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by 북
마이클 더다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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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0년 내공의 베테랑 서평가가 버무린 名文들의 비빔밥!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리뷰Review'란 걸 몰랐다. 존재를 몰랐으니 당연히 리뷰를 쓰지도 않았다. 5년 전부터 블로그를 했던 터라 책 속에서 만나는 황금보다 소중한 구절들을 베껴서 옮겨놓은 적은 종종 있었다. 4년 전인가...는 공책에 필사한 글귀들을 사진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린 적도 있었다(너무나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몇 번하다가 말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들었던 소감이야 왜 없었겠냐마는 ’내 주제에‘ 감히 책에 대해 논論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만행이라고 여긴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짧게라도 적으려고 해도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것이 잘 썼건, 못썼건 간에 지금은 500여 편에 이르고 있으니 스스로가 신퉁방퉁하다. 그것참...

  우연히 책에 대한 소감을 쓰게 된 것은 온라인 서점 덕분이다. 줄곧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했었는데, 업무로 출장이 잦아지자 단골로 가던 서점에 직접 가질 못해 온라인에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검색을 하다가 독자들의 ‘리뷰’를 읽게 되었다. 딱히 책을 사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갈 만큼, 혹은 이 책은 절대로 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독자들의 리뷰에 빠져 한참을 머물렀던 기억. 그 후로 나도 책을 읽은 후엔 리뷰를 쓰게 되었다. 지금도 리뷰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리뷰를 쓴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난 ‘서평’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주로 문학이 아닌 경제경영서와 같은 실용서를 읽는 편이라, 평론을 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도 이유겠지만, 아직도 ‘감히 내 주제에’ 책을 평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읽었는데 참 좋더라, 그저 그렇더라고 말할 정도일 뿐, 반박하거나 논쟁을 걸을 깜량은 못된다. 그래서 말 그대로 다시 보기, ‘리뷰Review’를 하고 있다. 온라인엔(오프라인엔 수를 셀 수 없이 많겠지만) 수많은 강호의 책리뷰 고수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에서 만큼은 여느 평론가 못지 않을 만큼 내공과 필력을 갖춘 고수들이 즐비하다(그런 고수들의 블로그에서 리뷰를 살펴본 후 책을 구입하는 것도 좋은 책을 고르는 한 방법이 된다). 고수들의 리뷰는 ‘서평’이라 할 만하다. 가끔 그들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찾아가 놀기도 하는데, 돌아올 땐 항상 부러움과 질투에 뒤범벅이 되어 돌아온다. 오늘 읽은 책은 ‘서평쓰기 30년 내공의 고수’가 쓴 책이다. 서문에서부터 “지난 오십 년 동안 나는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로 시작해 나를 기죽이게 하는 책, 마이클 더다Michael Diarda의 <북 BY 북>이다. 원제목은 Book by Book - Notes on Reading And Life, 2005년에 쓰여졌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책이다. 지금껏 저자가 책을 읽을 때마다 눈에 띄는 구절과 인용구를 노트에 적어놓았던 것을 한데 모은 일종의 사화집(詞華集,anthology;아름다운 글들을 모은 책)이다. 배움, 일, 여가, 사랑, 집, 인생, 감각, 종교, 죽음 등 인생에서 만나는 중요한 삶의 화두에 관련된 책들의 구절을 한데 모아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계절감이 듬뿍 담긴 채소들을 한데 모은 ‘비빔밥’이라고 할까? 그런데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그런 ‘금가루가 잔뜩 뿌려진 고급의 비빔밥’이었다. 저자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표현을 빌려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해서 천천히 읽고, 아무데나 내키는 대로 읽으며, 되돌아서 또 읽는 책’이길 바란다고 했는데, 유익했을지 모르지만, 재미는 없었다. 오히려 겁만 잔뜩 집어먹기만 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 모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책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더다가 분야별로 생각하는 고전(난 고전엔 정말 문외한이다)을 소개한 책이고, 우리나라에서 변역된 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책이 태반이라지만 “이 세상엔 내가 매일 책을 읽는다 해도 평생 다 읽을 수 없을 만큼의 좋은 책이 있다”는 그 누구의 말이 떠올랐다. 괴테가 자신이 죽을 때 즈음 채 읽지 못한 책들을 아까워 했던 이유를 알 듯 했다. 

  이 책을 읽으려면 펜을 들어야 한다. 그 이유는 저자의 서문 때문이다.

“당신은 연필을 옆에 두고 마음에 드는 구절에 표시를 하거나, 여백에 뭐라고 끼적대고 싶을지도 모른다. 당신만의 사색으로 ‘개인화’하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가치를 더해 당신만의 특별한 책으로 꾸며가야 할 책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도 독자를 위한 독서 안내서를 서보겠다는 의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15 쪽)

  그렇다.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은 좋은 글을 만나면 여한없이 밑줄을 치거나, 책장 끝을 작거나 큰 삼각모양으로 접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 놓치기가 아까워 한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지난 해 초에도 한 적이 있는데 정혜윤의 관능적 책읽기로 알려진 <침대와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노트에 필사를 할까, 블로그에 옮겨 적을까’ 책 진도는 나아가야 할텐데 ‘놓쳐버리면 다시는 못만날 것 같은 글들’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기억,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 서평가의 책인 만큼 좋은 서평의 조건을 말한 H. L. 맹켄의 글을 보자(이글 또한 절대로 서평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독자서평란에 퍼담을 것이 아닌가?).

“서평은 무엇보다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서평은 깔끔하게 쓰여 흥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안에 담긴 비평의 정당성은 차후의 문제이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 나쁜 책이냐를 명확히 결정하기는 대체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판단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불완전한 지성인의 착각이다. 그런 섣부른 판단에는 언제나 도덕적 열정이 개입된다. 그러나 평론가는 독자에게 세련된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 박식하고 품위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평론가라면 어떤 주제에 대해 어떤 글을 쓰더라도 독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185 쪽)

  그 무슨 책을 말하든 독자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선명하다. 나의 리뷰가 한낱 두서없는 개인적 푸념의 덩어리는 아닐지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지금껏 써온 리뷰들이 잘못 기술되어 나의 리뷰가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독자가 읽었을 수도 있는 기회를 빼앗지는 않았던가 고민하게 만들었다. 좋은 글은 읽고, 읽고 또 읽게 만든다. 그리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명문名文들이 가득했다.

  “심판의 날에 우리는 무엇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고 말한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로 끝을 맺었다. 서평가의 독서안내서의 마지막으로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문장이다. 독서는 한 곳에 앉아 두 눈을 굴려 종이 위의 활자를 읽어내려가는 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활자가 그려낸 글을 눈으로 읽고, 마음과 머리에 새겨 오늘보다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한 밑거름으로 마련하고자 함이다. 아는 만큼 보이듯, 아는 만큼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달랑 세 권을 읽고 책을 읽고 내 삶에 변화가 없다고 말하지 말자. 몇 권을 읽었는지 아련할 만큼 책 읽기를 습관으로 만들었다면, 책을 읽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생각을 하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읽었거든 움직여서 삶에 변화를 주어라” 50년 독서내공을 지닌 30년 서평가의 충고였다. 책벌레들을 위한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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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글에 투자하라 - 리더를 완성하는 표현과 소통의 비밀!
송숙희 지음 / 웅진웰북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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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쓰기를 위한 생각의 도구, WHAT 플랫폼에 주목하라!

 

  저자 송숙희의 글은 우선 ‘글맛이 뛰어나다’는 점이 좋다. 그래서 그녀가 소개하는 것은 무엇이든 ‘읽고 싶고, 맛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고객을 유혹하는 마케팅 글쓰기>라는 제목의 책을 낸 적도 있는 바 저자의 ‘독자를 유혹하는 기술’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오래 전부터 각종 언론매체에 컬럼을 기고하고, 책을 소개하는 컬럼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의 글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나 역시 3-4년 전, 온라인 포털에서 읽은 책소개 칼럼에서 저자의 글맛에 빠져 그녀가 소개한 책은 가급적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저자의 책도 빠짐없이 읽고 있으니 ‘올드팬’인 셈이다.

 

  처음 잡지사의 에디터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었고, 지금은 CEO의 브랜드 구축을 돕는 회사의 대표로 있는 만큼 저자는 ‘펜의 힘’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오로지 펜의 힘으로 브랜드를 설명하고, 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니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그래서 한편으로 저자의 목소리, 말빨을 궁금하게 하기도 한다. 이 책 <당신의 글에 투자하라>은 그런 취지에서 나온 책이다. 리더 즉 CEO와 사장으로 대표되는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글쓰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설명하고, 직접 글쓰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 책이다. 이 말은 곧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읽어둘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이 책을 읽어야 할 독자는 ‘모든 비즈니스맨’이라고 봐야겠다.

 

 



 

 

  저자의 롤모델role-model은 워런 버핏이다. 워런 버핏의 연례보고서는 살아있는 경제 교과서로 평가될 만큼 잘 쓴 보고서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의 특별한 보고서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나는 누이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며 쓴다.” 그의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문제의 특징은 뉴욕발 금융위기로 투자자들이 투자처를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지금은 투자할 때, 나는 미국 주식을 계속 사들이겠다.”는 말로 시장을 진정시킨 사례로 알 수 있다. 저자는 글쓰기란 워런 버핏처럼 ‘첫눈에 무슨 내용인지 알게, 한눈에 읽히게’ 쓰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어떤 글도 만만하게 쓸 수 있다, WHAT 활용술]이었다. 한 권의 책에서 ‘이 부분’만 소화해도 충분히 배울 만큼 배웠다고 말할 만큼 내게는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저자는 미국 수학능력시험(SAT) 과목의 하나인 에세이 쓰기는 ‘주제와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된 사례를 들어 논리적인 표현을 하는가’를 살피기 위한 시험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고도의 사고력을 필요로 하므로, 글을 잘 쓰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증거여서 글 실력을 보고 사람을 가려 뽑으면 거의 틀림이 없다. 글쓰기란 현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인 생각을 필요로 하는 일이며 그 주된 목적은 소통에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175 쪽)

 

저자가 어떻게 생각해야 글로 쓸 수 밖에 없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하는 글쓰기를 위한 생각의 도구로 창안한 것이 WHAT 플랫폼이었다. 생각을 위한 일종의 체크리스트, 글쓰기를 하는 사람 특히 블로거blogger라면 꼭 알아 두어야 할 귀중한 생각의 도구가 아닐 수 없다.

 

 

W      Why 왜 쓰는가? (왜 이 글을 쓰는가)

H       Hook 독자를 유혹하는 포인트는? (읽지 않고 못 배기게 하는 흥행의 기술)

A       Audience 누가 읽는가? (읽는 이가 누구인가)

T       Trigger 무엇을 요청해야 하는가? (당신이 요구하는 기대 반응은 무엇인가)

 

  독백글이 아니라면 글쓰기는 누군가 독자를 대상으로 그에게 읽히기를 위해 쓰는 글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뱉어낸 글을 끝까지 독자가 읽을 수 있어야, 그리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글에 동조할 수 있도록 한다면, 훌륭한 글이 된다. 다시 말해 훌륭한 글이란 곧 독자를 유혹해 사로잡는 글인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글 쓰에 앞서 가장 먼저 생각이 정리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흔히 겪게 되는 ‘난관’이 바로 이 점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온전히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텐데, 체계가 잡히지 않아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또는 글쓰기는 시작했더라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논지가 명확하지 않아서 내가 뜻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말 그대로 ‘삼천포로 빠지는 꼴’을 겪기도 했다. 그런 내게 저자의 WHAT 활용술은 훌륭한 처방전이 됐다. 그리고 글을 쓰기에 앞서 충분히 생각하며 뜸을 들이는 시간이 절대로 낭비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저자 송숙희의 책은 쉬이 읽히고, 이해하기 쉬우며, 읽고 난 후 ‘배웠다’는 느낌을 주게 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용서인 만큼 ‘당장 실천에 옮기고 싶다’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게 끔 하는 글의 힘 또한 저자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팬’인 만큼 저자의 책을 꽤나 많이 읽었는데, 점점 ‘남의 목소리(인용문)’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저자가 인용한 ‘남의 목소리’는 독자에게는 훌륭한 자료가 될 수 있고, 또 다시 읽어야 할 책들의 소개도 될 수 있다. 나 역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제목을 따로 메모해 두어 읽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자의 글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사들의 말들이 많이 인용된다는 점이 글을 매끄럽게 읽는데 장애가 된다. 또한 ‘자신의 논지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해 그를 보강하려고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게 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책에서도 말했던 ‘당신이 긁어 모은 그것(짜깁기 글)은 각각은 아무리 근사해도 모아 쓰면 눈뜨고 못 봐 주는 누더기’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자신의 글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는  ‘팬’으로서 인용문들이 적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쓰기라는 지극히 어려운 주제에 대해 ‘쉬이 읽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강점은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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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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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실용독서의 대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생산적 지식습득 비법을 밝힌 책!

  

  지知의 거인,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 隆 <지식단련법>을 읽었다. 이 책은 일본 최고의 저널리스트라는 그의 명성보다는 '다독가'와 '고양이 빌딩'이라는 그의 서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가 1984년에 출간한 책으로 자신의 정보의 수집과 가공및 정리 그리고 활용법에 대해 적은 글이다. 그의 수많은 베스트셀러 중에서 초기 저서에 속하는 이 책은 일본에서 40쇄를 넘기며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나는 그가 '저널리스트'인 것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다독가'인 그에게 접근하고자 이 책을 읽었다. 국내에 이미 출간된 바 있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도 그를 만났지만, 그의 독서와 지식활용법이 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득은 생각 외로 컸다. 그가 이 책을 통해 한 말들은 '실용독서'를 즐기는 나에게는 전작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버금가는 훌륭한 책이었다. 원제목은 「知」のソフトウェア ; 지의 소프트웨어 다.  

"독서는 정신적 식사다"

 
  그의 독서활동 즉 읽고, 배우고, 활용하는 측면을 입력하는 방법, 인풋Input 과 출력하는 방법, 아웃풋Output 그리고 입력에서 출력에 이르는 과정인 프로세스Process 를 나누어 이 책의 전체 이야기로 꾸몄다. 그는 정보의 입력은 결국 인간의 오관을 통해 이뤄진다고 했다. 오관 중에서 지적 정보는 전적으로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고, 눈으로는 문자 정보와 도면 정보가,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음성 정보가 지적인 정보의 주요한 형태인데, 정보의 입력에는 시간이 소요되는데 우선 음성 정보의 입력 속도는 발화자가 아나운서인 경우 1분에 300자 정도를 읽는다고 하면, 1권을 낭독을 통해 듣기 위해서는 6시간에서 8시간이 소요되는 셈이다.

 

  눈으로 읽는 속도는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내용이라면 좀 느린 사람은 귀로 듣는 속도의 두배, 빠른 시람의 경우에는 네 배의 속도정도 읽게 되는데, 이렇게 놓고 본다면 하루에 정보 입력(독서)를 할 수 있는 양을 계산할 수 있게 되고, 또한 평생 얼마나 많이 입력할 수 있는가 즉 몇 권을 읽을 수 있는가를 짐작하게 된다. 이는 극히 적은 양이고, 자기가 읽고 싶은 책 모두를 죽기 전에 읽어낸다는 것은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수식으로도 도출하게 된다. 하루 두세 끼의 밥을 규칙적으로 먹듯, 책을 하루에 몇 권을 읽을 수있는가를 가늠하는 그를 보면서 '독서는 정신적 식사다'라고 한 그의 말이 '식자識者'의 허장성세는 아님을 짐작하게 했다.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 그리고 < 피가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살도 안되는 100권>이라는 책을 쓸 만큼 책의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이유는 바로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적 생산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그가, 세상에는 아직 밝히고 알려야 할 것이 많이 남겨져 있음을 아는 그가 읽으며 즐기는 지적생활을 하기는 낭비로만 보인 것이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모두 읽어내기도 힘든 현실에, 아무 책이나 읽을 수 없다는 그만의 현실적인 선택인 셈이다. 이순간 '세상에 있는 책을 다 읽지 못해 늘 우울하다'는 괴테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책벌레'인 그들만의 코드가 일치하는 때문은 아닐까?

 

  1940년생, 즉 70의 나이가 된 그가 책을 가려서 할 이유는 이 책을 낼 때인 1980년대보다 더욱 더할 것이고, 더욱 필사적으로 책을 가려서 읽고, 집중해서 읽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독서는 '지적 시한부인생의 투병생활'로까지 느껴지게 했다. 애초에 책에는 관심조차 없던 내가 책을 읽게 되면서 지식정보체계라고는 제로베이스Zero Base에 다름 없기에 모든 정보가 곧 피가 되고 살이 될꺼라 믿고 닥치는대로, 틈나는대로 장르를 불문하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를 통해 남겨진 시간들을 유추하면서 제 흥미에 맞는 책, 정말 좋은 책만을 선택해서 읽어야 함, 즉 선독選讀해야 함을 배우게 되었다. '피도살도 안되는 책'은 비록 피같은 돈을 줬더라고 중도에 읽기를 그만두고 폐기처분해야 할 것은 당연할테고...

 

  이 책에서 가장 주목을 한 부분은 입력에서 출력까지의 과정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전체적인 흐름을 놓칠 수 있고, 또한 물리적인 독서시간까지 낭비할 수 있어 책을 읽는 도중에는 노트를 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나 따로 노트가 필요한 부분은 밑줄을 치고, 페이지를 접고, 책의 앞면에 따로 페이지와 간단한 메모로 적어두어 또 다시 살펴보거나, 노트를 할 때 찾기 쉽도록 하고 있었다. '책을 훼손함'은 그만의 프로세싱 과정이고, 그 이유 때문에 책을 꼭 사거나, 중요한 자료를 복사해 제본을 하거나 스크랩을 하는 이유기도 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신이 강연한 내용과 잡지 원고 중에서 '책'을 주제로한 글들만 추려 모아 1995년에'문예춘추'를 통해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펴내 96년 3월 말까지 단 몇 개월만에 37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는데, 이 책에서 그만의 독서법에 대해 밝힌 바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치열하고 집요한 입력프로세싱을 짐작하게 한다.

 

1.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값은 싼 편이다. 책 한권에 들어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2. 하나의 테마에 대해 책 한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관련서들을 읽고 나야 비로소 그 책의 장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그 테마와 관련된 단단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 없이는 선택 능력을 익힐 수 없다. 선택의 실패도 선택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료로 생각한다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수준이 너무 낮은 책이든, 너무 높은 책이든 그것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시간은 금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책이라도 읽다가 중단하는 것이 좋다.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까지 한 장 한 장 넘겨보라.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밖에 없다.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꼭 메모를 하고 싶다면 책을 다 읽고 나서 메모를 위해 다시 한 번 읽는 편이 시간상 훨씬 경제적이다. 메모를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사이에 다섯 권의 관련 서적을 읽을 수가 있다. 대개 후자의 방법이 시간을 보다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다.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최근 북 가이드가 유행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11. '아니, 어떻게?' 라고 생각되는 부분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을 발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보라. 이런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그 정보는 엉터리일 확률이 아주 높다.

12. 왠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번역서를 읽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 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한 지식의 양과 질, 특히 20, 30대의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



  이렇듯 다소 유별나고 집요한 그만의 독서법은 그에게 있어서 독서는 입력선행형, 즉 책을 읽고 즐기는 지적생활형이라기 보다는 책을 만들고, 저널을 펴내는 집필을 위한 출력 선행형, 다시 말해 지적 생산형 독서이기에 책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는 독서를 통해 창조형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독서인에게는 제대로운 롤 모델roll-model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그만의 지식 축정과정의 산물인 고양이 서재(빌딩)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다독가들이 그 빌딩을 부러워하는 이유도 단순히 책이 쌓인 건물이어서가 아니라 건물 속 책속 내용이 그의 머리 속에 들어있음을 예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신의 저서보다 책이 가득한 고양이 서재로 유명하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언급되면서 주목을 받게 된 고양이 빌딩은 고서점과 서가를 소개한 어느 작가의 책에서 도면과 함께 소개가 되면서 화제를 낳았는데, 책이 너무나 많아 감당할 수가 없어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도쿄에 빌딩을 지었다.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고양이 빌딩’ 은 보시는 바대로 도쿄 거리 한복판에 서 있다. 10평 정도 되는 자투리땅에 철근으로 세운 4층 건물로, 내부 서가의 총 길이를 합하면 무려 700 m에 이른다고 한다. 골목과 골목 사이의 맨 끝자락의 대지에 건축법에 맞게 제한적으로 지은 건물인지라 모양이 얇고도 특이한 빌딩이 생기게 되었는데, 뾰족한 건물의 모서리에 고양이의 얼굴을 그려 '고양이 빌딩'이 탄생했다. 자신의 서재에 있는 만여 권의 책은 따로 색인을 두지 않고 관련 범주에 넣고 있는데, 자신만의 사서법으로 원하는 책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뇌는 그만큼은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인간의 뇌에 대해서도 책을 냈던 그가 한 말이라 신뢰는 가지만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일이거니와 저자만큼의 내공이 쌓여야 가능할 법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끝끝내 털어지질 않았다.

 

  이 책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지적 생산의 기술을 밝혔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비롯해 신문, 잡지, 그리고 관청정보와 기업정보에 대해서도 이들 책자를 수집하는 요령, 그리고 스크랩하고 모아두었다가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아마도 일본에서 저널리스트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이 대선배의 족적을 추적하고자 이 책을 만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그만의 지적 생산과정을 소개함과 동시에 지금의 그가 있게 한 <일본 공산당 연구>나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그리고 <우주로부터의 귀환>등의 유명한 저널들의 탄생과정에 대한 회고록도 될 수 있어서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쓴 '일본'에 대한 책의 내용 중에 일본이 '기록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얕은 역사에 대한 정통성을 기록을 통해 확고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섬나라만의 심리적인 공간적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물과 생각에 대해 '경박단소'를 지향한 결과일 것 비슷한 글을 읽고 한편 공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창작은 기존것의 또 다른 모습의 모방'이라는 생각을 새삼하게 되었다. 새로운 지식의 확장은 기존의 것을 어느 정도까지 추적하는가 얼마나 근원에 가까이 다가가는가에 따라 그 모습과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한 번의 인터뷰를 위해 60만 엔(현재 환율로는 900만원 정도)의 책을 읽어 준비를 해서 인터뷰한 결과에 대한 고료를 받으니 60만 엔이더라는 그에 대한 에피소드는 '지적 생산자'들이 추구해야 할 생산적 책임성을 느끼게 했다. 하나의 인터뷰로 그에게는 고료가 남겨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식이 남겨졌으리라. 그리고 그 모든 엑기스들이 인터뷰 내용을 읽는 자들에게는 또 다른 새로운 지식과 생각으로 전파되었으리라. 이 책에서 참다운 지식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많은 책을 읽는 이유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으면 가능한 한 좋은 문장을, 가능한 한 많이 읽어야 하기 때문"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골라서 읽는 이유는 "좋은 책을 읽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광적일 정도로 많은 자료를 스크랩하고 분류하는 이유는 "이미 배운 자로서 앞으로 배울 자들에게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지식을 베풀어주고자 하는 때문"이었다. 이 책을 통해, 아니 다치바나 다카시를 통해 '책읽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Well-being'이 시대적인 흐름이라면, 독서는 'Well-read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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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me 2009-04-1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릉고출신인가요??
저도 강고...

다치나바 다카시상 책을 읽으면 덩달아 책을 읽고 싶어진다는,,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 미래를 위한 자기발전 독서법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의 책을 만끽하며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책 

  일찌기 르네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책을 읽는 여러가지 장점 중에서 '언제 어디서든 공서고금의 인물들과 단 둘이 책을 통해 대화할 수 있음'을 말한 내용이다. 저자가 죽었거나 살았거나, 멀리 살거나 코 앞에 살더라도 책장을 펴면 그와 만날 수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저자가 백과사전에 등재될 만큼 위대한 인물이나 직접 대면했다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라면 그 놀라움은 한층 더한다. 그럴 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에도 들어가는 '책'의 위력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때는 일면식識도 없는 저자를 만날 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쓴 책을 우연히 읽었는데, 내가 큰 깨달음을 얻었거나, 늘 생각했던 공감들을 만날 때다. 그럴 때면 그런 영감을 준 저자도 놀랍지만, '한낱 종이 한장에 활자 몇 자들이 새겨진 묶음'인 책에 더욱 놀란다. 그런 책을 만날 때면 '한없이 정적精的'이어서 다이내믹한 요즘에 맞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책읽기' 습관이 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흔하지 않지만 이렇게 책읽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책을 만나면 행복해진다.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은 내게 그런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서재에는 꼭 꽂혀 있었고, 많이 읽히며 사랑받더라'는 지인의 말씀을 듣고 일말의 의심도 없이 주문한 책이다(이런 경험은 몇 번 없는데, 그런 소개로 만나는 책은 실패한 경우도 거의 없다). '책읽기는 자신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라고 말하는 저자 안상헌은 이 책에서 책을 읽는 이유를 들어 ' 자신의 생활과 책읽기를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가기 위해서'라고 자신의 소개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책읽기, 이렇게 하라], [책읽기,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지름길 독서, 입장을 바꿔보면 책읽기가 쉬워진다], [책읽기, 그 속에 길이 있다] 는 큰 제목으로 책읽기에 관한 서너 페이지의 짧은 글들이 총 50 편이 수록되어 있다. 좀 더 책을 잘 읽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지금껏 십여 권의 '책읽기'에 관한 책을 읽었었는데, 이전의 책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전에 읽은 책들이 하나같이 책읽기에 대한 예찬론이 가득했다면, 이 책은 책읽기보다는 '책즐기기'에 가까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저자의 생활이 뭍어 있는 글 속에서 항상 존재하는 책 이야기, 그리고 책을 통해 얻고 있는 느낌들이 에세이 형식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 편 한 편의 막간마다 한 페이지로 정리된 <책 리뷰>를 읽는 맛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여러 장르의 좋은 책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앞의 글을 보충하는 듯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는 책 내용은 '찾아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500 자 짜리 리뷰를 써야 한다면 이처럼 써야 하지 않을까? 50 편의 글들도 저자의 말대로 그의 책읽기는 자신의 생활에 잘 녹아들어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조용하고 잔잔하게 읽히는 맛은 어느 수필집 못지 않았고, 책읽기에 어려움을 표하는 독자들에게 청량감을 줄 만큼 쉽고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설득력을 더하고 있었다. 

  저자는 '책을 읽어도 바로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독자들의 불안에 대해 '학습된 무력감'이 작용되어 '읽어봤자 별 소용없다'는 느낌을 준다면서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고' 한 권, 두 권 늘려가다 보면 어느날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변해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이것은 나 역시도 책을 읽는 초심자들에게 ' 빈그릇이 넘치려면 어느 정도 물이 차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 밖에도 책을 온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읽으면서 외우고 싶은 말을 표시하고, 논평하고 싶은 부분에는 낙서를 해서 또 다른 '나만의 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점, 독자인 내가 비록 저자보다 생각은 짧다 하더라도 느끼기에 건강하지 못한 책에는 과감하게 '아니다'라고 거부해야 한다는 것, 때로 슬럼프나 생활 면에서 의미있는 시간들과 열심히 책읽기에 브레이크가 걸린다면 한쪽으로 치우치지(주로 책읽기에 치우쳤지만) 말고, 균형잡힌 시각을 갖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등 책을 읽으면서 고민했던 부분들을 잘 짚어주고 있었다. 책읽기에 대한 깊은 내공이 아니라면 이런 대답들은 이렇게 편하게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미래를 위한 자기발전 독서법'이라는 부제는 이 책을 잘 설명하는 말이다. 책읽기를 하면서 '읽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서재에 책을 꽂는 재미에 빠져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또 한 때는 '리뷰쓰는 재미'에 빠져 리뷰를 쓰기 위해 소재용으로 책을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책읽는 행위'는 건전하고 건강하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이보다 더 생산적인 일이 또 있을까? 특히 요즘같은 불황에 자기발전적 책읽기는 더할 나위없이 경제적이고 바람직한 문화활동이요, 자기계발 활동이 아닐 수 없다.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책을 읽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책읽기가 더욱 의미있고 재미있어 질 것이다. 페이지마다 새기고 싶은 말들이 가득했던 책, 책좋아하는 이 놈을 행복하게 만든 책이었다. 그가 쓴 또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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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니뿌니 2009-03-16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을 읽은지 얼마되지않은 한사람으로써..리치보이님의 글이 아주..공감이 갑니다.

단지 책읽기가 좋은책을 소유하기 위해서..올한해 목표로 몇권의 책읽기를 마음먹은 저에게.

소유보다는..진정한 책읽기의 의미와 방법을 깨우치게 한 책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 소개된..49권의 책 또한 읽어보고 싶다는..욕심또한 살짝 생겼구요^^;

늘 보고만..혼자 생각하고 지나치는.저에게..이런글을 쓸수 있는 용기를..줄만큼의..

좋은책이라 생각합니다...저 혼자만이 아닌..많은분들이 이 책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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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소설가의 동서고금을 막론한 독서 탐독기!

  남이 써 놓은 책을 읽고 '글로 풀어 말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누군가가 혹시라도 읽을 지 모르는 온라인상의 공간에 글을 쓰기란 정말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깊은 감동과 공감을 표하게 하는 책을 만나면 내가 느낀 감동을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추스릴 길이 없고, 혹시라도 어숩치 않은 본인의 글로 인해 작품에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우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 쓰면 될 것 아닌가?' 반문하는 이가 있을 지 모르겠다. 이것은 잘은 모르지만 인적없는 대나무 숲 속에 들어가 대롱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소리친 사람의 이야기처럼 제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주위에 알려서 그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것이 인지상정(오지랖 넓은 나만 그런지도 모른다)인지라 '전파 싶은 충동'에 참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읽기고 어렵고, 읽은 것을 두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이 모든 것을 하지 않기는 더 어렵다니...이것이 요즘 일부가 말하는 '리뷰쟁이'들의 딜레마일까? 

  어릴 적엔 '작문숙제'였던 독후감을 쓰지 않아 매로 때우던 내가 나이를 훨씬 먹은 지금 책 읽은 시간만큼 공을 들여 리뷰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어서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이나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머리 속에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채우기 위해서다. 책꽂이에 한 권 두 권 책이 쌓이듯 온라인에 심어놓은 작은 카테고리에 내가 읽은 책의 소감이 하나 둘씩 쌓여가는 재미 또한 맛깔지다. 게다가 '나도 읽었소', '나도 읽어볼라우' 옆에서 추임새를 놓는 블로거들의 댓글이 있으니 그들과 대화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사람이 어디 '돈되는 일'에만 매달려 살 수 있겠는가? 이것도 살아가는 재미라는 것을 안 까닭이다.  

  기왕 리뷰를 쓸꺼면 잘 써야 할테다. 그리고 제일 좋은 방법은 '잘쓴 사람들의 글에서 배우는 것'일테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기란 잘쓴 책을 쓰는 작가를 만나는 일만큼 여렵다. 특히 '글쓰는 작가들의 독서기讀書記'를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 까닭에 역사장편소설로 유명한 김탁환님의 독서열전기 <뒤적뒤적 끼적끼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궈의 책에 관한 기록'이라는 부제는 더욱 입맛을 당기게 했다. 이 책을 집었을 때, 한 마디로 땡 잡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들의 서재를 훔쳐보고' 싶은 욕망은 독자들의 로망이다. 그들은 어떤 책을 읽었으며, 그 책을 읽은 소감은 어떠했을까? 정말 궁금한 내용이다. 그래서 '저자와의 만남'같은 자리에서 항상 마지막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일게다. 젊은 역사소설가 김탁환은 스스로 먼저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 같은 질문들이 너무 많아서 아예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 그가 말한 100 권의 책을 전체적으로 살피면 역시 역사소설가답게 소설과 역사관련서가 주를 이룬다. 시집도 몇 권 있고, 인문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책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억만장자 마인드>도 보이고, 10년 전에 나온 미래서 페이스 팝콘의 <미래생활사전>도 보인다. 그 역시 책을 말하는 책도 읽는가보다. 관능적인 독서가 정혜윤의 <침대와 책>,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글쓰기에 관한 책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눈에 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르를 뛰어넘는 그의 독서기록을 살펴보건대 그 또한 천상 독서가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는 것이었다."는 말을 새겨주기 위해 이야기를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정독시킨다는 그. 그도 이 책에서는 글로써 책을 말하는 사람, 북리뷰어가 되었다. 일반 건물의 두 층 높이는 될 법한 100권의 책을 3-4센치의 400 페이지짜리 책 한 권으로 응축시킨(게다가 자신의 생각을 더해서) 힘은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그가 소개하는 한 권마다 사연이 없는 것이 없고,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죽은 자들의 기록으로 첨철된 역사서에 숨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소설로 만드는 역사소설가인 그의 필력이 충분히 발휘된 듯 했다. 작가가 안되었다면 온라인에서 천하제일의 리뷰어로 활동했을 것이다.  

"읽어야 할 책이 많기에, 써야 할 글이 넘치기에, 삶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 김탁환

 

  작가들의 독서기로 읽은 책은 <장정일의 독서일기> 시리즈가 있고, 정혜윤의 <침대와 책>이 있으며, 다치바나 다카시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이 있다. 이들 책이 온라인에서 횡횡하는 북써머리와 다른 점은 오로지 책 내용을 파내려간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과 생각이 더해져 새로이 또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다른 생각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그들을 알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 그는 책을 '뒤적뒤적'거리며 읽고, '끼적끼적'거리며 쓴다. 그 결과물이 이번에 만난 책이다. 소설가 김탁환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선 느낌, 역사서엔 관심없던 나였지만 소개된 역사서는 읽고 싶게 만들었고, 어쩐지 그를 만나면 반가워져 성큼 다가가 악수를 청할 것 같은 느낌을 전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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