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아내의 절반. 가질까, 말까?
 
 
  "이 제목, 글자가 빠진거 아니냐? 옛 자字 라던지, 전前 자字 라던지..."
 한 달 전, 생전 들리지 않던 녀석이 수박 한덩어리를 들고 놀러왔을 때, 서재에서 한 권의 책을 뽑아들고 한 말이다.
 
  읽고 싶으면서도 안 읽고 남겨놓는 몇 권의 책이 있다. 그 무엇을 해도 시큰둥하고, 아무것도 안하자니 심심해 죽을 것 같을 때. 그 때 읽으려고 있지도 않은 자식 결혼 혼수용으로 사놓고 아예 잊어버린 우량주식 몇 장처럼 아예 존재 자체도 잊어버린 몇 권의 책이 서재 맨 아래 가장자리에 몇 권을 숨겨둔 것이다. 꽤 많은 책중에 그곳에서 기웃대더니 얌전히 있는 책에 시비를 건 것이다. '아, 그 책이 저기에 있었네?' 정말 한동안 잊고 있던 책이다.
 
 그 책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해줬더니 '나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며 들고 도망을 쳤다. 어짜피 나중에 읽을 거 온전히 되돌려주라고 통화를 했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줘버렸다. 만화책도 열 페이지를 넘기면 잠이 들어버리기로 소문한 녀석이 언제 돌려줄 지 모르는 일이고, 돌려준다는 보장도 없어서다. 한 칸의 꽉 차있었는데 빈자리가 울할아버지의 앞니같아 얼른 사다 채워 넣었다. 그리고 '심심해서 죽을 것 같은 그런 날'은 어제였고, 그래서 하마터면 읽지 못할 뻔한 그 책을 꺼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제목엔 아무런 문제 없는 소설이다. 
   

 
  
  2년 전 '일처다부제'라는 생소한 소재와 '축구'를 더해, 2006년 월드컵이라는 시의성도 있었지만, 갑론을박의 논쟁도 불러일으켰던 소설이다. 최근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다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 그러고 보니 근간에 읽긴 읽어야 할 책이었다. 읽지 않고 뜸을 들인 덕분일까? 첫정을 펴는 순간부터 지난 밤의 심심함은 잊어버렸다. 모두 읽지 못해 아쉽게 잠이 들었고, 점심시간의 잠깐 여유를 틈타 카페로 달려가 모두 읽어버렸다. 프랑스소설에서나 만날 법한 소재에 축구가 더해진 정말 소설다운 소설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인아'를 먼 발치에서 좋아하게 된 '덕훈'은 어느 날 회식을 하고, '단' 둘이서 한잔 더 마시게 된다. 이야기중에 그녀가 FC 바로셀로나 축구팀의 열렬한 팬임을 알게 되는데, 그 또한 레알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축구광. 둘은 더욱 친해지고 애인이 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그녀. 하지만 그녀에게는 딱 한가지 단점이 있다. 그녀는 자유연애주의자다.
 
"사랑에 빠지면 고통이 시작된다. 사랑의 고통이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다. 내 경우에는 누가 누구를 더 많이 사랑했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더 많이 사랑했던 것 같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내게 잘했다. 문제는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몸이었다. 몸이라고 하니 이상한가? 그러너 어른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 어른의 사랑에서는 누가 누구를 얼마나 더 사랑하는가의 문제만큼이나 '누가 구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잔인한 문제는 사랑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에 관한 한 고통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p 50)
 
  덕환은 당당히 결별을 선언한다. 하지만 곧 그녀에게 꼬리를 내리고 돌아간다. 오히려 그녀의 연애관을 100% 수용하기로 하고 옐로우카드를 받는다. 한 번 더 결별을 이야기하면 레드카드다. 그후 그렇지 않은 척 하면서도 일로 인한 그녀의 늦은 귀가와 술자리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실제로 일때문 일 수 있고, 회식일 수 있는데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한다. 다 좋은데 딱 한가지 마음에 안드는 그녀의 연애관은 급기야 플레이보이 친구에게 조언을 얻게 만든다. 친구는 말한다. "결혼해라." 지금이 좋다고 버티는 그녀를 달래고 달래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연애관은 바뀌질 않는다. 결국 아내가 된 인아에게 이런 말까지 듣는다. "나, 그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어. 그렇지만 덕훈씨도 사랑해."
 
  마누라가 바람피운다는 것은 아끼는 자전거의 안장이 없어진 것과 같다고, 그래서 안장을 갈아 끼우기보다는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게 된다며 이혼을 앞둔 친구의 변辯 에 그도 맞는 말이라며 따르고 싶지만, 그녀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는 덕훈, 어쩌면 인아가 두번 째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그 '놈'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클 것이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소설의 제목처럼 '아내가 결혼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아는 덕훈의 아내다. 그 후 일어나는 웃지 못할 이야기는 더이상 말 못하겠다. 매맞을 것 같아서...
 
  '일처다부제'라는 소재는 어처구니 없는 소재같지만, 한편 지금도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남편들의 외도나 부부들의 아슬아슬한 불륜에 대한 당당한 고백인지도 모른다. 몰래 벌인다면 범죄겠지만, 상대도 이미 알고 있는 부인의 연애는 '싫음 할 수 없다. 하지만 너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주장만큼 정당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잣대는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억장무너지는 아내의 연애관은 '종종번식의 본능' 운운하며 벌이는 남자의 그것과 닮아서, 덕훈의 갈등과 고민은 '바람피는 서방둔 아내'의 마음과 일맥상통하다. '싫으면 관두면 될 것'인데, 싫지 않은 것이 문제다. 덕훈에게 인아는 '팜프파탈'의 클레오파트라고, 백만 개의 흡착판과 2백만 개의 부드러운 솔기를 지닌 옹녀다. 그녀에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덕훈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덕훈이라면, 이 스토리는 어떻게 될까?
 
그 해답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에게서 찾을까 한다. 노름에, 바람에 할머니 속을 ' 썩어 문드러지게' 썩혔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실 때면 할머니는 그 이야기의 끝에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내 지금 당장 죽어도 원은 읍다마는 '사랑같은 사랑' 한 번 못해보고 중는기, 그기 정말 한스럽데이."
 
 덕훈은 인아를 사랑하고 있다. '아내가 결혼하는 있을 수없는 사태'를 맞으면서도 그녀와 헤어지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애정이 되었든, 애증이 되었든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모르겠다. 나중에 그보다 더 나은 사랑을 만나게 될 지,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저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세상도 아니고, 저 좋아 죽고 못살겠다면 그런대로 잘 사는 인생이다. '당신을 완전히 가질 수 없다면 반쪽이라도 갖겠다' 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자보의 고백이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허락하는 '일로나'가 있다면 그것이 진심이라면 상관없지 않을까?
가정적인 내 남자에게서 '다른 여자의 향기가 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 아내나, 무엇인가에 미쳐 수시로 집을 비우는 아내를 둔 남편에게는, 그리고 이시간에도 속고 속이는 묘한 심리전 속에 모든 기운을 허비하는 부부들에게는 '애들 소꼽장난'같은 귀여운 연애행각으로 보이지 않을까? 덕훈은 행복한 놈인지 모른다. 최소한 자신을 부러워해 줄 '우리 할머니'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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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 - 분석 : 가로수길
TBWA KOREA 지음 / 알마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느림과 인간이 공존하는 젊은 거리, 가로수길을 재조명한 책!
 
 
  신선하다, 좋다는 주위의 평에 보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
엊그제 도착. 책을 펴 보곤 이렇게 난 말했다. "이게 뭐야 !?"
 
  라마단의 종료를 기념하는 메카 순례에 모인 무슬림들처럼 종이 한 쪽에 글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야 '이거, 읽을만 하겠다'고 여기는 활자중독증에 가까운 취향인지라 형형색색의 작고 큰 활자들과 한페이지를 가득 채운 사진이 있는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꽝'이었다. '누구야? 도대체 누가 이렇게 겁없이 책을 만든거야?' 저자를 찾아 원망하려 뒤져보니 이름이 없다. TBWA 라는 영어가 떠억 자리를 잡았다. 광고회사의 이름이란다. 그것도 무척이나 잘 나가는 ... 세상들이 한 번은 봤음직하고 들으면 '아하~ 그 광고?'라며 대꾸할 만한 대단한 광고들을 만든 회사. '저자가 광고회사란 말이지?' 회가 동했다.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겼다. 그리고 그 내용에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문제작은 이름도 특이한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이다.
 
 

 
 
대학로는 표현이다.
   홍대앞은 열정이고, 삼청동은 경륜이다.
       인사동은 전통이며, 청담동은 과시다. 
 
가로수길은....로망이다.
 
 '한 감각'한다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가로수길 운운...' 하는 소리에 열 두명의 광고회사 TBWA 친구들이 시선을 한데 모아봤다. "왜 사람들은 가로수길에 모이는 걸까?"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 봤다. 광고꾼들이 사물이나 현상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숨은 속내를 꿰뚫어 보듯 관찰하고 쓴 책이 이 책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광고가 시대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처럼, 가로수길도 거울이더라. 그 속에 우리의 모습이 숨어있더라 라고.
 
 

 

 
 
 특이한 구성,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활자, 낯설고 거북스럽기까지 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는 다음 장을 넘기는 재미를 더했다. 그들은 '가로수길'이 자생적自生的 으로생긴 원인을 사회의  네 가지 변화로 들었다. IMF로 생긴 매울 수 없는 분화구, 기존의 비즈니스와는 다른 탈산업 사회,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위한 온리 원 상품, 그리고 더이상의 해고도 퇴직도 없는 1인 온리 원 기업. 한데 묶자면 단연 IMF의 영향이라 하겠다. 평생직장을 선언하며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만의 울타리를 만들었던 대한민국이 IMF를 계기로 생긴 '세계화'는 너무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 그리고 많은 것이 변해버린 것이다. 예전에는 있지 않던 다양한 직업군이 생겨나고, 인터넷의 영향으로 생산자보다 더 잘 아는 입맛 까다로운 고객군인 '프로슈머 군단'에 맞춰 온리 원 경영과 마케팅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분야의 생산자들은 서로 조합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의 변화와 그에 부응하는 결과는 곧 가로수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로수길은 사람을 향합니다.
과거가 효율로 대변되는 '직선의 시대'였다면 현재는 느림을 예찬하는 '곡선의 시대'다.
기능 중심의 세계에서 사람 중심의 세계로 변하고 있다." 
 
 

 

 
 
  가로수 길의 주인은 '사람'이다. 점포의 주인도 고객도 돈도 아닌 '사람' 이다. 그래서 그들은 휴일엔 놀고, 급한 일이 생기면 문을 닫는다. 권유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는다. 주인이 자신이 소중한 것처럼, 손님客도 정말 소중히 다룬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1도 따뜻하다. 가로수 길은 10분 느리다. 아니, 더 느리다. 그래서 그곳엔 '나를 쳐다 볼 느린 시간' 이 늘 공존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남들보다 많은 돈 몇 푼'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행복'에 있다. 그들은 남을 선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자신을 좋아하고, 사랑할 줄 안다. 그들은 본 만큼, 배운 만큼, 느낀 만큼 만들어내고 공유하려 하고, 나누려 한다. 그리고 혼자라 늘 외롭다. 한국은 좁다 느끼고, 세계는 편하다고 느껴진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장소가 되고, 그림이 되고, 먹거리가 되어 작은 울타리를 만든 곳이 바로 '가로수길'이다. 안가봤다고? 그렇담 말을 하지 말아라. 일단 가서 보고, 느끼고, 먹어보라. 그리고 이 책을 읽어 보라. 가로수 길에서, 책 속에서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발칙하리만치 특이한 책, 그래서 멋진 책. TBWA의 다음 프로젝트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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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떡살 무늬
김규석 지음 / 미술문화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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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미술품', 우리의 아름다운 떡살무늬를 이야기한 책! 
 
  친분이 있는 일본신문사의 한국특파원은 일본으로 돌아갈 때 마다 종로에 들러 '떡'을 사간다고 한다. '너희들도 모찌餠 라는 찹쌀떡이 있잖냐?'고 물었더니 대답없이 그냥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마치 나를 '바보'로 보는 듯 해 기분이 꽤 상했었다. 몇 개월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 친구는 내게 한국에서 떡을 사는 이유를 말해 줬다. "한국에는 떡에 예술작품이 들어 있거든. 너무 아름다운...내가 선물한 일본의 어느 지인은 먹지않고 굳혀서 벽에다 걸어놓기도 했어."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나도 모르는 것을 외국인인 네가 아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재차 물어봤더니 "모르냐? 한국의 떡에는 조각이 가득하다."는 마치 선문답을 하듯 하는 거였다.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 떡에 새겨진 '떡살무늬'를 말한 것이었다. 그 후엔 나도 종로를 들르면 항상 새로운 무늬의 떡이 있던가, 색은 무엇이든가 살피곤 했다. 그전엔 인식하지 못하던 것을 알고 먹으니 맛도 느낌도 새로웠다. 그리고 우리 떡에 새겨진 무늬들은 무엇인가 알고 싶어졌다. 그러던 차에 반가운 책을 만났다. 광주시 무형문화재 남도의례음식장으로 지정되실 정도로 남도음식의 대가셨던 이연채 선생은 떡살과 다식판 제작에 한평생을 바쳐 오다 지난 1994년에 타계하셨는데, 그 분과 함께 떡살과 다식판을 연구,제작해 오고 있으며 전통음식에 대한 뜻도 이어가고 있는 제자 김규석 선생이 꾸민 책 [아름다운 떡살무늬]를 만난 것이다.
 
 


 




































  이 책은 떡살 제작 기능보유자 김규석이 근 20년을 전통떡살 제작에 쏟아부은 정성을 정리한 책으로 전통무늬를 새겨넣은 떡살을 각각의 특징을 중심으로 분류한 책이다. 떡살의 정의, 각 떡살 무늬의 의미와 쓰임새에 관한 이야기가 저자가 직접 깎고 다듬어 새겨넣은 떡살과 어우러져 떡살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규식선생께서 이렇게 책을 만들 정도로 우리의 꽃살 무늬에 온 힘을 다하신 이유문양(무늬)이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삶을 통해 발현되는 창조적 산물이며, 언어나 문자와 마찬가지로 사용 주체인 민족과 그 민족이 처한 역사적 배경에 따라 고유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물의 재료 차이에 따른 점이나 선 등의 질감에서부터 공예·회화·건축 등의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에 이르기까지, 문양은 단순히 장식적인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본연의 기원과 욕구를 다분히 종교적 성격을 띠면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문양(무늬)는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에서 문양이란 일반적으로 물건의 겉 부분에 여러 가지 형상이 어우러져 이룬 모양을 뜻한다. 우리말로 '무늬'라 하며 한자로는 '문양(文樣)' 혹은 '문양(紋樣)'이라고 표현한다. '문(文)'은 글자(書契, 사물을 표시하는 부호), 꾸밈(飾), 아름다움(美), 빛남(華), 아롱짐(斑), 빛깔(文彩) 등을 뜻한다. 한편 '문(紋)'은 직물의 문채(織文) 즉 '비단무늬', '꽃무늬' 등을 의미한다. 문양(文樣)과 문양(紋樣)에는 각각 문화적인 소산과 문명적인 소산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므로 문양은 삶을 통한 문화 활동의 소산이자 창조적 문명의 산물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문양은 언어·문자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인류가 이루어 놓은 회화·조각·공예 등 모든 조형미술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문양(무늬)는 단지 아름다운 것 뿐 아니라, 그 이전에 우리의 역사와 정신과 혼이 담겨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일본인 친구가 우리의 떡 무늬에 매료되고, 그것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그것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떡살 무늬에는 우리민족의 모든 마음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비례미가 물씬 느껴 지는 點과 線에서부터 원앙, 나비, 목단, 물고기, 잉어, 거북이, 연꽃, 국화, 매화, 포도열매 등등 그 무늬들은 곧 기도하는 마음, 간절한 소망이기도 한 것이다. 그 의미에 있어서는 모든 무늬마다 특별한 의미가 있고 또 사용하는 시기가 다르다. 즉, 백일이나 혼인 회갑때 사용하는 문양이 다르고 의미가 다른데, 예를 들어 백일에는 기쁨을 의미 하는 물고기나 파초를, 결혼에는 원앙이나 꽃위를 날아다니는 나비, 석류나 복을 가져다준다는 한쌍의 박쥐 등 아들 딸 많이 낳고 복받기를 기원하는 무늬를, 회갑 에는 壽福문자나 태극 팔괘무늬 그리고 장수를 의미하는 잉어나 거북이 등의 무늬를 새겨 넣었다. 그런가하면 스님들의 불공에는 연꽃무늬 완자형의 무늬를 넣었고, 일반 가정에서는 장수(長壽)나 다복(多福), 부(富貴) 등의 간절한 바람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글자 무늬로 나열했던 것이다.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文樣)을 부여한다는 뜻으로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찍는 것을 `살박는다'고도 했다. 떡살은 떡손이라고도 하는데, 떡손이라고 할 때는 원형 문양에 손잡이가 대체로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말한다. 장방형의 긴 떡살은 가래떡처럼 긴 떡에 연속무늬이거나 단독무늬라도 연이어 있는 떡살을 양쪽에서 눌러 찍은 다음 떡을 적당한 크기로 떼내거나 썰어서 먹었지만, 떡손의 경우는 떡을 일정한 크기로 먼저 떼내어 그 위에 떡손으로 눌러 찍었다. 절편에 살을 박아 넣은 것은 단순히 배불리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이 떡살에서 우리는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미의식과 심미안을 느낄 수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바로 아름다운 무늬의 떡살로 찍은 절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재질에 따라 나무떡살과 자기떡살로 나눌 수 있는데, 단단한 소나무·참나무·감나무·박달나무 등으로 만드는 나무떡살은 1자 정도의 긴 나무에 4∼6개의 각기 다른 무늬를 새겼다. 사기·백자·오지 같은 것 등으로 만드는 자기떡살은 대개 보통 5∼11㎝ 정도의 둥근 도장 모양으로,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잡고 꼭 누르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떡살무늬는 일반적으로 가문에 따라 독특한 문양이 정해져 있다. 그 문양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집안에 빌려 주지도 않았다. 부득이하게 떡살의 문양을 바꾸어야 할 때에는 문중의 승낙을 받아야 할 만큼 집안의 상징적인 무늬로 통용되었다. 이 책에서는 김규석 선생이 직접 제작하신 나무떡살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우리의 떡살무늬들이 십장생문 十長生文, 사군자문 四君子文 을 시작으로 다식판 무늬까지 80여 종의 떡살무늬들이 저마다의 모습에 설명을 더해 소개되고 있다. 특히 한쪽에는 영문을 두어 외국인들도 우리의 떡살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눈에 띄었다. 명절 때마다 만날 수 있었던 눈에 익은 떡살무늬도 있었지만, 전혀 보지 못한 아름답고 섬세한 떡살무늬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이 과연 우리나라의 문화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문양들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떡살무늬를 보기 쉽게 하기 위해 낙관을 찍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갓 뽑아낸 떡에 모양을 새겼다면 그 입체감과 모양에 더 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최근에 생일이나 행사때 케익을 대신해서 우리 떡으로 된 케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어느 커피전문점에서도 떡을 취급하는 곳도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 뿐 아니라, 옛날의 재래식 방앗간을 대신해 우리 떡 전문점이 프랜차이즈화 되어 동네마다 떡집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곳에 우리의 떡살무늬들이 액자에 담겨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은 틀에 담겨진 수많은 그림과 기호, 그리고 글자들은 목판화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입는 티셔츠에 새겨넣어도 훌륭한 디자인이 될 것도 같았다. 그 활용도는 너무나 무궁무진해서 생각을 거듭하다가 그만 둘 지경이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듯, 우리네는 한번 먹고 나면 없어져 버릴 떡 하나라도 보는 즐거움으로 구미를 돋구었다. 평면의 떡이 아닌 음과 양의 요철을 지녔고, 들어가고 나온 부분마다 떡을 씹는 식감funnylion도 다른 우리의 떡에 새겨진 떡살은 먹는 조각품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생활의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치장하기를 즐기던 우리 문화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떡살은 선조들의 격조 있던 음식문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문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아름다운 우리미술의 멋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제 활용하고 대중에 알리는 일이 남은 것 같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기록된 이 책은 음식을 다루는 요리사나 경영자, 그리고 다양한 디자인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아이디어와 활용도를 알려줄 책이다. 그리고 우리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잊고 있는 우리문화유산을 이야기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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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산수화의 대가 이가염
장정란 지음 / 미술문화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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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동적인 힘'을 노래한 산수화가 이가염의 작품세계 ! 
 
  "너, 수업 끝나고 미술실로 오너라." 중학교 2 학년 따뜻한 봄의 어느 날, 미술 수업시간에 넌지시 건낸 미술 선생님의 이 한 마디의  말씀 때문에 난 '한국화'를 알게 되었다. 새로 생긴 중학교에 선배가 있을 턱이 없는데, 석 달 후에 있을 '도내 학생 미술대회'를 위한 '시군구 학생 미술대회'를 위해 우리 학교는 부랴부랴 빈 교실 하나에 미술부를 만들었고, 나를 비롯한 대여섯명을 미술부원으로 뽑힌 것이다. 그 중 내가 맡은 부문은 '한국화'. 말 그대로 동양화라고는 '화투장' 밖에는 모르는 완전 '초급'이 급조되어 졸지에 붓을 잡게 된 것이다. "한국화의 기본은 동양화요, 동양화의 생명은 여백이다."는 말씀과 함께 건내신 것은 중국 현대 산수화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이가염 선생님의 그림 몇 장이었다. 그리고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대로 보고 베껴라." 달력 그림 몇 장, 이것이 나와 이가염 선생의 첫 조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미술선생님의 전공분야는 '유화'셨다. 여백이 생기면 절대로 안되는 미술분야를 전공하신 선생님이 내게 한국화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력도 되지 않는 먹물 값도 못하는 그림이지만, 하루에 다섯 장씩 베껴서 검사를 받아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붓을 잡고 선을 그리는 것도 쉽지 않던 내가 두 달여를 그렇게 하자, 화선지에 얼핏 산도 보이는 것 같고, 초라하지만 나무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출전한 '시 대회'의 성적은 2위. 세 명 출전해 두 번째가 된 것이다. 그 해 도대회에서는 거의 모두가 받는 '입선'도 받았고, 그 다음해에는 꽤 많은 학생들 가운데 운 좋게도 '금상'을 받게 되었다. 동양화를 전공하신 선생님이 계신 1시간 거리의 여고를 매주 '과외수업'을 받게 해주신 유화전공의 미술선생님 덕분이었다. 그림 실력은 여전히 베끼는 수준이었지만, 먹향을 좋아하게 되었고, 붓의 날림과 먹빛 가득한 그림 속 여백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고 그것들이 좋아서 지금도 '한국화'를 보러 다닌다. 흐린 주말이면 어김없이 인사동을 찾아 점포 한 곳 한 곳 뒤지듯 그림쳐다보는 맛을 즐긴다. 딱히 흐린 날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리창 넘어 멀찌기서 봐야하기 때문에, 맑고 푸른 날은 선과 색이 진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흐리거나 비오는 날은 인사동에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더 이상 '지겨운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 때가 오면 또 다시 붓을 잡으리라 마음을 먹고 있는데, 그 때까지는 '보는 맛'으로나마 위안을 삼으려 노력 중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 장정란의 [중국 현대 산수화 대가, 이가염]은 그런 나를 위로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가염의 이강산수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장정란씨가 십년 전 북경의 서비홍 기념관에 있는 이가염의 인물화와 소 그림을 보고 마치 중국화된 마티스를 보는 기분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그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되면서 만들어진 책이다. 그녀의 이가염에 대한 의문은 하나였다. "왜 이렇게 검게 그러야 했을까? 묵에 대한 찬미인가, 절망인가?" 서구문물의 많은 유입으로 용도폐기 되었던 '산수화'가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에서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그려내어 인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 이가염의 산수화가 있다. 전국의 명산대천을 어행하고 사생하면서 그려낸 그의 산수느 인민들이 살고 있는, 인민을 키워내는 생활 속의 산수화이다. 그가 그려내는 산과 기세 넘치는 폭포들, 기이하고 환상적인 구름과 안개는 그가 바라보는 조국의 웅장한 기상이었다. 어릴 적 동양화를 처음 만났을 때, 베끼던 그의 달력 그림 산수화는 사람사는 집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었던 생활산수 몇 점이었다. 이 책 속에서 만나는 그의 산수들은 내가 보고 상상했던 그 이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장관들을 보여주었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중국 근대산수화의 동향, 이가염의 회화관, 대단한 정신과 화법의 이가염, 수묵으로 연주한 산수의 세계(이강산수)로 구분된다. 중국 근대산수화의 동향에서는 서비홍, 고검부, 임풍면, 유해속 등의 개혁파와 황빈홍, 반천수, 부포석 의 전통파 들을 작품을 소개하며 작품속에서 말한 두 파벌의 갈등을 이야기해주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 놀랍고 기함하는 작품들을 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그림은 정감이고, 생활의 반영이다."고 말한 이가염의 화론을 이야기한 이가염의 회화관 역시 그의 작품이 있게 한 이가염의 역사와 생각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의 산수화들은 검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그의 묵접은 적묵(묵을 쌓는 것)이 주류인데, 이것은 근대화단의 황빈홍이 연구한 전통적인 묵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원으로 본 웅장한 산들의 모습이나 대소로 운용되는 경물들의 배치, 특히 산수를 치밀하게 탐구하는 자세는 곽희의 작화태도를 본받았다고 말한다. 이가염에 있어서 산수화는 조국을 그리는 것이고, 검고 검은 묵색은 쌓고 또 쌓아가는 혁명정신과 같은데, 혹자는 그런 그의 작품들이 사회주의적 산물이라고 하지만 전통산수화가 지닌 완벽한 필묵의 아름다움과 이 시대의 현장성을 결합하여 독창적인 화면을 창출해 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이가염의 회화사적 공로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자신의 이름보다는 의미있는 단어나 글귀들을 즐겨 사용한 이가염의 수집 종에 달하는 인장들을 보고, 읽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소牛를 즐겨 그렸던 그가 '사우당師牛堂' 즉, '소에게 배우는 집'이라 하여 소의 희생정신을 높이 샀는가 하면, '일일학지사日日學之始' 라 하여 '날마다 처음 배운다는 자세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식결재識缺齋' 역시 '결점을 아는 서재'라 하여 자신의 결점을 알아야 진보할수 있다, '스스로 결점이 많은 사람임을 언제나 자각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언젠가 꾸밀 서재의 이름을 이가염 선생의 인장의 말을 빌어 '식결재識缺齋' 로 해야겠다는 생각했다. 그의 산수를 대표하는 인장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산수지음山水知音'이 그것이다. 그는 산수를 말하면서 전체적인 흐름과 작품속에서 '음악'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는데, 그것을 아우르는 인장의 글귀가 아닐 수 없다. 이 밖에도 훌륭한 인장 속의 단어와 글귀들을 통해 동양화라는 것은 그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화가의 생각과 사상과 음악적 상상들이 그림으로, 글로, 작은 인장으로까지 표현된 '종합예술'임을 알게 한다.
 




































  이 책의 백미는 제 2부 이가염이 이룩한 현대 산수화 이다. 대담한 정신과 화법으로 표현된 이가염선생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보게 되는데, 전통의 정신을 이어서 배우는 학습시대와, 자유로운 개성을 연출하여 다양한 화법을 시도하는 사생시대, 그만의 화풍이 굳건하게 만들어지는 완성시대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가염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이강산수' 편은 따로 두어 이강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수십년 간의 그의 작품들을 따로 감상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이가염선생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었다. 특히 번역작이 아니라 십수 년간 그를 연구한 우리 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작품집이라 이해 면에서 공감하는데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책 [여행의 기술] 에서 그는 '진정한 여행의 참맛은 실제로 여행을 통해 여정 속에 생긴 복잡다난함을 경험하면서 도착한 여행지에서 느끼는 맛보다는 그런 것들이 모두 걸러진 후 여행지에 집중한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진, 그림을 보면서 상상하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을 보고 읽으면서 느끼는 내 기분이 그랬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지고 만끽하면서 중국의 어느 미술관에 온 듯, 감히 이가염 선생을 가이드삼아 중국을 여행하고, 이강에서 머물며 풍류를 즐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어제 읽은 '옛시읽는 CEO'를 읽은 탓일까? 그림을 보면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 시를 짓고 싶다는 충동까지 일게 한다. 이제 막 찾아온 서늘한 가을 주말을 만끽하게 한 정말 멋지고 훌륭한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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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글쓰기
셰퍼드 코미나스 지음, 임옥희 옮김 / 홍익 / 200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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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생긴 마음병病, 일기써서 고치세요!
 
  "연인들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소한 일에 다툼을 벌이듯이 나는 평생 나의 일기와 다퉈왔다. 고통으로 첨철된 삶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일기 쓰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시절, 나는 일기장 속에서 나와 끊임없이 다투면서 새로운 나를 찾으려 했다. 일기는 그만큼 나에게 친구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프랭크 맥코트의 말이다. 책을 읽는 것 만큼이나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한데, 책을 읽어 지식과 지혜를 얻고, 내가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삶을 배운다면, 글을 쓰는 것은 나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키워낸다는 것이다. 더우기 글을 쓰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 정신적 질환도 치료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 책이 있다. 50여 년을 일기를 써오면서 스스로 체험을 한 셰퍼드 코미나스 박사의 책, [치유의 글쓰기Write For Life]이다.
 
 저자는 1955년 어느 날,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규칙적으로 일기를 써보세요." 라는 70대 전문의의 뜻밖의 제안에 따라 일기를 쓰게 되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을 일기쓰듯이 쓰게 되면서 그날 하루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슴속에 있는 찌꺼기들을 탁탁 털어놓고 나면 모든 것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느낌이고, 그것이 그를 편안하게 했는데 편두통 또한 증세가 많이 호전되게 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영적인 잇점을 얻는데 이를 종합해 보면 첫째 글쓰기는 자신이 성취한 것들을 가치있게 받아들이게 하고, 둘째 인생의 전환기를 더 주의 깊게 성찰하게 하며, 셋째 과거를 탐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좀 더 창조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말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가급적 줄이 쳐진 비싸거나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일기장을 선택하고, 펜 또한 특별한 것을 정할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들, 모양도 색깔도 가지각색인 여러 개의 볼펜을 마련해 기분에 따라 특별한 느낌이 있는 단어나 문장에 별도의 색깔을 넣거나 한다. 글을 쓰는 장소는 가장 편한 곳일텐데 틈나는 대로 공간이 허락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글을 쓰기에 적당한 시간 또한 자신에게 편한 시간일텐데, 어느 때가 되었건 약 20분 간 할애할 수 있는 때를 고르는 편이 낫다. 무엇을 얼마나 쓸까 하는 것은 오늘 가장 나를 놀라게 한 일은 무엇인가? 오늘 나를 가장 감동시킨 일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가장 기어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고려해 편하게 써내려 가라고 조언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쓴 노트 즉, 일기장을 둘 장소인데 아무도 모르는 곳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모든 상념이 들어간 일종의 화장실같은 글을 남들이 읽을 수 있을 만한 데 둔다는 것은 그들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어 함부로 글을 쓸 수 없거나, 가식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공간에 둘 수 있어야 글도 마음껏 쓸 수 있고, 가족들 또한 그 글을 읽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글쓰기를 계속하다보면 자신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것인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고, 시작할 때는 잘 모르지만 인내와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하다보면 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고민이나 문제를 그냥 방치하는 것은 걱정이 늘어나게 만드는 원인이 되어 심리적, 육체적 문제(질환)으로까지 심화할 수 있는데, 글을 쓰게 되면 자기가 쓰는 것에 주목하게 되고, 그것만으로써 자기 인생을 관리할 능력이 생기고, 그것이 문제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다. 자신과 화해하는 길이기도 한 글쓰기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고, 고백이기도 하며, 기도일 수도 있다. 미리 쓰는 유언일 수도 있고, 부치지 않은 편지일 수도 있으며, 혼자서 떠나는 여행일 수 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영혼의 내적인 힘"이라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이 내면과의 조화를 통해 스스로에게 용기와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행복으로 다가가는 초대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버리고 갈 것이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라는 제목으로 유언을 남기듯 시집을 두고 떠나신 고 박경리선생처럼 내면으로 비롯된 기록이야말로 후회없는 행복한 죽음도 맞이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업 초기 어린 나이에 겁없이 사업을 확장하다가 실패를 보고 '우울증세'를 띤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작은 말에도 서러운 것이 마치 14세에 경험한 '사춘기'의 그것과 크게 다를 수 없었다. 이미 성인이기에 마음껏 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오히려 악이 되어 많은 실수와 오류를 경험하면서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우연히 잡지에서 알게 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쓸데없는 상념들을 글로 그림으로 표현하며 시간을 보냈다. 무언가 토해내고 싶은 충동으로 밤을 새워 매달린 적도 있고, 부질없다 생각하고 6개월동안 한 번 들여다 보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6년 째 블로그를 계속하고 있고, 그 때의 우울함을 이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누구에도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을 알게 되면서 '혼자'라는 고독감과 남들과는 다르다는 '상실감'이 똘똘 뭉쳐져 풀어낼 방법이 없는 실타래가 되어 혼란스러웠던 것 같았다. 결국 스스로에게 생긴 문제인 만큼 스스로가 풀어내는 방법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무엇이든 쓰는 것, 그 글쓰는 행위는 배설이 되고, 글이 담긴 노트(블로그)는 정신의 해우소가 된 것이었다. 혼자서만 느끼던 것을 50여 년동안 일기를 써 온 저자를 통해 공감하게 되고, 이 또한 혼자서 경험한 것이 아니라는 연대감에 위안이 된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얻어야 할 것이 많은 책이었다. 인생은 산과 같아 깊고 깊은 계곡을 추락할 날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 때, 이 책을 다시 펴서 도움을 얻고 싶다. 스스로 할 뿐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처럼 "인생의 무거운 짐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의 여정"과 같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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