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는 질투와 열등감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둘은 다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부러움, 소외감으로 일어나는 적개심이 상대방으로 향하는 것이 질투라면, 열등감은 그 감정의 칼끝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면서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든다. 프랑스의 정신 분석가이자 파리 7대학 교수 폴로랑 아숭 Paul-Laurent Assoun은 그의 책 <질투, 사랑의 그림자》에서 질투는 "본래 자신의 것으로 전제된 이익이나 권리 등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라고 썼다. 프로이트는 질투를 "심리 생활과 영혼의 중추로 가는 탁월한 통로"라고 할 정도로 많은 정신 분석가들은 질투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주목했다. - P195

질투와 열등감은 따로, 또 같이 찾아온다. 모두 누군가와 비교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 감정의 칼날이 타자와 자아로 향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질투로 인한 분노와 적대감이 타자에게 폭발한다면, 열등감은 스스로를 비난한다. 우리는 누구나 ‘가볍게‘ 혹은 ‘심각하게‘ 질투하거나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니 이 둘 모두를 자연스러운 감정으로도 볼 수 있고, 더 나아가 누군가는 이를 성장동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질투와 열등감이 우리를 잠식할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본래 내 것이었던 무언가를 누군가가 박탈할 때 상실감이 생기고 질투가 일어나는 것과 달리, 열등감은 ‘본래 내것‘이랄 게 없다. 그러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그것은 본래 다른 사람의 것이고, 나는 가질 능력이 없음을 인정해 버린다. 질투의 고통이 나의 한계치를 넘는 순간 타인에게로 화살의 시위가 당겨진다면, 열등감의 고통은 오직 나에게로만 향한다. 위험한 것은 이런 열등감의 정도가 심해지면 자기비하, 존재의 의미까지 의심하는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 P196

…그를 위해 영양소를 고루 갖춘 점심을 준비하고, 또 일찍 잠자리에 드는 그를 위해 가볍고 소화 잘되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하지만 나는 그런 조력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글을 쓰고 싶었다.
저녁 석양빛이 부드럽게 온 대기를 감싸 안고, 커다란 거실 창의 시폰 커튼이 바람결을 따라 조용히 흔들리는 시간,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그려 낸 풍경 속에 그와 함께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을 따라 수평선이 흐릿해지면 나는 글을 쓰던 책상에서 일어나 조명을 켠다. 내 책상과 그의 책상 위에 켜진 부드러운 조명은 마치 마주보고 있는 작은 섬의 등대의 불빛처럼 서로를 향해 신호를 보내지만, 우리는 더욱 고립된다. 우리는 함께 있으면서도 또 혼자다. 육체는 그렇게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만, 사유는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를 자유롭게 헤맨다.
피곤해진 눈이 서로 마주치면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보낸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내게 말을 건다. "이 원고지의 글들을 컴퓨터 파일로 입력해 줄래?" 그 낭만적인 풍경 속에서 내동댕이쳐진 듯했다. 그가 휘갈기듯 써내려간 원고지를 모아서 타자기로 가지런하게 글들을 모아내는 그런 조력자, 당신이 내게 원했던 게 그거였구나. - P206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원제는 ‘질투‘였다. 질투에는 세 가지가 있다. 경쟁적인 질투감은 우리 모두에게나 있는 정당한 질투다. 투사된 질투는 소유욕이 강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본래 내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생각은 타자에게 투사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위험한 질투는 망상적인 질투다. 푸시킨은 이 질투의 감정을 모두 살리에리에게 투영한다. 처음엔 경쟁적인 질투심으로, 그리고 신이 자신에게 준 재능을 빼앗아 모차르트에게 주었다는 투사된 질투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질투의 대상을 제거하고, 동시에 신에게 복수하는 방법으로 모차르트를 죽이리라는 망상적인 질투로. 그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후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명분에서도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망상이다. 하지만 그런 질투는 결국 스스로를 파멸할 뿐이다.

살리에리
모차르트의 명성이 커질수록 나도 유명해질 겁니다.
"모차르트를 독살한 자, 살리에리." 이렇게 말이죠..

살리에르는 신이 특별히 천재를 사랑했고, 범인들에게는 자비와 친절을 베풀었음을 깨닫는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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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될지 말지는 이제 하늘이 알죠. 비를 내리고, 햇별을 주는 건 인간의 일이 아니니까요." - P220

하지만 나는 누스바움의 해석처럼 통제권의 상실에서 오는 치욕을 따뜻한 보살핌으로도 보상받지 못하는 늙은 왕의 정신적인 혼란을 들여다보게 된다. 한때 그는 한 국가를 통치하던 오만한 왕이었고, 세 딸과 사위에게 받을 존경과 사랑은 그저 당연하다 여겼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잃은 순간, 어느 누구라도 정신을 잃고 광야를 헤매지 않을까. 리어왕의 불행은 바로 육체의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정신적인 상실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 아닐까.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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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누스바움의 해석처럼 통제권의 상실에서 오는 치욕을 따뜻한 보살핌으로도 보상받지 못하는 늙은 왕의 정신적인 혼란을 들여다보게 된다. 한때 그는 한 국가를 통치하던 오만한 왕이었고, 세 딸과 사위에게 받을 존경과 사랑은 그저 당연하다 여겼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잃은 순간, 어느 누구라도 정신을 잃고 광야를 헤매지 않을까. 리어왕의 불행은 바로 육체의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정신적인 상실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 아닐까.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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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엄마가 피워 올리던 담배 연기와 한숨을 이해했다. 엄마는 침묵 속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나를 사랑했다. 때론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자책감으로, 때론 꿈을 포기한 아쉬움으로 그 모든 감정이 그리는 그림자를 이해하게 되었다. 모성애란 산업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바치는 희생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아이를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는 세상 모든 엄마들의 고백이다. 그래서 모성애는 환상이다.
엄마 괜찮아, 엄마도 엄마는 처음 하는 거였어. - P114

결혼이란 시소를 함께 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올라가고 나면 내가 올라가고, 그다음엔 또 네가 그렇게 차례차례 오르락내리락 마주보며 웃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무게만큼 서로의 다리에 힘을 분산하여 균형을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게 중심은 언제든 시소에서 일어나 떠나 버리는 사람 마음대로 깨져 버릴 수 있음을, 그토록 아슬아슬한 것이었음을, 난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았다. 그가 떠난 겨울, 아무도 없는 텅 빈 놀이터에 아무도 올라타지 않은 시소는 기울어져 있었다. 발이 닿지 않는 허공에 혼자 남아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시소란 그렇게 기울어져 있었다. 난 그걸 한참이나 뒤늦게깨달았다. - P134

그 관계 속에서 의미 없는 사랑의 말을 하고, 의식적으로 당신을 보듬는 건 가식이 아니라 안간힘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사랑의 권태로움과 사랑의 종말을 너무나 잘 구별할 수 있으니까. 사랑의 모습이라는 것도 처음엔 총천연색 같다가 서서히 흐려지는 파스텔 톤으로 바뀌니까. 그것도 사랑이니까. 이미 끝난 사랑을 지속하는 것이 가식이고 허위다. 이별이 두려워서 이미 끝난 사랑을 붙잡고 있기도 했다. 그저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되었다. 두렵지만 끝난 사랑은 놓아두자. 다행인 건 영원한 이별이란 없다는 것. 삶이란 만나고 헤어지고, 또 누군가를 만나는 기적의 순환. 그래서 우리는 이 외로운 별에서 살아간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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