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미술관 -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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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불이 켜진 약국 같은 미술관'을 소개합니다!

 
  흐리거나 비가 내린 오후엔 어김없이 인사동을 갔던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화를 구경하기 위해서-제가 감히 관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입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 공부할 방이 마땅치 않아 식당을 찾아주시던 서예원의 원장님 배려로 묵향 가득한 서예원에서 숙제와 시험공부를 했었는데, 그 인연으로 한국화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고개를 쳐 들면 창문틀을 제외하고 사방이 붓글씨와 한국화로 그득한 묵향으로 얼룩진 벽을 둘러보는 재미에 빠져 넋을 놓은 적도 있었죠. 제가 공부를 할 땐 그림이 절 봐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장남에다가 살림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때라 '예술이 밥먹여주냐?'는 추호秋虎같은 아버지의 일갈에 붓을 놓았지만, 중학교 시절엔 사생대회에 나가 앨범과 상장도 받았던 터라 일말의 미련이 아직 남아 있나 봅니다. 제가 굳이 흐린 날을 택해 나가는 이유는 인사동 거리의 상점에 걸린 한국화를 보려면 유리에 비치는 반사광이 없어야 하거든요. 멀뚱히 서서 유리창 너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머리 속에 묵향이 피어 납니다. 그리고 그림을 쫓다 보면 화가가 어디 쯤에서 붓을 들고 다시 먹을 찍었는지도, 무슨 색을 덧입혔는지도 알게 됩니다. 가만히 그림을 보고 있자면 어린시절의 내모습이 보인답니다. 어쩌면 흐린 날에 인사동을 찾는 이유는 '조금씩 잃어가는 나'를 주으러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 부터는 미술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카페의 주선으로 우연히 참석하게 된 후 자주는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찾아가 '구경'을 합니다. 정말 즐거운 경험이에요. 주말이나 방학땐 아이들이 많아 정신이 없더군요. -그랬던 적이 없는 저에겐 어린 나이에 명화들을 구경하는 아이들이 마냥 부럽기도 한 순간이죠- 그래서 평일 점심시간을 전후로 찾아가 마음껏 구경을 하곤 합니다. 작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멍청히 서서 그림을 쳐다보고 있자면 '막연한 감'마저 듭니다. 누가, 언제,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휴대용 마이크를 들고 무리를 이끌며 설명하는 분을 쫓아서 구경하긴 싫더군요. 그 분이 설명하는 만큼만 보여서 입니다. 내가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아 찾아온 이유는 그냥 구경하러 온 것이지 설명들고 외우러 온 것은 아니거든요. 말 그대로 바보스럽게 '구경'하고 싶어서 거든요. 내 맘대로 구경하고 내 맘대로 느끼다 가면 그게 '좋은 구경' 아닐까요? 예,예. 저 진짜 어쩔 수 없는 예술맹盲 입니다.^^;

  지난 해 정말 멋들어진 책 한 권을 만났더랬습니다. 포털 사이트 Daum에서 1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블로그,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 쥔장 김홍기씨가 쓴 책 인데요, [샤넬, 미술관에 가다]라는 책입니다. 세계적인 명화에 대한 시선을 갸우뚱하게 쳐다 보며  '최고의 화가가 당시 첨단 패션으로 무장된 최고의 모델을 그린 화보'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명화속에서 당대의 복식과 패션을 찾아낸 그림과 글이 가득한 책이었죠. Daum의 파워블로거인 저자의 실력답게 엄청난 구독자와 언론에게서 작년에 많은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라는 부제로 [하하 미술관]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명화를 설명할 정도의 심미안과 깊은 감성을 가진 김홍기씨를 다시 만날 기회인데, 예술의 문외한인 제가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흥미롭습니다. 이번에는 '국내작가들의 작품'으로만 구성했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서를 한국미술가들의 작품으로 감성의 공감대를 만들어보려고 했다는데, 멋들어진 기획과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를 진행하고 있는 저자가 이번엔 '그림 읽어주는 남자'로 변신한 겁니다. 



Daum 블로그에서 파워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는 김홍기님의 블로그 


  아는 것도 많고, 실력도 월등하고, 게다가 인물도 훌륭한 동년배 비슷한 이런 치(?)들을 보면 그림을 구경하는 수준의 저는 은근히 부화가 납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적이지만 훌륭하다'고 한마디하고 한 수 배울 수 밖에요. 사흘 전 읽기 시작해서 오늘 밤을 하얗게 새우면서 이 책을 덮었습니다. 이 책 역시 '멋진 책'입니다. 저로서는 '적'으로조차 여길 수 없는 놀라운 '깜량'의 대단한 인물이 만든 책이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은 웃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내 인생의 화양연화, 거울 앞에 선 당신에게, 세상의 모든 시름들아 우리의 희로애락을 말하는 듯한 주제로 모두 27 편의 작은 제목에 27 명의 한국 미술작품을 소개했습니다. 한 쪽 한 쪽 마다 멋지고 놀라운 그림과 글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꿈보다 해몽' 이라 했나요? 저로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작가들의 작품들이 제 눈을 사로 잡았지만, 어느 분의 말처럼 저자인 김홍기씨는 '아름다움을 마음 가득 느끼며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바를 명확하게 글로,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린 작가들을 직접 찾아가 작가노트를 베끼고, 작품 설명을 들은 저자답게 한 작품을 오롯이 다시 글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글을 읽다가 보면 그림을 읽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으니까요. 저자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이기를 자청했지만 자세히 보면 자신과 주변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피곤하고 고독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구경'하면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실 미술관에서 한 작품 앞에서 몇 분 동안 서 있는 '관람객'을 보고 '빨리 빨리 비켜주지 않고 예의없이 멀뚱거리고...쯧쯔..' 하며 불평을 했더랬는데, 이제야 그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작품을 들여다 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작품 속에서 자신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작품을 보고 울고, 웃고, 미소짓고, 끄덕이며 '나'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 책에서 '나와 내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6년 전 우울증에 빠졌던 제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면서 지었던 이름이 Richboy였는데, 온라인 속에서라도 한없이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는 소년이 되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래서 소년을 그린 그림들도 거의 웃는 모습이었죠. 우울해서 그린 그림은 웃는 모습이었고, 그림을 모두 그리고 미소지었습니다. 이 책의 표지에서 등장하는 [이순구님의 웃는 소년]은 마찬가지로 저로 하여금 미소를 번지게 합니다. 마음도 1도 따뜻해 졌습니다. 그리고 [전영근님의 여행]"낚시의 즐거움이란 월척을 낚는 기쁨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여행장비를 모두 갖추고 세상을 잊고 떠날 채비를 모든 끝내고 설래는 마음으로 대문을 나설 때"라는 존경하는 형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김순철님의 About Wish 0890]은 한도 끝도 없이 손만 넣으면 튀어나오는 '화수분'같아서 '희망'을 느끼게 했고요, [조장은님의 기억이 안 납니다]를 비롯한 그분의 그림들은 지금은 50을 넘긴 '골치덩이'였던 우리 고모의 처녀시절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주정아]님의 작품들은 어떻구요? 저 역시 '싱글천국 커플지옥' 을 외치며 길거리를 매운 가득 매운 '쌍쌍커플'들을 마구마구 저주(?)했던 얄궃은 때를 기억나게 합니다. 





  이 책 속에서 그림을 읽고, 글을 보고 있으면-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인女人이 아니라 餘(남을 여)人이 되어버린 울 엄니도 나오고, 밖에서는 상사와 고객의 눈치만 보는 능력 모자란 고문관일 지 모르지만 집에 오시면 호랭이같은 울 아버지도 나옵니다. 김연아 선수가 요정처럼 스케이트 타는 모습도 나오고요, '얼짱' 트렌드의 완결편 '플라스틱 걸Plastis Surgered Girl'도 등장합니다. 바비 인형, 고양이, 여자 아이 등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 모두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미술관을 관람하기는 참 멋진 문화생활입니다. 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만만ㅎ지 않아 좀처럼 하기 힘든 문화생활이기도 하죠. 그래서 장사꾼인 제가 '경제학적 측면'에서 '장사치다운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바람이 있다면 '밤을 새워 문을 여는 화랑이나 미술관'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술작품'이 보다 많은 관객에게 보여야 할텐데, 이들에게 정작 시간이 허락되는 '7 시 이후'에 볼 수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요? 개그맨 전유성씨는 '심야 볼링장'을 열어 볼링이라는 스포츠를 대중문화의 하나로 새로운 장을 열었고, 정동에 있는 스타식스 영화관은 밤 12시 부터 새벽까지 단돈 일 만원에 영화를 무려 세 편을 보여주어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심야 영화의 명소로 각광을 받은 바 있습니다. '미술관과 화랑'은 안될까요? 제가 '천박한 상업적 발상'으로 감히 예술을 들먹인 것인가요?

 
  늦은 밤까지, 아니면 편의점처럼 24시간 동안 운영되는 미술관이나 화랑이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미술 구경하기에 맛들린 저같은 사람들이나 미술을 사랑하는 많은 애호가들이 좋아할 겁니다. 미술가들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요? 
 

아직은 없으니 아쉬운 대로 제가 대안을 제시할께요. 미술관을 옮겨 놓은 책을 구하세요. 그래서 허락되는 시간에, 지하철, 공원, 심지어 화장실까지 어디든 내키는 장소에서 그 책을 펴세요. 펴는 순간 여러분은 미술관에 온 겁니다. 마음껏 만끽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책을 볼 지 모르겠다면 제일 먼저 이 책을 권하고 싶네요. 마음에 담겨진 응어리도 풀어줄 책이니까요. 24시간 불이 켜진 약방같은 미술관, 바로 이 책을 보고 읽으면서 생각난 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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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 - 죽어도 아프지 마라, 아프면 죽는다
이상이 외 지음 / 밈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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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민영화'그 논쟁의 전모를 밝힌 책!

  이 책의 시작은 영화 [식코Sicko, 2007]와 맥락을 같이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는 흔치 않은 흥행감독인 마이클 무어 감독은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 9/11>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그의 새로운 화두는 바로 ‘의료보험’이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이윤을 따지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영화 [식코]를 통해 언제나 이윤에 목마른 미국의 의료보험체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국 의료보험에 대한 지식
- 미국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제도가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산업화 국가이다.
- 의료보험이 없는 어린이들은 900만명 이상이다.
- 매해 1만8000명의 사람들이 보험이 없기 때문에 사망한다. 

가장 잘 산다는 나라의 돈뜯고 또 돈먹기!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는 세상을 고발한다!
마이클 무어가 미국 민간 의료 보험 조직의 부조리적 폐해의 이면을 폭로하며 열악하고도 무책임한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수익논리에 사로잡혀 이윤을 극대화하기에 급급한 미국 의료보험제도 속의 관련기관들은 돈 없고 병력이 있는 환자를 의료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하여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 


의료보험의 폐해로 인해 삶이 산산 조각나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소개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이러한 사태가 보험이 없는 4500만 시민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하는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도 제대로 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참혹한 현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런 민간 보험사들의 횡포는 정부와의 결탁으로 더욱 만연해져 있고, 수익에만 눈이 먼 관련업체들은 자기 배 불리기에만 급급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수익논리에 지배되는 민간 보험사들이 가지고 오는 문제점들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로 흘려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의 의료제도를 닮고자 하는 다른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그리고 그렇게 미국을 닮아간다면 곧 남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임을 경고해주고 있다. 
 
   

  
SICKO의 의미 :

'patient'가 집중적 치료나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 자를 칭하는 것이라면, 'SICKO'는 질병을 가지고 있어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거나 또는 이용해야 할 필요를 가진 사람들 모두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SICKO'는 '의료가 필요한 자' 또는 '모든 의료소비자', 그러니까 결국 미국 국민 전체를 칭하는 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p29

 
  영화 SICKO는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보편적 의료보장제도가 있어야 할 자리를 민간의료보험이 꿰차고 있는 미국의 의료실태를 낱낱이 고발하는 영화다. 전세계 선진국 중에서 전국민의료보장제도가 없는 유일한 나라인 미국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SICKO를 보면서 우리는 온 국민이 국민건강보험제도에 당연히 가입되어 있고, 저렴한 건강 보험료를 내고도 온 가족이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누리고, 전국 어디서나 원하는 의료기관을 당연히 이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국가의료제도에 대해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의료제도의 공공성 수준이 미국과 비슷한 우리나라에서 의료민영화가 추친된다는 내용의 언론보도가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와 경제부처로부터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그 내막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부실한 공공성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 자본시장으로부터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와 의료재정체계로 투자자본이 유입되는 것을 막고 있었는데, 이것을 허물려고 하고 있다. 의료민영화 즉, 주식회사 병원인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제도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소개하는 책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우리나라의 의료민영화 논쟁을 분석하고, 한국의료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나아갈 바를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의료의 목적은 건강이지 돈벌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의료진들의 손에 쓰여진 이 책은 보건의료가 국민생활의 핵심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의료민영화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쓰여졌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쟁점은 '대한민국의 의료민영화'다.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의 언급 이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의 폐지 또는 완화를 둘러싸고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는 당연지정제도를 유지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건강보험을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주장은 '건강보험을 민영화'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미국처럼 되는 것, 즉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그에 대한 응답은 회피한 채, 계속해서 '건강보험을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 와중에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의료민영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 서러립 허용'이 추진되어 의료민영화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은 아닌가 하는 논쟁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정한 규모를 갖춘 병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비영리법인인데, 이들은 영리법인과는 달리 병원의 의료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을 고스란히 목적사업인 병원에 재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공익적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민간병원(재벌병원)들은 전반적으로 공공병원들보다 훨씬 강하게 수익을 추구하고 있어 수익 극대화를 위해 병원의 설립이 주로 고급의료수요가 많은 도시지역에 집중하거나,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보다는 돈벌이가 되는 치료서비스 위주로, 건강보험 급여 서비스보다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가의 진단의료장비를 중심으로 비급여 진료서비스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재벌병원'들의 득세에도 아직 안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비영리법인' 병원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우리나라 의료제도에 대해 메스를 들려고 하는 것은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은 보장성 수준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지금의 수준에서 꽁꽁 묶어놓고, 의료재정분야의 나머지 부분을 시장의 영역으로 돌려 자본의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간의료보험의 규모와 역할이 더욱 커지도록 지원하고,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여 자본 투자자들이 의료서비스의 생산과 소비의 영역에서 마음놓고 돈을 벌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이명박 정부가 하려는 진짜 내용이라고 말한다. '정부 재정부담의 축소- 시장을 통한 국민부담의 확대'가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의 골자라는 것이다. 

  그에 대해 저자들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지역별 병상총량제와 같은 공공투자확대, '병원서비스 발전기금'설립, 고용확충 증대등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반드시 유럽 선진국 수준(85%)이상으로 높여야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제공체계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고, 더불어 민간의료보험의 침탈로부터 국민건강보험을 굳건하게 지킬 수 있다고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의료민영화 불가라는 국민의 목소리에 건강보험 민영화 금지선언으로 답하는 이명박 정부. 지난 해 어느 TV 시사 프로그램은 2008년 한 해의 키워드를 일러 '소통'이라 말한 바 있다. '소통 의 부재'. 이것이 의료민영화 뿐 아니라 오늘날 논쟁의 중심에 있는 현안에 대한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며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정부의 입장은 대화와 타협이 없던 과거의 통치형태이다. 국민을 섬기기를 천명한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에 앞서 국민들 속에 들어가 함께 움직이려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의 앞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현 정부는 뒤를 돌아 국민을 향해 마주 보는 것 뿐 아니라 국민들 속으로 뛰어 들어 함께 걸어가려고 해야 할 것이다. '국민 속으로!' 오늘, 국민이 정부에 원하는 정부의 태도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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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TBWA KOREA가 청바지를 분석하다
TBWA KOREA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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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를 입었다고? 그럼 청바지를 읽어봐! 



   가끔이지만 보는 TV라고는 '뉴스'와 'TV, 책을 말하다(즐기던 프로인데,방송이 폐지된 것이 심히 유감이다)', '타큐멘터리 류' 정도인데,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시간대를 맞춰 보거나, 인터넷에서 일부러 찾아 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EBS의 [지식 e]이다. 비록 5분이지만 충분히 나이를 먹어 모를 것이 있을쏘냐 싶은 '얕은 지식'을 늘 무참하게 깨부셔줘 주는 프로그램이다. 


지식 e - 2005년 9월에 기획․편성된 프로그램으로, 일주일에 세 편씩 방영되며, ‘e’를 키워드로 한 자연(nature), 과학(science), 사회(society), 인물(people)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 ‘5분’ 동안 전해지는 강렬한 메시지와 영상은 시청자들에게 당대의 예민한 시사쟁점을 제시함과 동시에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일종의 TV 형식으로 진화된 백과사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단 5분 만에 시대성과 시사성, 그리고 고민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웬만한 1시간 짜리 프로그램과 비중을 같이한다. 지난 2007년 책으로 출간된 후 지금까지 3편이 책으로 나왔는데, 이 또한 TV물 못지 않게 글과 그림을 잘 조합해 '블로그 형식'으로 엮어 많은 배움과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출간된 지 1년 8개월 만에 30만 부를 돌파했다고 하니, 교양서로서 손색없는 책 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점점 똑똑해지고 있고, 똑똑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변하는 세상에 순종하지 않고, 왜 변해가는지, 변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 변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변해 갈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이러한 니즈needs에 발맞춰 네티즌이 만드는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비롯해 국내포털의 지식in, 신지식 등 지식 알고리즘등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노력 또한 대단하다.그런 발맞춤에 '책'이 동참함은 물론이다.

   2년 전부터 서서히 인구에 회자되던 장소, '신사동 가로수길'에 대한 책이 있었다. [가로수 길이 뭔데 난리야?]라는 책인데,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 TBWA 사람들이 만든 책인데, 새로운 트렌드의 메카로 떠오른 '가로수길'을 재조명하고, 그 속에서 기존 트렌드에서 새로운 변화로의 진화를 보여준 보기드물게 참신하고 놀라운 책이었다. 그 느낌은 '시대를 이끌어가는 트렌들셰터들 답게 만든 책', 딱 그랬다.

   그들이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어냈다. 가로수길을 넘어 이제 전국 아니 전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대상에 태클을 걸었다. 바로 블루진, 청바지를 말했다. 소개할 책은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이다. 


 

  이 책은 기획부터가 흥미롭다. TBWA가 새내기 신입사원(TBWA의 ECD의 표현대로라면 그들의 눈빛은 블랙홀이었고, 감수성은 스폰지였단다)들을 뽑아 2008년 4월 4일 강원도의 펜션으로 데리고 가서 OJT(직장내 훈련기록)를 한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신입사원들이 만든 책이란 거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첫 느낌은 '뭐야? 베테랑들의 소산물이 아니란거야? 그럼 볼 것도 없겠네?'였다면,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TBWA사람들이 사원을 잘 뽑는군. 인물들이 앞으로 '사고(?)', 제대로 치겠네' 였다. 더욱 대단한 것은 신입사원의 OJT를 가지고 책을 만들어 낼 기획을 한 TBWA의 발상이었다. 생각이 통통 튀는 사람들, 그들은 보면 절로 흥이 난다.

 
인간은 청바지의 서식지다 !
  

  잘못 표현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 해에 만들어지는 청바지의 수량만으로 전 세계인?, 청바지의 수량은 이미 세계 인구의 그것을 뛰어 넘었다. 이 책의 저자(사원이나, 훈련생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이해가 쉽겠지만)들은 인간을 점령한 청바지를 파고 들었다. 천막 - 실용 - 팍스 아메리카나 - 이념 - 보보스 - 다양화 - JEANNE 이렇게 책을 구성하고 있는 챕터CHAPTER만 보고도 알 수 있듯, 청바지의 원류에서부터 지금까지 의복으로서의 청바지와 이념으로서의 청바지, 그리고 청바지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을 한 권의 책으로 꽉 채웠다. 
 

 



  룁 슈트라우스가 마차를 덮는 덮개나 천막을 위해 만들어 낸 청색의 옷감이 광부들의 작업복 재료가 되었고, 실용성을 더해 프래그머티즘의 대명사로 급부상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그 후로 청바지는 단순한 '옷' 이상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바로 '이념의 상징물'이다. 젊음과 끈기의 상징인 동시에 노동자, 히피족, 배드 보이 이지 라이더(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을 대신했고, 우리나라에서는 통기타세대, 386 세대의 상징이 되었다. 나아가 합리적인 부자 보보스와 IT의 메카 실리콘 밸리 사람들의 근무복이 되어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노트북 하나면 거처를 정할 필요없이 업무가 가능하다 해서 디지털노마드(유목민)족이라 불리는 요즘 세대들이 여전히 청바지를 사랑하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의복의 한 종류에 불과한 '청바지'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이 책을 통해 룁 슈트라우스가 청바지의 천을 처음 만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리바이스와 리Lee, 렝글러와 같은 세계적인 청바지 메이커의 탄생소식도 알게 되었다. 나의 러브마크(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제품, 기업의 측면에서는 충성고객)인 리바이스 501의 이름이 어떻게 비롯된 것인지 알게 된 것은 10년 묵은 체증을 풀어주는 것 같은 큰 기쁨이었다. 트루릴리젼, 전지현의 지아나 진, 조이, 빌리, 베키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책 덕분이다. 베개만한 딕셔너리나 칠판 앞 선생님께 배우는 것만이 지식이 아니더라.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활자, 그 바탕엔 온갖 청바지와 역사에 담긴 그림과 사진들. 말 그대로 이 책은 종이로 된 멋진 블로그다. 포털에 이런 블로그가 있다면 하루 조회수가 몇 만은 될 것 같다. 한 해에 수 억, 수십 억짜리 광고를 만들어내는 씽크탱크들이 책을 만들었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만 원짜리와 천 원 짜리 지폐 한 장씩이면 그들의 생각을 싸 잡아 읽을 수 있다는 데 안반가울 턱 없다. 지식을 날로 먹고 싶은 독자라면, 최소한 지식e를 책을 읽어 봤거나, 청바지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가장 권하고 싶은 사람은 3년 전 굳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도 유행이라기에 찢어진 구제 청바지를 거액을 들여 샀더니 다음 날 아침 찢어진 틈틈을 미싱으로 죄다 박아 6.25 때 중공군이 입은 누비바지로 만든 바 있는 울 엄니께 권하고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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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를 만나다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시와 글로 렘브란트의 그림을 만끽하다
 
  한 떼의 무리들이 미술작품 주위에 몰려 있다. 한 가운데는 조그만 확성기를 든 안내원이 작품을 설명하고, 무리들은 그녀의 귀를 기울이며 뭔가를 받아적고 있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돈벌 일이 없다'는 어느 부자의 말을 믿어 그들로부터 떨어진 것은 아니다. 작품을 보고 느끼기 위해 미술관에 온 그들은 안내원의 입을 보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어서 였다. '그런건 인터넷만 뒤져도 가득한데...' 그들을 본 느낌이었다. 난 미술을 모른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메모지에 긁적거리는 낙서수준이고, 남의 그림을 보기는 좋아하지만 미술가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사조인지도 모른다. 그냥 구경할 뿐이다. 그림을 보고 그림 속 이야기를 살피고, 그것을 느끼면 배가 불러지는 느낌. 그것이 좋아서 갈 뿐이다. 
 
  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만, 미술을 아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미술을 모르기 때문이다. 몰라서 알아듣지를 못하고, 몰라서 말할 수 없는데 굳이 그들과 입을 섞을 필요는 없잖은가? 건빵모자 뒤집어쓰고, 파이프 하나 물고 미술을 논하고, 미술가를 평하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냐마는 그만한 깜량이 되지 못함을 익히 잘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그저 보고 느끼려고 한다. 누구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와~좋다" 가끔은 혼자서 말하고 좋아한다.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미술작품을 구경한 사람의 책을 만났다. 방법만 비슷할 뿐, 그녀 또한 대단하다. 미술작품을 보고 시를 쓴다니. Don Mcclean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Starry Night'을 보고 동명의 노래를 만들었다더니, 시인은 작품을 보고 시를 썼다. 게다가 작품을 그대로 느끼는 해설까지 곁들여졌다.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이야기했다. 빛의 화가 렘브란의 작품을 이야기한 책,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의 [렘브란트를 만나다]이다.
 





























  고흐와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고 시를 쓴 바 있는 저자는 이번에는 렘브란트의 작품 17점을 보고 시를 썼다. 가장 좋아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자화상]과 [야경] 그리고 노년의 아쉬움을 보여주는 [자화상]등이 포함되어 반갑기 그지 없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 전인데, 그의 작품 속에서 빛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는 작품은 그것으로도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위대한 화가의 작품이라지만 편안한, 그냥 일상을 엿보는듯한 작품의 격없음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려고 노력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의 행위와 표정 그리고 주위의 사물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별한 경험. 작품을 보는 또 다른 눈을 제시하는 듯 했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재미도 있는 서양미술을 전공한 해설자가 일반인의 시선에서 작품을 거듭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치 나를 포함해 두 세 사람이 모여 작품을 이야기하는 듯 눈과 귀가 즐거운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 숨은 삽화는 더욱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책은 미술가들을 위한 미술책이 아니라 일반인임을 확인하게 한다. 저자의 또 다른 책, [고흐를 만나다]도 찾아 읽고 싶다. '빛과 종교, 그리고 자기自己'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화가, 렘브란트를 새롭게 만나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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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성의 심리학 - 왜 인간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반복하는가
스튜어트 서덜랜드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비합리성,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알려주는 책!
 
  나는 요즘 주류경제학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행동경제학에 푹 빠져있다. 독자들도 잘 아는 바와 같이 '경제학 콘서트'를 필두로 한 요즘의 경제학 책들은 거의 '행동경제학'을 말하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시대를 풍미해서 20여 년 전까지 주류경제학은 '전제'라는 울타리 속에서 세상의 경제학을 논했었다. 합리적인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다양한 재화에 일련의 선호도를 지녔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인간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 전제가 현실과는 많은 차이를 낳았고, 따라서 그 전제 속에 있는 인간의 경제법칙은 현실을 등진 학문적 경제학으로 남아 세인들의 비난을 받았다.
 
 현실의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값을 치룰 수 있고, 사업가는 이윤이 큰 제품만을 생산하려 하고, 소비자는 제 구미에 맞는 제품만을 구입한다. 합리적인 생산과 소비를 한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함을 꼬집은 '행동경제학'은 지금껏 주류경제학에서 찾지 못했던 나의 판단오류를 짚어주었다. 마치 점집에 앉아 점을 보듯 콕콕 짚어주는 일련의 책들은 내게 알아가는 재미를 선사했다. 하지만 그 책들 또한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인간은 실수를 하는 것인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스스로에게 속는 오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원인과 해답, 그리고 예방책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내가 품고 있는 의문에 대해 속시원히 말해주는 책을 만났다. 저명한 심리학자 스튜어트 서덜랜드의 [비합리성의 심리학]이 그것이다.
 
  이 책은 앞서 말한 행동경제학의 책들처럼 인간이 겪는 판단의 오류들의 사례를 답습한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판단의 오류에 대한 원인과 해답, 또 예방책을 더해준다는 데서 차별성을 갖는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좀 더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할 때 오히려 완전히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 저자 서덜랜드는 이렇게 대답하며 정말 우리는 합리적인가를 살피고, 또 과연 합리성이란 말을 이해하는가? 하는 원론적 접근에 까지 도달한다. 저자는 강렬한 감정이 일어나거나 극적인 것,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러한 가용성은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나 틀이 만드는 것으로 첫인상 효과 오류나 후광 효과, 악마 효과까지도 불러일으킨다며 그에 대해 아무리 인상적이라더라도 한 가지 사례만을 판단하거나 결정의 토대로 삼지 말라고 경고한다. 무언가에 복종하기 전에 생각하고, 명령이 정당한가 반문하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보통 물질적인 보상만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유인책이라고 판단하여 각종 성과급과 특별수당, 상금 등을 지급하고 있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건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건 이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키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칭찬 한마디’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말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잘못된 인상,집단의 안과 밖,조직의 어리석음, 잘못된 일관성, 보상과 처벌,
욕구와 정서, 증거 무시, 증거 왜곡, 잘못 관계 짓기등 21가지 인간의 비합리성의 사례들,
즉 의사들은 환자들의 병을 오진하고, 장군들은 멍청한 전투 계획을 고집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지루해 죽겠는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공무원들은 나태와 이기심을 조장하는 비합리적 시스템에 젖어 공금을 아무렇게나 운용한다. 왜 사람들은 타인에게 엄청난 해를 끼치는 잘못된 결정을 되풀이하는 걸까? 등의 사례를 들어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설명으로 파헤친다. 우리가 범하고 있는 비합리적 판단, 선택, 행동들이 너무나 널리 퍼져 있음을 알게 되고 저자가 펼치는 갖가지 심리 실험과 명쾌한 해설을 통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사례마다 내가 판단하는 상식적 믿음은 어김없이 깨져 버려 당황스럽게까지 만들었다. 알찬 내용, 궁금증을 풀어주는 해답을 담고 있음에도 이 책은 기존의 책에 비해 어렵게 구술되고, 지대한 인내심을 요할 만큼 집중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앞의 책에 길들여진 탓일까, 이 또한 잘못된 판단은 아닐지 의심스럽다. 많은 사례와 그에 걸맞는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는 멋진 심리학 책인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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