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그들의 이야기
스티브 비덜프 엮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걸어다니는 지갑, 남자의 진실을 말하다   

 21세기는 ‘홀로살기’를 권장하는 시대다.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은 사람들이 꼭 어울려서 살아야 한다‘는 농경사회적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오히려 더욱 다양한 통신수단으로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혜택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여성들. 사회진출로의 욕구와 그녀들만의 원활하고 친화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오늘날과 딱 맞아 떨어져 ’그녀들의 세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점점 고독하고 외로워하며 외톨이가 되어가는 사람들은 남자다. 

  남자는 반벙어리다. 3초 마다 떠오르는 게 사람의 생각이라지만, 3분의 생각을 모아 한 문장으로 말하라 해도 못하는 것이 남자다. 수컷이란 원래 ‘사냥을 도맡던 성性’이라 제 몫을 챙기려 홀로 다녀야 하고, 과묵해야 했다는 의견도 있고, 생리학상 남자의 수염이 길게 자라는 이유가 과묵함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무엇보다 말 많은 남자를 터부시해온 유교적 문화적 요인 때문에 ‘수다스러운 남자’는 꼴불견으로 여기고, ‘게이가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게 된다(모르는 말씀. 말 못하고 혼자 속으로 끙끙 앓는 남자보다 함께 어울리며 자신의 속내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그들이 어쩌면 더 행복하고 낫다). 오랜만에 사내 둘 셋이 모여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이야기할라 치면 돌아오는 질문은 “술 마시고 싶냐?”이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와 일 년에 한 두 번(7년 전부터 이것마저도 불가능해 졌지만) 그런 자리가 생겨 고민을 털면 아버지는 이러신다. “너, 돈 필요하냐?”

 

잠시 행복하자고 부지런히 사랑을 가르쳤나요  

여자들은 모르죠 남자들도 사랑에 기대 산다는 걸

잘 지내 아프지 말고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줘

 

사랑해 영원히 너만을 기억해 

이 말만 가져가 널 잊을 수 있게 날 도와줘

지우고 지워도 아직 안 되나봐

못 다한 사랑들이 남아 있어서 안 되나봐

 

외롭지 말라 하죠 남자라서 괜찮을 거라 하지만

이별 앞에 서보면 보기보다 씩씩한 남자는 드물죠

잊으려 노력 안 해요 그 사람 애써 흘려도 어느새 다 채워지니까 

<AshGray - 사랑해.. 기억해.. 가사 중에서>  

  남자들도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정치, 경제, 스포츠, 섹스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흘러감도 생각할 줄 알고, 계절감을 감지하며, 지난 날을 추억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생각속의 말들이 줄줄이 목구멍 깊숙이에서 치솟아 올라오다가도 ‘남자다움’이라는 병목현상에 막혀 걸러져서 나오는 말들이라 늘 같은 말이고 무뚝뚝하다. 항상 ‘남자다움’을 의식하고 행동하는 남자인지라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사랑과 이별의 상황에서까지 어눌하고 바보같지만, 사실 그들의 속내는 여자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남자들은 다만 온전히 표현하기에 서툴러 못할 뿐이다. 2년 전인가? 그런 남자들의 고민을 알아주는 책을 만났었다.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 원제 Manhood>라는 책인데, 평범한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생각과 고민을 이해해 준 책이었다. 저자인 스티브 비덜프는 호주에서 25년 간 가족문제를 다루어온 심리학자인데 단순히 ‘걸어 다니는 지갑’의 역할로만 남자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분명하면서도 중요한 역할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책을 읽는 내내 ‘옳커니!’, ‘그렇지!’, ‘내 말이...’란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반가운 책이었다. 그랬던 터라 저자의 새로운 책 <남자, 그들의 이야기>을 서슴없이 선택했다. 이 책은 남자들에게 What I am 다시 말해 나(남자)는 무엇인가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Who I am,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보게 하는 책이다. 

 



 

 
  “남자들은 보통 침묵이라는, 전통적으로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요구에 순응해서 서로서로 고립된 채 개인적인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우리에 갇혀 죽자 사자 일만 하는 일의 노예가 되어 경제적, 문화적 요구에 발목을 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설령 남자들이 자기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서로간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남자들은 고통을 통해 감내한다. 그리고 그런 극단적인 외로움의 표현이 바로 자살이다.” (16 쪽)

  이 책은 다른 남자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독자 스스로 조금이라도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것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독제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책은 ‘진정한 남자, 훌륭한 자질의 남자’가 무엇인지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사회 각층의 남자들(결코 위인이나 유명인은 아니다)이 자신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항변들을 늘어놓은 글들을 읽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나 뿐만 그런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이런 삶의 기쁨을 놓치고 있구나’하는 작은 깨달음을 느끼게 한다. 남자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성폭력을 당한 남성, 평화유지군으로서 전쟁에 참여하는 남성,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을 겪는 남성, 심지어는 정관 절제 수술을 하면서 겪는 분노등의 아픔도 있고, 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살피는 남성, 늙어 죽어감을 이야기하는 남성, 어린아이를 키워가면서 기쁨을 느끼는 남성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혹자는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고민타령이냐?’고 푸념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답은 주지 못할망정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여성들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남자들은 ‘고민 듣기’에 꽤 망설이는 편이다. 남의 고민을 들으면 뭔가 해결책을 제시해 줘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을 갖기 때문이다. 해답을 주려 하지 말고 고민을 들어보자. ‘남의 고민’은 내 고민일 수 있다. 그들의 고민을 들음으로써 최소한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고민을 말해보자. 고민을 털어놓음으로써 당장 못풀면 죽을 것 같던 고민이 한결 객관화된 것을 느끼게 되고, 대화하는 동안 스스로 해결책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단순히 ‘평범한 남자들의 고민’을 들어보자고 했다. 이 책은 배움보다는 발견을 요구한다. 물론 나 역시 이들을 만난 후 한결 ‘나 다워짐’을 발견했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자동차 정비사 였던 카터(모건 프리먼)은 죽음을 앞둔 암병동에서 만난 잘나가는 사업가 에드워드(잭 니콜슨) 함께 ‘나는 누구인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하고 싶던 일’을 다 해야겠다는 것!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기 위해 두 사람은 병원을 뛰쳐나가 여행길에 오른다. 자살과 다름없다며 아내가 극구 반대하자 카터는 화가 나 큰 목소리로 말한다. “난 지금 죽어가고 있어. 내가 두려울 것이 뭐야? 난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평생을 살아왔어. 후회하진 않아. 하지만 이젠 ‘나’를 찾고 싶단 말이야.”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 다이빙,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등 카터가 ‘나’로서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은 어쩌면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누구의 나’가 아니라 온전히 ‘나’로서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였다. 이 영화가 내게 남겨준 생각은 ‘나는 누구인가Who am I’ 생각하기는 인생을 살면서 항상 기억해야 할 문제라는 것, 그리고 버킷 리스트는 죽기 직전보다 살아가는 동안 지워나가야 할 행복충전기라는 것이었다. <남자,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시간을 제공했다.

 

Written by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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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
마크 트웨인 지음, 린 살라모 외 엮음, 유슬기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네티즌들이여, 이 사람에게서 진중권 선생도 울고 갈 독설을 배워라!
 

  침대를 분류한다면 뭐라 말해야 할까? 가구일까? 실제로 몇 년전 한 초등학교에서 시험문제로 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과학’이라고 표기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해당문제를 출제한 교사는 ‘난이도 하’ 수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는데, 학생 대다수가 떠억하니 ‘과학’이라 답을 했으니...역시 신뢰감가는 중견 탈렌트가 출연한 광고의 힘이라 하기엔 뒷맛이 씁쓸하다. 그런데 여기 한 사람이 침대를 두고 엉뚱한 주장을 한다. “침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이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거기서 사망하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한편으로 꽤 말되는 소리다. 

  그는 또한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천국이 어떻고 지옥이 어떻다는 등 말하고 싶지 않아요. 양쪽에 다 내 친구가 있거든요.” 웃기는 친구다. 이 친구는 누굴까? 친구라고 하기엔 조금 나이가 많은, 아니 너무 많아서 천국이나 지옥 둘 중 한 군데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친구들 만나느라 매일 양쪽을 왔다갔다 할 지도 모른다). 이 친구는 바로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문학적 업적을 이룬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다. 오늘 이 괴짜의 글들이 수록된 책 <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을 읽었다. 원제목은 Mark Twain's Helpful Hints for Good Living이다.

이미지 출처: Flickr
이미지 출처: http://www.davidicke.com/forum/showthread.php?t=11956&page=974

 

 
  웬만한 수식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대단한 문학가인 마크 트웨인의 글을 만난 것은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이후 세 번째인 것 같다(두 권의 책도 어린이용이었으니 원문과는 많은 차이를 지녔으리라. 그렇게 본다면 온전한 그의 글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뭘 하고 살았던건지, 원...) 이 책은 클레멘스 즉, 마크 트웨인이 겪은 생활 속 일화들과, 제안들, 자신의 생각과 후세에 전하고 싶은 훈계 등 직접 써서 발표되거나 발표되지 않은 글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이 책에는 마크 트웨인의 일상적인 예의범절, 제안과 불평, 미국의 식탁, 여행 예절, 어린이, 옷, 패션, 스타일 등에 관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테마에 맞게 글들을 꿰어 맞춘 이들은 캘리포니아대학 뱅크 로프트 도서관의 ‘마크 트웨인 페이퍼스 앤 프로젝트’ 사람들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팀원 대부분이 마크 트웨인에 매달려 30년도 넘게 일하고 있다 하니, 그가 남긴 글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기에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의 글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길래 그럴까 싶기도 하다. 이미 죽고 없지만 남겨진 글로 인해 마크 트웨인은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셈이다.

  마크 트웨인은 타고난 글쟁이다.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글로 쓰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어느 것이 소설인지, 어느 것이 실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도금시대 The Golded Age>처럼 클레멘스의 실제 삶이 마크 트웨인의 소설로 둔갑한 경우가 있고, 실제로 1900년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단다.

“나는 ...소설을 사실로 전하는 매체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대부분의 거짓말쟁이들은 거짓말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나는 사실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나는 눈에 띄게 익살스럽고 거짓말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나의 진실된 관점을 널리 알린다.”(10 쪽)

  물질문명과 종교, 그리고 전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불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신랄한 비평을 했던 마크 트웨인이지만, 비평가라기 보다 소설가로 더욱 잘 알려진 이유는 여기에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비평글에 마크 트웨인의 어록을 빌리는 이유는 그의 날카로운 관점에서 비롯된 ‘촌철살인’의 독설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온전한 문장(읽기 쉬운 평이한 문장)은 거의 없다. 거대하고, 지나치게 위장된 표현들은 꼬이고 꼬여 두세 번 거듭 읽지 않으면 온전히 소화시킬 수도 없을 지경이고, 한 단락의 글 속에는 항상 큼지막한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웃음 뒤에는 항상 씁쓸한 무엇이 뭍어있음을 느낀다. 정말 기가 막힌 필력의 소유자. 작가를 사랑하려면 소설이 아닌 ‘수필’을 읽으라 했던가? 마크 트웨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만약 마크 트웨인이 이 시대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는 ‘초 특급 울트라 파워블로거’가 됐을지도 모른다. 우선 글로 말하기를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였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모저모에 깊은 관심을 뒀을 뿐 아니라, 시설이나 행정에 개선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시나 정부에 직접 제안하기도 했고, 때로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만약 그랬다면 주로 침대에 누워 글을 썼었기에 노트북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Baroque in Hackney

   그는 경제학자에 버금가는 경제학적 지식도 가지고 있다. 도표와 숫자를 들이대며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요소인 ’희소성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내뱉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어떤 물건을 몹시 탐내도록 만들려면, 그것을 손에 넣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면 된다.” 또한 공맹孔孟을 부르지 않고도 인간의 훌륭한 삶에 대해 한마디 한다. “우리들의 죽음 앞에서는 장의사마저도 우리의 죽음을 슬퍼해 줄만큼 훌륭한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가 블로거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도둑을 맞은 마크 트웨인은 며칠 후에 집 대문에 [다음에 찾아오는 도둑에게 알림]이라는 공고문을 붙였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이 집에는 도금된 물건밖에 없습니다. 고양이 바구니 옆에 있는 모퉁이 너머의 응접실에 있는 놋쇠그릇 안에서 그 물건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고양이 바구니를 가져가고 싶으면, 고양이들은 놋쇠그릇 안에 집어넣으세요. 소란 피우지 마시고 - 가족들한테 방해되니까요. 고무 제품들은 현관 홀에, 우산 꽂이 옆에 있어요. 서랍장 같은 거 말이에요, 그런 걸 페르골라였나 뭐 그 비슷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던데. 그리고 나갈 때 문 좀 닫고 가세요.

S.L. 클레멘스 백“ (72 쪽)

  마크 트웨인이 ‘초 특급 울트라 파워 블로거’가 될 여지는 그 밖에도 많다. 그는 흰 양복을 입는 멋을 아는 최고의 패셔니스트이자 스타일리스트였고, 미국음식과 유럽음식의 맛을 비교할 줄 아는 미식가였으며, 여행을 즐기는 방랑객이었다. 70세까지 담배를 피우면서도 건강을 챙기는 웰빙족이었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려 했던 행동가였다. 다소 까칠한 성격에, 삐딱한 시선, 타고난 잘난 척, 양쪽으로 뻗어내린 콧수염의 캐릭터 역시 범상치 않았으니 어디 하나 빠질 것이 있겠는가? 



이미지 출처: Flickr 

  그가 갖춘 블로거로서의 자질 중 최고는 바로 ‘커뮤니케이션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세상을 향해 쓴 문장들은 ‘익살로 버무려진 독설의 총합’이다. 절대로 전투적이고, 혁명적으로 쓰지 않는다. 그가 입을 열면 짜증나는 일도, 갑갑한 현실도, 암울한 미래도 한바탕 웃음꺼리로 만든다.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절대로 염장지르지 않고, 비아냥대지 않으며, 상대로 하여금 억하심정이 생기도록 막말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를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독설을 듣고는 떠들며 웃게 만들고, 그 속에 담긴 의미에 놀라 깨닫고 스스로 변화하게 만든다. 그는 ‘재치있고 신랄하게, 지혜롭고 날카롭게’ 말하는 법을 알았다. 무엇보다 말과 글로서 사람을 행동하게 만들고, 변화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네티즌적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약간 뜬금없지만 미국 MIT공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학생들이 학원문제로 인해 학교 측과 협상을 했지만 결렬이 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야 하는 문제와 협상을 성사시키는 문제로 고민하던 학생회는 한가지 꾀를 냈다. 협상 다음 날 아침 학생회관 본관에 ‘경비행기 한 대’ 가 오도카니 로비를 점령했다. 학생들이 경비행기를 분해해 좁은 현관으로 들여와 밤을 새워 다시 조립을 해둔 것이다. 일종의 침묵시위인 셈이다. 학생회관을 드나드는 학생들이 학생회의 기가 막힌 시위에 적극 환영하며 뜻을 같이 하자, 며칠 후 결국 학교 측은 학생회 측의 조건에 맞게 협상을 타결했다. 몇 해 후에 또 다른 ‘학원문제’로 학교 측과 실랑이를 벌이자, 어느 날 아침엔 대운동장 한 가운데 네모진 칸막이를 설치해서는 그 안에 총장실의 집기들을 있던 그대로 옮겨놓았더란다. 휴지통까지, 벽에 있는 책꽂이까지. 혹시 학생회 임원중에 마크 트웨인의 자손이 숨어있었던 건 아닐까, 그들의 지혜롭고 재치있는 시위는 마크 트웨인을 닮지 않았나? 

  소년소녀동화 몇 편 쓴 줄만 알았던 작가 마크 트웨인을 미국이 그토록 칭송하는 이유를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세뇌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가 보낸 하루 하루가 한 편의 소설이고, 코미디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도 훌륭했지만, 먼저 인물이 이 세상에 다시 없을 독특한 인물이었다. 불세출의 재담꾼 마크 트웨인이 궁금하다면, 그의 독설을 듣고 싶다면 이 책을 일독하시길...그리고 절대로 대중교통수단에서는 읽지 마시길. 미친 사람 취급을 받던가, 바지에 오줌을 지리던가 둘 중 하나를 경험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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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의 슬픔
테즈카 오사무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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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2009년 가을, 지구를 지키기 위해로 돌아온다!  
 

  “푸른 하늘 저 멀-리 날아라 힘차게 나-는 우주소년~아-톰~...” 초등학생 시절의 한동안, 내 손엔 엄마가 일곱 살 때 생일선물로 사 주신 아톰인형이 들려 있었다. 조그마한 손이지만 힘을 줘 꽉 쥐면 ‘삐~이~익“소리가 나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약간은 말랑해서 사람 피부같은(어림도 없겠지만) 플라스틱 재질의 아톰은 오른손을 쭉 펴고 왼손은 허리에 붙인 채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아 오를 것 같은 표정을 한 모습이었다. 물에 젖을 염려도 없고, 녹도 슬지 않아 목욕을 할 때면 꼭 필요한 절친한 친구, 그래서 가물에 콩나듯 동네 목욕탕이라도 갈라치면 손바닥이 할머니 손처럼 쭈글쭈글해 질 때까지, 몸통이 허옇게 불어터질 때까지 몇 시간동안 아톰과 함께 한 편의 모험영화를 찍었더랬다. 2학년을 마무리 할 때 즈음 악당괴수, 옆 집 리트리버와 한 판 붙다가 물려서 얼굴이 일그러진 이후엔 다락방 장난감 바구니에 모셔져 영구폐기 되긴 했지만, 초합금(악당괴수가 물어도 상관없는) 로버트 태권V를 입양할 때까지는 내 소중한 히어로였다.

  그런 기억이 남았던 터라 얼마 전 <아톰의 슬픔>이라는 책 제목에 눈이 번쩍했다(현재의 나이는 때로 추억에 지배당한다). 아톰이 부활했나? 이제와 무엇이 슬프다는 건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아련한 추억에 밀려 냉큼 집어 들었다. 아톰은 아무 말도 없었다, 대실망. 그를 만든 아버지, 데츠카 오사무手塚 治虫가 주인공이었다. 이 책은 1946년에 태어나 1989년 위암으로 투병중 사망할 때까지 약 43년간 그의 끊임없는 창작활동을 하게 한 원동력이었던 어린이, 자연, 환경, 과학기술, 아톰, 그리고 지구에 대해 고민한 기록들을 한데 모아 유족들이 책으로 만든 것이었다. 

 

  수많은 만화작품들을 통해 정작 그가 말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이며, 그가 창작하는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에피소드와 비밀들을 털어놓았다. 일개 만화가가 만화책이 아닌 아닌 수필집으로(그것도 유작으로) 책을 내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책장을 덮은 후에는 만화대국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만화가가 ‘데츠카 오사무手塚 治虫’ 인 이유를 알 듯 했다. 그는 만화가 이면서, 환경운동가였고, 과학자였으며, 사상가였다. 원제목은 ガラスの地球を救え―二十一世紀の君たちへ ;유리같은 지구를 구하라 - 21세기의 제군들에게.. . 꽤나 장중한 원제목이다.

“지구의 죽음. 그것은 우리의 자손들과 그것은 우리의 자손들과 이웃의 아이들, 오늘은 활기차게 웃고 울고 장난을 치며 어른들을 성가시게 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더없이 소중한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이 자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나도 참혹한 일인 것입니다.

지구는 이제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인류는 어디서부터 항로를 이탈한 것일까요?“ (14 쪽)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성장에만 관심을 두던 1980년대에 그는 과학발전에 놀라기에 앞서 자연과 지구 그 속에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을 염려했다. 과학이란 본래 인류의 행복을 위해 생긴 것, 하지만 점점 지구를 파괴하는 원흉이 되고 있는 현실을 두려워했다. 나의 영웅이기도 했던 10만 마력의 힘을 지닌 정의의 사자 ‘우주소년 아톰(일본의 만화 제목은 철완 아톰이고, 미국에서는 애스트로 보이Astro Boy로 불렸다)’ 역시 과학지상주의를 칭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분별한 지구환경 파괴에 맞서 지구의 멸망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어릴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이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아톰은 늘 인간들에게 내내 ‘과학이 낳은 생명체’로만 여겨졌다. 아톰이란 작품이 인간과 소통할 수 없듯, 지금 인류는 지구와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 책에서 여러 부분을 통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한 정보화 시대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에서 마치 홍수가 범람하듯 쏟아지는 정보들에 우려를 표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역시 인류의 미래인 어린이를 먼저 생각했다. 오늘날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폭력과 비행, 부모 자식 간의 단절, 생명 경시 풍조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지금껏 흡수하고 축적한 정보들이 그렇게 만든 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란 ‘생명의 존엄을 전하는 메시지’이고 이러한 생명의 존엄성과 삶의 가치를 어린이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지금같은 고도 정보화 사회에 우리 어른들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임을 강조했다. 

  SF 즉, 공상과학을 토대로 만화를 무수히 제작했고, ‘밀림의 왕 레오’와 같이 동물과 자연을 주제로 한 만화도 만들었던 그인 만큼 ‘미래’에 대한 고민에 대한 그의 수준은 철학자를 버금갔다. 이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컨텐츠 제공자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적인 고민이다. 어쩌면 당연한 그의 생각에 새삼 놀라고 배우게 되는 것은 오늘날 ‘흥행몰이와 인기, 시청률’에 급급하며 만들어지는 컨텐츠들 속에서 그와 같은 고민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소년 아톰>은 이제껏 수많은 작품들의 모티브가 되고 있고, 컴퓨터게임과 영화, 만화책등으로 제작되고 있다. 특히 올해, 그러니까 2009년 가을에 개봉을 예정으로 3D 애니메이션으로 미국 헐리우드에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데츠카 오사무의 생각은 아직 왕성한 생명력을 지녔고, 오히려 ‘기후온난화’로 지구종말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있는 요즘에 더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컨텐츠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slashfilm.com/2007/10/05/first-look-astroboy/

http://splashpage.mtv.com/2009/01/05/new-astro-boy-character-concept-art-hit-the-net/ 

 
이 책은 일반적인 ‘인터뷰 풍의 기사 모음’이 아니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가로서 ‘진심’이 담긴 고민과 조언들이 들어 있었다. ‘데츠카의 만화는 휴머니즘Humanism 이다’ 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실감하게 했다. 스토리텔링과 컨텐츠가 세상을 주름잡는 지식정보화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야기’는 재미에 앞서 생각이 앞서고, 그 생각은 ‘진심이 담긴 인간성’을 지녀야 함을 새삼 일깨워줬다. 일본에서 만화(그들은 ‘망가’라고 부르겠지만)는 이제 예술의 한 장르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만화의 중심에 데츠카 오사무가 있고, 그는 이미 없지만, 그의 생각을 닮은 작품, 아톰은 아직 이 세상을 살고 있다. 휴머니즘의 대표작 ‘아톰’의 행보가 주목된다. 그의 통찰력은 앞으로 한동안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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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유목민이 된 소설가 김영하의 좌충우돌 시칠리아 생활기!

  

  죽음을 예감한 어느 노인이 그동안 자신의 소원을 찾아 모험을 감행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같은 병실에 있었던 또 다른 노인은 함께 대화한 죄(?)로 그 모험에 매료되어 둘은 함께 병원 문을 나선다. 지난 해 진한 감동을 남겨준 영화 <버킷 리스트>의 대강 내용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겨지지 않은 사람에게 ‘시간’은 녹아드는 얼음 같은 보물이다. 죽기 전에 무엇을 할까나 적어놓은 리스트, 버킷 리스트는 마지막 소원의 목록들이다. 노인의 소원은 ‘여행’이었다. 이 나라에서 이걸 하고 싶고, 저 나라에서 저걸 하고 싶었다. ‘놀이같은 돈벌이’를 하던 노인과 ‘지겨운 밥벌이’를 하던 노인의 소원은 같았다. 비록 늙어 병든 몸을 이끌고 찾아갔지만 그곳에선 청년이 되고 소년이 된다. 여행은 그런거다. 지금까지의 나를 확실하게 잊으려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두려움, 경탄과 피로가 함께 하는 그곳에선 누구나 같은 조건의 사람이 된다. 내가 있는 이곳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저곳이 궁금해서다. 여행은 어쩌면 ‘각성’을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인간 사는 세상을 깨닫고, 내 정체성을 깨닫고, 인생을 깨닫는다. 책을 살 때, 부모님께 용돈드릴 때, 내 사람을 즐겁게 해줄 때 등 돈 쓰임이 참으로 유용할 때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또 하나는 여행이 아닐까?

 

  젊어서는 다리는 튼튼한데 돈과 시간이 없어 여행을 못떠나고, 나이 들어서는 돈과 시간은 충분한데 다리가 부실해서 여행을 못떠난단다. 어중간한 시간과 돈을 가진 지금, 나는 왜 떠나지 못할까? 아직 필요를 모르는 걸까? 막연히 두려운 걸까? 큰 맘 먹고 떠나면 좋을 것을 가지 못하고 엄하게 ‘남의 다녀온 이야기’에만 침을 흘리고 듣는다. 그리고 그들을 부러워한다. 다른 것 아닌 그들의 여유와 용기를 부러워한다. 바보처럼...

 

  오늘도 부러운 한사람의 여행이야기를 주워 들었다. 어느 날 어느 소설가가 ‘진정한 유목민’이 되기 위해 떠난다는 내용의 신문에서 읽었는데, 그가 바로 ‘김영하’다. 제 버릇 남 못준다 했던가? 그가 떠난 곳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 하늘로 날려 책을 지었다. 제목도 멋지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이다. 부러운 사람의 더 부러운 이야기, 그 책을 읽고 만거다. 읽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만 손이 가 어쩔 수 없었다. 빌어먹을...

 

 



 

 

  미치도록 글이 좋아 소설을 쓰던 남자가 학생들에게 글쓰는 법을 가르치고, 남의 작품을 소개하고 인터뷰하는 라디오 디제이를 하고 있으니 왜 안답답했을까? 어느날 보장된 모든 생활을 접었다. 하던 일들도 때려치우고, 집도 팔아버린 후 그는 아내와 길을 떠난다. 이 책은 그가 이태리의 시칠리아에서 보낸 생활을 이야기한 책이다. 일종의 생활기. 이는 여행기와 엄연히 다르다. 여행기는 짧은 시간동안 많은 것을 둘러본 이야기 일테지만, 생활기는 긴 시간동안 짧은 무엇들과 함께 겪어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떠나려면 그처럼 생활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생활을 쓰고 싶다. 김영하는 내가 하고픈 모든 것을 이룬 셈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얄밉도록 그가 부러웠다.

 

  타고 난 글쟁이의 솜씨는 예서도 돋보인다. 그가 그려내는 모든 풍경은 눈에 보이는 듯하고, 시칠리아의 바다냄새가 풍겼다. 시장을 이야기하면 왁짜지껄 소리가 났고, 와인을 이야기할 땐 시큼한 향도 났다. ‘안절부절’ 읽는 내내 떠나고픈 충동을 나타낸 한 단어다. 꼭 떠나보리라 마음속 깊이 다짐하게 했다. 내눈으로 보고 말리라.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서울을 떠날 때까지의 과정과 EBS 방송팀과 함께 촬영한 이야기, 그리고 아내와 단 둘이 처음으로 정착한 리파리에서의 이야기였다. 소설가인 그가 집을 팔면서 책을 정리한다. 작가의 방에 쌓인 책이야 쌀뒤주의 쌀알만큼 많지 않았을까? 책을 정리하면서 그것들을 떠나보내는 대목은 외우고 싶을 만큼 소중했다.

 

“나를 감동시켰거나 즐겁게 해주었거나 아니면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책들을 살아남았다. 그 세 가지 중에 단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책들은 다른 운명을 찾아 내 집을 떠났다(책을 헌책방으로 보낸 것은 그래야 책이 가장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어느 정도는 시장의 효율성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에서 듣기로, 도서관에 기증한 책은 어딘가에서 분류조차 되지 않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헌책방으로 간 책은 대부분 적당한 가치로 평가되 주인을 찾아간다고 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버리기는 정말 싫은 일이고, 헌책방에 팔아버림은 죽을 만큼 싫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사고의 전환’을 시켜준 대목이다. 지금껏 내게 필요없는 책은 적당한 이를 찾아 ‘거져’ 주었지만, 이 또한 그에게 혹 원하지 않던 것들이 넘겨져 부담을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했다. 헌책방은 진짜로 책을 원하고 책이 읽고픈 사람들이 찾아가는 공간이 아니던가?

 

  얼마전 세계를 금융공포에 빠지게 한 모기지를 예를 들면 새책을 사는 책방이 프라임Prime 책방이라면, 헌책방은 서브프라임Sub-prime 책방인 셈이다. 난 책들을 헌책방에 보내며 찰진 모래에 손을 넣어 집을 지으면서 부르는 노래처럼 ‘헌책 줄게 새책 다오’하면 될 것이다. 내게 필요없는 열 권의 책 대신 잔돈이 모여 한 권의 책값을 받는다면 열 한 권의 책에 생명을 넣어주는 일이 되는 셈이다. 언젠가 시간이 날 때 더 이상 내 손을 타지 않는 책을 추려보리라 마음먹었다.

 

 



 

 

  좌충우돌의 EBS 시칠리아 기행 촬영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일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 여흥을 마저 즐기려고 일부러 홈페이지를 들어가 프로그램을 찾아서 볼 정도였다. 그 후에 읽는 시칠리아는 10미터는 더 가까이 내 눈앞에 다가왔다(이 책을 읽는다면 <세계테마기행.080225.김영하가 만난 시칠리아 - 1,2,3부>를 꼭 찾아서 보기를 권한다). 이 책의 백미는 리파리에서의 생활이야기. 내가 꿈에 그리는 외국생활이 아니던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집밖을 나오면 여행지요, 눈을 두는 모든 것들이 낯선 풍경들이다. 말 그대로 외국에서 ‘놈팽이’가 되는 것. 이 생을 다하기 전 꼭 하고 싶은 일이다.

 

  책 속에 들어 있는 몇 장의 멋들어진 사진들은 그가 찍었을 것이다. 소설가의 눈에 비친 그림은 이야기들이 곁들여져 한층 보는 맛을 더했다. <깜삐돌리오의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의 저자 오기사는 펜과 도화지를 가지고 세계를 돌며 건축물을 그려 자신의 세계여행을 이야기했고, 이야기꾼 김영하는 온전히 펜대로(아닌가? 키보든가?) 시칠리아를 써내려갔다. 나는 뭘로 세상을 볼까? 세상을 나가면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느껴질까? 그리고 내게 뭘 남겨올까? 까만 밤이 하얗게 새도록 온갖 상념을 남겨준 책이다.

 

  내게 떠날 이유와 동기를 그득 안겨주었다. 작정하고 떠날 구실을 안겨주었다. 그가 본 시칠리아를 나도 핥아보리라. 소설가 김영하도 좋아졌다. 그를 만나야 겠다. 우선 소설들로 만나고, 다음은 직접 사람으로 만나야겠다. 중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방송을 보면 나레이션을 직접했다. 목소리? 한석규를 찜쪄먹는다)로 그가 본 세상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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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문화사회적 측면에서 대한민국 아파트의 현실을 파헤친 건강하고 재미있는 책!

 

  책 제목 한번 거칠다. '아파트에 미치다'. 하지만 그런 거친 표현의 내면에는  한국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국민 전체의 70% 정도가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한다는 현실이 있다면 '아파트에 미쳤다'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이젠 초등학교 시험문제에서 한국 국민의 생활의 3대 기본요소에 대한 답을 의,식,주가 아니라 의,식,아파트라고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한국 국민의 보유재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파트에 대해 보다 더 잘 알고 싶어서다. 그리고 국민들이 왜 그렇게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전상인 교수가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아파트를 살펴본 책, <아파트에 미치다>를 읽었다. 저자는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시설이나 주거공간의 의미를 넘어 아파트만으로도 한국사회의 특성과 추이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가 되고, 주거문화에 관련된 한국인의 일상적인  생활에서부터 한국사회의 총체적이고도 구조적인 측면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심도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창구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한국 국민이 왜 그렇게 아파트에 열광하는가(왜 아파트인가?)를 개략적으로 조망하고 국내 아파트의 보급과 확산의 역사를 조명했다. 국내 아파트의 역사를 조망하는 부분은 아파트 전문가이면서 닥터아파트의 창업주인 닥터봉이라는 필명의 봉준호씨가 쓴 책 <닥터봉의 부동산Show>에서도 자세히 언급되었는데, 함께 보완해가면서 읽었더니 한결 더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리고 부의 원천이자, 신분의 차별적 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파트와 함께 하는 미래한국에 대해서도 전망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한국사회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젊은 연구가인 발레리 줄레조가 지난 2007년에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써 국내 아파트의 문제점에 대해 제기한 바 있고, 민주노총 대변인이었던 손낙구씨가 쓴 <부동산 계급사회>에서도 한국의 부동산문제를 다루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 '아파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지만, 우리학자에 의해 본격적으로 한국 아파트에 메스를 들이댄 책은 이 책이 처음인 듯 하다. 게다가 문화사회학적 관점이라는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았다는 점은 더욱 흥미로웠다. 아파트는 그만큼 우리 생활에 뗄레야 뗄 수 없을 만큼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공감한 부분은 앞서 말한 <아파트 공화국>을 쓴 발레리 줄레조이 책의 저자가 관심을 둔 부분과 일치한 '서양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중산층은 물론 상류층까지도 아파트 거주를 선호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을 잘 설명해주는 듯한 부분은 제 4장 아파트 -부의 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 예금, 주식, 부동산 이렇게 투자의 대표적인 3대 포트폴리오 중에서 '환금성'(화폐로 전환시키는 성격)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부분은 부동산이다. 부동산 중에서도 투자자들에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넛 평균적인 수단은 바로 주택이 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투자수단 중에서 '집'이 가장 비싼 만큼 이를 사고 팔기가 가장 까다롭다. 그 이유는 매도자와 매수자간의 시공간적, 심리적 불합의가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고, 주택선호도와 내용연수와 감가상각등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전세와 같은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임차방식이 있어 그 '환금성'은 다른 투자 수단 그리고 같은 부동산이라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떨어질 수 있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아파트'다.

 

  주택가격이라고 하는 것이 매도자와 매입자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 절대적인 가격이란 존재할 수 없는데, 아파트 특히 500세대 이상의 단지에 있는 아파트의 경우는 최근에 거래된 가격이 단지내 같은 크기의 아파트 가격으로 잠정적으로 합의된 터라 가격결정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을 이용해 부녀회가 아파트 매도가를 결정하는 등의 일종의 카르텔도 이뤄지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거나 팔려고 하는 의도를 가진 자가 가격싸움에서 불리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부동산의 가격형성인데, 옆집의 최근 거래가가 자신의 거래가된다는 것은 가격의 고하를 떠나 다른 주택(모양도 크기도 다른)보다 그만큼 '환금성'에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자산보유 수준으로도 거래에 있어 장점을 가진 상류층들이 아파트에 뛰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둘째로 상류층들은 일종의 트렌드세터trend setter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보다 새로운 개념과 보다 나은 시설의 아파트를 지어 인기를 구가하고자 하는 건설사의 입장에서는 그들만을 위한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은 브랜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 2000년 아파트가 저마다 이름을 갖게 되면서  점점 더 고급화되고 브랜드화하는 경향은 이를 보여주는 방증이 된다. 

 

  세째로 핵가족화를 들 수 있겠다. 먼저 아파트라는 독특한 거주문화가 생겨나면서 핵가족화가 이루어졌는지, 핵가족화하는 경향때문에 아파트가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산층은 물론 상류층까지 핵가족화되면서 고래등같은 집을 보유하며 집을 돌보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은 낭비로 여겨지게 되었다. 오늘날의 상류층의 아파트 생활은 가장 편하고 첨단화 되었음에도 '가사 도우미'를 둔다고 하니 일반주택의 그것과 다를 바 없지만, 옛날 상류층의 본거지가 대를 이은 '터'를 중시했다면, 지금은 아파트의 '브랜드'를 중시하는 경향은 전통을 중시하는 예전과는 많은 차이를 둔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구조, 그리고 재산에 대한 이야기라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것도 많고, 트집잡고 싶은 부분도 많다. 이 땅에 아파트가 생긴지 벌써 두 세대가 지났기에 일반주택보다는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아파트를 보며 자란 세대들이 많아진 지금, 이처럼 예전부터 있어왔던 '자연스러운 집'이 되어버린 아파트에 대해 우리는 그 역사와 문제점 그리고 아파트로 인한 사회적 문화적 영향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다. 내가 살고 보는 아파트가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느낌들이 많이 들었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의 전환점'을 제시해 준 데 대해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초고가화되어가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미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아파트가 한국의 독특한 주택구조라는 특징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라면 날로 고가화되어 가구의 재산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그래프적인 외형만을 나타낸다면 앞으로 이땅에서 집을 소유해야 할 젊은이들에게는 마천루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꿈을 보여주는 '높디 높은 벽'이 될 것이고, 이러한 아파트 사회로의 행군이 이 땅의 평범한 시민과 미래세대로 하여금 처음부터 좌절하고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이 한국사회의 진짜 후진성이라고 강조했다. 깊이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사람들이 아파트가 너무 좋아 그에 미쳐가는 게(열광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가 스스로 미쳐가며 성장하는 괴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고민과 생각을 던져준 책, 이렇게 건강한 책이 우리나라에서 나온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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