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현요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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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잘 살고 있을까. / p.61

불안과 우울과 고독. 사람들에게는 거의 필수적으로 따라 붙는 감기와 같은 감정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 나이 또래의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 역시도 이러한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안과 절망에서 피어나는 우울, 인간 관계 풍요 안에서 느끼는 고독을 매미처럼 달고 산다. 

사실 책을 통해 위안을 받기는 하지만 대놓고 괜찮을 것이라는 위로를 받고 싶지는 않다. 그럴수록 내 자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삶을 펼친 에세이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지만, 이 시기를 보내는 젊은 세대들을 위로한다는 류의 에세이에서는 별 감흥을 얻지 않는다. 이를 자기 연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항상 이를 경계하는 편이기에 의도된 공감을 받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현요아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앞표지보다는 뒤에 등장하는 '불안과 우울과 고독'이라는 말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비슷한 세대를 살고 있는 작가의 에세이이므로 관심이 갔고, 자살사별자의 기록이라는 점에 더욱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읽었던 자살사별자에 대한 내용이 깊게 남아 있기에 더 알고 싶었다.

저자는 동생을 떠나보낸 자살사별자이다. 동생은 학창시절의 폭력을 비롯한 안 좋은 일로 트라우마가 생겼고,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가족과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지만 따로 살고 있다. 가정폭력과 어머니의 가스라이팅, 동생의 사별까지 겪게 되면서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기도 하다. 1남 2녀 중 장녀로 집안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이것은 개인적인 느낌이기는 하지만 철저한 계획주의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에세이를 읽는 내내 저자의 가정 환경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암울하지만 기구하지는 않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쉽게 만날 수 있는 가정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만 봐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언어 폭력을 비롯해 가정폭력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곪다 못해 터져버린 가정들을 생각하니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들을 보고 있으니 공감이 되기도, 깊은 생각으로 빠지기도 했다. 특히, <자살이라는 말버릇>과 <삶에 애착이 있다는 혼잣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자살이라는 말버릇>은 주변에서 자주 들리는 죽고 싶다 또는 자살하고 싶다 라는 말버릇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보통은 이러한 말들은 자살사별자를 포함한 타인들을 위해서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을 위해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을 계속 읊게 되다 보면 힘을 받아 위태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디어에서도 자살이라는 소재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현재 사회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애착이 있다는 혼잣말>은 한 직원의 말을 듣고 풀어낸 이야기이다. 회식에서 이틀 전부터 술을 끊었던 직원에게 이유를 물으니 삶의 애착이 있어서 안 되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의 전환점을 느꼈다. 저자 또한 다시 생각했지만 말이다. 어려운 일을 하고 있을 때 힘들다는 말보다는 삶의 애착이 있기에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 힘든 현실 속에서 삶의 이유를 생각할 때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애착이 있기 때문에 항상 하루를 보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유리창에 부딪힌 새들을 살리고자 물을 먹여 노력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저자의 힘든 시기에 물을 주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아침이 망했다고 해도 오후에는 덜 망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자는 내용 등 3장 전체 내용들이 크게 와닿았다. 아마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기에 동지애가 더욱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이 절망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자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그저 고맙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어떤 의미로든 말이다. 저자의 개인적이고도 어려운 가정사이지만 보면서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부모님께 서운함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K-장녀, 앞길이 어두워 살아가야 할 힘을 찾지 못하는 동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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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미스터리 키친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진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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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 p.42

한밤에는 역시 술이 빠질 수 없다. 특히, 이렇게 더운 여름에는 맥주와 함께 어울리는 안주들과 하루를 보낼 때가 다른 계절에 비해 많기도 하다. 가을이 되면 체중계에 올라가기 두렵기도 하지만 더운 여름에 차가운 맥주는 거의 천생연분 수준이지 않을까. 나의 간은 한참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글을 빌어 미안하다는 말을 적고 싶다.

이 책은 이시모치 아사미의 소설이다. 처음에는 입맛을 돋게 만들어 주는 소설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그러다 술과 안주, 이야기의 삼박자를 맞춘 소설이라기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술과 안주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거기에 미스터리는 조금 무섭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했기에 걱정을 하면서 읽게 되었던 책이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일곱 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나쓰미와 겐타 부부, 나가에 나기사와 나가에 다카아키 부부로 네 명이다. 보통 이 네 명이 모여 안주와 술을 마시고 그로부터 하나씩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은 안주나 술의 특징을 토대로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흔히 이야기를 시작할 때 '저기 홍길동 씨 기억하지?' 또는 '옛날 옛날에 있잖아.' 이런 류의 이야기 시작 말이다.

두 아이의 엄마의 노력으로 아이들의 학교가 다르다거나 갑자기 이혼을 하는 등 전체적인 이야기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법한 내용이다. 순간 집단 내에서는 뒷 이야기가 나올 수는 있지만 지금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게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특히, 나가에 나기사 라는 인물의 생각을 통해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 다르게 해석이 된다.

개인적으로 사케X오징어내장구이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호와 노모토이다. 둘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 관계인데 어느 날, 미호가 임신을 하게 되어 휴가를 낸다. 여기에서 문제는 미호가 미혼이었다는 것에 있다. 그래도 회사에서는 휴가를 주었으며, 미호는 출산 후 복귀했다. 이상한 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2년 뒤에 노모토와 결혼을 한다. 출산 후 결혼이라는 조금 이상한 순서로 전개되기에 네 명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즈음은 선 동거 후 결혼을 택하는 사람도 있기에 크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동거 중 아이가 생긴다면 출산 이후 결혼을 바로 했을 것이다. 미호가 왜 2년 뒤에 노모토와 결혼을 했을까. 다른 인물들처럼 아이가 노모토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직장 동료들이 봐도 아이의 얼굴은 노모토와 똑같았다고 한다. 점점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결말을 보고 나니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의 가부장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과거에 읽었던 소설들 중에서도 나기사가 생각했던 류의 결과로 흘러가는 내용을 보았던 것 같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가지관의 차이에서 나오는 아쉬움이었다.

전체적으로 흐름 자체가 너무 정형화되어 흘러가기에 좋았다. 일본 소설이기 때문에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헤매는 일이 많은데 이 소설은 매 이야기마다 네 명의 관계를 소개해 준다. 아마 세 번째 정도에 들어가니 대충 어느 지점에 인물에 대한 소개가 나올지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인물 이름을 헷갈리는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전개라고 생각한다.

스릴러의 큰 긴장감보다는 술 한 잔 마시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마치 네 명 사이에 나라는 솔로가 딱 끼어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나기사의 냉철하면서도 날카로운 추리는 소름을 돋게 하기도 했다. 마음은 편안하지만, 머리는 굴릴 수 있었던 그런 추리 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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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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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최선을 다했으니 그들의 운명이겠죠. / p.18

운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운명을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점점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경조사를 챙기면서부터 운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평생 함께 보낼 반려자와 생사의 갈림길 등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제어할 수 없는 운명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책은 김정금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좋아하는 풍경의 표지가 먼저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바다 풍경의 사진을 좋아하는 편이다. 또한, 바다에 가면 무조건 찍는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줄거리를 읽는데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가. 손이 안 가는 게 더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흥미로운 소재들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해수라는 이름을 가진 의사다. 응급의학과에서 나름 능력을 펼치고 있는 10년차 의사인 해수는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이상한 증상을 느낀다. CPR이나 처치를 할 때마다 환자의 과거가 보이는 증상이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증상으로 환자를 살리지 못하게 되면서 사직서를 내밀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환자를 살리는 게 저주라고 하면서 한 아이가 원하는 무언가를 주어야 저주가 풀린다고 하는 스님을 만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에 보았던 드라마의 배경이었던 병원이어서 술술 읽혔다. 읽는 내내 좋은 느낌으로 읽기도 했었다. 해수와 다른 주인공인 연화, 해수의 동생인 해인, 해수의 동료인 재하로 이어지는 네 명의 알 수 없는 운명을 풀어가는 재미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네 명의 운명은 진짜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네명의 기구한 인연은 19년 전에 벌어졌던 남하도 앞바다의 크루즈 사고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는 원인 제공자가, 또 누군가는 희생자가 되어 저주를 받기도,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도 한다. 희생되었던 이들에게는 기구하기는 하지만 큰 사건을 만든 원인을 제공한 자들을 보면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그렇게 큰 사건을 통해 꼬인 운명의 실을 풀어내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연민과 알 수 없는 분노로 읽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아무래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응급실이라는 배경을 가진 소설이면서 네 명의 인연을 다루고 있기에 운명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나온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통해 종교, 국적, 성별 등에 차별없이 처치를 해야 하지만 인간이기에 이를 어기는 모습이, 이무기와 염라대왕들은 선녀와 인간들의 선택에 대한 운명을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그렇다. 사실 신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소설을 보니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운명은 알지 못하는 신의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읽는 내내 도깨비를 주제로 한 드라마 하나의 분위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어떻게 제어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절망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모르기에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운명에 대한 소설이지만 살아가는 지금에 대한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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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상자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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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이라는 것은 끝장을 보려고 들기 마련이다. / p.214

인내심이라는 게 참 무거우면서도 어렵다고 느낀다. 가끔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이성의 끈을 놓게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조카를 보는 중에 책에 먹던 사탕을 떨어트리는 순간들이 그렇다. 다시 냉정함을 찾고 조용히 처리를 하기는 하지만 순간 욱하는 것은 언제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 소설집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인 화차와 솔로몬의 위증이라는 소설의 작가로 익숙하다. 보면서도 나름 인상 깊었던 부분들이 있어서 이 책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표지부터가 뭔가 몽환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총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소설들이었다. 또한, 일본의 분위기가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기도 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일본 소설들 중에서는 거의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분위기와 배경들이 잘 와닿았다. 아무래도 시간적 배경 자체가 에도 시대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역사 시간에 배웠던 일본의 풍경들이 잘 그려져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표제작인 <인내상자>는 갑자기 과자점에 일어난 화재가 일어난다. 과자점의 당주는 인내 상자를 찾으러 불길에 들어갔다 목숨을 잃었다. 당주의 외손녀는 어린 나이에 과자점을 물려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내상자를 열지 말고 보전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상자를 열게 된다면 재앙이 올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마지막을 덮고 나니 '뭘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인내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무함을 많이 느꼈다. 하다못해 인내상자에 들어 있는 무언가를 알았다면 덜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러한 의문은 편집자의 말을 보고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었다. 완독 후 다시 돌아가서 인내상자를 읽으니 느낌이 달랐다. 아마 그 내용이 없더라면 내내 찝찝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었던 작품은 한 부부와 세 자녀의 이야기를 다룬 <무덤까지>이다. 이치베에 부부에게는 입양한 오노부, 도타로, 오유키라는 세 자녀가 있다. 어느 날, 오유키 앞에 친엄마가 나타나 데리고 가겠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친오빠인 도타로는 양아버지인 이치베에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고, 오유키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진다. 고민을 하다가 언니인 오노부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양아버지께 친엄마와 만난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도타로와 오유키 남매, 고민을 들으면서 새로운 비밀을 털어놓는 언니 오노부, 입양한 자녀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이치베에 부부까지 저마다 비밀을 마음에 품고 있다. 솔직히 그렇게 거창한 내용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문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 부분이 조금 신비로우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편집자의 말을 통해 왜 표제작을 맨 처음에 실었는지부터 소설 내용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전해 주는데 이러한 부분이 신의 한 수였다고 느껴졌다. 읽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딱 하고 터트린 느낌이라고 할까. 단순하게 등장 인물의 관계와 배경에만 몰두해 깊은 내용을 찌르지 못해 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읽어야 된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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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윤슬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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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없는 곳에 생명이 있다면 억지인 것처럼. / p.158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은 모의고사 시험지에서 많이 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지적 허영심으로 소설을 등한시했던 터라 그렇게 많은 명작들을 읽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개인적인 해석보다는 일관된 답을 원하는 수능 체계에 대한 반항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자전거 도둑을 읽었던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기억이 흐릿해 남아 있지 않다. 시간이 된다면 작가님의 소설을 도장 깨기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이다. 우선 도장 깨기의 처음으로 에세이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총 서른다섯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로부터의 가르침, 아들의 죽음, 지하철에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남자에 대한 일화 등 일상에서 느꼈던 일들과 거기에서 들었던 생각과 감정, 박완서 작가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필사를 하고 싶을 정도로 공감이 되면서도 마음에 와닿는 부분들이 많았다.

전부 기억에 남지만 두 가지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첫 번째 내용은 배달 기사와의 일화이다. 문예 심사를 위해 관련 서류를 받기로 했었는데 기사의 실수로 다른 아파트에 배달을 한 것이다. 기사는 잘못에 대해 인정했지만 퇴근했으니 가서 가지고 오시라는 말로 불쾌하게 반응했고 작가님께서는 화를 내시면서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 늦은 시간에 온 기사는 생각보다 앳된 얼굴을 가진 남자여서 놀랐다. 너무하다는 말을 남기고 간 모습을 보면서 과연 당신께서 좋은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했다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그렇게 공감이 되지 않았던 내용이기도 했다. 실수에 대해 다시 돌려놓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에 기사의 불쾌한 태도는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퇴근 여부와 상관없이 당연히 수거해서 드리는 게 맞다고 본다. 너무하다는 말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읽다 보니 작가님께서 느끼신 감정은 인간으로서의 연민이자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도 상대방을 배려해 미안함을 가졌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 잘못이라면 무조건 했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박완서 작가님의 등단하실 때 이야기이다. 에세이를 통해 마흔 살에 등단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작품이 나목이라는 이름의 소설인데 응모 마감까지 세 달 남은 상태에서 가족들이 자는 시간에 몰래 소설을 집필하셨다. 처음에는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놀라움을, 그 내용을 곱씹으면서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신 것만 같았다. 항상 무언가를 할 때 나이를 핑계로 주저할 때가 많은데 더 늦어도 좋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박완서 작가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사람에 대한 감정은 너무나 따뜻했다. 이렇게 인간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사람을 대한다면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보는 내내 내 마음도 제대로 된 온도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요즈음 뉴스나 주변 이야기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가 있었는데 이 에세이를 통해 인류애를 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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