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산업혁명 - 수평적 권력은 에너지, 경제,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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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시대 화석연료 사람들에 대한 녹색 대안

 

 

지난 3월 본지에 유럽재정위기의 실상을 담은 <부메랑>(비즈니스북스)을 살핀 적이 있다. 저자 마이클 루이스는 본문에서 그리스 현지에서 취재하고 살펴본 결과, ‘그리스는 단순히 부패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부패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들이 과연 디폴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에 대해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예측이 들어맞고 있다. 그리스가 지금 긴축안 수용여부와 유로존 탈퇴 여부의 갈림길에서 파국의 기로에 서 있다. 6월 17일 치러질 재총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리스의 긴축 이행 여부와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이었던 대니얼 앨트먼이 <10년 후 미래Outrageous fortunes>(청림출판)에서 말했던 EU 붕괴 예측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시점에서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는<3차 산업혁명>(민음사)이 지금 서점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것은 한편 아이러니다. 한치 앞도 몰라 매일같이 주가가 요동치고 있는데, 지금은 40년 후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러미 리프킨의 말이라니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내다보는 3차 산업혁명은 오늘을 사는 탄소시대, 화석연료 사람들에 대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 듣는 모든 불안한 뉴스의 원인은 따져보면 자원부족으로 귀결된다.

 

“나는 (2008 금융위기를) 세계화의 정점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이미 화석 연료와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 내에서 글로벌 경제성장을 확대할 수 있는 최댓값, 즉 그 외곽 한계에 도달해 있다.”

 

 

 

 

전작 <공감의 시대>에서 적자생존과 부의 집중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의 종언을 선고했던 그가,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재생에너지와 인터넷 네트워크를 토대로 한 수평적ㆍ분산적 모델을 제안하며, ‘3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협업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제러미 리프킨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미래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해 온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회사상가이다.

 

그는 <3차 산업혁명>에서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1차, 2차 산업혁명의 수명은 이제 종언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2008년 부동산 거품이 터져 최악의 경제 위기에 빠졌고, 엄청난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환경 파괴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게 그 증거라는 것이다. 제러미는 새로운 3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접목하여 “과연 인류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는 있는가?” 하는 질문에 희망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초적이지만 이미 많은 나라들이 3차 산업혁명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역사상 위대한 경제적 변혁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새로운 에너지 체계가 만났을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19세기에 인류는 증기기관과 석탄을 동력 삼아 대량 인쇄와 공장 생산 경제 시대를 열어 1차 산업혁명을 있으켰다면, 20세기 들어서는 전기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석유 자원이 만나면서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자동차, 석유, 전자 등 대기업이 세계 경제를 부양하게 되면서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3차 산업혁명의 다섯 가지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

 

⑴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한다.

⑵ 모든 대륙의 건물을 현장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미니 발전소로 변형한다.

⑶ 모든 건물과 인프라 전체에 수소 저장 기술 및 여타의 저장 기술을 보급하여 불규칙적으로 생성되는 에너지를 보존한다.

⑷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여 모든 대륙의 동력 그리드를 인터넷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로 전환한다(수백만 개의 빌딩이 소량의 에너지를 생성하면 잉여 에너지는 그리드로 되팔아 대륙내 이웃들이 사용할 수도 있다).

⑸ 교통수단을 전원 연결 및 연료전지 차량으로 교체하고 대륙별 양방향 스마트 동력 그리드상에서 전기를 사고팔 수 있게 한다.

 

그럼, 3차 산업혁명이 그리는 미래의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선 정부주도의 에너지기업형태가 아닌 모든 중소형 건물이 태양열,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미니 발전소'를 갖추고, 에너지 소비자는 동시에 생산자가 된다. 그리고 사용하고 남는 에너지는 서로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에너지 체계가 바뀌니 산업도 바뀐다. 대량생산에 기반한 '규모의 경제'를 꾸릴 필요가 없어진다. 인터넷이 거대한 '시장'으로 기능하는 만큼 작은 회사도 자신의 상품을 쉽게 내다 팔 수 있다. 많은 소규모 기업들이 협업 관계를 맺으면서 수직적 자본주의는 수평적 자본주의로 대체된다.

 

같은 맥락에서 '소유'에서 '공유'로 개념이 바뀔 것이라 내다 봤다. 실제로 세계 최대 자동차 공유 서비스 회사인 집카(Zipcar)는 2000년에 설립된 이후 10년 만에 회원 수가 수십만 명이 되었고 2009년 매출은 1억 30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2010년에는 ‘하이브리드 전기차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 국제적인 비영리 네트워크인 ‘카우치 서핑’은 여행자가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지역 주민을 연결해 주고 있다. 이미 100만 명이 넘는 카우치 서퍼(couch surfer)가 전 세계 6만 9000개 도시에서 서로의 집을 방문했으며, 이러한 활동은 탄소발자국을 현저히 줄이는 데 일조했다. 아울러 3차 산업혁명의 모델은 사회적 기업가 운동의 정신을 구현하는데, 그 모델은 탐스TOMS 슈즈 같은 기업이다.

 

탐스 슈즈는 일반적인 신발이 아니라 지속 가능 재료, 유기물 재료, 재활용 재료, 심지어는 식물성 재료를 이용해 신발을 만든다. 그리고 이 개념 있는 신발은 한 켤레가 팔릴 때 마다 세계 어딘가에서 신발을 필요한 한 아이에게 새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한다. 이른바 ‘일대일 운동’이다. 탐스 슈즈는 이 운동으로 지금까지 미국과 아이티, 과테말라,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 르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의 빈민 지역에 사는 10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새 신발을 신었다고 한다.

 

제러미 리프킨은 얼마 전 방한했을 때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독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인 한국엔 풍부한 햇빛, 바람, 바다가 있어서 재생 에너지를 만들 여력이 충분하고, 조선, 건설 등으로 다져진 기술적 노하우와 인터넷 인프라 역시 튼튼해서가 그 이유다. 더불어 그는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생산물, 네트워크를 취합하고 노하우를 전달하는 역할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에게 “30년 안에 탄소 시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100년 이내에 인간이라는 종의 멸망을 목격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업계와 정부는 20년 후에 어디에 있고 싶은가?‘ 물어봐야 할 때가 지금이라며 다시 이렇게 묻는다. “쇠락하는 2차 산업혁명의 에너지, 기술, 인프라 체계에 갇히길 원하는가? 아니면 떠오르는 3차 산업혁명이 에너지, 기술, 인프라 체계로 이행 중이길 원하는가?”

 

책을 덮으며 고개는 끄덕이면서도 나는 오늘도 3시 종가를 살피고 그리스 사태와 EU의 원유 수입 결정 관련 기사를 뒤졌다. 새로운 산업혁명의 비전에 탄복하며 박수치기에는 안경 너머로 보이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 위태롭다.

 

 

본 이미지는 팍스 TV(5월 29일) 재테크 다이어리에 방송된 내용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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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한 줄
강명석.고재열.김화성 외 지음 / 북바이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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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대한민국을 움직인 화제의 어록모음!  

 

   “(오늘날)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대중의 쓰기가 부활하면서 ‘읽기’와 ‘쓰기’의 순환이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누구나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거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글을 쓰는 것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교양층의 읽기 또한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자공간에 범란하는 텍스트를 읽는 행위까지 읽기로 간주한다면 독서의 ‘소외’가 아닌 독서의 ‘범람’이라고 일컬어도 좋을 정도입니다." (12쪽) 

 

   ‘힘 있는 말이 힘 있는 움직임을 부른다!’는 부제의 책 『공감의 한줄』(북바이북)은 26명의 필자가 참여하여 짧고 힘 있는 말을 구사하며 대중의 공감을 끌어낸 이시대의 선생들의 삶의 궤적과 주목받았던 맥락 등을 짚어보는 책이다. 어록의 주인공은 작가, 논객, 스타, 기업인 등 실로 다양하다. 책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인물 역시 안철수, 박경철, 공병호, 김태원, 김난도, 이외수, 김애란, 공지영, 진중권, 조국, 김어준, 유시민, 손석희, 스티브 잡스, 정용진, 안상수, 홍준표, 김제동, 김미화, 강호동, 유재석, 김연아 등 초호화 캐스팅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해서 이 시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물들의 어록을 찾아서 내노라하는 글쟁이들이 엮은 책이다. 이들의 대표 어록과 그들의 어법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어서 유익함과 더불어 재미도 갖추고 있다. 어록이라고 해서 다 좋은 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MB의 어록인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어디 새겨읽을만한 말이던가). 하지만 책에서 만나는 어록 면면을 살피다 보면 우리 시대가 원하는 소통의 자화상을 저마다 그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심해 올린 농익은 한 문장이 사람을 얼마나 크게 울리는가 직접 확인하게 된다.

 

 

 

 

 

   ‘말이 많아진 시대, 말하는 사람이 많아진 시대’가 요즘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신문 칼럼이나 방송 토론 프로그램, 혹은 책, 잡지를 통해서만 이슈를 접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중심으로 이슈 시장이 재편되면서 이젠 짧은 말들로 주장을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사람들은 글을 통해 이해를 구하고 설득당하는 것보다 어록을 ‘선택’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미 자신의 입장을 정해 놓고 필요한 어록을 구하다가 내 생각을 대신 정리해준 다른 사람의 말을 만나면‘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기가 막히게 내 생각을 표현했군.’하며 그 어록에 꽂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어록의 탄생에는 인터넷 기술이 한 몫을 했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은 트위터, 지금은 트위터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를 살펴보면 전 세계에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트위터에 접속하는 사람이 1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또 이 1억 명 중 절반 가량은 하루에 한 번 이상 트위터에 접속하고 하루 작성되는 트위터 메시지도 평균 2억 3000만 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대중이 몰린 트위터에 유명인사들도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게 되었다. 예전만 하더라도 대중을 만나려면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글이나 인터뷰를 해야 했다. 이들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반면 정작 그것(방송, 글)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는 나를 좋아하는 팬을 직접 만날 수 있으니 인사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공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SNS에 뛰어들어 새로운 논객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어록도 탄생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어록’이 정치인이나 경제인 그리고 일부 유명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반면 오늘날은 특정 사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인물들이 어록을 남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소셜테이너라 불리는 사회참여연예인들이 돋보인다. 김제동, 김미화, 김여진 등 사회적 불의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요, 대중들은 이들의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지지세력이 되어 눈에 띄는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힘이 강하면 책임도 무거워진다.”는 안철수의 어록이 가장 마음에 든다. 요즘 이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로, 원래 출처는 원래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이 대사라고 한다. 안철수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인용을 했는데요, 자신의 위치와 그에 따른 책임을 명쾌하게 표현한 말이다. 안철수는 시골의사 박경철과 ‘청춘콘서트’를 열어 대학생들과 만나는 행보를 보이면서 그의 말에 더욱 무게감이 실렸고, 단지 성공한 CEO가 아니라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는 모습에서 대중들은 새로운 리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더라면 이 같은 무게감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의 목소리를 통해 나온 이 말은 평소의 소신이 뭍어있는 것만 같아 그에 대한 신뢰를 더해준다. 

 

   그 밖에도 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에 멘토로 참여한 김태원이 멘티에게 한 말 중에 “긴장하는 사람은 지고, 설레는 사람은 이긴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 말도 울림이 큰 말같아 좋고, 과학자 정재승씨의 어록 중에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학교 당국을 향해 “미안해. 하지만…은 사과가 아닙니다. 진심 어린 사과는 변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씀도 정말 기본적이면서도 깊은 성찰을 주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 책에는 직접 언급되지 않았지만,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그들이 최근에 말한 어록들 중에 좋아하는 말들이 있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지난 보궐선거 즈음 <닥치고 정치>(푸른숲)을 나면서 “국민이 선거나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다름아닌, 내 생활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며 참정권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이보다 명징한 해석을 만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최근 화제를 일으켰던 영화 <도가니>의 동명소설을 쓴 소설가 공지영은 자신이 쓴 소설 ‘도가니’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 “광주인화학교를 고발하고 싶은 것 뿐만 아니라 ‘상류층이 형성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고발하고 싶었다”는 말이 오랫동안 귀에 남았다. 그녀가 이야기한 ‘상류층이 형성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어록은 우리의 뇌리에 숨을 쉴 것이다.

 

  이쯤에서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어록책’이 새삼스럽다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도 이런 어록들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즘 어록이 특히 주목받고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 이유를 웹Web 2.0 정신에서 찾고자 한다. 웹Web 2.0을 잘 말해주는 키워드는 바로 공유, 참여, 공감인데, 어록의 유행과정도 이와 일치한다.

 

   우선 소위 유명인사들이 만인이 있는 공간(트위터, 미투데이, 요즘, 페이스북)에 직접 뛰어들어 참여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평소에 가졌던 소신 있는 자기 목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점이 같다. 마지막으로 공감이다. 만약 이들 유명인사들이 좋은 말만 했다면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정인물이나, 집단의 맹점과 잘못에 대해 국민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공분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내곡동 사저 문제’라든지 ‘선관위 디도스 공격’ 등 최근 정치계에서 태풍과 같은 역할을 했던 사건들의 발단이 공교롭게도 애플의 인기 팟캐스트 방송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소통의 측면에서 트위터 등의 소통 공간들은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통하고 있고 그 속도 역시 전송과 동시에 전세계에 퍼진다는 점은 하기 혁명적이다. 한편 세상이 변한 줄도 모르고 예전의 구태의연한 행동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일부 정치인이나 경제인에게는 치명적인 핵폭탄처럼 치명적인 괴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이러한 현상은 하루 이틀 지나고 말 이벤트가 아닌 앞으로 인류와 함께 할 하나의 소통창구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것이다. 이젠 헛된 인기가 아닌 온전한 실력으로 얻은 평판으로 사는 세상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죄짓고는 못사는 세상'이 오늘날이라는 말씀이다. 

 

   <공감의 한 줄> 읽으면 2011년 한 해 동안 어떤 크고 작은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났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우리가 소위 말하는 인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말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내노라하는 작가와 기자 칼럼니스트들이 살과 옷을 입혀 그들이 말들이 전하는 속뜻도 함께 전할 것이다.

   나 역시 경제에 관련된 인물 다섯 명(박경철, 선대인, 손정의, 워런 버핏, 스티브 잡스)의 어록을 추적에 이 책의 필진으로 참여했으니 일독해준다면 감사하겠다. 이 책을 통해 감동과 유익함도 얻고,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위해 나는 어떤 변화를 꾀할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란다.

 

 

이 방송은 12월 06일자 이데일리 TV <이기는 투자전략> 2부 

'경제경영 따라잡기'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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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팔도를 간다 : 서울편 - 방방곡곡을 누비며 신토불이 산해진미를 찾아 그린 대한민국 맛 지도! 식객 팔도를 간다
허영만 글.그림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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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만화 시장에 새로운 장을 연 <식객>시리즈 베스트 컬렉션! 

  진수와 성찬이가 엮어낸 요리 이야기가 무려 스물일곱 권이나 되는 장편만화 <식객>에 이어 <식객, 팔도를 간다>시리즈가 경기에 이어 서울에 이르렀다. 그저 허영만 화백(이 존칭을 들을 사람은 작고한 고우영 선생 밖에 없다)의 왕성한 작품 활동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식객을 읽으며 매 번 ‘이번에 리뷰 한 번 해 볼까’ 마음만 한가득. 스물아홉 번째 <식객>에 이르러서야 리뷰를 쓴다.

 



 

  만화<식객> 시리즈가 갖는 의미는 손으로 다 꼽을 수 없다. 우선 국내 출판계에서 ‘만화도 돈 주고 사서 읽는 책’의 수준으로 올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아동용 학습 만화를 제외하고). 그 전까지만 해도 만화는 ‘만화방에서 읽거나, 빌려보는 정도’ 였다. 이처럼 만화는 좋아하지만 사서 읽지는 않는 독자들 덕(?)에 ‘한국만화 시장’의 열악성은 빈곤의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독자들 탓만 할 것은 아니다.

  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유교문화에 익숙한 독자들은 책이라는 물건을 사용개념이 아닌 소유개념으로 여겨 서재나 책꽂이에 모셔둬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 마당에 만화책은 언감생심 책꽂이에 꼽아둘 수 없는 불경한 물건이었다. 만약 볼라치면 만화방에 가서 읽거나 스포츠 신문을 보는 척 몰래 읽어야 했다. 

  또한 만화책을 살 바엔 진짜 책(?) 한 권을 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했다. 만화책이 팔릴 리 만무했다. 하지만 <식객>을 비롯해 <부자>, <꼴> 등 일련의 허영만 만화들은 만화와 함께 ‘정보적 요소’를 갖춰 ‘만화로 풀어놓은 전문서’ 형식을 갖췄다. 한국 독자를 제대로 읽은 것이다.

  독자들은 ‘유익하다’는 명분으로 주저하지 않고 만화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최근의 만화 시리즈들은 서재 한켠에 고이 모셔지는 특급대우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음지에 숨어있던 만화가 책 대접을 받으며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한편 허영만의 만화들은 <부자>, <관상>, <한국음식> 등 국민 대다수가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들, 그리고 꼭 알아야 둬야 할 주제들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몰래 숨겨서 읽던 만화, 혹 들키기라도 하면 ‘하라는 공부안하고 딴 짓 한다’고 욕을 먹어야 했던 만화가 이젠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책이 되었다. 또한 그의 만화가 갖는 스토리텔링은 우수해서 TV의 드라마, 영화의 원작이 되어 만화 컨텐츠가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auce Multi use로 활용되었다. 

  그렇다면 많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식객>의 비밀은 무엇일까? <식객, 팔도를 간다(서울 편)>에서 찾아보자.

 



 

  우선 생생한 현장감이다. 소설가들이 자신의 소설에 현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수시로 현장에 나가 그 모습을 메모해 둔다면, 허영만은 그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아 사각의 프레임에 옮겼다. 그리고 허영만의 펜 끝에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고, 음식이 향기를 품었다. 게다가 사진으로 현장의 모습을 대조하는가 하면 현실과 다를 경우 그 이유까지 설명하고 있어 무엇이 현실이고 허구인지 가늠하기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요즘 한 시간짜리 음식 다큐들이 많던데, 그에 비유한다면 <식객>은 ‘만화로 보는 음식 다큐여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기획력이다. 책을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맛집을 수배하였고, 장소와 계절에 맞는 음식을 찾아냈다. 인상적인 점은 가급적 독자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도 소개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명 에피소드만을 골라서 엮었으니 <식객>을 읽지 않은 독자는 엑기스를 만나는 셈이고, 애독자에게는 베스트 컬렉션이 된다. 이렇게 가치 있는 책을 어떻게 안 살 수 있을까?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마케터로서 독자를 먼저 읽고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좋아할 수 있는 만화의 컨텐츠를 구상했다. 아울러 장편만화의 대가답게 인내력과 긴 숨을 요하는 작품을 토해내며 매 편마다 독자들을 들뜨게 한다. 특히 이번 <식객, 팔도를 가다>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고향의 맛을 전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래서 고향에 있는 대로, 타향에 있는 대로 그 맛에 취하고,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향’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독자들에게는 고향을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럼 구체적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서민들의 대표적인 보양식 '설렁탕'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실직자인 세 명의 친구가 설렁탕집을 차리기로 결심하고 서로 주방과 홀, 그리고 식재료 구매를 맡기로 한다. 설렁탕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주방을 맡기로 하고 유명한 설렁탕집에 위장취업을 한 서른 한 살의 청년이다. 

  처음엔 6개월 정도 주방에서 귀동냥을 하면 차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25년 경력의 조리장도 아직 설렁탕을 마스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전국을 돌며 설렁탕수련을 떠나며 끝을 맺는다. 

  설렁탕의 유래에서부터 설렁탕 상식 그리고 레시피까지 담긴 설렁탕 부분은 웬만한 주방장의 레시피 메모보다 자세하다. 찬찬히 읽고 나면 ‘나도 한 번 창업을...?’하는 용기도 날테지만, 글로 배운 키스가 엉터리인 것처럼, 읽어 배운 요리법은 허당이다. 나는 그 진리를 세 번째 이야기인 ‘타락죽’을 통해 배웠다.  이야기 끝에 소개된 열 두어 줄 짜리 '타락죽 만들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이나 쉬워보였다.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건방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케빈 씨가 먹은 성찬이의 ‘타락죽’을 먹고 싶었다. 성찬이의 밥상을 받기는 어려우니 혼자 만들어 먹을 밖에. 마침 집에 아무도 없어 잘 됐다 싶었다.

  찹쌀을 충분히 불리고, 선풍기에 바짝 말리고, 믹서에 곱게 갈아, 한지를 깐 프라이팬에 볶는 것까지는 좋았다. 한 컵 분량의 물을 부어 멍울을 풀고 쌀의 5-6배 만큼 우유를 넣는 부분에서 잘못된 것 같았다. 어설픈 쌀죽 위에 우유가 분리되어 훌렁거렸다. 초등학교 시절 급식시간에 우유에 밥을 말아먹는 아이를 보고 토악질하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채 반을 먹지 못하고 느끼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설탕대신 꿀을 넣은 것이 잘못이요, 많이 넣은 것은 큰 실수였다. 앞으로 수년간 ‘죽’이란 글자가 들어간 음식은 쳐다보지도 못할 것 같다. 

  맛있게 만들지도 못한 타락죽 경험담을 굳이 이야기한 이유는 재미는 기본이고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과 요리들이 직접 해 먹을 만큼 독자로 하여금 먹고 싶게 만들었다 점이다. 정말 기회만 된다면 만화에 언급된 요리 모두를 먹어보고 싶다. 권말에 있는 ‘서울 전통의 별미를 계절별로 즐기자’에 소개된 잣국수, 두부새우젓찜, 전복찜 등 16가지 요리들은 주말마다 만들어 먹을 도전 요리들 되었다. 재미로 한 번 읽고 맛으로 두 번 읽은 책, 진짜배기 서울 맛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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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리 초보
    from 제발 제발 2011-04-20 19:23 
    타락죽 이야기 재미있습니다. ^ ^ 설탕 대신 꿀을 넣고, 더구나 '많이' 넣었다면, 님은 확실한 요리 초보십니다. 흐흣..(저도 자주 하는 실수라..^ ^;;)초보는 재료를빼먹기도 하고 더 넣기도 하고설익히기도하고 태우기도 하고, 온갖 실수를 하지만, 그 어떤 실수보다 돌이킬 수 없는건양념을'너무 많이' 넣는실수 같아요.소금, 간장, 설탕, 마늘, 식초, 고춧가루.. 모자랄때더 넣기는 쉬워도,많이 넣은 것을 덜어내기는 어려우니까요. ^ ^;;조금 덜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의는 답이 아니라 과정에 존재한다!

  지난 해 내가 흥미롭게 읽은 책 중에 결정의 기술과 실행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고 포인트』(한경BP)라는 책이 있다. 와튼 스쿨의 마이클 유심 교수가 쓴 이 책은 ‘고 포인트Go Point'를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 예스 아니면 노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 특히 다른 사람의 운명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어느 방향으로 뛸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불렀다. 아울러 저자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성격이 아니라 오랜 기간 부단한 노력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어서 그 결정의 기술과 실행방법을 배우면 능숙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고 포인트’ 사례는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 비행기 속에서 45명 중 29명이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이야기였다. 1993년 ‘얼라이브Alive'라는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했던 로베르토 카네사의 생존기는 거의 생존불능의 악조건 속에서 많은 사람이 살아남아 결과적으로는 무척 감동적이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겪은 과정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해발 3,500미터의 안데스산 눈밭에 고립된 생존자들은 음식도 없이 힘겹게 버텼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모두가 굶어죽기 직전의 상태로 악화되었다. 열흘째 되던 날, 주인공 카네사는 첫 번째 고 포인트가 왔음을 알았다. 의대생인 그는 생존자들이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먹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최대한 객관적인 주장을 펼치며 설득했다. 그리고 식인행위를 할 것인가 여부의 ‘고 포인트’는 생존자 전체의 목숨을 연장시켰다.  

  책의 내용에서는 ‘고 포인트’의 순간 가장 중요한 원칙은 ‘남에게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릴 때는 사적인 이익은 완벽히 배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포인트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결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이 사리추구를 뛰어넘는 의사결정자가 경영할 때 최선의 결과를 낸다는 증거가 많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아울러 ‘더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자기이익은 최소화하는 결정을 내려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만약 내가 카네사라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생각에 고정되었다. 과연 나는 카네사와 같은 용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식인행위를 해서 살아남은 것이 가장 현명한 결정이었을까? 반대로 나만은 절대로 ‘식인행위’를 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다른 행동을 했다면 그 결정은 과연 현명한 결정이었을까?

  저자의 주장에 충분히 수긍은 했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드는 의문은 ‘카네사와 일행의 판단이 과연 옳은 판단이었나’ 하는 것이었다. 살아남았으므로 잘된 일은 확실하다. 하지만 난 다른 한 편 즉, 생존자들의 식량으로 죽임을 당한 이들이 신경에 거슬렸다. 내가 만약 그들 중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감동적이고, 영웅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할까? 혼란함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 한 명의 테러범이 있다. '스티븐 아더 영거' 라는 이 청년은 미국 맨해튼에 핵폭탄을 몰래 설치했지만 곧 체포된다. 미국 정보기관이 투입되어 핵폭탄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테러범은 핵폭탄을 숨긴 곳을 밝히지 않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이대로 계속된다면 맨해튼에 곧 핵폭발이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선다. 미 정보기관은 고문 전문가 H 와 테러전담반인 여형사를 투입한다. 두 전문가의 노력에도 테러범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테러범이 언젠가는 맨해튼을 폭파시킬 핵무기 정보를 갖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이미 폭탄을 설치했다고 의심할 근거도 있다.

  시계는 째깍거리는데, 용의자는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며 폭탄의 위치를 실토하지 않는다. 그러자 고문전문가 H는 고문을 시작한다. 고문 전문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고문의 강도를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테러범의 부인과 딸을 데려와 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른다. 과연 테러범은 사실을 고백할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명배우 사뮤엘 잭슨이 출연한 영화 <언씽커블Unthinkabe>의 줄거리다. 사각의 작은 방 안에서 펼치는 테러범과 고문전문가의 갈등만으로 충당되는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테러범과 고문전문가의 절박한 심정이 되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박감에 손에 땀이 쥐어졌지만 이와 함께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질문은 ‘테러범이 폭탄이 설치된 장소를 말하고 그것을 제거할 방법을 자벽할 때까지 고문을 하는 것은 옳은가?’ 였다.

  왜냐하면 테러범(테러범이 아닐 수도 있다)의 말대로 실제로 핵폭탄 같은 것은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택해야 할 길은 하나인데, 둘 중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 딜레마. 인육을 먹어야 하거나, 남을 죽여야 나와 내 가족이 살아남는 절체절명의 상황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와 같은 딜레마의 상황을 매일 만난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그리고 내가 결정한 판단은 과연 옳은 것인가?  

   ‘인문서는 1만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다’는 말이 있는 국내 출판시장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치철학 책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What's the Right Thing to Do>(김영사)는 지난 해 이례적으로 60만 부가 넘게 팔리며 ‘정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게다가 지난 연말부터 방송되고 있는 샌델 교수의 TV 강좌인 EBS '하버드 특강 - 정의'는 자정시간대임에도 시청률 1%를 넘기며 화제를 모으는 등 새해에도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 연말 거의 모든 언론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경이로운 판매고도 작용했지만 그와 함께 한국 사회 전체에 ‘옳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던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과 천안함, 4대강 개발, 최근에는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까지 우리 사회에는 논란들이 끊일 날이 없다. 민주사회와 다원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이러한 논란의 대두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담론들에 대해 옳고 그름,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 정의와 부정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토론되어 하나의 대안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반대의견을 배척하는데 있다. 또한 한편에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견을 펼치는 듯해서 해답을 도출하기는커녕 논란 자체가 부정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 책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답답한 현실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독자들은 다양한 정치철학자들의 주장들을 통해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의를 도출하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이 책에서 찾았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칸트,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 롤스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정치철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권리를 규정하는 개인의 자유, 좋은 삶, 정의의 원칙은 미덕과 최선의 삶에 관한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지 말아야 하고 정의로운 사회라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각자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소개했다.  



 
  아쉽게도 필자가 원했던 정의에 대한 명쾌한 해답과 설명은 샌델 교수에게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딜레마에 빠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행복의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데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요약되는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공리주의가 정의인가, 아니면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주의가 정의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공동체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 되묻는다. 정의란 무엇인지 대답해야 할 사람은 결국 독자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전개 방식은 마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실제 강의를 지면으로 옮겨놓은 듯하다(궁금하다면 TV 강좌인 EBS '하버드 특강 - 정의'를 보시길). 1000여 석의 하버드대 극장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에게 샌델교수는 논란이 될 만한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학생들이 손을 들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면 샌델 교수는 학생의 이름을 묻고 그 의견을 정리 요약하고 어느 정치철학자의 의견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질문으로 되묻는다. 답변했던 학생이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다. 구체적인 대답을 구하지 못하면 다른 학생들에게 이에 대한 답을 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아마도 우리로 하여금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저자의 다양한 질문들일 것이다. 정신적인 피해를 보상받고자 하는 이라크전 상의군인의 소송, 2008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으로 인센티브를 받은 고위임원들에 대한 분노, 철로를 달리는 전차를 막기 위해 치러야 하는 타자의 희생 등을 비롯해 제시하는 독자들이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해야 할 질문들은 다양하다. 이 사례들을 통해 독자들은 오늘날의 시장 중심 사회에서 생기게 마련인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공동체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하는 것이 정의인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는 과연 공정하고 자유로운가? 고민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다분히 상식적이고 친숙한 질문들 같지만 ‘이것이다’라고 단언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격폭리, 소수집단우대정책, 병역, 동성혼 등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변들은 정치철학과 자신의 도덕적 정치적 신념을 피력하는 중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답변은 개인을 넘어 정부와 국민, 야당과 여당, 미디어와 언론들이 펼치는 갑론을박이 된다. 어떤 답을 채택하고 의견을 더하느냐에 따라 편을 가르게 되고, 정치적 행보를 달리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덕적 이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상호 존중의 토대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동료 시민이 공적 삶에서 드러내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학습하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어려운 도덕 질문을 공개적으로 고민한다고 해서 어느 상황에서든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거나, 심지어 타인의 도덕적 종교적 견해를 평가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도덕적, 종교적 교리를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더 싫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해보기 전까지는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370-371쪽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도출해내는 과정이 더 중요함을 알려준다. 아울러 모든 논란에 있어 다양한 의견이 도출될 수 있고, 또한 상대방의 의견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일리가 있는 의견임을 수긍하고 경청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정의正義, 곧 옳은 것은 스스로가 옳은 것이지, 내가 옳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고, 그것을 말한 내가 옳은 것도 결코 아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점을 말하고 있다. 

이 리뷰는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스마트 월드](2011년 1.2월호)에 소개될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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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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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음은 좋음에 우선한다. 옳음을 좇아라!

 

 국내는 지금 '마이클 샌델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 '정의', '공정' 논쟁을 촉발시킨 책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는 인문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10월말 현재 50만 권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하며 순항중이다. 샌델 교수가 이 책에서 던진 정치철학의 중대한 질문들(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자유시장은 공정한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잘못인 때도 있는가? 도덕적으로 살인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가? 도덕을 입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개인의 권리와 공익은 상충하는가?) 등은 현 정부가 내세운 ‘공정사회론’과 몇 차례의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 거짓말 논란과 낙마' 등 오늘날의 골치 아픈 다양한 문제들과 결합하여 독자로 하여금 과연 '옳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이제는 '도덕'이다!

  최근 그의 이름으로 국내에 세 번째로 <왜 도덕인가? Public Philosophy: Essays on Morality in Politics>(한국경제신문)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사실 앞서 말한 놀라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2007년)와 누구나 한번쯤은 빠져들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에 관한 문제들을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과 연결해 풀어낸 책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The Case against Perfection>(2009년)보다 먼저(2006년) 출간되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 가독성이 떨어지고, 책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 역시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지만(주제가 불명확한 것은 '뉴욕타임즈', '뉴퍼블릭', '애틀랜틱먼슬리' 등 일반인을 독자로 하는 간행물 등에 실렸던 에세이들을 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책을 살펴봐야 할 이유를 들자면 어쩌면 '정의'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치인 ‘도덕’을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보다 근본적인 도덕적 논쟁과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제가 화두인 시대, 경제적 풍요가 최고의 선이 돼버린 상황에서 여타의 가치들은 쉽게 무시되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가장 기초적인 가치, 도덕의 목마름을 호소한다.

 

 

경제중심의 사회가 낳은 폐해는 심각하다. 도덕적 해이와 거짓말, 각종 로비와 공직자의 부패, 경제인의 각종 특혜와 비윤리적인 이권개입, 일반 시민의 도덕 불감증 등 경제 논리에 가려 어느 정도의 비도덕은 묵인할 수 있다는, 근거가 빈약한 관용이 사회 저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샌델 교수는 이 책에서 민주사회에서 도덕성의 의미와 본질을 살펴보고, 그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들을 들여다본다. 나아가 공공생활을 움직이는 도덕적 딜레마와 정치적 딜레마 도 함께 살피고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철학 전통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분야가 도덕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자유주의와 공리주의 그리고 공동체주의를 통해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의 정의와 그 한계,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설명했다. 이 책을 통해 그가 말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현재 도덕이 회자되고 있는 이유와 그 필요성, 그리고 과연 ‘도덕적 가치’는 무엇인가에 주목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둬야 할 포커스다.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우선 공정한 시민사회를 위해 필요한 '도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5개의 주제로 나눠 복권과 도박, 광고와 상업주의, 존엄사, 정치인의 거짓말, 낙태, 동성애자의 권리,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의 도덕적 한계, 등 논쟁의 대상이었던 도덕적 현안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도덕적 가치의 기반을 이루는 다양한 자유주의 정치이론들을 검토하고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고, 미국 정치의 전통을 전반적으로 되짚어보고 토머스 제퍼슨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사의 주요 논쟁을 통해 잃어버렸던 도덕적, 시민적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복권과 도박 - 공공의 책임을 외면하는 공적인 타락

 

  복권 찬성론자들은 어느 누구도 강제로 복권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반대하면 그저 하지 않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는 적극적으로 복권을 홍보하면서 복권광고판에는 ‘인생역전’이라는 말로 당신도 엄청난 대박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며 구매를 부추긴다(이 사실만으로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다). 복권구매자들의 분포가 부유층보다 저소득층에 집중된 것을 볼 때 시민들에게 노동윤리와 희생정신, 민주주의적 삶을 지탱하는 도덕적 책임을 강조해야 할 정부가 비뚤어진 시민교육을 제공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샌델 교수는 복권 사업자인 정부에게 그것이 합당한 사업이라면 왜 민간기업이 그것을 판매하고 운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만일 매춘처럼 비도덕적 사업이이라면 왜 정부가 그 사업을 운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복권옹호론자들의 딜레마인 셈이다. 

온실가스배출권 거래 - 환경오염 방지가 아닌 면죄부?

  샌델 교수는 1997년 교토 기후변화협의회에서 클린턴 정부가 주장한 내용 중에 ‘온실가스 거래제도’는 지구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에 반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배출권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되면 선진들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태만할 거라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반대 했다.

  첫째, 배출권 거래제는 선진국들이 의무 감축량을 피해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준다. 둘째,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면 지구를 오염시키는 행위에 수반되어야 마땅한 도덕적 죄책감을 덜 느낀다. 즉 벌금이 아닌 요금으로 여기는 도덕적 헤이를 야기할 수 있다. 셋째, 배출권 거래제는 갈수록 국제사회 공조가 늘어나는 오늘날 더욱 필요한 인류 공동의 책임감을 약화시킨다. ‘돈으로 글로벌 책무를 비껴가도록 허용한다’는 식의 풍조가 만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성 - 정당한 차별이란 존재하는가?

  뇌성마비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캘리는 치어리더였다가 1년 만에 응원단에서 쫓겨났다. 치어리더 단장의 아버지인 로버트가 캘리의 활동에 특히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캘 리가 자격도 없으면서 영광을 누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영광과 분노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도덕감정이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응원용 술을 흔들 수 있기에 캘리는 치어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샌델 교수는 수많은 땀방울과 노력을 기울였던 다른 치어들이 누리는 영광은 분명히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미국의 대학 입학 시의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살펴보자. 이 정책의 찬성론자들은 차별이라는 악행을 고치기 위해 그런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역차별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샌델 교수는 이 사안에 대해 생각해야 할 질문은 ‘대학이 어떤 자격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농어촌 특별전형’이란 것이 있다. 1996년부터 실시된 농어촌 특별전형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해 정원 대비 농어촌 특별전형의 비율을 기존의 3%에서 4%로 확대하기로 한 제도인데, 수도권의 명문대학에서 정부 정책에 의해 농어촌특별전형으로 선발하는 학생수를 늘린 것과 함께 중ㆍ하위권 대학에서 농어촌특별전형 대상 학교의 범위를 일반 도시지역까지 확대함에 따라 최근 농어촌특별전형에 대한 관심이 급증되었다. 

  그러나 종종 도시학생들이 위장전입을 통해 농촌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격이 종전에는 ‘중고교 6년을 농어촌지역에서 다닌 자’였지만, 지금은 상당수의 대학이 ‘고교 3년’으로 제한하고 있어 중학교 3학년 때, 농어촌의 고등학교에 전학을 하는 것이다. 공정성을 위해 마련한 제도가 제대로 규제하지 않아 오히려 농어촌의 많은 인재들이 대학을 입학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제도로 전락되었다. 한편 이러한 편법이 동원해서 대학을 입학하는 가정은 경제적 능력이 충분해야 가능하므로 빈부에 의해 또 한 번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이 되고 있다. 

  책 전반에 걸친 샌델 교수의 주장은 한마디로 ‘옳음은 좋음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즉 옳음을 우선한다는 것은 개인의 권리가 전체의 이익에 의해 희생될 수 없고, 이러한 권리에 대한 정의 원칙은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을 전제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공공생활은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가 살아날 뿐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떠나 무너진 원칙을 공정하게 다시 세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도덕적 딜레마를 피하지 말고 맞닥뜨려 고민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정치에 있어 도덕적 가치가 풀어야 할 숙제를 만남으로써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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