 심상치 않다. 몇 안 남은 오프라인 대형서점은 물론 심지어 온라인 서점마저 경영난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이지 죽어라고 책을 읽지 않는가 보다. 서점이 사라진다는 건 일개 사업장 하나가 폐업하는 정도를 넘어 국가로서 국민의 휴식공간이자 지식공간을 잃어버리는 큰 손실 일진대, 정부는 관심조차 없어 보이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서점들도 살아남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책이 진열된 서점 내부 한편에 생맥주 바를 갖추고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탁자와 의자 등을 배치한 서점 겸 술집도 있고, 소설이나 독립출판물만 모아 파는 서점이 입소문을 타는가 하면 고양이 애호가를 겨냥한 고양이 전문 서점도 생겼다. 이런 변화의 핵심은 책만 팔아서는 이익을 내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고객들이 서점에 들어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만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를 만든 것인데, 이는 마치 백화점이 매출이 떨어지자 전국의 맛집을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 몰아넣고 고객을 유치하고자 하는 것처럼 주객이 전도된 듯 어딘지 모르게 책이 천덕꾸러기가 된 느낌이라 마뜩찮다.

 

그러던 차에 읽은 <라이프스타일을 팔다>는 오프라인 서점이 나아갈 방법을 제시해준다. 이 책은 35 평의 작은 동네서점에서 시작해 1,394 개의 프랜차이즈 점포를 움직이는 문화기업 츠타야(TSUTAYA)의 창업자 마스다 무네아키가 쓴 책으로, 창업 후 30년 동안 승승장구하는 츠타야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인 소비자의 문화욕구를 만족시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11년 출간된 이 책은 다이칸야마 프로젝트라는 일종의 서점설립을 위한 기획서다.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에 푸르른 녹음으로 둘러싸인 약 12,000의 부지에 츠타야의 대형 매장 3곳과 다양한 전문점을 세운 T-사이트라는 공간을 완성하는데 앞서 이 서점이 창조하는 거리에 어떤 생각으로 어떤 시설을 세우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실제 매장의 형태로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나기 전에 말로 정리함으로써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 화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의도 자체가 놀라운 기획이었다.

 

이 책의 결과물로 탄생한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은 전 세계 서점 100여 곳 이상을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시미즈 레이나가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일본 등 세계 각지의 아름다운 서점 스무 곳을 소개한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학산문화사)에도 소개된 바 있는 서점으로 이 책에서는 구 야마테 거리 한 켠의 녹음이 우거진 곳에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계절의 변화를 담아내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책의 숲이자 도심 속 파라다이스라고 평가했다.

 


 

츠타야는 어떤 곳일까? - http://2bfreeman.blog.me/220389426307

 

 

저자는 츠타야에서 판매하는 것은 CD, DVD, 서적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다.”(58)라고 주장한다. 라이프 스타일은 제품 판매를 위한 기술보다 기업이 세상에 제시하려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고객에게 소유가 아닌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자본을 뛰어넘는 새로운 주체가 되고 있는 요즘, 대여를 고객의 소유라는 개념을 확대시켜주는 서비스라고 판단한 탁월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영상이나 음악, 책은 의식주와 달리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틈틈이 소유하고 싶은 기회는 반드시 존재하는 컨텐츠가 아니던가.


또한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의 주고객을 60세 전후의 단카이 세대를 타겟으로 삼은 저자의 판단도 놀랍다. 1983년 츠타야가 처음 생겼을 때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던 50~65세의 그들을 프리미어 에이지(premier age)로 명명하고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은 그들을 위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저자의 이러한 타켓 선정은 새로운 국면을 맞은 인구변화에도 맞아 떨어진다. 만약 츠타야가 20~30대를 주고객으로 삼았더라면 매년 1%의 매출감소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50~70대의 회원 비율이 높아지자 츠타야는 해마다 두 자리 수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당일날 무료로 책을 받을 수 있는 오늘날, 츠타야 서점은 점차 사라져가는 오프라인 서점이 어떤 의미로 존재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렇다면 저자가 찾아낸 고객들이 원하는 서점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도쿄라는 도심 속의 리조트였다.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우한 장소로 리조트가 존재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소속한 사회와 멀리 떨어진 장소에 가서 자신의 주변과 타인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즉,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넓은 바다가 보이는 장소에서, 혹은 푸르른 녹음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곳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해외의 멋진 리조트를 꿈꾸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80)

츠타야 서점이 보유한 서적은 총 20만 권. 하지만 결코 서적량에 압도당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인테리어를 갖췄다. 대부분의 서적은 성인 남성이 손을 뻗었을 때 닿을 수 있는 높이에 자리하고 있고, 책을 읽기에 딱 좋은 조명, 그리고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의자, 책은 물론 음악과 영상을 독립적으로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서점 내에 있는 스타벅스는 프리미엄 라인인 스타벅스 리저브 원두를 사용해 드립커피를 내고 있다. 한편 츠타야 서점은 판매와 응대라는 서비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제안을 서비스화한 전문 인력인 컨시어지(concierge)30여명 운용하고 있다. 이곳에 상주하는 컨시어지는 대부분 해당 분야 직종에 몸담았던 전문가로 도서 선택 뿐 아니라 분야별 전방위 컨설팅을 도와주고 있다. 한마디로 츠타야 서점은 천국이 있다면 아마도 아름다운 서점을 닮았을 것이라던 구본준 기자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곳이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한 가지는 옛날 우리 동네 주변에 있었던 음악CD와 도서를 함께 구비한 비디오대여점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츠타야는 어떻게 30여 년 동안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살펴보니 츠타야는 서점이라고 하는 업()의 본질, 그리고 고객에 대한 본질 추구에 매달렸다. 창업 초기 츠타야 매장의 영업은 DVD, CD의 대여가 중심이었다. 대여 매장의 본질은 고객을 대신해 '있으면 좋겠지만 매순간 필요한 것은 아닌 특수한 상품'을 소장해 두는 곳이다. 이런 본질 때문에 심야영업도 시작했다.

저자는 유통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고객을 파악하라. 변하지 않는 고객가치를 간파하는 것이 최우선이다라고 강조한다. 즉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고객을 얻고 싶다면, 기업은 고객이 생각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것을 창조하고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은 혁신이라고 해서 세계 최초의 시도, 어디서도 보지 못한 센세이션할 만한 것을 추구하지만 사실 고객은 특별히 새로운 서비스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느끼기에 쾌적하고 높은 가치의 서비스를 원할 뿐(25)이라는 것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전통여관이 아직도 고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클릭 한번으로 책을 살 수 있는 시대, 종이책과 서점은 구물(舊物)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수많은 독자들이 아직도 서점을 찾고 있고 그곳에서 빳빳한 종이책을 손끝으로 느끼며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서점은 단순한 책을 파는 소비공간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서점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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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rans7 2015-08-31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치보이님의 서평을 읽고 바로 주문을해서 읽었습니다.라이프 스타일을 팔다라는 책 제목처럼 참으로 함축적인 책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삶의 경영 철학이 묻어나는 녹록하고도 향기로운 책이었습니다. 이 책 한권으로 행복한 휴가를 보내게 해주셔서 리치보이님 께 감사드립니다.

리치보이 2015-09-21 13: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aurans7 님.

우선 댓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리뷰로 추천한 책을 직접 구매해서 읽어주시고 이렇게 댓글까지...정말 감사합니다. 리뷰쓴 보람을 느낍니다.^^ 말씀대로 올바른 생각의 경영자의 제대로운 책은 만나기 힘듭니다. 놀라움에 앞서 존경감이 드는 경영자는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특히 책을 즐기는 독자로서는 더욱 그렇죠. 들리시면 종종 댓글 주세요.^^

 
나음보다 다름 - 기획에서 마케팅까지, 무엇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홍성태.조수용 지음 / 북스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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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인식에 차별점을 심어라

 

   한 세대 전만 해도 기업이 슈퍼갑()인 시절이었다. 생산되는 제품이 많지 않던 그때는 제품을 만들기가 무섭게 들었다 번쩍하고 팔려나갔다. 심지어 채 만들지도 않은 제품에다 선금을 주고 예약하는 백색가전이 있던 시대였으니 요즘 재벌은 그 시절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제품이 넘쳐나는 시대엔 소비자가 수퍼갑이다. ‘필요의 소비가 아닌 욕망의 소비를 하는 소비자에게 기업이 어필하는 방법은 온전히 그들의 입맛에 맞추는 방법 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지금은 불황의 시대가 아니던가. 돈이란 게 참 무섭다. 지갑이 거북이 등처럼 두꺼울 땐 딱 1초만 생각하고 돈을 지르던 소비자들이 껌딱지처럼 얇아지니 좀처럼 돈 꺼내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이런 요즘 어떻게 해야 더 잘 팔릴까하는 기업의 고민에 답은 딱 하나, 차별화뿐이다.

   그런데 너나할 것 없이 차별화를 외치지만 차별화란 게 결코 쉽지 않다. 기능에서 차별화하자니 버튼 50개가 넘는 리모컨 같은 결과가 나오기 일쑤이고, 남보다 한 푼이라도 더 싸게 팔다보니 결국 제살 깎아먹기식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제대로운 차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여기 차별화에 대한 기가 막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주당 200달러가 넘던 애플의 주가는 5달러 아래로 끝없는 추락을 하고 있었다. 망해가는 애플호의 선장이 된 잡스는 제일 먼저 직원들을 불러 그간 개발 중이었던 애플컴퓨터가 경쟁사보다 얼마나 더 나은지에 대한 브리핑을 듣다가 한심하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이렇게 일갈했다. “경쟁사보다 더 잘 만드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르게 만들 궁리를 하세요.(Better is not enough. Try to be different)."

 

   <나음보다 다름>은 마케터들이 그토록 어려워하는 차별화를 제대로 짚어낸 책으로 잡스의 일갈에 연장선에 있다. 제목에서 보듯 차별화의 정답은 나음이 아닌 다름에 있는데, ‘다름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하는 추가된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책 전반에 걸쳐 두루 담겨 있다. 주목할 점은 훌륭한 저자들의 라인업인데, 최근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마케팅 석학이자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의 저자 홍성태 교수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광고 없는 브랜드 월간지로 유명한 <매거진 B>의 발행인 조수용이 함께 썼다. 이론과 실전의 대가들이 만났다는 점만으로도 마케팅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이다. 저자들은 차별화는 엔지니어가 아닌 마케터가 만드는 것이고, 차별화의 방법은 아주 작은 차이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의 차별화는 한계가 있다. 리모컨에 버튼 몇 개 더 추가되는 정도는 더 이상 차별화가 될 수 없다. 그러다간 후발주자에게 흉내만으로 따라잡히거나 뒤통수맞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제가 아닌 인식에 차별점을 둬서 소비자의 마음속에 하나 밖에 없는 제품이라고 인식시킨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러시아의 로모카메라가 좋은 예이다. 로모카메라는 렌즈의 광학적 왜곡이 심한 탓에 의도한 대로 사진이 나오지 않아 기술적으로는 라이카나 콘탁스와 같은 카메라 명가에 비하면 엉성하기 그지없는 카메라다. 하지만 로모카메라는 반대로 생각해 기대하지 않았던 사진이 나온다는 이 단점을 차별점으로 삼자, 그저그런 카메라에 식상한 소비자들이 로모카메라의 특별함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저자들은 이처럼 의미 있는 차별화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인식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케팅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아무리 차별화를 꾀했다 하더라도 일정한 궤도에 올릴 강력한 추진 동력이 없다면 소비자의 주목을 얻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진다. 브랜드를 소비자의 시선에서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 경쟁력 요소들은 바로 저가격, 가성비, 기능, 품질, 명성이다.

   즉 차별성에 경쟁력을 더하려면 이미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선도 브랜드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던가(저가격), 선도 브랜드보다 제품의 품질에 충실하되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던가(가성비), 선도 브랜드가 갖지 못한 기능을 첨가할 수 있던가(기능), 선도브랜드보다 훨씬 뛰어난 재질과 제조방식으로 생산해 품질로 승부할 수 있던가(품질), 문화적, 사회적 호감도까지 더해서 명성을 내세울 수 있어야(명성) 한다. 하지만 제품상의 차이를 내세우는 차별화에는 한계가 있다. 더 비싼 값을 기꺼이 치르게 하고, 안 살 것을 사게 만들고, 사고 또 사게 만드는 진정한 차별화는 인식상의 차별화로 완성된다.

 

인식상 차별화의 핵심은 남들이 갖지 못한 독특함을 갖는 것이고, 그러한 독특함을 어필하는 데는 최초(First)'이거나 유일(Only)‘하거나 최고(Best)'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세 가지 방향이 있다.” (151)

 

   소비자의 의식에 차별화를 확실히 인식시키려면 우선 최초(First)를 강조하라. 소비자는 최초이거나 처음이거나, 오리지날을 본능적으로 좋아한다. 선그라스 하면 라이방(레이밴Ray ban)을 떠올리고, 비가 오면 바바리(버버리Burberry) 코트를 찾는 것도 이들이 최초이기 때문이다. 해장국집 간판마다 원조를 달고 있지만, 진짜 원조는 하나뿐이다. 또한 소비자는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물질이든 정신이든 신상, 즉 최신의 것을 좋아 한다.

   그리고 인식의 차별화를 꾀하려면 유일(the only)을 강조하라. 아무리 좋은 제품을 가졌더라도 남들도 가졌다면 소용없다. 나만 가져야 남다를 수 있다. 그래서 눈에 띠는 독특한 디자인을 추구하고, 비싸더라도 고어텍스와 같은 남다른 소재를 찾는다. 특히 이케아가구처럼 내가 손수 만든, 나만의 것이라면 더 애착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 인식적 차별화의 핵심은 바로 최고(the best)의 추구. 우리 제품이 국내 판매 1, 점유율 1위라면 차별화는 따 놓은 당상이다. 소비자는 누구나 잘 팔리는 제품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비자는 후광효과를 좋아해서 최고라 불리는 인사들이 좋아하는 제품이라도 최고로 쳐 준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기업이 만드는 장수상품 역시 오랜 기간 쌓아온 기업의 명성을 즐기기에 최고가 된다. 해장국집 간판마다 원조를 달고 있지만, 진짜 원조는 하나뿐이다.

   저자들은 가격, 가성비, 기능, 품질, 명성이라는 씨줄(실제적 차별점)과 최초, 유일, 최고라는 날줄(인식적 차별점)을 교차시켜는 이중적 차별화 전략을 내세워 차별화란 우리 제품(서비스)를 이중적 차별화 전략의 15개 박스 중 어느 쪽에 어떻게 포지셔닝을 해야 다른 점을 인정받는가 하는 게임이라고 정의한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이 전략으로 오늘날 차별화되었다고 평가되는 기업들을 대입해 보았더니 희한하게도 적확하게 들어맞았다. 이 말은 곧 차별화를 계획중인 제품(서비스)가 있다면 차별화포인트를 제대로 잡을 수 있는 툴이 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차별점은 무엇보다 지속성(durable)을 갖춰야 한다. 여기서 지속성은 변하지 않는 속성이 아니라 본질은 지키되, 본질의 표현은 소비자의 시선에 맞춰 디자인이든, 커뮤니케이션이든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가 그 제품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loyalty)’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늘 모든 기업의 화두는 바로 차별화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회의 중 수많은 대화 속에 등장하는 차별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그 점에서 수많은 마케터들에게 마케팅 석학과 브랜딩 전문가가 엮어낸 이 책은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차별화를 아예 전직원이 공유하는 회사어로 정하고 회의해 보시길. 상상 이상의 결과를 낼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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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50℃ 세척법
히라야마 잇세이 지음, 서혜영 옮김 / 산소리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쉽고 안전한 먹거리 세척법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늦은 오후. 엄마(50이 가까운 나이지만 지금껏 그렇게 불렀다)가 끓여준 바지락시금치국이 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엄마는 지난 해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이젠 그 맛과 향을 기억만 해야 한다. 전업작가를 선언한 이후로 집밥도 내가 챙겼던 터라 직접 바지락시금치국을 끓여보기로 했다.

싱싱한 국산 바지락과 남해 시금치는 마트에서 사고, 절친에게서 어렵게 구한 전라도 시골된장과 구운 국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낸 육수로 준비는 완료. 헌데, 가장 까다로운 일이 남았다. 시.금.치. 흙이 묻은 시금치를 깨끗이 씻어야 할텐데...이걸 언제 다 씻지?


요리의 절반은 요리재료 씻기다. 황사와 일본원전사태로 보이는 흙은 물론 보이지 않는 무엇마저 씻어야 할 요즘, 씻기는 제일 중요한 과제다. 그렇다고 매 번 세제를 사용할 수도 없고(난 사실, 세제로 씻는 것이 오히려 요리재료 위에 세제를 코팅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어 사용하지 않는다), 식초 몇 방울은 '이게 과연 세척이 가능할까?'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포털을 통해 세척법에 대해 검색해 보니 포스팅 된 글의 숫자만큼이나 방법도 많아서 무엇이 진짠지 구분조차 가질 않는다. 


그러던 차에,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세척법에 대한 방송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직접 다운을 받아 방송을 봤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듣기로 '에이, 그게 되겠어? 오히려 음식재료나 망치는 것 아니야?'라고 의심했지만, 방송을 보니 의심한만큼 확신이 들었다. 한마디로 신기원이었다. 방송에 나온 내용은 이미 일본에서 책으로 나와 베스트셀러라고 했다. 바로 <기적의 50℃ 세척법>이다.


방송내용은 편성시간과 프로듀서의 편집이 더해져서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해서, 방송은 '정보제공자' 수준으로 여기고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의 이름을 알면 혹시 책이 나왔나 검색을 해 보는 것이 좋다. 다행히 이 책도 국내에 출간되어 있어 반가웠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요리용 온도계 하나만 준비하면 된다.


채소는 물론, 과일과 생선 심지어 육류도 50℃로 세척할 수 있다. 시든 과일이나 채소는 50℃의 물을 만나 세포들이 다시 호흡을 해서 다시 갓 따낸 것처럼 신선해지고, 생선과 육류는 겉에 남은 지방과 찌꺼기가 높은 온도에 녹아 깨끗해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인데, 원리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시키는대로 해 보니 역시 모두 신선해진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였다.

특히 생선이나 육류는 '익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 뜨거운 물을 만나면 익는 듯 색깔이 약간 탁해지지만 1분만에 꺼내어 놓으면 원래의 색으로 돌아가는 점이 놀라웠다.


이후 나는 모든 식재료는 50℃의 물에 약 1분 정도 담궈둔다. 다른 무엇도 아닌 물이니 성분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서 좋다. 50℃세척법에 익숙해지다 보니 한 가지 터득한 것이 있는데, 바로 50℃의 물을 쉽게 얻는 법이다. 보일러가 있는 가정의 수도에서 온수를 가장 뜨겁게 한 상태로 1~2분 정도 틀어놓으면 꽤 뜨거운 물이 나오는데, 이 온도가 약 50℃ 남짓이니 따로 물을 끓여서 온도를 측정해가면서 찬물을 넣을 필요가 없다.


물론, 오늘 끓인 바지락 시금치국의 시금치도 50℃세척법으로 씻었다. 뿌리를 칼로 자르고 상한 시금치 잎을 정리한 후 따로 씻지 않고 우선 큰 보울에 담아놓은 50℃의 물에 담궈서 1분을 기다렸다. 숨이 죽었던 시금치들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볼 법한 모습으로 서서히 살아나는 것이 보였다. 잎사귀가 탱탱해지니 흙도 스스로 떨어졌다. 1분 후 다듬은 시금치를 꺼내니 맑은 녹색을 띤 물에 시금치에 붙었던 흙들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이후에는 평소처럼 흐르는 찬 물에 마무리 하듯 씻어주면 세척은 끝이다. 


이런 내용을 굳이 책으로 사서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겠다만, 공짜 정보가 흐드러지게 많은 만큼 거짓되고 부풀어진 찌라시같은 정보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가족이 씻고 먹는 일에 공짜를 바랐다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쩔텐가? 몇 년 전 가습기를 깨끗이 하겠다고 세제를 사용했다가 안타까운 수많은 아기들의 목숨을 잃은 사건은 큰 본보기가 된다. 먼저 의심하고 분석하고 스스로 고민해서 판단하지 않고 남들이 많이 하니까 따라하다가 큰일난 것이 아니던가?


그 점에서, 이 책은 참으로 유익하다. 무엇보다 내 가족이 먹을 모든 음식을 제대로 씻는 법이라는 점에서 재확인하는 차원에서라도 추천하고 싶다. 난 이보다 더 쉽고 안전한 세척법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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