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고 한층 가벼워진 여름바람이 부니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그간의 불안과 긴장을 말리며 분주히 움직였다. 비를 맞으며 쑥쑥 자란 논가의 풀을 벴고 무너진논둑은 손으로 일일이 다져 올렸다. 손길이 닿을 때마 다유실된 것이 복구되고 불만과 한탄 속에서도 일상은 되돌아왔다. 여름을 통과하며 열매에게 자연은 때론 친교적 선의를 가지고 손을 내밀지만 때론 환경적 조건의 반응 외에는 어떤 기제도 없는, 생명과는 무관한 존재들처럼도 느껴졌다. - P171
자신을 가로막는 불행과 겨루어 보겠다는 그 날카로운 응시는 여름의 빛과 가장 닮아 있었다. - P186
(독백) 어저귀 너는 뭐였어. 아니, 너는 뭐가 아니었어? 외계인도 아니고 냄새 분자로만 밥을 먹으니 지구인도 아니고 하늘을 나는 대신 택시를 이용한다고 하니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인류애를 잃었다니 천사도 아니고, 대체 뭐였어? 난 누굴 사랑했어? - P206
창세기에 나오는 보시니 좋았다는 말도 모르냐 이놈들아, 세상 만물 모두가 예쁘다 하시는데 유식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애써 만든 영화는 또얼마나 좋아하시겄냐. - P207
열매도 할아버지의 부득이한 사정이 ‘창조‘한 그 많은 마스크들을 보니 좋았다. - P207
사랑? 이, 사랑은 잃는 게 아니여. 내가 내 맘속에 지어 놓은 걸 어떻게 잃어?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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