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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플랜트 트리플 11
윤치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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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이라니까. 너는 왜 항상 네가 보고 싶은대로만 봐? / p.17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연애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집이다. 가끔 남의 사랑 이야기를 말하는 라디오 사연을 듣거나 연애를 참견하는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나의 연애사는 완벽하게 다큐멘터리였으나, 다른 사람의 연애사는 예능이자 드라마 그 자체였기 때문에 같은 맥락으로 연애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되었다. 또한, 식물의 방식으로 연애를 본다는 부분이 나에게는 큰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소설은 말레이시아에서 택시를 탄 희주와 그의 남자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커플의 여행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생각의 소용돌이를 준 작품이었다. 희주는 비혼식을 할 예정이며, 남자 친구에게 야자나무와 팜나무를 구분할 줄 아느냐고 묻고, 그믐달과 초승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또한, 사고가 난 차 번호로 복권을 사면 대박을 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사고가 난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러한 희주를 남자 친구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그랬다. 조금 독특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희주가 상사로부터 성희롱 발언을 듣게 되면서 나의 생각은 정반대로 바뀌게 된다. 그 말을 들은 남자 친구는 상사의 멱살을 잡고 폭행을 하게 되는데, 이후 회사와 남자 친구의 태도가 너무 답답했다. 피해자는 희주이나, 왜 사과와 용서는 남자 친구에게 하는가. 회사 사람들은 왜 당연하게 희주가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해설을 보면서 야자나무와 팜나무, 그믐달과 초승달을 묻고자 하는 태도가 희주에게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희주가 비혼이라는 인덱스를 붙이는 것처럼 그것들에게도 특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해하지 못했던 독자인 나와 소설에서의 남자 친구는 희주의 말처럼 "네가 보고 싶는 것만 본다."라는 말이 딱 맞지 않았을까.

 

두 번째 소설은 신혼여행을 떠난 남녀의 이야기이다. 남자는 신혼여행을 가기 전 식사까지 완벽한 플랜을 가지고 떠났다. 그러나 현실은 술만 마시면서 보냈다. 남자의 플랜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처음에는 남자의 입장에 공감이 되었다. 전형적인 계획형 인간으로 일을 시간 단위로 정하는 나에게 이러한 일이 어그러졌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소설을 통해서 보게 되니 머리를 부여잡고 보게 되었다.

 

그러다 마지막 날은 꼭 하자는 생각으로 바다 거북을 보러 나간다. 가이드는 뿔이 달린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뿔이 바다 거북을 찌른다는 말. 남자는 믿지 않았으나, 헤엄을 치던 중 이름 모를 무언가에 손을 찔린다. 그리고 바다 거북을 보지 못해 마지막 날도 그렇게 저물었다. 이슬람 음식점에서 물담배와 술을 마시고 돌아온 뒤, 사건이 터지고 이를 바라보면서 끝난다.

 

이 커플 역시 사내 연애였는데, 직원들의 적극적인 공세와 여자를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으로 빠르게 결혼한 결과였다. 수면제를 먹거나 술을 과하게 마시는 여자의 행동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행동 변화를 강요하지만, 나중에는 이를 그냥 수용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남자의 입장에 조금 더 공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현실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케이스 중 하나일 텐데, 이렇게 접하게 되니 뭔가 마음의 한 구석이 답답해지면서 물음표로 끝났다.

 

마지막 소설은 꽃집을 운영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남자는 이혼한 뒤 고백을 꽃으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병적으로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다 같은 건물의 회사에 근무하는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 저녁을 먹는다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는 하나, 사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러한 마음을 화분이나 꽃을 통해 전달하게 된다. 그 마음의 매개체가 율마 화분이었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돌직구로 나갔을 테지만, 이혼 후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공식이 바뀌게 되어 마음을 말하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여자를 소개시켜 준다고 하거나 얼른 재혼을 하라는 말들을 건네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는다. 그저 화분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처럼 여자를 멀리서 기다리기만 한다.

 

두 남녀의 이야기를 보면서 성숙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 자체도 결국에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심지어 사랑은 시작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성숙한 사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상대방이 곁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눈에 내가 들고, 관심과 신경을 쓸 때까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는 남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이혼의 상처로 얻은 결과겠지만 말이다. 왜 식물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표현한 것인지, 제목이 러브 플랜트인지 이해가 되었다.

 

단편 소설 세 편과 함께 해설,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나니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사랑은 정형화되지 않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서두에 적었던 것처럼 남의 연애사는 재미있으니 흥미롭게 시작하게 되었으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여운을 남긴 소설이었다.

 

<출판사 '자음과 모음' 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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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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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에 잠재된 '불공정의 평범성'을 지속해서 자각하고 타이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 p.288

이 책은 조선의 사회복지 제도와 역사에 대한 책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역사가 궁금했던 나에게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에 호기심을 생겼다. 조선이라는 국가로 한정적이기는 해도 그도 역시 한국이기에 기대가 됐다. 또한, 앞으로도 사회복지사를 업으로 삼을 사람이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사로서 가지고 있는 수많은 고민과 걱정에 어느 정도 답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조선의 사회복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 두 번째는 각 사회복지 정책을 정책을 만드는 자, 제공하는 자, 제공받는 자의 이야기, 세 번째는 현재의 사회복지지와의 비교 및 고찰로 나눌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조선의 사회복지 역사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와 연관을 지어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굳이 내용에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현장의 이야기와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조선의 사회복지는 공공 영역의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서 발전되어 왔다. 지방의 유지가 자발적으로 곡식을 내놓거나 지방관이 월급이나 사비를 털어 채우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이는 공공 영역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교회나 지식인들을 위주로 민간 영역에서 사회복지를 실천했던 서양 국가들과의 차이점이다. 또한, 환과고독이라는 약자 중심의 선별적복지를 실천했다.

이 책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말한다. 첫 번째는 최근 코로나 19라는 재난으로 전국민이 재난지원금을 받았던 것처럼 조선에도 그러한 성격의 진휼이라는 제도이다. 아무래도 농업 국가이기에 흉작이라는 재난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국민들에게 곡식을 제공하는 제도로 내용에 따르면 1400 년대 조선에서는 흉년으로 13 %의 인구가 진휼을 통해 재난지원을 받았다고 나온다.

두 번째는 조선의 국민연금 제도로 환곡제도이다. 이는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추수한 곡식을 받는 제도로 월급의 일정 부분 이상을 내고, 65 세 이후에 받는 국민연금 제도와 비슷하다. 초반에는 구호 기관으로서 운영되었으나, 후기에는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재원 소진으로 하나의 재원 수단이 되었다. 지금 국민연금의 재원이 바닥나게 되면 납부액을 보존하지 못한다는 여론을 보면 이 역시도 비슷한 것 같다.

진휼과 환곡에 대해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먼저 가장 흥미가 있었던 부분은 조선의 복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회복지에는 노인, 아동,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조선에도 크게 다섯 가지의 복지 분야가 있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아동, 노인, 여성, 장애인, 노비 복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새롭게 느껴진 분야는 노비 복지, 인상이 깊었던 분야는 여성 복지였다.

신분 사회가 없는 현대에는 노비 복지라는 것이 따로 없으나, 읽으면서 노동 복지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비 복지는 출산 휴가에 대한 내용이 나왔는데, 이러한 부분이 눈길이 끌었다. 관례적으로 여성 노비의 출산 휴가는 7 일을 주었으나, 세종은 100 일을 늘려 107 일을 주었다. 이것도 모자라 남편인 남자 노비에게도 출산 휴가를 주었으며, 산전 휴가도 제공하라고 했다. 현재 남성의 양육 휴가의 비율에 대한 기사를 본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묘하게 씁쓸했다. 지금을 놓고 보더라도 세종대왕은 굉장히 열린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복지로는 과부와 독녀 중심의 사회복지가 인상 깊었다. 물론, 부족한 존재이거나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서 복지 정책을 펼쳤던 부분이 아쉽기는 하나, 현대 사회에서는 기혼 여성 위주의 출산 장려 정책,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취업 정책 등이 더 중심이 된다고 생각이 든다. 미혼 여성으로서 이러한 시각이 인상 깊게 보았다.

조선은 복지로 흥해서 복지로 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시대의 복지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는 백성을 위한 복지이다. 민본주의의 복지라고도 하는데, 왕도 백성으로 시작해서 백성으로 끝나는 복지를 실천했다. 그러나 일부 지방관들과 향리들, 백성들의 부정부패와 너무 복지만을 생각한 나머지 다른 예산을 복지 예산으로 돌려 사용하는 등 문제가 많아 결국에는 조선의 복지 제도는 변질되었다. 현재 저예산-저복지를 실천하는 대한민국과 약간 대비가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지방관들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 파트가 가장 공감이 되면서도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사회복지공무원들의 높은 업무 강도에 대해 익히 듣기도 했었고, 사회복지사로서 서류 업무나 꽉 막힌 프로세스에 답답함을 토로하던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백번 이해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융통성 없는 부분들이 조금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급박하게 처리해야 될 서비스를 중앙에 보고를 한 후 결과를 받아 제공하다 보니 시일이 많이 늦어지는 그런 케이스를 말이다.

조선의 사회복지 역사를 보면서 현대와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많았다. 사실 긴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무언가는 없었다. 특히, 내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는 사회복지행정으로서 민간 영역의 사회복지이며, 조선시대는 사회복지정책으로서 공공 영역의 사회복지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로서의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싸우고 있고, 복지 제도를 두고 많은 이익 집단들과 국민들이 토론을 하고 있으며, 불공정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 사회복지를 업으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과연 어떤 마인드와 생각을 가지고 사회복지를 실천해야 하는 것일까.

조선시대의 왕들처럼 열린 마인드를 배우고, 현재의 사회복지정책과 클라이언트 욕구의 교집합을 찾을 수 있는 나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밤이다.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 '들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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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 관계, 그 잘 지내기 어려움에 대하여
정지음 지음 / 빅피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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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편해지고 싶은 마음에 나 역시 내가 좀 착해지길 바랐다. / p.19

살면서 나를 진짜 미치게 만드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사람과 나 자신. 전자는 내 신경을 건드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 때문이라면 후자는 내가 계획하거나 목표로 해 둔 일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이다. 자발적으로 미쳤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제목을 보고 내가 미치는 순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미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와 그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정지음 작가님의 에세이다. 사실 제목을 보고 내용이 궁금했다. 작가가 미치는 순간이 언제인지, 좌측에 적혀 있는 관계와 잘 지내기의 어려움에 대해 무엇을 말할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얼마 전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작가님의 전작을 보면서 필력에 감탄을 했었기에 이번 신작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특히, '경찰서에 만난 죽음'과 '서른 판타지'라는 제목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저자의 생각들에 공감이 되었다. '경찰서에서 만난 죽음'은 경찰서에서 형사가 들고 있는 서류에 있는 시체 사진을 보면서 경찰서에 대한 트라우마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 역시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 편이었는데, 보면서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나름의 안도감이 생겼다.

'서른 판타지'는 '서른인데 정신 차려야지.'라는 말에서부터 시작된 서른에 대한 고찰과 저자에 대한 생각을 담은 내용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른이니까 정신 차리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서 귀에 진물이 나올 정도였는데, 서른이라는 글자를 하나하나 갈기 찢고 싶을 정도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하면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사회적 합의의 탈을 쓴 사회적 판타지가 아닌지 모르겠다.

'스타트업 시궁창 컴퍼니의 세 친구'와 '예비 거지와 백수와 돌싱', '욕설을 버리며' 이야기는 진짜 실실 웃으면서 봤다. 다른 직장을 가더라도 시궁창 컴퍼니의 사장을 기준으로 괜찮은지 정하는 동료분들도, 꿈과 환상의 세계는 수도권 24평형 신축 아파트라고 현실적인 자각을 하는 예비 백수 친구도, 독실한 종교인의 사사로운 걱정 앞에서 찰진 비속어가 아닌 사회성 가득 담은 한마디를 건네는 저자까지. 지극히 평범한 다짐과 일화들을 해학적으로 담는 저자의 필력에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아이를 둔 어머니에 대한 비속어에 대한 고찰과 하늘을 떠난 친구에게 적는 편지들은 이 사회에서의 씁쓸한 단면을 느끼게 했고,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이 올라왔다. 프라푸치노를 엎질렀을 뿐인데, 죄인처럼 눈치를 보는 부모님들의 모습에서 과거 나 역시도 아이를 둔 엄마들을 배척하거나 혐오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성찰과 내 친한 친구가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된다면 그 슬픔을 어떻게 느낄 것인지에 대한 마음들이 뒤숭숭하게 얽혔다. 오늘 전할 수도 있는 마음을 내일로 미루는 거야 말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다는 최고의 오만이자 착각 같다는 말이 마음을 후벼파기도 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떠오르는 CM송이 하나 있었다. 情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초코과자 CM송.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로 시작하는 그 노래. 처음에는 다른 점이 많았다고 생각했지만 저자를 미치게 만든 시궁창 컴퍼니의 사장님의 행동이, 욕을 하지 말자는 새해 다짐이, 서른에 대한 생각이, 일상들이, 어쩌면 그와 비슷한 나의 이야기들을 저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는 아마 같은 현재를 살고 있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청춘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몸은 떨어져 있으나, 시간이라는 것은 한 시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저자와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묘하게 동지애가 생겼다. 저자만의 필력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스스럼없이 꺼낼 줄 아는 저자 덕분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 특별하게 미칠 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직설적으로 한마디를 거넨 것은 아니었으나 오늘도 여전히 요지경인 세상과 미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고통받는 이가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 함께 이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을 준 것은 아니었을까.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 '빅 피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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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첫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1
김리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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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멀고, 우리의 집은 더 멀고, 민들레 꽃씨가 날아와 우리 머리 위에 내려앉는 꿈은 가까운 그런 밤이었다. / p.199

 

이 책은 제목처럼 시와 소설이 한 권으로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계절마다 시와 소설을 하나씩 선정하는 시소 프로젝트로 선정된 작품들과 작품을 쓴 작가님들의 인터뷰가 실린 단행본이다. 처음에는 계절별로 나누어져 있다고 해서 각 작품마다 계절의 배경이나 모습을 살린 작품들이라고 짐작했었다. 계절별로 소설을 떠올리는 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보니 계절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봄인 배경으로 상상하면서 읽을 수는 있겠지만, 시와 소설에는 계절을 암시하는 표현이나 배경들은 없었다. 아예 계절적 배경이 없는 작품들이 많았으며, 오히려 가을에 선정된 최은영 작가님의 답신이라는 작품은 '오늘은 5월의 맑은 날"이라는 표현을 통해, 봄에 선정된 손보미 작가님의 해변의 피크닉이라는 작품은 주인공이 여름방학에 할머니댁에 간다는 설정을 통해 계절 배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해당 계절에 선정된 작품이었다.

 

봄에 선정되어 나에게는 처음 시와 소설의 처음을 열게 해 준 <사운드북>과 <해변의 피크닉>. <사운드북>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책으로 사랑의 의미를 말하는 시이다. 처음에 조카가 가지고 노는 동물 소리 책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아이가 누르면 소리가 출력이 된다는 것 정도만 인식하면서 읽었는데, 사실 시를 해석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작가님의 의도를 잘 몰랐다. 인터뷰 내용을 통해 사운드북을 사랑이라는 것에 비유를 해서 표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같이 학습하는 것보다 서로 부족한 점을 보고 배우면서 알려주는 것이라는 내용을 사운드북에 비유했다고 하셔서 감탄하게 되었다.

 

<해변의 피크닉>은 초등학생 아이의 성장 소설이다. 집에 놀러온 뚱뚱한 남자 아이를 보고 든 생각과 방학마다 놀러가는 할머니댁에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아이의 생각과 느낌 위주로 흘러가는 소설이었다. 뚱뚱한 남자 아이의 딱 맞는 폴로 셔츠를 보고 생각에 잠기거나 그 아이와 관련된 나쁜 소문을 떠올리기도 하고, 할머니댁에서 보게 된 배 다른 삼촌과 가족과의 관계 등이 묘사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는 약간 반대되는 심리가 많이 등장한다.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나, 할머니께서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면 심기가 안 좋아지실 것을 걱정해 망설이는 아이와, 손녀를 챙겨주면서도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네는 할머니의 모습들이 그렇다. 이 소설은 인터뷰를 보면서 크게 와닿았던 작품이다. 아이의 생각이라든지 작가님의 의도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배신자가 되겠다는 아이의 말이 인상 깊었다.

 

여름에 선정된 <불시착>과 <미조의 시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챕터이다. 시와 소설 둘 다 나에게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이 많았다. <불시착>은 집에 떨어진 운석에 노래한 시이다. 처음에는 운석 그 자체를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인터뷰를 보니 원하는 것이 진짜 원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뜻하지 않게 오는 것에 대한 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단순한 부름이어도 운석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에 맞게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타인의 의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개인적으로 AB6IX의 불시착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작가님께서 그 노래를 듣고 시의 제목을 정하셨다고 해서 내심 반갑기도 했었다.

 

<미조의 시대>는 완전한 것이 없는 어느 청년의 이야기이다. 미조는 새로운 일을 구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재개발로 인해 집을 이사할 위기에 놓여 있다. 그리고 미조의 옆에는 수영이라는 친한 지인이 있다. 수위가 센 성인 웹툰을 그리고 있으며, 일한 지 육 개월부터 탈모가 생긴 그런 인물이다. 직장부터 집까지 옮겨야 하는 미완전한 미조를 보면서 나와 공통점을 찾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특히, 미조가 집에서 끊임없이 자라는 고구마 줄기를 보고 자신의 감정을 일기에 적으려다 '고구마 줄기'라는 딱 다섯 글자만 적는 장면이 있다. 소설에서 시로 하루의 일과를 작성하시는 어머니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었는데, 그 두 사람의 모습에서 감정을 글로 적는 것을 망설이던 과거의 나와 매일 일기와 독서평을 적는 현재의 나가 조금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을에 선정된 <영원에서 나가기>와 <답신>. 가장 기대가 되었던 챕터이다. <영원에서 나가기>는 늙어감에 대해 노래한 시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늙어감만 말하는 시인 줄 알았다. 잼이 나오기도 하고, 새가 유리 벽을 통과하다 죽는다는 내용이 나와서 조금 의아했었는데, 죽음이나 영원까지 확장시킨 시라는 것을 인터뷰 해석으로 알게 되었다. 자라는 것과 늙어가는 것에 대한 생각부터 시작해 영원에 조금 더 가까울 수 있는 방법이나 어떤 관념으로 영원을 보는 것인지에 대해 조금은 구체적으로 해석이 되어 있어 흥미롭게 봤었다.

 

<답신>은 이모가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작품이다. 작년에 밝은 밤을 읽으면서 큰 감명을 깊었던 기억이 남아 있기에, 최은영 작가님의 소설이 가장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으며, 전체 작품 중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여기에서 편지를 쓰는 이모는 교도소에 있다. 조카와 언니에 대한 애정과 반대로 소설 속의 이야기는 암울하기만 하다. 결론적으로 언니는 가정폭력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나, 형부는 좋은 사람이라고 계속적으로 두둔한다. 이후에는 형부가 자녀에게만큼은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형부의 오해로 인한 사건으로 이모는 교도소에 가게 된다. 법정에서도 형부를 두둔하는 언니의 거짓 증언을 들으며, 이를 인정해 실형을 살게 되었다. 재판이 끝난 이후 변호사로부터 스스로 벌을 주는 행동을 그만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어쩌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가정폭력의 현실을 보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거짓 증언을 했지만 언니를 사랑하고, 이제 다 커서 얼굴도 모르는 조카를 사랑하는 이모의 마음도 진솔하게 적혀 있어서 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모래놀이>는 놀이터에서의 모래에 대한 시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래놀이를 주제로 한 시이다. 처음에 내용만 보고 아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노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시에서도 미끄럼틀에 모래를 치웠는데, 오빠가 이를 다시 놓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즐겁게 놀이를 즐기는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읽었다. 인터뷰를 통해 모래처럼 나의 모습을 잃어간다는 것과 어른들과 다르게 아이들은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 등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이 나왔다. 특히, 돌봄 노동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프리 더 웨일>은 남편을 잃은 한 여성 가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신촌문예 당선 이후 글을 쓰지 않았으며, 남편은 공대를 나온 작가지망생이었으나 현실적인 문제로 전기배선의 일을 했었다. 그러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주인공은 생계를 위해 학습지 회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다른 직원들과 섞이지 못했으며, 여성을 비하하는 상사와 자리가 없어 옮겨 다니는 상사도 만나게 된다. 그러다 열었던 창문이 닫혀 있는 모습과 'free the whale'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보게 된다. 누가 창문을 닫는지와 포스트잇을 누가 적는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 등 다양한 감정들을 들려준다. 이 또한 워킹맘이자 싱글맘으로서의 단면들을 소설로 통해 경험할 수 있었고, 회사에서 아이를 가진 직원에게 대하는 현실의 벽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씁쓸했다.

 

시를 이렇게 많이 봤던 적은 처음이다. 그런데 뒤에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해석하는, 비하인드 등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다. 시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면 좋았겠지만, 아직은 그 정도까지는 못 오르는 것 같다. 보면서 현실에 있는 많은 일들과 물건을 보고 인간의 죽음이나 미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을 시킨다는 게 대단했다. 소설은 나도 모르게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많이 느꼈다. 특히, 뒤로 가면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주제들이 있었는데, 직접 보았거나 들은 이야기들이 곧 소설에 펼쳐져서 답답했던 점들도 많았다.

 

이렇게 시와 소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을 만나 기쁘다. 2021년에 처음으로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2022년에도 나올 각 계절의 시와 소설들이 기대가 된다.

 

<출판사 '자음과 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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